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중용의 자유인’을 위한 제언: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중용의 삶과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네 가지 지혜에 대한 논의 309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중용의 자유인’을 위한 제언: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중용의 삶과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네 가지 지혜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ㆍ행정학박사
참고자료
1) '중용(中庸)'은 사서오경에 속하는 경전 중 하나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본래 "예기"의 31편에 나온다./위키피디아
2) '중용지도(中庸之道)'와 '중용사상(中庸思想)'
'중용지도'는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항상 중간을 지키는 도리를 의미한다. 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이는 공자가 강조한 덕목 중 하나이며, 군자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중용사상'은 극단 혹은 충돌하는 모든 결정에서 중간의 도를 택하는 유교교리이다. 유학에서 '중용 '두 글자는 치우침 없음과 일상적 꾸준함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형이상학적으로 '중'은 진리가 있는 곳이며 '용'은 진리가 쓰이는 곳이다. 공자의 중용지도는 인성의 선악 양면을 모두 인정하고 일의 대소후박을 참작하여 시의를 좇아 그 가운데를 취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유교의 중용은 형이상학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가치론적인 수양방법으로까지 발전했다. 한국에서도 이이와 이황, 그리고 실학파의 정약용 선생에 이르기까지 중용의 실천적 의미에 대한 많은 탐구가 있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3)“모든 일에 절제하라. 절제는 자유로 가는 다리요, 지나침은 파멸로 가는 문이다.” 이 문장은 플라톤적 중용과 성경적 절제 개념을 응용한 문구라 할 수 있다.
4)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절제’를 인간의 네 가지 주요 덕목 중 하나로 꼽으며, 절제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공동체를 조화롭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5)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덕은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의 중용(中庸)"이라 하여, 절제는 쾌락과 욕망의 지나침을 피함으로써 인간을 완성으로 이끈다고 보았다.
6) 성경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로 "절제"가 언급된다. 또한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7)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는 "절제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주장을 여러 편지와 저술에서 반복하였다.
8) 필자는 이 글에서 절제의 다른 이름으로 조절을 병용하고 있다.
9) 스토아 철학의 태도는 내면의 평정과 덕을 중심으로 한 이성적 실천적 삶의 자세를 강조한다. 핵심은 인간이 자기 통제와 자연(로고스)에 따른 삶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에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성에 따른 삶(Logos), 자연에 따라 살기(Live according to Nature), 내면의 평정 유지(Apathy), 덕을 최고의 선으로 삼음(Virtue is the only Good), 운명을 수용하는 자세(Fate Acceptance), 자기 수양과 공동체 의식 등이다.
이러한 태도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에픽테토스의 "담화록," 세네카의 "윤리서간집" 등에서 잘 나타난다. 요약하면, 스토아 철학은 이성과 덕을 통해 내면의 자유와 평온을 얻고, 운명을 긍정하며 살아가려는 삶의 태도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지금 필자는 고은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고은층의 삶은 이전의 삶과는 확연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삶의 내용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고, 쉽게 몰입하게 되는 습관은 그대로다.
인간관계 또한 라이프 사이클이 바뀌면서 쉽지 않은 과제가 되었다. 그간 살아온 연륜만큼이나 정리해야 할 자산도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정 관리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감정의 기복이 일어나며, 함께하는 가족들은 이러한 일상의 네 가지 즉, 일, 관계, 자산, 감정에 대해 불만과 염려를 드러낸다.
최근 가끔 만나는 지인들 역시 필자와 비슷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이 동병상련의 고은층에게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동서남북꽃’으로 불리는 아마릴리스(Amaryllis)는 특히 제주 지역에서 이렇게 불리며,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화려하고 균형 잡힌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별칭은 꽃의 대칭성과 사방으로 고르게 펼쳐지는 꽃잎 모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사방이 아름답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는 상징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