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수 인생과 여송지성(如松之盛)의 길: 늘 푸른 소나무처럼 292

나의 교수 인생과 여송지성(如松之盛)의 길: 늘 푸른 소나무처럼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전 학교법인 순총학원 이사장
나는 대학에서 38년간 교수로 재직하였다. 정년 전과 이후를 합치면 평생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한 셈이다. 이제 돌이켜보면,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부끄럽고 아쉬운 점이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절감하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은 참으로 미미하고, 모르는 것은 태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고 깊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서예가 초정 권창륜 선생께서는 나를 보고 ‘여송지성(如松之盛)’이라는 글을 즉흥적으로 써주셨고, 순총신학대학 유영희 전 총장께서도 나를 '늘 푸른 소나무'에 비유하며 덕담의 글을 전해주신 일이 있다. 이 두 분의 격려는 내 삶의 정점에서 받았던 고마운 표징이자,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상징적 언어였다.
‘여송지성’ 소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란다는 이 말은 내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었다는 소망이며, 앞으로 후배 교수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한 내 인생의 표어이자 이상이다. 소나무는 사철 변함없이 푸르며, 꺾이지 않는 기개와 절조를 지닌 존재다.
나는 이 소나무의 상징 속에서 한 사람의 교수로서 지녀야 할 다섯 가지 삶의 방향을 떠올리게 되었다.
첫째는 내공충실(內功充實)이다. 겉보다 속이 깊어야 하고, 드러나는 언변보다 축적된 지식과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 교수는 지식을 가르치기 전에 배움의 태도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
둘째는 심지강건(心志剛健)이다.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시대의 조류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학문과 가치의 길을 꿋꿋이 걸어야만 진정한 교수로서의 자세를 지킬 수 있다.
셋째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이다. 겉으로는 부드럽되 내면은 단단해야 한다.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부드럽게 소통하면서도 교육적 원칙과 신념은 단호히 지켜야 한다.
넷째는 수분정도(守分正道)이다.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정도를 걸으며 교직자로서의 품격을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교수의 길이다.
마지막은 자중자존(自重自尊)이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절제하는 태도 없이는 결코 존경받는 교수로 설 수 없다. 이는 곧 타인의 존중을 이끌어내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나는 이 다섯 가지 덕목을 미리 계획하고 실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어느새 내 교수 인생의 축이 되어 있었고, 지금도 나를 이끌고 있는 가치들이다.
그래서 이 글을 시작으로 각 덕목에 대해 좀 더 깊이 성찰하고, 그것을 후배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내 교수 인생의 마무리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조용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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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푸른 소나무"
유 영 희/ 전 순복음총회신학교 총장 · 목사 · 전 NCCK 대표회장
멀리서도 우뚝 서 보이는 늘푸른 소나무
저는 이성근 교수님을 그렇게 부릅니다. 저에게 보여진 교수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교수님과의 만남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몇 번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봄날의 소담하고 청량한 솔잎의 모습을 연상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학문이라는 한 길을 위해 혼신을 다하며 살아내신 교수님의 학자의 삶이 참으로 존경스럽고 소중한데, 벌써 정년이라는 인생의 매듭 하나를 묶으신다니 참으로 마음으로부터 존경의 인사를 보내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소나무는 애써 겨울을 견디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나무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려 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그 모든 시간을 서두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추위를 이겨내려고 대항하지 아니하고 몸으로 받아내고 견뎌냅니다.
그렇습니다. 소나무는 봄을 기다릴 줄 압니다. 소나무는 그 시간이 오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다 보니 추위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어려움을 견디다 보니 그 어려움이 인내의 열매가 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푸르른 초록빛을 고통에 넘겨주고 낙엽으로 쓰러져 가는 겨울나무와 달리 소나무가 늘 푸르른 이유는 바로 기다림을 통한 소망을 만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성근 교수님의 학자로서의 삶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가늠해 봅니다.
그 학자의 길을 걸어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멋져 보였습니다.
다시 한번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교수님! 더 완숙한 푸르름을 뿜어내시는 앞으로의 날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 소중한 지인으로부터 읽는 이성근 교수의 회상록. 2021. 1. 20. p. 3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