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층의 편안한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편안함에 대한 소망은 삶의 궁극적 지향이다
누구나 인생의 여정을 걸으며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편안한 삶'일 것이다. 이 편안함은 단순한 육체적 안락이나 외적 안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면의 평화, 원만한 관계, 일상의 균형, 사회적 안정 까지 포함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생애 주기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고령층과 은퇴자층, 곧 '고은층(高恩層)'에게는 젊은 날의 치열함을 지나 이제는 삶을 정리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이 더욱 간절해진다.
이 글은 고은층에게 편안한 삶이란 어떤 모습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과 실천 방안은 무엇인지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논의하고 있다.
고은층에게 편안한 삶의 의미는
안식과 온유, 그리고 품격으로 채워지는 삶이다
편안한 삶이란 단지 고통이 없거나 외부 환경이 조용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현재의 삶에 감사할 수 있는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다.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 안정을 포괄하는 다차원의 개념이다.
특히 고은층에게 편안함이란 ‘수고한 삶에 대한 보상’이자, 남은 생을 품격 있게 가꾸는 지혜로운 태도이며, 자신과 타인에게 주는 따뜻한 선물이다.
고은층의 일상에서 요구되는
편안한 삶은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편안한 가정이다.
말이 통하고 온기가 흐르는 가족,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부 관계는 편안한 삶의 중심이 된다. 가정은 감정의 안식처이자 정서의 중심지이다.
둘째는 편안한 인간관계이다.
경쟁, 비교, 갈등에서 자유로운 관계는 고은층의 품위를 더욱 빛나게 한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는 마음에 평안을 준다.
셋째는 편안한 만남이다.
미리 약속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말이 통하고 침묵조차 어색하지 않은 관계는 진정한 편안함의 원천이 된다. 소수라도 깊은 신뢰와 이해가 있는 만남이 중요하다. 특별히 필자는 333 원칙을 선호한다. 배움, 놀이, 여가에 세 사람이 좋다는 말이다.
넷째는 편안한 삶터이다.
자연과 가까이 있고, 이웃과 적당히 연결되며, 소음과 복잡함으로부터 거리를 둔 환경은 몸과 마음을 조용히 감싸준다. 특히 생활 공간이 줄어드는 고은층에게 삶터의 질은 삶의 질 그 자체다.
다섯째는 편안한 일과 역할이다.
은퇴 이후에도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작지만 선한 영향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자존감을 지키는 보람이자 내면의 안정을 가져오는 일터가 된다.
삶의 지혜 속에 담긴 편안함의 보편적 가치는 말과 믿음이 기본이다
편안함은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가치이며, 다양한 말과 지혜 속에 그 정신이 전해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은 말씨와 태도가 관계의 평안을 만든다는 뜻이다.
한자성어 "유유자적(悠悠自適)"은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편히 지내는 상태나 태도를 의미한다. 유의어로 "유연자적"이 있다.
공자는 “편안함은 도리에 따를 때에야 비로소 얻어진다”고 하였고, 에픽테토스는 “진정한 평온은 외부가 아닌 내면의 질서로부터 온다”고 하였다.
성경 마태복음 11:28의 말씀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위로와 평안의 근원이 신앙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러면 고은층에게 요구되는 편안한 삶의 조건과 실천 과제는 무엇일까?
하나는 삶의 결과를 받아들임으로써 편안함을 갖는 것이다. 편안한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다듬어진 삶의 태도, 정리된 관계, 그리고 깊은 사유에서 비롯된다.
둘은 덜어내고 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질, 과거, 사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마음은 가벼워지고, 평안이 찾아온다.
셋은 관계를 정리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오해와 갈등을 정리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화해를 통해 관계를 재구성하는 일은 중요한 실천이다.
넷은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취미, 신앙생활은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든든한 기반이 된다.
다섯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필요가 있다. 일을 떠난 후에도 봉사와 배움, 나눔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다시 찾을 수 있다.
여섯은 감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부족함보다는 주어진 것에 감사할 때, 삶은 덜 지치고 더욱 풍요로워진다.
고은층에게 편안한 삶은 스스로의 선택이며, 태도의 결실이다
고은층이 바라는 편안한 삶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향하는 가치와 자존감을 유지하고, 다양한 관계를 조절하며, 일상의 균형을 이루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편안한 사람’이 되어 서로에게 쉼이 되고, 자신에게도 따뜻한 동반자가 되어야 할 때다. 고요히 흘러가는 황혼의 삶 속에서, 편안함이야말로 가장 귀하고 복된 선물임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편안한 사람들과의 차담, 그 따뜻한 인연"
필자는 ‘333 원칙’을 좋아한다. 배움, 놀이, 여가의 순간마다 세 사람의 만남이 가장 좋다는 의미이다. 서귀포 혁신도시에서 거주한 지 어느덧 3년째, 그간 ‘서귀삼연(西貴三然)’과 ‘신서귀삼연(新西貴三然)’이라 부르는 인연들을 통해 소중한 만남이 이어져 왔다. 특별한 약속 없이, 시간이 나면 그저 전화 한 통으로 차 한 잔을 나누는 사이. 신기하게도 매번 누군가에게 전화하면 언제나 시간이 맞고, 자연스럽게 셋이 모이게 된다.
이 인연은 무던하고도 따뜻하며, 편안한 사람들과 나누는 차담의 시간은 어느새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어제도 그러했다. 평소처럼 자연스레 모인 자리에서, 필자는 문득 한 분께 이렇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은 참 편안한 분이십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이 감동이 일었고,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늘 변함없이 따뜻한 자리를 함께해 주는 두 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편안한 차담의 시간이 앞으로도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참고자료
1) "안거위사(安居危思)"는 편안할 때도 위험한 상황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춘추시대 진나라와 초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 위강이 도공에게 건의하면서 유래되었다. 위강은 도공이 정나라로부터 받은 예물을 사양하며 "평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고, 안정할 때 변동을 생각하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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