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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렇게 흘러간다"

이성근


씨앗을 뿌려 세상을 여는 뿌리는 자
밭을 일구고 가꾸며 씨앗을 키우는 자
땀과 수고로 여문 알곡을 거두는 자
밭을 소유하고 결실을 챙기며 나누는 자
세상만사는 이들의 손길로 쉼 없이 흘러간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고은층(高恩層)에 이르러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과연 어떤 인생형으로 살아왔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 키우는 사람, 거두는 사람, 그리고 결실을 챙기고 나누는 사람 가운데 나는 어떤 역할을 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가를 스스로 묻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네 가지 역할 가운데 하나 또는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 국정 감사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위정자들은 과연 어떤 인생형에 속하고, 누구를 위해 일하며 그 결실을 누구에게 돌려주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바라건대 사람마다 주어진 형편과 역할은 다르더라도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며 세상을 이롭게 하기를 바란다. 고은의 삶에서 소중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결실을 거두느냐보다 그 결실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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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가을 물길 따라 다시 만난 구미의 인연: 63홀 구미 파크골프 소풍과 고은의 도시 재발견"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가을 낙동강에서 다시 만난 구미의 인연

필자는 파크골프를 즐기면서 한 가지 생각을 갖게 되었다. 파크골프 소풍이 즐거우려면 사람·장소·날씨라는 세 가지 조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즐길 좋은 사람, 걷고 운동하며 쉴 수 있는 좋은 장소, 그리고 활동하기에 알맞은 날씨가 어우러지면 파크골프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즐거운 소풍이 된다. 특히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고은층(高恩層)에게 파크골프는 건강을 돌보는 운동이자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고, 자연을 즐기며, 새로운 장소와 지역의 역사·문화를 배우는 생활 속의 소풍이다.

이번에 찾은 곳은 경상북도 구미시 낙동강변에 자리한 63홀 규모의 구미파크골프장이다. 신서귀삼연의 이 선생 주선으로 지난번 동락·양포파크골프장 소풍에 함께했던 구미의 어울림파크골프클럽 회원 두 분과 다시 동행하게 되었다. 지난 방문에서 맺어진 인연이 또 한 번의 소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침 일찍 대구를 출발하여 구미에서 오전과 오후를 보내는 동안 동반자들의 따뜻한 배려와 청명한 가을 날씨, 낙동강변의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져 파크골프 소풍의 세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춘 하루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소풍은 필자에게 구미라는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필자가 알고 있던 구미는 국가산업단지와 첨단산업, 기업과 근로자, 생산과 수출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산업경제도시이자 청년도시였다. 그러나 최근 두 차례 낙동강변 파크골프장을 찾아 체험하면서 구미가 산업과 경제의 도시일 뿐 아니라 자연과 운동, 놀이와 휴식이 어우러진 생활체육도시이자 고은층에게도 매력적인 여가·휴양도시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도시가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시선 속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장소의 이해,
산업의 도시에서 생활체육과 여가의 도시로


구미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경북의 대표적인 산업도시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이자 우리나라 산업화의 중요한 내륙 거점으로 성장한 구미는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전자·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이 발달하면서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구미의 장소적 가치는 산업과 경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쪽으로는 금오산을 비롯한 산림과 역사문화자원이 자리하고,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수변공간에는 자연과 생태, 생활체육과 여가시설이 어우러져 있다. 산업화의 역사와 자연환경, 전통문화와 현대적 생활기반이 공존하는 도시인 것이다.

이번에 방문한 구미파크골프장은 구미시 고아읍 괴평리 낙동강체육공원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A코스부터 G코스까지 7개 코스, 총 63홀로 구성된 대규모 공공 파크골프장이다. 낙동강 둔치의 넓고 평탄한 지형을 활용하여 조성한 이 구장은 탁 트인 시야와 강변의 자연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변 도로와 주차시설을 통해 접근하기에도 편리하다. 축구장·야구장·풋살장·족구장·농구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을 갖춘 낙동강체육공원과 함께 시민들의 생활체육과 여가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세대가 각자의 방식으로 운동하고 쉬며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낙동강체육공원은 시민들의 일상적인 소풍 장소이자 종합적인 생활체육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간 구미시는 낙동강의 수변공간을 활용하여 파크골프 기반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왔다. 구미파크골프장 63홀을 비롯하여 동락·선산·도개·고아파크골프장 각 36홀, 해평파크골프장 27홀, 양포·옥성·장애인어울림파크골프장 각 18홀 등 모두 9개소에 288홀 규모의 파크골프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는 단순히 운동시설의 수가 많다는 의미를 넘어 시민의 건강과 여가생활을 지원하는 생활체육 기반이 도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여러 구장이 낙동강 수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어 운동과 산책, 자연 감상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구미만의 비교우위를 갖는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는 지난번보다 가을이 한층 깊어 있었다. 강변의 나무들은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는 은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넓게 펼쳐진 잔디밭,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의 정원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파크골프를 즐기다 보면 운동을 위해 자연을 찾았는지, 자연을 즐기기 위해 운동을 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놀이와 휴식이 하나가 된다. 구미파크골프장의 매력은 넓은 구장과 다양한 코스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운동하고 쉴 수 있는 장소적 환경에도 있었다.

놀이와 체험, 휴식,
63홀 구장에서 즐긴 2만 보의 가을 소풍


이날 필자는 오전 6시에 일어나 소풍을 준비하고, 6시 50분경 대구를 출발하였다. 차 안에서 준비한 간식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오전 8시경 구미파크골프장에 도착하였다. 구장에서 이 선생을 비롯한 동반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차담을 가진 후 본격적인 파크골프 놀이를 시작하였다. 지난번 함께했던 동반자들이어서인지 처음부터 분위기가 편안하고 화기애애하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농담을 나누면서 시작한 라운딩은 경기의 승패보다 함께 걷고 즐기는 과정 자체가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전에는 F코스와 G코스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라운딩을 하였다. 구장이 넓고 코스가 다양하여 같은 장소에서도 새로운 홀을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오는 토요일에는 이곳에서 클럽 대항 포섬 방식의 경기가 열린다고 하였다.
낙동강변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잔디 위를 걷고, 공을 치고, 동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특히 이날 오전에는 동반자 두 분이 각각 홀인원을 기록하는 기쁨도 있었다. 홀인원은 실력과 함께 행운이 따라야 하는 특별한 순간이다. 두 분의 홀인원을 함께 축하하면서 파크골프의 즐거움은 자신의 좋은 기록뿐 아니라 동반자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데에도 있음을 다시 느꼈다. 이렇게 오전 라운딩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낮 12시 30분이 되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 구장을 나선 일행은 식사 후 낙동강변에 있는 '더 스토리' 카페를 찾았다. 이 선생의 안내로 들른 이곳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건너편 수변경관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차담을 나누었다. 강 건너편에는 지난번 소풍에서 방문했던 양포파크골프장도 자리하고 있었다. 같은 낙동강을 두고 지난번에는 저편에서 이편을 바라보았고, 이번에는 이편에서 저편을 바라보는 셈이었다. 바라보는 위치가 달라지면 같은 장소도 다른 풍경과 의미로 다가온다. 필자에게는 낙동강 양안의 파크골프장이 서로 다른 장소이면서도 하나의 물길로 이어진 여가공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다시 구미파크골프장으로 돌아와 D코스와 E코스를 돌고, 오전에 즐겼던 F코스와 G코스도 다시 찾았다. 아침부터 운동이 이어졌지만 좋은 사람들과 자연 속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 발걸음은 가벼웠다. 특히 이 선생을 비롯한 두 분 동반자는 간식 준비에서부터 라운딩 안내와 휴식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오후에는 다른 파크골프장까지 경험해 보도록 제안하는 등 필자에게 새로운 체험의 기회를 마련해 주려는 온정도 보여주었다. 이러한 배려와 친절은 파크골프를 함께 즐기는 동반자이기에 앞서 좋은 선린(善隣)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오후 4시 30분경 하루의 파크골프 소풍을 마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걷고 운동한 걸음 수는 약 2만 보에 이르렀다. 적지 않은 걸음이었지만 몸의 피로보다 마음의 충만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파크골프는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지만 좋은 동반자와 함께할 때 그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이날의 소풍은 좋은 사람과 좋은 장소, 좋은 날씨가 조화를 이루면 평범한 하루도 오래 기억에 남을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해 주었다.

배움과 힐링,
구미의 옛 인연을 소환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다


이번 구미파크골프장 소풍은 필자에게 단순한 운동과 휴식을 넘어 과거의 시간과 인연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낙동강변을 걷다가 강 건너편의 국립금오공과대학교를 바라보면서 오래전 구미에서 경험했던 여러 일이 떠올랐다. 필자가 구미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초 영남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이후였다. 당시 금오산 초입에 자리한 경상북도 구미자연학습원에서 학과 학생들과 MT를 갖고 금오산에 올랐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때의 구미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활력 있는 도시였고, 금오산은 그 도시의 자연적 상징이었다.

이후 필자는 구미상공회의소 경제연구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경제 연구과제를 수행하였고, 구미시의 지방혁신과 지역발전 관련 정책자문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구미국가산업단지를 혁신클러스터로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연구는 기억에 남는 경험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산업단지를 단순한 생산집적지에서 기술혁신과 산학연 협력이 이루어지는 지역혁신거점으로 전환하려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정책 방향에 따라 한국산업단지공단 구미산단의 의뢰를 받아 구미단지 혁신클러스터 마스터플랜 수립에 연구책임자로 참여하였다. 당시에는 구미산업단지의 경쟁력 강화와 기업지원, 산학연 협력체계 구축 등 산업경제적 관점에서 구미의 미래를 고민하였다.

국립금오공과대학교와 관련된 또 하나의 기억도 있다. 금오공대가 도심에서 현재의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남게 된 이전 부지의 활용 문제가 논의되던 때였다. 당시 영남대학교와 구미시가 이전 부지의 일부를 활용하여 산학협력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대학본부의 부탁을 받고 대학 측 책임자로 참여하여 계획을 구체화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교육부 관계자들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협의하였으나 금오공대 측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비록 결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대학과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산업도시의 새로운 발전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날 강 건너편의 금오공대를 바라보면서 그때의 노력과 아쉬움, 함께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과 관련하여 낙동강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특히 청와대 야외 정원에서 대통령과 관계 부처 장관을 비롯한 500여 명의 4대강 정책자문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낙동강 자문 대표로 5분간 정책자문 소감을 발표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경상북도가 주관한 낙동강 그랜드포럼의 공동대표와 운영위원장을 맡아 낙동강의 개발과 관리에 관한 정책 논의에도 참여하였다.
4대강 사업은 추진 당시부터 찬반 논란이 있었으며, 사업이 완료된 이후에도 그 성과와 문제점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논쟁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관련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의 찬반 논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오늘날 낙동강변에 조성된 여러 시설과 공간이 4대강 사업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당시의 구미 방문은 대부분 회의와 연구, 자문과 현장조사 등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미를 자주 찾았음에도 일정한 목적에 따라 필요한 장소를 둘러보는 주마간산(走馬看山)식의 이해에 머물렀던 측면이 있었다. 이번처럼 낙동강변에 머물면서 온종일 걷고 운동하고 쉬며 자연과 사람을 가까이 경험한 적은 많지 않았다. 과거에는 구미를 연구와 정책의 대상으로 이해하였다면, 이번에는 일상과 생활의 공간으로 새롭게 체험한 것이다.

구미의 역사·문화·자연자원 역시 파크골프 소풍과 연계할 가치가 크다. 금오산도립공원은 수려한 산세와 자연경관을 갖춘 구미의 대표적인 명소이며, 금오산 자락의 채미정은 고려 말 충신이자 성리학자인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는 역사문화 공간이다. 인근 구미성리학역사관에서는 구미와 영남지역의 성리학 전통과 선현들의 학문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와 역사자료관은 한국 산업화의 역사와 구미의 현대적 발전을 이해하는 장소이다. 낙동강변의 동락공원과 들성생태공원, 여러 파크골프장과 수변 산책 공간은 자연과 생태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자원이다. 이러한 장소들을 파크골프와 연계한다면 구미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자연에서 심신을 치유하는 복합적인 소풍이 될 수 있다.

특히 필자는 최근 두 차례의 구미 파크골프 소풍을 통해 도시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산업경제도시로서의 구미가 생산과 성장, 일자리와 기업활동의 공간이라면, 낙동강변의 생활체육과 여가공간은 건강과 휴식, 관계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공간이다. 두 가지 기능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경쟁력과 삶의 질을 함께 높이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 산업도시의 기반 위에 자연과 문화, 체육과 여가를 더할 때 구미는 청년들이 일하기 좋은 도시이면서 고은층이 건강하고 품격 있게 살아가기 좋은 도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도시발전을 산업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시민의 일상과 삶의 질이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번 소풍에서 얻은 가장 뜻깊은 배움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맺음말
고은층이 다시 찾고 싶은 도시, 구미


이번 구미파크골프장 소풍은 필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을 남겼다. 첫째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관계와 동행의 즐거움이다. 이 선생을 비롯한 두 분 동반자의 따뜻한 배려와 친절은 하루의 소풍을 더욱 풍요롭게 하였다. 둘째는 낙동강변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 속에서 운동하고 쉬며 몸과 마음을 돌본 건강과 자연의 즐거움이다. 셋째는 구미와 맺어 온 지난날의 인연을 회상하고, 익숙했던 도시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배움과 성찰의 즐거움이다. 이 세 가지 즐거움은 서로 어우러져 단순한 파크골프 체험을 인생 후반기의 뜻깊은 소풍으로 만들어 주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삶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건강하고 즐겁게, 품격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데 있다. 인생 후반기에는 지난날처럼 성취와 경쟁만을 앞세우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며, 자연과 문화를 가까이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생활이 더욱 소중해진다. 필자가 추구하는 고은층의 생활철학은 유유자작(悠悠自作)이다. 유유(悠悠)가 서두르지 않고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자세라면, 자작(自作)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하며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는 태도이다. 파크골프 소풍에서 유유는 자연을 즐기고 쉬며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자작은 스스로 운동하고 배우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번 구미에서의 하루는 이러한 유유와 자작의 조화를 일상에서 실천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난날 필자에게 구미는 산업발전과 지역혁신을 위해 연구하고 자문하던 도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좋은 사람들과 낙동강변을 걸으며 운동하고 차를 마시고, 가을 풍경을 즐기면서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도시로 다가왔다. 같은 구미이지만 인생의 시기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도시의 의미도 달라진 것이다. 이제 필자에게 구미는 산업경제도시이자 청년도시일 뿐 아니라 고은층이 즐겨 찾고 머물며 건강과 행복을 가꾸어 갈 수 있는 여가·휴양도시이기도 하다.

도시는 산업으로 성장하지만 사람의 삶으로 완성된다. 좋은 도시는 청년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고은층에게는 건강하게 즐기며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 준다. 낙동강의 물길이 유유히 흐르듯 필자의 구미와의 인연도 과거의 연구와 정책활동에서 오늘의 파크골프 소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구미는 필자에게 일하러 가던 도시에서 즐기고 배우며 다시 찾고 싶은 도시로 그 의미가 넓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구미의 강변과 산천을 찾아 걷고 배우며 유유자작하는 고은의 소풍을 이어가고 싶다.

사진·이성근. 사진 1·2·3은 구미파크골프장의 풍경이며, 사진 4·5·6은 낙동강변에 자리한 ‘더 스토리’ 카페와 이곳에서 바라본 낙동강 건너편의 풍경이다. 202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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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비범(非凡)과 한 범인(凡人)의 고은한담(高恩閒談): 세 교수의 학문과 인생철학을 돌아보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우연한 만남에서 피어난 고은한담


사람의 인연은 때로 뜻하지 않은 자리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오랜 세월 학문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인생 후반기에 다시 만나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특별한 즐거움이다. 젊은 날의 만남이 배움과 경쟁, 성취와 도전의 시간이었다면, 고은층(高恩層)의 만남은 성찰과 감사, 지혜와 나눔의 시간이 된다.

오늘 오후 대구 수성구의 한 카페에서 뜻깊은 만남이 있었다. 대구대학교의 중허 선생과 영남대학교의 채산 선생, 그리고 두 분보다 한참 어린 필자가 우연히 만나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세 사람 모두 오랜 세월 대학에서 학문과 교육에 종사하였고, 이제는 고은층으로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생 후반기의 길을 걷고 있다. 두 선생은 필자가 평소 존경해 온 원로 교수들이며, 필자는 두 분에 비하면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후학이다.

필자는 이날의 만남을 '두 비범과 한 범인의 고은한담'이라고 이름 붙였다. 두 선생의 학문적 경륜과 인생의 지혜를 비범함으로 받아들이고, 필자 자신은 그 곁에서 배우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겸손과 해학을 담은 표현이다. 이날의 고은한담은 단순한 안부와 세상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세 사람이 걸어온 교수 인생과 학문의 자세,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삶의 철학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중허 이해두 선생
촌철살인과 묵언지교, 중우·중곡·중허의 인생철학


중허 이해두(海斗) 선생의 이름에는 바다 해(海)와 말 두(斗)가 담겨 있다. 필자는 그 이름에서 바다처럼 넓고 깊은 도량과 세상을 헤아리는 지혜를 떠올린다. 오랜 세월 학문과 교육에 헌신한 해두 선생에게서는 깊이 있는 통찰과 간결한 표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짧은 한마디로 사물의 본질을 짚어 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지혜가 돋보인다.

필자가 선생에게 호에 관해 여쭈었을 때, 선생은 살아온 시기에 따라 중우(中友)·중곡(中谷)·중허(中虛)를 사용해 왔다고 설명해 주었다. 언론인 시절의 중우는 글을 읽어 주는 독자들과 함께한다는 뜻이고, 대학 재직과 퇴임 이후의 중곡은 산속 깊은 골짜기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중허는 마음을 모두 비운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필자는 이 세 가지 호의 변화에서 사람과의 소통, 자연과의 동행, 그리고 내면의 비움으로 이어지는 인생철학의 성숙을 읽을 수 있었다.

필자는 중허 선생의 인간관계를 묵언지교(默言之交)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말이 많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과 뜻을 이해하고,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우정을 이어가는 관계를 의미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진정성과 신뢰라는 생각이 든다. 해두 선생의 간결한 말씀과 여유로운 태도에서는 오랜 학문적 수련과 인생 경험이 빚어낸 품격을 느끼게 된다.

현재 중허 선생은 서귀포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복잡한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연과 더불어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는 삶이다. 필자는 이러한 삶이 단순한 은거나 휴식이 아니라, 오랜 세월 쌓아 온 학문과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본질을 음미하고 마음의 자유를 추구하는 인생 후반기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중허에 담긴 비움의 정신은 고은층이 되새겨야 할 소중한 삶의 지혜로 다가온다.

중허 선생의 삶에서 필자가 배우는 것은 넓은 도량과 깊은 통찰, 그리고 말보다 마음으로 이어지는 관계의 소중함이다. 바다처럼 넓게 받아들이되 사물의 본질은 예리하게 살피고, 많은 말보다 짧고 깊은 한마디로 뜻을 전하는 태도는 고은층이 지녀야 할 품격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채산 홍우흠 선생
자연에서 진리를 캐고 지행합일을 실천하다


채산(採山) 선생의 호에는 자연 속에서 학문을 닦고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산에서 귀한 것을 찾아내듯 세상의 현상과 사물 속에서 지식과 지혜를 발견하고자 하는 학문적 자세를 상징한다. 채산 선생은 이러한 뜻을 담아 채산서재를 운영하며 학문과 사색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채산 선생의 학문적 태도를 거두절미(去頭截尾)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거두절미는 불필요한 수식과 군더더기를 덜어 내고 핵심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태도이다. 화이부동은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자세이다. 학문과 교육의 세계에서 이러한 태도는 중요하다.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며, 다른 사람과 의견이 같다고 반드시 좋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화이부동은 학문적 자유와 인간관계의 품격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면서도 대화를 이어가고, 자신의 주장을 지키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는 지적 교류의 기본이다. 필자는 이러한 자세가 대학에서의 학문 활동뿐 아니라 고은층의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채산 선생의 삶에서 또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이다. 학문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배운 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삶의 태도로 연결해야 한다. 채산서재라는 공간도 필자에게는 학문과 사색, 자연과 생활을 연결하는 상징으로 다가온다. 학문을 연구실과 강의실에 가두지 않고 인생 후반기의 일상 속에서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고은층에게 배움은 정년과 함께 끝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직업적 의무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탐구하고,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삶의 지혜로 발전시킬 수 있다. 채산 선생의 학문과 생활에서 필자는 배움과 실천이 하나가 되는 고은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여송지성
소나무의 지조와 유유자작의 고은철학


필자는 두 선생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교수 인생과 고은철학도 돌아보게 되었다. 필자가 소중히 여기는 말 가운데 하나가 여송지성(如松之性)이다. 이는 서예가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 선생이 써 준 휘호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소나무처럼 곧고 푸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을 담고 있다. 사계절 푸른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처럼 교육자로서 지성과 인격을 지키고, 세월이 흘러도 배움과 실천의 자세를 잃지 않겠다는 뜻이다.

필자는 영남대학교에서 38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문과 교육, 연구와 사회봉사에 힘써 왔다. 그 과정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으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근학무실(勤學務實)의 자세로 부지런히 배우며 실질적인 성과를 이루고자 노력하였다. 학문은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실천의 기반이라고 생각해 왔다.

정년 이후에는 교수로서의 직업적 역할에서 벗어나 인생 후반기의 삶을 새롭게 설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고은층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고은층의 생활철학으로 유유자작(悠悠自作)을 강조하고 있다. 고은층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직업에서 은퇴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살아온 세월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자신과 이웃, 그리고 사회를 위해 품격 있는 삶을 이어가는 인생 후반기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유유자작은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두 가지 삶의 기준인 유유와 자작을 결합한 말이다. 유유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자신을 돌보며 살아가는 태도이고, 자작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뜻있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자세이다. 이는 유유자적의 여유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배움과 실천, 관계와 나눔을 지속하려는 생활철학이다.

필자는 이러한 고은의 삶에서 귀선선린(貴善善隣)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은 인연을 귀하게 여기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생 후반기의 행복은 개인의 건강이나 물질적 여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좋은 사람과 만나 담소하고, 함께 배우며, 가진 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삶의 즐거움과 보람이 더욱 깊어진다.

이날 두 선생과 나눈 고은한담도 필자에게는 귀선선린의 소중한 실천이었다. 중허 선생의 비움과 자적, 채산 선생의 지행합일, 그리고 필자가 지향하는 유유자작은 표현과 강조점은 다르지만, 학문과 인생을 성찰하면서 자신다운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맺음말
학문의 인연을 고은의 선린으로 이어가다


오늘의 만남을 돌아보면 세 사람의 삶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함께 존재한다. 중허 선생은 중우·중곡·중허로 이어지는 인생철학을 바탕으로 소통과 자연, 비움의 지혜를 실천하며 유유자적의 삶을 살아간다. 채산 선생은 학문과 자연을 연결하며 지행합일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여송지성의 다짐을 지키면서 배움과 나눔을 지속하는 유유자작의 고은길을 걷고자 한다. 세 사람의 삶의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학문을 소중히 여기고 인생 후반기를 의미 있게 살아가려는 뜻에서는 서로 닮아 있다.

필자는 특히 두 선생에게서 자유소통과 지행합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학문적 경륜이 깊을수록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자신의 지식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여기에 중허에 담긴 비움의 지혜와 채산의 지행합일, 그리고 고은층의 삶에서 요구되는 귀선선린과 유유자작의 가치를 더하면, 인생 후반기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품격 있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날의 교수 인생은 학문적 성취와 사회적 역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고은의 교수 인생은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삶의 지혜로 바꾸고 좋은 인연을 지속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에는 끝이 없다는 학해무변(學海無邊)의 정신은 정년 이후에도 유효하며, 배움과 나눔의 사명 또한 인생의 마지막까지 이어질 수 있다. 다만 그 길은 더 이상 서두르거나 경쟁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여건에 맞추어 유유자작하며 걸어가는 길이다.

오늘의 고은한담에서 필자는 두 선생의 비범함을 다시 느끼는 동시에 평범한 자신의 삶도 돌아보았다. 그러나 비범과 범인의 구분이 반드시 학문적 성취나 사회적 지위의 차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 후반기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움을 나누며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나눈 한담은 끝났지만, 그 속에서 얻은 배움과 여운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두 선생의 지혜를 배우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담소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 역시 소나무처럼 곧고 푸른 마음을 지키면서 좋은 인연을 귀하게 여기고, 배우며 나누는 고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자 한다.

두 비범과 한 범인의 고은한담은 그렇게 학문의 인연을 삶의 선린으로 이어 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고은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만나 서로의 삶을 배우고 함께 웃으며 유유자작하는 일상 속에 있음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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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비범(非凡)과 한 범인(凡人)의 고은한담(高恩閒談)"

이성근

중허 선생은 촌철살인 속에 묵언지교를 품고
채산 선생은 거두절미하며 화이부동을 실천하고
여송지성은 격물치지하며 근학무실을 다짐한다
두 선생은 자유소통과 지행합일로 학문의 길을 밝히고
한 범인은 귀선선린하며 유유자작의 고은길을 걷는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오늘 오후 대구 수성구의 한 카페에서 대구대 이해두 교수님과 영남대 홍우흠 교수님, 그리고 두 분보다 한참 후배인 필자가 우연히 만나 고은한담을 나누었다. 중허(中虛) 이해두 교수님은 바다처럼 넓고 깊은 뜻을 지닌 이름에 걸맞게 현재 서귀포에서 유유자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채산(採山) 호우흠 교수님은 자연 속에서 학문을 닦고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의 호를 지니고 채산서재를 운영하고 있다.
필자의 여송지성(如松之性)은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 선생의 휘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나무처럼 곧고 푸른 지성과 인격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다.
세 사람이 나눈 대화에서 두 교수님의 학문적 품격과 삶의 철학을 되새기고, 필자 자신의 교수 인생과 고은철학을 성찰하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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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떨까?

이성근

파리채 놓으니 파리가 사라지고
모기약 놓으니 모기가 멀어진다

해 뜨면 달팽이는 배추 속에 숨고
날 밝으면 박쥐도 자취를 감춘다

검찰청 문 닫고 중수청 문 열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사진ㆍ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오늘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려는데 파리가 날아들었다. 주인에게 파리채를 달라고 했더니, 정작 파리채를 가져오자 파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며칠 전 서귀포 칠십리 방파제에서는 식사를 기다리는 우리 곁에 야생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우리가 나누는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먹을 것이 생기리라는 생존의 본능 때문인지 음식이 올 때까지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파리도, 달팽이도, 박쥐도, 고양이도 주변의 작은 변화와 신호에 저마다 반응하며 살아간다.
마침 검찰청이 문을 닫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이 새롭게 문을 여는 큰 제도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름과 조직이 바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자연과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시작된 궁금증을 사회의 변화에 겹쳐 보며 이 디카시를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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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테크노파크에 뿌린 씨앗, 의리로 이어진 인연:
이재훈 교수의 회상과 이성근 교수의 경북테크노파크 탄생 이야기"

"한국 테크노파크에 뿌린 씨앗은 지역혁신의 결실로 자라났다.
그 과정에서 맺어진 인연은 세월을 넘어 의리와 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업의 성과는 역사에 남고, 사람의 의리는 마음에 남는다."


첫 번째 이야기
[이재훈 교수의 회상글]
이성근 교수님, 한국 테크노파크의 ‘기획자’이자 ‘산파(産婆)’


이재훈 前 경북테크노파크 원장 · 前 한국테크노파크협의회 회장 · 영남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압량벌에서 시작된 만남과 테크노파크의 기획

1997년 3월. 압량벌의 바람은 거칠었다. 영남대학교 본관에서 이성근 교수님을 처음 만났다. 당시 이 교수님은 영남대학교 테크노파크 기획추진단장으로서 한국 테크노파크 조성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미국 유학 때 기술혁신형 기업의 인큐베이션(보육), 산학협력과 중소기업 간 협력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경쟁력 강화, 기업지원 중간조직과 지역정책수립기관 등을 통한 지역혁신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한 실천과제를 고민했던 나는 이 교수님의 요청으로 기획추진단에 전격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영남대학교는 과학기술처 정책연구과제인 「대학 연구단지의 조성 및 운영관리방안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테크노파크 조성을 기획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이성근 교수님이 자리하셨다. 테크노파크 조성계획이 당시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국책과제로 추진됨에 따라, 영남대학교가 중심이 되어 대구경북 기술거점 경산테크노파크 조성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사무국을 설치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후 1997년 6월 정부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영남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경북테크노파크는 12월에 6개 시범테크노파크 사업자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해관계를 넘어 협력의 거버넌스를 실천하다

이 과정에서 이성근 교수님은 다양한 이해관계의 주체들이 난상토론과 협상, 양보를 거쳐 결국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서로 협력하도록 하는, 흔히 말하는 거버넌스를 이론과 실천을 통하여 몸소 보여주셨다.

경북대 중심의 대구테크노파크와 영남대 중심의 경북테크노파크가 각각 사업을 준비함에 따라 지역 언론에서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강했고, 지역 대학들은 두 테크노파크 가운데 어디에 참여해야 하는가를 두고 눈치보기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경북테크노파크에 참여하는 대학들도 서로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당한 고민과 진통을 겪고 있었다.

이처럼 험난한 과정에서 이성근 교수님은 테크노파크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철학, 그리고 자리가 아닌 이슈 중심의 접근과 설득을 통하여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최우수 테크노파크의 초석을 놓았다.

한국 테크노파크의 기획자이자 산파

현재 국내에는 자칭 타칭 내로라하는 테크노파크 전문가가 많다. 그러나 ‘테크노파크’라는 용어조차도 생소하던 1990년대 후반에 정책연구의 결과를 국책사업으로 승화시켜, 이제 스무 살을 맞은 우리나라, 특히 경북테크노파크가 지역경제 활성화의 첨병은 물론 세계적인 명품이 되도록 탄생, 발전시킨 ‘기획자’이자 ‘산파역(産婆役)’을 하신 분이 바로 이성근 교수님이시다.

함께한 기회에 대한 감사와 정년퇴임 축하

이 중요하고 필수적인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경북테크노파크 원장과 한국테크노파크협의회 회장을 각각 3회 역임하여 한국 테크노파크의 ‘산증인’이란 멋진 경력을 갖추게 해 주셔서 개인적으로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경북테크노파크의 ‘기획자’이자 ‘산파역’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퇴임 이후에도 우리 경북테크노파크는 물론 국내외 ‘테크노파크’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당부드리고, 정년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출처: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 정년기념 회상록, 2021. 1. 20., 314쪽부터 수록된 이재훈 교수의 글.


두 번째 이야기
[이성근 교수의 고은산책]
"한국 테크노파크에 뿌린 씨앗과 의리로 이어진 인연:
경북테크노파크의 탄생을 돌아보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테크노파크에서 맺어진 인연과 변함없는 의리


필자는 영남대학교에서 38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 안팎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였다. 그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의 하나가 한국 테크노파크의 탄생과 국가 시범사업인 경북테크노파크의 선정 및 유치이다. 테크노파크는 필자에게 단순한 국책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정책을 기획하고 실천하며,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고 협력의 가치를 배운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한 분이 이재훈 교수이다. 이 교수는 1997년 필자가 주도하던 영남대학교 테크노파크 기획추진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힘을 보태주었다. 이후 경북테크노파크 원장으로 재직하면서도 필자의 여러 제안에 지지와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필자의 정년기념 회상록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에 따뜻한 평가와 회상의 글을 보내주었으며, 최근에는 필자의 가족행사에도 잊지 않고 축의를 전해주었다. 세월이 흐르고 서로의 삶의 환경이 달라져도 지난날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의리를 지키는 이 교수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교수는 회상글에서 필자를 한국 테크노파크의 ‘기획자’이자 ‘산파(産婆)’라고 평가하였다. 필자로서는 고맙고도 과분한 말씀이다. 테크노파크의 탄생은 어느 한 사람의 성과가 아니라 대학과 정부, 지방자치단체와 산업계, 그리고 여러 전문가가 뜻을 모아 이룬 공동의 성과였기 때문이다. 이제 인생 후반기의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면서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한국 테크노파크에 씨앗을 뿌렸던 지난날과 그 과정에서 맺어진 소중한 인연을 돌아보고자 한다.

시작과 구상:
대학연구단지에서 한국 테크노파크로


테크노파크는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통해 지역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역혁신거점이다. 단순히 기업과 공장을 한곳에 모으는 산업단지와 달리 연구개발, 기술이전, 창업보육, 기업지원과 산학협력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데 의미가 있다. 당시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리서치 트라이앵글, 영국의 케임브리지 사이언스파크, 일본의 테크노폴리스 등은 지역혁신정책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필자가 테크노파크 조성사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가을이었다. 당시 김종섭 영남대 부총장으로부터 경산캠퍼스에 대학연구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과학기술처 정책연구의 책임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진을 구성하여 연구계획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사회과학 분야 교수가 기술연구단지 조성 연구를 책임지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학내 의견이 제기되면서 연구책임자가 변경되었다. 이후 1995년 연구의 중간점검을 계기로 다시 연구책임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지만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대학연구단지 구상은 영남대학교 테크노파크 조성계획으로 발전하였고, 과학기술처의 정책연구에서 당시 통상산업부가 관심을 갖는 국가 차원의 기술혁신사업으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류창우 총장의 혁신적 리더십과 김종섭 부총장의 지원, 최영환 객원교수와 이수인 교수의 대외협력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필자 역시 대학 테크노파크의 설립 타당성 연구와 종합계획 수립의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대학의 연구역량을 지역산업 발전과 연계하는 새로운 모형을 구상하였다. 돌이켜보면 테크노파크 조성사업은 대학 캠퍼스에 연구시설을 건설하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었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산업발전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였으며, 학문적 구상을 현실의 정책과 제도로 발전시키려는 도전이었다.

협력과 선택:  
대학도시형 경북테크노파크를 설계하다


테크노파크 조성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지역 대학과 관계기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었다. 당시 뒤늦게 참여한 경북대학교는 대구·경북지역 대학이 참여하는 네트워크형 테크노파크를 구상하였고, 영남대학교는 경산캠퍼스를 중심으로 대학도시 연구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었다. 두 대학의 공동 추진에 관한 논의와 지역 언론의 통합 요구도 있었으나, 필자는 사업의 특성과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여 영남대학교의 구상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추진모형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영남대학교 단독의 테크노파크 구상을 경산지역 5개 대학이 참여하는 대학도시형 테크노파크로 확대하였다. 영남대,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경일대, 대구한의대가 참여하고 경상북도와 경산시, 경산상공회의소가 협력하는 추진체제를 마련하였다. 이는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산업계가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역할을 분담하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실천이었다.

필자는 대학도시형 테크노파크 추진기획위원장으로서 관계기관의 협력을 이끌고 국내외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사업계획을 수립하였다. 특히 영남대학교에 거점센터를 두고 참여 대학에 각각 특화센터를 배치하는 허브-스포크(Hub-Spoke)형 모형을 구상하였다. 이는 대학별 특성과 비교우위를 살리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지역혁신체제를 형성하려는 전략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학 내부의 이해관계와 외부의 경쟁, 정부 정책의 변화 등 여러 난관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기관이 주도권을 가지느냐보다 지역발전에 필요한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필자가 행정학과 지역개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강조해 온 종합적 기획과 협력적 거버넌스를 현장에서 실천하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특히 이재훈 교수를 비롯한 여러 동료 교수의 참여와 협력은 사업추진에 큰 힘이 되었다. 서로 다른 전공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선정과 성과:  
국가 시범사업에서 지역혁신 연구로


마침내 1997년 정부의 국가 시범 테크노파크 공모사업이 발표되었다. 경북에서는 영남대학교 중심의 대학도시형 테크노파크와 포항공과대학교 중심의 포항테크노파크가 경쟁하였으며, 경상북도의 심사를 거쳐 대학도시형 경북테크노파크가 추천되었다. 이후 중앙정부의 심사를 거쳐 그해 12월 경북테크노파크가 전국 6개 국가 시범 테크노파크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사업추진 당시에는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어려움도 있었다. 정부의 정책 방향 역시 지역기술혁신거점 조성에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지원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대학도시형 테크노파크의 기본구상은 유지하면서도 정부가 요구하는 기업지원 기능을 사업계획에 반영하였다. 정책의 기본철학을 지키되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국가 시범사업 선정 이후에는 전국 6개 테크노파크의 협력체계인 국가시범 테크노파크 추진협의회 창립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한편 영남대학교에는 새로운 경북테크노파크 사업단이 출범하였고, 필자는 그동안 맡아온 기획추진단장직에서 물러났다. 수년 동안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기에 시원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새로운 조직과 후속 책임자들이 사업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새로운 정책과 사업은 한 사람의 구상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그 성과는 여러 사람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지속되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필자는 테크노파크 사업에서 얻은 경험을 지역혁신체제에 관한 학술연구와 정책자문으로 발전시켰다. 한국과 스웨덴·핀란드·덴마크의 지역혁신체제를 비교하는 국제공동연구를 수행하였으며, 대학원 제자들과 함께 기술이전, 산업클러스터, 기업지원과 지역혁신에 관한 연구를 이어갔다. 또한 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WTA) 활동과 산업혁신클러스터 정책자문, 알제리 시디 압둘라 과학기술신도시의 사이버파크 조성 자문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돌이켜보면 테크노파크는 필자에게 새로운 정책을 실천한 현장이자 학문적 관심과 연구 영역을 넓혀준 배움의 장이었다. 국가 시범사업의 선정이라는 성과도 중요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 국내외 전문가 및 제자들과의 인연은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맺음말
씨앗을 뿌린 보람과 의리로 이어진 인연


필자는 사람마다 비교우위의 재능이 있고 인생에서 맡는 역할도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씨앗을 뿌리고, 어떤 사람은 싹을 틔워 가꾸며, 또 어떤 사람은 열매를 거둔다.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면 필자는 새로운 정책과 사업을 구상하고 그 씨앗을 뿌리는 일을 비교적 많이 해온 것 같다. 한국 테크노파크의 탄생과 국가 시범 경북테크노파크의 선정도 그러한 경험 가운데 하나였다. 영남대학교에서 시작된 작은 구상이 국가정책으로 발전하고, 여러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산업계의 협력을 통해 지역혁신의 기반을 마련한 것은 지금도 보람 있게 생각하는 일이다. 그러나 씨앗을 뿌린 사람의 보람은 자신이 모든 열매를 거두는 데 있지 않다. 그 씨앗이 다른 사람들의 노력으로 싹을 틔우고 자라서 사회에 유익한 결실을 맺는 데 있다.

이재훈 교수는 회상글에서 경북테크노파크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 데 감사한다고 하였지만, 필자는 오히려 사업추진에 힘을 보태고 이후에도 경북테크노파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준 이 교수에게 감사한다. 더욱이 세월이 흘러 서로의 역할과 생활환경이 달라진 뒤에도 지난날의 인연을 잊지 않고 변함없는 정을 보여주는 의리정신은 필자에게 특별한 감동으로 남는다. 돌이켜보면 테크노파크 사업을 통해 얻은 것은 국가 시범사업의 선정이라는 성과만이 아니었다.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면서 쌓은 신뢰와 우정,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야말로 오래도록 간직할 소중한 결실이었다.

인생 후반기의 고은층으로 살아가면서 필자는 지난날의 성취보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쌓인 신뢰와 의리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성취의 기쁨이 컸다면, 지금은 함께했던 사람들을 돌아보고 감사하며 그 인연을 이어가는 즐거움이 크다. 이는 필자가 추구하는 고은층의 유유자작(悠悠自作)하는 삶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한국 테크노파크에 뿌린 씨앗은 지역혁신의 결실로 자라났고, 그 과정에서 맺어진 인연은 세월을 넘어 의리와 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업의 성과는 역사에 남고, 사람의 의리는 마음에 남는다. 필자는 지난날 함께 씨앗을 뿌리고 가꾸었던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그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 유유자작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원전: 이성근. 「한국 테크노파크의 탄생과 국가시범 경북테크노파크의 선정과 유치」. 『늘푸른 나무: 영남대학교 명예교수회지』 제12호. 영남대학교 명예교수회. 2023. 2. 15. pp. 250–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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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해무변의 인연은 계속된다: 박상철 교수와 함께한 26년의 만남과 새로운 동행"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대구에서 다시 만난 학해무변의 인연


필자는 최근 대구 인터불고에서 박상철 교수와 오랜만에 만나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박 교수는 일본과 스웨덴의 대학에서 오랫동안 연구와 교육활동을 해 온 국제적인 학자이자, 필자와 북유럽 혁신정책에 관한 국제공동연구를 수행했던 소중한 학문적 동반자이다. 여러 차례 만남을 약속하고도 서로의 일정으로 미루어 오다가 마침내 대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니 지난날 영남대학교에서의 첫 만남부터 포항과 경주의 동행, 북유럽 혁신정책의 공동연구, 스웨덴 고텐버그에서의 따뜻한 환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필자와 박 교수가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경이다. 당시 필자는 50대 초반이었고 박 교수는 40대 초반이었다. 서로 다른 대학과 국가에서 학문활동을 하던 두 사람이 지역발전과 혁신정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만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정년을 지나 필자는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로, 박 교수는 석좌교수로서 학문과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 시절 학문적 관심으로 시작한 만남이 인생 후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필자는 이러한 만남을 학해무변(學海無邊)의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학해무변은 학문의 바다에는 끝이 없다는 뜻이다. 학문은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며, 정년을 맞았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지난 경험을 성찰하며, 서로의 지혜를 나누는 일은 인생의 어느 시기에도 계속될 수 있다. 이번 박 교수와의 만남은 필자에게 학해무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특별한 시간이었다.

만남의 시작,  
압량벌에서 만난 귀족의 풍모와 선비의 마음


필자가 박 교수를 처음 만난 곳은 영남대학교 압량벌 캠퍼스였다. 당시 박 교수는 일본공업대학에 근무하면서 경북테크노파크의 장기발전전략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영남대학교를 방문하였다. 경북테크노파크는 필자가 설계를 주도했던 지역혁신 기반시설이었으며, 대학과 산업, 연구기관의 연계를 통해 지역의 기술혁신과 산업발전을 도모하는 중요한 사업이었다. 이러한 공통의 관심사가 두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었다.

박 교수의 첫인상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단정한 외모와 세련된 태도,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모습이 마치 유럽의 귀족을 연상하게 하였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일본과 스웨덴의 대학에서 활동하던 박 교수는 필자에게 새로운 학문적 시각과 국제적 경험을 전해 줄 수 있는 연구자로 보였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느낀 외적인 풍모보다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이후의 동행에서 보여 준 박 교수의 예의 바르고 겸손한 태도였다.

2000년 10월경 필자는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지도교수님을 대구로 초청하면서 박 교수에게도 동행을 제안하였다. 처음에는 함께 식사하는 자리로 생각했던 만남이 포항 호미곶과 경주 불국사로 이어지는 여행이 되었다. 우리는 포항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경주의 역사문화유적을 찾으면서 학문과 인생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 교수는 처음 만나는 필자의 은사에게도 예의를 갖추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첫 만남에서 느꼈던 귀족의 풍모에 더하여 한국 선비의 품격을 발견하게 되었다.

훗날 박 교수가 필자의 정년을 기념하는 회상록에 보내 준 글을 읽으면서 이때의 만남이 그에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 교수는 당시 국내 학자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던 자신을 필자가 스스럼없이 초대하고 따뜻하게 대해 준 일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필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초대였지만 박 교수에게는 새로운 학문적 관계를 열어 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좋은 인연은 때로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배려와 열린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학문의 동행,  
북유럽 혁신정책의 공동연구로 깊어진 인연


첫 만남과 여행을 통해 형성된 인간적 신뢰는 곧 학문적 협력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필자는 지역발전과 지역혁신체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박 교수는 유럽의 산업기술정책과 혁신체제를 연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전공과 연구 경험을 결합하면 한국의 지역혁신정책을 국제비교의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후 필자는 당시 한국학술진흥재단, 현재의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국제공동연구의 연구책임자를 맡고 박 교수는 공동연구자로 참여하였다. 연구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간 지속되었다. 2001년에는 한국과 스웨덴의 지역혁신체제를 비교하였고, 2002년에는 한국과 핀란드의 혁신정책을 분석하였으며, 2003년에는 한국과 덴마크의 지역혁신클러스터를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는 모두 SCOPUS 등재지이며 영국에서 발행되는
국제학술지 『AI & Society』 등에 발표하였다. 필자와 박 교수가 가장 활발하게 공동연구를 수행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 연구는 필자에게 학문적 의미가 컸다. 지역발전은 단순히 산업시설이나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학과 기업, 연구기관, 정부 사이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의 지식과 기술이 혁신과 생산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유럽 국가들의 혁신정책을 비교하면서 이러한 지역혁신체제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국가별 제도와 지역적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의 성공사례를 단순히 모방하기보다 우리나라 지역의 특성과 발전 단계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는 학문적 연구에서 무엇을 연구하느냐 못지않게 누구와 어떻게 연구하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제공동연구는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과 관점을 가진 연구자들이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과정이다. 박 교수는 북유럽의 제도와 정책, 현지 연구자료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필자는 한국의 지역발전정책과 계획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호보완성이 공동연구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무엇보다 연구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였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학해무변의 소중한 인연이었다.

인간적 동행,  
고텐버그에서 발견한 따뜻한 신사의 품격


필자가 박 교수의 또 다른 면모를 깊이 느낀 것은 2004년 스웨덴 방문 때였다. 당시 필자는 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WTA)의 국제회의에서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스웨덴 웁살라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회의에 앞서 박 교수가 근무하던 고텐버그대학교를 방문하여 대학 관계자들과 교류하고 지역혁신과 국제협력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박 교수는 필자의 방문을 세심하게 준비하였다. 대학 방문과 관계자 면담은 물론이고 자신의 집과 바닷가 별장으로 초대하여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특히 고텐버그의 한 생선전문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와인을 마시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박 교수의 회상글에도 두 사람이 와인 두 병을 마시고 식당을 나서면서 크게 웃었던 일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학문과 정책을 진지하게 논의하던 두 교수가 잠시 연구자의 모습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웃음을 나누었던 시간이었다.

주말에는 박 교수의 바닷가 별장을 방문하였다. 인적이 드문 북유럽의 해변을 산책하면서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감상하였다. 그곳에서 필자는 연구자 박상철뿐 아니라 가정과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박상철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였다. 첫 만남에서는 귀족 같은 외모와 풍모에 눈길이 갔고, 두 번째 동행에서는 선비의 예절을 느꼈으며, 공동연구에서는 학자의 능력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고텐버그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아우르는 한 인간의 따뜻한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만남이 거듭될수록 달라지고 깊어진다. 처음에는 겉모습과 태도를 보고 판단하지만 함께 일하면서 능력과 책임감을 알게 되고, 일상의 시간을 나누면서 인품과 배려를 이해하게 된다. 필자와 박 교수의 인연도 그러하였다. 학문적 능력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여 인간적 신뢰와 우정으로 발전하였다는 점에서 이 만남은 필자의 교수 인생에 오래 남을 소중한 기억이다.

새로운 동행,
고은과 AI, 지역정책의 미래를 함께 도모하다


이번 대구에서의 재회는 단순히 지난날을 회상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동안의 학문활동과 근황을 나누면서 정년 이후의 삶과 새로운 연구 주제, AI 시대의 미래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지역혁신과 산업발전이라는 공통의 연구과제를 중심으로 만났다면, 이제는 지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는 만남이 되었다.

특히 필자는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지역정책 및 지역경제정책 관련 저서의 출판계획을 박 교수에게 설명하고 참여를 제안하였다. 박 교수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직 구체적인 연구체계와 집필방식 등을 협의해야 하지만 오래전 북유럽 혁신정책을 함께 연구했던 두 사람이 다시 새로운 학문적 과제를 모색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뜻깊었다. 과거에는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정책적 시사점을 찾았다면, 앞으로는 축적된 학문적 경험과 정책적 통찰을 체계화하여 후학과 사회에 남기는 일에 더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AI의 발전은 지역발전과 지역경제정책에도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AI와 디지털 전환은 산업구조와 일자리, 지식과 기술의 활용방식은 물론 지역 간 발전격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지역정책은 전통적인 산업입지와 기반시설 중심의 접근을 넘어 혁신역량, 인적자본, 지식 네트워크, 기술변화와 지역사회의 대응능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필자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지역발전정책과 박 교수가 축적해 온 국제적인 산업기술·혁신정책 연구 경험을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좋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필자는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면서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생활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유유는 조급함 없이 여유롭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태도이며, 자작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고 만들어 가는 실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년 이후의 학문활동도 과거와 같이 성과와 경쟁에 매달리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자발적으로 이어가는 활동이어야 한다. 박 교수와의 새로운 저술 협력 구상 역시 이러한 고은층의 삶과 학문적 실천을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맺음말
학문은 끝이 없고 좋은 인연은 계속된다


필자와 박 교수의 만남은 2000년경 영남대학교 압량벌에서 시작되어 포항과 경주의 동행, 북유럽 혁신정책의 공동연구, 스웨덴 고텐버그에서의 인간적 교류로 이어졌다. 그리고 26년이 흐른 지금, 대구에서 다시 만나 새로운 학문적 동행을 모색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두 사람의 인연은 단순히 오래 알고 지낸 관계가 아니라 학문과 사람, 경험과 신뢰가 함께 성장해 온 과정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인연을 학해무변과 근학무실(勤學務實)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학해무변이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학문적 자세라면, 근학무실은 배움에 부지런하고 맡은 소임에 충실하며 이를 실천으로 이어가는 삶의 태도이다.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된 덕목이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되 배운 것을 삶과 사회에 유익하게 활용할 때 학문은 더욱 큰 가치를 갖게 된다. 젊은 시절의 국제공동연구가 이러한 정신의 실천이었다면 정년 이후의 새로운 저술 구상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은층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의 성취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학문과 도전을 계속하는 일이다. 이제는 직책과 지위보다 사람과 관계가 소중하고, 개인적 성과보다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일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좋은 인연은 서로를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배우게 하고 성장시키며 새로운 일을 함께 도모하게 한다. 필자는 박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이러한 관계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였다.

압량벌에서 시작된 인연은 호미곶과 불국사, 북유럽의 연구 현장과 고텐버그의 바닷가를 지나 다시 대구로 이어졌다. 그동안 장소도 달라지고 세월도 흘렀지만 학문을 향한 열정과 서로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제 두 사람은 고은층으로서 여유롭고 유연하게, 그러면서도 스스로 새로운 삶과 학문을 가꾸어 가는 유유자작의 동행을 이어가고자 한다.

"배움의 바다에는 끝이 없다. 좋은 인연의 항해도 끝나지 않는다. 박 교수와 함께하는 학해무변의 새로운 항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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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해무변의 만남과 동행"

이성근


압량벌 첫 만남, 유럽 귀족 같은 단정한 풍모
호미곶과 불국사 길, 예를 갖춘 선비의 마음
북유럽 혁신연구, 함께 탐구한 학문의 협업
고텐버그 바닷가, 한결 따뜻한 사람의 품격
대구에서 다시, 학문의 바다에 새 배를 띄운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최근 대구 인터불고에서 박상철 교수와 오랜만에 만나 지난 26년의 학문적 인연과 인간적 교류를 되돌아보았다. 2000년경 영남대 경산캠퍼스에서 처음 만난 이후 북유럽 3개국의 혁신정책을 공동 연구하고, 스웨덴 고텐버그에서 우정을 나누었던 추억이 새로웠다. 이제 두 사람 모두 정년을 지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면서 AI와 지역정책, 공동 저술 등 미래의 학문적 동행을 다시 이야기하게 되었다. 학문에는 끝이 없고 좋은 인연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에서 이 디카시를 쓰게 되었다.

"학문의 바다에는 끝이 없다. 좋은 인연의 항해도 끝나지 않는다."


[소중한 지인 221인으로부터  읽는 이성근 교수의 회상록. (사) 한국지역균형연구원. 2021. 1. 20]

"이성근 교수님과의 만남: 학문적 교류에서 인간적 우정으로"

박상철
한국산업기술대 에너지대학원 교수 · 스웨덴 고텐버그대 비즈니스스쿨 교수


첫 만남,
영남대학교에서 만난 열린 마음의 학자

이성근 교수님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경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일본 도쿄 근교에 있는 일본공업대학에 근무하고 있었다. 영남대학교에서 운영하던 경북테크노파크의 이재훈 교수님 초청으로 경북테크노파크 장기발전전략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지역발전전략을 전공하시는 이성근 교수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서로 연구 분야가 유사했던 만큼 자연스럽게 학문적 관심사를 나누게 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나는 독일에서 유학한 뒤 일본과 스웨덴의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국내 학자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교수님과의 만남은 더욱 특별하였다. 이 교수님은 나의 해외 연구 경험과 학문적 능력을 높게 평가해 주셨다. 과분한 평가에 감사하면서도 스스로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교수님이 상대방의 나이나 소속, 경력에 구애받지 않고 열린 자세로 학문적 교류를 이어가려는 분이라는 사실이었다.

2000년 10월 초 경북테크노파크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다시 영남대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이 교수님께서는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하신 은사님이 대구를 방문하시는데 시간이 허락하면 함께하자고 초대해 주셨다. 당시 나는 이 교수님의 은사님과 일면식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 교수님은 물론이고 은사님께서도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그 자리에서 이 교수님의 개방적이고 인간적인 태도가 오랜 학문적 수련과 스승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첫 동행,
포항의 밤바다와 경주에서 배운 만남의 가치


처음에는 대구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로 알고 참석하였으나 이 교수님은 우리를 포항으로 안내하셨다. 한반도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호미곶의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밤바다의 정취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는 단순한 식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시간이었다. 국내 학문사회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이 교수님의 배려와 환대는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다.

포항에서 식사를 마친 뒤에는 경주로 이동하였다. 이 교수님은 은사님을 모시기 위해 여러 일정을 세심하게 준비하셨고, 그 자리에 동행한 나에게까지 따뜻한 호의를 베풀어 주셨다. 경주의 역사문화유적을 찾고 준비된 모임에 참석하면서 자연스럽게 학문과 지역발전, 향후 공동연구의 가능성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이 교수님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학문적 열정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경험은 나에게 한국에서 학문적 관계를 맺고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나라와 학문사회에 따라 교류의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학문적 네트워크의 바탕에는 결국 사람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교수님의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환대는 이후 두 사람이 학문적 동반자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학문적 동행,
한국과 북유럽의 혁신정책을 함께 연구하다

2001년 일본대학에서 스웨덴대학으로 복귀한 이후 이 교수님과의 학문적 교류는 본격적인 국제공동연구로 발전하였다. 이 교수님이 연구책임자를 맡고 내가 공동연구자로 참여하여 한국과 북유럽 국가들의 지역혁신체제와 혁신정책을 비교·분석하는 연구를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수행하였다. 서로 다른 국가의 혁신정책과 지역발전 경험을 비교한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였으며, 두 사람이 가장 활발하게 협력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 2001년에는 한국과 스웨덴의 지역혁신체제를 비교·분석하였고, 2002년에는 한국과 핀란드의 혁신정책을 연구하였으며, 2003년에는 한국과 덴마크의 지역혁신클러스터를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는 모두 SCOPUS 등재지이며 영국에서 발행되는
국제학술지 『AI & Society』 등에 발표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각국의 산업기술정책과 지역혁신체제를 비교하면서 지역발전을 위한 제도적 조건과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국제공동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과 경험을 이해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교수님은 한국의 지역발전정책과 지역계획에 관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계셨고, 나는 유럽의 산업기술정책과 혁신체제에 관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연구에 참여하였다.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연구의 목적과 방향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3년간의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이 기간은 학문적 성과뿐 아니라 이 교수님과의 인간적 신뢰를 더욱 깊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스웨덴의 추억,
고텐버그에서 나눈 환대와 우정


2003년부터 나는 다시 스웨덴과 일본의 대학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이러한 학문적 활동을 계기로 2004년 이 교수님께서 스웨덴을 방문하시게 되었다. 당시 이 교수님은 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의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웁살라로 가시는 일정이었으며, 그에 앞서 내가 근무하던 고텐버그대학교를 방문하셨다. 나는 이 교수님을 대학으로 모시고 관계자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일정을 준비하였으며, 대학의 학장과 만나는 자리도 마련하였다.

고텐버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당 가운데 하나로 기억하는 생선전문식당에서 이 교수님과 함께 식사하였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식사와 함께 와인을 나누며 오랫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이 와인 두 병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담당 웨이터가 놀라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식당을 나오면서 이 교수님께서 이제야 조금 술을 드신 것 같다는 취지로 말씀하셨고, 우리는 거리에서 한바탕 크게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던 모습까지도 지금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주말에는 바닷가에 있는 나의 별장으로 이 교수님을 초대하였다. 인적이 거의 없는 조용한 해변을 함께 산책하면서 북유럽의 자연환경을 감상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이 교수님께서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바닷가의 한적한 풍경을 다소 낯설게 느끼시는 듯하였다. 그 모습 또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학문적 협력을 통해 만났던 두 사람이 일상의 삶과 자연을 함께 경험하면서 인간적인 교류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후 이 교수님께서는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웁살라와 스톡홀름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떠나셨다. 그날의 배웅이 어느덧 오래전의 일이 되었지만 당시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이후에도 2005년 일본대학의 아베 교수님과 함께 영남대학교 국제세미나에 참석하였던 일, 이 교수님을 모시고 일본대학을 방문하였던 일 등이 이어졌다. 여러 나라에서 함께했던 학문적 활동과 인간적 교류의 장면들이 지금도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맺음말
학문을 넘어 사람으로 남은 소중한 인연


돌아보면 이성근 교수님과의 만남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경북테크노파크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영남대학교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될 기회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우연한 만남은 포항과 경주에서의 동행으로 이어졌고, 한국과 북유럽의 국제공동연구로 발전하였으며, 일본과 스웨덴을 오가는 학문적 교류와 인간적 우정으로 깊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이성근 교수님은 소탈하고 개방적이며 학문적으로 열정적인 분이다. 새로운 사람과 학문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으셨고, 연구에 있어서는 적극적이면서도 상대방의 전문성을 존중하셨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이러한 성품이 학문적 성과와 인간적 신뢰를 함께 만들어 온 중요한 바탕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자로서 살아오면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연구자들을 만났지만 학문적 교류와 인간적인 관계를 오랫동안 함께 이어갈 수 있는 인연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교수님을 만나 학문적 동반자로 함께 연구하고 인간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매우 큰 행운이었다. 특히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서로의 전문성과 경험을 나누고, 연구 현장 밖에서는 진솔한 대화와 우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제 이성근 교수님께서는 오랜 교수생활을 마치고 정년을 맞으셨다. 지난날의 학문적 열정과 따뜻한 인간적 배려를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앞으로도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학문적 교류에서 시작되어 인간적 우정으로 이어진 소중한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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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다 때가 있다"


이성근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일
하면 좋아지는 일
지금이 바로 그때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지금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과는 달리 크고 거창한 일보다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곧 소확행과 작은 즐거움이 쌓이는 소소익선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는 고은층의 일상을 네 가지 일로 구분하여 생각한다. 첫째, 좋아하는 일이다. 하루를 아침·오전·오후·저녁으로 나누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기는 것이다. 둘째, 할 수 있는 일이다. 일상에서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적게 받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말한다. 셋째, 잘하는 일이다. 젊은 시절부터 익숙하게 해 왔거나 지금도 큰 부담과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넷째, 하면 좋아지는 일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즐겁고 유익하며, 가족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 일이다. 나아가 선린과 세상에도 자연스럽게 이로움이 돌아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네 가지 일은 특별하거나 거창할 필요가 없다. 이미 실천하고 있다면 계속 즐기고,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된다. 세상만사에는 때가 있지만, 고은층이 좋아하고 할 수 있으며 잘하고, 하면 좋아지는 일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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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네 갈래 강"

이성근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연단의 강
지난날을 성찰하고 새로움을 배우는 성숙의 강
버리고 비우며 내려놓는 자유의 강
가진 것을 나누고 뜻을 남기는 환원의 강
고은의 네 강은 유유자작하며 흘러간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최근 티스토리 블로그 「이성근 교수의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고은층의 인간형을 새롭게 설계하다"라는 글을 쓰면서 고은층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자신의 인생 후반기를 되돌아보았다. 이를 계기로 고은층의 삶을 연단·성숙·자유·환원의 네 갈래 강에 비유하여 이 디카시를 쓰게 되었다.

대학 정년 이후 필자는 몸과 마음을 돌보고, 성찰과 배움을 이어가며, 비우고 내려놓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나아가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을 이웃과 나누고 삶의 뜻을 남기고자 한다. 이 네 갈래 강이 서로 어우러져 유유히 흐르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어 가는 '유유자작(悠悠自作)의 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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