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층의 멋, 외모를 넘어 품격으로: 겉을 단정히 하고 내면을 깊이 가꾸는 삶"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 행정학박사
서문
외모를 가꾸는 시대, 고은층의 멋을 묻다
최근 우리 사회는 외모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옷차림과 체형관리에서 성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습을 건강하고 보기 좋게 가꾸는 일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젊은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고은층(高恩層)에게도 건강한 모습과 단정한 외양을 유지하는 일은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외모를 가꾸는 일을 가볍게 볼 필요는 없다. 자신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관리하는 것은 자기 존중이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치장보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차림과 밝은 표정, 바른 자세와 단정한 몸가짐에서 자기관리와 생활 태도가 드러난다. 외모와 몸가짐도 삶의 품격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인생 후반기의 멋도 단지 젊고 보기 좋게 보이는 것으로 충분한가? 얼굴에 나타난 세월의 흔적을 감추고 좋은 옷을 갖추는 것만으로 고은층다운 멋이 완성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타고난 외모가 첫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사람의 얼굴과 풍모에는 살아온 세월과 생각, 말과 행동, 관계와 성품이 함께 배어든다. 인생 후반기의 멋은 외모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으며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서 더욱 깊어진다.
외모도 품격이다, 용모와 몸가짐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우리의 전통적 가르침에서도 사람의 외적인 모습과 몸가짐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의재(四宜齋)이다. 다산은 강진 유배 시절 자신의 거처를 사의재라 이름하고 「사의재기(四宜齋記)」에서 네 가지 마땅함으로 자신을 경계했다. 곧 “생각은 담박해야 하고(思宜澹), 용모는 장엄해야 하며(貌宜莊), 말은 신중해야 하고(言宜訒), 행동은 무거워야 한다(動宜重)”는 가르침이다. 이는 『여유당전서』에 실린 「사의재기」의 원문에서 확인된다.
여기에서 ‘모의장(貌宜莊)’의 모(貌)는 자신을 함부로 흐트러뜨리지 않는 용모와 태도, 곧 내면의 절제와 수양이 밖으로 드러나는 몸가짐에 가깝다. 얼굴 생김새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표정과 자세로 사람을 대하며 어떤 풍모를 보여 주는가에 있다.
신언서판(身言書判)도 이와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신언서판은 본래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는 기준으로, 신(身)은 체모와 풍채, 언(言)은 말, 서(書)는 글씨, 판(判)은 문리와 판단 능력을 가리켰다. 국립국어원의 설명에서도 당나라 관리 선발의 네 가지 기준으로 확인된다.
이를 오늘의 삶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의 평가는 얼굴 생김새 하나가 아니라 몸가짐과 말, 표현 능력과 판단력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진다는 점은 되새겨 볼 만하다. 고은층에게도 단정한 외양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만,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며 타인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유교의 중요한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가운데 예(禮)도 비슷한 뜻에서 생각할 수 있다. 예는 마음속의 존중과 절제가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이다. 단정한 옷차림과 바른 몸가짐, 공손한 인사와 절제된 말씨도 오늘의 생활에서는 넓은 의미의 예로 이해할 수 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고은층의 외모 관리는 젊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경쟁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돌보고, 나이와 형편에 어울리는 모습을 갖추며, 함께하는 사람에게 편안한 인상을 주는 자기 존중과 배려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 과하지 않으면서 단정하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잘 어울리며, 겉모습에서 생활의 질서와 안정이 느껴지는 것, 그것이 고은층다운 외적 품격이다.
그러나 외모가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얼굴 너머의 사람을 보다
외모가 중요하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최종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동서양의 오랜 지혜는 외적인 모습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사람의 가치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일을 경계해 왔다.
우리 속담의 “뚝배기보다 장맛”은 겉모양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빛 좋은 개살구”는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이 부실한 경우를 경계한다. 중국에서도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의 ‘인불가모상(人不可貌相)’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다. 『서유기』 등에도 “인불가모상, 해수불가두량(人不可貌相, 海水不可斗量)”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영어권의 오랜 속담인 “Beauty is only skin deep”도 같은 뜻을 담고 있다. 외적인 아름다움만으로 사람의 성품이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로, 17세기 초부터 전해지는 영어 속담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의 가르침은 더욱 분명하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하면서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한다. 대한성서공회의 『개역개정』 본문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특히 고은층에게 의미가 크다. 젊음은 세월과 함께 지나가고 외모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그러나 사람의 인품은 세월과 함께 더 깊어질 수 있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는 여유,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태도, 자신을 지나치게 앞세우지 않는 겸손, 어려운 사람을 헤아리는 배려, 살아온 날들에 감사하는 마음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외적인 치장만으로 만들 수도 없다.
외모는 사람을 처음 보게 하지만 인품은 그 사람을 오래 기억하게 한다. 외모가 첫인상을 만든다면 인품은 오래 남는 인상을 만든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에는 얼굴을 가꾸는 일과 함께 마음을 가꾸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얼굴의 주름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마음이 굳어지는 것이고, 머리카락의 빛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이 얼마나 열려 있는가이다. 나이는 들어가되 마음은 열려 있고, 경험은 많아지되 말은 겸손하며,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을 떠나 감사가 깊어지는 사람에게서 고은층다운 멋이 나타난다.
세월의 흔적 자체가 품격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표정과 말씨, 행동과 관계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한 사람만의 풍모가 생겨난다. 고은층의 멋은 세월을 억지로 감추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 삶의 깊이를 더하는 데서 나온다.
문질빈빈(文質彬彬), 고은층의 멋은 내면과 외면의 조화에 있다
그렇다면 외모와 내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필자는 굳이 하나만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내면을 근본으로 하되 외면을 소홀히 하지 않는 조화이다.
공자는 『논어』 「옹야」에서 이렇게 말했다.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논어』 「옹야」 18장에서 그대로 확인되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질(質)은 사람의 바탕과 질박함을, 문(文)은 그것을 다듬는 교양과 예법, 문화적 표현을 가리킨다. 질이 문을 지나치게 앞서면 거칠어지고, 반대로 문이 질을 압도하면 꾸밈과 형식에 치우치게 된다. 문과 질이 알맞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군자답다는 것이 ‘문질빈빈’의 뜻이다. 후대의 주자학적 설명에서도 어느 한쪽이 지나치지 않고 문과 질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는 데 뜻의 중심을 둔다.
물론 『논어』의 질(質)을 곧바로 ‘내면’, 문(文)을 곧바로 ‘외모’라고 번역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문은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교양과 예법, 언행과 표현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다만 이 가르침을 오늘의 고은층 삶에 비추어 보면 내면의 바탕과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으로 확장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음만 좋으면 옷차림과 몸가짐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도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외모를 지나치게 꾸미면서 인품과 언행을 소홀히 하는 것도 참된 품격과는 거리가 있다. 좋은 마음은 좋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고, 내면의 깊이는 외적인 태도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다산의 사의재도 이러한 내외의 조화를 생각하게 한다. 생각(思)을 바르게 하고 용모(貌)를 가다듬으며, 말(言)을 삼가고 행동(動)을 무겁게 하는 네 가지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으로 이어지며, 마음가짐은 용모와 몸가짐에도 스며든다. 결국 한 사람의 품격은 안과 밖이 따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다.
그러므로 고은층에게 필요한 것은 ‘외모냐 내면이냐’의 선택이 아니다. 내면을 깊이 가꾸되 외면을 단정히 하고, 외적인 품격을 갖추되 그 안을 인품으로 채우는 것이다. 외면이 내면을 가리지 않고 내면이 외면을 소홀히 하지 않는 상태, 그것이 오늘의 삶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질빈빈의 조화이다.
고은층의 멋도 바로 이러한 조화에서 나온다. 단정하되 과하지 않고, 자신감이 있되 거만하지 않으며, 경험이 많되 앞세우지 않고, 말할 줄 알되 들을 줄도 아는 사람에게서 자연스러운 품격이 풍겨 나온다.
고은층의 멋과 품격, 여섯 가지 품(品)을 가꾸다
이상의 생각을 필자는 ‘고은층의 6품(六品)’으로 정리해 보고 싶다. 외적인 단정함에서 시작하여 내면과 관계, 나눔으로 넓어지는 여섯 가지 삶의 품격이다.
첫째는 용모의 단정함이다. 지나치게 젊어 보이려 애쓰기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깨끗한 옷차림과 밝고 편안한 표정, 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단정함은 가장 기본적인 자기관리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둘째는 건강의 활력이다. 꾸준히 걷고 움직이며 적절한 운동과 생활 습관으로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고은층의 멋은 외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힘 있게 걷고 자신의 일상을 주체적으로 꾸려 가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셋째는 마음의 깊이, 곧 인품이다. 감사와 겸손, 배려와 절제, 포용은 인생 후반기에 더욱 빛나는 덕목이다. 경험이 많다는 것은 자신을 내세울 이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자산이 되어야 한다.
넷째는 언행의 품위이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보다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을 더 잘 보여 준다. 따뜻하게 말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며, 자신의 경험을 앞세워 가르치려 하기보다 함께 생각하고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때로는 많이 말하는 것보다 말을 아끼는 절제가 더 큰 품격이 되기도 한다.
다섯째는 관계의 원만함이다. 가족과 친구, 이웃은 물론 젊은 세대와도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경험만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달라진 시대와 새로운 생각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좋은 관계는 상대를 자신의 생각대로 바꾸려 하기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여섯째는 공헌과 나눔의 보람이다. 평생 쌓아 온 지식과 경험, 재능과 시간을 가족과 이웃, 다음 세대와 사회를 위해 나눌 때 인생 후반기의 삶은 더욱 의미 있어진다. 고은층의 품격은 자신을 잘 가꾸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데서 한층 깊어진다.
이 여섯 가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면 단정한 용모에서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몸에서 깊은 마음으로, 마음에서 품위 있는 언행으로, 언행에서 원만한 관계로, 관계에서 나눔과 공헌으로 나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결국 인품(人品)이 있다. 좋은 옷을 입어도 말이 거칠면 품격은 빛을 잃고, 외모를 잘 관리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면 좋은 인상을 오래 남기기 어렵다. 반대로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어도 편안하게 웃고, 조용히 경청하며,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에게서는 나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멋이 풍겨 나온다.
맺음글
겉모습을 가꾸는 사람에서 삶의 품격을 가꾸는 사람으로
고은층에게도 외모는 중요하다. 단정하고 건강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존중이며 타인에 대한 예의다. 건강하고 활력 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외모를 가꾸느냐 가꾸지 않느냐가 아니라, 외모를 삶의 목적이나 사람의 가치를 재는 기준으로 삼지 않는 데 있다.
인생 후반기의 멋에는 젊은 시절과는 조금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얼굴에 남은 세월의 흔적을 얼마나 지웠느냐보다 그 얼굴에 얼마나 편안하고 따뜻한 표정이 담겨 있는가가 중요하다. 머리카락의 색깔보다 생각이 얼마나 젊고 열려 있는가가 중요하다. 또한 겉모습을 얼마나 젊게 유지했는가보다 건강을 돌보며 자신의 삶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세월이 쌓이면 얼굴과 몸가짐에는 어느 정도 살아온 삶의 흔적이 남는다. 그러나 그 흔적은 감추어야 할 결함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의 기록일 수 있다. 오랫동안 감사하고 배려하며 살아온 삶은 표정과 말씨,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씩 스며든다. 그런 의미에서 고은층의 얼굴은 단순한 외모를 넘어 한 사람이 걸어온 삶과 지금 살아가는 태도를 함께 보여 주는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은층(高恩層)은 인생을 살아오며 받은 많은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그 은혜를 다시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고은층의 멋 역시 얼굴과 옷차림에서 끝날 수 없다. 단정한 외모, 건강한 몸, 깊은 마음, 품위 있는 언행, 원만한 관계, 그리고 나눔과 공헌의 삶이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
고은층의 멋은 외모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품격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은층은 단정하게 보이는 사람을 넘어, 깊이 생각하고 따뜻하게 말하며 바르게 행동하고 품위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것이 세월을 억지로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세월과 함께 더욱 깊어지는 길이며, 외모를 넘어 삶의 품격으로 완성되는 고은층의 참된 멋일 것이다.

사진. 2026년 8월 22일, 오랜만에 필자의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촬영한 가족사진을 AI로 리메이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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