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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의 멋, 외모를 넘어 품격으로: 겉을 단정히 하고 내면을 깊이 가꾸는 삶"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 행정학박사


서문
외모를 가꾸는 시대, 고은층의 멋을 묻다


최근 우리 사회는 외모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옷차림과 체형관리에서 성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습을 건강하고 보기 좋게 가꾸는 일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젊은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고은층(高恩層)에게도 건강한 모습과 단정한 외양을 유지하는 일은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외모를 가꾸는 일을 가볍게 볼 필요는 없다. 자신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관리하는 것은 자기 존중이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치장보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차림과 밝은 표정, 바른 자세와 단정한 몸가짐에서 자기관리와 생활 태도가 드러난다. 외모와 몸가짐도 삶의 품격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인생 후반기의 멋도 단지 젊고 보기 좋게 보이는 것으로 충분한가? 얼굴에 나타난 세월의 흔적을 감추고 좋은 옷을 갖추는 것만으로 고은층다운 멋이 완성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타고난 외모가 첫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사람의 얼굴과 풍모에는 살아온 세월과 생각, 말과 행동, 관계와 성품이 함께 배어든다. 인생 후반기의 멋은 외모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으며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서 더욱 깊어진다.

외모도 품격이다, 용모와 몸가짐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우리의 전통적 가르침에서도 사람의 외적인 모습과 몸가짐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의재(四宜齋)이다. 다산은 강진 유배 시절 자신의 거처를 사의재라 이름하고 「사의재기(四宜齋記)」에서 네 가지 마땅함으로 자신을 경계했다. 곧 “생각은 담박해야 하고(思宜澹), 용모는 장엄해야 하며(貌宜莊), 말은 신중해야 하고(言宜訒), 행동은 무거워야 한다(動宜重)”는 가르침이다. 이는 『여유당전서』에 실린 「사의재기」의 원문에서 확인된다.

여기에서 ‘모의장(貌宜莊)’의 모(貌)는 자신을 함부로 흐트러뜨리지 않는 용모와 태도, 곧 내면의 절제와 수양이 밖으로 드러나는 몸가짐에 가깝다. 얼굴 생김새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표정과 자세로 사람을 대하며 어떤 풍모를 보여 주는가에 있다.

신언서판(身言書判)도 이와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신언서판은 본래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는 기준으로, 신(身)은 체모와 풍채, 언(言)은 말, 서(書)는 글씨, 판(判)은 문리와 판단 능력을 가리켰다. 국립국어원의 설명에서도 당나라 관리 선발의 네 가지 기준으로 확인된다.

이를 오늘의 삶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의 평가는 얼굴 생김새 하나가 아니라 몸가짐과 말, 표현 능력과 판단력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진다는 점은 되새겨 볼 만하다. 고은층에게도 단정한 외양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만,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며 타인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유교의 중요한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가운데 예(禮)도 비슷한 뜻에서 생각할 수 있다. 예는 마음속의 존중과 절제가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이다. 단정한 옷차림과 바른 몸가짐, 공손한 인사와 절제된 말씨도 오늘의 생활에서는 넓은 의미의 예로 이해할 수 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고은층의 외모 관리는 젊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경쟁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돌보고, 나이와 형편에 어울리는 모습을 갖추며, 함께하는 사람에게 편안한 인상을 주는 자기 존중과 배려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 과하지 않으면서 단정하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잘 어울리며, 겉모습에서 생활의 질서와 안정이 느껴지는 것, 그것이 고은층다운 외적 품격이다.

그러나 외모가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얼굴 너머의 사람을 보다

외모가 중요하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최종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동서양의 오랜 지혜는 외적인 모습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사람의 가치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일을 경계해 왔다.

우리 속담의 “뚝배기보다 장맛”은 겉모양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빛 좋은 개살구”는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이 부실한 경우를 경계한다. 중국에서도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의 ‘인불가모상(人不可貌相)’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다. 『서유기』 등에도 “인불가모상, 해수불가두량(人不可貌相, 海水不可斗量)”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영어권의 오랜 속담인 “Beauty is only skin deep”도 같은 뜻을 담고 있다. 외적인 아름다움만으로 사람의 성품이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로, 17세기 초부터 전해지는 영어 속담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의 가르침은 더욱 분명하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하면서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한다. 대한성서공회의 『개역개정』 본문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특히 고은층에게 의미가 크다. 젊음은 세월과 함께 지나가고 외모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그러나 사람의 인품은 세월과 함께 더 깊어질 수 있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는 여유,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태도, 자신을 지나치게 앞세우지 않는 겸손, 어려운 사람을 헤아리는 배려, 살아온 날들에 감사하는 마음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외적인 치장만으로 만들 수도 없다.

외모는 사람을 처음 보게 하지만 인품은 그 사람을 오래 기억하게 한다. 외모가 첫인상을 만든다면 인품은 오래 남는 인상을 만든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에는 얼굴을 가꾸는 일과 함께 마음을 가꾸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얼굴의 주름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마음이 굳어지는 것이고, 머리카락의 빛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이 얼마나 열려 있는가이다. 나이는 들어가되 마음은 열려 있고, 경험은 많아지되 말은 겸손하며,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을 떠나 감사가 깊어지는 사람에게서 고은층다운 멋이 나타난다.

세월의 흔적 자체가 품격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표정과 말씨, 행동과 관계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한 사람만의 풍모가 생겨난다. 고은층의 멋은 세월을 억지로 감추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 삶의 깊이를 더하는 데서 나온다.

문질빈빈(文質彬彬), 고은층의 멋은 내면과 외면의 조화에 있다

그렇다면 외모와 내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필자는 굳이 하나만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내면을 근본으로 하되 외면을 소홀히 하지 않는 조화이다.

공자는 『논어』 「옹야」에서 이렇게 말했다.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논어』 「옹야」 18장에서 그대로 확인되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질(質)은 사람의 바탕과 질박함을, 문(文)은 그것을 다듬는 교양과 예법, 문화적 표현을 가리킨다. 질이 문을 지나치게 앞서면 거칠어지고, 반대로 문이 질을 압도하면 꾸밈과 형식에 치우치게 된다. 문과 질이 알맞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군자답다는 것이 ‘문질빈빈’의 뜻이다. 후대의 주자학적 설명에서도 어느 한쪽이 지나치지 않고 문과 질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는 데 뜻의 중심을 둔다.

물론 『논어』의 질(質)을 곧바로 ‘내면’, 문(文)을 곧바로 ‘외모’라고 번역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문은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교양과 예법, 언행과 표현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다만 이 가르침을 오늘의 고은층 삶에 비추어 보면 내면의 바탕과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으로 확장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음만 좋으면 옷차림과 몸가짐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도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외모를 지나치게 꾸미면서 인품과 언행을 소홀히 하는 것도 참된 품격과는 거리가 있다. 좋은 마음은 좋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고, 내면의 깊이는 외적인 태도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다산의 사의재도 이러한 내외의 조화를 생각하게 한다. 생각(思)을 바르게 하고 용모(貌)를 가다듬으며, 말(言)을 삼가고 행동(動)을 무겁게 하는 네 가지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으로 이어지며, 마음가짐은 용모와 몸가짐에도 스며든다. 결국 한 사람의 품격은 안과 밖이 따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다.

그러므로 고은층에게 필요한 것은 ‘외모냐 내면이냐’의 선택이 아니다. 내면을 깊이 가꾸되 외면을 단정히 하고, 외적인 품격을 갖추되 그 안을 인품으로 채우는 것이다. 외면이 내면을 가리지 않고 내면이 외면을 소홀히 하지 않는 상태, 그것이 오늘의 삶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질빈빈의 조화이다.

고은층의 멋도 바로 이러한 조화에서 나온다. 단정하되 과하지 않고, 자신감이 있되 거만하지 않으며, 경험이 많되 앞세우지 않고, 말할 줄 알되 들을 줄도 아는 사람에게서 자연스러운 품격이 풍겨 나온다.

고은층의 멋과 품격, 여섯 가지 품(品)을 가꾸다

이상의 생각을 필자는 ‘고은층의 6품(六品)’으로 정리해 보고 싶다. 외적인 단정함에서 시작하여 내면과 관계, 나눔으로 넓어지는 여섯 가지 삶의 품격이다.

첫째는 용모의 단정함이다. 지나치게 젊어 보이려 애쓰기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깨끗한 옷차림과 밝고 편안한 표정, 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단정함은 가장 기본적인 자기관리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둘째는 건강의 활력이다. 꾸준히 걷고 움직이며 적절한 운동과 생활 습관으로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고은층의 멋은 외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힘 있게 걷고 자신의 일상을 주체적으로 꾸려 가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셋째는 마음의 깊이, 곧 인품이다. 감사와 겸손, 배려와 절제, 포용은 인생 후반기에 더욱 빛나는 덕목이다. 경험이 많다는 것은 자신을 내세울 이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자산이 되어야 한다.

넷째는 언행의 품위이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보다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을 더 잘 보여 준다. 따뜻하게 말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며, 자신의 경험을 앞세워 가르치려 하기보다 함께 생각하고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때로는 많이 말하는 것보다 말을 아끼는 절제가 더 큰 품격이 되기도 한다.

다섯째는 관계의 원만함이다. 가족과 친구, 이웃은 물론 젊은 세대와도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경험만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달라진 시대와 새로운 생각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좋은 관계는 상대를 자신의 생각대로 바꾸려 하기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여섯째는 공헌과 나눔의 보람이다. 평생 쌓아 온 지식과 경험, 재능과 시간을 가족과 이웃, 다음 세대와 사회를 위해 나눌 때 인생 후반기의 삶은 더욱 의미 있어진다. 고은층의 품격은 자신을 잘 가꾸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데서 한층 깊어진다.

이 여섯 가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면 단정한 용모에서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몸에서 깊은 마음으로, 마음에서 품위 있는 언행으로, 언행에서 원만한 관계로, 관계에서 나눔과 공헌으로 나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결국 인품(人品)이 있다. 좋은 옷을 입어도 말이 거칠면 품격은 빛을 잃고, 외모를 잘 관리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면 좋은 인상을 오래 남기기 어렵다. 반대로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어도 편안하게 웃고, 조용히 경청하며,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에게서는 나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멋이 풍겨 나온다.

맺음글
겉모습을 가꾸는 사람에서 삶의 품격을 가꾸는 사람으로


고은층에게도 외모는 중요하다. 단정하고 건강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존중이며 타인에 대한 예의다. 건강하고 활력 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외모를 가꾸느냐 가꾸지 않느냐가 아니라, 외모를 삶의 목적이나 사람의 가치를 재는 기준으로 삼지 않는 데 있다.

인생 후반기의 멋에는 젊은 시절과는 조금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얼굴에 남은 세월의 흔적을 얼마나 지웠느냐보다 그 얼굴에 얼마나 편안하고 따뜻한 표정이 담겨 있는가가 중요하다. 머리카락의 색깔보다 생각이 얼마나 젊고 열려 있는가가 중요하다. 또한 겉모습을 얼마나 젊게 유지했는가보다 건강을 돌보며 자신의 삶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세월이 쌓이면 얼굴과 몸가짐에는 어느 정도 살아온 삶의 흔적이 남는다. 그러나 그 흔적은 감추어야 할 결함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의 기록일 수 있다. 오랫동안 감사하고 배려하며 살아온 삶은 표정과 말씨,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씩 스며든다. 그런 의미에서 고은층의 얼굴은 단순한 외모를 넘어 한 사람이 걸어온 삶과 지금 살아가는 태도를 함께 보여 주는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은층(高恩層)은 인생을 살아오며 받은 많은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그 은혜를 다시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고은층의 멋 역시 얼굴과 옷차림에서 끝날 수 없다. 단정한 외모, 건강한 몸, 깊은 마음, 품위 있는 언행, 원만한 관계, 그리고 나눔과 공헌의 삶이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

고은층의 멋은 외모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품격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은층은 단정하게 보이는 사람을 넘어, 깊이 생각하고 따뜻하게 말하며 바르게 행동하고 품위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것이 세월을 억지로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세월과 함께 더욱 깊어지는 길이며, 외모를 넘어 삶의 품격으로 완성되는 고은층의 참된 멋일 것이다.

사진. 2026년 8월 22일, 오랜만에 필자의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촬영한 가족사진을 AI로 리메이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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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 전 5권 연작시리즈 통합 서문(초안)
제주를 다섯 겹으로 읽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ㆍ행정학박사ㆍ전 대구경북연구원장


서문
제주에서 묻고, 제주에서 생각하다


제주는 한 번 보고 지나가는 섬이 아니다. 오래 머물수록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섬이다.
산과 바다를 보고 나면 오름과 곶자왈이 보이고, 자연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 자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을 만나면 그들이 만들어 온 삶과 문화가 보이고, 문화를 들여다보면 마침내 오늘의 제주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이르게 된다.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하였다.

나는 제주에 머물며 걷고, 보고, 만나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때로는 한라산과 오름에서, 때로는 바닷가와 곶자왈에서, 때로는 도서관과 파크골프장에서, 또 때로는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제주를 만났다. 처음에는 눈앞의 풍경을 기록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풍경 너머의 사람과 삶,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제주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쌓인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섯 갈래의 사색으로 나뉘었다. 연제(然濟), 제연(濟然), 제인(濟人), 제문(濟文), 그리고 제도(濟道)이다.

이 다섯 이름은 단순히 다섯 권의 책을 구분하기 위한 명칭이 아니다. 자연에서 출발하여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고, 사람과 삶을 만나며, 그 삶이 축적해 온 문화를 읽고, 마침내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와 그 길을 모색하는 하나의 사유 과정이다.

따라서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 전 5권은 자연-관계-사람-문화-미래의 길이라는 다섯 층위에서 제주를 읽고 생각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을 읽다,
제1권 『연제(然濟)』

제주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자연의 제주, 연제이다.

제주는 화산이 만든 섬이다. 한라산과 오름, 현무암과 용암동굴, 곶자왈과 숲, 바다와 해안, 바람과 비와 지하수는 제주라는 삶터를 이루어 온 가장 오래된 토대이다. 인간이 제주에 터를 잡기 훨씬 전부터 자연은 이 섬의 몸체와 생명의 질서를 만들어 왔다.

그래서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의 첫 번째 시선은 연제(然濟)에서 시작한다.

연제는 자연의 제주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피고, 물의 순환과 숲과 곶자왈, 오름과 해안, 그리고 오랜 시간 속에서 이어지는 생명의 질서를 들여다본다. 그러나 자연을 단순한 관광자원이나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돌 하나, 물 한 줄기, 나무 한 그루에도 오랜 시간과 생명의 역사가 담겨 있음을 생각한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용암이 굳어 땅이 되고, 그 위에 생명이 자리 잡으며, 다시 숲이 이루어지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제주의 자연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연제는 결국 “제주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자연의 제주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자연과 사람이 만나다,
제2권 『제연(濟然)』

자연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이 자연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여기서 두 번째 사색인 제주의 자연, 제연(濟然)이 시작된다.

연제가 ‘자연으로서의 제주’를 바라보는 것이라면, 제연은 ‘제주에서 자연과 인간이 맺어야 할 관계’를 생각한다. 자연은 인간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와 함께 나누고 보전해야 할 공동의 유산인가? 개발과 보전은 반드시 대립해야 하는가? 인간은 자연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으며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가?

제주의 여러 환경문제는 결국 이러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제연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이다. 자연을 소유와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고, 필요한 만큼 이용하되 가능한 한 훼손을 줄이며, 오늘의 편익뿐 아니라 다음 세대가 누릴 권리까지 생각해야 한다.

자연은 사람을 기다릴 수 있지만, 사람의 욕심은 자연을 기다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절제와 책임이 필요하다.

제연은 단순히 자연보전만을 주장하는 글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와 적절한 거리를 찾으려는 사색이다. 그것은 결국 공존과 절제, 책임과 배려의 문제이다.

제주 사람을 만나다,
제3권 『제인(濟人)』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사람에게 이르게 된다.

제주라는 섬의 몸체를 만든 것은 자연이지만, 오늘의 제주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제3권 제주 사람, 제인(濟人)은 제주에서 만난 사람과 관계, 그리고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주 사람들의 삶에는 섬이라는 공간에서 오랜 세월 살아오며 형성된 독특한 지혜가 있다. 때로는 척박한 자연에 적응하고, 서로 돕고 나누며, 기다리고 견디면서 살아온 생활의 지혜이다. 동시에 오늘의 제주에는 토박이와 이주민, 젊은 세대와 고은층, 제주인과 방문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제주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관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을 넘어선 더 큰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삶은 깊어진다.

특히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제주는 새로운 삶과 사색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오랜 경험과 지혜를 지닌 고은층이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혜를 공동체와 다음 세대에 나누는 삶도 가능하다.

제인(濟人)은 결국 “제주에는 누가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넘어 “우리는 서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는 사람과 관계의 이야기이다.

삶이 문화가 되다,
제4권 『제문(濟文)』


사람이 한곳에서 오랫동안 살아가면 삶의 흔적이 쌓인다.

그 흔적은 역사가 되고 기억이 되며, 마침내 문화가 된다.

제4권 제주의 문화, 제문(濟文)은 제주 사람들이 오랜 세월 만들어 온 문화의 여러 층위를 찾아가는 사색이다.

삼성혈과 삼을나 신화, 혼인지와 설문대할망 이야기에서부터 성곽과 방어유적, 마을과 지명, 민속과 생활문화에 이르기까지 제주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문화는 박물관이나 문화재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지명, 먹는 음식, 집을 짓는 방식, 이웃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문화가 스며 있다. 오래된 돌담 하나에도 바람과 함께 살아온 제주인의 지혜가 담겨 있고, 마을 이름 하나에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과 시간이 남아 있다.

따라서 제문은 문화유산을 나열하거나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자연이 어떻게 삶이 되고, 삶이 어떻게 기억이 되며, 그 기억이 어떻게 문화로 이어졌는가를 살펴보았다.

문화를 안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며,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이 살아온 시간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제주의 길을 찾다,
제5권 『제도(濟道)』


자연을 보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고, 사람과 문화를 살피고 나면 마지막 물음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제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제5권 지속가능한 제주의 길, 제도(濟道)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제도(濟道)는 행정이나 법률상의 제도(制度)를 뜻하지 않는다. ‘제주가 나아갈 길’, 곧 지속가능한 제주를 만들어 가는 길(道)을 뜻한다. 앞의 네 권에서 살펴본 자연과 관계, 사람과 문화를 토대로 제주가 앞으로 어떤 가치를 지키고, 어떤 방향을 선택하며, 어떠한 원칙과 전략으로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색이다.

따라서 제도는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 전 5권의 마지막 권이면서 앞선 네 권의 사색을 미래로 연결하는 종합의 장이기도 하다.

제주의 미래는 개발이냐 보전이냐 하는 단순한 양자택일로 결정될 수 없다. 자연의 수용력을 존중하면서 사람이 살아갈 기반을 마련해야 하고, 관광객을 받아들이면서도 주민의 일상과 삶의 질을 지켜야 한다. 경제적 활력을 추구하면서도 제주 고유의 자연과 문화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오늘의 필요를 충족하면서도 다음 세대가 누려야 할 가능성을 빼앗지 않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 지속가능한 제주, 제도(濟道)의 의미가 있다.

제도에서는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한 가치와 원칙, 방향과 전략,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갈 실천의 길을 함께 생각한다. 신삼다도의 구상,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섬,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삶터, 지역공동체가 살아 있는 제주, 고은층이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정주환경 등도 이러한 미래 구상의 한 부분이다.

제도(濟道)는 미래를 단정하거나 예측하려는 글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제주를 만들어 가야 하는가?”, 그리고 “그 제주에 이르기 위해 어떤 길을 함께 걸어야 하는가?”를 묻는 미래지향적 사색이다.

다섯 권은 하나의 길이다
자연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 다섯 권을 하나로 놓고 보면 그 흐름은 분명하다.

연제(然濟)는 자연을 읽고,
제연(濟然)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며,
제인(濟人)은 사람과 삶을 만나고,
제문(濟文)은 사람이 남긴 기억과 문화를 읽으며,
제도(濟道)는 그 모든 것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와 그 길을 묻는다.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 → 관계 → 사람 → 문화 → 지속가능한 미래의 길"

그러나 이 과정은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 끝나는 직선이 아니다.

미래를 생각하려면 다시 사람을 보아야 하고,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삶과 문화를 알아야 한다. 문화를 지키려면 그것을 낳은 공동체와 자연을 보전해야 하며, 자연을 지키는 일은 다시 사람의 삶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 된다. 그래서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의 다섯 층위는 직선적 단계라기보다 서로 이어지고 되돌아오는 순환적 사색의 구조에 가깝다.

"자연이 사람의 삶터가 되고,
사람의 삶이 문화가 된다.
문화가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들고, 그 정체성이 미래의 방향과 길을 정한다.
그 미래의 선택은 다시 자연과 사람의 삶을 바꾸어 간다."


이것이 제주에서 발견하고 생각한 다섯 겹의 연결이며,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 전 5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길이다.

맺음글
제주를 쓰며 삶을 다시 읽다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은 제주에 관한 책이지만 제주만을 말하려는 책은 아니다.

제주의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자연을 생각했고, 자연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욕망과 절제를 돌아보았다. 사람을 만나면서 관계를 생각했고, 오래된 마을과 유적을 걸으며 시간과 문화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리고 이 모든 사색의 끝에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제주를 남겨 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제주를 읽는 일은 나 자신의 삶을 다시 읽는 일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앞을 향해 나아가는 데 익숙했다면,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주변을 천천히 바라보게 되었다. 무엇을 더 이룰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고, 소유하는 것보다 나누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은 제주에 대한 관찰과 배움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인생 후반기의 사색을 담은 기록이기도 하다.

연제에서 자연의 오래된 시간을 배웠고, 제연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생각하였다. 제인에서 사람과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았으며, 제문에서 기억과 문화의 힘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제도에서는 앞선 네 가지 사색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제주가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였다.

다섯 권의 사색을 지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면 결국 하나의 생각이 남는다.

"좋은 미래는 자연을 존중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문화를 기억하고, 그 가치를 다음 세대로 이어 갈 지속가능한 길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제주는 아름다운 섬이기 전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터이며, 오늘의 우리가 다음 세대와 함께 나누어야 할 공동의 유산이다. 그러므로 제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제주의 자연과 사람과 문화가 지닌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그것을 훼손하지 않고 다음 세대에 이어 주어야 할 책임까지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 전 5권은 그렇게 자연에서 시작하여 사람과 문화를 지나 지속가능한 미래의 길로 나아가고, 그 길의 끝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오는 사색의 여정이다.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며 제주에 대해 세 가지 물음을 거듭 던졌다.

"제주는 무엇인가?
제주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제주를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하는가?"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은 이 세 가지 물음에 답을 단정하기보다, 그 답을 찾아 제주를 걷고 보고 만나고 생각해 온 나의 긴 사색의 기록이다.

2026년 8월 21일 아침, 제주 서귀포혁신도시 푸른호텔 라운지에서 한라산과 법환포구 앞 범섬을 바라보며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 전 5권 연작시리즈의 통합 서문(초안)을 쓰다.

이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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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이 즐기는 파크골프의 오단(五端)·18공(功)·18계(戒)에 대한 논의: 공(球)을 치며 공(功)을 닦고, 계(戒)를 새기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 행정학박사


서문
18홀을 걸으며 품격을 닦다


파크골프는 공(球)을 치는 운동이다. 공 하나를 클럽으로 쳐서 홀컵에 넣는 단순한 경기이다. 그러나  막상 18홀을 돌아보면 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술과 지혜, 절제와 배려가 담겨 있다. 신중하게 시작하고, 지형과 거리를 살피며, 힘을 조절하고, 상황에 따라 공을 밀고 쓸고 찍고 띄우고 굴려야 한다. 또한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운동이기에 안전을 지키고 동반자를 배려하며 좋은 말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파크골프의 정신과 기술, 경기 운영과 인간관계를 ‘오단(五端)·18공(功)·18계(戒)’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단(端)은 유교의 사단칠정론에서 말하는 ‘사단(四端)’의 단에서 착안한 개념이다. 사단의 단은 사람의 바른 마음과 덕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실마리이자 출발점을 뜻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오단’은 전통적인 사단을 다섯 가지로 바꾸거나 그대로 옮겨 온 개념은 아니다. ‘단’이 지닌 마음과 행실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파크골프에 적용하여 다섯 가지 실천 영역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 바탕에는 또한 유교가 중요하게 여겨 온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정신이 놓여 있다. 어질게 사람을 대하는 인(仁), 마땅함과 원칙을 지키는 의(義), 서로를 존중하는 예(禮), 상황을 헤아리는 지(智), 믿음과 신의를 지키는 신(信)은 파크골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덕목이다. 다만 오단 각각을 인의예지신과 기계적으로 하나씩 대응시키기보다는, 오단 전체에 인의예지신의 정신이 서로 어우러져 흐른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공(功)은 단순한 기술 하나만을 뜻하지 않는다. 반복하여 익히고 몸과 마음으로 닦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공력(功力)의 뜻을 함께 담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공에는 하나의 계(戒)가 따른다. 여기서 계는 금지나 경계의 뜻에만 머무르지 않고 경기에서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행동준칙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단은 ‘어떤 마음과 자세로 파크골프를 할 것인가?’를 나타내는 큰 틀이며, 18공은 ‘무엇을 익히고 닦을 것인가?’, 18계는 ‘무엇을 마음에 새기고 지킬 것인가?’를 나타낸다.

공(球)을 치면서 공(功)을 닦고, 그렇게 닦은 공을 계(戒)로 마음에 새긴다. 18홀을 걸으며 오단을 실천하고 18공을 닦으며 18계를 지키는 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 파크골프의 또 다른 즐거움이자 품격이다.

제1단(第一端)은 마음과 판단을 다스리는 오공(五功)
1. 신공(愼功), 시작은 신중하게


‘시작이 반이다.’ 첫 티샷부터 서두르지 않는다. 방향과 거리, 지면의 상태를 살피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첫 공을 친다. 첫 샷의 마음가짐이 한 홀뿐 아니라 경기 전체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계: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시작하라.

2. 지공(智功), 판단은 지혜롭게

파크골프는 힘만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다. 거리와 경사, 장애물은 물론 다음 샷의 위치까지 생각해야 한다. 몸으로 공을 치되 머리로 경기를 풀어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인의예지신 가운데 지(智)의 덕목과도 자연스럽게 통한다.

제2계:힘에 앞서 지혜로 공략하라.

3. 관공(觀功), 주위는 세심하게

공을 치기 전에 먼저 본다. 지형과 잔디, 바람과 장애물을 살피고 앞선 경기자와 동반자의 위치도 확인한다. 잘 보는 것이 좋은 판단과 안전한 경기의 출발이다.

제3계: 치기 전에 먼저 보고 살펴라.

4. 정공(靜功), 마음은 침착하게

한 번의 실수에 마음이 흔들리면 다음 샷까지 흔들릴 수 있다. 잘못 친 공은 이미 지나간 공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공에 집중하는 평정심 역시 중요한 실력이다.

제4계: 실수에 매이지 말고 평정심을 지켜라.

5. 절공(節功), 욕심은 절제 있게

멀리 보내는 것만이 좋은 샷은 아니다. 때로는 짧게 치고, 때로는 돌아가며, 자신의 능력과 코스 상황에 맞추어 힘과 거리를 조절해야 한다. 절제는 욕심을 다스리는 마음의 기술이자 불필요한 실수를 줄이는 경기의 지혜다.

제5계: 욕심을 줄이고 힘과 거리를 조절하라.

제2단(第二端)은 몸과 리듬을 다스리는 이공(二功)
6. 인공(仁功), 힘은 부드럽게


공을 억지로 때리지 않는다. 어깨와 팔의 불필요한 힘을 빼고 공을 부드럽게 다룬다. 여기서 인(仁)은 어질고 온화하다는 뜻을 빌려 거칠지 않은 타격과 몸가짐을 상징한다. 사람에게 온화하듯 공을 다루는 데도 지나친 힘보다 부드러움이 필요하다.

제6계: 힘을 빼고 공을 부드럽게 다루어라.

7. 연공(連功), 리듬은 자연스럽게

어드레스에서 백스윙, 다운스윙, 임팩트와 팔로스루까지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일정한 템포와 리듬은 정확성과 거리감을 높여 준다. 연공은 동작의 ‘이어짐’을 닦는 공이다.

인공과 연공은 서로 다르면서도 연결된다. 인공이 힘의 부드러움을 닦는 것이라면 연공은 동작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닦는 것이다. 힘은 부드럽게 하고 동작은 끊김 없이 이어 가는 데 두 공의 조화가 있다.

제7계: 스윙을 끊지 말고 자연스러운 리듬을 이어라.

제3단(第三端)은 상황에 맞게 공을 다루는 오공(五功)
8. 밀공(推功), 밀어 치기


공을 강하게 때리기보다 목표 방향으로 밀어 보내듯 친다. 방향성과 거리 조절이 중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타법이다. 중요한 것은 힘보다 목표와 방향이다.

제8계: 방향이 중요할 때는 밀어 쳐라.

9. 쓸공(掃功), 쓸어 치기

클럽이 지면을 따라 자연스럽게 지나가도록 공을 쓸어 친다. 공을 억지로 들어 올리거나 찍어 누르지 않고 스윙의 흐름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9계: 자연스러운 궤도로 부드럽게 쓸어 쳐라.

10. 찍공(打功), 찍어 치기

공의 위치나 지형에 따라 짧고 정확한 타격이 필요할 때 활용한다. 중요한 것은 세게 내려찍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지점에 정확한 임팩트를 만드는 데 있다.

제10계: 필요한 순간에는 짧고 정확하게 쳐라.

11. 고공(高功), 띄워 치기

공 앞에 장애물이 있거나 지면으로 굴려 보내기 어려울 때는 공을 띄워 넘긴다. 무조건 높이 띄우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을 넘길 만큼의 적절한 높이와 거리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11계: 장애물은 필요한 만큼만 띄워 넘겨라.

12. 굴공(滾功), 굴려 치기

공을 높이 띄우기보다 지면의 흐름을 이용해 목표 지점까지 굴려 보낸다. 경사와 잔디 상태를 읽고 공이 움직일 길을 미리 그려 보는 판단이 필요하다.

제12계: 지면의 흐름을 읽고 굴려 보내라.

이 다섯 가지 타법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기술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을 보고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곧 지(智)이며, 무리한 타격을 삼가는 것은 절제이고, 경기의 원칙을 따르는 것은 의(義)의 정신과도 통한다.

제4단(第四端)은 목표와 경기를 운영하는 삼공(三功)
13. 선공(先功), 다음 타를 먼저 생각하기

매번 홀인을 직접 노리기보다 다음 샷이 편하도록 공을 깃대 가까운 좋은 위치에 세운다는 마음으로 친다. 여기서 선공의 ‘선(先)’은 당장의 한 타보다 다음 타를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다. 무리한 한 타보다 다음 타를 준비하는 전략의 공이다.

제13계:홀인 욕심보다 다음 타의 좋은 위치를 먼저 만들어라.

14. 삼공(三功), 세 타로 계획하기

각 홀을 기본적으로 세 타의 과정으로 생각한다. 첫 타는 좋은 위치로 보내고, 둘째 타는 홀 가까이 붙이며, 셋째 타는 침착하게 마무리한다. 반드시 세 타를 쳐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숫자 3을 경기 운영과 목표 관리의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제14계: 한 홀을 세 번의 계획으로 운영하라.

15. 안공(安功), 안전을 먼저 생각하기

좋은 점수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앞 팀과 동반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충분한 거리를 확보한 뒤 공을 친다. 경기 규칙과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안공에는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의(義)와 상대를 생각하는 인(仁)의 정신이 함께 담겨 있다.

제15계: 점수보다 안전을 먼저 지켜라.

제5단(第五端)은 사람과 함께 품격을 완성하는 삼공(三功)
16. 언공(言功), 말은 기분 좋게


좋은 샷에는 칭찬하고 실수에는 격려한다. 지나친 훈수나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은 삼간다. 파크골프에서는 클럽으로 치는 공만큼 입에서 나오는 말도 중요하다. 좋은 말 한마디가 한 라운드의 분위기를 즐겁게 바꿀 수 있다.

제16계: 칭찬하고 격려하되 불편한 말은 삼가라.

17. 배공(配功), 동반자는 배려 있게

파크골프는 혼자만의 운동이 아니다. 자신의 경기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의 순서와 집중을 존중하며 경기 속도도 함께 맞춘다. 기다려 주고 양보하며 즐거움을 나누는 것은 인(仁)의 배려이며 함께 지켜야 할 경기의 도리이기도 하다.

제17계: 나만의 경기보다 함께하는 경기를 생각하라.

18. 예공(禮功), 감사와 인사로 마무리하기

경기를 마치면 함께한 동반자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인사한다. 승패와 점수를 떠나 함께 18홀을 걸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춘다. 약속한 규칙과 경기 질서를 지키고 서로를 믿으며 끝까지 함께하는 것은 예(禮)와 신(信)의 실천이기도 하다.

시작에 신공(愼功)이 있다면 끝에는 예공(禮功)이 있다. 신중하게 시작한 한 라운드를 감사와 예의로 마무리할 때 파크골프의 품격도 완성된다.

제18계:감사와 인사로 경기를 아름답게 마쳐라.

맺음말
공(球)을 치며 공(功)을 닦는 품격 있는 놀이


파크골프의 오단·18공·18계는 단순히 공을 잘 치기 위한 기술의 목록이 아니다. 신중하게 시작하고 지혜롭게 판단하며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는 마음의 공이 있다.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리듬을 이어 가는 몸의 공이 있으며, 상황에 따라 밀고 쓸고 찍고 띄우고 굴리는 기술의 공도 있다. 여기에 목표를 세워 경기를 운영하고 안전을 지키는 공, 좋은 말을 나누고 동반자를 배려하며 예의로 마무리하는 사람의 공이 더해진다.

그 밑바탕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상통하는 삶의 자세가 흐르고 있다. 상대를 어질게 대하는 인(仁), 자신과 동반자가 함께 지켜야 할 도리를 따르는 의(義), 경기 질서와 상대를 존중하는 예(禮), 코스와 상황을 헤아려 판단하는 지(智), 약속과 규칙을 지키며 서로 믿을 수 있는 경기자가 되는 신(信)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파크골프의 오단은 단순한 다섯 가지 경기 영역을 넘어 파크골프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에 대한 다섯 갈래의 실천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18공이라는 구체적인 훈육을 거쳐 18계라는 행동 준칙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필자가 말하는 오단·18공·18계는 다음과 같이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오단(五端)은 품격 있는 파크골프를 시작하는 다섯 가지 실천의 바탕이고,
18공(功)은 몸과 마음으로 익히고 닦아야 할 공력이며,
18계(戒)는 경기에서 마음에 새기고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다.

18홀은 몸으로 걷는 길이지만 동시에 마음을 닦는 길이 될 수 있다. 공(球) 하나를 치고 그 공을 따라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욕심을 줄이는 법을 배우며, 상황을 판단하고 사람을 배려하며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공(球)을 치며 오단(五端)을 펼치고, 18공(功)을 닦으며,
18홀을 걸어 18계(戒)를 새긴다.

신중하게 시작하고 지혜롭게 판단한다. 힘은 부드럽게 하고 동작은 자연스럽게 이어 간다. 상황에 맞는 기술을 선택하고, 욕심보다 절제를 앞세우며, 점수보다 안전을 생각한다. 좋은 말을 나누고 동반자를 배려하며 마지막에는 감사와 예의로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파크골프가 단순히 공을 잘 치고 점수를 겨루는 데 머문다면 하나의 생활체육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인(仁)의 배려, 의(義)의 바름, 예(禮)의 존중, 지(智)의 판단, 신(信)의 믿음을 담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운동은 놀이가 되고, 놀이는 사회적 관계가 되며, 사회적 관계는 삶을 닦는 시간이 된다.

필자는 바로 이러한 파크골프가 고은층(高恩層)이 즐기는 품격 높은 놀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18홀에서 건강을 얻고, 오단에서 마음의 바탕을 세우며, 18공에서 기술과 지혜를 닦고, 18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익히는 것이다.

잘 치는 파크골프를 넘어 잘 즐기는 파크골프로,
잘 즐기는 파크골프를 넘어 함께 품격을 닦는 파크골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고은층이 공(球)을 치며 공(功)을 닦는 파크골프의 참맛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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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만난 다섯 소리

이성근

편백나무가 살아내는 자연스런 바람소리
치유샘에서 기운 돋우는 맑은 물소리
사방의 숲에서 소식 주는 새와 풀벌레 소리
암수 노루의 아침 먹이 풀 뜯는 소리
나 또한 숨소리와 멍소리를 보탠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행정학박사. 2026. 8. 21 이른 아침

글을 쓰게 된 동기
2026년 8월 21일 이른 아침, 서귀삼연의 김 선생과 함께 서귀포 치유의 숲과 시오름을 걸었다. 무장애길과 시오름을 오르는 동안 편백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 치유샘의 맑은 물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와 풀벌레 소리, 한가로이 풀을 뜯는 암수 노루의 소리가 차례로 귀에 들어왔다.
그 네 가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나 또한 숲의 한 소리가 되어 있었다. 오름길에서 숨이 차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숨소리’, 치유의 숲길을 걸으며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멍소리’였다.
앞의 네 소리가 숲과 생명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라면, 마지막 다섯 번째 소리는 그 숲을 걷는 필자의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치유의 소리이다. ‘숨소리’가 몸의 숨을 고르는 소리라면, ‘멍소리’는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소리다. 자연의 소리를 듣던 필자가 어느새 자연과 함께 하나의 소리를 내는 존재가 된 것이다.
눈으로 보는 숲만큼이나 귀로 듣는 숲도 깊고 아름다웠다. 그날 아침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자연이 들려준 네 소리와 필자가 보탠 숨소리와 멍소리, 그렇게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낸 ‘다섯 소리’를 짧은 디카시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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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찾아드는 오설록

이성근


나이가 따로 없고
남녀도 구분 없네
나라와 국적도 가리지 않네
시간과 계절이 한결같네
누구나 차향 따라 찾아드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행정학박사. 2026. 8. 19.  오후

[글을 쓰게 된 동기]
한림 근석농장에서 일을 마치고 서귀포로 돌아오는 길, 서귀삼연의 김 선생과 제주 오설록에 들렀다. 녹차밭을 바라보며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잠시 더위를 식히다가 문득 주변을 바라보았다. 어린이부터 노년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남녀와 내외국인이 한데 어우러져 차를 마시고 걷고 쉬고 있었다. 오설록은 계절을 달리해도 늘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차향과 쉼, 제주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제주 명소, 오설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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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산 시절 이야기

이성근


어릴 때는 주는 대로 먹었고
학생 때는 있는 대로 먹었네
일할 때는 대충 먹고살았고
장년에는 골라서 먹었는데
고은에는 가려서 먹고 산다


[이 글을 쓴 동기]
오랜만에 서귀포에서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어 무엇을 어디서 먹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한평생 나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주는 대로, 있는 대로, 대충, 골라서 먹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몸과 삶을 생각하며 가려서 먹는다. 먹는 방식에도 고은의 세월과 삶의 모습이 담겨 있음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행정학박사. 고은층의 고추 계절에 지난날 먹고 산 시절을 생각하다.

사진. 2026년 8월 18일 저녁, 서귀포 칠십리 해변에서 오랜만에 함께한 서귀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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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로 읽는 다섯 층위의 인터불고

이성근


망우당은 2·28의 정신으로 살아나고
영남제일관은 고속화 시대로 이어지네
갈대와 철새는 금호강에 생명을 더하고
비에 젖은 동촌은 한 폭의 그림이네
비 오는 오후, 인터불고는 화목을 이룬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행정학박사. 2026년 8월 16일 비 오는 오후. 대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파크빌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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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主客顚倒)

이성근


용천이 주인인데
바위가 앉아 있네
용천수의 자리인데
사람이 쉬고 있네
그럼에도
물은 말없이 흘러가네
세상이치가 다 그러하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행정학박사. 2024년 8월 14일 오후 3시. 서귀포시 서홍동 솜반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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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연(和而不同然)

이성근

하늘이 그러하니
땅도 그러하고
산이 그러하니
강도 그러하네
나 또한 그러하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행정학박사. 2026년 8월 14일 저녁, 대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라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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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의 외형과 내면, 관계와 일상이 그려 내는 인생 후반기의 품격"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기 인생의 그림을 그린다


인생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사람은 태어날 때 완성된 그림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그려 간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그림의 선과 색이 달라진다. 젊은 날에는 아직 밑그림이 많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경험과 관계, 성공과 실패, 기쁨과 아픔이 겹쳐지면서 한 사람만의 인생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 그림은 자기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세상 밖으로 드러나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느껴진다. 사람들은 얼굴과 옷차림, 말씨와 걸음걸이를 보고 첫인상을 갖는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마음씨와 성품, 배려와 절제,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알게 된다. 오랫동안 관계를 맺으면 그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지까지 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인생 그림을 보고 느끼며 때로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고은층에게는 이 그림이 더욱 중요하다. 젊은 시절의 그림이 가능성과 패기로 평가받는다면 인생 후반기의 그림에는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과 말씨, 태도와 습관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래서 필자는 말하고 싶다.

인생은 그림이 좋아야 한다. 특히 고은층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좋은 그림이란 젊어 보이는 얼굴이나 값비싼 옷, 높은 지위나 많은 재산을 뜻하지 않는다. 세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몸은 단정하고 마음은 맑으며, 사람에게는 따뜻하고 자신의 하루는 의미 있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것이 고은층이 그려 가야 할 인생 후반기의 좋은 그림이다.

외형의 그림,
젊어 보이는 것보다 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사람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외형이다. 얼굴의 표정과 옷매무새, 머리 모양과 걸음걸이, 자세와 몸가짐, 말씨와 행동거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외형적 그림을 만든다. 같은 나이에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크게 다르다. 어떤 사람은 흰머리와 주름이 있어도 단정하고 편안해 보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지치고 거칠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외형의 그림을 반드시 젊어 보이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이를 감추는 것만이 아름다움은 아니다. 고은층의 아름다움은 젊은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움과 단정함을 지켜 가는 데 있다.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으며 허리를 펴고 걷는 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하다. 운동으로 몸을 돌보고 지나친 꾸밈보다는 절제된 멋을 갖추며 편안한 표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또한 인생의 그림을 바꾸어 놓는다.

외형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 존중인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잘 정돈된 모습은 ‘나는 아직 내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 없는 표현이다.

따라서 고은층의 좋은 외형은 늙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세월을 지우려고 애쓰기보다 세월을 품위 있게 품어 내는 것이 더 아름답다.

내면의 그림,
얼굴의 주름보다 마음의 표정이 더 중요하다


외형의 그림보다 더 깊은 곳에는 내면의 그림이 있다. 마음씨와 마음가짐, 감사와 절제, 배려와 존중, 정직과 겸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같은 가치들이 한 사람의 내면을 이루어 간다.

젊은 시절에는 외모와 능력이 사람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마음의 모습이다. 오랜 세월 쌓아 온 생각과 감정의 습관이 얼굴의 표정과 말씨,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경험만 옳다고 주장하거나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가볍게 여긴다면 인생의 그림은 점차 굳어진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끊임없이 남을 탓하면 얼굴에도 불만과 피로가 쌓인다. 반대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감사할 일을 찾는 사람에게서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때로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것도 인생 후반기의 중요한 지혜이다.

성경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는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육체의 노화는 자연의 질서이지만 마음과 정신까지 반드시 함께 무뎌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생 후반기는 지나온 경험을 성찰하고 불필요한 욕심을 덜어 내면서 내면을 더욱 깊고 맑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월은 얼굴에 주름을 만들지만, 마음은 그 주름에 표정을 입힌다.

주름이 있다고 못난 것이 아니다. 온화한 표정과 따뜻한 눈빛이 함께한다면 주름은 오히려 오래 살아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아름다운 흔적이 된다. 고은층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치장보다 표정에서, 재산보다 마음에서, 지식의 많음보다 지혜의 깊이에서 드러난다.

관계의 그림,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품격이 드러난다

인생의 그림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한 사람의 인생 그림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가족과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어떻게 인사하는지, 자신에게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품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사람의 진정한 품격은 자신보다 높은 사람을 대할 때보다 오히려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을 대할 때 더욱 잘 드러난다.

특히 인생 후반기에는 관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가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만나고 난 뒤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는가가 더 중요하다. 만나면 편안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따뜻해지며, 헤어진 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좋은 관계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고은층이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일방적인 가르침과 비판으로 흐르면 관계는 오히려 멀어진다. 말하기 전에 듣고, 비판하기 전에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오늘의 유일한 정답으로 내세우지 않는 지혜도 필요하다.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과 그 자리를 떠난 뒤에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전자가 지위로 만든 관계라면 후자는 사람이 만든 관계이다. 인생 후반기에 진정으로 남는 것은 결국 후자의 관계이다.

따라서 사람의 품격은 자신을 드러낼 때보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생활의 그림,
하루라는 작은 그림이 모여 인생이라는 큰 그림이 된다


사람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는 것은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하루일지도 모른다. 언제 일어나고 무엇을 먹는지, 누구를 만나고 얼마나 움직이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결국 한 사람의 생활을 만든다.

좋은 인생의 그림이라고 해서 매일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충실해질 수 있다. 좋은 사람과 차 한 잔을 나누고 때로는 자연을 산책하며, 책을 읽거나 사색하고 저녁에는 하루를 편안히 마무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그림이 된다.

특히 고은층에게는 일과 놀이, 활동과 휴식, 사람과의 만남과 혼자 있는 시간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무엇인가를 계속 성취해야만 가치 있는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 후반기에는 여유와 성찰 그 자체도 중요한 삶의 내용이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자연을 걸으며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요하게 머무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루를 무심히 흘려보내기보다 자신의 방식으로 의미 있게 살아 내는 것이다.

인생은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루라는 작은 그림을 잘 그리면, 그것들이 쌓여 인생이라는 큰 그림이 된다.

노추(老醜)를 경계하다:
늙음이 아니라 삶의 그림이 흐트러지는 것을 경계한다


인생 후반기의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때로 ‘노추(老醜)’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여기서 노추를 단순히 늙어서 외모가 쇠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주름이 늘고 머리가 희어지며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변화이다. 그것 자체를 추함이라 할 수는 없다.

필자가 경계하고자 하는 노추는 다른 데 있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과 아집이 커지고 자신의 경험만을 절대시하는 모습이다. 남을 쉽게 무시하고 불평과 분노가 많아지며 자신을 돌보지 않는 모습도 여기에 해당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것 역시 인생 후반기의 그림을 흐트러뜨린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노추는 ‘늙은 모습의 추함’이 아니라 ‘나이 들면서 삶의 태도와 품격이 흐트러지는 상태’를 뜻한다.

노추는 나이 때문에 저절로 찾아오는 숙명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가에 따라 충분히 경계할 수 있다. 오히려 인생 후반기는 오랜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젊은 시절보다 더욱 깊고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노추를 경계하면서 고은층이 지향해야 할 과정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고숙(高熟)·고아(高雅)·고아청(高雅淸)이라는 세 단계의 개념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고숙(高熟),
사회화를 통해 세월과 경험을 삶의 익힘으로 바꾼다


여기서 말하는 고숙은 단순히 나이가 많거나 경험이 풍부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필자가 의미를 부여한 고숙은 세월과 경험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방법이 깊고 성숙하게 익어 가는 상태이다.

사람은 평생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가정에서 시작하여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와 여러 인간관계를 거치면서 사람을 대하는 방법과 사회의 규범을 배운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삼가야 하는지, 언제 자신을 드러내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 배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도 익혀 간다.

이것은 일종의 평생 사회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고 저절로 고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오래된 기억으로만 남으면 세월만 쌓일 뿐이다. 경험을 되돌아보고 그 의미를 깨달으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고쳐 갈 때 비로소 경험은 성숙으로 바뀐다.

따라서 고숙은 세월을 많이 보낸 상태가 아니라 세월을 통해 삶의 방법을 제대로 익힌 상태이다. 외형의 단정함과 관계에서의 배려도 이러한 고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몸가짐을 다듬고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을 익히면서 사람은 조금씩 원숙해진다.

고아(高雅),
내면화를 통해 배운 것이 인격과 품격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사회에서 예절을 배우고 좋은 행동을 익혔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좋은 인생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밖에서 배운 것이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성품이 되어야 한다.

이를 필자는 고은층의 내면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말을 조심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말의 절제가 자연스러운 성품이 된다. 처음에는 예의 때문에 상대의 말을 듣지만 배려가 내면화되면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려 한다. 처음에는 체면 때문에 겸손하게 행동할 수도 있지만 겸손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자신을 낮추는 일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이처럼 사회화 과정에서 익힌 가치가 마음속으로 들어와 인격과 품격이 되는 상태를 이 글에서는 고아(高雅)의 단계로 보고자 한다.

여기서 ‘높음’은 지위의 높음이 아니며 ‘우아함’은 외모의 화려함도 아니다.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삶을 너그럽고 맑게 바라볼 수 있는 정신과 인격의 높이를 뜻한다.

따라서 고숙이 삶의 방식을 익히는 것이라면, 고아는 그 방식이 마음에 스며들어 품격이 되는 것이다.

고아청(高雅淸),
품격을 생활화하여 맑은 삶으로 정착시킨다


그러나 좋은 것을 알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좋은 생각과 마음이 실제 생활에서 반복되고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를 개인 차원에서의 ‘생활의 제도화’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제도화는 일정한 가치와 규범, 행동 방식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형태로 자리 잡는 과정을 뜻한다. 이를 개인의 삶에 적용한다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내면화한 가치가 일상의 습관과 생활 방식으로 안정되게 정착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면 아직 생활로 정착된 것이 아니다. 배려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가까운 가족에게 함부로 대한다면 그 가치가 충분히 생활화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감사와 절제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일상에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욕심을 부린다면 생각과 삶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좋은 가치가 반복되는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며, 습관이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을 때 삶의 그림은 비로소 안정된다.

필자는 이러한 상태를 고아청(高雅淸)이라 부르고자 한다. 고아청은 이 글에서 필자가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는 개념으로, 고아한 품격과 맑은 마음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은 상태를 뜻한다.

처음에는 좋은 모습을 갖추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압축할 수 있다.

고숙은 익힘이고, 고아는 스밈이며, 고아청은 삶이 됨이다.

사회와 관계 속에서 좋은 삶의 방식을 익히고, 그것을 마음에 들여 인격과 품격으로 만들며, 마침내 일상의 습관과 생활양식으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결국 좋은 인생의 그림은 어느 한 부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ㆍ외형의 그림에는 단정함이 있어야 한다.
ㆍ내면의 그림에는 맑음이 있어야 한다.
ㆍ관계의 그림에는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ㆍ생활의 그림에는 의미와 균형이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 그림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단정한 몸가짐은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오고, 맑은 마음은 따뜻한 관계를 만든다. 좋은 관계와 내면의 평안은 다시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네 가지 그림을 깊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 바로 고숙·고아·고아청이다.

사람과 세상 속에서 고숙하고, 그 가치를 마음속에 들여 고아해지며, 그것을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 정착시켜 고아청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좋은 삶은 이렇다.

몸은 단정하게, 마음은 맑게, 사람에게는 따뜻하게, 하루는 의미 있게.

이것이 거창한 철학에 앞서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인생 후반기의 그림 그리기이다.

맺음글
마지막까지 자기 인생의 붓을 내려놓지 않는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그림을 그린다. 어제까지 어떤 그림을 그렸든 오늘 다시 한 획을 더할 수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인생의 그림이 이미 완성된 것은 아니다.

아침에 어떤 표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지,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지에 따라 오늘의 그림은 달라진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귀담아듣는지, 자신의 몸을 어떻게 돌보는지도 중요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역시 인생의 그림에 한 획을 더한다.

인생 후반기에 중요한 것은 젊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삶의 품격을 더욱 깊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신체는 세월에 따라 조금씩 약해질 수 있지만 마음과 관계와 생활의 그림은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고은층이 경계해야 할 것은 노화 그 자체가 아니라 노추, 곧 삶의 그림이 흐트러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향해야 할 것은 단지 오래 사는 장수만이 아니다. 삶의 방식을 성숙하게 익히는 고숙, 그것을 인격과 품격으로 만드는 고아, 그리고 그 품격과 맑음을 일상의 생활양식으로 정착시키는 고아청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추를 경계하고 고숙하며, 고아해지고, 마침내 고아청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아름다운 나이 듦이다.

인생이라는 그림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으며 남이 대신 그려 줄 수도 없다. 좋은 배경과 좋은 재료가 주어지더라도 붓을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결국 자신의 몫이다. 세월이 쌓일수록 그림은 흐려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 깊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말하고 싶다.

인생은 그림이 좋아야 한다. 특히 고은층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좋은 그림은 얼굴에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몸가짐에 그려지고 마음에 그려지며, 사람과의 관계에 그려지고 하루의 생활 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그 그림을 마지막까지 그리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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