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의 브리지, 삶의 다리: 연결의 철학에서 배우는 고은층의 지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몸을 이어 주는 관절처럼, 삶에도 이어 주는 다리가 필요하다
사람의 몸은 수많은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목은 머리를 지탱하면서 몸과 연결하고, 어깨와 손목은 팔과 손의 움직임을 이어 준다. 고관절은 골반과 다리를 연결해 몸의 중심을 잡게 하고, 발목은 다리와 발을 이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느 한 부분도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작은 연결 하나가 불편해져도 몸 전체의 움직임과 균형이 달라진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고, 책임은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나의 삶은 가족과 만나고, 가족은 이웃과 이어지며, 한 세대의 경험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그런 점에서 삶이란 수많은 사람과 시간 사이에 크고 작은 다리를 놓으며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생의 긴 시간을 살아온 고은층(高恩層)에게 ‘연결’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중요했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른 사람의 길과 이어 주는 일이 중요해진다. 살아오며 얻은 경험과 지혜를 가족에게 전하고, 이웃과 나누며, 사회와 다음 세대에 건네주는 것이다. 몸의 브리지가 서로 다른 부분을 연결하여 하나의 몸으로 움직이게 하듯, 고은층의 삶도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 경험과 미래를 이어 주는 하나의 다리가 될 수 있다.
목의 브리지
생각과 행동, 경험과 새로운 현실을 이어 주다
목은 머리와 몸을 연결하고 머리를 지탱하며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삶에 비추어 보면 목은 생각과 행동 사이를 이어 주는 상징적인 브리지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삶을 변화시키기 어렵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고, 해야 한다고 판단한 일을 작은 것부터 행동으로 옮길 때 생각은 비로소 삶이 된다.
여기에 또 하나 필요한 것이 겸손과 유연함이다. 우리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고 했다. 삶의 경험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생각만을 앞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고은층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경험을 축적한 사람들이다. 경험은 귀중한 자산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확신으로 굳어지면 오히려 새로운 세대와의 연결을 막을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오늘의 현실과 연결하고, 자신의 지혜를 젊은 세대의 새로운 생각과 이어 갈 수 있을 때 경험은 비로소 살아 있는 지혜가 된다.
『로마서』 12장 2절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한다. 변화는 생각에서 시작되지만 삶의 태도와 행동으로 이어질 때 더욱 의미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고은층에게 필요한 첫 번째 브리지는 생각과 행동, 경험과 새로운 현실을 이어 주는 유연한 목의 지혜라 할 수 있다.
어깨와 손목의 브리지
책임을 실천으로 바꾸고, 가진 것을 나누다
어깨에는 흔히 ‘책임을 짊어진다’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가족을 책임지고, 직분을 맡고,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어깨 위에 쌓여 있다. 반면 손과 손목은 생각과 의지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깨와 손목은 책임과 실천을 이어 주는 브리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인생 전반기에는 자신의 어깨에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가족을 돌보고 자녀를 키우며 직업과 사회적 책무를 감당한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의 책임은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 모든 짐을 다시 자신이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 축적한 것을 필요한 곳에 나누는 책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고은층에게는 경험과 전문성, 인간관계와 시간이 있다.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 간직하면 한 개인의 경험으로 머물지만 가족과 이웃, 후배와 지역사회에 나누면 공동체의 자산이 된다. 자녀에게 삶의 경험을 들려주고, 후배에게 시행착오에서 얻은 지혜를 전하며, 지역사회의 작은 일에 참여하는 것 또한 책임을 실천으로 이어 가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대신해 주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좋은 도움은 상대의 짐을 모두 들어주는 데 있지 않고,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필요할 때 힘을 보태는 데 있다. 고은층의 손은 붙잡아 끌고 가는 손이라기보다 필요할 때 조용히 내밀어 주는 손이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의 방식도 ‘내가 직접 하는 책임’에서 ‘함께할 수 있도록 돕는 책임’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 평생 어깨에 짊어졌던 책임의 무게는 인생 후반기의 나눔과 보람으로 바뀔 수 있다.
고관절과 발목의 브리지
균형을 지키면서도 삶의 걸음을 멈추지 않다
고관절은 몸의 중심에서 골반과 다리를 연결하며 서고 걷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목 역시 다리와 발을 이어 주면서 몸의 무게를 지탱하고 한 걸음씩 움직이게 한다. 이를 삶의 의미로 옮겨 보면 고관절이 ‘균형의 브리지’라면 발목은 ‘전진과 전환의 브리지’라 할 수 있다.
인생 후반기에는 무엇보다 균형이 중요하다. 일과 쉼, 건강과 활동, 자신과 가족, 물질과 정신,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삶이 필요하다. 이러한 태도는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강조해 온 중용(中庸)의 지혜와도 맞닿아 있다. 중용은 단순히 양쪽의 가운데에 서는 것이 아니라 지나침과 모자람을 경계하면서 그때그때의 형편과 상황에 맞는 적절함을 찾아가는 삶의 지혜이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세를 조절하듯 인생의 균형 또한 한 번 정해 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살피고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균형만 지킨다고 삶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발목이 우리 몸을 앞으로 움직이게 하듯 인생 후반기에도 새로운 걸음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삶의 걸음까지 멈출 필요는 없다. 속도를 조금 늦추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시편』 119편 105절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한다. 길을 오래 걷기 위해 중요한 것은 빠른 속도보다 바른 방향이다. 인생 후반기의 걸음은 남보다 앞서기 위한 경쟁의 걸음이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는 걸음이어야 한다. 고은층에게 필요한 것은 젊은 날과 같은 빠른 발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과 방향을 잃지 않는 발걸음이다.
삶의 브리지
가족과 이웃, 사회를 잇는 ‘소소익선’의 다리가 되다
몸의 여러 브리지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하나의 다리에 이르게 된다. 바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삶의 브리지’이다. 고은층이 살아온 긴 세월에는 성공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실패와 시행착오도 있었고, 기쁨과 함께 아픔도 있었다. 수많은 선택과 후회, 만남과 이별을 지나며 얻은 경험은 어떤 책에서도 그대로 배울 수 없는 삶의 자산이다. 그러나 경험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건네지고 다른 사람의 삶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지혜가 된다.
가족 안에서는 부모와 자녀를 연결하는 세대의 다리가 될 수 있다. 옛날이 무조건 좋았다고 말하기보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젊은 세대의 새로운 생각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웃과 지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랫동안 쌓아 온 인간관계와 경험을 활용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고, 갈등이 있을 때 양쪽의 말을 들어주며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또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필요한 사람이나 자원과 연결해 줄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가정과 공동체는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장소가 아니라 서로 배우며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 된다.
필자 역시 고은층으로 살아가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브리지 역할을 시도하고 지낸다. 필자는 이를 ‘소소익선의 브리지’라고 생각한다. 다리가 반드시 커야만 사람이 건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징검돌 하나도 필요한 자리에 놓이면 누군가의 발을 다음 자리로 안전하게 옮겨 줄 수 있다.
그 하나가 글쓰기이다. 필자는 『이성근 교수의 인생사색』과 『제주사색』, 그리고 ‘고은산책’을 통해 살아오며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글로 남기고 있다. 소수의 지인들과 생각을 나누고, 한 사람이라도 그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거나 새로운 생각을 얻는다면 글 또한 경험과 사람을 이어 주는 작은 브리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평생 교수직을 수행하며 쌓은 전문경험을 가능한 범위에서 사회에 되돌려 주는 일이다. 기회가 많지는 않더라도 필요한 곳에서 경험을 나누고 의견을 보태는 것 또한 인생 후반기에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다. 최근에는 지역 공군 비행단의 민관군 갈등조정협의체 의장을 맡아 작은 연결 하나를 경험했다. 항공훈련으로 발생하는 소음은 군에게는 불가피한 훈련의 과정일 수 있지만 시민에게는 일상의 불편이 될 수 있다. 이에 훈련에 따른 소음 발생 가능성을 시민들에게 문자로 미리 알리는 방안을 회의안건으로 다루었고, 이를 처음 시행하게 되었다. 큰 제도나 거창한 정책은 아니지만 군의 필요와 시민의 일상 사이에 작은 소통의 다리 하나를 놓았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필자는 브리지의 가치는 그 크기보다 ‘무엇과 무엇을 이어 주었는가’에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글은 경험과 사람을 이어 주고, 전문성은 사회의 문제와 해결 가능성을 이어 주며, 조정과 소통은 서로 다른 입장 사이를 이어 준다. 고은층의 역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회에 내놓거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살아오며 얻은 경험과 지혜 가운데 작은 하나를 필요한 곳에 건네면 된다.
징검다리는 자신이 목적지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건너갈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를 내어 줄 뿐이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에는 “내가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보다 “내가 무엇을 이어 줄 것인가”, “내 이름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보다 “누군가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어떤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작은 연결들이 모이면 가족과 이웃을 잇고, 세대를 잇고, 마침내 사회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다리가 된다.
맺음글
잘 살아온 인생에서 잘 이어 주는 인생으로
우리 몸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움직인다. 목이 머리를 지탱하며 몸과 이어지고, 어깨와 손목이 맡은 일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며, 고관절이 몸의 중심을 잡고 발목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느 하나의 연결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삶 또한 그러하다. 생각은 행동과 연결되어야 하고, 경험은 지혜로 이어져야 하며, 책임은 나눔과 공헌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나의 삶은 가족과 연결되고, 가족은 이웃과 이어지며, 오늘의 세대는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잠언』 4장 23절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가르친다. 몸의 관절을 돌보듯 살아가며 맺어 온 관계와 마음의 연결도 잘 돌보아야 한다. 관계가 끊어지면 삶은 외로워지고, 세대의 연결이 끊어지면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지혜도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고은층에게 인생 후반기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만이 아니다. 그 보다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지혜를 누구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이어 줄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젊은 날에는 누군가가 놓아준 다리를 건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건널 수 있도록 작은 다리 하나를 놓아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녀에게는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고, 후배에게는 경험을 건네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이웃에게는 관계를 이어 주는 다리가 되고, 사회에서는 갈등과 이해 사이를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는 것이다. 그 다리는 반드시 크고 화려할 필요가 없다. 글 한 편일 수도 있고,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으며, 필요한 사람을 서로 이어 주는 일일 수도 있다. 평생 쌓은 전문성을 작은 사회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데 보태는 것 또한 훌륭한 다리가 된다.
좋은 다리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사람을 건너가게 한다. 필자는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잘 살아온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잘 이어 주는 삶, 많이 가진 삶보다 가진 것을 필요한 곳에 연결해 주는 삶이다. 앞장서기보다 누군가가 건너갈 수 있도록 작은 발판 하나를 놓아주는 삶이다.
크지 않아도 좋다. 많지 않아도 좋다. 필요한 곳에 놓인 작은 징검돌 하나면 충분할 때가 있다. 그러한 ‘소소익선의 브리지’를 하나씩 놓아 가는 것이 고은층이 인생 후반기에 감당할 수 있는 뜻깊은 역할이다. 오래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에 남길 수 있는 귀한 유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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