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층의 팔굽혀펴기, 완전한 하나보다 나아지는 하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팔굽혀펴기 하나가 던진 질문
필자는 요즘 집 가까운 헬스장에서 동호인 두 사람과 함께 운동하고 있다. 세 사람이 오후 3시에 만나 몸을 움직이는데, 운동 수준은 서로 다르다. 한 사람은 고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중견이며, 필자는 아직 초보에 가깝다. 우리는 세 단계에 걸쳐 30∼35가지의 스트레칭 동작을 함께하고, 여기에 팔굽혀펴기를 추가해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에게 팔굽혀펴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가슴을 충분히 낮추고 몸을 곧게 유지하는 정식 자세로는 한 번을 온전히 해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우선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낮추고, 조금씩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횟수를 늘려 가고자 했다. 비록 처음에는 불완전하더라도 단계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대로 된 팔굽혀펴기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수의 생각은 달랐다. 불완전한 자세로 여러 번 반복하기보다 처음부터 정식 자세로 한 번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필자는 그의 말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올바른 자세를 익히지 않은 채 횟수만 늘리면 잘못된 동작이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은 질문 하나가 생겼다. 처음부터 완전한 하나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불완전하더라도 가능한 단계에서 시작해 조금씩 완성도를 높여 가야 하는가? 팔굽혀펴기 하나를 두고 나눈 생각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이는 운동을 넘어 사람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기도 했다.
완전한 하나와 불완전한 시작
고수의 방식은 원칙을 중시한다. 처음부터 정확한 자세와 방법을 익히고, 정해진 기준에 맞게 운동해야 한다는 접근이다. 목표가 분명하고 기준이 엄격하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무엇보다 운동의 효과를 높이고 잘못된 자세에서 비롯될 수 있는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필자가 택한 방식은 점진적 또는 점증적 접근이다. 둘 다 비슷한 접근이다.
점진적 접근은 쉬운 단계에서 시작해 차츰 어려운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며, 점증적 접근은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횟수와 강도를 조금씩 높여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벽을 짚고 밀거나 높은 지지대에 손을 대고 시작할 수 있다. 이후 몸의 힘과 균형이 나아지면 무릎을 대고 하고, 마침내 정식 자세의 팔굽혀펴기에 도전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장점은 시작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시도하기도 전에 주저하거나 포기하기 쉽다. 그러나 지금 할 수 있는 동작부터 시작하면 작은 변화가 보인다. 어제보다 몸을 조금 더 낮추고, 지난주보다 한 번 더 해내면서 자신감과 만족감도 생긴다. 작은 성취가 다음 도전을 부르고, 반복되는 도전이 지속할 힘을 만들어 준다.
그렇다고 원칙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정확한 자세는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기준이다. 다만 그 기준에 이르는 길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원칙이 목적지라면 점진은 그곳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원칙 없는 점진은 방향을 잃기 쉽고, 점진 없는 원칙은 출발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완전한 하나를 지향하되, 오늘의 불완전한 시작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운전 연습에서 배운 두 가지 가르침
팔굽혀펴기를 배우면서 오래전 미국 시절의 일이 떠올랐다. 1980년대 초반, 필자는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두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운전을 연습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지도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한 사람은 처음부터 정확한 운전 방법을 가르쳤다. 운전 자세부터 출발과 정지, 차선 유지와 방향 전환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와 원칙을 하나씩 꼼꼼하게 짚어 주었다. 작은 실수도 바로잡으며 정확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을 중시했다.
다른 한 사람은 먼저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데 중점을 두었다. 처음부터 모든 동작을 완벽하게 익히도록 요구하기보다 자동차와 도로 환경에 차츰 익숙해지도록 했다. 어느 정도 속도를 내어 직접 달려 보게 함으로써 자동차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조작 경험을 쌓아 자신감을 얻은 뒤 필요한 운전 요령을 차례로 가르쳐 주었다.
당시 필자는 두 사람의 접근방식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 사람은 원칙과 정확성을 앞세웠고, 다른 사람은 경험과 자신감을 먼저 키워 주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어느 한쪽만 옳았던 것은 아니다. 두려움을 줄여야 운전을 시작할 수 있고, 정확한 방법을 익혀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첫 번째 사람에게서는 원칙을 배웠고, 두 번째 사람에게서는 시작할 용기를 배웠다.
팔굽혀펴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올바른 동작을 아는 것과 그 동작에 도전할 자신감을 갖는 것은 함께 필요하다. 원칙은 배움의 기준을 세우고, 점진은 배움을 지속하게 한다.
계획이론에서 찾은 점진의 지혜
필자는 대학에서 평생 계획이론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계획이론에도 오늘의 팔굽혀펴기 논쟁과 닮은 두 가지 접근방법이 있다. 하나는 종합적 합리주의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부분점진적 접근이다.
종합적 합리주의적 접근은 먼저 전체적인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가능한 대안과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하려 한다. 전체적 합리성과 최적의 대안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정확한 자세로 팔굽혀펴기를 해야 한다는 고수의 생각과 통한다.
부분점진적 접근은 인간의 정보와 능력, 시간과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모든 조건을 한꺼번에 파악해 최적의 결정을 내리기보다 현재 가능한 범위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를 살피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한 번에 완전한 해답을 찾기보다 작은 개선을 거듭해 더 나은 상태에 가까이 가는 방식이다.
필자는 살아오는 동안 대체로 이러한 점진적 개선의 방식을 선호해 왔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기보다 우선 가능한 일부터 시작했다. 실천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그때그때 고치고 보완해 왔다. 그것은 원칙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현실의 조건 속에서 원칙에 가까이 가는 방법이었다.
계획에서도 큰 비전과 올바른 방향은 필요하다. 그러나 비전만으로 현실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계획이 있어야 하고, 그 결과를 살펴 다음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팔굽혀펴기의 한 동작에도 목표 설정, 단계적 실행, 점검과 개선이라는 계획의 원리가 담겨 있는 셈이다.
고은층의 삶, 조금씩 더 나아가기
고은층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지혜와 경험을 쌓았지만, 신체적으로는 젊은 시절과 다른 한계와 제약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체력과 유연성, 균형감각과 회복력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수준을 그대로 따라가거나 처음부터 무리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고은층의 팔굽혀펴기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자세를 기본 원칙으로 삼되, 자신의 능력에 맞는 단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횟수를 늘리는 데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자세와 호흡, 몸의 반응도 함께 살펴야 한다. 통증이나 부담이 느껴질 때는 멈추고 운동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고은층의 운동은 남과 겨루는 기록 경쟁이 아니라 어제의 자신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점진 또는 점증의 원리는 운동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기를 배우는 일, 글을 쓰는 일,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일, 여행을 시작하는 일, 사회에 봉사하는 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처음부터 거창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마음이 앞서거나 쉽게 지칠 수 있다. 그러나 하루에 한 가지를 배우고, 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며, 작은 역할 하나를 기꺼이 맡는다면 삶의 범위는 조금씩 넓어진다.
고은층에게 작은 실천은 결코 작은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안정감을 준다. 조금씩 나아지는 경험은 자신감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얻는 성취는 일상의 만족감을 높인다. 중요한 것은 빠르게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일이다.
맺음글
원칙은 방향이고, 점진은 길이다
정식 자세의 팔굽혀펴기 한 번을 제대로 하는 것은 여전히 필자의 목표다. 그러나 지금 당장 완전한 한 번을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도전을 멈출 생각은 없다. 오늘 할 수 있는 동작에서 시작해 몸을 조금 더 낮추고, 자세를 조금 더 바로잡으며, 어제보다 한 번 더 시도할 것이다.
고수의 원칙론과 필자의 점진론은 서로 대립하는 방식이 아니다. 원칙론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점진론은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출발할 것인지를 알려 준다. 원칙은 방향이고, 점진은 길이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시작은 지속으로, 지속은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은층의 삶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온 세월이 길다고 해서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받아들이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완전한 한 번을 목표로 삼되, 오늘의 불완전한 한 번에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작은 성공을 쌓아 더 나은 자신에게 다가가야 한다. 필자는 그것이 고은층에게 필요한 점진 또는 점증의 지혜라고 믿는다.
팔굽혀펴기 한 번은 작아 보인다. 그러나 그 한 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에는 고은층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완전함은 기다렸다가 시작하는 조건이 아니라, 시작하고 지속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목표이다.



사진 1은 비 온 뒤의 금호강 풍경, 사진 2는 김미예 한지작가의 목단꽃 한지그림, 사진 3은 제드피트니스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필자의 모습이다. 2026년 8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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