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을 잃어도 다시 길을 찾는다: 고은층의 삶에서 배운 길의 지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영화 한 장면에서 삶의 길을 생각하다
지난 토요일 밤 교육방송 명화극장에서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았다. 글이 막혀 답답해하던 젊은 셰익스피어가 점성술과 상담을 겸하는 닥터 모스를 찾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은 길을 가다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수도 있고, 주변 사람에게 길을 물을 수도 있다. 때로는 잠시 머물러 새로운 길이 보이기를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오래전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선택과목으로 들었던 경제학과 송 교수님의 강의에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나 연구자가 학문의 길을 오래가려면 하나의 주전공만 붙들고 있기보다 주전공과 더불어 두 개 정도의 부전공을 가지는 것이 좋다는 말씀이었다. 주전공 연구가 막히면 잠시 다른 분야를 연구하다가 어느 순간 막혔던 문제가 풀리면 다시 주전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한쪽의 연구가 막혀도 학문의 길 자체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는 연구자의 공부 방법으로 들었지만,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학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했다. 어떤 때는 스스로 길을 정해 걸었고, 어떤 때는 부모나 스승, 조직과 사회가 정해 놓은 길을 걸었다. 때로는 남들이 가는 길이 옳겠거니 하며 별생각 없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기도 했다. 이제 고은층(高恩層)이 되어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한 번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다시 길을 찾느냐에 있었던 것 같다.
길은 언제나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길이란 이미 나 있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골에서 눈이 많이 내린 날 길을 나서면 어른들은 낮은 곳보다 높은 곳을 살펴 걸으라고 했다. 바람이 불면 눈이 낮은 곳부터 깊게 쌓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이 있으면 그 자국을 따라 걷기도 했다. 눈으로 길이 잘 보이지 않아도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다.
인생에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먼저 살아간 부모와 스승의 발자국을 따라 배우고, 앞서간 학자들의 연구를 읽으며 학문의 길을 찾았다. 남의 길을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처음 걷는 사람에게 앞사람의 발자국만큼 좋은 이정표도 드물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길을 익혀 가는 과정이다.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의 발자국만 밟으며 살 수는 없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왜 그곳으로 가려하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요즈음 즐기는 파크골프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낀다. 처음 가는 파크골프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공을 쳐 한쪽의 잔디가 닳거나 흙이 드러난 곳을 보면 대강의 동선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공략은 지형에 따라 달라진다. 경사진 곳에서는 높은 쪽과 낮은 쪽을 살펴야 하고, 평지에서도 물이 흐르는 방향을 보면 지형의 기울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홀을 공략하더라도 사람의 힘과 기술, 구질과 선호에 따라 선택하는 길은 달라진다.
산도 마찬가지다.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은 같은 길이어도 몸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다르다. 결국 길은 지형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다르며, 때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길 또한 그러하다. 남에게 좋은 길이라고 반드시 나에게도 좋은 길인 것은 아니다. 젊은 날 옳았던 길이 지금도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길이 의심스러우면 멈추고 돌아본다
1970년 학창 시절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던 때가 생각난다.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어느 순간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내려가면 더 빨리 갈 수도 있었지만, 의심을 품은 채 계속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발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와 길이 갈라진 곳에서 다시 방향을 살폈다.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이었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길이 의심스러울 때 되돌아가는 것은 후퇴가 아니다. 더 멀리 잘못 가기 전에 돌아와 다시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가보자’며 잘못된 길을 고집한다. 이미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되돌아가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산에서는 잘못 든 길을 오래 갈수록 위험해진다. 인생에서도 잘못된 선택을 오래 붙들수록 되돌아오는 데 더 많은 대가가 따른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렌스 신부는 서두르는 로미오에게 말한다. “Wisely and slow. They stumble that run fast.” 현명하게, 그리고 천천히 가라. 서둘러 달리는 사람은 넘어지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동양의 지혜로 옮겨 보면 『논어』 「자로」의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 곧 너무 빨리 이루려 하면 오히려 목적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젊은 시절에는 빨리 가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남보다 먼저 가고 더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어느 길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는 빨리 가는 것보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먼저다. 모르면 묻고, 의심스러우면 멈추고, 잘못 들었다면 돌아올 줄 알아야 한다. 돌아선다고 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모두 헛된 것도 아니다. 잘못 든 길도 다음 길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한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걸어본다
대학원 시절 송 교수님의 말씀이 세월이 흐른 뒤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 길이 막혔다고 모든 길이 막힌 것은 아니다. 주전공 연구가 풀리지 않을 때 부전공 연구를 하듯이, 한 일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다 보면 뜻밖의 곳에서 답을 얻기도 한다.
글을 쓰다가 문장이 막히면 억지로 책상 앞에 붙들려 있기보다 밖으로 나가 걷는다. 산책을 하다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파크골프를 하다가 사람들과 나눈 말 한마디에서 글감이 생기기도 한다. 책에서 찾지 못했던 답을 사람에게서 얻고, 사람에게서 얻지 못한 답을 자연에서 얻기도 한다. 한 길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 반드시 방황은 아니다. 때로는 우회가 또 다른 전진이 된다.
그래서 길을 잃었을 때 나는 세 가지를 생각한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고,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잠시 기다려 보는 것이다. 돌아본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답을 찾는 것이고, 묻는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조급하게 답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기다린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주전공의 문제가 풀릴 때까지 부전공을 공부하듯이 다른 길을 걸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길은 가만히 멈춰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길을 성실하게 걷는 동안 문득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맺음글
유유자작, 나의 길을 나의 보폭으로
긴 인생길을 돌아보면 언제나 내가 선택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부모와 스승이 일러준 길도 걸었고, 조직과 시대가 요구하는 길도 걸었다. 때로는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을 별 의심 없이 따라가기도 했다.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온 적도 있고,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 때도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길과 우회와 되돌아섬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 고은층이 되어서는 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남보다 빨리 가는 것보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아는 것이 중요해졌다. 다른 사람의 발자국을 참고하되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는다. 내가 오래 걸어온 길이라고 해서 끝까지 고집하지도 않는다. 필요하면 멈추고, 돌아보고, 묻고, 기다리며, 때로는 다른 길을 걸어본다.
내가 여러 글에서 말해 온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삶도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길을 스스로 정하되 서두르지 않고, 한 번 정한 길에 자신을 가두지도 않는 삶이다. 길이 달라지면 보폭도 달리하고, 때가 아니면 기다리며, 길을 잘못 들었다면 다시 돌아설 수 있는 여유와 주체성을 갖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중요했다. 이제는 어디로 가느냐, 그리고 왜 그 길을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잠시 멈추어도 좋다. 잘못 들었다면 돌아가도 좋고, 한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걸어도 좋다. 길을 잃었다고 인생까지 잃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길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이 정해 준 길을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내가 갈 길을 스스로 살피며 걷고 싶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않고, 고집하지 않되 중심을 잃지 않는 길이다.
나의 길을, 나의 보폭으로 걷는다.
길을 잃으면 다시 찾고,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살피면서 그렇게 걸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싶은 고은층의 유유자작이다.
참고자료
· John Madden 감독, Shakespeare in Love, 1998. 각본 Marc Norman·Tom Stoppard.
· William Shakespeare, Romeo and Juliet, Act 2, Scene 3: “Wisely and slow. They stumble that run fast.”
· 『논어(論語)』 「자로(子路)」 제17장: “欲速則不達.”



사진. 정상오 박사 주관으로 사공클럽 회원들과 함께 찾은 대구 동구 불로파크골프장 전경. 2026. 9. 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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