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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에서 조연으로: 시래기에서 생각한 고은층의 자리"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시래기에서 문득 고은층을 생각하다


오늘 문득 자연인의 삶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가 시래기가 나오는 장면에 눈길이 멈췄다. 시래기는 화려한 음식재료가 아니다. 고기나 생선처럼 밥상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러나 된장국에 들어가고 찌개와 나물이 되어 밥상에 오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햇볕과 바람에 오래 말리고 다시 푹 삶아낸 시래기에는 다른 재료가 쉽게 대신할 수 없는 구수하고 깊은 맛이 있다.

생각해 보면 음식에는 앞에 드러나는 재료가 있는가 하면 전체의 맛을 살려주는 재료도 있다. 마늘과 고추, 된장과 참기름도 대개 접시 한가운데 놓이는 주재료는 아니지만, 빠지고 나면 음식의 맛이 허전하다.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제 몫을 하는 존재들이다.

문득 사람의 삶도 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과 중년에는 직장과 조직, 가정과 사회의 앞자리에서 일을 이끌며 살아왔다면, 고은층(高恩層)이 되면서 역할과 자리도 조금씩 달라진다. 앞에서 이끄는 때가 있었다면 이제는 뒤에서 받쳐주고, 자신의 경험을 다음 사람에게 보태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삶의 가치와 쓰임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물러서고, 어디에서 다시 자신의 몫을 보탤 것인가가 고은층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삶의 과제일지 모른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자리는 달라져도 쓰임은 남는다


세상은 대체로 주연에게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주연배우가 먼저 알려지고, 방송에서는 화면에 등장하는 진행자가 주목받는다. 그러나 한 편의 방송 뒤에는 작가와 촬영자, 편집자와 수많은 제작진이 있다. 연극도 무대 위의 배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본을 쓰고 무대를 만들며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함께해야 하나의 작품이 이루어진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누구나 언제까지나 앞자리에만 서 있을 수는 없다. 봄이 여름으로, 여름이 가을로 옮겨가듯 사람의 자리와 역할도 세월에 따라 달라진다. 고은층이 되어 사회의 중심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것은 가치의 상실이라기보다 삶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가깝다.
문제는 달라진 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나간 역할을 계속 붙잡으려 할 때 생긴다. 새로운 세대가 앞에 설 때가 되었는데도 자신이 계속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순환이 어려워진다. 고은층에게 더 중요한 것은 옛자리를 되찾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새롭게 찾는 일이다.

나는 그래서 ‘주연에서 조연으로’의 변화를 후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할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앞에서 직접 이끌던 사람은 뒤에서 경험을 보태고, 모든 일을 자신이 결정하던 사람은 필요한 순간에 조언을 건넬 수 있다. 자리는 조금 달라져도 삶의 쓰임은 여전히 남는다.

경험에서 지혜로
오래 산 세월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

젊은 날에는 활력과 실행력이 중요했다. 많이 움직이고, 앞장서고, 직접 만들고 성취하는 일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고은층이 되면 삶의 무게중심도 조금 달라진다. 빠르게 움직이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앞에서 끌기보다 뒤에서 지켜보며 필요한 순간에 힘을 보태는 일이 자연스러워진다.
몸의 힘은 예전 같지 않을 수 있어도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판단은 또 다른 자산이 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언제 나서야 하고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은 긴 세월 속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옛말에 노마지지(老馬之智)라고 했다. 늙은 말도 오랜 경험으로 길을 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지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경험을 돌아보고 성공과 실패를 성찰하며, 거기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나눌 때 비로소 세월은 지혜가 된다.
고은층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을 대신하여 다시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길을 더 잘 갈 수 있도록 경험을 보태는 것이다. 지시하기보다 조언하고, 경쟁하기보다 지원하며,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기보다 새로운 세대의 생각과 방식을 존중하는 일이다.

시래기가 음식의 주재료는 아니어도 한 그릇의 깊은 맛을 더하듯, 고은층의 경험과 지혜도 가족과 사회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의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자신이 가진 것을 알맞게 보태는 것, 그것 역시 인생 후반기에 누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역할이다.

물러설 때와 나설 때
억지로 하지도, 억지로 피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고은층은 언제나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이 주어졌는데도 “나는 이제 은퇴했으니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문을 닫을 필요는 없다. 건강이 허락하고 자신의 경험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다시 역할을 맡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정년 이후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원칙도 비교적 단순하다.
억지로 하려고 하지도 않고, 억지로 안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떤 기회가 주어지면 먼저 생각해 본다. 내가 할 만한 일인지, 내가 가진 경험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그렇다면 기꺼이 맡을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라면 한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특히 젊은 사람에게 돌아갈 기회와 자리를 놓고 굳이 경합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맡음으로써 다음 세대가 경험할 기회가 줄어든다면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오랜 경험이 꼭 필요하고 내가 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면 나이를 이유로 무조건 피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주연인가 조연인가’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필요한가, 그리고 내가 맡는 일이 다른 사람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고은층의 품격은 무조건 나서는 데에도, 무조건 물러나는 데에도 있지 않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고, 자신의 역할과 때를 헤아리는 데 있다.

맺음글
시래기처럼 깊은 맛을 남기는 삶


다시 시래기를 생각한다. 푸른 무청이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말라가면 처음의 싱싱한 모습은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잘 말린 시래기를 다시 불리고 삶으면 생무청에서는 얻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깊은 맛이 생겨난다. 세월이 가져가는 것도 있지만 세월이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도 있다.

사람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젊은 날의 활력은 조금 줄어들고 세상의 중심에서 한 걸음 비켜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경험과 성찰, 여유와 지혜가 들어설 수 있다. 앞에서 끌어가는 힘은 줄어들어도 뒤에서 받쳐주는 힘은 오히려 깊어질 수 있다.
고은층에게 필요한 것은 지나간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찾아 나서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돌아갈 자리는 기꺼이 내어주고, 자신이 꼭 필요한 곳에서는 경험과 지혜를 보태는 일이다. 억지로 주연이 되려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까지 애써 피하지도 않는 것이다.

주연의 시간이 지나갔다고 삶의 역할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역할의 모양이 달라질 뿐이다.
시래기는 밥상의 한가운데 놓이지 않아도 한 그릇의 맛을 깊게 만든다. 고은층의 삶도 그러하면 좋겠다. 앞에 서지 않아도 든든하고,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필요한 존재, 세월이 흐를수록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 주변의 삶에 깊은 맛을 보태는 존재 말이다.

어쩌면 고은층의 아름다움은 다시 주연이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자리에서도 자신의 쓰임을 알고 조용히 제 몫을 다하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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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이 건강한 삶에 이르는 열 길(十道): 매일의 작은 실천이 이룬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건강은 일상의 작은 실천에 있다


고은층(高恩層)이 되면서 건강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또 자주 하게 된다. 누구를 만나도 건강이 화제가 되고, 헤어질 때면 “건강하십시오”라는 인사를 나눈다. 오래 사는 것만큼이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꾸려 가는 일이 중요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고은산책」에서 웃음과 감사, 관계와 운동, 자연과 걷기, 놀이와 파크골프, 삶의 의미와 유유자작에 관해 여러 차례 생각을 나누었다. 돌이켜 보면 이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결국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과 관계를 이어 가며, 자신의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여러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동안의 생각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열 가지로 묶어 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고은층이 건강한 삶에 이르는 열 길(十道)’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길은 특별한 건강법이나 새로운 처방이 아니다. 오늘도 걸어 볼 수 있고 내일 다시 되풀이할 수 있는 작은 생활의 길이다.

마음을 여는 세 길
웃고, 감사하고, 말한다


첫째 길은 웃는 것이다.

때로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한 번 웃어 본다. 혼자 있을 때도 웃어 보고, 사람을 만나면 먼저 웃으며 인사한다.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에 미소를 한번 지어 보는 것도 좋다. 나이가 들면 얼굴의 주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얼굴에 어떤 표정을 담고 살아갈지는 어느 정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웃음에 대해서는 그 효용을 길게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웃음이 좋다’고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 웃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고 의식적이어도 괜찮다. 좋은 습관은 반복할수록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둘째 길은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는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할 일이 잘 보이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작은 것부터 찾아보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고, 오늘 갈 곳과 할 일이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감사는 없는 것을 헤아리기보다 지금 내게 있는 것을 바라보게 한다. 하루에 한두 가지라도 감사할 일을 찾아가다 보면 삶을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진다.

셋째 길은 말하는 것이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가족과 대화하고,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책에서 읽은 것을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는다. 혼자 있을 때 좋은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것도 좋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기도문이나 익숙한 신앙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도 좋다.

말하고 대화한다는 것은 입만 움직이는 일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기억을 되살리며 세상과의 연결을 이어 가는 일이다. 생활 반경이 좁아질수록 대화의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먼저 전화를 걸고, 먼저 묻고, 먼저 말을 건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몸과 일상을 깨우는 세 길
노래하고, 놀이하며, 걷는다


넷째 길은 노래하는 것이다.

잘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좋아하는 노래면 된다. 혼자 따라 불러도 좋고 여러 사람과 함께 부르면 더욱 즐겁다. 젊은 시절 좋아했던 노래 한 곡을 부르다 보면 오래전 사람과 장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노래는 현재의 나와 지난날의 나를 이어 주는 작은 다리가 되기도 한다.

평소보다 조금 큰 목소리를 내어 보는 것도 좋다. 말하고 노래하면서 목소리를 쓰고 감정을 표현하며 잠시라도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이다. 한 곡의 노래가 하루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그 순간의 기분과 분위기를 밝게 만들 수는 있다.

다섯째 길은 놀이하는 것이다.

고은층에게 놀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파크골프를 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텃밭을 가꾸는 것도 놀이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손과 머리와 몸을 계속 사용하는 데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인생 후반에는 일을 놀이처럼 하고 놀이에서도 배움과 보람을 찾을 수 있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얼마나 즐겁게 오래 계속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여섯째 길은 걷는 것이다.

길이 있으면 걷고, 가능하면 자연과 가까이서 걷는다. 빠른 속도나 먼 거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몸과 형편에 맞게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걷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만난다. 봄꽃이 피고 여름 나무가 짙어지며, 가을잎이 물들고 겨울 가지가 드러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걷기는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면서 주변을 바라보고 생각을 정돈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 역시 산책과 파크골프를 하면서 여러 생각을 얻는다. 그러나 걷기의 의미를 굳이 철학적으로 확대하지 않아도 좋다.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오늘도 몸을 한 번 더 움직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섯째 길의 실천은 충분하다.

삶을 가꾸는 두 길
키우고, 의미를 가진다


일곱째 길은 키우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돌보고 키울 때 관심을 자기 밖으로 넓히게 된다. 작은 화분에 물을 주고, 텃밭의 채소를 돌보고,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다. 배움이나 취미 하나를 정하여 오랫동안 익히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키우는 삶’이다.

키운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결과를 얻으려 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이다. 어제와 오늘의 작은 변화를 살펴보는 동안 생활에도 일정한 리듬이 생긴다. 무엇인가 돌볼 것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아직 해야 할 일과 역할이 있다는 뜻이 된다.

여덟째 길은 의미(意味)를 가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직장과 가정, 사회적 역할이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은퇴하고 세월이 흐르면 그런 역할 가운데 일부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이때부터는 누가 정해 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 할 때가 많아진다.

그 의미는 우리 곁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후배에게 경험 하나를 전하는 것도 의미이다. 작은 봉사를 하고 배우며 글을 쓰는 것도 의미이다. 친구의 안부를 묻는 일도 결코 작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일이 하나쯤 있으면 좋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하루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두 길
잘 먹고, 쉬며 비운다


아홉째 길은 먹는 것이다.

먹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이면서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할 일이다. 나는 이를 정식(定食)·소식(少食)·서식(徐食)이라는 세 가지 ‘식’으로 생각해 본다.

정식은 가능한 한 일정한 시간에 식사하는 것이다. 소식은 무조건 적게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과식을 피하고 자신의 몸에 알맞은 양을 먹는 것이다. 서식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먹는 것이다.

특정한 음식 하나가 건강 전체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생활 여건에 맞추어 균형 있게 먹고,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에 식사를 즐겁게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사람과 편안하게 나누는 한 끼는 음식을 먹는 시간을 넘어 정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열째 길은 비우고 쉬는 것이다.

아홉째 길이 잘 먹는 것이라면, 열째 길은 잘 비우고 잘 쉬는 것이다. 몸은 받아들이는 것만큼 내보내는 일도 중요하다. 먹은 것을 잘 소화하고 내보내며 몸의 순환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일은 특히 고은층의 건강에서 중요하다. 잘 먹고 잘 내보내는  것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 리듬이다.

비움에는 휴식과 회복도 포함된다. 몸이 피곤하면 쉬고, 잠이 부족하면 충분히 자야  한다.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다시 움직일 힘을 채우는 시간이다.

생각과 마음의 비움도 필요하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와 서운함, 지나친 걱정과 욕심을 오래 붙들기보다 조금씩 내려놓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덜 중요한 것을 덜어 내어 더 소중한 것을 남기는 선택이다. 영정치원(寧靜致遠), 곧 마음이 고요해야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뜻처럼, 잘 비우고 잘 쉬며 몸과 마음에 여백을 만드는 것도 고은층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중요한 길이다.

맺음글
열 길은 아는 길이 아니라 걷는 길이다


웃고, 감사하고, 말한다. 노래하고, 놀고, 걷는다. 무엇인가를 키우고 삶의 의미를 가지며, 알맞게 먹고 쉬면서 지나친 것은 덜어 낸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전혀 낯선 일은 아니다.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건강한 삶에서 중요한 것은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다. 열 길을 모두 한꺼번에 걸을 필요도 없다. 오늘 한 번 더 웃고, 조금 더 걷고,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작은 실천이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쌓여 생활이 된다.

고은층의 건강은 젊음을 되돌리는 데 있지 않다. 지금 가진 몸과 마음을 잘 돌보며 자신의 하루를 스스로 꾸려 가는 데 있다. 내가 말해 온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삶도 결국 이러한 평범한 하루의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다. 건강에 단번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어도, 오늘부터 한 걸음씩 걸어갈 열 길은 있다.

공자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고 했다. 여기에 실천의 뜻을 더한다면,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좋아하며, 즐기면서 몸소 행할 때 비로소 삶의 길이 된다. 고은층의 건강한 삶에 이르는 열 길도 결국 아는 길이 아니라 오늘 하루 직접 걷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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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커케’에 담긴 작은딸의 마음

이성근

추석날 고요한 오후 나절
문득 찾아든 녹커케 향기
속 깊은 작은딸의 따뜻한 정
'사운드 오브 뮤직' 들으며
우리 부부는 둥근 보름달을 기다린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추석날 오후, 서울에 사는 둘째 딸이 녹차와 커피, 그리고 케이크, 이른바 ‘녹커케’를 보내왔다. 우리 부부는 거실에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며 ‘녹커케’를 음미했다. 케이크의 향과 맛보다 더 깊이 다가온 것은 명절을 맞아 부모를 생각하는 작은딸의 속 깊은 마음이었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우리는 그 따뜻한 정을 느끼며 저녁 하늘에 은은하게 떠오를 둥근 보름달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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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손님에서 한 식구로: 고은층이 생각하는 새 가족 맞이"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추석 전날, 분주한 부엌을 보면서 가족을 생각하다


추석을 하루 앞둔 오늘, 집안이 아침부터 분주하다. 금년 여름 결혼한 큰딸과 사위가 온다고 아내는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부엌을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어릴 적부터 귀에 익도록 들어온 말들이 새삼 떠오른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다.
사위 사랑은 장모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
사위도 반자식이다."

한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었던 말들이다. 그러나 두 딸을 키우고 큰딸을 출가시킨 뒤, 실제로 사위를 맞는 장인이 되어 보니 그 말들이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 속에는 옛사람들의 가족관도 들어 있고, 자식의 배우자를 맞이하는 부모의 마음도 담겨 있다. 동시에 오늘의 가족관계에 비추어 새롭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도 있다.

고은층이 되어 새 가족을 맞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옛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을 오늘의 가족관계에 맞게 다시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백년손님이라는 오래된 말

예부터 사위를 ‘백년손님’ 또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고 했다. 한평생을 두고 소홀히 대할 수 없는 귀한 손님이라는 뜻이다. 딸의 남편이니 가족이면서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장모는 딸을 아끼는 마음만큼이나 자신의 딸과 평생을 살아갈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 사위에게 잘해 주는 마음 한편에는 결국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백년손님이라는 말에서 오늘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것은 ‘손님’이라는 거리감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인지 모른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하지 않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예의를 잊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한 번 더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뜻이 이 오래된 말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씨암탉 한 마리에 담긴 환대의 마음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는 말도 오래전부터 전해 온다. 지금은 닭 한 마리가 특별한 음식이 아니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사정이 달랐다. 특히 알을 낳는 씨암탉은 농가에서 계속 길러야 할 소중한 밑천이었다. 그런 씨암탉을 잡아 사위에게 내놓았다는 것은 음식 한 그릇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 찾아온 사람을 귀하게 생각한다는 마음을 가장 좋은 음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 아내가 사위가 온다고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옛날의 씨암탉이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씨암탉을 잡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는 사람을 기다리며 무엇을 먹일까 생각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하는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을 맞는 데에는 예나 지금이나 음식이 따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음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 음식에 담긴 마음이다. “당신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이 반갑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씨암탉 한 마리가 오랫동안 전해 온 가장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뜻일 것이다.

사위와 며느리를 달리 보던 가족의 문법

옛날에는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며느리는 평생 식구”라는 말도 흔히 했다. 며느리는 혼인을 하면 시가의 사람이 되고, 사위는 딸과 혼인해도 처가에서는 여전히 손님처럼 대하던 당시의 가족질서가 이 말에 그대로 비쳐 있다.
‘사위 사랑은 장모,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도 있다. 조금은 해학적인 표현이지만 새로 가족이 된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잘 대해 주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을 바라보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 사위와 며느리를 서로 다른 잣대로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위도 누군가가 귀하게 키운 아들이고, 며느리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다.

따라서 고은층이 된 부모 세대가 옛 가족문화에서 이어받아야 할 것은 서열이나 구별이 아니라 정과 예의라고 생각한다. 전통은 옛 모습을 그대로 되풀이할 때보다 그 안에 담긴 좋은 뜻을 오늘의 삶에 맞게 되살릴 때 더욱 가치가 있다.

새 가족은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관계

흔히 결혼하면 “새 식구가 들어왔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런 표현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우리 가족 안으로 단순히 ‘들어오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딸이 결혼하면 사위만 우리 가족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우리 딸도 사위의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새로운 가족이 된다. 한 사람만 어느 집안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양쪽 가족의 관계가 함께 넓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결혼은 한 사람이 한 집안으로 들어오는 일이라기보다 두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만든다는데  의미가 크다. 그로 인해 두 가족의 인연이 새롭게 이어지는 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그렇게 생각하면 새 가족을 맞는 부모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자녀 부부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다. 내 집의 방식이 익숙하다고 해서 그 방식을 새 가족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녀의 배우자를 내 자식과 비교하지 않는 일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생각을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지켜 주는 것도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지혜다.

고은층이 되면 삶의 경험은 많아진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는 것이 언제나 새로운 세대의 삶을 더 잘 안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 살아 얻은 지혜가 있다면 젊은 세대보다 더 많이 말하는 데 있지 않다. 때로는 기다려 주고 지켜봐 주는 데 있을 것이다. 필요할 때 조용히 손을 내밀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것도 지혜다.
가족관계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말보다 여백이 필요하다.

맺음글
귀하게 맞되 편안하게 품는 가족

오늘 큰딸과 사위가 온다. 아내는 여전히 부엌에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백년손님과 씨암탉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결국 한 가지 생각에 이른다.

사위가 언제까지 손님이어야 할까?

처음에는 조금 어렵고 조심스러운 사이일 수 있다. 그러나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명절과 가족의 크고 작은 일을 함께하다 보면 ‘손님’이라는 말은 조금씩 옅어지고, 그 자리에 ‘식구’라는 말이 들어설 것이다.
그래도 나는 ‘백년손님’이라는 옛말을 완전히 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 말에 담긴 좋은 뜻 하나만은 오래 남겨 두고 싶다. 백년손님처럼 귀하게 여기되 손님처럼 거리를 두지는 않는다.  한 식구처럼 가까이 지내되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오늘의 고은층이 새 가족을 맞는 바람직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가족은 혈연과 혼인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어 주고 다른 점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정을 쌓아 가면서 비로소 가족이 되어 간다. 큰딸의 결혼으로 우리 집에도 새로운 인연 하나가 더해졌다. 이제 나는 ‘사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우리 가족의 관계가 하나 더 넓어졌다고 생각하고 싶다.
추석을 앞둔 오늘, 음식을 마련하며 새 식구를 기다리는 집안 풍경 속에서 새삼 깨닫는다.
가족을 맞는다는 것은 한 사람을 우리에게 맞추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의 자리를 조금 넓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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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高秋)의 또 다른 풍경: 고은층은 자연을 닮아 있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고추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다


나는 그동안 여러 글에서 청춘(靑春)에 이어지는 인생 후반의 시간을 고추(高秋)라고 불러왔다. 청춘은 젊음의 한때를 상징한다. 고추는 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 맞이하는 또 하나의 인생 시절이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소개하였다.

요즘 내가 새삼 생각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고추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무엇을 닮아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녁의 노을과 푸른 하늘의 달, 가을의 단풍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 익은 된장과 잘 익은 수박, 붉은 대추와 고추, 감초에서도 저마다 다른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과 우리 곁의 익숙한 것들이 고은층(高恩層)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었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자연을 오래 바라보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꽃은 피어야 할 때 피고 열매는 익어야 할 때 익는다. 비바람이 분다고 계절이 가던 길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숲에는 저마다의 질서가 생긴다. 수많은 나무와 풀, 생명이 제 모습대로 살아가면서도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자기 조직화의 모습이다.

고은층의 삶도 이와 닮으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 보니 세상일 가운데 내 뜻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았다. 사람도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세상 역시 내 생각에 맞추어 돌아가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그것을 바꾸려고 애썼다면, 이제는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구별하는 지혜가 더 필요하다.

그렇다고 수용이 체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관용 또한 무원칙을 의미하지 않는다. 견딜 것은 견디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가지는 흔들려도 뿌리는 땅속에 머무는 나무처럼 유연함과 중심을 함께 지니는 삶이다.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것만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일을 경험했기에 조금 더 기다릴 줄 알고, 여러 사람을 만났기에 다름을 조금 더 받아들인다. 어려움을 겪었기에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헤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월은 연륜이 된다.

지는 해와 차오르는 달을 닮는다

고은의 나는 저녁 무렵의 태양, 저녁노을을 좋아한다. 한낮처럼 강렬하지 않지만 일몰의 햇빛에는 부드러운 온기가 있다. 산과 들, 건물을 황금빛으로 감싸다가 요란하지 않게 서서히 모습을 감춘다. 고은층의 시간도 어느 면에서는 그 저녁노을을 닮았다. 직장과 조직의 시간표에 맞추어 분주하게 움직이던 때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줄어들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선택할 여지가 늘어난다. 빨리 가는 것보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러나 고은층을 지는 해에만 비유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맑은 날 푸른 하늘에 떠 있는 상현달을 바라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상현달은 아직 보름달이 아니다. 절반쯤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차오르고 있다. 이 모습 또한 내가 생각하는 고은층과 잘 어울린다.

살아온 날이 많다고 해서 사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새롭게 배울 것이 있고 고쳐야 할 습관이 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아직 해 보지 못한 일도 남아 있다. 몸의 시간은 저녁을 향해 가더라도 생각과 마음은 보일 듯 말 듯 하늘의 상현달과 닮아 있다. 그래서 고은층의 삶에는 정중동(靜中動)이 어울린다. 겉으로는 이전보다 조용해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움직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어제보다 조금 나은 자신을 만들어 간다.

저녁 해의 고요와 상현달의 차오름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지혜가 된다. 저녁 해는 내려놓을 때를 가르쳐 주고, 차오르는 달은 아직 고숙(高熟)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고은층에게는 물러날 줄 아는 여유와 계속 배우려는 마음이 함께 필요하다.

오래 익은 것에는 저마다의 맛이 있다

가을도 고은층과 닮은 점이 많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산과 들의 나뭇잎은 저마다 다른 빛깔로 물든다. 봄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움이라면 붉게 물든 단풍에는 뜨거운 여름을 지나온 뒤에야 나타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도 세월에 따라 아름다움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다. 젊은 날에는 생기와 활력이 돋보였다면 고은층의 아름다움은 고숙과 고품(高品)에서 배어 나온다.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 필요한 말을 따뜻하게 건네는 사람에게서 깊은 고품이 느껴진다.

오래 익은 된장도 생각난다. 된장은 시간을 건너뛰어 만들 수 없다. 기다리고 익어야 특유의 구수한 맛이 난다. 사람의 생각도 비슷하다. 오래 살았다고 저절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경험을 마음속에서 삭이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의 말에는 다른 맛이 생긴다. 그래서 고은층에게는 기다림과 조절, 절제가 중요하다. 아는 것을 모두 말할 필요도 없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나 곧바로 주장할 필요도 없다. 한마디 덜 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고, 조금 기다려 주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는 길일 때도 있다. 오래 익은 된장의 맛처럼 은근하게 배어 나오는 것이 좋다.

잘 익은 수박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본다. 겉만 보아서는 그 속을 알기 어렵지만, 갈라 보면 붉고 달고 시원한 속살이 드러난다. 고은층도 이처럼 겉모습보다 속마음이 깊고 따뜻하면 좋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과 정을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붉게 익은 대추도 그렇다. 시간이 흐르면서 겉에는 주름이 늘어나지만, 그 안에는 농익은 단맛이 깊이 배어 있다. 사람의 얼굴에 생긴 주름도 긴 세월을 살아온 흔적이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의 주름을 모두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의 모서리는 얼마든지 둥글게 다듬을 수 있다. 평소 인간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항상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려본다. 일상에서 갈등이 생기더라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해 본다. 그러면 얼굴의 주름에는 단순한 세월의 흔적을 넘어 삶의 온기와 깊이가 담길 것이다.

고추처럼 할 말은 하고 감초처럼 어울린다

이번에는 고추(高秋)가 아니라 밭에서 붉게 익어 가는 고추를 생각해 본다. 잘 익은 고추에는 은근한 단맛도 있고 매운맛도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맛이 고은층에게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모든 일에 “좋다” 하는 것이 어른의 관용은 아니다.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때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켜야 할 원칙과 기준이 있다면 관계가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필요한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다만 그 매운맛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말과 젊은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말은 삼가야 한다. 과거의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말은 자칫 아집과 편견으로 비치기 쉽다. 고추의 매운맛도 음식 전체의 맛을 살릴 만큼이면 충분하다. 지나치면 다른 맛을 모두 덮어 버린다.

그래서 고추 곁에는 감초를 놓아 보고 싶다. 우리는 여러 곳에 빠지지 않고 어울리며 제 역할을 하는 사람을 두고 ‘약방의 감초’라고 한다. 고은층의 역할도 때로 이와 닮았으면 한다. 자신이 언제나 주인공이 되기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준다. 부족한 곳을 메우며, 젊은 세대가 앞으로 나아갈 때 조용히 뒤를 받쳐 주는 것이다.

경험과 지혜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묻지 않았는데 앞서 가르치기보다 필요로 할 때 들려준다.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자신의 경험을 기꺼이 보태준다.
따라서 고추의 원칙과 감초의 조화가 함께해야 한다. 할 말을 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한다. 평소에는 따뜻하고 유연한 사람이 된다. 또한 중심은 지키되 그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재단하지 않아야 한다. 이들 모두가 내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어른다운 모습이다.

맺음글
자연을 닮아간다는 것

돌이켜보면 자연과 우리 곁의 익숙한 것들은 참 여러 모습으로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저녁 해는 물러날 줄 아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차오르는 달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배우고 고숙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가을 단풍은 계절에 따라 아름다움의 빛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래 익은 된장은 기다림과 깊이를, 수박은 속 깊고 담백한 마음을 나타낸다. 대추는 세월 속에서 익어가는 온정을 생각하게 한다. 고추에서는 필요한 원칙을 배우고, 감초에서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지혜를 배운다.

그러나 어느 하나만 닮아서는 부족하다. 늘 부드럽기만 하면 중심을 잃기 쉽고, 언제나 원칙만 앞세우면 사람을 잃을 수 있다. 고요하기만 하면 삶이 메마를 수 있고, 끊임없이 움직이기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어렵다. 자연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 다른 빛깔과 모습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고은층도 그러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한 가지 색깔만 강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맛과 빛깔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다. 받아들일 줄 알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고요하면서도 마음은 계속 움직인다. 속은 깊어지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필요할 때는 원칙을 말하되 대부분의 시간에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 준다.

그동안 나는 고추(高秋)를 인생의 한 시절로 생각해 왔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고추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나는 그 답의 하나를 자연을 닮아가는 삶에서 찾고 싶다.

"지는 해처럼 따뜻하게 물러날 줄 알고, 차오르는 달처럼 여전히 배우며 살아가는 삶이다. 오래 익은 열매처럼 생각은 깊어지고 마음은 넉넉해진다. 때로는 고추처럼 맵싸한 기개로 원칙을 지키되, 평소에는 감초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 주며 살아간다."

고은층의 고추(高秋)는 이미 완성된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긴 세월을 품고도 오늘을 새롭게 살아가며 조금씩 더 익어 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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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도 다시 길을 찾는다: 고은층의 삶에서 배운 길의 지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영화 한 장면에서 삶의 길을 생각하다


지난 토요일 밤 교육방송 명화극장에서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았다. 글이 막혀 답답해하던 젊은 셰익스피어가 점성술과 상담을 겸하는 닥터 모스를 찾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은 길을 가다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수도 있고, 주변 사람에게 길을 물을 수도 있다. 때로는 잠시 머물러 새로운 길이 보이기를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오래전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선택과목으로 들었던 경제학과 송 교수님의 강의에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나 연구자가 학문의 길을 오래가려면 하나의 주전공만 붙들고 있기보다 주전공과 더불어 두 개 정도의 부전공을 가지는 것이 좋다는 말씀이었다. 주전공 연구가 막히면 잠시 다른 분야를 연구하다가 어느 순간 막혔던 문제가 풀리면 다시 주전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한쪽의 연구가 막혀도 학문의 길 자체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는 연구자의 공부 방법으로 들었지만,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학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했다. 어떤 때는 스스로 길을 정해 걸었고, 어떤 때는 부모나 스승, 조직과 사회가 정해 놓은 길을 걸었다. 때로는 남들이 가는 길이 옳겠거니 하며 별생각 없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기도 했다. 이제 고은층(高恩層)이 되어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한 번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다시 길을 찾느냐에 있었던 것 같다.

길은 언제나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길이란 이미 나 있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골에서 눈이 많이 내린 날 길을 나서면 어른들은 낮은 곳보다 높은 곳을 살펴 걸으라고 했다. 바람이 불면 눈이 낮은 곳부터 깊게 쌓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이 있으면 그 자국을 따라 걷기도 했다. 눈으로 길이 잘 보이지 않아도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다.

인생에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먼저 살아간 부모와 스승의 발자국을 따라 배우고, 앞서간 학자들의 연구를 읽으며 학문의 길을 찾았다. 남의 길을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처음 걷는 사람에게 앞사람의 발자국만큼 좋은 이정표도 드물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길을 익혀 가는 과정이다.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의 발자국만 밟으며 살 수는 없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왜 그곳으로 가려하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요즈음 즐기는 파크골프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낀다. 처음 가는 파크골프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공을 쳐 한쪽의 잔디가 닳거나 흙이 드러난 곳을 보면 대강의 동선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공략은 지형에 따라 달라진다. 경사진 곳에서는 높은 쪽과 낮은 쪽을 살펴야 하고, 평지에서도 물이 흐르는 방향을 보면 지형의 기울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홀을 공략하더라도 사람의 힘과 기술, 구질과 선호에 따라 선택하는 길은 달라진다.

산도 마찬가지다.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은 같은 길이어도 몸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다르다. 결국 길은 지형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다르며, 때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길 또한 그러하다. 남에게 좋은 길이라고 반드시 나에게도 좋은 길인 것은 아니다. 젊은 날 옳았던 길이 지금도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길이 의심스러우면 멈추고 돌아본다

1970년 학창 시절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던 때가 생각난다.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어느 순간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내려가면 더 빨리 갈 수도 있었지만, 의심을 품은 채 계속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발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와 길이 갈라진 곳에서 다시 방향을 살폈다.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이었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길이 의심스러울 때 되돌아가는 것은 후퇴가 아니다. 더 멀리 잘못 가기 전에 돌아와 다시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가보자’며 잘못된 길을 고집한다. 이미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되돌아가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산에서는 잘못 든 길을 오래 갈수록 위험해진다. 인생에서도 잘못된 선택을 오래 붙들수록 되돌아오는 데 더 많은 대가가 따른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렌스 신부는 서두르는 로미오에게 말한다. “Wisely and slow. They stumble that run fast.” 현명하게, 그리고 천천히 가라. 서둘러 달리는 사람은 넘어지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동양의 지혜로 옮겨 보면 『논어』 「자로」의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 곧 너무 빨리 이루려 하면 오히려 목적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젊은 시절에는 빨리 가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남보다 먼저 가고 더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어느 길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는 빨리 가는 것보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먼저다. 모르면 묻고, 의심스러우면 멈추고, 잘못 들었다면 돌아올 줄 알아야 한다. 돌아선다고 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모두 헛된 것도 아니다. 잘못 든 길도 다음 길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한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걸어본다

대학원 시절 송 교수님의 말씀이 세월이 흐른 뒤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 길이 막혔다고 모든 길이 막힌 것은 아니다. 주전공 연구가 풀리지 않을 때 부전공 연구를 하듯이, 한 일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다 보면 뜻밖의 곳에서 답을 얻기도 한다.

글을 쓰다가 문장이 막히면 억지로 책상 앞에 붙들려 있기보다 밖으로 나가 걷는다. 산책을 하다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파크골프를 하다가 사람들과 나눈 말 한마디에서 글감이 생기기도 한다. 책에서 찾지 못했던 답을 사람에게서 얻고, 사람에게서 얻지 못한 답을 자연에서 얻기도 한다. 한 길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 반드시 방황은 아니다. 때로는 우회가 또 다른 전진이 된다.

그래서 길을 잃었을 때 나는 세 가지를 생각한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고,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잠시 기다려 보는 것이다. 돌아본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답을 찾는 것이고, 묻는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조급하게 답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기다린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주전공의 문제가 풀릴 때까지 부전공을 공부하듯이 다른 길을 걸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길은 가만히 멈춰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길을 성실하게 걷는 동안 문득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맺음글
유유자작, 나의 길을 나의 걸음으로

긴 인생길을 돌아보면 언제나 내가 선택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부모와 스승이 일러준 길도 걸었고, 조직과 시대가 요구하는 길도 걸었다. 때로는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을 별 의심 없이 따라가기도 했다.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온 적도 있고,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 때도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길과 우회와 되돌아섬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 고은층이 되어서는 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남보다 빨리 가는 것보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아는 것이 중요해졌다. 다른 사람의 발자국을 참고하되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는다. 내가 오래 걸어온 길이라고 해서 끝까지 고집하지도 않는다. 필요하면 멈추고, 돌아보고, 묻고, 기다리며, 때로는 다른 길을 걸어본다.

내가 여러 글에서 말해 온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삶도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길을 스스로 정하되 서두르지 않고, 한 번 정한 길에 자신을 가두지도 않는 삶이다. 길이 달라지면 보폭도 달리하고, 때가 아니면 기다리며, 길을 잘못 들었다면 다시 돌아설 수 있는 여유와 주체성을 갖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중요했다. 이제는 어디로 가느냐, 그리고 왜 그 길을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잠시 멈추어도 좋다. 잘못 들었다면 돌아가도 좋고, 한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걸어도 좋다. 길을 잃었다고 인생까지 잃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길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이 정해 준 길을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내가 갈 길을 스스로 살피며 걷고 싶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않고, 고집하지 않되 중심을 잃지 않는 길이다.
나의 길을, 나의 걸음으로 걷는다.
길을 잃으면 다시 찾고,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살피면서 그렇게 걸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싶은 고은층의 유유자작이다.

참고자료
· John Madden 감독, Shakespeare in Love, 1998. 각본 Marc Norman·Tom Stoppard.
· William Shakespeare, Romeo and Juliet, Act 2, Scene 3: “Wisely and slow. They stumble that run fast.”
· 『논어(論語)』 「자로(子路)」 제17장: “欲速則不達.”

사진. 정상오 박사 주관으로 사공클럽 회원들과 함께 찾은 대구 동구 불로파크골프장 전경. 2026. 9. 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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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인원보다 오래 남은 것:
낙동강변 파크골프 소풍에서 나를 돌아보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좋은 사람, 좋은 곳, 좋은 날이 만든 소풍


어제 구미 낙동강변에 자리한 동락과 양포파크골프장에서 하루 종일 파크골프 놀이 소풍을 했다. 함께한 사람은 서귀포 칠십리파크골프장에서 인연을 맺은 이 선생과, 구미 어울림파크골프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정 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이었다. 나까지 네 사람이 가을 문턱의 하루를 함께했다.

나는 파크골프를 단순한 운동이라기보다 ‘놀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에 매이지 않고, 걸으며 이야기하고 웃으며 사람을 만나는 놀이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장소, 좋은 날씨까지 만난다면 운동은 어느새 놀이이자 소풍이 된다. 어제가 꼭 그런 하루였다.

사람·장소·날씨, 세 가지 복이 함께하다

이 선생은 서귀포 칠십리파크골프장에서 만난 사람이다. 영남대 사범대  졸업 후 중등교사로 평생 일했고 교회 장로로서 살아온 그는 믿음과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파크골프 1급 지도자 자격증까지 가진 고수이기도 하다. 두 정 선생은 어제 처음 만났다. 한 분은 신실한 기독교인이고, 다른 한 분은 일상에서 ‘나무아미타불’을 되뇌며 살아가는 분이었다. 믿음의 길은 서로 달랐지만 사람을 대하는 정성과 삶의 태도에는 닮은 점이 있어 보였다.

세 분 모두 파크골프를 생활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각자 먹을 간식까지 정성스럽게 준비해 왔다. 작은 준비 하나에서도 함께 놀이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고은층의 멋은 약속시간을 지키고, 먹을 것을 조금씩 나누며, 상대가 편안하도록 배려하는 작은 행동 속에서 삶의 품격은 나타난다.

장소도 좋았다. 선산은 예부터 인재향으로 이름난 곳이다. 『택리지』에는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 선산을 품은 구미를 가로질러 낙동강이 흐른다. 강변에 펼쳐진 파크골프장에서 바라보는 물빛은 넉넉했고, 고개를 들면 금오산과 인근의 천생산이 구미의 풍경을 감싸고 있었다.

날씨까지 우리 편이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고 고은층에게는 더욱 견디기 힘든 계절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비로소 가을이 문 앞까지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맑은 하늘 사이로 구름이 햇볕을 적당히 가려주었고,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사람 탓도, 장소 탓도, 날씨 탓도 할 것이 없는 날이었다. 서귀포에서 한라산과 태평양을 바라보며 파크골프를 즐기던 날들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가을 소풍이었다.

동락에서 배운 파크골프 놀이의 맛

처음 만난 두 분과 인사를 나누고 준비해 온 간식을 함께 먹은 뒤 동락파크골프장에서 놀이를 시작했다. 첫 홀은 언제나 조금 조심스럽다. 그런데 뜻밖에도 첫 홀부터 버디가 나왔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몇 홀을 지나자 이 선생이 작은 놀이 하나를 제안했다. 두 편으로 나누어 경기하되 진 팀이 다음 홀에서 이긴 팀의 공을 티잉 그라운드에 올려주자는 것이었다. 대단한 내기도 아니고 상품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작은 규칙 하나가 놀이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만들었다.

지면 상대방의 공을 올려주면서 겸손해지고, 이기면 공을 올려주는 상대에게 감사하게 된다. 서로 이겼다 졌다 하면서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니 승부보다는 웃음이 앞섰다. 파크골프의 재미가 바로 이런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는 기쁨도 있지만 함께 놀이하는 즐거움이 더 오래 남는다.

18홀을 마쳤는데도 점심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9홀을 더 돌았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뒤에도 오후 놀이를 계속하기로 자연스럽게 뜻이 모였다. 점심은 이 선생이 계산했고 나는 인근 카페에서 차를 대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금씩 주고받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파크골프와 비슷한지 모른다. 한쪽만 계속 주거나 받기보다 서로 조금씩 주고받을 때 오래 편안하게 이어진다.

양포 96m 홀인원, 공 하나가 인연의 다리가 되다

오후에는 양포파크골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 가보는 구장이어서 첫 9홀은 코스를 익힌다는 마음으로 돌고, 이후 다시 편을 나누어 놀이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5번 홀, 96m 파 4였다. 티샷을 한 뒤 공이 그린 가까이 가는 것까지는 보았는데 그 이후 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공이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걷던 두 사람이 “무언가 맞는 소리가 났다”며 홀인원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라고 웃었다. 96m 파 4에서의 홀인원이라니 나 자신도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홀 가까이 가보니 정말 공이 홀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일행과 함께 웃으며 기념사진도 남겼다.

나는 평소 파크골프를 두고 “운이 아홉이고 기량이 하나이다”라고 얘기를 한다. 특히 홀인원은 잘 쳤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방향과 거리뿐 아니라 잔디 상태와 경사, 바람과 공의 구름까지 맞아야 한다. 그래서 내게 이날의 홀인원은 실력의 자랑이라기보다 그날 찾아온 하나의 행운이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진짜 행운은 홀인원 자체보다 그 뒤에 이어졌다. 경기를 마치고 남은 간식을 먹으며 쉬다가 문득 구미에 사는 오랜 인연의 김 관장이 생각났다. 젊은 시절 경북도의회와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훗날 영남대 행정대학원에서 그의 석사과정 논문을 지도하기도 했다. 마침 홀인원 기념으로 일행과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으니 시간이 된다면 그도 불러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반갑게 통화가 되었고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오전에는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오후의 공 하나를 계기로 저녁 한자리에 앉게 되었다.

홀인원보다 더 반가웠던 새로운 인연

운동 중 간식을 많이 먹어 시장기가 크지 않았기에 우리는 인근 본죽집에서 가볍게 저녁을 먹기로 했다. 김 관장은 처음 만난 세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구미의 오늘과 내일로 이어졌다. 오래 구미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지역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식사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날의 홀인원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 홀인원은 그냥 홀인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 ‘인연의 홀인원’인 것 같습니다.”

96m를 날아간 공 하나가 다섯 사람을 한 식탁에 앉혔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브리지 홀인원’, 나아가 ‘복의 홀인원’이라고 불렀다. 김 관장도 파크골프채를 가지고 있고 몇 차례 운동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에는 다섯 사람이 함께 파크골프 소풍을 하자며 뜻을 모았다.

생각해 보면 인연은 거창한 계획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 한 번의 전화, 함께 한 식사 자리, 운동장에서 일어난 뜻밖의 행운이 또 다른 인연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고은층이 되어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이해관계보다 인연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맺음글
홀인원보다 오래 남은 세 가지 아쉬움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대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하루를 되돌아보는데 홀인원의 기쁨과는 다른 생각이 마음 한쪽에서 올라왔다. ‘오늘 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눴는가?’

돌이켜보니 나는 듣기보다 말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묻고 경청하기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려 했다. 미래의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과거 내가 경험하고 관여했던 일, 특히 구미와 관련된 옛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세우는 말보다 자칫 나를 알리고 내 경험을 드러내는 것으로 들릴 만한 이야기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랜 교수 생활에서 몸에 밴 습관인지도 모른다. 가르치고 설명하고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오랫동안 나의 일이었다. 직업에서는 필요했던 습관이 은퇴 이후의 인간관계에서는 때로 내려놓아야 할 습관이 될 수도 있다. 오래된 버릇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대구 집에 도착해서도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아침에 눈을 뜬 뒤에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성경 야고보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야고보서 1장 19절)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말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듣고, 과거의 나보다 앞으로의 우리를 이야기하며, 나를 드러내기보다 상대방을 세워주는 것  말이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 더 익혀야 할 고은층의 말하기이고 사람을 대하는 품격일 것이다.

어제 하루에는 좋은 사람도 있었고, 좋은 장소도 있었으며, 좋은 날씨도 있었다. 뜻밖의 96m 홀인원이라는 행운도 있었고 새로운 인연도 생겼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나니 홀인원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일이었다.

고은층의 삶은 이미 굳어진 나의 습관을 “이 나이에 어찌할 것인가?” 하고 그대로 두는 삶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늦더라도 하나씩 고쳐가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품격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고은층답게 나이 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파크골프 소풍에서는 공을 조금 덜 쳐도 괜찮다.
대신 조금 더 듣고, 조금 덜 말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더 오래 마음에 담아보자고 다짐해 본다.
96m 홀인원보다 그것이 내게는 더 어려운 도전이자, 더 값진 홀인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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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세월은 흘러 고은층이 되었다: 2환의 봄소풍에서 유유자작의 오늘까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세월이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왔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참 먼 길을 걸어왔다. 초등학교 1학년 봄소풍을 가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긴 세월을 지나 고은층(高恩層)이 되었다. 그동안 세상도 많이 변했고 나의 삶도 여러 차례 모습을 바꾸었다. 어린 시절의 소박한 생활에서 대학원생이 되었고, 다시 교수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대학과 여러 기관에서 책임을 맡았다. 그리고 이제는 오랜 대학생활을 마치고 사학연금으로 살아가는 은퇴자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참 묘하다. 그 순간에는 힘들고 막막했던 일도 세월이 지나면 한 장의 추억이 된다. 당시에는 대단하게 여겼던 성취도 세월 앞에서는 지나간 하나의 장면이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과거를 돌아보되 그 시절에 머물지는 않으려 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고요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삶이다. 남이 짜놓은 시간표에 맞춰 살기보다 스스로 하루를 짓고,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2환의 봄소풍, 가진 것은 적어도 기쁨은 컸다

1957년,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때의 봄소풍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 할머니로부터 도시락과 용돈을 받았다. 나는 소풍 용돈으로 2환을 받았고 사촌누나는 1환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도 왜 나는 2환이고 누나는 1환인가 하는 기억이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우리 사회에 깊이 남아 있던 남아선호의 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도시락도 달랐다. 나는 그때 흔히 ‘벤또’라 부르던 도시락을 들고 갔고, 사촌누나는 놋그릇에 밥과 반찬을 담아 소풍길에 나섰다.

오늘날 아이들의 풍성한 소풍 준비와 비교하면 참 소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적다고 기쁨까지 작았던 것은 아니다. 며칠 전부터 소풍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작은 용돈 몇 푼에도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지금의 눈으로 그 시절을 바라보면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그만큼 작은 것 하나가 귀했고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알았다. 세월이 흐른 뒤 생각해 보니 풍요란 물건이 많고 적음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2환을 손에 쥐고 세상을 다 얻은 듯 좋아하던 어린아이의 설렘도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하나의 풍요였다.

신림동 하숙방에서 시작된 교수의 길

그로부터 스무 해가 흐른 1977년, 나는 서울 신림동의 하숙집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2인 1실 하숙비가 한 달에 2만 5천 원이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교로 일하며 받은 돈은 월 5만 원 정도였다. 오늘의 화폐가치와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시절의 5만 원은 젊은 대학원생이 공부를 계속하며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돈이었다. 미래가 또렷하게 보였던 것도 아니다. 학문의 길은 길었고 교수가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도 젊은 날에는 가진 것보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는 사실이 힘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논문을 준비하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나의 평생 직업으로 이어졌다.

1980년 3월 영남대학교 전임강사 대우로 대학에 들어갔을 때 월급은 25만 원이었다. 대학원 조교 시절 월 5만 원을 받다가 25만 원을 받게 되었으니 당시의 나에게는 그야말로 ‘제1의 천지개벽’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진짜 변화는 월급이 다섯 배가 되었다는 데 있지 않았다. 학생의 자리에서 교단에 서는 사람으로, 배우는 사람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며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삶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첫 강의를 준비하며 학생들 앞에 섰던 젊은 교수의 긴장과 설렘도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교수생활이 38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당시의 나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810달러의 미국생활, 삶의 두 번째 천지개벽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전환점은 1984년 12월 찾아왔다. 문교부 국비파견 해외연구교수로 선발되어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국비로 월 810달러를 지원받았고 국내 대학의 봉급도 계속 지급되었다. 지금의 기준에서 810달러라는 숫자만 보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해외에서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흔하지 않았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나는 이를 마음속으로 ‘제2의 천지개벽’이라 여겼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내게 준 변화는 경제적인 것보다 학문적·정신적인 것이 더 컸다. 더 넓은 학문의 세계를 접했고, 다른 사회와 대학의 모습을 직접 경험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다. 한 사람이 어느 곳에 서 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세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도 배웠다. 그 경험은 이후 교수와 연구자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세월이 더 흐른 뒤에는 내가 살아온 길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들도 있었다. 2000년대 어느 해 연말정산 때 예상보다 세금이 많이 나와 대학 본부 담당자에게 문의한 적이 있다. 당시 담당자는 내 소득 수준이 의과대학 교수급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 무렵이 대학 안팎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2010년대 초에는 외부기관에 파견되어 연구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정관에 보수 기준이 장관급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나름의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중요한 것은 ‘얼마를 받았는가’가 아니었다. 2환의 소풍 용돈에서 시작해 대학원 조교 수당 월 5만 원, 전임강사 대우 월 25만 원, 국비파견 해외연구교수의 월 810달러를 거쳐 직책과 책임에 따라 보수가 높아지는 동안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기회와 책임도 함께 커져갔다는 사실이다. 봉급은 생활의 형편을 보여주는 숫자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더 열심히 일하고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의 표시이기도 했다.

팔공산에서 제주까지, 이제는 유유자작의 시간

교수로서 앞만 보며 달려온 시간에도 마침내 끝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원의 둘레에서는 시작과 끝이 하나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하나의 끝은 또 다른 시작과 맞닿아 있다는 뜻으로 나는 이 말을 받아들인다.

정년을 앞둔 2016년부터 나는 팔공산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약 3년 동안 자연 가까이에서 지내며 이전과는 다른 삶의 리듬을 경험했다. 대학과 조직이 정해 놓은 시간표에서 조금씩 벗어나, 비로소 내 삶의 시간을 내 뜻대로 조율하기 시작한 때였다. 돌아보면 팔공산에서의 그 시간은 교수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준비이면서 동시에 은퇴 이후 새로운 삶을 여는 첫걸음이었다.

2019년부터는 다시 대구 집에서 약 3년을 보냈고, 마침 코로나19가 세상을 뒤덮으면서 사람을 만나고 이동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은 시간을 겪었다. 누구에게나 답답한 시기였지만, 한편으로는 바쁘게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2022년부터는 제주 서귀포에서 여러 해를 살았다. 제주에서의 삶은 내 인생의 또 하나의 새로운 장이었다. 정해진 출근시간도 없고, 맡은 보직도 없으며, 결재해야 할 서류도 없었다. 자연을 가까이하고, 걷고,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는 자유를 누렸다. 젊은 날에는 ‘무엇이 될 것인가’를 생각했고, 중년에는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고은층이 된 지금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달라졌다. 이제는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

나는 그 답을 ‘유유자작’에서 찾는다. 유유(悠悠)는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이고, 자작(自作)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어가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남이 정해주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하루의 주인이 되는 삶이다. 아침에 눈을 떠 무엇을 읽을지, 누구를 만날지, 어디를 걸을지, 무엇을 쓸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자유다. 젊은 시절에는 그 자유가 얼마나 귀한지 몰랐다. 이제야 그것이 은퇴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맺음글
받은 것을 헤아리며 남은 시간을 살아간다

2환을 손에 쥐고 봄소풍을 가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지 못했다. 신림동 2인 1실 하숙방에서 공부하던 대학원생도, 월급 25만 원을 받고 기뻐하던 젊은 교수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캠퍼스를 걷던 해외연구교수도 오늘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긴 인생을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내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간 부모와 가족의 보살핌이 있었고 스승이 있었으며, 동료와 제자가 있었다. 대학이라는 일터가 있었고 국가와 사회가 마련해 준 기회도 있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있었지만, 때로는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과 은혜가 더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나를 단순한 고령층이나 은퇴자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은혜를 받고 여기까지 온 ‘고은층(高恩層)’이라고 생각한다. 고은층의 삶은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가는 데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받은 것을 헤아리고 감사하며, 남은 시간을 자신의 뜻에 따라 품격 있게 살아가는 데 의미가 있다. 젊은 시절에는 더 빨리 가려 했고 더 높이 오르려 했다. 이제는 굳이 서두르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잘 살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읽고 싶은 것을 읽으며, 걷고 싶은 길을 걷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다시 세상에 돌려주며 살아가고 싶다.

그때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2환의 봄소풍도, 신림동 하숙방도, 첫 월급의 설렘도, 미국에서의 연구생활도 모두 오늘의 나를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다. 인생은 어느 한순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고 소박했던 시간과 힘들었던 시절, 뜻밖의 기회와 성취의 순간들이 하나하나 이어져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이제 나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 보다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고요와 자유 속에서, 받은 은혜를 헤아리며 남은 하루하루를 내 뜻대로 다시 지어간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삶이며, 유유자작하는 오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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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 부부의 평화는 말(言)에서 시작된다: 미래·수용·배려의 세 가지 지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부부의 평화는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부부가 평생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서로 다른 성격과 습관을 지닌 두 사람이 수십 년을 함께 살아가는데 의견 차이가 전혀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고은층 부부에게 필요한 평화도 마찬가지다. 평화란 아무런 의견 차이 없이 살아가는 상태가 아니다. 차이가 있어도 서로에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삶의 지혜가 평화이다.

성경 『잠언』 15장 1절에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다. 같은 내용도 어떤 말로 하느냐에 따라 다툼이 되기도 하고 대화가 되기도 한다. 부부의 평화 역시 거창한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고은층 부부가 남은 삶을 조금 더 평화롭게 함께하기 위해서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과거보다 미래를 말하자

갈등이 생겼을 때 가장 하기 쉬운 말 가운데 하나가 “당신은 옛날에도 그랬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로 해결되는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미 지나간 일과 함께 묻어 두었던 감정까지 다시 살아나기 쉽다. 복수난수(覆水難收), 곧 엎질러진 물은 다시 거두기 어렵다는 말처럼 지나간 일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때 왜 그랬어?”라고 따지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묻는 것이다. 지난날의 언어를 미래의 언어로 바꾸는 셈이다. 잘못한 것만 찾아내기보다 잘한 일과 고마운 일도 말해 줄 필요가 있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잘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부족한 것만 눈에 들어오기 쉽다. “당신은 이것도 못해”라는 말보다 “당신이 이것은 참 잘해 주었어”라는 말 한마디가 관계의 온도를 바꾼다.

과거는 고칠 수 없지만 앞으로의 하루는 바꿀 수 있다. 특히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고은층에게 남은 시간은 지나간 일을 되풀이해 원망하는 데 쓰기에는 너무 귀하다. 지난 잘못을 기억하는 데 머물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부부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바꾸기 어려운 것은 받아들이자

오래 살아온 배우자를 이제 와서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에게 널리 알려진 ‘평온의 기도(Serenity Prayer)’에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지혜는 부부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배우자의 건강을 해치는 습관이나 상대에게 큰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함께 고쳐 나가야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에 밴 말투나 취향, 생활 리듬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것까지 끊임없이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한다면 두 사람 모두 지치게 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오래된 습관을 바꾸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럴 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다.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했다. 서로 조화를 이루되 반드시 같아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나는 『맹자』 「등문공상」의 오륜에 나오는 부부유별(夫婦有別)도 오늘의 관점에서 새롭게 생각해 보고 싶다. 본래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분별과 질서가 있다는 뜻이지만, 오늘날에는 부부라 하더라도 서로의 인격과 생각, 취향과 영역에 존중해야 할 차이가 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부부는 한집에서 한평생을 살아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다.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만나는 사람도 다르며, 쉬는 방법과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하고 모든 생각이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살아갈수록 함께할 것은 함께하고 다를 것은 다르게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화이부동과 부부유별은 그런 의미에서 서로 통한다.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에 조화를 이룰 수 있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기 때문에 더 오래 가까이 살아갈 수 있다.

상대의 역린을 알고도 건드리지 말자

부부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만큼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디가 강하고 어디가 약한지도 안다. 그래서 갈등이 생겼을 때 마음만 먹으면 상대에게 가장 아픈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다는 것은 상대의 약점을 공격할 권리를 얻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약점을 알고 있기에 보호해 줄 책임이 더 커졌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역린(逆鱗)’은 『한비자』 「세난(說難)」에서 비롯된 말이다. 용의 목 아래에는 거꾸로 난 비늘이 있어 그것을 건드리면 사람을 해친다는 비유에서 나온 말이다. 오늘날에는 누구에게나 남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예민하고 아픈 부분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논어』 「안연」편에도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곧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부부 사이에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상대에게 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에 가장 상처받는지를 안다면 그것을 굳이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남들 앞에서 지적받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비난하는 말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또 어떤 사람은 지나간 실패를 다시 들추는 데 깊은 상처를 받는다. 배우자가 그것을 알고 있다면 굳이 그곳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오래 산 부부가 보여 줄 수 있는 배려다.

역린을 모르는 사람보다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조심해야 한다. 사랑은 좋은 것을 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상대가 가장 싫어하고 아파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사랑이다. 오래 함께 살아 상대를 잘 안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까지 안다는 뜻이어야 한다.

맺음글
서로를 덜 고치고 더 이해하는 삶


젊은 시절의 부부에게는 함께 이루어야 할 일이 많다.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키우며 직장과 가정을 꾸려 가야 한다. 그러나 고은층 부부에게는 조금 다른 과제가 남는다. 이제는 서로를 얼마나 더 바꿀 것인가보다 어떻게 하면 서로를 조금 더 편안하게 해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고은층 부부의 평화를 위한 삶의 태도를 세 가지로 마음에 담아 본다. 지나간 것은 놓아주고 앞으로를 이야기하자. 바꾸기 어려운 것은 억지로 고치려 하기보다 받아들이자. 그리고 서로의 아픈 곳을 알면서도 굳이 건드리지 말자. 결국 미래의 언어, 수용의 태도, 배려의 마음이다.

부부는 평생을 함께 살아도 서로 다른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유별이고,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화이부동이다. 오래 산 부부의 아름다움은 서로를 얼마나 많이 고쳐 놓았느냐에 있지 않을 것이다.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상대를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덜 상처 주며, 때로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삼키고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데 있을 것이다.

백년해로(百年偕老)는 단지 오래 함께 사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품고, 해서는 안 될 말 한마디를 아끼며, 남은 날을 편안하고 평화롭게 함께 늙어 가는 일일 것이다. 말 한마디를 바꾸면 관계가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면 남은 삶의 빛깔도 달라진다. 그것이 고은층 부부가 함께 만들어 가는 인생 후반기의 아름다운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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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 부부는 왜 사소한 말로 부딪히는가? 과거·습관·역린이 만드는 세 가지 언쟁(言爭)"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오래 함께 살아도 부부는 다르다


부부는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사이다. 젊은 날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며 온갖 희로애락을 함께 겪는다. 그렇게 수십 년을 함께 살다 보면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래 함께 살았다고 해서 생각과 성격, 습관과 취향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맹자』 「등문공상」에는 오륜의 하나로 부부유별(夫婦有別)이 나온다. 본래는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분별과 도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를 오늘의 부부관계에 그대로 옮겨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한 가지 지혜를 새롭게 읽어보고 싶다. 부부는 평생을 함께 살아도 서로 다른 인격과 생각, 취향과 생활방식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다. 가까울수록 그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논어』 「자로」에서 공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했다. 조화를 이루되 반드시 같아지려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부부야말로 화이부동의 지혜가 가장 필요한 관계가 아닐까?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다고 해서 두 사람이 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하되 서로 다를 수 있고,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고은층에 접어들면 대체로 자녀가 성장하고 사회적 역할에서도 한발 물러나면서 부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런데 함께하는 시간이 늘수록 아주 사소한 말로 부딪히기도 한다. 큰 사건 때문이라기보다 오래 묵은 과거를 다시 꺼내고, 평생의  습관을 고치려 하며, 상대의 가장 민감한 곳을 건드리는 말 한마디에서 언쟁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는 말

부부의 언쟁은 흔히 현재의 작은 문제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수십 년 전의 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당신이 그랬잖아”, “평생 당신은 그랬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오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사라지고 지난 결혼생활 전체를 평가하는 언쟁으로 번지기 쉽다. 오늘 청소를 할 것인가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신혼 시절의 서운함으로 이어지고, 한 번의 실수가 평생의 잘못처럼 확대되기도 한다.

한자성어에 복수난수(覆水難收)라는 말이 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거두어 담기 어렵다는 뜻이다. 영어에도 “Let bygones be bygones.”라는 표현이 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두자는 뜻이다. 물론 과거를 모두 잊으라는 말은 아니다. 좋은 추억은 오래 간직하고 잘못에서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다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오늘의 다툼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장 13절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나아간다고 했다. 본래는 신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것에 붙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은 오랜 부부의 삶에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과거는 교훈으로 남겨야지 원망으로 붙들어서는 안 된다. 오래 살아온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판결문을 다시 읽는 일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는 일이다.

고치려는 마음이 만드는 갈등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오랜 습관이 그만큼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십 년을 살아온 부부에게는 저마다 몸에 밴 생활방식이 있다. 물건을 놓는 자리도 다르고, 식사하는 습관도 다르다.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과 말하는 방법도 다르다. 한 사람은 무엇이든 미리 준비해야 마음이 놓이지만 다른 사람은 때가 닥쳐야 움직일 수 있고, 한 사람은 정돈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다른 사람은 조금 흐트러져 있어도 크게 불편해하지 않는다.

젊을 때도 쉽게 고치지 못했던 습관을 칠십, 팔십이 되어 바꾸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버릇 좀 고쳐요”,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되나요”라고 쉽게 말한다. 물론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바꾸어야 할 것도 있다. 건강이나 안전에 관계되는 습관, 상대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는 행동이라면 함께 노력해 고쳐야 한다. 그러나 사소한 생활습관과 취향까지 모두 내 방식에 맞추려 한다면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어쩌면 문제는 상대의 습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내 방식대로 고치려는 마음에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고은층 부부에게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함께 산다고 반드시 같아질 필요는 없다. 부부 사이의 평화는 모든 차이가 없어질 때 오는 것이 아니다. 고쳐야 할 것은 함께 고치되 바꾸기 어려운 차이는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찾아든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건드리는 역린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듣기 싫은 말과 건드리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말도 어떤 사람에게는 오래된 상처를 되살리는 말이 될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고사가 역린(逆鱗)이다. 『한비자』 「세난」에는 용의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데,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서 역린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민감한 부분이나 자존심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부부는 서로의 역린을 누구보다 잘 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무엇을 가장 싫어하는지, 어떤 말을 들으면 마음이 상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꺼내면 오래된 상처가 되살아나는지를 안다. 문제는 언쟁이 생겼을 때 바로 그곳을 공격하는 데 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친정이나 시댁, 자녀 문제, 경제 문제, 과거의 실패를 들추기도 하고 때로는 건강이나 외모까지 건드린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약점을 가장 잘 알고,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가장 아픈 곳을 찌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역린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건드릴 권리를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지켜주어야 할 책임이 커졌다는 뜻일 것이다.

흔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한다. 싸우더라도 쉽게 다시 풀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일 수는 있어도 말로 벤 마음의 상처까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 부부일수록 말의 수는 줄어들지 몰라도 말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상대의 아픈 곳을 알고도 피해 말하는 것이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에게 필요한 배려이다.

맺음글
가까울수록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고은층 부부의 언쟁은 대개 거대한 문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지나간 일을 다시 꺼내고, 쉽게 바뀌지 않는 습관을 억지로 고치려 할 때 생겨난다. 그리고 상대가 가장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건드리는 데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일수록 과거는 오늘의 무기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쉽게 바뀌지 않는 차이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의 역린을 알고 있다면 오히려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부부는 오래 살았다고 서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도 나는 나이고 배우자는 배우자다. 부부유별의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다름과 존중을 생각해 볼 수 있고, 화이부동의 지혜에서는 그 다름을 없애려 하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젊어서는 함께 앞을 보며 달려가는 것이 부부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고은층이 된 뒤에는 서로의 속도와 다름을 인정하며 나란히 걸어가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이제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끝까지 가리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남은 날을 어떻게 더 평화롭고 따뜻하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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