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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해무변의 인연은 계속된다: 박상철 교수와 함께한 26년의 만남과 새로운 동행"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대구에서 다시 만난 학해무변의 인연


필자는 최근 대구 인터불고에서 박상철 교수와 오랜만에 만나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박 교수는 일본과 스웨덴의 대학에서 오랫동안 연구와 교육활동을 해 온 국제적인 학자이자, 필자와 북유럽 혁신정책에 관한 국제공동연구를 수행했던 소중한 학문적 동반자이다. 여러 차례 만남을 약속하고도 서로의 일정으로 미루어 오다가 마침내 대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니 지난날 영남대학교에서의 첫 만남부터 포항과 경주의 동행, 북유럽 혁신정책의 공동연구, 스웨덴 고텐버그에서의 따뜻한 환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필자와 박 교수가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경이다. 당시 필자는 50대 초반이었고 박 교수는 40대 초반이었다. 서로 다른 대학과 국가에서 학문활동을 하던 두 사람이 지역발전과 혁신정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만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정년을 지나 필자는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로, 박 교수는 석좌교수로서 학문과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 시절 학문적 관심으로 시작한 만남이 인생 후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필자는 이러한 만남을 학해무변(學海無邊)의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학해무변은 학문의 바다에는 끝이 없다는 뜻이다. 학문은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며, 정년을 맞았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지난 경험을 성찰하며, 서로의 지혜를 나누는 일은 인생의 어느 시기에도 계속될 수 있다. 이번 박 교수와의 만남은 필자에게 학해무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특별한 시간이었다.

만남의 시작,  
압량벌에서 만난 귀족의 풍모와 선비의 마음


필자가 박 교수를 처음 만난 곳은 영남대학교 압량벌 캠퍼스였다. 당시 박 교수는 일본공업대학에 근무하면서 경북테크노파크의 장기발전전략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영남대학교를 방문하였다. 경북테크노파크는 필자가 설계를 주도했던 지역혁신 기반시설이었으며, 대학과 산업, 연구기관의 연계를 통해 지역의 기술혁신과 산업발전을 도모하는 중요한 사업이었다. 이러한 공통의 관심사가 두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었다.

박 교수의 첫인상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단정한 외모와 세련된 태도,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모습이 마치 유럽의 귀족을 연상하게 하였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일본과 스웨덴의 대학에서 활동하던 박 교수는 필자에게 새로운 학문적 시각과 국제적 경험을 전해 줄 수 있는 연구자로 보였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느낀 외적인 풍모보다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이후의 동행에서 보여 준 박 교수의 예의 바르고 겸손한 태도였다.

2000년 10월경 필자는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지도교수님을 대구로 초청하면서 박 교수에게도 동행을 제안하였다. 처음에는 함께 식사하는 자리로 생각했던 만남이 포항 호미곶과 경주 불국사로 이어지는 여행이 되었다. 우리는 포항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경주의 역사문화유적을 찾으면서 학문과 인생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 교수는 처음 만나는 필자의 은사에게도 예의를 갖추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첫 만남에서 느꼈던 귀족의 풍모에 더하여 한국 선비의 품격을 발견하게 되었다.

훗날 박 교수가 필자의 정년을 기념하는 회상록에 보내 준 글을 읽으면서 이때의 만남이 그에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 교수는 당시 국내 학자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던 자신을 필자가 스스럼없이 초대하고 따뜻하게 대해 준 일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필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초대였지만 박 교수에게는 새로운 학문적 관계를 열어 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좋은 인연은 때로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배려와 열린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학문의 동행,  
북유럽 혁신정책의 공동연구로 깊어진 인연


첫 만남과 여행을 통해 형성된 인간적 신뢰는 곧 학문적 협력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필자는 지역발전과 지역혁신체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박 교수는 유럽의 산업기술정책과 혁신체제를 연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전공과 연구 경험을 결합하면 한국의 지역혁신정책을 국제비교의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후 필자는 당시 한국학술진흥재단, 현재의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국제공동연구의 연구책임자를 맡고 박 교수는 공동연구자로 참여하였다. 연구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간 지속되었다. 2001년에는 한국과 스웨덴의 지역혁신체제를 비교하였고, 2002년에는 한국과 핀란드의 혁신정책을 분석하였으며, 2003년에는 한국과 덴마크의 지역혁신클러스터를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는 모두 SCOPUS 등재지이며 영국에서 발행되는
국제학술지 『AI & Society』 등에 발표하였다. 필자와 박 교수가 가장 활발하게 공동연구를 수행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 연구는 필자에게 학문적 의미가 컸다. 지역발전은 단순히 산업시설이나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학과 기업, 연구기관, 정부 사이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의 지식과 기술이 혁신과 생산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유럽 국가들의 혁신정책을 비교하면서 이러한 지역혁신체제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국가별 제도와 지역적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의 성공사례를 단순히 모방하기보다 우리나라 지역의 특성과 발전 단계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는 학문적 연구에서 무엇을 연구하느냐 못지않게 누구와 어떻게 연구하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제공동연구는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과 관점을 가진 연구자들이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과정이다. 박 교수는 북유럽의 제도와 정책, 현지 연구자료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필자는 한국의 지역발전정책과 계획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호보완성이 공동연구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무엇보다 연구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였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학해무변의 소중한 인연이었다.

인간적 동행,  
고텐버그에서 발견한 따뜻한 신사의 품격


필자가 박 교수의 또 다른 면모를 깊이 느낀 것은 2004년 스웨덴 방문 때였다. 당시 필자는 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WTA)의 국제회의에서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스웨덴 웁살라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회의에 앞서 박 교수가 근무하던 고텐버그대학교를 방문하여 대학 관계자들과 교류하고 지역혁신과 국제협력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박 교수는 필자의 방문을 세심하게 준비하였다. 대학 방문과 관계자 면담은 물론이고 자신의 집과 바닷가 별장으로 초대하여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특히 고텐버그의 한 생선전문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와인을 마시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박 교수의 회상글에도 두 사람이 와인 두 병을 마시고 식당을 나서면서 크게 웃었던 일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학문과 정책을 진지하게 논의하던 두 교수가 잠시 연구자의 모습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웃음을 나누었던 시간이었다.

주말에는 박 교수의 바닷가 별장을 방문하였다. 인적이 드문 북유럽의 해변을 산책하면서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감상하였다. 그곳에서 필자는 연구자 박상철뿐 아니라 가정과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박상철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였다. 첫 만남에서는 귀족 같은 외모와 풍모에 눈길이 갔고, 두 번째 동행에서는 선비의 예절을 느꼈으며, 공동연구에서는 학자의 능력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고텐버그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아우르는 한 인간의 따뜻한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만남이 거듭될수록 달라지고 깊어진다. 처음에는 겉모습과 태도를 보고 판단하지만 함께 일하면서 능력과 책임감을 알게 되고, 일상의 시간을 나누면서 인품과 배려를 이해하게 된다. 필자와 박 교수의 인연도 그러하였다. 학문적 능력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여 인간적 신뢰와 우정으로 발전하였다는 점에서 이 만남은 필자의 교수 인생에 오래 남을 소중한 기억이다.

새로운 동행,
고은과 AI, 지역정책의 미래를 함께 도모하다


이번 대구에서의 재회는 단순히 지난날을 회상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동안의 학문활동과 근황을 나누면서 정년 이후의 삶과 새로운 연구 주제, AI 시대의 미래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지역혁신과 산업발전이라는 공통의 연구과제를 중심으로 만났다면, 이제는 지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는 만남이 되었다.

특히 필자는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지역정책 및 지역경제정책 관련 저서의 출판계획을 박 교수에게 설명하고 참여를 제안하였다. 박 교수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직 구체적인 연구체계와 집필방식 등을 협의해야 하지만 오래전 북유럽 혁신정책을 함께 연구했던 두 사람이 다시 새로운 학문적 과제를 모색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뜻깊었다. 과거에는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정책적 시사점을 찾았다면, 앞으로는 축적된 학문적 경험과 정책적 통찰을 체계화하여 후학과 사회에 남기는 일에 더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AI의 발전은 지역발전과 지역경제정책에도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AI와 디지털 전환은 산업구조와 일자리, 지식과 기술의 활용방식은 물론 지역 간 발전격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지역정책은 전통적인 산업입지와 기반시설 중심의 접근을 넘어 혁신역량, 인적자본, 지식 네트워크, 기술변화와 지역사회의 대응능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필자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지역발전정책과 박 교수가 축적해 온 국제적인 산업기술·혁신정책 연구 경험을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좋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필자는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면서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생활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유유는 조급함 없이 여유롭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태도이며, 자작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고 만들어 가는 실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년 이후의 학문활동도 과거와 같이 성과와 경쟁에 매달리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자발적으로 이어가는 활동이어야 한다. 박 교수와의 새로운 저술 협력 구상 역시 이러한 고은층의 삶과 학문적 실천을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맺음말
학문은 끝이 없고 좋은 인연은 계속된다


필자와 박 교수의 만남은 2000년경 영남대학교 압량벌에서 시작되어 포항과 경주의 동행, 북유럽 혁신정책의 공동연구, 스웨덴 고텐버그에서의 인간적 교류로 이어졌다. 그리고 26년이 흐른 지금, 대구에서 다시 만나 새로운 학문적 동행을 모색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두 사람의 인연은 단순히 오래 알고 지낸 관계가 아니라 학문과 사람, 경험과 신뢰가 함께 성장해 온 과정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인연을 학해무변과 근학무실(勤學務實)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학해무변이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학문적 자세라면, 근학무실은 배움에 부지런하고 맡은 소임에 충실하며 이를 실천으로 이어가는 삶의 태도이다.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된 덕목이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되 배운 것을 삶과 사회에 유익하게 활용할 때 학문은 더욱 큰 가치를 갖게 된다. 젊은 시절의 국제공동연구가 이러한 정신의 실천이었다면 정년 이후의 새로운 저술 구상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은층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의 성취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학문과 도전을 계속하는 일이다. 이제는 직책과 지위보다 사람과 관계가 소중하고, 개인적 성과보다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일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좋은 인연은 서로를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배우게 하고 성장시키며 새로운 일을 함께 도모하게 한다. 필자는 박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이러한 관계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였다.

압량벌에서 시작된 인연은 호미곶과 불국사, 북유럽의 연구 현장과 고텐버그의 바닷가를 지나 다시 대구로 이어졌다. 그동안 장소도 달라지고 세월도 흘렀지만 학문을 향한 열정과 서로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제 두 사람은 고은층으로서 여유롭고 유연하게, 그러면서도 스스로 새로운 삶과 학문을 가꾸어 가는 유유자작의 동행을 이어가고자 한다.

"배움의 바다에는 끝이 없다. 좋은 인연의 항해도 끝나지 않는다. 박 교수와 함께하는 학해무변의 새로운 항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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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해무변의 만남과 동행"

이성근


압량벌 첫 만남, 유럽 귀족 같은 단정한 풍모
호미곶과 불국사 길, 예를 갖춘 선비의 마음
북유럽 혁신연구, 함께 탐구한 학문의 협업
고텐버그 바닷가, 한결 따뜻한 사람의 품격
대구에서 다시, 학문의 바다에 새 배를 띄운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최근 대구 인터불고에서 박상철 교수와 오랜만에 만나 지난 26년의 학문적 인연과 인간적 교류를 되돌아보았다. 2000년경 영남대 경산캠퍼스에서 처음 만난 이후 북유럽 3개국의 혁신정책을 공동 연구하고, 스웨덴 고텐버그에서 우정을 나누었던 추억이 새로웠다. 이제 두 사람 모두 정년을 지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면서 AI와 지역정책, 공동 저술 등 미래의 학문적 동행을 다시 이야기하게 되었다. 학문에는 끝이 없고 좋은 인연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에서 이 디카시를 쓰게 되었다.

"학문의 바다에는 끝이 없다. 좋은 인연의 항해도 끝나지 않는다."


[소중한 지인 221인으로부터  읽는 이성근 교수의 회상록. (사) 한국지역균형연구원. 2021. 1. 20]

"이성근 교수님과의 만남: 학문적 교류에서 인간적 우정으로"

박상철
한국산업기술대 에너지대학원 교수 · 스웨덴 고텐버그대 비즈니스스쿨 교수


첫 만남,
영남대학교에서 만난 열린 마음의 학자

이성근 교수님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경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일본 도쿄 근교에 있는 일본공업대학에 근무하고 있었다. 영남대학교에서 운영하던 경북테크노파크의 이재훈 교수님 초청으로 경북테크노파크 장기발전전략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지역발전전략을 전공하시는 이성근 교수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서로 연구 분야가 유사했던 만큼 자연스럽게 학문적 관심사를 나누게 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나는 독일에서 유학한 뒤 일본과 스웨덴의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국내 학자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교수님과의 만남은 더욱 특별하였다. 이 교수님은 나의 해외 연구 경험과 학문적 능력을 높게 평가해 주셨다. 과분한 평가에 감사하면서도 스스로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교수님이 상대방의 나이나 소속, 경력에 구애받지 않고 열린 자세로 학문적 교류를 이어가려는 분이라는 사실이었다.

2000년 10월 초 경북테크노파크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다시 영남대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이 교수님께서는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하신 은사님이 대구를 방문하시는데 시간이 허락하면 함께하자고 초대해 주셨다. 당시 나는 이 교수님의 은사님과 일면식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 교수님은 물론이고 은사님께서도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그 자리에서 이 교수님의 개방적이고 인간적인 태도가 오랜 학문적 수련과 스승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첫 동행,
포항의 밤바다와 경주에서 배운 만남의 가치


처음에는 대구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로 알고 참석하였으나 이 교수님은 우리를 포항으로 안내하셨다. 한반도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호미곶의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밤바다의 정취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는 단순한 식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시간이었다. 국내 학문사회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이 교수님의 배려와 환대는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다.

포항에서 식사를 마친 뒤에는 경주로 이동하였다. 이 교수님은 은사님을 모시기 위해 여러 일정을 세심하게 준비하셨고, 그 자리에 동행한 나에게까지 따뜻한 호의를 베풀어 주셨다. 경주의 역사문화유적을 찾고 준비된 모임에 참석하면서 자연스럽게 학문과 지역발전, 향후 공동연구의 가능성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이 교수님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학문적 열정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경험은 나에게 한국에서 학문적 관계를 맺고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나라와 학문사회에 따라 교류의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학문적 네트워크의 바탕에는 결국 사람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교수님의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환대는 이후 두 사람이 학문적 동반자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학문적 동행,
한국과 북유럽의 혁신정책을 함께 연구하다

2001년 일본대학에서 스웨덴대학으로 복귀한 이후 이 교수님과의 학문적 교류는 본격적인 국제공동연구로 발전하였다. 이 교수님이 연구책임자를 맡고 내가 공동연구자로 참여하여 한국과 북유럽 국가들의 지역혁신체제와 혁신정책을 비교·분석하는 연구를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수행하였다. 서로 다른 국가의 혁신정책과 지역발전 경험을 비교한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였으며, 두 사람이 가장 활발하게 협력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 2001년에는 한국과 스웨덴의 지역혁신체제를 비교·분석하였고, 2002년에는 한국과 핀란드의 혁신정책을 연구하였으며, 2003년에는 한국과 덴마크의 지역혁신클러스터를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는 모두 SCOPUS 등재지이며 영국에서 발행되는
국제학술지 『AI & Society』 등에 발표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각국의 산업기술정책과 지역혁신체제를 비교하면서 지역발전을 위한 제도적 조건과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국제공동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과 경험을 이해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교수님은 한국의 지역발전정책과 지역계획에 관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계셨고, 나는 유럽의 산업기술정책과 혁신체제에 관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연구에 참여하였다.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연구의 목적과 방향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3년간의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이 기간은 학문적 성과뿐 아니라 이 교수님과의 인간적 신뢰를 더욱 깊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스웨덴의 추억,
고텐버그에서 나눈 환대와 우정


2003년부터 나는 다시 스웨덴과 일본의 대학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이러한 학문적 활동을 계기로 2004년 이 교수님께서 스웨덴을 방문하시게 되었다. 당시 이 교수님은 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의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웁살라로 가시는 일정이었으며, 그에 앞서 내가 근무하던 고텐버그대학교를 방문하셨다. 나는 이 교수님을 대학으로 모시고 관계자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일정을 준비하였으며, 대학의 학장과 만나는 자리도 마련하였다.

고텐버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당 가운데 하나로 기억하는 생선전문식당에서 이 교수님과 함께 식사하였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식사와 함께 와인을 나누며 오랫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이 와인 두 병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담당 웨이터가 놀라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식당을 나오면서 이 교수님께서 이제야 조금 술을 드신 것 같다는 취지로 말씀하셨고, 우리는 거리에서 한바탕 크게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던 모습까지도 지금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주말에는 바닷가에 있는 나의 별장으로 이 교수님을 초대하였다. 인적이 거의 없는 조용한 해변을 함께 산책하면서 북유럽의 자연환경을 감상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이 교수님께서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바닷가의 한적한 풍경을 다소 낯설게 느끼시는 듯하였다. 그 모습 또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학문적 협력을 통해 만났던 두 사람이 일상의 삶과 자연을 함께 경험하면서 인간적인 교류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후 이 교수님께서는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웁살라와 스톡홀름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떠나셨다. 그날의 배웅이 어느덧 오래전의 일이 되었지만 당시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이후에도 2005년 일본대학의 아베 교수님과 함께 영남대학교 국제세미나에 참석하였던 일, 이 교수님을 모시고 일본대학을 방문하였던 일 등이 이어졌다. 여러 나라에서 함께했던 학문적 활동과 인간적 교류의 장면들이 지금도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맺음말
학문을 넘어 사람으로 남은 소중한 인연


돌아보면 이성근 교수님과의 만남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경북테크노파크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영남대학교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될 기회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우연한 만남은 포항과 경주에서의 동행으로 이어졌고, 한국과 북유럽의 국제공동연구로 발전하였으며, 일본과 스웨덴을 오가는 학문적 교류와 인간적 우정으로 깊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이성근 교수님은 소탈하고 개방적이며 학문적으로 열정적인 분이다. 새로운 사람과 학문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으셨고, 연구에 있어서는 적극적이면서도 상대방의 전문성을 존중하셨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이러한 성품이 학문적 성과와 인간적 신뢰를 함께 만들어 온 중요한 바탕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자로서 살아오면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연구자들을 만났지만 학문적 교류와 인간적인 관계를 오랫동안 함께 이어갈 수 있는 인연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교수님을 만나 학문적 동반자로 함께 연구하고 인간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매우 큰 행운이었다. 특히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서로의 전문성과 경험을 나누고, 연구 현장 밖에서는 진솔한 대화와 우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제 이성근 교수님께서는 오랜 교수생활을 마치고 정년을 맞으셨다. 지난날의 학문적 열정과 따뜻한 인간적 배려를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앞으로도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학문적 교류에서 시작되어 인간적 우정으로 이어진 소중한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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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다 때가 있다"


이성근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일
하면 좋아지는 일
지금이 바로 그때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지금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과는 달리 크고 거창한 일보다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곧 소확행과 작은 즐거움이 쌓이는 소소익선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는 고은층의 일상을 네 가지 일로 구분하여 생각한다. 첫째, 좋아하는 일이다. 하루를 아침·오전·오후·저녁으로 나누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기는 것이다. 둘째, 할 수 있는 일이다. 일상에서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적게 받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말한다. 셋째, 잘하는 일이다. 젊은 시절부터 익숙하게 해 왔거나 지금도 큰 부담과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넷째, 하면 좋아지는 일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즐겁고 유익하며, 가족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 일이다. 나아가 선린과 세상에도 자연스럽게 이로움이 돌아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네 가지 일은 특별하거나 거창할 필요가 없다. 이미 실천하고 있다면 계속 즐기고,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된다. 세상만사에는 때가 있지만, 고은층이 좋아하고 할 수 있으며 잘하고, 하면 좋아지는 일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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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네 갈래 강"

이성근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연단의 강
지난날을 성찰하고 새로움을 배우는 성숙의 강
버리고 비우며 내려놓는 자유의 강
가진 것을 나누고 뜻을 남기는 환원의 강
고은의 네 강은 유유자작하며 흘러간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최근 티스토리 블로그 「이성근 교수의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고은층의 인간형을 새롭게 설계하다"라는 글을 쓰면서 고은층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자신의 인생 후반기를 되돌아보았다. 이를 계기로 고은층의 삶을 연단·성숙·자유·환원의 네 갈래 강에 비유하여 이 디카시를 쓰게 되었다.

대학 정년 이후 필자는 몸과 마음을 돌보고, 성찰과 배움을 이어가며, 비우고 내려놓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나아가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을 이웃과 나누고 삶의 뜻을 남기고자 한다. 이 네 갈래 강이 서로 어우러져 유유히 흐르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어 가는 '유유자작(悠悠自作)의 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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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의 인간형을 새롭게 설계하다: 유유자작(悠悠自作)의 네 가지 기본형과 여덟 가지 실천형"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같은 고은층, 서로 다른 삶의 모습


필자는 지금 칠십 중반의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관리하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며,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동안 필자는 고은층의 삶에 관하여 여러 차례 글을 써 왔다. 고은층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직업에서 은퇴한 사람이 아니다. 오랜 세월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받은 은혜를 이웃과 사회에 나누며 품격 있게 살아가는 생애계층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고은층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운동을 하고 건강을 가꾸며 즐거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자연과 어울리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또 어떤 사람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보람을 얻고, 어떤 사람은 가족과 이웃을 만나고 봉사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고은층의 삶을 어떠한 기준에 따라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이나 건강,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만으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할까? 아니면 인생 후반기에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에 따라 인간형을 구분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그동안 강조해 온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생활철학을 바탕으로 고은층의 인간형을 새롭게 유형화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유유와 자작이라는 두 가지 삶의 기준에 따라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을 설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여덟 가지 인간형으로 구체화하려 한다.
이러한 유형화는 사람을 구분하고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고은층이 자신의 생활방식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인생 후반기의 모습을 설계하기 위한 하나의 제안이다.

유유자작, 고은층 인간형의 생활철학: 유유와 자작, 삶을 가꾸는 두 가지 기준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기본적인 생활철학은 유유자작(悠悠自作)이다.
유유자작은 조급함 없이 여유롭고 유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고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한가롭게 지내거나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상태를 넘어선다. 자신의 몸과 마음, 시간과 일상, 일과 관계를 스스로 살피고 조절하면서 인생 후반기의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생활철학이다.

그동안 필자는 고은층을 생애적 차원, 유유자작적 차원, 성찰적 차원, 관계·참여적 차원, 나눔·환원적 차원에서 이해해 왔다. 이는 인생 전반기에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그 성과를 가족과 이웃, 사회에 나누며 살아가는 고은층의 생애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은층의 삶은 축적(蓄積)에서 유유자작(悠悠自作)을 거쳐 환원(還元)으로 이어지는 생애적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축적이 지난날의 경험과 지혜를 쌓아 온 과정이라면, 유유자작은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환원은 그렇게 가꾸어진 삶의 가치와 성과를 다른 사람과 사회에 나누는 과정이다.

이러한 기존 논의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고은층의 삶을 실천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유유와 자작을 두 가지 기본적인 생활기준으로 설정하고, 이에 따른 인간형을 유형화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유유(悠悠)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며 여유롭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삶의 기준이다. 건강을 지키고 마음을 수련하며, 자연 속에서 회복하고, 배움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삶을 깊이 있게 가꾸는 데 중점을 둔다.
유유는 단순히 느리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형편을 살피면서 지나친 욕심과 경쟁을 내려놓고, 꼭 필요한 것과 소중한 것을 선택하여 삶의 균형을 이루는 태도이다. 여기에는 자유와 절제, 여유와 성찰의 조화가 요구된다.

다음으로 자작(自作)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실천하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삶의 기준이다. 일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개선하며, 새로운 목표와 일을 도모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생활방식이다.
자작 역시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필요한 도움은 받아들이되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과 결정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자신만을 위한 삶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삶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유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가꾸는 내적 태도에 중점을 둔다면, 자작은 그 삶을 실제로 설계하고 실천하는 주체적 활동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유유와 자작은 서로 분리되거나 대립하는 기준이 아니다. 유유 없는 자작은 지나친 활동과 성취에 치우칠 수 있고, 자작 없는 유유는 여유와 안락함에 머무를 수 있다. 따라서 두 기준이 조화를 이룰 때 고은층의 생활철학인 유유자작은 더욱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된다.
결국 유유자작은 자신의 삶을 돌보고 가꾸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생활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은층의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 유유와 자작에서 찾는 네 가지 삶의 지향

필자는 고은층의 생활철학인 유유자작을 유유와 자작이라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삶의 기준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유의 기준에서는 심신수련형과 치유학습형을, 자작의 기준에서는 사업도모형과 관계나눔형을 설정하여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으로 유형화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네 가지 인간형은 두 기준을 서로 교차시켜 현실의 사람들을 배타적인 집단으로 구분한 것이 아니다. 유유와 자작이라는 하나의 생활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네 가지 기본적인 삶의 지향을 의미한다.
또한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이란 현실의 고은층이 반드시 네 집단으로 나뉜다는 뜻이 아니다. 고은층이 어떠한 가치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고 만들어 갈 것인가에 관한 개념적 유형이며, 인생 후반기의 바람직한 생활방향을 제시하는 규범적 인간형이다.

첫째, 심신수련형(心身修鍊型) 인간이다.

심신수련형은 건강한 몸과 평온한 마음을 가꾸면서 인생 후반기의 삶을 안정되고 균형 있게 유지하려는 인간형이다.
고은층에게 건강은 중요한 생활자산이다. 그러나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일만큼 마음을 평온하게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 신체기능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조절하고, 감사와 절제, 인내와 배려의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심신수련형은 건강과 마음의 수련을 통해 자기관리와 내적 성숙을 지향한다. 다만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이러한 인간형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여건에 맞게 몸과 마음을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 역시 심신수련형의 삶을 실천할 수 있다.

둘째, 치유학습형(治癒學習型) 인간이다.

치유학습형은 자연과 생활환경 속에서 몸과 마음의 회복을 도모하고, 지속적인 배움과 성찰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성장시키려는 인간형이다.
인생 후반기에는 신체적 기능의 변화뿐 아니라 직업과 사회적 역할의 축소, 인간관계의 변화 등 다양한 생애적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자연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받아들이며, 지나온 삶을 성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치유란 반드시 질병을 치료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과 휴식, 문화와 학습을 통해 몸과 마음의 안정과 회복을 도모한다는 생활적 의미를 갖는다.
치유학습형은 자연과의 교감, 배움과 성찰을 통해 변화하는 삶에 적응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을 지혜로 바꾸고,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 간다.

셋째, 사업도모형(事業圖謀型) 인간이다.

사업도모형은 인생 후반기의 생활을 스스로 관리하고 개선하며, 자신의 능력과 여건에 맞게 새로운 일과 목표를 계획하고 실천하려는 인간형이다.
여기에서 사업이란 반드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사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일에서부터 새로운 취미와 여가활동, 농사와 창작, 그리고 사회적 활동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까지 폭넓게 포함한다.
인생 전반기가 직업과 가족을 중심으로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시기였다면, 인생 후반기는 자신의 가치와 관심에 따라 새로운 일을 선택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고은층에게는 현재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도전하고 실천하는 일도 소중하다. 다만 새로운 일의 성과보다는 스스로 계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얻는 자율성과 보람에 더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다.
사업도모형은 자신의 삶을 관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남아 있는 시간과 자원을 의미 있는 일에 활용하는 주체적인 인간형이다.

넷째, 관계나눔형 인간이다.

관계나눔형은 가족과 선린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평생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가려는 인간형이다.
인간의 삶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인생 후반기에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보다 누구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가 더욱 중요해진다.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랜 친구와 따뜻하게 소통하며, 선린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은 고은층의 소중한 생활자산이다. 나아가 자신의 경험과 지혜, 시간과 재능을 다음 세대와 지역사회에 나누는 일은 고은층의 사회적 역할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좋은 관계는 일방적인 도움이나 희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삶과 선택을 배려하는 가운데 지속된다.
관계나눔형은 관계의 형성과 유지에 머무르지 않고 배려와 협력, 봉사와 환원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인간형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네 가지 인간형은 각각 심신의 균형, 회복과 성장, 생활의 주체성, 관계와 나눔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다른 인간형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네 가지는 고은층이 지향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삶의 방향이며, 한 사람의 생활 속에서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고은층의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 네 가지 삶의 지향을 일상에서 실천하다

앞서 제시한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은 고은층의 기본적인 삶의 지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천적 인간형은 그러한 지향이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설명한다.
필자는 네 가지 기본 인간형을 각각 두 가지 실천유형으로 구체화하여 모두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심신수련형의 건강우선형과 마음수련형이다.

건강우선형은 신체건강과 생활의 활력을 우선적인 관심으로 삼는 인간형이다. 걷기와 산행, 파크골프와 스포츠, 근력운동과 건강한 식생활 등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며 일상생활의 활력을 유지한다.
중요한 것은 운동량이나 체력의 우열을 가리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신체조건과 건강상태에 맞게 꾸준히 움직이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하는 데 의미가 있다.

마음수련형은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온과 내적 성숙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명상과 기도, 사색과 독서, 자기성찰과 감사의 생활을 통해 마음을 가꾸고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
인생 후반기에는 지난날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 못지않게 아쉬움과 후회, 상실과 변화에 대한 수용도 중요하다. 마음수련은 지나온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더욱 평온하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건강우선형이 몸을 돌보는 활동에 중점을 둔다면, 마음수련형은 마음의 안정과 수양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그러나 건강한 몸과 평온한 마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두 유형은 상호보완적이다.

둘째, 치유학습형의 자연치유형과 성찰학습형이다.

자연치유형은 자연과 어울리며 몸과 마음의 안정과 회복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숲길 걷기와 산행, 텃밭 가꾸기와 농사, 정원생활과 생태체험 등을 통해 자연의 변화와 생명력을 느끼며 살아간다.
자연은 고은층에게 단순한 휴식공간이 아니다. 자연의 순환과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조급함을 내려놓으며, 일상의 활력을 회복하는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고 생명을 돌보는 일은 고은층에게 새로운 생활의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준다. 자연을 이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성찰학습형은  지나온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지속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인간형이다. 독서와 글쓰기, 외국어와 디지털학습, 예술활동과 평생교육 등이 대표적인 실천활동이다.
인생 후반기의 학습은 새로운 자격이나 능력을 얻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정리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시야를 넓히며,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기계발은 성찰학습형의 중요한 실천영역이다. 배움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찰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지혜로 바꾸는 것이 성찰학습형의 삶이다.

셋째, 사업도모형의 유지개선형과 미래설계형이다.

유지개선형은 현재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불편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는 인간형이다.
건강과 주거환경을 관리하고, 가계와 생활시간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며, 일상의 습관과 활동방식을 자신의 형편에 맞게 조정하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고은층의 자작은 반드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유지해 온 생활을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며 만족스럽게 가꾸는 일도 중요한 자작의 실천이다.
특히 신체기능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일상을 조정하고 개선하는 일은 인생 후반기의 자조성과 생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래설계형은 자신의 관심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와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인간형이다.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거나 농사와 창작활동을 시작 또는 계속하며, 새로운 생활공간이나 사회적 역할을 설계하는 일이 여기에 포함된다.
인생 후반기라고 해서 미래를 계획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준비한다는 점에서 미래설계는 고은층의 중요한 생활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래설계는 반드시 거창한 목표나 큰 성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작은 일을 새롭게 시작하거나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꿈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유지개선형이 현재의 생활을 더욱 알차게 가꾸는 인간형이라면, 미래설계형은 앞으로의 생활에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를 더하는 인간형이다.

넷째, 관계나눔형의 관계동행형과 나눔봉사형이다.

관계동행형은 가족과 선린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부부나 선린과 함께 산책하고 여행하며, 운동과 소풍을 즐기고, 공부와 취미활동을 함께하는 일은 관계동행형의 대표적인 실천이다.
고은층에게 좋은 관계란 단순히 자주 만나거나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거나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며, 필요할 때 함께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특히 인생 후반기의 관계는 경쟁이나 이해관계보다 신뢰와 배려, 동행과 공감에 더욱 큰 가치를 둘 필요가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에게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위안이 되는 관계가 바람직하다.

나눔봉사형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 시간과 재능을 다른 사람과 사회에 나누는 인간형이다. 자원봉사와 재능기부, 후배와 청년세대의 멘토링, 지역사회 활동과 공익적 참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나눔은 반드시 물질적 기부나 큰 성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웃의 어려움을 살피고,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자신의 경험을 필요한 사람에게 전하는 작은 실천도 의미 있는 나눔이다.
고은층이 평생 축적해 온 경험과 지혜는 개인의 소중한 자산이면서 동시에 다음 세대와 사회에 전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사회에 환원하는 일은 고은층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품격 있게 만든다.

관계동행형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와 동행에 중점을 둔다면, 나눔봉사형은 그러한 관계를 배려와 공헌으로 확장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렇게 보면 고은층의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은 건강우선형, 마음수련형, 자연치유형, 성찰학습형, 유지개선형, 미래설계형, 관계동행형, 나눔봉사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단절된 여덟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고은층의 일상에서 서로 만나고 결합하며 다양한 생활방식으로 나타나는 여덟 가지 실천의 모습이다.

인간형의 조화와 변화, 삶의 품격을 가꾸다: 어느 유형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필자가 제안한 고은층의 인간형은 한 사람을 어느 한 유형으로 고정하거나, 유형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한 사람의 삶은 여러 가지 인간형이 함께 나타나는 복합적인 모습이다.
필자의 생활경험을 돌아보아도 그러하다. 서귀포에서 해안과 숲길을 걷거나 파크골프를 즐기는 일은 건강우선형과 자연치유형의 활동이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는 관계동행형의 실천이기도 하다.
한림 금능 근석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일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더불어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면서 스스로 생산적인 일을 만들어 가는 생활이다. 함께 농사짓고 수확물을 나누는 과정에서는 관계동행형과 나눔봉사형의 가치도 발견할 수 있다.
독서와 글쓰기, 칼럼과 저술활동은 성찰학습형의 실천이면서 동시에 미래설계형의 활동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다양한 지인들과 공유하는 일은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도 갖는다.
이처럼 하나의 생활활동에도 여러 인간형의 특성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같은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선택한 동기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서 고은층의 인간형에 관한 세 가지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인간형은 개인의 가치관과 생활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건강과 경제적 조건, 가족관계와 주거환경, 관심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같은 생활방식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누구는 조용히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삶을 선택할 수 있고, 누구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동적인 생활을 추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여건과 가치관에 맞는 생활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가꾸어 가는 일이다.

둘째, 인간형은 생애과정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고은층에 들어선 초기에는 건강관리와 새로운 일에 관심을 두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수련과 관계, 나눔과 봉사에 더 큰 가치를 둘 수도 있다. 반대로 새로운 배움이나 활동을 뒤늦게 시작하면서 미래설계형의 특성이 강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고은층의 인간형은 한 번 정해지면 변하지 않는 고정된 유형이 아니라, 생애과정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정되고 발전하는 유연적인 생활방식이다.

셋째, 인간형의 차이는 삶의 우열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활동을 많이 하거나 새로운 일을 계속 만들어 가는 사람이 반드시 더 바람직한 고은층인 것은 아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도 자신의 가치와 여건에 맞게 삶을 선택하고 가꾸어 갈 수 있다.
고은층의 주체성은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는 신체적 독립성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중요한 생활의 선택에 참여하는 것 역시 자작의 중요한 실천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떠한 인간형에 해당하는가를 판정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생활방식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를 조화롭게 실천하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은층의 삶은 유유와 자작, 자기돌봄과 사회적 관계, 개인적 만족과 공동체적 공헌이 서로 어우러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고은층의 인간형은 개인의 생활방식에 관한 논의에 머물지 않는다. 지역사회가 고은층의 다양한 삶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건강과 마음수련을 위한 생활체육과 평생교육, 자연과 함께하는 치유·생태 프로그램, 새로운 일을 위한 사회참여와 창작활동, 관계와 나눔을 위한 공동체 활동과 자원봉사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물론 이번에 제안한 네 가지 기본형과 여덟 가지 실천형은 필자의 생활경험과 가치관, 그동안의 고은층론을 바탕으로 구성한 개념적·규범적 유형화이다. 현실의 고은층을 조사하여 실증적으로 검증한 분류체계는 아니다.
앞으로 관련 생활사례를 축적하고 경험적 연구를 통해 각 인간형의 특성과 상호관계를 검토한다면 고은층론의 이론적·실천적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고은층의 인간형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다.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각자가 자신의 인생 후반기를 더욱 의미 있고 품격 있게 설계하도록 돕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맺음말
어떤 인간형으로 살아갈 것인가?


필자는 그동안 고은층의 삶을 생각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자주 던져 왔다.
우리는 인생 후반기를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정해진 하나의 정답은 없다. 누구는 건강을 가꾸고 마음을 수련하며 살아갈 수 있다. 누구는 자연 속에서 삶의 활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살아갈 수 있다. 또 누구는 자신의 일상을 개선하고 새로운 일을 계획하며 살아가고, 누구는 좋은 사람들과 동행하고 이웃과 사회에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을 필자는 유유자작이라는 생활철학 아래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과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으로 유형화해 보았다.

그러나 고은층의 삶은 여덟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건강과 여건, 관심과 가치관에 따라 여러 생활방식을 조화롭게 구성하고, 변화하는 생애과정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 가는 데 의미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유유자작하는 고은층의 일상도 그러하다. 자연과 어울리고 사람들과 함께하며, 일하고 놀고 배우며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고은층의 삶은 혼자서 완성하는 작품이 아니다. 가족과 선린, 자연과 사회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의 삶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인생 전반기가 배우고 일하며 축적하는 삶이었다면, 인생 후반기는 축적된 경험을 지혜로 바꾸고, 그 지혜로 자신과 선린의 삶을 가꾸며, 받은 은혜를 나누는 삶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가 제안하는 고은층의 인간형은 어떤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기준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여건에서 몸과 마음을 돌보고, 배우고 성찰하며, 일상을 새롭게 만들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유유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고, 자작의 실천으로 새로운 일상을 만들며,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선린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그것이 필자가 지향하는 유유자작(悠悠自作)의 고은층이며,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고은층의 인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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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 부부의 행복론"

이성근

서로를 피곤하게 하지 않고
이기려 들지 않으며
진실을 감추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때
고은의 행복은 살며시 찾아든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지금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날의 부부생활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아내와 어떻게 하면 더욱 행복하고 품격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부부의 행복이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이기거나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지치게 하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소통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려 애쓰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을 다섯 행의 짧은 글에 담아 '고은층 부부의 행복론'이라는 디카시로 정리해 보았다. 고은층의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이기는 지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지혜이며, 행복은 억지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배려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여러 국정 현안과 논쟁을 지켜보면서 부부의 행복에 관한 이러한 생각이 국민의 행복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 사이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일이 중요하듯이 정치에서도 국민의 마음을 존중하고 헤아리는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피곤하게 하지 않고, 국민을 이기려 들지 않으며, 국민에게 진실을 감추지 않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국민의 신뢰와 행복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물론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러한 자세와 함께 실질적인 정책과 책임 있는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국 부부의 행복이든 국민의 행복이든 그 바탕에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 이기는 것보다 이해하는 것, 앞서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 자신의 뜻을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 부부의 행복론이자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행복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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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학무실의 만남은 끝나지 않았다: 영남대 이실연과 함께한 청풍호 가을소풍"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가을소풍에서 다시 만난 근학무실의 인연


2026년 10월 5일, 영남대학교 이론과 실천연구회(약칭 이실연) 회원들과 함께 청풍명월의 고장 충북 제천과 단양으로 가을소풍을 다녀왔다. 이날 소풍에는 12명이 함께했다. 아침 8시 대구 월드컵경기장 주차장을 출발하여 저녁 9시 30분에 되돌아왔으니, 무려 13시간 30분에 걸친 하루의 긴 여정이었다.

이번 소풍은 오전에는 충주호 유람선을 타고 청풍호의 산수경관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청풍호반케이블카를 이용하여 비봉산 정상에서 호수와 산자락을 내려다보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단양 영춘의 구인사를 찾는 일정이었다. 물길과 하늘길, 산길을 따라 자연과 문화를 만나는 여행이었다. 특히 같은 청풍호를 물 위에서 올려다보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바라보는 위치와 관점에 따라 풍경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소풍에서 필자에게 더욱 의미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자연경관만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근학무실의 정신으로 맺어진 이실연 회원들과 다시 만나 함께 걷고, 보고, 이야기하며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학위논문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으로 시작한 만남이 정년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으니, 이는 필자의 교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다.

필자는 이러한 만남을 근학무실(勤學務實)의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에 부지런하고 맡은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서로를 기억하고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시작된 배움의 관계가 인생을 함께 나누는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가을소풍은 더욱 뜻깊었다.

청풍호에서 되살아난 세 가지 인연

필자에게 이번 제천과 단양의 가을소풍은 세 가지 인연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하나는 사람의 인연이고, 다른 하나는 장소의 인연이며, 마지막은 전공의 인연이다. 이 세 가지 인연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번 소풍을 통해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졌다.

첫째, 사람의 인연은 이실연 회원들과의 만남이다. 필자는 영남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행정대학원에서 오랫동안 석사학위논문을 지도하였다. 환경대학원에서는 도시계획학 석사학위 취득자 37명과 수료자 4명, 행정대학원에서는 행정학 석사학위 취득자 59명과 수료자 5명을 지도하였다. 당시 특수대학원생들은 대부분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했으므로 학위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필자는 이들의 논문연구를 돕고 선후배 간 정보교류와 상호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이론과 실천연구회를 만들었다.

이실연은 단순한 학위논문 연구모임에 머물지 않았다.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회원들은 서로 교류하며 친목과 배움을 이어갔다. 필자가 정년을 맞은 이후에도 이러한 만남은 계속되고 있다. 학문적 관계가 인간적 신뢰로 발전하고, 그 신뢰가 오랜 우정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번 가을소풍 역시 이러한 인연이 만들어 낸 소중한 자리였다.

둘째, 장소의 인연은 단양과 제천에 얽힌 지난 활동의 기억이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지역발전정책의 하나였던 신활력사업과 관련하여 단양의 지역자원과 발전방안을 자문한 인연이 있다. 당시 단양팔경의 관광자원과 단양 육쪽마늘의 지역특산물 가치를 활용한 지역발전의 가능성을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또한 제천은 필자가 교육부 파견 학교법인 순총학원 이사장으로 재임할 당시 학교 행사와 졸업식 등을 위해 여러 차례 방문했던 곳이다. 따라서 이번 여행은 낯선 지역을 처음 둘러보는 소풍이라기보다 과거의 활동과 경험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셋째, 전공의 인연은 충주댐과 지역개발, 자원관리의 문제이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지역개발과 정책계획을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수자원개발과 환경관리, 개발과 보전의 관계에 관심을 가져왔다. 충주댐은 홍수조절과 용수공급, 수력발전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다목적댐이다. 1985년 준공된 충주댐으로 광대한 인공호수가 형성되었으며, 오늘날 이 호수는 지역의 주요 관광자원이 되었다.

그런데 같은 호수를 두고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충주에서는 충주호, 제천에서는 청풍호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며, 단양호라는 이름도 쓰인다. 하나의 호수를 두고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에서도 장소에 대한 지역사회의 애착과 정체성을 읽게 된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느 지역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상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충주댐 건설은 수자원개발의 성과와 함께 수몰지역 주민들의 삶과 문화유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날 청풍문화유산단지(옛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였던 지역의 문화유산을 이전·복원하여 보존하고 있는 역사문화 공간이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수자원개발의 성과뿐 아니라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기억과 아픔도 함께 남아 있다.

따라서 지역개발은 새로운 시설을 만들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개발의 성과와 함께 그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과 상실, 보전해야 할 자연과 문화의 가치도 살펴보아야 한다. 필자는 청풍호를 바라보며 개발과 보전, 성과와 희생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역계획의 기본 원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물길에서 올려다본 청풍호의 풍경

이번 소풍에서 처음 만난 청풍호의 풍경은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물길의 풍경이었다.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에 올라 호수의 물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주변의 산과 바위, 절벽과 숲을 가까이 바라보았다. 호수의 수면에서 산자락을 올려다보는 미시적·상향적 조망이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청풍호의 대표적인 풍경은 구담봉과 옥순봉이다. 단양팔경에 속하는 구담봉은 거북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기암절벽으로 유명하다. 옥순봉은 마치 대나무 싹이 솟아오르듯 희고 높은 바위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주변의 제비봉과 말목산, 옥순대교가 호수와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 보였다. 물 위에서 올려다보니 산의 높이와 절벽의 웅장함이 더욱 가까이 느껴졌다.

이 일대에는 자연경관만큼이나 흥미로운 인문적 이야기도 전해진다. 특히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두향의 인연은 구담봉과 장회나루 주변에 얽힌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두향의 묘가 전해지는 강선대 일대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자연은 단순히 산과 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역사와 기억까지 함께 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유람선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자 햇빛을 받은 호수의 수면이 반짝거렸다. 물가의 바위와 나무, 가마우지와 왜가리 등 물새들이 어우러진 풍경에서도 자연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작은 바위와 나무 한 그루, 잔잔한 물결 하나에도 눈길이 머물렀다. 전체보다는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는 미시적 관찰의 즐거움이었다.

필자는 평소 지역을 연구할 때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 작은 변화와 주민의 생활을 살펴보는 미시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아무리 큰 개발계획이라도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자연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계획이 되기 어렵다. 지역의 실상은 통계와 지도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며, 현장에 다가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풍호를 가까이 바라본 경험은 단순한 자연 감상에 머물지 않았다. 작은 풍경을 자세히 살피는 일이 지역과 사람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물길에서 올려다본 청풍호는 필자에게 현장 중심적 사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풍경이었다.

하늘길에서 내려다본 청풍호의 풍경

유람선에서 청풍호를 가까이 바라본 뒤에는 청풍호반케이블카를 타고 비봉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청풍호반케이블카는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서 해발 531m의 비봉산 정상까지 약 2.3km 구간을 운행한다. 물길에서 산을 올려다보던 시선이 이번에는 하늘길에서 호수와 산자락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케이블카가 서서히 올라갈수록 발아래 청풍호의 모습도 달라졌다. 가까이에서는 서로 떨어져 보이던 산과 호수가 하나의 큰 경관으로 연결되었다. 호수는 산자락 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지고, 크고 작은 산봉우리와 능선들은 겹겹이 펼쳐졌다. 비봉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니 청풍호를 '내륙의 바다'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청풍호가 개별적인 바위와 절벽, 물결과 숲의 풍경이었다면, 케이블카와 비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청풍호는 산과 물, 자연과 인공시설이 하나로 연결된 전체적인 풍경이었다. 같은 호수이지만 보는 위치와 높이에 따라 풍경의 규모와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조망의 차이를 미시적·상향적 시선과 거시적·하향적 시선에 비유해 보았다.

지역개발과 정책계획에서도 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접근은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 미시적 접근이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와 개별 요소를 살피는 일이라면, 거시적 접근은 지역 전체의 구조와 기능,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일이다. 아래에서 바라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고,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이해되는 것이 있다. 두 시선이 함께할 때 지역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청풍호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이러한 원리가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지만, 멀리서 보면 그 일이 삶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때로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피고,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 넓게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하다. 특히 인생의 후반기에는 지난날의 경험을 돌아보며 부분과 전체, 현재와 과거를 함께 바라보는 지혜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번 청풍호반케이블카의 경험은 자연을 감상하면서 지역을 이해하는 관점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같은 대상이라도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였다.

한편 소풍길에 만난 '고메막국수'도 기억에 남았다. 고구마 전분과 메밀을 활용한 이 음식은 지역의 농산물을 음식문화와 연결한 사례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지역의 자연과 특산물이 관광과 음식으로 이어질 때 지역자원의 활용가치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 작은 음식 하나에서도 지역자원을 새로운 가치로 연결하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산길에서 짧게 만난 구인사의 풍경

청풍호의 물길과 하늘길을 둘러본 뒤에는 단양군 영춘면에 자리한 구인사를 찾았다.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굽이굽이 산길을 달려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루 동안 여러 곳을 둘러본 뒤라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다. 이번 구인사 방문은 물길에서의 미시적 조망과 하늘길에서의 거시적 조망에 이어, 짧은 시간에 주요 풍경을 살펴보는 주마간산(走馬看山)식 방문이었다.

구인사는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으로, 1945년 상월원각대조사가 수행도량을 마련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는 소백산 자락의 깊은 계곡을 따라 수많은 전각이 층층이 자리 잡은 웅장한 사찰로 발전하였다. 경내에 들어서자 산자락을 따라 높이 이어지는 전각들의 규모와 장엄함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산사의 소박하고 고즈넉한 모습과는 또 다른 인상을 주었다.

가까운 법당에서는 청아한 반야심경 독송 소리가 흘러나왔다. 웅장한 전각과 산사의 고요함, 그리고 맑게 울려 퍼지는 경전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짧은 방문에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좀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으나 날이 저물고 있어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결국 아쉬움 하나를 남긴 채 산문을 나서야 했다.

구인사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행한다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전통으로도 알려져 있다. 필자는 이러한 정신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근학무실의 정신과도 일정 부분 통한다고 생각한다. 배움과 수행이 일상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학문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삶에서 실천되어야 하며, 신앙과 수행 역시 일상의 생활과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필자가 지도했던 이실연 회원들은 대부분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이론을 배우고 현장에서 실천해 온 사람들이다. 낮에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고, 일과를 마친 뒤에는 배움과 연구에 힘썼던 이들의 모습이 구인사의 주경야선 정신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비록 종교적 수행과 학문적 연구는 그 목적과 내용이 다르지만, 배움과 실천을 함께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통하는 의미가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구인사에서 느꼈던 짧은 만남과 아쉬움을 몇 줄의 디카시로 정리하였다. 제목은 「해 질 무렵 구인사」이다. 특히 마지막 두 행에 그날의 마음을 담았다.

서산의 해는 벌써 기울고
아쉬움 하나 두고 산문을 나선다.


주마간산식 방문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 의미까지 얕아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짧은 순간의 만남이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이번 구인사 방문이 그러했다.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웅장한 전각과 맑은 독경 소리, 그리고 저물어 가는 산사의 풍경은 다음에 다시 찾아 좀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을 남겼다.

맺음글
풍경은 지나가도 인연은 남는다

이번 영남대 이실연의 청풍호 가을소풍은 아침 8시에 시작하여 저녁 9시 30분에 끝난 긴 하루의 여정이었다. 청풍호의 물길에서는 자연을 가까이 바라보았고, 비봉산의 하늘길에서는 자연을 넓게 내려다보았다. 구인사로 이어진 산길에서는 짧은 시간 속에서도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물길과 하늘길, 산길에서 만난 서로 다른 풍경은 필자에게 자연과 지역,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일깨워 주었다.

이번 소풍은 사람과 장소, 전공이라는 세 가지 인연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의 인연에서는 오랜 세월 이어진 배움과 신뢰의 가치를 떠올렸다. 장소의 인연에서는 지난날의 활동과 기억을 되살렸다. 전공의 인연에서는 개발과 보전, 부분과 전체를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는 지역계획의 원리를 되새겼다. 하나의 소풍길에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만남, 그리고 인생의 성찰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이번 소풍에서 가장 오래 남을 것은 함께한 사람들의 얼굴과 이야기일 것이다. 근학무실의 마음으로 학문을 배우고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서로를 기억하고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사람의 인연은 단순히 만나는 횟수나 함께 보내는 시간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이어질 때 그 인연의 가치는 더욱 깊어진다.

필자는 근학무실의 '무(務)'를 자신의 소명과 책무에 충실하는 자세로, '실(實)'을 진정성 있는 실천과 실효성을 추구하는 태도로 정의해 왔다. 배움에 부지런하고 맡은 일에 충실하는 근학무실의 정신은 젊은 시절의 학문과 직장생활에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정년 이후의 삶에서도 계속 배우고, 경험을 나누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삶의 원리이다.

특히 고은층(高恩層)에 들어선 필자에게 오래된 인연은 더욱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젊은 시절에는 배움과 일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었다면, 이제는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서로의 삶을 격려하는 관계가 중요해진다. 과거에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이 오늘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풍길에 동행하는 모습에서 관계의 지속성과 삶의 품격을 생각하게 된다.

오랜 세월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으로 시작한 관계가 이제는 함께 소풍을 다니며 인생의 경험과 즐거움을 나누는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필자가 생각하는 교육의 보람이자 근학무실의 만남이 지닌 참된 가치이다. 교실에서의 배움은 끝났어도 인생에서의 배움은 계속되고, 학위논문 지도는 끝났어도 사람 사이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은 계절과 함께 지나가겠지만, 이실연 회원들과 나눈 하루의 추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배움은 계속되고, 신뢰는 깊어지며, 좋은 인연은 이어진다.

근학무실의 만남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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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무렵 구인사

이성근

굽이굽이 산길
구인사가 산자락에 웅장히 서 있다
가까운 법당에서
반야심경 맑은 소리 흘러오는데
서산의 해는 벌써 기울고
아쉬움 하나 두고 산문을 나선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영남대 이실연 회원들과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과 단양으로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충주호 유람선을 타고 호반과 산이 어우러진 가을 풍광을 바라보고, 이어 청풍호반 케이블카에 올라 정상에서 굽이굽이 겹겹이 이어진 호반과 산자락을 다시 눈에 담았다.

오후에는 단양 영춘에 자리한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 구인사를 찾아갔다.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굽이굽이 산길을 달려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경내에 들어서자 산자락을 따라 층층이 자리 잡은 전각들의 웅장한 모습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가까운 법당에서는 청아한 반야심경 소리가 들려와 저녁 무렵 산사의 분위기를 더욱 깊게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구인사가 지닌 규모와 장엄함, 그리고 기도와 수행의 공간이 주는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으나 날이 저물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래서인지 짧은 만남 뒤에 남은 아쉬움은 오히려 더 컸다. 언젠가 다시 찾아 천천히 둘러보리라는 마음을 남기며, 해 질 무렵 구인사에서 느낀 순간을 사진과 몇 줄의 시로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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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로 기억하는
어머니의 사랑"


이성근


말은 삼사일언으로 한 번만 하고
노래는 가무유절로 두 절만 부르고
인생은 춘하추동 네 계절을 따르며
성령강림을 오순절로 기념하고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구절초로 기억한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어제 오전,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평생 봉직한 영남대 캠퍼스 산책길을 걸었다. 걷는 도중 활짝 핀 구절초(九節草)를 만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사진을 찍었다.

구절초를 바라보는 순간 꽃말인 ‘어머니의 사랑’이 떠올랐다. 말에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의 절제가 있고, 노래에는
가무유절(歌舞有節)의 절도가 있으며, 인생에는 춘하추동의 네 계절이 있고, 신앙에는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오순절(五旬節이 있다. 문득 이처럼 서로 다른 의미의 ‘절’들이 구절초의 ‘절’과 하나의 언어적 연상으로 이어졌다.

그 끝에서 평생 가슴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가르침을 떠올렸다. 그래서 구절초 한 송이에 어머니의 사랑을 담아 이 디카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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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이 건강한 삶에 이르는 열 길(十道): 매일의 작은 실천이 이룬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건강은 일상의 작은 실천에 있다


고은층(高恩層)이 되면서 건강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또 자주 하게 된다. 누구를 만나도 건강이 화제가 되고, 헤어질 때면 “건강하십시오”라는 인사를 나눈다. 오래 사는 것만큼이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꾸려 가는 일이 중요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고은산책」에서 웃음과 감사, 관계와 운동, 자연과 걷기, 놀이와 파크골프, 삶의 의미와 유유자작에 관해 여러 차례 생각을 나누었다. 돌이켜 보면 이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결국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과 관계를 이어 가며, 자신의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여러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동안의 생각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열 가지로 묶어 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고은층이 건강한 삶에 이르는 열 길(十道)’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길은 특별한 건강법이나 새로운 처방이 아니다. 오늘도 걸어 볼 수 있고 내일 다시 되풀이할 수 있는 작은 생활의 길이다.

마음을 여는 세 길
웃고, 감사하고, 말한다


첫째 길은 웃는 것이다.

때로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한 번 웃어 본다. 혼자 있을 때도 웃어 보고, 사람을 만나면 먼저 웃으며 인사한다.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에 미소를 한번 지어 보는 것도 좋다. 나이가 들면 얼굴의 주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얼굴에 어떤 표정을 담고 살아갈지는 어느 정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웃음에 대해서는 그 효용을 길게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웃음이 좋다’고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 웃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고 의식적이어도 괜찮다. 좋은 습관은 반복할수록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둘째 길은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는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할 일이 잘 보이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작은 것부터 찾아보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고, 오늘 갈 곳과 할 일이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감사는 없는 것을 헤아리기보다 지금 내게 있는 것을 바라보게 한다. 하루에 한두 가지라도 감사할 일을 찾아가다 보면 삶을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진다.

셋째 길은 말하는 것이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가족과 대화하고,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책에서 읽은 것을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는다. 혼자 있을 때 좋은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것도 좋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기도문이나 익숙한 신앙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도 좋다.

말하고 대화한다는 것은 입만 움직이는 일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기억을 되살리며 세상과의 연결을 이어 가는 일이다. 생활 반경이 좁아질수록 대화의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먼저 전화를 걸고, 먼저 묻고, 먼저 말을 건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몸과 일상을 깨우는 세 길
노래하고, 놀이하며, 걷는다


넷째 길은 노래하는 것이다.

잘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좋아하는 노래면 된다. 혼자 따라 불러도 좋고 여러 사람과 함께 부르면 더욱 즐겁다. 젊은 시절 좋아했던 노래 한 곡을 부르다 보면 오래전 사람과 장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노래는 현재의 나와 지난날의 나를 이어 주는 작은 다리가 되기도 한다.

평소보다 조금 큰 목소리를 내어 보는 것도 좋다. 말하고 노래하면서 목소리를 쓰고 감정을 표현하며 잠시라도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이다. 한 곡의 노래가 하루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그 순간의 기분과 분위기를 밝게 만들 수는 있다.

다섯째 길은 놀이하는 것이다.

고은층에게 놀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파크골프를 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텃밭을 가꾸는 것도 놀이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손과 머리와 몸을 계속 사용하는 데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인생 후반에는 일을 놀이처럼 하고 놀이에서도 배움과 보람을 찾을 수 있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얼마나 즐겁게 오래 계속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여섯째 길은 걷는 것이다.

길이 있으면 걷고, 가능하면 자연과 가까이서 걷는다. 빠른 속도나 먼 거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몸과 형편에 맞게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걷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만난다. 봄꽃이 피고 여름 나무가 짙어지며, 가을잎이 물들고 겨울 가지가 드러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걷기는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면서 주변을 바라보고 생각을 정돈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 역시 산책과 파크골프를 하면서 여러 생각을 얻는다. 그러나 걷기의 의미를 굳이 철학적으로 확대하지 않아도 좋다.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오늘도 몸을 한 번 더 움직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섯째 길의 실천은 충분하다.

삶을 가꾸는 두 길
키우고, 의미를 가진다


일곱째 길은 키우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돌보고 키울 때 관심을 자기 밖으로 넓히게 된다. 작은 화분에 물을 주고, 텃밭의 채소를 돌보고,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다. 배움이나 취미 하나를 정하여 오랫동안 익히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키우는 삶’이다.

키운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결과를 얻으려 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이다. 어제와 오늘의 작은 변화를 살펴보는 동안 생활에도 일정한 리듬이 생긴다. 무엇인가 돌볼 것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아직 해야 할 일과 역할이 있다는 뜻이 된다.

여덟째 길은 의미(意味)를 가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직장과 가정, 사회적 역할이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은퇴하고 세월이 흐르면 그런 역할 가운데 일부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이때부터는 누가 정해 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 할 때가 많아진다.

그 의미는 우리 곁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후배에게 경험 하나를 전하는 것도 의미이다. 작은 봉사를 하고 배우며 글을 쓰는 것도 의미이다. 친구의 안부를 묻는 일도 결코 작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일이 하나쯤 있으면 좋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하루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두 길
잘 먹고, 쉬며 비운다


아홉째 길은 먹는 것이다.

먹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이면서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할 일이다. 나는 이를 정식(定食)·소식(少食)·서식(徐食)이라는 세 가지 ‘식’으로 생각해 본다.

정식은 가능한 한 일정한 시간에 식사하는 것이다. 소식은 무조건 적게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과식을 피하고 자신의 몸에 알맞은 양을 먹는 것이다. 서식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먹는 것이다.

특정한 음식 하나가 건강 전체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생활 여건에 맞추어 균형 있게 먹고,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에 식사를 즐겁게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사람과 편안하게 나누는 한 끼는 음식을 먹는 시간을 넘어 정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열째 길은 비우고 쉬는 것이다.

아홉째 길이 잘 먹는 것이라면, 열째 길은 잘 비우고 잘 쉬는 것이다. 몸은 받아들이는 것만큼 내보내는 일도 중요하다. 먹은 것을 잘 소화하고 내보내며 몸의 순환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일은 특히 고은층의 건강에서 중요하다. 잘 먹고 잘 내보내는  것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 리듬이다.

비움에는 휴식과 회복도 포함된다. 몸이 피곤하면 쉬고, 잠이 부족하면 충분히 자야  한다.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다시 움직일 힘을 채우는 시간이다.

생각과 마음의 비움도 필요하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와 서운함, 지나친 걱정과 욕심을 오래 붙들기보다 조금씩 내려놓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덜 중요한 것을 덜어 내어 더 소중한 것을 남기는 선택이다. 영정치원(寧靜致遠), 곧 마음이 고요해야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뜻처럼, 잘 비우고 잘 쉬며 몸과 마음에 여백을 만드는 것도 고은층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중요한 길이다.

맺음글
열 길은 아는 길이 아니라 걷는 길이다


웃고, 감사하고, 말한다. 노래하고, 놀고, 걷는다. 무엇인가를 키우고 삶의 의미를 가지며, 알맞게 먹고 쉬면서 지나친 것은 덜어 낸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전혀 낯선 일은 아니다.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건강한 삶에서 중요한 것은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다. 열 길을 모두 한꺼번에 걸을 필요도 없다. 오늘 한 번 더 웃고, 조금 더 걷고,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작은 실천이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쌓여 생활이 된다.

고은층의 건강은 젊음을 되돌리는 데 있지 않다. 지금 가진 몸과 마음을 잘 돌보며 자신의 하루를 스스로 꾸려 가는 데 있다. 내가 말해 온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삶도 결국 이러한 평범한 하루의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다. 건강에 단번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어도, 오늘부터 한 걸음씩 걸어갈 열 길은 있다.

공자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고 했다. 여기에 실천의 뜻을 더한다면,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좋아하며, 즐기면서 몸소 행할 때 비로소 삶의 길이 된다. 고은층의 건강한 삶에 이르는 열 길도 결국 아는 길이 아니라 오늘 하루 직접 걷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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