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층의 인간형을 새롭게 설계하다: 유유자작(悠悠自作)의 네 가지 기본형과 여덟 가지 실천형"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같은 고은층, 서로 다른 삶의 모습
필자는 지금 칠십 중반의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관리하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며,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동안 필자는 고은층의 삶에 관하여 여러 차례 글을 써 왔다. 고은층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직업에서 은퇴한 사람이 아니다. 오랜 세월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받은 은혜를 이웃과 사회에 나누며 품격 있게 살아가는 생애계층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고은층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운동을 하고 건강을 가꾸며 즐거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자연과 어울리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또 어떤 사람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보람을 얻고, 어떤 사람은 가족과 이웃을 만나고 봉사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고은층의 삶을 어떠한 기준에 따라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이나 건강,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만으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할까? 아니면 인생 후반기에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에 따라 인간형을 구분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그동안 강조해 온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생활철학을 바탕으로 고은층의 인간형을 새롭게 유형화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유유와 자작이라는 두 가지 삶의 기준에 따라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을 설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여덟 가지 인간형으로 구체화하려 한다.
이러한 유형화는 사람을 구분하고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고은층이 자신의 생활방식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인생 후반기의 모습을 설계하기 위한 하나의 제안이다.
유유자작, 고은층 인간형의 생활철학: 유유와 자작, 삶을 가꾸는 두 가지 기준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기본적인 생활철학은 유유자작(悠悠自作)이다.
유유자작은 조급함 없이 여유롭고 유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고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한가롭게 지내거나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상태를 넘어선다. 자신의 몸과 마음, 시간과 일상, 일과 관계를 스스로 살피고 조절하면서 인생 후반기의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생활철학이다.
그동안 필자는 고은층을 생애적 차원, 유유자작적 차원, 성찰적 차원, 관계·참여적 차원, 나눔·환원적 차원에서 이해해 왔다. 이는 인생 전반기에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그 성과를 가족과 이웃, 사회에 나누며 살아가는 고은층의 생애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은층의 삶은 축적(蓄積)에서 유유자작(悠悠自作)을 거쳐 환원(還元)으로 이어지는 생애적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축적이 지난날의 경험과 지혜를 쌓아 온 과정이라면, 유유자작은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환원은 그렇게 가꾸어진 삶의 가치와 성과를 다른 사람과 사회에 나누는 과정이다.
이러한 기존 논의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고은층의 삶을 실천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유유와 자작을 두 가지 기본적인 생활기준으로 설정하고, 이에 따른 인간형을 유형화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유유(悠悠)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며 여유롭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삶의 기준이다. 건강을 지키고 마음을 수련하며, 자연 속에서 회복하고, 배움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삶을 깊이 있게 가꾸는 데 중점을 둔다.
유유는 단순히 느리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형편을 살피면서 지나친 욕심과 경쟁을 내려놓고, 꼭 필요한 것과 소중한 것을 선택하여 삶의 균형을 이루는 태도이다. 여기에는 자유와 절제, 여유와 성찰의 조화가 요구된다.
다음으로 자작(自作)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실천하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삶의 기준이다. 일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개선하며, 새로운 목표와 일을 도모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생활방식이다.
자작 역시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필요한 도움은 받아들이되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과 결정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자신만을 위한 삶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삶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유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가꾸는 내적 태도에 중점을 둔다면, 자작은 그 삶을 실제로 설계하고 실천하는 주체적 활동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유유와 자작은 서로 분리되거나 대립하는 기준이 아니다. 유유 없는 자작은 지나친 활동과 성취에 치우칠 수 있고, 자작 없는 유유는 여유와 안락함에 머무를 수 있다. 따라서 두 기준이 조화를 이룰 때 고은층의 생활철학인 유유자작은 더욱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된다.
결국 유유자작은 자신의 삶을 돌보고 가꾸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생활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은층의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 유유와 자작에서 찾는 네 가지 삶의 지향
필자는 고은층의 생활철학인 유유자작을 유유와 자작이라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삶의 기준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유의 기준에서는 심신수련형과 치유학습형을, 자작의 기준에서는 사업도모형과 관계나눔형을 설정하여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으로 유형화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네 가지 인간형은 두 기준을 서로 교차시켜 현실의 사람들을 배타적인 집단으로 구분한 것이 아니다. 유유와 자작이라는 하나의 생활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네 가지 기본적인 삶의 지향을 의미한다.
또한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이란 현실의 고은층이 반드시 네 집단으로 나뉜다는 뜻이 아니다. 고은층이 어떠한 가치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고 만들어 갈 것인가에 관한 개념적 유형이며, 인생 후반기의 바람직한 생활방향을 제시하는 규범적 인간형이다.
첫째, 심신수련형(心身修鍊型) 인간이다.
심신수련형은 건강한 몸과 평온한 마음을 가꾸면서 인생 후반기의 삶을 안정되고 균형 있게 유지하려는 인간형이다.
고은층에게 건강은 중요한 생활자산이다. 그러나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일만큼 마음을 평온하게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 신체기능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조절하고, 감사와 절제, 인내와 배려의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심신수련형은 건강과 마음의 수련을 통해 자기관리와 내적 성숙을 지향한다. 다만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이러한 인간형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여건에 맞게 몸과 마음을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 역시 심신수련형의 삶을 실천할 수 있다.
둘째, 치유학습형(治癒學習型) 인간이다.
치유학습형은 자연과 생활환경 속에서 몸과 마음의 회복을 도모하고, 지속적인 배움과 성찰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성장시키려는 인간형이다.
인생 후반기에는 신체적 기능의 변화뿐 아니라 직업과 사회적 역할의 축소, 인간관계의 변화 등 다양한 생애적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자연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받아들이며, 지나온 삶을 성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치유란 반드시 질병을 치료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과 휴식, 문화와 학습을 통해 몸과 마음의 안정과 회복을 도모한다는 생활적 의미를 갖는다.
치유학습형은 자연과의 교감, 배움과 성찰을 통해 변화하는 삶에 적응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을 지혜로 바꾸고,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 간다.
셋째, 사업도모형(事業圖謀型) 인간이다.
사업도모형은 인생 후반기의 생활을 스스로 관리하고 개선하며, 자신의 능력과 여건에 맞게 새로운 일과 목표를 계획하고 실천하려는 인간형이다.
여기에서 사업이란 반드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사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일에서부터 새로운 취미와 여가활동, 농사와 창작, 그리고 사회적 활동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까지 폭넓게 포함한다.
인생 전반기가 직업과 가족을 중심으로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시기였다면, 인생 후반기는 자신의 가치와 관심에 따라 새로운 일을 선택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고은층에게는 현재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도전하고 실천하는 일도 소중하다. 다만 새로운 일의 성과보다는 스스로 계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얻는 자율성과 보람에 더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다.
사업도모형은 자신의 삶을 관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남아 있는 시간과 자원을 의미 있는 일에 활용하는 주체적인 인간형이다.
넷째, 관계나눔형 인간이다.
관계나눔형은 가족과 선린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평생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가려는 인간형이다.
인간의 삶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인생 후반기에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보다 누구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가 더욱 중요해진다.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랜 친구와 따뜻하게 소통하며, 선린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은 고은층의 소중한 생활자산이다. 나아가 자신의 경험과 지혜, 시간과 재능을 다음 세대와 지역사회에 나누는 일은 고은층의 사회적 역할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좋은 관계는 일방적인 도움이나 희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삶과 선택을 배려하는 가운데 지속된다.
관계나눔형은 관계의 형성과 유지에 머무르지 않고 배려와 협력, 봉사와 환원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인간형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네 가지 인간형은 각각 심신의 균형, 회복과 성장, 생활의 주체성, 관계와 나눔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다른 인간형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네 가지는 고은층이 지향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삶의 방향이며, 한 사람의 생활 속에서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고은층의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 네 가지 삶의 지향을 일상에서 실천하다
앞서 제시한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은 고은층의 기본적인 삶의 지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천적 인간형은 그러한 지향이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설명한다.
필자는 네 가지 기본 인간형을 각각 두 가지 실천유형으로 구체화하여 모두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심신수련형의 건강우선형과 마음수련형이다.
건강우선형은 신체건강과 생활의 활력을 우선적인 관심으로 삼는 인간형이다. 걷기와 산행, 파크골프와 스포츠, 근력운동과 건강한 식생활 등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며 일상생활의 활력을 유지한다.
중요한 것은 운동량이나 체력의 우열을 가리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신체조건과 건강상태에 맞게 꾸준히 움직이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하는 데 의미가 있다.
마음수련형은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온과 내적 성숙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명상과 기도, 사색과 독서, 자기성찰과 감사의 생활을 통해 마음을 가꾸고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
인생 후반기에는 지난날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 못지않게 아쉬움과 후회, 상실과 변화에 대한 수용도 중요하다. 마음수련은 지나온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더욱 평온하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건강우선형이 몸을 돌보는 활동에 중점을 둔다면, 마음수련형은 마음의 안정과 수양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그러나 건강한 몸과 평온한 마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두 유형은 상호보완적이다.
둘째, 치유학습형의 자연치유형과 성찰학습형이다.
자연치유형은 자연과 어울리며 몸과 마음의 안정과 회복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숲길 걷기와 산행, 텃밭 가꾸기와 농사, 정원생활과 생태체험 등을 통해 자연의 변화와 생명력을 느끼며 살아간다.
자연은 고은층에게 단순한 휴식공간이 아니다. 자연의 순환과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조급함을 내려놓으며, 일상의 활력을 회복하는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고 생명을 돌보는 일은 고은층에게 새로운 생활의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준다. 자연을 이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성찰학습형은 지나온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지속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인간형이다. 독서와 글쓰기, 외국어와 디지털학습, 예술활동과 평생교육 등이 대표적인 실천활동이다.
인생 후반기의 학습은 새로운 자격이나 능력을 얻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정리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시야를 넓히며,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기계발은 성찰학습형의 중요한 실천영역이다. 배움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찰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지혜로 바꾸는 것이 성찰학습형의 삶이다.
셋째, 사업도모형의 유지개선형과 미래설계형이다.
유지개선형은 현재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불편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는 인간형이다.
건강과 주거환경을 관리하고, 가계와 생활시간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며, 일상의 습관과 활동방식을 자신의 형편에 맞게 조정하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고은층의 자작은 반드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유지해 온 생활을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며 만족스럽게 가꾸는 일도 중요한 자작의 실천이다.
특히 신체기능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일상을 조정하고 개선하는 일은 인생 후반기의 자조성과 생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래설계형은 자신의 관심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와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인간형이다.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거나 농사와 창작활동을 시작 또는 계속하며, 새로운 생활공간이나 사회적 역할을 설계하는 일이 여기에 포함된다.
인생 후반기라고 해서 미래를 계획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준비한다는 점에서 미래설계는 고은층의 중요한 생활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래설계는 반드시 거창한 목표나 큰 성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작은 일을 새롭게 시작하거나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꿈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유지개선형이 현재의 생활을 더욱 알차게 가꾸는 인간형이라면, 미래설계형은 앞으로의 생활에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를 더하는 인간형이다.
넷째, 관계나눔형의 관계동행형과 나눔봉사형이다.
관계동행형은 가족과 선린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부부나 선린과 함께 산책하고 여행하며, 운동과 소풍을 즐기고, 공부와 취미활동을 함께하는 일은 관계동행형의 대표적인 실천이다.
고은층에게 좋은 관계란 단순히 자주 만나거나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거나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며, 필요할 때 함께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특히 인생 후반기의 관계는 경쟁이나 이해관계보다 신뢰와 배려, 동행과 공감에 더욱 큰 가치를 둘 필요가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에게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위안이 되는 관계가 바람직하다.
나눔봉사형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 시간과 재능을 다른 사람과 사회에 나누는 인간형이다. 자원봉사와 재능기부, 후배와 청년세대의 멘토링, 지역사회 활동과 공익적 참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나눔은 반드시 물질적 기부나 큰 성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웃의 어려움을 살피고,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자신의 경험을 필요한 사람에게 전하는 작은 실천도 의미 있는 나눔이다.
고은층이 평생 축적해 온 경험과 지혜는 개인의 소중한 자산이면서 동시에 다음 세대와 사회에 전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사회에 환원하는 일은 고은층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품격 있게 만든다.
관계동행형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와 동행에 중점을 둔다면, 나눔봉사형은 그러한 관계를 배려와 공헌으로 확장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렇게 보면 고은층의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은 건강우선형, 마음수련형, 자연치유형, 성찰학습형, 유지개선형, 미래설계형, 관계동행형, 나눔봉사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단절된 여덟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고은층의 일상에서 서로 만나고 결합하며 다양한 생활방식으로 나타나는 여덟 가지 실천의 모습이다.
인간형의 조화와 변화, 삶의 품격을 가꾸다: 어느 유형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필자가 제안한 고은층의 인간형은 한 사람을 어느 한 유형으로 고정하거나, 유형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한 사람의 삶은 여러 가지 인간형이 함께 나타나는 복합적인 모습이다.
필자의 생활경험을 돌아보아도 그러하다. 서귀포에서 해안과 숲길을 걷거나 파크골프를 즐기는 일은 건강우선형과 자연치유형의 활동이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는 관계동행형의 실천이기도 하다.
한림 금능 근석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일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더불어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면서 스스로 생산적인 일을 만들어 가는 생활이다. 함께 농사짓고 수확물을 나누는 과정에서는 관계동행형과 나눔봉사형의 가치도 발견할 수 있다.
독서와 글쓰기, 칼럼과 저술활동은 성찰학습형의 실천이면서 동시에 미래설계형의 활동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다양한 지인들과 공유하는 일은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도 갖는다.
이처럼 하나의 생활활동에도 여러 인간형의 특성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같은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선택한 동기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서 고은층의 인간형에 관한 세 가지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인간형은 개인의 가치관과 생활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건강과 경제적 조건, 가족관계와 주거환경, 관심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같은 생활방식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누구는 조용히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삶을 선택할 수 있고, 누구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동적인 생활을 추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여건과 가치관에 맞는 생활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가꾸어 가는 일이다.
둘째, 인간형은 생애과정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고은층에 들어선 초기에는 건강관리와 새로운 일에 관심을 두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수련과 관계, 나눔과 봉사에 더 큰 가치를 둘 수도 있다. 반대로 새로운 배움이나 활동을 뒤늦게 시작하면서 미래설계형의 특성이 강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고은층의 인간형은 한 번 정해지면 변하지 않는 고정된 유형이 아니라, 생애과정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정되고 발전하는 유연적인 생활방식이다.
셋째, 인간형의 차이는 삶의 우열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활동을 많이 하거나 새로운 일을 계속 만들어 가는 사람이 반드시 더 바람직한 고은층인 것은 아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도 자신의 가치와 여건에 맞게 삶을 선택하고 가꾸어 갈 수 있다.
고은층의 주체성은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는 신체적 독립성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중요한 생활의 선택에 참여하는 것 역시 자작의 중요한 실천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떠한 인간형에 해당하는가를 판정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생활방식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를 조화롭게 실천하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은층의 삶은 유유와 자작, 자기돌봄과 사회적 관계, 개인적 만족과 공동체적 공헌이 서로 어우러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고은층의 인간형은 개인의 생활방식에 관한 논의에 머물지 않는다. 지역사회가 고은층의 다양한 삶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건강과 마음수련을 위한 생활체육과 평생교육, 자연과 함께하는 치유·생태 프로그램, 새로운 일을 위한 사회참여와 창작활동, 관계와 나눔을 위한 공동체 활동과 자원봉사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물론 이번에 제안한 네 가지 기본형과 여덟 가지 실천형은 필자의 생활경험과 가치관, 그동안의 고은층론을 바탕으로 구성한 개념적·규범적 유형화이다. 현실의 고은층을 조사하여 실증적으로 검증한 분류체계는 아니다.
앞으로 관련 생활사례를 축적하고 경험적 연구를 통해 각 인간형의 특성과 상호관계를 검토한다면 고은층론의 이론적·실천적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고은층의 인간형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다.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각자가 자신의 인생 후반기를 더욱 의미 있고 품격 있게 설계하도록 돕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맺음말
어떤 인간형으로 살아갈 것인가?
필자는 그동안 고은층의 삶을 생각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자주 던져 왔다.
우리는 인생 후반기를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정해진 하나의 정답은 없다. 누구는 건강을 가꾸고 마음을 수련하며 살아갈 수 있다. 누구는 자연 속에서 삶의 활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살아갈 수 있다. 또 누구는 자신의 일상을 개선하고 새로운 일을 계획하며 살아가고, 누구는 좋은 사람들과 동행하고 이웃과 사회에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을 필자는 유유자작이라는 생활철학 아래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과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으로 유형화해 보았다.
그러나 고은층의 삶은 여덟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건강과 여건, 관심과 가치관에 따라 여러 생활방식을 조화롭게 구성하고, 변화하는 생애과정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 가는 데 의미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유유자작하는 고은층의 일상도 그러하다. 자연과 어울리고 사람들과 함께하며, 일하고 놀고 배우며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고은층의 삶은 혼자서 완성하는 작품이 아니다. 가족과 선린, 자연과 사회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의 삶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인생 전반기가 배우고 일하며 축적하는 삶이었다면, 인생 후반기는 축적된 경험을 지혜로 바꾸고, 그 지혜로 자신과 선린의 삶을 가꾸며, 받은 은혜를 나누는 삶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가 제안하는 고은층의 인간형은 어떤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기준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여건에서 몸과 마음을 돌보고, 배우고 성찰하며, 일상을 새롭게 만들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유유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고, 자작의 실천으로 새로운 일상을 만들며,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선린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그것이 필자가 지향하는 유유자작(悠悠自作)의 고은층이며,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고은층의 인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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