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테크노파크에 뿌린 씨앗, 의리로 이어진 인연:
이재훈 교수의 회상과 이성근 교수의 경북테크노파크 탄생 이야기"
"한국 테크노파크에 뿌린 씨앗은 지역혁신의 결실로 자라났다.
그 과정에서 맺어진 인연은 세월을 넘어 의리와 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업의 성과는 역사에 남고, 사람의 의리는 마음에 남는다."
첫 번째 이야기
[이재훈 교수의 회상글]
이성근 교수님, 한국 테크노파크의 ‘기획자’이자 ‘산파(産婆)’
이재훈 前 경북테크노파크 원장 · 前 한국테크노파크협의회 회장 · 영남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압량벌에서 시작된 만남과 테크노파크의 기획
1997년 3월. 압량벌의 바람은 거칠었다. 영남대학교 본관에서 이성근 교수님을 처음 만났다. 당시 이 교수님은 영남대학교 테크노파크 기획추진단장으로서 한국 테크노파크 조성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미국 유학 때 기술혁신형 기업의 인큐베이션(보육), 산학협력과 중소기업 간 협력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경쟁력 강화, 기업지원 중간조직과 지역정책수립기관 등을 통한 지역혁신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한 실천과제를 고민했던 나는 이 교수님의 요청으로 기획추진단에 전격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영남대학교는 과학기술처 정책연구과제인 「대학 연구단지의 조성 및 운영관리방안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테크노파크 조성을 기획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이성근 교수님이 자리하셨다. 테크노파크 조성계획이 당시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국책과제로 추진됨에 따라, 영남대학교가 중심이 되어 대구경북 기술거점 경산테크노파크 조성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사무국을 설치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후 1997년 6월 정부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영남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경북테크노파크는 12월에 6개 시범테크노파크 사업자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해관계를 넘어 협력의 거버넌스를 실천하다
이 과정에서 이성근 교수님은 다양한 이해관계의 주체들이 난상토론과 협상, 양보를 거쳐 결국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서로 협력하도록 하는, 흔히 말하는 거버넌스를 이론과 실천을 통하여 몸소 보여주셨다.
경북대 중심의 대구테크노파크와 영남대 중심의 경북테크노파크가 각각 사업을 준비함에 따라 지역 언론에서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강했고, 지역 대학들은 두 테크노파크 가운데 어디에 참여해야 하는가를 두고 눈치보기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경북테크노파크에 참여하는 대학들도 서로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당한 고민과 진통을 겪고 있었다.
이처럼 험난한 과정에서 이성근 교수님은 테크노파크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철학, 그리고 자리가 아닌 이슈 중심의 접근과 설득을 통하여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최우수 테크노파크의 초석을 놓았다.
한국 테크노파크의 기획자이자 산파
현재 국내에는 자칭 타칭 내로라하는 테크노파크 전문가가 많다. 그러나 ‘테크노파크’라는 용어조차도 생소하던 1990년대 후반에 정책연구의 결과를 국책사업으로 승화시켜, 이제 스무 살을 맞은 우리나라, 특히 경북테크노파크가 지역경제 활성화의 첨병은 물론 세계적인 명품이 되도록 탄생, 발전시킨 ‘기획자’이자 ‘산파역(産婆役)’을 하신 분이 바로 이성근 교수님이시다.
함께한 기회에 대한 감사와 정년퇴임 축하
이 중요하고 필수적인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경북테크노파크 원장과 한국테크노파크협의회 회장을 각각 3회 역임하여 한국 테크노파크의 ‘산증인’이란 멋진 경력을 갖추게 해 주셔서 개인적으로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경북테크노파크의 ‘기획자’이자 ‘산파역’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퇴임 이후에도 우리 경북테크노파크는 물론 국내외 ‘테크노파크’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당부드리고, 정년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출처: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 정년기념 회상록, 2021. 1. 20., 314쪽부터 수록된 이재훈 교수의 글.
두 번째 이야기
[이성근 교수의 고은산책]
"한국 테크노파크에 뿌린 씨앗과 의리로 이어진 인연:
경북테크노파크의 탄생을 돌아보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테크노파크에서 맺어진 인연과 변함없는 의리
필자는 영남대학교에서 38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 안팎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였다. 그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의 하나가 한국 테크노파크의 탄생과 국가 시범사업인 경북테크노파크의 선정 및 유치이다. 테크노파크는 필자에게 단순한 국책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정책을 기획하고 실천하며,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고 협력의 가치를 배운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한 분이 이재훈 교수이다. 이 교수는 1997년 필자가 주도하던 영남대학교 테크노파크 기획추진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힘을 보태주었다. 이후 경북테크노파크 원장으로 재직하면서도 필자의 여러 제안에 지지와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필자의 정년기념 회상록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에 따뜻한 평가와 회상의 글을 보내주었으며, 최근에는 필자의 가족행사에도 잊지 않고 축의를 전해주었다. 세월이 흐르고 서로의 삶의 환경이 달라져도 지난날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의리를 지키는 이 교수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교수는 회상글에서 필자를 한국 테크노파크의 ‘기획자’이자 ‘산파(産婆)’라고 평가하였다. 필자로서는 고맙고도 과분한 말씀이다. 테크노파크의 탄생은 어느 한 사람의 성과가 아니라 대학과 정부, 지방자치단체와 산업계, 그리고 여러 전문가가 뜻을 모아 이룬 공동의 성과였기 때문이다. 이제 인생 후반기의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면서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한국 테크노파크에 씨앗을 뿌렸던 지난날과 그 과정에서 맺어진 소중한 인연을 돌아보고자 한다.
시작과 구상:
대학연구단지에서 한국 테크노파크로
테크노파크는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통해 지역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역혁신거점이다. 단순히 기업과 공장을 한곳에 모으는 산업단지와 달리 연구개발, 기술이전, 창업보육, 기업지원과 산학협력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데 의미가 있다. 당시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리서치 트라이앵글, 영국의 케임브리지 사이언스파크, 일본의 테크노폴리스 등은 지역혁신정책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필자가 테크노파크 조성사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가을이었다. 당시 김종섭 영남대 부총장으로부터 경산캠퍼스에 대학연구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과학기술처 정책연구의 책임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진을 구성하여 연구계획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사회과학 분야 교수가 기술연구단지 조성 연구를 책임지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학내 의견이 제기되면서 연구책임자가 변경되었다. 이후 1995년 연구의 중간점검을 계기로 다시 연구책임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지만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대학연구단지 구상은 영남대학교 테크노파크 조성계획으로 발전하였고, 과학기술처의 정책연구에서 당시 통상산업부가 관심을 갖는 국가 차원의 기술혁신사업으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류창우 총장의 혁신적 리더십과 김종섭 부총장의 지원, 최영환 객원교수와 이수인 교수의 대외협력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필자 역시 대학 테크노파크의 설립 타당성 연구와 종합계획 수립의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대학의 연구역량을 지역산업 발전과 연계하는 새로운 모형을 구상하였다. 돌이켜보면 테크노파크 조성사업은 대학 캠퍼스에 연구시설을 건설하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었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산업발전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였으며, 학문적 구상을 현실의 정책과 제도로 발전시키려는 도전이었다.
협력과 선택:
대학도시형 경북테크노파크를 설계하다
테크노파크 조성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지역 대학과 관계기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었다. 당시 뒤늦게 참여한 경북대학교는 대구·경북지역 대학이 참여하는 네트워크형 테크노파크를 구상하였고, 영남대학교는 경산캠퍼스를 중심으로 대학도시 연구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었다. 두 대학의 공동 추진에 관한 논의와 지역 언론의 통합 요구도 있었으나, 필자는 사업의 특성과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여 영남대학교의 구상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추진모형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영남대학교 단독의 테크노파크 구상을 경산지역 5개 대학이 참여하는 대학도시형 테크노파크로 확대하였다. 영남대,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경일대, 대구한의대가 참여하고 경상북도와 경산시, 경산상공회의소가 협력하는 추진체제를 마련하였다. 이는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산업계가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역할을 분담하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실천이었다.
필자는 대학도시형 테크노파크 추진기획위원장으로서 관계기관의 협력을 이끌고 국내외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사업계획을 수립하였다. 특히 영남대학교에 거점센터를 두고 참여 대학에 각각 특화센터를 배치하는 허브-스포크(Hub-Spoke)형 모형을 구상하였다. 이는 대학별 특성과 비교우위를 살리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지역혁신체제를 형성하려는 전략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학 내부의 이해관계와 외부의 경쟁, 정부 정책의 변화 등 여러 난관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기관이 주도권을 가지느냐보다 지역발전에 필요한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필자가 행정학과 지역개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강조해 온 종합적 기획과 협력적 거버넌스를 현장에서 실천하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특히 이재훈 교수를 비롯한 여러 동료 교수의 참여와 협력은 사업추진에 큰 힘이 되었다. 서로 다른 전공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선정과 성과:
국가 시범사업에서 지역혁신 연구로
마침내 1997년 정부의 국가 시범 테크노파크 공모사업이 발표되었다. 경북에서는 영남대학교 중심의 대학도시형 테크노파크와 포항공과대학교 중심의 포항테크노파크가 경쟁하였으며, 경상북도의 심사를 거쳐 대학도시형 경북테크노파크가 추천되었다. 이후 중앙정부의 심사를 거쳐 그해 12월 경북테크노파크가 전국 6개 국가 시범 테크노파크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사업추진 당시에는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어려움도 있었다. 정부의 정책 방향 역시 지역기술혁신거점 조성에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지원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대학도시형 테크노파크의 기본구상은 유지하면서도 정부가 요구하는 기업지원 기능을 사업계획에 반영하였다. 정책의 기본철학을 지키되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국가 시범사업 선정 이후에는 전국 6개 테크노파크의 협력체계인 국가시범 테크노파크 추진협의회 창립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한편 영남대학교에는 새로운 경북테크노파크 사업단이 출범하였고, 필자는 그동안 맡아온 기획추진단장직에서 물러났다. 수년 동안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기에 시원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새로운 조직과 후속 책임자들이 사업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새로운 정책과 사업은 한 사람의 구상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그 성과는 여러 사람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지속되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필자는 테크노파크 사업에서 얻은 경험을 지역혁신체제에 관한 학술연구와 정책자문으로 발전시켰다. 한국과 스웨덴·핀란드·덴마크의 지역혁신체제를 비교하는 국제공동연구를 수행하였으며, 대학원 제자들과 함께 기술이전, 산업클러스터, 기업지원과 지역혁신에 관한 연구를 이어갔다. 또한 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WTA) 활동과 산업혁신클러스터 정책자문, 알제리 시디 압둘라 과학기술신도시의 사이버파크 조성 자문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돌이켜보면 테크노파크는 필자에게 새로운 정책을 실천한 현장이자 학문적 관심과 연구 영역을 넓혀준 배움의 장이었다. 국가 시범사업의 선정이라는 성과도 중요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 국내외 전문가 및 제자들과의 인연은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맺음말
씨앗을 뿌린 보람과 의리로 이어진 인연
필자는 사람마다 비교우위의 재능이 있고 인생에서 맡는 역할도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씨앗을 뿌리고, 어떤 사람은 싹을 틔워 가꾸며, 또 어떤 사람은 열매를 거둔다.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면 필자는 새로운 정책과 사업을 구상하고 그 씨앗을 뿌리는 일을 비교적 많이 해온 것 같다. 한국 테크노파크의 탄생과 국가 시범 경북테크노파크의 선정도 그러한 경험 가운데 하나였다. 영남대학교에서 시작된 작은 구상이 국가정책으로 발전하고, 여러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산업계의 협력을 통해 지역혁신의 기반을 마련한 것은 지금도 보람 있게 생각하는 일이다. 그러나 씨앗을 뿌린 사람의 보람은 자신이 모든 열매를 거두는 데 있지 않다. 그 씨앗이 다른 사람들의 노력으로 싹을 틔우고 자라서 사회에 유익한 결실을 맺는 데 있다.
이재훈 교수는 회상글에서 경북테크노파크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 데 감사한다고 하였지만, 필자는 오히려 사업추진에 힘을 보태고 이후에도 경북테크노파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준 이 교수에게 감사한다. 더욱이 세월이 흘러 서로의 역할과 생활환경이 달라진 뒤에도 지난날의 인연을 잊지 않고 변함없는 정을 보여주는 의리정신은 필자에게 특별한 감동으로 남는다. 돌이켜보면 테크노파크 사업을 통해 얻은 것은 국가 시범사업의 선정이라는 성과만이 아니었다.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면서 쌓은 신뢰와 우정,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야말로 오래도록 간직할 소중한 결실이었다.
인생 후반기의 고은층으로 살아가면서 필자는 지난날의 성취보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쌓인 신뢰와 의리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성취의 기쁨이 컸다면, 지금은 함께했던 사람들을 돌아보고 감사하며 그 인연을 이어가는 즐거움이 크다. 이는 필자가 추구하는 고은층의 유유자작(悠悠自作)하는 삶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한국 테크노파크에 뿌린 씨앗은 지역혁신의 결실로 자라났고, 그 과정에서 맺어진 인연은 세월을 넘어 의리와 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업의 성과는 역사에 남고, 사람의 의리는 마음에 남는다. 필자는 지난날 함께 씨앗을 뿌리고 가꾸었던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그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 유유자작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원전: 이성근. 「한국 테크노파크의 탄생과 국가시범 경북테크노파크의 선정과 유치」. 『늘푸른 나무: 영남대학교 명예교수회지』 제12호. 영남대학교 명예교수회. 2023. 2. 15. pp. 250–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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