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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의 인간형을 새롭게 설계하다: 유유자작(悠悠自作)의 네 가지 기본형과 여덟 가지 실천형"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같은 고은층, 서로 다른 삶의 모습


필자는 지금 칠십 중반의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관리하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며,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동안 필자는 고은층의 삶에 관하여 여러 차례 글을 써 왔다. 고은층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직업에서 은퇴한 사람이 아니다. 오랜 세월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받은 은혜를 이웃과 사회에 나누며 품격 있게 살아가는 생애계층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고은층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운동을 하고 건강을 가꾸며 즐거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자연과 어울리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또 어떤 사람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보람을 얻고, 어떤 사람은 가족과 이웃을 만나고 봉사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고은층의 삶을 어떠한 기준에 따라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이나 건강,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만으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할까? 아니면 인생 후반기에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에 따라 인간형을 구분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그동안 강조해 온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생활철학을 바탕으로 고은층의 인간형을 새롭게 유형화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유유와 자작이라는 두 가지 삶의 기준에 따라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을 설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여덟 가지 인간형으로 구체화하려 한다.
이러한 유형화는 사람을 구분하고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고은층이 자신의 생활방식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인생 후반기의 모습을 설계하기 위한 하나의 제안이다.

유유자작, 고은층 인간형의 생활철학: 유유와 자작, 삶을 가꾸는 두 가지 기준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기본적인 생활철학은 유유자작(悠悠自作)이다.
유유자작은 조급함 없이 여유롭고 유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고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한가롭게 지내거나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상태를 넘어선다. 자신의 몸과 마음, 시간과 일상, 일과 관계를 스스로 살피고 조절하면서 인생 후반기의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생활철학이다.

그동안 필자는 고은층을 생애적 차원, 유유자작적 차원, 성찰적 차원, 관계·참여적 차원, 나눔·환원적 차원에서 이해해 왔다. 이는 인생 전반기에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그 성과를 가족과 이웃, 사회에 나누며 살아가는 고은층의 생애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은층의 삶은 축적(蓄積)에서 유유자작(悠悠自作)을 거쳐 환원(還元)으로 이어지는 생애적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축적이 지난날의 경험과 지혜를 쌓아 온 과정이라면, 유유자작은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환원은 그렇게 가꾸어진 삶의 가치와 성과를 다른 사람과 사회에 나누는 과정이다.

이러한 기존 논의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고은층의 삶을 실천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유유와 자작을 두 가지 기본적인 생활기준으로 설정하고, 이에 따른 인간형을 유형화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유유(悠悠)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며 여유롭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삶의 기준이다. 건강을 지키고 마음을 수련하며, 자연 속에서 회복하고, 배움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삶을 깊이 있게 가꾸는 데 중점을 둔다.
유유는 단순히 느리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형편을 살피면서 지나친 욕심과 경쟁을 내려놓고, 꼭 필요한 것과 소중한 것을 선택하여 삶의 균형을 이루는 태도이다. 여기에는 자유와 절제, 여유와 성찰의 조화가 요구된다.

다음으로 자작(自作)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실천하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삶의 기준이다. 일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개선하며, 새로운 목표와 일을 도모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생활방식이다.
자작 역시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필요한 도움은 받아들이되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과 결정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자신만을 위한 삶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삶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유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가꾸는 내적 태도에 중점을 둔다면, 자작은 그 삶을 실제로 설계하고 실천하는 주체적 활동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유유와 자작은 서로 분리되거나 대립하는 기준이 아니다. 유유 없는 자작은 지나친 활동과 성취에 치우칠 수 있고, 자작 없는 유유는 여유와 안락함에 머무를 수 있다. 따라서 두 기준이 조화를 이룰 때 고은층의 생활철학인 유유자작은 더욱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된다.
결국 유유자작은 자신의 삶을 돌보고 가꾸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생활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은층의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 유유와 자작에서 찾는 네 가지 삶의 지향

필자는 고은층의 생활철학인 유유자작을 유유와 자작이라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삶의 기준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유의 기준에서는 심신수련형과 치유학습형을, 자작의 기준에서는 사업도모형과 관계나눔형을 설정하여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으로 유형화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네 가지 인간형은 두 기준을 서로 교차시켜 현실의 사람들을 배타적인 집단으로 구분한 것이 아니다. 유유와 자작이라는 하나의 생활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네 가지 기본적인 삶의 지향을 의미한다.
또한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이란 현실의 고은층이 반드시 네 집단으로 나뉜다는 뜻이 아니다. 고은층이 어떠한 가치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고 만들어 갈 것인가에 관한 개념적 유형이며, 인생 후반기의 바람직한 생활방향을 제시하는 규범적 인간형이다.

첫째, 심신수련형(心身修鍊型) 인간이다.

심신수련형은 건강한 몸과 평온한 마음을 가꾸면서 인생 후반기의 삶을 안정되고 균형 있게 유지하려는 인간형이다.
고은층에게 건강은 중요한 생활자산이다. 그러나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일만큼 마음을 평온하게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 신체기능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조절하고, 감사와 절제, 인내와 배려의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심신수련형은 건강과 마음의 수련을 통해 자기관리와 내적 성숙을 지향한다. 다만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이러한 인간형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여건에 맞게 몸과 마음을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 역시 심신수련형의 삶을 실천할 수 있다.

둘째, 치유학습형(治癒學習型) 인간이다.

치유학습형은 자연과 생활환경 속에서 몸과 마음의 회복을 도모하고, 지속적인 배움과 성찰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성장시키려는 인간형이다.
인생 후반기에는 신체적 기능의 변화뿐 아니라 직업과 사회적 역할의 축소, 인간관계의 변화 등 다양한 생애적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자연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받아들이며, 지나온 삶을 성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치유란 반드시 질병을 치료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과 휴식, 문화와 학습을 통해 몸과 마음의 안정과 회복을 도모한다는 생활적 의미를 갖는다.
치유학습형은 자연과의 교감, 배움과 성찰을 통해 변화하는 삶에 적응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을 지혜로 바꾸고,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 간다.

셋째, 사업도모형(事業圖謀型) 인간이다.

사업도모형은 인생 후반기의 생활을 스스로 관리하고 개선하며, 자신의 능력과 여건에 맞게 새로운 일과 목표를 계획하고 실천하려는 인간형이다.
여기에서 사업이란 반드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사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일에서부터 새로운 취미와 여가활동, 농사와 창작, 그리고 사회적 활동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까지 폭넓게 포함한다.
인생 전반기가 직업과 가족을 중심으로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시기였다면, 인생 후반기는 자신의 가치와 관심에 따라 새로운 일을 선택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고은층에게는 현재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도전하고 실천하는 일도 소중하다. 다만 새로운 일의 성과보다는 스스로 계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얻는 자율성과 보람에 더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다.
사업도모형은 자신의 삶을 관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남아 있는 시간과 자원을 의미 있는 일에 활용하는 주체적인 인간형이다.

넷째, 관계나눔형 인간이다.

관계나눔형은 가족과 선린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평생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가려는 인간형이다.
인간의 삶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인생 후반기에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보다 누구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가 더욱 중요해진다.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랜 친구와 따뜻하게 소통하며, 선린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은 고은층의 소중한 생활자산이다. 나아가 자신의 경험과 지혜, 시간과 재능을 다음 세대와 지역사회에 나누는 일은 고은층의 사회적 역할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좋은 관계는 일방적인 도움이나 희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삶과 선택을 배려하는 가운데 지속된다.
관계나눔형은 관계의 형성과 유지에 머무르지 않고 배려와 협력, 봉사와 환원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인간형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네 가지 인간형은 각각 심신의 균형, 회복과 성장, 생활의 주체성, 관계와 나눔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다른 인간형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네 가지는 고은층이 지향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삶의 방향이며, 한 사람의 생활 속에서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고은층의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 네 가지 삶의 지향을 일상에서 실천하다

앞서 제시한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은 고은층의 기본적인 삶의 지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천적 인간형은 그러한 지향이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설명한다.
필자는 네 가지 기본 인간형을 각각 두 가지 실천유형으로 구체화하여 모두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심신수련형의 건강우선형과 마음수련형이다.

건강우선형은 신체건강과 생활의 활력을 우선적인 관심으로 삼는 인간형이다. 걷기와 산행, 파크골프와 스포츠, 근력운동과 건강한 식생활 등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며 일상생활의 활력을 유지한다.
중요한 것은 운동량이나 체력의 우열을 가리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신체조건과 건강상태에 맞게 꾸준히 움직이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하는 데 의미가 있다.

마음수련형은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온과 내적 성숙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명상과 기도, 사색과 독서, 자기성찰과 감사의 생활을 통해 마음을 가꾸고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
인생 후반기에는 지난날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 못지않게 아쉬움과 후회, 상실과 변화에 대한 수용도 중요하다. 마음수련은 지나온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더욱 평온하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건강우선형이 몸을 돌보는 활동에 중점을 둔다면, 마음수련형은 마음의 안정과 수양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그러나 건강한 몸과 평온한 마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두 유형은 상호보완적이다.

둘째, 치유학습형의 자연치유형과 성찰학습형이다.

자연치유형은 자연과 어울리며 몸과 마음의 안정과 회복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숲길 걷기와 산행, 텃밭 가꾸기와 농사, 정원생활과 생태체험 등을 통해 자연의 변화와 생명력을 느끼며 살아간다.
자연은 고은층에게 단순한 휴식공간이 아니다. 자연의 순환과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조급함을 내려놓으며, 일상의 활력을 회복하는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고 생명을 돌보는 일은 고은층에게 새로운 생활의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준다. 자연을 이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성찰학습형은  지나온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지속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인간형이다. 독서와 글쓰기, 외국어와 디지털학습, 예술활동과 평생교육 등이 대표적인 실천활동이다.
인생 후반기의 학습은 새로운 자격이나 능력을 얻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정리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시야를 넓히며,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기계발은 성찰학습형의 중요한 실천영역이다. 배움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찰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지혜로 바꾸는 것이 성찰학습형의 삶이다.

셋째, 사업도모형의 유지개선형과 미래설계형이다.

유지개선형은 현재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불편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는 인간형이다.
건강과 주거환경을 관리하고, 가계와 생활시간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며, 일상의 습관과 활동방식을 자신의 형편에 맞게 조정하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고은층의 자작은 반드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유지해 온 생활을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며 만족스럽게 가꾸는 일도 중요한 자작의 실천이다.
특히 신체기능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일상을 조정하고 개선하는 일은 인생 후반기의 자조성과 생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래설계형은 자신의 관심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와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인간형이다.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거나 농사와 창작활동을 시작 또는 계속하며, 새로운 생활공간이나 사회적 역할을 설계하는 일이 여기에 포함된다.
인생 후반기라고 해서 미래를 계획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준비한다는 점에서 미래설계는 고은층의 중요한 생활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래설계는 반드시 거창한 목표나 큰 성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작은 일을 새롭게 시작하거나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꿈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유지개선형이 현재의 생활을 더욱 알차게 가꾸는 인간형이라면, 미래설계형은 앞으로의 생활에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를 더하는 인간형이다.

넷째, 관계나눔형의 관계동행형과 나눔봉사형이다.

관계동행형은 가족과 선린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부부나 선린과 함께 산책하고 여행하며, 운동과 소풍을 즐기고, 공부와 취미활동을 함께하는 일은 관계동행형의 대표적인 실천이다.
고은층에게 좋은 관계란 단순히 자주 만나거나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거나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며, 필요할 때 함께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특히 인생 후반기의 관계는 경쟁이나 이해관계보다 신뢰와 배려, 동행과 공감에 더욱 큰 가치를 둘 필요가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에게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위안이 되는 관계가 바람직하다.

나눔봉사형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 시간과 재능을 다른 사람과 사회에 나누는 인간형이다. 자원봉사와 재능기부, 후배와 청년세대의 멘토링, 지역사회 활동과 공익적 참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나눔은 반드시 물질적 기부나 큰 성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웃의 어려움을 살피고,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자신의 경험을 필요한 사람에게 전하는 작은 실천도 의미 있는 나눔이다.
고은층이 평생 축적해 온 경험과 지혜는 개인의 소중한 자산이면서 동시에 다음 세대와 사회에 전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사회에 환원하는 일은 고은층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품격 있게 만든다.

관계동행형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와 동행에 중점을 둔다면, 나눔봉사형은 그러한 관계를 배려와 공헌으로 확장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렇게 보면 고은층의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은 건강우선형, 마음수련형, 자연치유형, 성찰학습형, 유지개선형, 미래설계형, 관계동행형, 나눔봉사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단절된 여덟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고은층의 일상에서 서로 만나고 결합하며 다양한 생활방식으로 나타나는 여덟 가지 실천의 모습이다.

인간형의 조화와 변화, 삶의 품격을 가꾸다: 어느 유형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필자가 제안한 고은층의 인간형은 한 사람을 어느 한 유형으로 고정하거나, 유형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한 사람의 삶은 여러 가지 인간형이 함께 나타나는 복합적인 모습이다.
필자의 생활경험을 돌아보아도 그러하다. 서귀포에서 해안과 숲길을 걷거나 파크골프를 즐기는 일은 건강우선형과 자연치유형의 활동이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는 관계동행형의 실천이기도 하다.
한림 금능 근석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일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더불어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면서 스스로 생산적인 일을 만들어 가는 생활이다. 함께 농사짓고 수확물을 나누는 과정에서는 관계동행형과 나눔봉사형의 가치도 발견할 수 있다.
독서와 글쓰기, 칼럼과 저술활동은 성찰학습형의 실천이면서 동시에 미래설계형의 활동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다양한 지인들과 공유하는 일은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도 갖는다.
이처럼 하나의 생활활동에도 여러 인간형의 특성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같은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선택한 동기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서 고은층의 인간형에 관한 세 가지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인간형은 개인의 가치관과 생활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건강과 경제적 조건, 가족관계와 주거환경, 관심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같은 생활방식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누구는 조용히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삶을 선택할 수 있고, 누구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동적인 생활을 추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여건과 가치관에 맞는 생활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가꾸어 가는 일이다.

둘째, 인간형은 생애과정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고은층에 들어선 초기에는 건강관리와 새로운 일에 관심을 두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수련과 관계, 나눔과 봉사에 더 큰 가치를 둘 수도 있다. 반대로 새로운 배움이나 활동을 뒤늦게 시작하면서 미래설계형의 특성이 강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고은층의 인간형은 한 번 정해지면 변하지 않는 고정된 유형이 아니라, 생애과정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정되고 발전하는 유연적인 생활방식이다.

셋째, 인간형의 차이는 삶의 우열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활동을 많이 하거나 새로운 일을 계속 만들어 가는 사람이 반드시 더 바람직한 고은층인 것은 아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도 자신의 가치와 여건에 맞게 삶을 선택하고 가꾸어 갈 수 있다.
고은층의 주체성은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는 신체적 독립성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중요한 생활의 선택에 참여하는 것 역시 자작의 중요한 실천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떠한 인간형에 해당하는가를 판정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생활방식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를 조화롭게 실천하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은층의 삶은 유유와 자작, 자기돌봄과 사회적 관계, 개인적 만족과 공동체적 공헌이 서로 어우러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고은층의 인간형은 개인의 생활방식에 관한 논의에 머물지 않는다. 지역사회가 고은층의 다양한 삶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건강과 마음수련을 위한 생활체육과 평생교육, 자연과 함께하는 치유·생태 프로그램, 새로운 일을 위한 사회참여와 창작활동, 관계와 나눔을 위한 공동체 활동과 자원봉사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물론 이번에 제안한 네 가지 기본형과 여덟 가지 실천형은 필자의 생활경험과 가치관, 그동안의 고은층론을 바탕으로 구성한 개념적·규범적 유형화이다. 현실의 고은층을 조사하여 실증적으로 검증한 분류체계는 아니다.
앞으로 관련 생활사례를 축적하고 경험적 연구를 통해 각 인간형의 특성과 상호관계를 검토한다면 고은층론의 이론적·실천적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고은층의 인간형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다.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각자가 자신의 인생 후반기를 더욱 의미 있고 품격 있게 설계하도록 돕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맺음말
어떤 인간형으로 살아갈 것인가?


필자는 그동안 고은층의 삶을 생각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자주 던져 왔다.
우리는 인생 후반기를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정해진 하나의 정답은 없다. 누구는 건강을 가꾸고 마음을 수련하며 살아갈 수 있다. 누구는 자연 속에서 삶의 활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살아갈 수 있다. 또 누구는 자신의 일상을 개선하고 새로운 일을 계획하며 살아가고, 누구는 좋은 사람들과 동행하고 이웃과 사회에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을 필자는 유유자작이라는 생활철학 아래 네 가지 이론적·규범적 인간형과 여덟 가지 실천적 인간형으로 유형화해 보았다.

그러나 고은층의 삶은 여덟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건강과 여건, 관심과 가치관에 따라 여러 생활방식을 조화롭게 구성하고, 변화하는 생애과정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 가는 데 의미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유유자작하는 고은층의 일상도 그러하다. 자연과 어울리고 사람들과 함께하며, 일하고 놀고 배우며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고은층의 삶은 혼자서 완성하는 작품이 아니다. 가족과 선린, 자연과 사회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의 삶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인생 전반기가 배우고 일하며 축적하는 삶이었다면, 인생 후반기는 축적된 경험을 지혜로 바꾸고, 그 지혜로 자신과 선린의 삶을 가꾸며, 받은 은혜를 나누는 삶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가 제안하는 고은층의 인간형은 어떤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기준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여건에서 몸과 마음을 돌보고, 배우고 성찰하며, 일상을 새롭게 만들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유유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고, 자작의 실천으로 새로운 일상을 만들며,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선린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그것이 필자가 지향하는 유유자작(悠悠自作)의 고은층이며,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고은층의 인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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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 부부의 행복론"

이성근

서로를 피곤하게 하지 않고
이기려 들지 않으며
진실을 감추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때
고은의 행복은 살며시 찾아든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지금 고은층(高恩層)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날의 부부생활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아내와 어떻게 하면 더욱 행복하고 품격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부부의 행복이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이기거나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지치게 하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소통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려 애쓰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을 다섯 행의 짧은 글에 담아 '고은층 부부의 행복론'이라는 디카시로 정리해 보았다. 고은층의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이기는 지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지혜이며, 행복은 억지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배려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여러 국정 현안과 논쟁을 지켜보면서 부부의 행복에 관한 이러한 생각이 국민의 행복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 사이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일이 중요하듯이 정치에서도 국민의 마음을 존중하고 헤아리는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피곤하게 하지 않고, 국민을 이기려 들지 않으며, 국민에게 진실을 감추지 않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국민의 신뢰와 행복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물론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러한 자세와 함께 실질적인 정책과 책임 있는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국 부부의 행복이든 국민의 행복이든 그 바탕에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 이기는 것보다 이해하는 것, 앞서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 자신의 뜻을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 부부의 행복론이자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행복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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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학무실의 만남은 끝나지 않았다: 영남대 이실연과 함께한 청풍호 가을소풍"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가을소풍에서 다시 만난 근학무실의 인연


2026년 10월 5일, 영남대학교 이론과 실천연구회(약칭 이실연) 회원들과 함께 청풍명월의 고장 충북 제천과 단양으로 가을소풍을 다녀왔다. 이날 소풍에는 12명이 함께했다. 아침 8시 대구 월드컵경기장 주차장을 출발하여 저녁 9시 30분에 되돌아왔으니, 무려 13시간 30분에 걸친 하루의 긴 여정이었다.

이번 소풍은 오전에는 충주호 유람선을 타고 청풍호의 산수경관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청풍호반케이블카를 이용하여 비봉산 정상에서 호수와 산자락을 내려다보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단양 영춘의 구인사를 찾는 일정이었다. 물길과 하늘길, 산길을 따라 자연과 문화를 만나는 여행이었다. 특히 같은 청풍호를 물 위에서 올려다보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바라보는 위치와 관점에 따라 풍경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소풍에서 필자에게 더욱 의미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자연경관만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근학무실의 정신으로 맺어진 이실연 회원들과 다시 만나 함께 걷고, 보고, 이야기하며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학위논문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으로 시작한 만남이 정년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으니, 이는 필자의 교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다.

필자는 이러한 만남을 근학무실(勤學務實)의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에 부지런하고 맡은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서로를 기억하고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시작된 배움의 관계가 인생을 함께 나누는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가을소풍은 더욱 뜻깊었다.

청풍호에서 되살아난 세 가지 인연

필자에게 이번 제천과 단양의 가을소풍은 세 가지 인연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하나는 사람의 인연이고, 다른 하나는 장소의 인연이며, 마지막은 전공의 인연이다. 이 세 가지 인연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번 소풍을 통해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졌다.

첫째, 사람의 인연은 이실연 회원들과의 만남이다. 필자는 영남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행정대학원에서 오랫동안 석사학위논문을 지도하였다. 환경대학원에서는 도시계획학 석사학위 취득자 37명과 수료자 4명, 행정대학원에서는 행정학 석사학위 취득자 59명과 수료자 5명을 지도하였다. 당시 특수대학원생들은 대부분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했으므로 학위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필자는 이들의 논문연구를 돕고 선후배 간 정보교류와 상호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이론과 실천연구회를 만들었다.

이실연은 단순한 학위논문 연구모임에 머물지 않았다.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회원들은 서로 교류하며 친목과 배움을 이어갔다. 필자가 정년을 맞은 이후에도 이러한 만남은 계속되고 있다. 학문적 관계가 인간적 신뢰로 발전하고, 그 신뢰가 오랜 우정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번 가을소풍 역시 이러한 인연이 만들어 낸 소중한 자리였다.

둘째, 장소의 인연은 단양과 제천에 얽힌 지난 활동의 기억이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지역발전정책의 하나였던 신활력사업과 관련하여 단양의 지역자원과 발전방안을 자문한 인연이 있다. 당시 단양팔경의 관광자원과 단양 육쪽마늘의 지역특산물 가치를 활용한 지역발전의 가능성을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또한 제천은 필자가 교육부 파견 학교법인 순총학원 이사장으로 재임할 당시 학교 행사와 졸업식 등을 위해 여러 차례 방문했던 곳이다. 따라서 이번 여행은 낯선 지역을 처음 둘러보는 소풍이라기보다 과거의 활동과 경험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셋째, 전공의 인연은 충주댐과 지역개발, 자원관리의 문제이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지역개발과 정책계획을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수자원개발과 환경관리, 개발과 보전의 관계에 관심을 가져왔다. 충주댐은 홍수조절과 용수공급, 수력발전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다목적댐이다. 1985년 준공된 충주댐으로 광대한 인공호수가 형성되었으며, 오늘날 이 호수는 지역의 주요 관광자원이 되었다.

그런데 같은 호수를 두고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충주에서는 충주호, 제천에서는 청풍호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며, 단양호라는 이름도 쓰인다. 하나의 호수를 두고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에서도 장소에 대한 지역사회의 애착과 정체성을 읽게 된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느 지역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상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충주댐 건설은 수자원개발의 성과와 함께 수몰지역 주민들의 삶과 문화유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날 청풍문화유산단지(옛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였던 지역의 문화유산을 이전·복원하여 보존하고 있는 역사문화 공간이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수자원개발의 성과뿐 아니라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기억과 아픔도 함께 남아 있다.

따라서 지역개발은 새로운 시설을 만들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개발의 성과와 함께 그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과 상실, 보전해야 할 자연과 문화의 가치도 살펴보아야 한다. 필자는 청풍호를 바라보며 개발과 보전, 성과와 희생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역계획의 기본 원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물길에서 올려다본 청풍호의 풍경

이번 소풍에서 처음 만난 청풍호의 풍경은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물길의 풍경이었다.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에 올라 호수의 물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주변의 산과 바위, 절벽과 숲을 가까이 바라보았다. 호수의 수면에서 산자락을 올려다보는 미시적·상향적 조망이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청풍호의 대표적인 풍경은 구담봉과 옥순봉이다. 단양팔경에 속하는 구담봉은 거북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기암절벽으로 유명하다. 옥순봉은 마치 대나무 싹이 솟아오르듯 희고 높은 바위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주변의 제비봉과 말목산, 옥순대교가 호수와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 보였다. 물 위에서 올려다보니 산의 높이와 절벽의 웅장함이 더욱 가까이 느껴졌다.

이 일대에는 자연경관만큼이나 흥미로운 인문적 이야기도 전해진다. 특히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두향의 인연은 구담봉과 장회나루 주변에 얽힌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두향의 묘가 전해지는 강선대 일대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자연은 단순히 산과 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역사와 기억까지 함께 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유람선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자 햇빛을 받은 호수의 수면이 반짝거렸다. 물가의 바위와 나무, 가마우지와 왜가리 등 물새들이 어우러진 풍경에서도 자연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작은 바위와 나무 한 그루, 잔잔한 물결 하나에도 눈길이 머물렀다. 전체보다는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는 미시적 관찰의 즐거움이었다.

필자는 평소 지역을 연구할 때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 작은 변화와 주민의 생활을 살펴보는 미시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아무리 큰 개발계획이라도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자연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계획이 되기 어렵다. 지역의 실상은 통계와 지도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며, 현장에 다가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풍호를 가까이 바라본 경험은 단순한 자연 감상에 머물지 않았다. 작은 풍경을 자세히 살피는 일이 지역과 사람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물길에서 올려다본 청풍호는 필자에게 현장 중심적 사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풍경이었다.

하늘길에서 내려다본 청풍호의 풍경

유람선에서 청풍호를 가까이 바라본 뒤에는 청풍호반케이블카를 타고 비봉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청풍호반케이블카는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서 해발 531m의 비봉산 정상까지 약 2.3km 구간을 운행한다. 물길에서 산을 올려다보던 시선이 이번에는 하늘길에서 호수와 산자락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케이블카가 서서히 올라갈수록 발아래 청풍호의 모습도 달라졌다. 가까이에서는 서로 떨어져 보이던 산과 호수가 하나의 큰 경관으로 연결되었다. 호수는 산자락 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지고, 크고 작은 산봉우리와 능선들은 겹겹이 펼쳐졌다. 비봉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니 청풍호를 '내륙의 바다'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청풍호가 개별적인 바위와 절벽, 물결과 숲의 풍경이었다면, 케이블카와 비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청풍호는 산과 물, 자연과 인공시설이 하나로 연결된 전체적인 풍경이었다. 같은 호수이지만 보는 위치와 높이에 따라 풍경의 규모와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조망의 차이를 미시적·상향적 시선과 거시적·하향적 시선에 비유해 보았다.

지역개발과 정책계획에서도 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접근은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 미시적 접근이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와 개별 요소를 살피는 일이라면, 거시적 접근은 지역 전체의 구조와 기능,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일이다. 아래에서 바라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고,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이해되는 것이 있다. 두 시선이 함께할 때 지역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청풍호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이러한 원리가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지만, 멀리서 보면 그 일이 삶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때로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피고,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 넓게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하다. 특히 인생의 후반기에는 지난날의 경험을 돌아보며 부분과 전체, 현재와 과거를 함께 바라보는 지혜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번 청풍호반케이블카의 경험은 자연을 감상하면서 지역을 이해하는 관점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같은 대상이라도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였다.

한편 소풍길에 만난 '고메막국수'도 기억에 남았다. 고구마 전분과 메밀을 활용한 이 음식은 지역의 농산물을 음식문화와 연결한 사례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지역의 자연과 특산물이 관광과 음식으로 이어질 때 지역자원의 활용가치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 작은 음식 하나에서도 지역자원을 새로운 가치로 연결하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산길에서 짧게 만난 구인사의 풍경

청풍호의 물길과 하늘길을 둘러본 뒤에는 단양군 영춘면에 자리한 구인사를 찾았다.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굽이굽이 산길을 달려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루 동안 여러 곳을 둘러본 뒤라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다. 이번 구인사 방문은 물길에서의 미시적 조망과 하늘길에서의 거시적 조망에 이어, 짧은 시간에 주요 풍경을 살펴보는 주마간산(走馬看山)식 방문이었다.

구인사는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으로, 1945년 상월원각대조사가 수행도량을 마련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는 소백산 자락의 깊은 계곡을 따라 수많은 전각이 층층이 자리 잡은 웅장한 사찰로 발전하였다. 경내에 들어서자 산자락을 따라 높이 이어지는 전각들의 규모와 장엄함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산사의 소박하고 고즈넉한 모습과는 또 다른 인상을 주었다.

가까운 법당에서는 청아한 반야심경 독송 소리가 흘러나왔다. 웅장한 전각과 산사의 고요함, 그리고 맑게 울려 퍼지는 경전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짧은 방문에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좀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으나 날이 저물고 있어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결국 아쉬움 하나를 남긴 채 산문을 나서야 했다.

구인사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행한다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전통으로도 알려져 있다. 필자는 이러한 정신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근학무실의 정신과도 일정 부분 통한다고 생각한다. 배움과 수행이 일상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학문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삶에서 실천되어야 하며, 신앙과 수행 역시 일상의 생활과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필자가 지도했던 이실연 회원들은 대부분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이론을 배우고 현장에서 실천해 온 사람들이다. 낮에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고, 일과를 마친 뒤에는 배움과 연구에 힘썼던 이들의 모습이 구인사의 주경야선 정신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비록 종교적 수행과 학문적 연구는 그 목적과 내용이 다르지만, 배움과 실천을 함께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통하는 의미가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구인사에서 느꼈던 짧은 만남과 아쉬움을 몇 줄의 디카시로 정리하였다. 제목은 「해 질 무렵 구인사」이다. 특히 마지막 두 행에 그날의 마음을 담았다.

서산의 해는 벌써 기울고
아쉬움 하나 두고 산문을 나선다.


주마간산식 방문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 의미까지 얕아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짧은 순간의 만남이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이번 구인사 방문이 그러했다.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웅장한 전각과 맑은 독경 소리, 그리고 저물어 가는 산사의 풍경은 다음에 다시 찾아 좀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을 남겼다.

맺음글
풍경은 지나가도 인연은 남는다

이번 영남대 이실연의 청풍호 가을소풍은 아침 8시에 시작하여 저녁 9시 30분에 끝난 긴 하루의 여정이었다. 청풍호의 물길에서는 자연을 가까이 바라보았고, 비봉산의 하늘길에서는 자연을 넓게 내려다보았다. 구인사로 이어진 산길에서는 짧은 시간 속에서도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물길과 하늘길, 산길에서 만난 서로 다른 풍경은 필자에게 자연과 지역,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일깨워 주었다.

이번 소풍은 사람과 장소, 전공이라는 세 가지 인연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의 인연에서는 오랜 세월 이어진 배움과 신뢰의 가치를 떠올렸다. 장소의 인연에서는 지난날의 활동과 기억을 되살렸다. 전공의 인연에서는 개발과 보전, 부분과 전체를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는 지역계획의 원리를 되새겼다. 하나의 소풍길에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만남, 그리고 인생의 성찰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이번 소풍에서 가장 오래 남을 것은 함께한 사람들의 얼굴과 이야기일 것이다. 근학무실의 마음으로 학문을 배우고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서로를 기억하고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사람의 인연은 단순히 만나는 횟수나 함께 보내는 시간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이어질 때 그 인연의 가치는 더욱 깊어진다.

필자는 근학무실의 '무(務)'를 자신의 소명과 책무에 충실하는 자세로, '실(實)'을 진정성 있는 실천과 실효성을 추구하는 태도로 정의해 왔다. 배움에 부지런하고 맡은 일에 충실하는 근학무실의 정신은 젊은 시절의 학문과 직장생활에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정년 이후의 삶에서도 계속 배우고, 경험을 나누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삶의 원리이다.

특히 고은층(高恩層)에 들어선 필자에게 오래된 인연은 더욱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젊은 시절에는 배움과 일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었다면, 이제는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서로의 삶을 격려하는 관계가 중요해진다. 과거에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이 오늘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풍길에 동행하는 모습에서 관계의 지속성과 삶의 품격을 생각하게 된다.

오랜 세월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으로 시작한 관계가 이제는 함께 소풍을 다니며 인생의 경험과 즐거움을 나누는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필자가 생각하는 교육의 보람이자 근학무실의 만남이 지닌 참된 가치이다. 교실에서의 배움은 끝났어도 인생에서의 배움은 계속되고, 학위논문 지도는 끝났어도 사람 사이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은 계절과 함께 지나가겠지만, 이실연 회원들과 나눈 하루의 추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배움은 계속되고, 신뢰는 깊어지며, 좋은 인연은 이어진다.

근학무실의 만남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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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무렵 구인사

이성근

굽이굽이 산길
구인사가 산자락에 웅장히 서 있다
가까운 법당에서
반야심경 맑은 소리 흘러오는데
서산의 해는 벌써 기울고
아쉬움 하나 두고 산문을 나선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영남대 이실연 회원들과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과 단양으로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충주호 유람선을 타고 호반과 산이 어우러진 가을 풍광을 바라보고, 이어 청풍호반 케이블카에 올라 정상에서 굽이굽이 겹겹이 이어진 호반과 산자락을 다시 눈에 담았다.

오후에는 단양 영춘에 자리한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 구인사를 찾아갔다.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굽이굽이 산길을 달려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경내에 들어서자 산자락을 따라 층층이 자리 잡은 전각들의 웅장한 모습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가까운 법당에서는 청아한 반야심경 소리가 들려와 저녁 무렵 산사의 분위기를 더욱 깊게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구인사가 지닌 규모와 장엄함, 그리고 기도와 수행의 공간이 주는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으나 날이 저물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래서인지 짧은 만남 뒤에 남은 아쉬움은 오히려 더 컸다. 언젠가 다시 찾아 천천히 둘러보리라는 마음을 남기며, 해 질 무렵 구인사에서 느낀 순간을 사진과 몇 줄의 시로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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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로 기억하는
어머니의 사랑"


이성근


말은 삼사일언으로 한 번만 하고
노래는 가무유절로 두 절만 부르고
인생은 춘하추동 네 계절을 따르며
성령강림을 오순절로 기념하고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구절초로 기억한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어제 오전,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평생 봉직한 영남대 캠퍼스 산책길을 걸었다. 걷는 도중 활짝 핀 구절초(九節草)를 만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사진을 찍었다.

구절초를 바라보는 순간 꽃말인 ‘어머니의 사랑’이 떠올랐다. 말에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의 절제가 있고, 노래에는
가무유절(歌舞有節)의 절도가 있으며, 인생에는 춘하추동의 네 계절이 있고, 신앙에는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오순절(五旬節이 있다. 문득 이처럼 서로 다른 의미의 ‘절’들이 구절초의 ‘절’과 하나의 언어적 연상으로 이어졌다.

그 끝에서 평생 가슴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가르침을 떠올렸다. 그래서 구절초 한 송이에 어머니의 사랑을 담아 이 디카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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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교수의 인생사색』 전 7권 종합비평: 삶을 개념화하고 ‘고은층론’으로 나아간 학자적 인생에세이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AI 활용 및 작성 안내**
이 글은 『이성근 교수의 인생사색』 전 7권의 저자가 자신의 저작을 다시 돌아보며 작성한 자기 비평적 종합검토이다. 필자가 주요 질문과 관점, 자료와 평가 방향을 제시하고, AI ChatGPT와의 반복적인 대화와 검토를 통해 초안의 구성과 표현을 수정·보완하였다.


서문
삶을 다시 하나의 사유 대상으로 삼다


『이성근 교수의 인생사색』 전 7권은 한 학자로서 저자가 정년 이후 자신의 삶을 다시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학문과 삶, 관계와 가정, 믿음과 노년의 문제를 개념화하고 체계화해 온 기록이다. 일반적인 수필집이라고 하기에는 개념과 논리의 틀이 비교적 뚜렷하다. 그러나 철학서나 학술서라고 하기에는 저자의 실제 삶과 경험이 글의 중심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리즈는 학자의 사고방식과 한 개인의 생애 경험이 결합된 ‘학자적 인생에세이’이자 실천적 생활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경험에서 의미를 찾아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다. 다시 독자가 자신의 일상에서 생각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삶의 원리로 되돌려 놓으려는 데 이 저술의 특징이 있다.

전 7권을 차례로 읽으면 저자의 관심이 단순한 인생계획과 자기 관리에서 출발하여 관계와 가정, 믿음과 공존을 거쳐 인생 후반기의 삶으로 점차 확대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리즈는 서로 독립된 일곱 권의 책이면서 동시에 저자의 생애와 사유가 함께 변화해 온 연속적인 기록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인생을 설계하는 데서 성찰하는 데로

전 7권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저자의 관심과 사유가 점차 확대되고 심화되는 과정이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난다. 1권은 개념과 계획을 중심으로 인생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기본적인 틀을 제시한다. 2권에서는 태도와 습관, 지향가치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천적 질문이 본격화된다. 이어 3권에서는 자기관리와 멘토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개인의 내면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삶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 시야가 넓어진다.

4권에 이르면 호기심과 관계, 교수인생 등 자전적 요소가 더욱 뚜렷해진다. 앞선 권들이 비교적 일반적인 인생론의 성격을 띠었다면, 이때부터는 저자 자신의 구체적인 삶과 경험이 사유의 중요한 재료가 된다. 5권에서는 원칙과 통찰, 회복과 공존이 강조되면서 오랫동안 삶에서 지켜 온 기준과 태도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6권에서는 믿음과 지혜, 가정과 사랑으로 사색의 범위가 다시 확장된다. 자기 관리와 사회적 관계를 넘어 삶을 지탱하는 내면적·가족적 토대까지 아우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7권에서는 은퇴 이후의 삶과 건강, 놀이와 배움, 인생설계가 폭넓게 다루어진다.  마침내 ‘고은층(高恩層)’이라는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관점으로 나아간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전 7권은 인생을 계획하고 관리하려는 데서 출발하여, 삶을 성찰하고 관계와 가정으로 시야를 넓혀 간다. 따라서 마지막 7권은 궁극적으로 인생 후반기의 삶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하나의 연속적인 사유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일관된 질문, 확장되는 삶의 시야

이 시리즈의 중요한 강점 가운데 하나는 문제의식의 일관성이다. 7권에 걸쳐 다양한 주제가 등장하지만 저자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질문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남은 삶을 어떻게 관리하고 가꾸어 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한다.

주제가 달라져도 질문의 중심에는 언제나 삶이 놓여 있다. 또한 삶을 우연히 흘러가는 시간으로만 보기보다 스스로 성찰하고 선택하며 가꾸어 가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태도에는 오랜 교수생활과 정책·계획 분야의 연구 경험을 통해 형성된 학자로서 저자의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문제를 발견하고, 원인을 살피고, 기준을 세우며, 대안을 생각하는 방식이 인생에 대한 성찰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삶을 지나치게 계획과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볼 경우 인간의 삶을 도식화하거나 규범화할 위험도 있다. 『인생사색』의 변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한계를 스스로 넓혀 가는 과정이 나타난다는 데 있다. 권수가 거듭될수록 계획과 관리 못지않게 관계와 감사, 믿음과 사랑, 건강과 놀이, 공존과 내려놓음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처음에는 ‘삶을 어떻게 설계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무게가 실렸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계 맺으며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해진다.

이러한 변화는 『인생사색』이 초기의 자기 관리적 인생론에서 점차 관계적·성찰적 생활철학으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일관된 문제의식을 유지하면서도 생애경험에 따라 사유의 폭을 넓혀 왔다는 점이 전 7권의 중요한 흐름이다.

학자의 사고를 일상의 언어로 옮기다

『인생사색』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학문적 사고방식을 일상의 언어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글에는 일정한 사고의 흐름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먼저 하나의 개념이나 문제를 제시하고 그 의미와 기준을 구분한다. 이어 자신의 경험이나 일상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마지막에는 그것이 삶에 주는 의미와 실천의 방향을 정리한다.

행정학과 정책학, 지역개발과 계획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가르쳐 온 학자의 사고구조가 인생에세이에도 자연스럽게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책과 계획에서는 복잡한 현실을 일정한 개념과 기준으로 정리하고, 문제와 대안을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인생사색』에서도 이러한 사고습관은 그대로 이어진다. 다만 연구의 대상이 사회와 정책에서 자신의 삶과 일상으로 옮겨왔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방식은 『인생사색』을 일반적인 회고록과 구별하게 한다. 저자는 경험을 단순한 추억으로 남겨 두기보다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개념화하려 한다. 경험은 생각으로 이어지고, 생각은 개념과 원리로 정리되며, 그 원리는 다시 일상의 실천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인생사색』은 전문적인 철학서나 이론서는 아니지만 나름의 사유 구조를 갖는다. 자신의 삶에서 얻은 경험을 독자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로 전환한다. 다소 추상적인 개념도 가능한 한 일상의 언어와 사례를 통해 풀어내려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학자로서 저자의 사고와 생활인의 경험이 만나는 『인생사색』만의 성격이 형성된다.

후반부에서 뚜렷해지는 저자 고유의 인생론

전 7권 가운데 특히 주목할 부분은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 자신의 목소리와 생애 경험이 더욱 뚜렷해진다는 점이다. 초기 권에서는 인생계획, 태도, 습관, 자기 관리와 같이 비교적 보편적인 인생론이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주제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만큼 기존의 자기 계발서나 일반적인 인생론과 일정 부분 겹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4권 이후에는 교수인생과 관계, 원칙과 기준, 회복과 공존, 믿음과 가정 등 저자 자신의 생애 경험이 본격적으로 결합한다. 추상적인 삶의 원칙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무엇을 지켜 왔는가?’, ‘무엇을 새롭게 깨닫고 있는가?’가 글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글에 개인적인 색채를 더하면서 동시에 시리즈의 독자성을 강화한다.

특히 7권을 전후하여 ‘고은층’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저자 고유의 인생론은 한층 분명해진다. 고은층은 단순히 노인이나 고령자를 대신하여 부르는 새로운 명칭에 머물지 않는다. 인생 후반기에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하며, 오랜 생애경험을 성찰과 지혜로 전환한다.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능한 범위에서 참여와 나눔, 환원을 실천하려는 삶의 관점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생사색』의 의미는 처음부터 완성된 하나의 인생철학을 제시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칠십 이후에도 계속 사색하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애 경험에 맞는 삶의 개념과 언어를 조금씩 만들어 왔다는 데 있다. 즉, 완성된 철학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삶과 함께 형성되어 온 사유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반복을 덜고 권별 정체성을 세우다

전 7권을 종합적으로 읽을 때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보완점은 반복성이다. 개념을 설명하고 사례를 들며, 때로는 고사성어나 동서양의 명언, 성경 구절 등을 인용한다. 그리고 삶의 의미나 교훈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은 독자가 글의 뜻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중요한 생각을 여러 글에서 되풀이함으로써 저자의 가치관과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개별 글이 아니라 전 7권을 하나의 시리즈로 연속해서 읽으면 이러한 반복은 오히려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유사한 개념과 교훈, 인용과 결론이 여러 글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개별 글이나 각 권의 경계가 다소 희미해지는 부분이 있다. 특히 자기 관리, 관계, 감사, 배움, 실천과 같은 핵심 가치가 여러 방식으로 반복될 경우 독자에게 친숙함을 주는 장점과 함께 새로움이 줄어드는 한계도 생긴다.

따라서 앞으로 전 7권을 다시 정리하거나 선집으로 묶는다면 반복되는 개념과 인용, 유사한 서론과 결론은 과감하게 덜어낼 필요가 있다. 대신 각 권에서만 읽을 수 있는 경험과 사유, 저자의 생애를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글을 보다 전면에 내세우는 편이 좋다. 지금까지가 삶을 계속 기록하며 ‘더 쓰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축적된 글 가운데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선택하는 ‘덜어내고 남기는 과정’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각 권의 차별성과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인생사색 1』에서 『인생사색 7』까지 이어지는 통일된 제목은 시리즈의 연속성을 보여 주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권수가 늘어나고 각 권에서 다루는 주제와 저자의 사유도 변화하면서 숫자만으로는 각 권의 특징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려워졌다.

특히 4권 이후에는 자전적 성찰과 교수인생, 원칙과 공존, 믿음과 가정, 고은층과 인생 후반기 등 비교적 뚜렷한 변화가 나타난다. 따라서 향후 개정하거나 전집을 새롭게 구성한다면 각 권의 중심 내용을 담은 부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하다. 예를 들어 7권에 ‘고은층, 인생 후반기를 다시 설계하다’와 같은 부제를 붙인다면 그 권의 중심 문제를 제목에서부터 보다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독자가 자신의 관심에 맞는 책을 쉽게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전 7권을 관통하는 사유의 변화와 발전 과정도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직접출판의 가능성과 편집의 과제

『인생사색』 시리즈가 주문형 출판과 전자책 방식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출간되어 왔다는 점도 이 저술의 성격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완결된 하나의 사상을 제시하기 위해 일시에 집필된 책이 아니다. 저자가 살아가고 생각하며 글을 쓰는 과정과 함께 계속 축적되고 성장해 온 저작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는 필요에 따라 글을 추가하고 수정하면서 후속 권으로 이어 갈 수 있는 직접출판 방식이 『인생사색』의 성격과 잘 맞는다.

직접출판은 저자가 자신의 글을 비교적 자유롭게 기획하고 빠르게 책으로 묶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블로그와 칼럼을 통해 계속 생산되는 글을 한 시기의 기록으로 묶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생애 기록형 저술과도 잘 어울린다.

다만 직접출판에서는 전통적인 출판사가 담당해 온 기획·편집·교정·디자인 등의 상당 부분을 저자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권수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글을 더하는 일 못지않게 기존 글을 선별하고 재배열하며 전체 시리즈의 구조를 정돈하는 편집 작업이 중요해진다. 이제 『인생사색』은 단순히 권수를 늘려 가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축적된 글 가운데 무엇을 대표작으로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를 생각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인생사색』에서 ‘고은층론’으로

전 7권을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볼 때 가장 주목되는 지점은 마지막 권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고은층’이라는 개념이다. 1권에서 시작된 인생의 개념과 계획에 관한 관심은 태도와 습관, 자기 관리와 관계, 교수인생과 원칙, 믿음과 가정을 지나 인생 후반기의 삶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단순히 책의 주제가 달라져 온 것이 아니라 저자의 실제 생애단계에 따라 사유의 중심도 함께 이동해 왔음을 보여 준다.

특히 최근의 고은층에 관한 사유에서는 유유자작(悠悠自作), 품격, 관계, 건강, 놀이, 배움, 나눔과 공헌 등의 주제가 하나의 중심개념 아래 다시 연결되기 시작한다. 이전의 『인생사색』에서 개별적으로 논의되던 삶의 요소들이 이제 ‘고은층’이라는 이름 아래보다 통합적인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사색』 7권을 하나의 종착점으로 보기보다는 앞으로 ‘고은층론’이 형성되는 데 필요한 지적·생활사적 토대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지금까지의 인생사색이 삶의 여러 측면을 하나씩 생각하고 정리하는 과정이었다면, 고은층론은 그동안 축적된 생각을 인생 후반기의 하나의 삶의 관점으로 묶어 가는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인생사색』이 오랫동안 던져 온 중심 질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다면, 고은총론에서는 그 질문이 더욱 구체화된다.
“인생 후반기를 어떤 태도와 관계, 품격과 실천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은 지금까지 축적된 인생사색을 하나의 새로운 삶의 관점으로 연결하는 중심축이 될 수 있다. 또한 고은층이 단순한 명칭의 제안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생활철학이나 생애관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개념의 정의와 구성요소, 실천원리, 다른 노년 개념과의 차이 등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맺음글
삶을 연구하고, 다시 삶으로 돌아오다


『이성근 교수의 인생사색』 전 7권은 한 행정학자이자 지역개발학자가 긴 교수생활과 사회활동을 거친 뒤 자신의 삶을 다시 성찰하고 개념화해 온 기록이다. 초기의 개념과 계획, 태도와 습관, 자기 관리에서 출발한 사색은 관계와 교수인생, 원칙과 공존, 믿음과 가정으로 확대되었다. 마침내 ‘고은층’이라는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삶의 관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책들은 학문적 엄밀성을 앞세운 전문적인 철학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기억과 감상을 기록하는 데 머무는 일반적인 수필집만으로 보기도 어렵다. 자신의 경험을 생각으로 바꾸고, 생각을 개념으로 정리하며, 그 개념을 다시 생활의 실천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학자적 인생에세이’이자 생활철학서에 가깝다.

물론 보완할 점도 있다. 유사한 개념과 교훈이 반복되고 설명적인 문체가 두드러지는 부분이 있다. 각 권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보다 분명하게 할 필요도 있다. 앞으로는 더 많은 글을 추가하는 것 못지않게 이미 축적된 글을 선별하고 압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전 7권 가운데 핵심적인 글과 생각을 엄선하여 대표선집으로 재구성하는 작업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축적해 온 고은층에 관한 생각을 하나의 독립적인 저술로 체계화하는 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완점과 별개로,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성찰하면서 그 경험에서 새로운 개념과 의미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은 이 시리즈의 뚜렷한 특징이다. 특히 그 과정이 정년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인생사색』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지나온 삶을 회고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금의 삶을 새롭게 해석하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까지 계속 묻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사색』 전 7권의 중요한 의미는 이미 완성된 인생철학을 남겼다는 데 있지 않다. 평생 학문으로 사회와 세상을 연구해 온 한 학자로서  저자가 인생 후반기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다시 하나의 사유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성찰의 결과를 ‘고은층’이라는 새로운 삶의 언어로 발전시켜 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이성근 교수의 인생사색』은 지나온 삶을 정리한 기록인 동시에, 앞으로 더욱 체계화될 ‘고은층론’을 향해 나아가는 사유의 토대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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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색’ 책 출간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자기성찰로 출발, 누군가의 삶에 자양분 됐

‘인간의 사회성 발달 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발달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65세 이상의 노년기를 통합과 절망의 양립기라고 분석했다.평생에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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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전 영남대 교수 책 ‘인생사색’ 4~7권 출간 - 대구신문

신간 ‘인생사색 4,5,6,7’을 출간한 이성근 전 영남대 교수. 지적 활동과 영적 사유, 육체적인 휴식이 견고하게 맞물린 이성근 전 영남대 교수의 노년기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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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성근. 서귀포 월라봉 파크골프장의 담벼락에 비친 이미지를 디카에 담아 수정한 것임.

사진. 대구 앞산 고산골 산책길  풍경. 2026. 9. 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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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이 건강한 삶에 이르는 열 길(十道): 매일의 작은 실천이 이룬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건강은 일상의 작은 실천에 있다


고은층(高恩層)이 되면서 건강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또 자주 하게 된다. 누구를 만나도 건강이 화제가 되고, 헤어질 때면 “건강하십시오”라는 인사를 나눈다. 오래 사는 것만큼이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꾸려 가는 일이 중요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고은산책」에서 웃음과 감사, 관계와 운동, 자연과 걷기, 놀이와 파크골프, 삶의 의미와 유유자작에 관해 여러 차례 생각을 나누었다. 돌이켜 보면 이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결국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과 관계를 이어 가며, 자신의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여러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동안의 생각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열 가지로 묶어 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고은층이 건강한 삶에 이르는 열 길(十道)’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길은 특별한 건강법이나 새로운 처방이 아니다. 오늘도 걸어 볼 수 있고 내일 다시 되풀이할 수 있는 작은 생활의 길이다.

마음을 여는 세 길
웃고, 감사하고, 말한다


첫째 길은 웃는 것이다.

때로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한 번 웃어 본다. 혼자 있을 때도 웃어 보고, 사람을 만나면 먼저 웃으며 인사한다.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에 미소를 한번 지어 보는 것도 좋다. 나이가 들면 얼굴의 주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얼굴에 어떤 표정을 담고 살아갈지는 어느 정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웃음에 대해서는 그 효용을 길게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웃음이 좋다’고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 웃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고 의식적이어도 괜찮다. 좋은 습관은 반복할수록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둘째 길은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는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할 일이 잘 보이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작은 것부터 찾아보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고, 오늘 갈 곳과 할 일이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감사는 없는 것을 헤아리기보다 지금 내게 있는 것을 바라보게 한다. 하루에 한두 가지라도 감사할 일을 찾아가다 보면 삶을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진다.

셋째 길은 말하는 것이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가족과 대화하고,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책에서 읽은 것을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는다. 혼자 있을 때 좋은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것도 좋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기도문이나 익숙한 신앙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도 좋다.

말하고 대화한다는 것은 입만 움직이는 일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기억을 되살리며 세상과의 연결을 이어 가는 일이다. 생활 반경이 좁아질수록 대화의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먼저 전화를 걸고, 먼저 묻고, 먼저 말을 건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몸과 일상을 깨우는 세 길
노래하고, 놀이하며, 걷는다


넷째 길은 노래하는 것이다.

잘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좋아하는 노래면 된다. 혼자 따라 불러도 좋고 여러 사람과 함께 부르면 더욱 즐겁다. 젊은 시절 좋아했던 노래 한 곡을 부르다 보면 오래전 사람과 장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노래는 현재의 나와 지난날의 나를 이어 주는 작은 다리가 되기도 한다.

평소보다 조금 큰 목소리를 내어 보는 것도 좋다. 말하고 노래하면서 목소리를 쓰고 감정을 표현하며 잠시라도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이다. 한 곡의 노래가 하루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그 순간의 기분과 분위기를 밝게 만들 수는 있다.

다섯째 길은 놀이하는 것이다.

고은층에게 놀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파크골프를 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텃밭을 가꾸는 것도 놀이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손과 머리와 몸을 계속 사용하는 데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인생 후반에는 일을 놀이처럼 하고 놀이에서도 배움과 보람을 찾을 수 있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얼마나 즐겁게 오래 계속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여섯째 길은 걷는 것이다.

길이 있으면 걷고, 가능하면 자연과 가까이서 걷는다. 빠른 속도나 먼 거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몸과 형편에 맞게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걷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만난다. 봄꽃이 피고 여름 나무가 짙어지며, 가을잎이 물들고 겨울 가지가 드러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걷기는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면서 주변을 바라보고 생각을 정돈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 역시 산책과 파크골프를 하면서 여러 생각을 얻는다. 그러나 걷기의 의미를 굳이 철학적으로 확대하지 않아도 좋다.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오늘도 몸을 한 번 더 움직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섯째 길의 실천은 충분하다.

삶을 가꾸는 두 길
키우고, 의미를 가진다


일곱째 길은 키우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돌보고 키울 때 관심을 자기 밖으로 넓히게 된다. 작은 화분에 물을 주고, 텃밭의 채소를 돌보고,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다. 배움이나 취미 하나를 정하여 오랫동안 익히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키우는 삶’이다.

키운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결과를 얻으려 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이다. 어제와 오늘의 작은 변화를 살펴보는 동안 생활에도 일정한 리듬이 생긴다. 무엇인가 돌볼 것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아직 해야 할 일과 역할이 있다는 뜻이 된다.

여덟째 길은 의미(意味)를 가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직장과 가정, 사회적 역할이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은퇴하고 세월이 흐르면 그런 역할 가운데 일부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이때부터는 누가 정해 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 할 때가 많아진다.

그 의미는 우리 곁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후배에게 경험 하나를 전하는 것도 의미이다. 작은 봉사를 하고 배우며 글을 쓰는 것도 의미이다. 친구의 안부를 묻는 일도 결코 작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일이 하나쯤 있으면 좋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하루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두 길
잘 먹고, 쉬며 비운다


아홉째 길은 먹는 것이다.

먹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이면서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할 일이다. 나는 이를 정식(定食)·소식(少食)·서식(徐食)이라는 세 가지 ‘식’으로 생각해 본다.

정식은 가능한 한 일정한 시간에 식사하는 것이다. 소식은 무조건 적게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과식을 피하고 자신의 몸에 알맞은 양을 먹는 것이다. 서식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먹는 것이다.

특정한 음식 하나가 건강 전체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생활 여건에 맞추어 균형 있게 먹고,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에 식사를 즐겁게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사람과 편안하게 나누는 한 끼는 음식을 먹는 시간을 넘어 정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열째 길은 비우고 쉬는 것이다.

아홉째 길이 잘 먹는 것이라면, 열째 길은 잘 비우고 잘 쉬는 것이다. 몸은 받아들이는 것만큼 내보내는 일도 중요하다. 먹은 것을 잘 소화하고 내보내며 몸의 순환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일은 특히 고은층의 건강에서 중요하다. 잘 먹고 잘 내보내는  것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 리듬이다.

비움에는 휴식과 회복도 포함된다. 몸이 피곤하면 쉬고, 잠이 부족하면 충분히 자야  한다.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다시 움직일 힘을 채우는 시간이다.

생각과 마음의 비움도 필요하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와 서운함, 지나친 걱정과 욕심을 오래 붙들기보다 조금씩 내려놓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덜 중요한 것을 덜어 내어 더 소중한 것을 남기는 선택이다. 영정치원(寧靜致遠), 곧 마음이 고요해야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뜻처럼, 잘 비우고 잘 쉬며 몸과 마음에 여백을 만드는 것도 고은층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중요한 길이다.

맺음글
열 길은 아는 길이 아니라 걷는 길이다


웃고, 감사하고, 말한다. 노래하고, 놀고, 걷는다. 무엇인가를 키우고 삶의 의미를 가지며, 알맞게 먹고 쉬면서 지나친 것은 덜어 낸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전혀 낯선 일은 아니다.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건강한 삶에서 중요한 것은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다. 열 길을 모두 한꺼번에 걸을 필요도 없다. 오늘 한 번 더 웃고, 조금 더 걷고,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작은 실천이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쌓여 생활이 된다.

고은층의 건강은 젊음을 되돌리는 데 있지 않다. 지금 가진 몸과 마음을 잘 돌보며 자신의 하루를 스스로 꾸려 가는 데 있다. 내가 말해 온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삶도 결국 이러한 평범한 하루의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다. 건강에 단번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어도, 오늘부터 한 걸음씩 걸어갈 열 길은 있다.

공자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고 했다. 여기에 실천의 뜻을 더한다면,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좋아하며, 즐기면서 몸소 행할 때 비로소 삶의 길이 된다. 고은층의 건강한 삶에 이르는 열 길도 결국 아는 길이 아니라 오늘 하루 직접 걷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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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커케’에 담긴 작은딸의 마음

이성근

추석날 고요한 오후 나절
문득 찾아든 녹커케 향기
속 깊은 작은딸의 따뜻한 정
'사운드 오브 뮤직' 들으며
우리 부부는 둥근 보름달을 기다린다

사진·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추석날 오후, 서울에 사는 둘째 딸이 녹차와 커피, 그리고 케이크, 이른바 ‘녹커케’를 보내왔다. 우리 부부는 거실에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며 ‘녹커케’를 음미했다. 케이크의 향과 맛보다 더 깊이 다가온 것은 명절을 맞아 부모를 생각하는 작은딸의 속 깊은 마음이었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우리는 그 따뜻한 정을 느끼며 저녁 하늘에 은은하게 떠오를 둥근 보름달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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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손님에서 한 식구로: 고은층이 생각하는 새 가족 맞이"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추석 전날, 분주한 부엌을 보면서 가족을 생각하다


추석을 하루 앞둔 오늘, 집안이 아침부터 분주하다. 금년 여름 결혼한 큰딸과 사위가 온다고 아내는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부엌을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어릴 적부터 귀에 익도록 들어온 말들이 새삼 떠오른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다.
사위 사랑은 장모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
사위도 반자식이다."

한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었던 말들이다. 그러나 두 딸을 키우고 큰딸을 출가시킨 뒤, 실제로 사위를 맞는 장인이 되어 보니 그 말들이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 속에는 옛사람들의 가족관도 들어 있고, 자식의 배우자를 맞이하는 부모의 마음도 담겨 있다. 동시에 오늘의 가족관계에 비추어 새롭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도 있다.

고은층이 되어 새 가족을 맞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옛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을 오늘의 가족관계에 맞게 다시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백년손님이라는 오래된 말

예부터 사위를 ‘백년손님’ 또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고 했다. 한평생을 두고 소홀히 대할 수 없는 귀한 손님이라는 뜻이다. 딸의 남편이니 가족이면서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장모는 딸을 아끼는 마음만큼이나 자신의 딸과 평생을 살아갈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 사위에게 잘해 주는 마음 한편에는 결국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백년손님이라는 말에서 오늘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것은 ‘손님’이라는 거리감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인지 모른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하지 않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예의를 잊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한 번 더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뜻이 이 오래된 말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씨암탉 한 마리에 담긴 환대의 마음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는 말도 오래전부터 전해 온다. 지금은 닭 한 마리가 특별한 음식이 아니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사정이 달랐다. 특히 알을 낳는 씨암탉은 농가에서 계속 길러야 할 소중한 밑천이었다. 그런 씨암탉을 잡아 사위에게 내놓았다는 것은 음식 한 그릇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 찾아온 사람을 귀하게 생각한다는 마음을 가장 좋은 음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 아내가 사위가 온다고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옛날의 씨암탉이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씨암탉을 잡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는 사람을 기다리며 무엇을 먹일까 생각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하는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을 맞는 데에는 예나 지금이나 음식이 따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음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 음식에 담긴 마음이다. “당신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이 반갑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씨암탉 한 마리가 오랫동안 전해 온 가장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뜻일 것이다.

사위와 며느리를 달리 보던 가족의 문법

옛날에는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며느리는 평생 식구”라는 말도 흔히 했다. 며느리는 혼인을 하면 시가의 사람이 되고, 사위는 딸과 혼인해도 처가에서는 여전히 손님처럼 대하던 당시의 가족질서가 이 말에 그대로 비쳐 있다.
‘사위 사랑은 장모,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도 있다. 조금은 해학적인 표현이지만 새로 가족이 된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잘 대해 주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을 바라보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 사위와 며느리를 서로 다른 잣대로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위도 누군가가 귀하게 키운 아들이고, 며느리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다.

따라서 고은층이 된 부모 세대가 옛 가족문화에서 이어받아야 할 것은 서열이나 구별이 아니라 정과 예의라고 생각한다. 전통은 옛 모습을 그대로 되풀이할 때보다 그 안에 담긴 좋은 뜻을 오늘의 삶에 맞게 되살릴 때 더욱 가치가 있다.

새 가족은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관계

흔히 결혼하면 “새 식구가 들어왔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런 표현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우리 가족 안으로 단순히 ‘들어오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딸이 결혼하면 사위만 우리 가족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우리 딸도 사위의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새로운 가족이 된다. 한 사람만 어느 집안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양쪽 가족의 관계가 함께 넓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결혼은 한 사람이 한 집안으로 들어오는 일이라기보다 두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만든다는데  의미가 크다. 그로 인해 두 가족의 인연이 새롭게 이어지는 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그렇게 생각하면 새 가족을 맞는 부모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자녀 부부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다. 내 집의 방식이 익숙하다고 해서 그 방식을 새 가족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녀의 배우자를 내 자식과 비교하지 않는 일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생각을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지켜 주는 것도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지혜다.

고은층이 되면 삶의 경험은 많아진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는 것이 언제나 새로운 세대의 삶을 더 잘 안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 살아 얻은 지혜가 있다면 젊은 세대보다 더 많이 말하는 데 있지 않다. 때로는 기다려 주고 지켜봐 주는 데 있을 것이다. 필요할 때 조용히 손을 내밀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것도 지혜다.
가족관계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말보다 여백이 필요하다.

맺음글
귀하게 맞되 편안하게 품는 가족

오늘 큰딸과 사위가 온다. 아내는 여전히 부엌에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백년손님과 씨암탉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결국 한 가지 생각에 이른다.

사위가 언제까지 손님이어야 할까?

처음에는 조금 어렵고 조심스러운 사이일 수 있다. 그러나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명절과 가족의 크고 작은 일을 함께하다 보면 ‘손님’이라는 말은 조금씩 옅어지고, 그 자리에 ‘식구’라는 말이 들어설 것이다.
그래도 나는 ‘백년손님’이라는 옛말을 완전히 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 말에 담긴 좋은 뜻 하나만은 오래 남겨 두고 싶다. 백년손님처럼 귀하게 여기되 손님처럼 거리를 두지는 않는다.  한 식구처럼 가까이 지내되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오늘의 고은층이 새 가족을 맞는 바람직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가족은 혈연과 혼인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어 주고 다른 점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정을 쌓아 가면서 비로소 가족이 되어 간다. 큰딸의 결혼으로 우리 집에도 새로운 인연 하나가 더해졌다. 이제 나는 ‘사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우리 가족의 관계가 하나 더 넓어졌다고 생각하고 싶다.
추석을 앞둔 오늘, 음식을 마련하며 새 식구를 기다리는 집안 풍경 속에서 새삼 깨닫는다.
가족을 맞는다는 것은 한 사람을 우리에게 맞추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의 자리를 조금 넓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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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高秋)의 또 다른 풍경: 고은층은 자연을 닮아 있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고추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다


나는 그동안 여러 글에서 청춘(靑春)에 이어지는 인생 후반의 시간을 고추(高秋)라고 불러왔다. 청춘은 젊음의 한때를 상징한다. 고추는 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 맞이하는 또 하나의 인생 시절이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소개하였다.

요즘 내가 새삼 생각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고추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무엇을 닮아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녁의 노을과 푸른 하늘의 달, 가을의 단풍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 익은 된장과 잘 익은 수박, 붉은 대추와 고추, 감초에서도 저마다 다른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과 우리 곁의 익숙한 것들이 고은층(高恩層)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었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자연을 오래 바라보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꽃은 피어야 할 때 피고 열매는 익어야 할 때 익는다. 비바람이 분다고 계절이 가던 길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숲에는 저마다의 질서가 생긴다. 수많은 나무와 풀, 생명이 제 모습대로 살아가면서도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자기 조직화의 모습이다.

고은층의 삶도 이와 닮으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 보니 세상일 가운데 내 뜻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았다. 사람도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세상 역시 내 생각에 맞추어 돌아가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그것을 바꾸려고 애썼다면, 이제는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구별하는 지혜가 더 필요하다.

그렇다고 수용이 체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관용 또한 무원칙을 의미하지 않는다. 견딜 것은 견디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가지는 흔들려도 뿌리는 땅속에 머무는 나무처럼 유연함과 중심을 함께 지니는 삶이다.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것만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일을 경험했기에 조금 더 기다릴 줄 알고, 여러 사람을 만났기에 다름을 조금 더 받아들인다. 어려움을 겪었기에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헤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월은 연륜이 된다.

지는 해와 차오르는 달을 닮는다

고은의 나는 저녁 무렵의 태양, 저녁노을을 좋아한다. 한낮처럼 강렬하지 않지만 일몰의 햇빛에는 부드러운 온기가 있다. 산과 들, 건물을 황금빛으로 감싸다가 요란하지 않게 서서히 모습을 감춘다. 고은층의 시간도 어느 면에서는 그 저녁노을을 닮았다. 직장과 조직의 시간표에 맞추어 분주하게 움직이던 때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줄어들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선택할 여지가 늘어난다. 빨리 가는 것보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러나 고은층을 지는 해에만 비유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맑은 날 푸른 하늘에 떠 있는 상현달을 바라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상현달은 아직 보름달이 아니다. 절반쯤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차오르고 있다. 이 모습 또한 내가 생각하는 고은층과 잘 어울린다.

살아온 날이 많다고 해서 사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새롭게 배울 것이 있고 고쳐야 할 습관이 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아직 해 보지 못한 일도 남아 있다. 몸의 시간은 저녁을 향해 가더라도 생각과 마음은 보일 듯 말 듯 하늘의 상현달과 닮아 있다. 그래서 고은층의 삶에는 정중동(靜中動)이 어울린다. 겉으로는 이전보다 조용해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움직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어제보다 조금 나은 자신을 만들어 간다.

저녁 해의 고요와 상현달의 차오름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지혜가 된다. 저녁 해는 내려놓을 때를 가르쳐 주고, 차오르는 달은 아직 고숙(高熟)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고은층에게는 물러날 줄 아는 여유와 계속 배우려는 마음이 함께 필요하다.

오래 익은 것에는 저마다의 맛이 있다

가을도 고은층과 닮은 점이 많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산과 들의 나뭇잎은 저마다 다른 빛깔로 물든다. 봄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움이라면 붉게 물든 단풍에는 뜨거운 여름을 지나온 뒤에야 나타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도 세월에 따라 아름다움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다. 젊은 날에는 생기와 활력이 돋보였다면 고은층의 아름다움은 고숙과 고품(高品)에서 배어 나온다.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 필요한 말을 따뜻하게 건네는 사람에게서 깊은 고품이 느껴진다.

오래 익은 된장도 생각난다. 된장은 시간을 건너뛰어 만들 수 없다. 기다리고 익어야 특유의 구수한 맛이 난다. 사람의 생각도 비슷하다. 오래 살았다고 저절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경험을 마음속에서 삭이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의 말에는 다른 맛이 생긴다. 그래서 고은층에게는 기다림과 조절, 절제가 중요하다. 아는 것을 모두 말할 필요도 없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나 곧바로 주장할 필요도 없다. 한마디 덜 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고, 조금 기다려 주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는 길일 때도 있다. 오래 익은 된장의 맛처럼 은근하게 배어 나오는 것이 좋다.

잘 익은 수박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본다. 겉만 보아서는 그 속을 알기 어렵지만, 갈라 보면 붉고 달고 시원한 속살이 드러난다. 고은층도 이처럼 겉모습보다 속마음이 깊고 따뜻하면 좋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과 정을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붉게 익은 대추도 그렇다. 시간이 흐르면서 겉에는 주름이 늘어나지만, 그 안에는 농익은 단맛이 깊이 배어 있다. 사람의 얼굴에 생긴 주름도 긴 세월을 살아온 흔적이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의 주름을 모두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의 모서리는 얼마든지 둥글게 다듬을 수 있다. 평소 인간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항상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려본다. 일상에서 갈등이 생기더라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해 본다. 그러면 얼굴의 주름에는 단순한 세월의 흔적을 넘어 삶의 온기와 깊이가 담길 것이다.

고추처럼 할 말은 하고 감초처럼 어울린다

이번에는 고추(高秋)가 아니라 밭에서 붉게 익어 가는 고추를 생각해 본다. 잘 익은 고추에는 은근한 단맛도 있고 매운맛도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맛이 고은층에게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모든 일에 “좋다” 하는 것이 어른의 관용은 아니다.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때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켜야 할 원칙과 기준이 있다면 관계가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필요한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다만 그 매운맛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말과 젊은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말은 삼가야 한다. 과거의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말은 자칫 아집과 편견으로 비치기 쉽다. 고추의 매운맛도 음식 전체의 맛을 살릴 만큼이면 충분하다. 지나치면 다른 맛을 모두 덮어 버린다.

그래서 고추 곁에는 감초를 놓아 보고 싶다. 우리는 여러 곳에 빠지지 않고 어울리며 제 역할을 하는 사람을 두고 ‘약방의 감초’라고 한다. 고은층의 역할도 때로 이와 닮았으면 한다. 자신이 언제나 주인공이 되기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준다. 부족한 곳을 메우며, 젊은 세대가 앞으로 나아갈 때 조용히 뒤를 받쳐 주는 것이다.

경험과 지혜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묻지 않았는데 앞서 가르치기보다 필요로 할 때 들려준다.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자신의 경험을 기꺼이 보태준다.
따라서 고추의 원칙과 감초의 조화가 함께해야 한다. 할 말을 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한다. 평소에는 따뜻하고 유연한 사람이 된다. 또한 중심은 지키되 그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재단하지 않아야 한다. 이들 모두가 내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어른다운 모습이다.

맺음글
자연을 닮아간다는 것

돌이켜보면 자연과 우리 곁의 익숙한 것들은 참 여러 모습으로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저녁 해는 물러날 줄 아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차오르는 달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배우고 고숙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가을 단풍은 계절에 따라 아름다움의 빛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래 익은 된장은 기다림과 깊이를, 수박은 속 깊고 담백한 마음을 나타낸다. 대추는 세월 속에서 익어가는 온정을 생각하게 한다. 고추에서는 필요한 원칙을 배우고, 감초에서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지혜를 배운다.

그러나 어느 하나만 닮아서는 부족하다. 늘 부드럽기만 하면 중심을 잃기 쉽고, 언제나 원칙만 앞세우면 사람을 잃을 수 있다. 고요하기만 하면 삶이 메마를 수 있고, 끊임없이 움직이기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어렵다. 자연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 다른 빛깔과 모습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고은층도 그러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한 가지 색깔만 강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맛과 빛깔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다. 받아들일 줄 알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고요하면서도 마음은 계속 움직인다. 속은 깊어지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필요할 때는 원칙을 말하되 대부분의 시간에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 준다.

그동안 나는 고추(高秋)를 인생의 한 시절로 생각해 왔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고추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나는 그 답의 하나를 자연을 닮아가는 삶에서 찾고 싶다.

"지는 해처럼 따뜻하게 물러날 줄 알고, 차오르는 달처럼 여전히 배우며 살아가는 삶이다. 오래 익은 열매처럼 생각은 깊어지고 마음은 넉넉해진다. 때로는 고추처럼 맵싸한 기개로 원칙을 지키되, 평소에는 감초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 주며 살아간다."

고은층의 고추(高秋)는 이미 완성된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긴 세월을 품고도 오늘을 새롭게 살아가며 조금씩 더 익어 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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