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층의 삶, 셋으로 균형을 잡다: 숫자 3이 주는 생활의 지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복잡한 삶일수록 단순한 기준이 필요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숫자와 함께한다. 나이와 시간, 날짜와 거리, 건강수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은 숫자로 표현되고 관리된다. 그러나 숫자는 단순히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계산의 도구만은 아니다. 어떤 숫자는 생활의 질서를 세우고 생각을 정리하며 삶의 방향을 돌아보게 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필자에게는 오래전부터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숫자가 있다. 바로 숫자 3이다. 돌이켜보면 하루를 오전·오후·저녁으로 나누어 생각할 때 생활이 한결 단정해지고, 식사도 아침·점심·저녁 세 끼를 중심으로 일정한 리듬을 갖는다. 하루의 생활 역시 일하고, 쉬고, 잠드는 세 과정으로 바라보면 그 흐름이 보다 분명해진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했다. 정년 이후의 삶을 돌아보면 필자가 오래 유지해 온 여러 모임에는 공교롭게도 세 사람이 함께한 경우가 많았다. 처음부터 숫자 3을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세 사람이 만나 걷고 운동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가 편안했고 비교적 오래 지속되었다.
그래서 요즘 필자는 숫자 3을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복잡한 생활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삶의 균형을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작은 원리로 생각한다.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고은층(高恩層)에게도 무엇이든 많이 갖고 많이 하는 것보다는 중요한 몇 가지를 가려내어 균형 있게 지속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숫자 3은 고은층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흥미로운 생활의 틀이 될 수 있다.
하루의 세 박자, 일하고 쉬고 잠든다
하루는 24시간이지만 생활의 흐름은 몇 개의 큰 마디로 나누어 바라볼 때 오히려 선명해진다. 오전·오후·저녁이라는 시간의 구분도 그렇고, 아침·점심·저녁이라는 식사의 리듬도 그러하다. 긴 하루를 몇 개의 단순한 구간으로 나누면 무엇을 할 것인지, 언제 쉬어야 할 것인지도 한결 분명해진다.
인생 후반기의 하루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처럼 하루를 일로 가득 채울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계획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는 좋은 하루를 만드는 기본적인 세 박자를 일·쉼·잠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일이란 반드시 직업적 노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텃밭을 가꾸고 운동하는 일,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돕는 일처럼 자신에게 의미를 주는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 의미 있는 일은 삶에 목적과 활력을 준다. 그러나 일만 계속하면 몸과 마음이 지친다. 그래서 일 사이에는 적절한 쉼과 회복이 있어야 하고, 하루의 마지막에는 충분한 잠이 뒤따라야 한다.
일하고, 쉬고, 잘 자는 세 과정이 서로 이어질 때 다음 날을 다시 건강하게 시작할 수 있다. 고은층에게 좋은 하루란 반드시 많은 일을 해낸 하루가 아니라 할 일을 하고, 쉴 때 쉬며, 편안히 잠드는 하루인지도 모른다. 하루의 성취보다 하루의 균형이 중요해지는 것이 인생 후반기의 지혜일 것이다.
세 사람의 관계가 만드는 작은 공동체
필자의 정년 이후 생활을 돌아보면 숫자 3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주 나타났다.
대구 팔공산에서 전원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약 3년 동안 이웃 세 사람이 매일 아침 5시 반에 만나 한 시간 반가량 산행을 했다. 걸으면서 서로의 삶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각자가 하는 일을 격려하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성공을 이끄는 3인 모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년 이후 대구에서는 세 명의 교수가 매월 산행을 함께했다. 산길을 걸으며 건강을 챙겼고, 살아온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제주에서도 산행과 세상사 이야기를 함께한 ‘서귀삼연’, 파크골프를 함께한 ‘신서귀삼연’, 복지관을 중심으로 만난 ‘서귀복연’ 등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어진 인연이 적지 않았다. 최근에는 대구에서 세 명의 동호인이 오후 3시에 만나 운동을 함께하고 있다. 세 사람이 오후 세 시에 만나는 모습까지 생각하면 숫자 3과의 인연이 우연치고는 제법 깊다.
물론 세 사람이 언제나 가장 이상적인 관계의 숫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둘이 더 편안할 수도 있고, 네 명이나 그 이상의 사람이 어울릴 때 더 즐거운 모임도 많다. 다만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세 사람의 관계에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한 사람은 들을 수 있고, 의견이 엇갈릴 때 다른 한 사람이 관계의 균형을 잡아 줄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에서는 넓이보다 깊이가 중요해진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안하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걷고 운동하며, 서로의 관심사를 토론할 수 있는 몇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그런 점에서 세 사람의 작은 모임은 고은층에게 부담은 덜면서 정은 깊게 나눌 수 있는 하나의 관계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세 사람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함께할 사람을 가까이 두고 관계를 꾸준히 이어 가는 일이다.
즐거움·유익함·지향가치의 3·3·3 원칙
필자는 생활 속에서 이른바 ‘3·3·3 원칙’을 좋아한다. 너무 많은 목표를 세우면 기억하기도 어렵고 실천하기는 더 어렵다. 반면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하면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해지고 생활 속에서 스스로 점검하기도 쉽다.
첫째는 세 가지 즐거움이다. 몸의 즐거움, 마음의 즐거움, 관계의 즐거움이다. 몸을 움직이며 건강함을 느끼는 즐거움,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며 마음이 충만해지는 즐거움, 가족과 이웃을 만나 정을 나누는 즐거움이 고르게 있어야 한다. 한쪽 즐거움에만 치우치기보다 몸과 마음과 관계가 함께 즐거운 삶이 오래간다.
둘째는 세 가지 유익함이다. 건강에 유익한가, 배움에 유익한가, 나눔에 유익한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운동은 건강에 도움을 주고, 독서와 글쓰기는 배움을 이어 가게 하며, 가족과 이웃을 돕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일은 자신은 물론이고 사회에도 보탬이 된다. 하나의 활동이 이 가운데 두세 가지를 함께 충족시킨다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셋째는 고은층이 지향할 세 가지 가치, 곧 자유·자작·고요이다. 여기에서 자유는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삶이다. 자작(自作)은 자신의 형편과 능력에 맞게 할 일을 스스로 찾고, 자신의 하루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이다. 고요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중심을 지키는 삶을 뜻한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스스로 만들어 가며, 마음의 고요를 잃지 않는 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세 가지 지향가치이다.
그렇게 보면 3·3·3 원칙은 거창한 이론이라기보다 작은 생활 점검표에 가깝다. 하루를 마치면서 “오늘 나는 무엇을 즐겼는가?, 무엇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유익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가치를 향해 살아갔는가?”를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다. 질문이 단순할수록 생활 속에서는 오히려 오래 실천할 수 있다.
셋이 가르치는 균형과 조화의 삶
우리의 삶은 쉽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거나 너무 적게 하고,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거나 반대로 관계를 끊어 버리기도 한다. 운동도 지나치면 몸을 상하게 하고, 하지 않으면 건강을 지키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 환경과 형편에 맞는 적절한 정도를 찾는 일이다.
동양의 중용(中庸)도 단순히 상·중·하 가운데 언제나 한가운데를 택하라는 뜻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나침과 모자람을 경계하면서 때와 형편에 맞는 적절함을 찾는 데 있다. 일과 쉼, 말함과 침묵, 혼자 있는 시간과 사람을 만나는 시간 사이에서 자신의 알맞은 자리를 찾는 것이다.
숫자 3은 이러한 균형을 생각하기에 좋은 틀을 제공한다. 양쪽 끝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하늘과 땅과 사람을 천·지·인(天地人)으로 함께 바라보았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는 세계와 자연,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다. 이를 오늘의 고은층 생활에 비추어 보면 필자는 신·자연·사람이라는 세 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신은 인간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와 가치에 대한 경외와 겸손을 뜻한다. 자연은 인간이 마음대로 지배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게 하는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사람은 가족과 친구, 이웃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포함한다. 사람과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관계가 필요하다.
필자의 생활을 돌아보아도 산을 걷고 농사를 짓고 파크골프를 하며 자연을 만나는 시간, 가족과 친구 및 이웃과 관계를 나누는 시간,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자신보다 더 큰 존재와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해지면 삶은 조금 더 깊어진다.
결국 신을 경외하고, 자연과 가까이하며, 사람을 소중히 하는 삶이다. 그리고 사람을 소중히 한다는 말에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과 함께 자기 자신을 함부로 소모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 세 축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인생 후반기의 삶도 한결 안정되고 충실해질 수 있다.
맺음말
셋으로 나누되, 하나의 삶으로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필자의 정년 이후 삶의 여러 장면에는 숫자 3이 있었다. 오전·오후·저녁으로 이어지는 하루가 있었고, 일·쉼·잠의 순환이 있었다. 팔공산에서 함께 걸었던 세 사람, 정년 이후 산행을 함께한 세 사람, 제주에서 만난 여러 세 사람의 인연이 있었고, 지금도 세 사람이 오후 3시에 만나 운동을 함께한다.
그러나 숫자 3 자체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 3이 우리에게 주는 단순함과 균형, 그리고 조화의 지혜이다. 복잡한 것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다 쉽게 보이고, 삶의 우선순위도 한결 분명해진다.
고은층의 삶도 너무 많은 것을 새롭게 더하기보다 이미 가진 것 가운데 소중한 것을 가려내어 잘 지키는 삶이면 좋겠다. 일하고 쉬고 잘 자며 하루의 균형을 지키고, 가까운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이어 가며, 몸과 마음과 관계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건강과 배움과 나눔을 이어 가고, 자유와 자작과 고요의 가치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나아가 신을 경외하고, 자연과 가까이하며, 사람을 소중히 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좋은 삶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많은 일을 해내는 데만 있지 않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오래 지속하는 데 있다.
셋은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숫자가 아니라 오히려 복잡한 삶을 단정하게 정리해 주는 숫자일 수 있다. 셋으로 나누어 생각하되, 그 셋을 조화롭게 엮어 하나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고은층이 숫자 3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생활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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