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연에서 조연으로: 시래기에서 생각한 고은층의 자리"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시래기에서 문득 고은층을 생각하다
오늘 문득 자연인의 삶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가 시래기가 나오는 장면에 눈길이 멈췄다. 시래기는 화려한 음식재료가 아니다. 고기나 생선처럼 밥상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러나 된장국에 들어가고 찌개와 나물이 되어 밥상에 오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햇볕과 바람에 오래 말리고 다시 푹 삶아낸 시래기에는 다른 재료가 쉽게 대신할 수 없는 구수하고 깊은 맛이 있다.
생각해 보면 음식에는 앞에 드러나는 재료가 있는가 하면 전체의 맛을 살려주는 재료도 있다. 마늘과 고추, 된장과 참기름도 대개 접시 한가운데 놓이는 주재료는 아니지만, 빠지고 나면 음식의 맛이 허전하다.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제 몫을 하는 존재들이다.
문득 사람의 삶도 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과 중년에는 직장과 조직, 가정과 사회의 앞자리에서 일을 이끌며 살아왔다면, 고은층(高恩層)이 되면서 역할과 자리도 조금씩 달라진다. 앞에서 이끄는 때가 있었다면 이제는 뒤에서 받쳐주고, 자신의 경험을 다음 사람에게 보태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삶의 가치와 쓰임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물러서고, 어디에서 다시 자신의 몫을 보탤 것인가가 고은층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삶의 과제일지 모른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자리는 달라져도 쓰임은 남는다
세상은 대체로 주연에게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주연배우가 먼저 알려지고, 방송에서는 화면에 등장하는 진행자가 주목받는다. 그러나 한 편의 방송 뒤에는 작가와 촬영자, 편집자와 수많은 제작진이 있다. 연극도 무대 위의 배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본을 쓰고 무대를 만들며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함께해야 하나의 작품이 이루어진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누구나 언제까지나 앞자리에만 서 있을 수는 없다. 봄이 여름으로, 여름이 가을로 옮겨가듯 사람의 자리와 역할도 세월에 따라 달라진다. 고은층이 되어 사회의 중심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것은 가치의 상실이라기보다 삶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가깝다.
문제는 달라진 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나간 역할을 계속 붙잡으려 할 때 생긴다. 새로운 세대가 앞에 설 때가 되었는데도 자신이 계속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순환이 어려워진다. 고은층에게 더 중요한 것은 옛자리를 되찾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새롭게 찾는 일이다.
나는 그래서 ‘주연에서 조연으로’의 변화를 후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할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앞에서 직접 이끌던 사람은 뒤에서 경험을 보태고, 모든 일을 자신이 결정하던 사람은 필요한 순간에 조언을 건넬 수 있다. 자리는 조금 달라져도 삶의 쓰임은 여전히 남는다.
경험에서 지혜로
오래 산 세월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
젊은 날에는 활력과 실행력이 중요했다. 많이 움직이고, 앞장서고, 직접 만들고 성취하는 일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고은층이 되면 삶의 무게중심도 조금 달라진다. 빠르게 움직이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앞에서 끌기보다 뒤에서 지켜보며 필요한 순간에 힘을 보태는 일이 자연스러워진다.
몸의 힘은 예전 같지 않을 수 있어도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판단은 또 다른 자산이 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언제 나서야 하고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은 긴 세월 속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옛말에 노마지지(老馬之智)라고 했다. 늙은 말도 오랜 경험으로 길을 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지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경험을 돌아보고 성공과 실패를 성찰하며, 거기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나눌 때 비로소 세월은 지혜가 된다.
고은층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을 대신하여 다시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길을 더 잘 갈 수 있도록 경험을 보태는 것이다. 지시하기보다 조언하고, 경쟁하기보다 지원하며,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기보다 새로운 세대의 생각과 방식을 존중하는 일이다.
시래기가 음식의 주재료는 아니어도 한 그릇의 깊은 맛을 더하듯, 고은층의 경험과 지혜도 가족과 사회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의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자신이 가진 것을 알맞게 보태는 것, 그것 역시 인생 후반기에 누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역할이다.
물러설 때와 나설 때
억지로 하지도, 억지로 피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고은층은 언제나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이 주어졌는데도 “나는 이제 은퇴했으니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문을 닫을 필요는 없다. 건강이 허락하고 자신의 경험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다시 역할을 맡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정년 이후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원칙도 비교적 단순하다.
억지로 하려고 하지도 않고, 억지로 안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떤 기회가 주어지면 먼저 생각해 본다. 내가 할 만한 일인지, 내가 가진 경험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그렇다면 기꺼이 맡을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라면 한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특히 젊은 사람에게 돌아갈 기회와 자리를 놓고 굳이 경합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맡음으로써 다음 세대가 경험할 기회가 줄어든다면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오랜 경험이 꼭 필요하고 내가 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면 나이를 이유로 무조건 피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주연인가 조연인가’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필요한가, 그리고 내가 맡는 일이 다른 사람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고은층의 품격은 무조건 나서는 데에도, 무조건 물러나는 데에도 있지 않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고, 자신의 역할과 때를 헤아리는 데 있다.
맺음글
시래기처럼 깊은 맛을 남기는 삶
다시 시래기를 생각한다. 푸른 무청이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말라가면 처음의 싱싱한 모습은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잘 말린 시래기를 다시 불리고 삶으면 생무청에서는 얻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깊은 맛이 생겨난다. 세월이 가져가는 것도 있지만 세월이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도 있다.
사람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젊은 날의 활력은 조금 줄어들고 세상의 중심에서 한 걸음 비켜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경험과 성찰, 여유와 지혜가 들어설 수 있다. 앞에서 끌어가는 힘은 줄어들어도 뒤에서 받쳐주는 힘은 오히려 깊어질 수 있다.
고은층에게 필요한 것은 지나간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찾아 나서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돌아갈 자리는 기꺼이 내어주고, 자신이 꼭 필요한 곳에서는 경험과 지혜를 보태는 일이다. 억지로 주연이 되려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까지 애써 피하지도 않는 것이다.
주연의 시간이 지나갔다고 삶의 역할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역할의 모양이 달라질 뿐이다.
시래기는 밥상의 한가운데 놓이지 않아도 한 그릇의 맛을 깊게 만든다. 고은층의 삶도 그러하면 좋겠다. 앞에 서지 않아도 든든하고,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필요한 존재, 세월이 흐를수록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 주변의 삶에 깊은 맛을 보태는 존재 말이다.
어쩌면 고은층의 아름다움은 다시 주연이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자리에서도 자신의 쓰임을 알고 조용히 제 몫을 다하는 데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사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성근 교수의 고은산책] 고은층이 건강한 삶에 이르는 열 길(十道): 매일의 작은 실천이 이룬다 (0) | 2026.09.26 |
|---|---|
| [이성근 교수의 디카시 산책] '녹커케'에 담긴 작은딸의 마음 (0) | 2026.09.25 |
| [이성근 교수의 고은산책] 백년손님에서 한 식구로: 고은층이 생각하는 새가족 맞이 (0) | 2026.09.24 |
| [이성근 교수의 고은산책] 고추(高秋)의 또 다른 풍경: 고은층은 자연을 닮아 있다 (0) | 2026.09.23 |
| [이성근 교수의 고은산책] 길을 잃어도 다시 길을 찾는다: 고은층의 삶에서 배운 길의 지혜 (0) | 2026.09.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