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짱 도루묵을 지나, 진짜 도루묵을 맛보다: 고은층의 지난 삶과 오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도루묵 한 접시에서 인생을 생각하다
오늘 필자 가족은 경북 경주시 안강읍의 '순참깨방앗간'에 참기름을 짜러 갔다. 깨를 맡겨 놓고 기다리는 동안 인근 '함지박 한정식'에서 손위 동서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정갈한 한식 밥상에 여러 반찬이 올랐는데, 그 가운데 유난히 '도루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점을 맛보니 담백하면서도 구수했다. 그 순간 엉뚱하게도 우리가 흔히 쓰는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 어째서 헛수고와 허무를 뜻하는 말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생각은 자연스럽게 필자의 지난 삶으로 이어졌다. 돌아보면 오랫동안 애썼지만 이루지 못한 일도 있었고, 애써 이루어 놓았으나 남의 손으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일이 세월이 흐르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기도 했다. 젊은 날에는 그런 순간을 만나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된 듯 허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긴 인생길을 지나 고은층에 이른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과연 지나온 삶의 그 모든 일이 정말 말짱 도루묵이었을까? 그리고 아직 살아 보지도 않은 앞으로의 삶까지 미리 말짱 도루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식탁 위의 진짜 도루묵을 맛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제는 지나간 삶의 ‘말짱 도루묵’을 아쉬워하기보다 오늘의 ‘진짜 도루묵’을 제대로 맛보고, 아직 맛보지 않은 ‘내일의 도루묵’을 기대할 때가 아닐까?
도루묵이라는 이름에 담긴 돌아옴과 허사
도루묵은 이름부터 흥미로운 물고기다. 널리 알려진 설화에 따르면 어느 임금이 피란길에 허기진 상태에서 ‘묵’이라는 생선을 먹고 그 맛에 감탄하여 ‘은어(銀魚)’라는 귀한 이름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궁궐로 돌아와 다시 먹어 보니 예전의 그 맛이 아니어서 “도로 묵이라 하라”고 했고, 그 말이 변해 ‘도루묵’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흔히 선조와 임진왜란에 얽힌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고려 시대의 왕이나 조선 인조와 관련된 전승도 있어, 특정 임금의 실제 사건이라기보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유래담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국어학적으로는 옛 문헌에 나타나는 ‘돌목’이나 ‘도루목’ 같은 명칭이 변하여 오늘의 ‘도루묵’이 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따라서 ‘도로 묵’이라는 이야기는 확정된 어원이라기보다 후대 사람들이 그 이름에 의미를 덧붙인 민간어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오히려 그 점이 더 흥미롭다. 사람들은 한 마리 생선의 이름 속에 ‘돌아감’의 이야기를 담았다. 귀한 이름을 얻었다가 다시 옛 이름으로 돌아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며, 얻었다가 잃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인간사의 모습을 한 생선의 이름에 입혀 놓은 셈이다.
여기에서 ‘말짱 도루묵’이라는 표현도 생겨났다. 오랫동안 공들인 일이 허사가 되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기대와 결과의 차이, 성취와 상실, 전진과 회귀가 이 짧은 말속에 겹쳐 있다. 그래서 필자에게 '도루묵'은 이제 단순한 물고기만이 아니다. 먹는 도루묵이 있고, 돌아가는 도루묵이 있으며, 헛수고를 뜻하는 말짱 도루묵이 있고, 다시 새롭게 맛보게 되는 진짜 도루묵도 있다. 바로 그 여러 얼굴 속에서 긴 인생여정을 걸어온 고은층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지나온 삶의 ‘말짱 도루묵’을 다시 바라보다
고은층은 짧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공부하고 일하며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돌보았으며,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 왔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으며,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았다. 열심히 추진했던 일이 중도에 무산되기도 했고, 정성을 다해 맺었던 관계가 뜻하지 않게 헤어지기도 했다. 꼭 이루고 싶었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경우도 있었으며, 한때 자신의 전부처럼 여겼던 일도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했다. 그럴 때면 ‘그동안 애쓴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는 허탈함이 밀려왔고,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바라보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결과는 사라졌어도 과정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경험은 남고, 실패 속에서 판단력이 자라며, 인간관계의 아픔을 겪으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법도 배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오래 살아오면서 기다림과 절제, 때로는 포기와 겸손도 익히게 된다.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서 되돌아왔다고 해서 걸어온 길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흘린 땀이 남고, 보았던 풍경이 남으며, 무엇보다 그 길을 걸은 자신이 출발할 때와는 달라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는 생각만큼 완전한 ‘말짱 도루묵’이 많지 않은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실패였던 일이 훗날 소중한 경험이 되고, 상실이 새로운 길을 열어 주며, 좌절이 사람을 더 깊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도루묵 설화에서 피란길에 그렇게 맛있던 생선이 궁궐에서는 예전의 맛이 아니었던 것처럼 삶의 맛도 처지와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젊은 날 그토록 중요했던 것이 고은층에 이르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고, 젊어서는 별것 아니라고 지나쳤던 일이 오히려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큰 성취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건강하게 아침을 맞는 일이 귀하고, 많은 사람을 아는 것보다 마음을 나눌 몇 사람이 소중하다. 어쩌면 고은층은 삶의 양을 계속 늘려 가는 시기라기보다 이미 지나온 삶의 의미와 지금 가진 삶의 맛을 더욱 깊게 음미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진짜 도루묵’과 아직 맛보지 않은 내일
이날 점심 밥상에서 필자가 만난 것은 말속의 도루묵이 아니라 실제로 맛볼 수 있는 ‘진짜 도루묵’이었다.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에는 허무와 헛수고의 뜻이 담겨 있지만, 입안에서 맛본 도루묵은 담백하고 구수했다. 그 순간 우리는 혹시 이름과 관념에 사로잡혀 눈앞의 실제 삶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었다”, “이제 할 만큼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하겠는가”라고 생각하다 보면 고은층의 남은 삶까지 스스로 말짱 도루묵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삶은 지금 여기에 있다. 오늘 걸을 수 있으면 걷고, 읽을 수 있으면 읽으며, 쓸 수 있으면 쓰면 된다. 만날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평생 쌓아 온 경험을 나눌 곳이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된다. 필자 역시 글을 써 지인들과 생각을 나누고,
오랜 교수 생활과 사회활동을 통해 쌓은 경험을 필요한 곳에 조금이나마 돌려주고자 하며, 실제로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운동하고 자연을 걸으며 가족과 밥을 먹는다. 겉으로 보면 대단하지 않은 일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필자에게는 이런 일들이 바로 ‘진짜 도루묵의 맛’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한 끼, 이웃과 나누는 차 한 잔, 한 편의 글을 쓰는 시간, 몸을 위해 하는 작은 운동이 깊은 삶의 맛으로 다가온다.
여기에서 ‘돌아옴’의 의미도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말짱 도루묵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지만, 인생에서 돌아오는 일이 언제나 실패인 것은 아니다. 오랜 바깥 길을 걷다가 정년 이후 집과 가족에게 돌아오게 되고, 바쁜 사회생활을 마치고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세상의 평가와 경쟁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도 소중한 돌아옴이다. 젊은 날의 돌아옴은 실패처럼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고은층의 돌아옴은 오히려 회복일 수 있다. 더 가지려는 삶에서 가진 것을 감사하는 삶으로, 경쟁하는 삶에서 함께하는 삶으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왔다고 해서 모두 말짱 도루묵은 아니다. 잘 돌아오는 것도 삶의 지혜다.
그러나 고은층의 삶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오늘에 감사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아직 쓰지 않은 글이 있고, 만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며, 걷지 않은 길과 배우지 않은 것이 있다. 나누지 못한 경험도 남아 있다. 그래서 필자는 고은층에게 ‘기대’라는 말을 특별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기대가 있다는 것은 아직 미래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 기대는 젊은 날의 기대와는 달라야 한다. 더 높이 올라가기보다 더 깊어지기를 기대하고, 더 많이 가지기보다 더 잘 나누기를 기대하며, 단순히 더 오래 사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더 잘 살아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미래는 아직 말짱 도루묵이 아니다. 아직 살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맛보지 않은 도루묵의 맛을 미리 단정할 수 없듯, 살아 보지 않은 내일의 맛 또한 미리 알 수 없다. 어쩌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맛있을 수도 있다.
맺음글
돌아옴을 또 하나의 출발로
경주 안강의 함지박 한정식에서 맛본 도루묵 한 접시가 생각보다 멀리 필자의 마음을 데리고 갔다. 도루묵은 한 마리 생선이면서 여러 의미를 품고 있었다. 되돌아감의 도루묵이 있고, 헛수고를 뜻하는 ‘말짱 도루묵’이 있으며, 밥상에서 직접 맛보는 ‘진짜 도루묵’도 있다. 필자의 삶에도 한때 말짱 도루묵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바라보니 결코 헛되지 않았던 일도 많았다. 성공과 실패, 만남과 헤어짐, 성취와 좌절은 모두 오늘의 나를 만들어 온 삶의 재료였다.
그러므로 고은층의 삶은 지나간 ‘말짱 도루묵’을 아쉬워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나간 실패에서는 지혜를 건져 내고, 지나간 성공에서는 감사를 남기면 된다. 그리고 오늘은 오늘의 진짜 도루묵을 제대로 맛보아야 한다. 가족과 함께 먹는 한 끼, 이웃과 나누는 한마디, 걸을 수 있는 한 걸음, 읽고 쓸 수 있는 하루,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도움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기대하면 된다.
인생은 때때로 돌고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왔다고 해서 모두 말짱 도루묵은 아니다. 돌아온 자리에서 지난 삶을 새롭게 이해하고, 오늘의 맛을 음미하며,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맛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 돌아옴은 실패가 아니라 또 하나의 출발이다.
필자는 이제 지나간 삶의 말짱 도루묵보다 오늘과 앞으로 맛볼 진짜 도루묵을 더 생각하고 싶다.
"말짱 도루묵은 지나온 인생에서 얻은 지혜의 맛이고,
오늘의 진짜 도루묵은 감사의 맛이며,
아직 맛보지 않은 내일의 도루묵은 기대의 맛이다."
지나간 삶에는 지혜를, 오늘의 삶에는 감사를,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는 기대를 품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맛을 함께 음미하며 걸어가는 것이 긴 인생여정을 지나온 고은층의 멋이자 지혜이며, 아직 남아 있는 삶을 향한 또 하나의 희망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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