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석양을 닮은 듯 다른 듯, 고은층의 세상"

이성근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
낙엽은 가을이 깊으면 떨어진다
바람과 아이들은 저녁이면 잠잠해진다
서산에 해가 걸려도
고은층은 도무지 놀이를 마칠 생각이 없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평소 인생의 후반기를 자연의 석양에 비유하곤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석양과 한평생을 살아온 고은층(高恩層)의 모습이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파크골프를 즐기면서 자연의 석양과 인생의 석양은 닮은 듯하면서도 사뭇 다른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서산에 걸린 석양이나 수평선 위로 붉게 물든 저녁노을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도 잠시뿐이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 세상에는 어둠이 찾아온다. 자연은 정해진 때에 따라 하루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날을 준비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벼는 익어 고개를 숙이고, 형형색색으로 물든 나뭇잎은 땅으로 떨어진다. 바람도 저녁이면 잦아들고, 아이들도 하루의 놀이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자연과 세상에는 이처럼 때가 되면 멈추고 쉬어 가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

그런데 필자가 고은층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파크골프장에서 만나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해가 서산에 걸리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와도, 놀이에 빠진 고은층은 좀처럼 아쉬움을 거두지 못한다. 한 홀이라도 더 돌고 싶고, 한 번이라도 더 공을 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며칠 전 대구 수성구 팔현파크골프장에서 동반자들과 라운딩을 즐기던 중에도 그러하였다. 서산에 해가 기울어 가는데도 골퍼들의 발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필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동반자에게 농담처럼 한마디를 건넸다.

“서산에 해가 지는데도 고은층은 도무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니 웃음이 나면서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자연의 석양은 하루의 끝을 알리지만, 인생의 석양을 살아가는 고은층에게 저녁은 반드시 삶의 즐거움과 활동의 끝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지만, 삶을 즐기려는 마음까지 세월에 맡길 필요는 없다. 비록 나이는 들어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놀이와 활동을 통해 삶의 기쁨과 활력을 이어 갈 수 있다. 오히려 인생의 후반기일수록 주어진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이 고은층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의 석양은 때가 되면 저물지만, 인생의 석양을 살아가는 고은층의 열정과 즐거움은 쉽게 저물지 않는다. 석양을 닮았으면서도 석양과는 다른 고은층의 모습, 바로 여기에 인생 후반기를 유유자작(悠悠自作)하며 살아가는 삶의 묘미가 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파크골프장에서 발견한 고은층의 유쾌한 일상과 삶의 활력을 한 편의 디카시로 담아 보았다.

728x90



"번개처럼 서귀(西歸)하고 안개처럼 귀구(歸邱)하다: 농사일의 보람과 협업의 정"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인생 후반기, 농사와 여행이 어우러진 유유자작의 삶


인생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삶의 방식과 활동 영역이 달라진다. 젊은 시절에는 직장과 가정,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맞추어 살아간다. 그러나 정년 이후에는 오랜 세월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며 새로운 보람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인생 후반기는 단순히 일을 내려놓고 쉬는 시기가 아니라 또 다른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어 가는 시기이다.
필자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유유자작(悠悠自作)이라 부른다. 유유는 여유와 평정 속에서 자연과 세상을 즐기고 심신을 가꾸는 삶이다. 자작은 스스로 삶을 계획하고 관리하면서 창의적으로 실천하는 삶이다. 고은층(高恩層)이란 은퇴 이후에도 이러한 생활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이웃과 사회에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정년 이후 제주 서귀포에 머물면서 한림읍 금능리에 자리한 작은 농장인 근석농장을 가꾸어 왔다. 아마나스에다 고추와 호박을 심고 가꾸며 수확하는 일은 자연과 교감하고 노동의 보람을 체험하는 생산적 여가활동이다. 때로는 흙을 만지며 땀 흘리고, 때로는 산책과 파크골프를 즐기면서 제주 자연이 베푸는 은혜를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근석농장의 가을걷이를 마무리하기 위해 대구에서 제주로 짧은 여정을 다녀왔다. 번개처럼 서귀포로 내려와 농사일을 마치고, 안개처럼 대구로 돌아가는 이른바 '번개 서귀(西歸), 안개 귀구(歸邱)'의 여정이었다. 비록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 속에는 농사일의 보람과 이웃의 협업, 소중한 인연과 후생 영농의 가치,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지혜가 함께 담겨 있었다.
이번 여정에서 필자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농산물만이 아니었다. 농사일을 도와준 이웃들의 따뜻한 정과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의 정담, 그리고 자연의 변화 앞에서 계획을 내려놓을 줄 아는 여유가 더해지면서 인생 후반기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경험이 되었다.

번개처럼 서귀 하다:
농사의 때를 지키는 자작의 실천


농사에는 때가 있다. 씨앗을 뿌릴 때가 있고, 작물을 가꾸고 수확할 때가 있다. 또한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계절을 준비할 때가 있다. 농부는 자신의 편의에 따라 농사일을 마냥 미룰 수 없다. 계절의 흐름과 날씨의 변화에 맞추어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농사는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에 맞추어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제주행도 그러한 농사일에서 비롯되었다. 근석농장에 남아 있는 고춧대를 정리하고, 그동안 말려 둔 고추와 창고에 보관해 둔 재래호박을 택배로 보내야 했다. 대구에서 제주까지 오가는 일이 다소 번거로울 수도 있었지만, 한 해 동안 정성을 들여 가꾼 농사를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은 농부로서의 작은 책임이자 보람이었다.
필자는 늦은 오후 대구에서 항공편으로 제주에 도착하였다. 제주공항에서 서귀포로 이동한 뒤 혁신도시의 푸른 초장에 여장을 풀었다. 평소 제주와 대구를 오가며 생활하는 필자에게 두 지역은 서로 다른 공간이면서도 삶의 연속성을 이루는 생활 터전이다. 대구에는 오랜 세월 쌓아 온 인연과 사회활동의 기반이 있고, 제주에는 농사와 산책, 파크골프와 자연이 어우러진 또 하나의 일상이 있다.
필자는 이러한 다지역 생활에서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젊은 시절에는 직장과 생업에 따라 생활공간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정년 이후에는 건강과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생활의 장소와 활동을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정주형 생활도 좋지만, 여러 지역을 오가며 서로 다른 경험과 인연을 이어 가는 생활 역시 고은층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번 제주행은 단순한 휴식이나 관광을 위한 여행이 아니었다. 해야 할 농사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한 목적 있는 여정이었다. 필자의 아호인 여송(如松)의 뜻을 빌려 '여송지성'이라 부른 자신이 번개처럼 서귀포를 찾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연의 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작은 실천에서 자작적 삶의 의미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농사일의 보람과 협업:
스스로 일구며 이웃과 함께 가꾸는 농사


농사는 땅을 일구고 작물을 가꾸어 결실을 얻는 생산활동이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삶의 보람 또한 크다. 씨앗을 뿌리고 싹이 돋기를 기다리며,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에는 자연의 신비와 노동의 가치가 함께 담겨 있다. 작물은 농부의 정성과 노력에 응답하지만, 그 결실은 햇볕과 비, 바람과 땅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 따라서 농사는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겸손을 배우는 생활의 과정이기도 하다.
필자는 전문 농업인은 아니지만, 이번에 근석농장에서 아마나스와 고추와 호박을 가꾸면서 농사일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직접 심고 가꾼 작물이 자라 열매를 맺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기쁨과 기다림 끝에 결실을 얻는 성취감, 그리고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뿌듯함이 함께한다. 수확량이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이 정성을 들여 가꾼 작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직접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농사의 주체는 자신이되, 필요할 때 이웃과 힘을 합하는 협업은 노동의 부담을 줄이고 성취의 기쁨을 더한다. 특히 고은층에게 협업은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는 수단을 넘어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생활 속 상생의 실천이다.
이번 근석농장의 가을걷이에서도 협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경험하였다. 서귀포에서 인연을 맺은 서귀삼연의 김 선생과 신서귀삼연의 이 선생이 농사일에 기꺼이 힘을 보태 주었다. 세 사람은 한림 금능의 근석농장으로 향하여 고춧대를 정리하고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였다. 혼자였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일을 두 분의 도움으로 한결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
여기에 또 한 분의 고마운 이웃이 있었다. 평소 필자의 농사일을 자문하고 여러모로 도와주는 우 대표이다. 이번에도 말려 둔 고추를 택배로 보내는 과정에서 박스 구입과 발송 준비에 도움을 주었다. 충북 보은 출신인 우 대표는 천성이 어질고 인정이 넉넉한 분으로, 농사일에 관한 경험과 지혜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고마운 이웃이다. 농사일이 익숙하지 않은 필자에게 그의 조언과 도움은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된다.
농사일은 혼자 하면 힘들고 지루할 수 있지만, 함께하면 수월하고 즐거워진다. 서로 일을 나누어 맡고 힘을 보태는 과정에서 노동은 협동이 되고, 수확은 나눔이 되며, 일터는 따뜻한 만남의 장소가 된다. 이번 가을걷이에서도 김·이 두 선생의 협업과 우 대표의 세심한 도움 덕분에 농사일의 부담을 덜고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이번 일을 통해 자조와 협업이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가치임을 새삼 깨달았다. 자조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이고, 협업은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며 공동의 성취를 이루는 과정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이웃의 손을 잡고, 자신에게 여유가 있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 힘을 보태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농사일에서 배운 협업과 상생의 정신이다.

농사와 후생 영농:
작은 수확에서 얻는 건강과 관계의 보람


후생(厚生)은 사람들의 생활을 넉넉하고 풍요롭게 한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는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풍요롭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복지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의미로 폭넓게 이해되고 있다. 개인의 일상에서도 후생은 물질적 풍요만이 아니라 건강과 행복, 인간관계와 삶의 보람을 함께 증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근석농장의 농사활동을 '후생 영농'이라 부르고 있다. 농사를 통해 경제적 소득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고은층의 소규모 생활농업에서는 농산물의 생산량이나 수익 못지않게 건강을 지키고 자연을 즐기며 이웃과 관계를 가꾸는 가치가 중요하다. 작은 농장에서 흘리는 땀 한 방울과 직접 가꾼 농산물 한 바구니에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삶의 즐거움이 담겨 있다.
농사가 주는 첫 번째 보람은 신체적 활력이다. 밭을 일구고 작물을 돌보는 과정에서 몸을 움직이며 일상적인 신체활동을 이어 갈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건강과 체력에 맞는 적절한 활동을 유지하는 일은 중요하다. 농사는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몸을 움직이고 생활의 리듬을 유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보람은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는 마음의 평정이다. 씨앗을 뿌리고 싹이 돋기를 기다리며,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에는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농사는 사람의 뜻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햇볕과 비, 바람과 기온의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자연의 이치를 배우고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익히게 된다.
세 번째 보람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는 기쁨이다. 농사 경험을 서로 나누고 필요한 일에 힘을 보태며, 수확물을 가족과 이웃에게 나누는 과정에서 따뜻한 정이 쌓인다. 이번에도 김·이 두 선생과 우 대표의 도움으로 농사일을 마무리하면서 협업이 단순히 노동의 효율을 높이는 일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우정을 깊게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특히 오전 농사일을 마친 뒤 가진 점심과 차담의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이 자리에는 오랜만에 외가 동생인 노 대표도 합석하였다.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근황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쁜 일상에서는 자주 만나지 못하던 사람들과 한자리에 앉아 정담을 나누는 일은 그 자체로 소중한 삶의 기쁨이었다. 농사일의 성취감에 오랜 인연의 따뜻함이 더해지면서 하루가 더욱 풍요로워졌다.
이처럼 농사는 건강과 활력, 자연과의 교감, 관계와 나눔이라는 여러 가치를 함께 제공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후생 영농은 이러한 가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농사이다. 농산물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였는가 보다 농사를 지으면서 얼마나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였으며, 누구와 보람을 나누었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고은층에게 생산적 여가란 반드시 경제적 성과를 내는 활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건강을 가꾸고 능력을 활용하며 가족과 이웃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활동도 충분히 생산적이다. 그런 점에서 근석농장은 필자에게 단순한 농지가 아니다. 자연을 배우는 교실이자 심신을 가꾸는 일터이며, 이웃의 정을 나누는 생활 속 후생의 공간이다.

안개처럼 귀구 하다:
자연에 순응하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 가는 삶


근석농장의 가을걷이를 마친 뒤에는 파크골프를 즐길 생각이었다. 농사일도 마무리하고 좋아하는 운동까지 할 수 있다면 짧은 제주행이 더욱 즐겁고 보람 있는 여정이 될 터였다. 필자에게 파크골프는 건강을 지키는 운동인 동시에 자연을 즐기고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고은층의 소중한 생활활동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날씨가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오후에 비가 내려 당초 계획했던 서귀삼연의 파크골프 일정을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은 계획대로 마무리하였지만 좋아하는 운동까지 즐기려던 소망은 이루지 못한 셈이다. 처음에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으나, 날씨는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농사도 파크골프도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계획을 언제나 고집할 수는 없다. 때로는 상황에 따라 조정하고, 필요하면 다음 기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젊은 시절에는 정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는 변화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여유와 평정도 필요하다.
비로 인해 파크골프를 하지 못하게 되자 필자는 김 선생과 이 선생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하고 헤어진 뒤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귀복연의 맹 선생과 서 선생에게 전화하여 안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기억하고 안부를 묻는 일은 인연을 이어 가는 소중한 방법이다. 짧은 전화 한 통에도 오랜 정이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저녁에는 서귀삼연의 현 선생과 일품순두부식당에서 식사를 함께하였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인근 파리바게뜨로 자리를 옮겨 한 시간 남짓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정담을 나누었다. 서로의 근황과 관심사를 이야기하면서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달랬다. 농사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시작한 제주행이 여러 소중한 인연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하루의 끝자락까지 따뜻한 정으로 채워졌다.
돌이켜 보면 이번 제주행은 농사일과 사람들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여정이었다. 오전에는 근석농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점심에는 노 대표와 세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맹·서 두 선생과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저녁에는 현 선생과 식사와 차담을 함께하였다. 농사일에서 시작된 하루가 협업과 만남, 나눔과 정담으로 이어진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유유자작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자작은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능동적인 삶이며, 유유는 자연과 상황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여유와 평정을 유지하는 삶이다. 자작만 있고 유유가 부족하면 지나친 성취욕과 집착에 빠질 수 있고, 유유만 있고 자작이 부족하면 소극적인 안주에 머물기 쉽다. 두 가치가 조화를 이룰 때 고은층의 삶은 주체성을 지키면서도 유연하고 평온해질 수 있다.
이번 제주행에서 필자는 농사일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번개처럼 움직였지만, 파크골프를 다음으로 미루는 데에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 대신 평소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인연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계획했던 일 하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또 다른 기쁨과 보람이 채워 준 셈이다.
그리하여 제주에 내려올 때는 번개처럼 서둘렀지만, 대구로 돌아갈 때는 안개처럼 조용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귀구(歸邱)하게 되었다. 번개는 신속한 행동과 실천을 상징하고, 안개는 고요함과 여유를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다른 자연현상이지만 필자에게는 이번 여정의 시작과 마무리를 표현하는 상징이 되었다.
번개처럼 행동할 줄 아는 실천력과 안개처럼 물러설 줄 아는 여유로움은 서로 모순되는 덕목이 아니다. 오히려 두 가지가 어우러질 때 인생 후반기의 삶은 더욱 유연하고 풍요로워진다. 이번 여정에서 얻은 또 하나의 교훈이다.

맺음말
농사일의 보람과 협업의 정으로 가꾸는 유유자작의 삶


이번 제주행은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여러 가지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다. 근석농장의 고춧대를 정리하고 말린 고추와 재래호박을 택배로 보내면서 직접 농사를 짓는 보람을 느꼈다. 김·이 두 선생의 협업과 우 대표의 세심한 도움으로 가을걷이를 마무리하면서 상생과 나눔의 가치를 확인하였다. 또한 노 대표와의 점심 차담, 맹·서 두 선생과의 전화 인사, 현 선생과의 저녁 정담을 통해 소중한 인연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도 새삼 깨달았다.
필자는 이번 경험을 통해 고은층의 생활철학을 지탱하는 세 가지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는 자립과 자조의 가치이다. 인생 후반기에도 자신의 건강과 능력에 맞추어할 일을 찾고, 스스로 계획하며 실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수동적으로 살아갈 이유는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지속하는 것은 생활의 활력과 존재가치를 지키는 길이다. 필자에게 근석농장의 농사일은 이러한 자작적 삶을 실천하는 소중한 활동이다.
둘째는 협업과 인연의 가치이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나이가 들수록 이웃과의 따뜻한 관계는 더욱 소중해진다. 필요한 때에는 도움을 받고, 여유가 있을 때에는 도움을 주며,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삶이 중요하다. 이번 농사일에서 경험한 김·이 두 선생과 우 대표의 도움, 그리고 여러 지인과의 만남은 협업과 인연이 삶의 든든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하였다.
셋째는 후생과 여유의 가치이다. 인생 후반기의 삶은 물질적 성취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건강을 지키고 자연을 즐기며, 작은 성취에서 기쁨을 얻고, 가족과 이웃에게 보람을 나누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계획한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상황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여유가 필요하다. 비로 인해 파크골프를 다음 기회로 미룬 대신 여러 사람과 정을 나누었던 이번 경험이 이를 잘 보여 주었다.
이 세 가지 가치는 필자가 추구하는 유유자작의 삶과 맞닿아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일은 이웃과 함께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는 여유롭게 대처하는 것이다. 자조와 협업, 후생과 나눔, 실천과 평정이 조화를 이룰 때 고은층의 삶은 더욱 건강하고 따뜻하며 의미 있게 이어질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이번 여정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고추나 호박만이 아니었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였다는 성취감과 이웃들이 베풀어 준 따뜻한 정, 오랜 인연과 나눈 정담이다. 그리고 자연의 변화 앞에서 계획을 내려놓을 줄 아는 평정이야말로 더 소중한 수확이었다.
삶의 보람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동안 무엇을 실천하고 누구와 마음을 나누었느냐에 있다.
앞으로도 필자는 근석농장을 오가며 자연의 이치를 배우고, 이웃과 협력하며, 농사와 산책과 파크골프를 즐기는 삶을 이어 가고자 한다. 또한 오랜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새로운 만남을 반기면서 서로에게 작은 기쁨과 도움을 주는 삶을 가꾸어 갈 생각이다. 때로는 번개처럼 부지런히 움직이고, 때로는 안개처럼 조용히 물러서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인연을 소중히 가꾸고자 한다.
번개처럼 실천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며, 안개처럼 여유롭게 물러설 줄 아는 삶이다. 이것이 필자가 추구하는 고은층의 유유자작(悠悠自作)이다.

[사진해설] 사진 1~5는 제주 한림 금능 근석농장의 전경과 아마나스, 고추, 호박, 울금의 모습이고, 사진 6~10은 한라산, 각시바위, 서귀포 혁신도시, 강창학파크골프장, 제주국제공항의 전경이다. (사진: 이성근)



728x90



"번개처럼 서귀(西歸)하고 안개처럼 귀구(歸邱)하다: 농사일의 보람과 협업의 정"

이성근


이틀 전, 여송지성 번개처럼 서귀 하여
서귀포 혁신도시 푸른 초장에 여장 풀고
어제는 김·이 두 선생의 부조로 근석농장 고춧대를 정리했다
오늘은 일기불순에 서귀삼연 파크골프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 여송, 후일을 기약하며 안개처럼 귀구 한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정년 이후 제주 서귀포에 머물면서 한림읍 금능리에 자리한 작은 농장인 근석농장을 가꾸어 왔다. 농사는 자연과 교감하며 땀 흘리는 즐거움을 누리고, 인생 후반기의 자작적 삶을 실천하는 소중한 일상이다. 이번에 고추와 호박을 심고 가꾸며 수확하는 과정에서 자연의 이치를 배우고, 작은 결실에서도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번 제주행도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기 위한 짧은 여정에서 비롯되었다. 근석농장에 남아 있는 고춧대를 정리하고, 그동안 말려 둔 고추와 창고에 보관해 둔 재래호박을 택배로 보내기 위해 대구에서 제주로 향하였다. 늦은 오후 항공편으로 제주에 도착하여 서귀포 혁신도시의 푸른 초장에 여장을 풀었다. 그야말로 번개처럼 이루어진 서귀(西歸)였다.
이튿날에는 서귀포에서 인연을 맺은 서귀삼연의 김 선생과 신서귀삼연의 이 선생이 농사일에 기꺼이 힘을 보태 주었다. 세 사람이 함께 한림 금능의 근석농장으로 향하여 고춧대를 정리하고 가을걷이를 마무리하였다. 평소 필자의 농사일을 자문하고 도와주는 우 대표도 마른 고추를 택배로 보내는 데 필요한 박스 구입과 발송 준비를 도와주었다. 충북 보은 출신인 우 대표는 천성이 어질고 인정이 넉넉한 분으로, 농사일이 있을 때마다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고마운 이웃이다.
오전 농사일을 마친 뒤에는 점심과 차담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오랜만에 외가 동생인 노 대표도 합석하였다.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사일로 시작한 하루가 정겨운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노동의 보람에 인간관계의 기쁨까지 더해졌다.
오후에는 비가 내려 당초 계획했던 파크골프를 즐길 수 없었다. 김 선생과 이 선생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하고 헤어진 뒤 숙소로 돌아왔다. 이어 서귀복연(西歸二緣)의 맹 선생과 서 선생에게 전화하여 안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전화 한 통으로 서로의 정을 이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저녁에는 서귀삼연의 현 선생과 일품순두부식당에서 식사를 함께하였다. 식사 후에는 인근 파리바게뜨로 자리를 옮겨 한 시간 남짓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정담을 나누었다. 이렇게 농사일로 시작된 제주 방문은 여러 소중한 인연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2박 3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이번 제주행에서 얻은 수확은 고추와 호박만이 아니었다. 김·이 두 선생의 협업, 우 대표의 세심한 도움, 노 대표와의 점심 차담, 맹·서 두 선생과의 전화 인사, 현 선생과의 저녁 정담이 모두 소중한 삶의 수확이었다. 농사일은 혼자 계획하고 시작하였지만, 그 마무리는 여러 사람의 도움과 정으로 이루어졌다.
필자는 평소 고은층(高恩層)의 바람직한 생활철학을 유유자작(悠悠自作)이라는 말로 설명해 왔다. 유유는 자연과 더불어 여유와 평정을 누리는 삶이다. 자작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면서 이웃과 협력하는 삶이다. 이번 제주행에서도 농사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번개처럼 움직이는 자작의 실천과, 비로 인해 파크골프를 다음으로 미루는 유유의 여유를 함께 경험하였다.
제주에 올 때는 번개처럼 서둘렀지만, 대구로 돌아갈 때는 안개처럼 조용하고 가벼운 마음이었다. 해야 할 농사일을 마무리하였고, 고마운 이웃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었으며, 이루지 못한 파크골프의 즐거움은 다음 기회로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이에 번개처럼 서귀 하여 농사일을 마치고, 안개처럼 귀구 하는 짧은 여정에 담긴 농사일의 보람과 협업의 정, 그리고 소중한 인연과 고은층의 유유자작 정신을 한 편의 디카시로 남기게 되었다.

[사진해설] 사진 1~4는 제주 한림 금능에 위치한 근석농장의 전경(2026. 11. 4.)이며, 사진 5~6은 각각 서귀포 혁신도시와 제주국제공항의 전경(2026. 11. 5.)이다. (사진: 이성근)


728x90



"서귀포 범섬 파크골프클럽 조 편성 후기에 부쳐"

이성근


오늘은 범섬 파크골프클럽의 즐거운 소풍날
첫째 조는 내로라하는 실력파들이고
둘째 조는 정 많고 속 깊은 순정파들이며
셋째 조는 바다처럼 마음 넓은 포용파들이다
문득 돌아본다, 나는 어느 파에 속할까?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2026년 11월 오늘은 서귀포 강창학  파크골프장에서 범섬 파크골프클럽의 월례대회가 있는 날이다. 대회를 앞두고 총무가 조 편성을 마친 뒤 회원들에게 재미있는 후기를 올렸다. 첫째 조는 실력파, 둘째 조는 속 좋은 사람들, 셋째 조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들이라는 내용이었다. 조 편성만으로도 회원들의 성격과 친밀한 관계가 드러나는 듯하여 절로 웃음이 났다.
필자는 범섬 파크골프클럽의 정회원은 아니지만 자칭 게스트 회원으로 인연을 맺고 있다. 이번 월례대회에 총무의 조 편성 후기를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면 과연 어느 조에 편성되었을까? 실력이 뛰어난 실력파일까, 정이 많고 속이 깊은 순정파일까, 아니면 마음이 넓고 너그러운 포용파일까?
파크골프에서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서로의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웃음과 정을 나누는 마음이 소중하다. 실력은 경기의 즐거움을 더하지만, 좋은 성품은 사람 사이의 인연을 더욱 깊게 만든다.
이번 조 편성 후기는 필자에게 작은 웃음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과연 어떤 파크골프 동반자로 기억되고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이러한 생각을 담아 한 편의 디카시를 쓰게 되었다.

728x90



"221명의 인연이 비춰 준 나의 자화상: 다섯 가지 삶의 모습과 성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타인의 기억으로 돌아보는 나의 인생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 삶의 모습은 자신의 기억 속에만 남지 않는다. 함께 일하고 배우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기억하는 나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삶은 스스로 만들어 온 발자취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기억 속에 남겨진 또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필자는 최근 우리 사회의 원로 인사들이 평생의 활동과 업적으로 남긴 이름과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인사유명(人死留名)’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의 흐름과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한평생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어떤 일을 하였으며,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가는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서 2020년 12월 펴낸 회상록 『신영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를 다시 펼쳐 보았다.

이 회상록은 필자와 소중한 인연을 맺은 221명의 지인이 남긴 회상의 글을 엮은 것이다. 스승과 선배, 동료와 동문, 제자와 연구자, 정책활동의 동반자, 이웃과 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계에서 만난 사람들이 필자에 대한 기억을 남겼다. 회상록은 고교계명(高敎啓明), 진덕수업(進德修業), 교학상장(敎學相長), 사제동행(師弟同行), 근학무실(勤學務實), 학해무변(學海無邊), 후생치용(厚生治用), 귀전선린(歸田善隣)의 여덟 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필자가 걸어온 교육과 연구, 사회활동과 인간관계의 발자취이면서 함께한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담은 기록이기도 하다.

이번에 필자는 회상록의 서문과 지인들이 남긴 글 제목을 다시 살펴보면서 자신의 삶을 특징짓는 다섯 가지 핵심 개념을 정리하였다. 첫째는 성실과 원칙, 둘째는 탐구와 배움, 셋째는 창의와 실천, 넷째는 조정과 협력, 다섯째는 배려와 동행이다. 이 다섯 가지는 각각 삶의 중심을 지키는 태도, 학문과 교육을 향한 열정,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로 연결하는 실행력, 사람과 조직을 이어 주는 조정능력, 소중한 인연을 가꾸는 인간적 따뜻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는 필자가 스스로 내세우는 자랑이나 이미 완성한 덕목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인연 속에서 형성된 타인의 기억을 통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가꾸기 위한 다섯 개의 성찰의 거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의 인생 여정을 되돌아보며, 각각의 삶의 모습이 지닌 의미와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실과 원칙의 사람:
삶의 중심을 지키는 꾸준함과 책임감


성실은 맡은 일을 꾸준히 수행하는 태도이며, 원칙은 선택과 판단에서 지켜야 할 기준이다. 성실이 행동의 지속성을 의미한다면 원칙은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사람의 삶에는 신뢰와 책임이 쌓인다. 회상록에서 이문조 학장님은 「성실과 근면 그리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이덕복 박사는 「선배 이성근 교수는 성실함의 본보기였다」라는 제목으로 필자를 기억하였다. 이주석 행정부지사 겸 원장은 「소신과 원칙이 뚜렷한 학자」라는 제목을 남겼다. 서로 다른 시기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성실과 원칙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필자는 1980년 3월 영남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2018년 2월 정년을 맞기까지 38년 동안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였다. 그동안 대학의 보직과 연구기관 운영,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자문 등 여러 역할을 맡았다. 활동 영역과 일의 성격은 달라졌지만, 맡은 일에는 책임을 다하고 처음 세운 목표를 끝까지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 때로는 여러 과제가 동시에 주어지기도 하였으나, 주어진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자신의 시간과 역량을 쏟았다. 이러한 자세가 지인들에게 성실과 원칙의 모습으로 기억되었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성실과 원칙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일에 대한 높은 기준은 자신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함이나 완고함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돌이켜 보면 일의 성과에 몰두한 나머지 상대방의 사정과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과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서로 배치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성실함이 지나친 집착이 되지 않고, 원칙이 경직된 고집으로 흐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 후반기에 성실과 원칙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젊은 시절에는 직업적 성취와 사회적 책임을 위한 자세였다면, 이제는 자신의 건강과 생활을 스스로 관리하고 삶의 중심을 지키는 태도가 된다. 정해진 생활의 리듬을 유지하고, 몸과 마음을 돌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도 성실의 실천이다. 무엇보다 성실하되 무리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되 유연함을 잃지 않는 삶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고은층이 지향하는 균형 잡힌 생활의 기본이기도 하다.

탐구와 배움의 사람:
가르치면서 배우고 함께 성장한 교학상장

교수의 직분은 지식을 가르치는 일이지만, 그 바탕에는 끊임없는 탐구와 배움이 자리하고 있다.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다시 확인하고, 제자와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며, 연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시야를 넓혀 가기 때문이다. 배움은 가르침의 준비이면서 가르침을 통해 더욱 깊어지는 과정이다. 회상록에서 허재원 선생은 「천생(天生) 교수이신 나의 지도교수님」이라는 제목을, 곽명희 선생은 「늘 공부하시던 선생님」이라는 제목을 남겼다. 김길곤 교수 겸 목사의 「배우고 가르치고 배우는 인생 여정」과 윤성현 선생의 「지역개발학의 발전을 꿈꾸는 소년, 이성근」이라는 제목에서도 학문적 탐구와 교육에 대한 필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필자는 젊은 시절부터 행정학과 도시 및 지역계획학, 지역개발학 등을 공부하면서 교육과 연구를 삶의 중요한 축으로 삼았다. 대학 강의와 학술연구를 수행하는 한편, 대학원생들의 학위논문을 지도하면서 수많은 제자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일반대학원과 행정대학원, 환경대학원 등에서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원생들을 지도하던 시간들은 지금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때로는 이른 아침이나 주말에도 만나 연구과제를 논의하고, 이론과 현장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였다. 제자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현장의 경험과 새로운 시각을 배우기도 하였다. 이는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를 성장시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실천이었다.

학문적 탐구에는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함께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하는 과정도 따른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세상은 단순한 이론이나 하나의 관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제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을 돕는 과정임을 배우게 된다. 회상록의 교학상장, 사제동행, 학해무변이라는 부제에도 이러한 교수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배우고 성장하며, 학문의 길을 함께 걸어가고,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정신이다.

정년 이후에도 탐구와 배움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직업적 의무에서 벗어난 배움은 새로운 자유와 즐거움을 준다. 필자가 인생 후반기에 사색과 글쓰기를 이어 가는 것도 배움의 연장이다. 이제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일 못지않게 오랜 경험을 성찰하고 지혜로 전환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젊은 시절의 배움이 전문성과 성취를 위한 것이었다면, 인생 후반기의 배움은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풍요롭게 하는 과정이다. 배움이 지속되는 한 인생의 성장 또한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창의와 실천의 사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현실로 연결하는 실행력


창의는 기존의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실천은 그 가능성을 구체적인 행동과 성과로 연결하는 힘이다. 창의가 새로운 길을 구상하는 일이라면 실천은 그 길을 실제로 걸어가는 일이다. 두 가지가 결합할 때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이 열린다. 회상록에서 최용호 교수 겸 이사장님은 「창의적이고 기획력이 강한 이성근 교수」라는 제목을 남겼다. 이재훈 원장 겸  교수는 필자를 한국 테크노파크의 「기획자이자 산파(産婆)」로 기억하였으며, 윤광재 학장은 「이성근 교수님은 행동가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나중규 박사의 「항상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계획하던 원장님을 기억하며」라는 제목도 이러한 특징과 맞닿아 있다.

필자는 학문적 연구성과가 현실의 문제 해결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행정학과 지역개발학은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연구하는 응용사회과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와 교육뿐 아니라 정책의 기획과 실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였다.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지역발전 정책을 연구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여러 위원회에서 정책자문과 심의활동에 참여한 것도 이러한 학문적 지향의 연장선이었다. 새로운 정책과 사업을 구상하고, 여러 대안을 비교하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은 학문과 실천을 연결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정책환경의 변화와 이해관계의 대립, 제도적 제약과 자원의 부족 등으로 계획이 기대만큼 실현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구상이라도 현실의 여건과 사람들의 공감을 충분히 얻지 못하면 지속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러한 경험은 창의와 실천에 도전하는 용기뿐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는 지혜와 결과를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능력만큼이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조정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도 중요하다.

인생 후반기의 창의와 실천은 반드시 큰 사업이나 사회적 성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맞는 생활방식을 설계하고,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며, 일상에서 작은 목표를 세워 실천하는 것도 창의적인 삶이다. 필자가 제주에서 농장생활과 파크골프, 산책과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일상을 가꾸어 온 것도 이러한 실천의 한 모습이다. 필자가 추구하는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자작’에는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새로운 의미와 보람을 만들어 가는 능동적 실천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이제 창의와 실천은 무엇인가를 크게 이루기 위한 수단을 넘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새롭게 가꾸는 생활의 지혜가 되고 있다.

조정과 협력의 사람:
다름을 연결하고 공동의 길을 찾아가는 지혜


사회는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차이는 때로 갈등의 원인이 되지만, 이를 인정하고 공동의 해법을 찾아갈 때 새로운 협력의 가능성이 열린다. 조정은 대립하는 입장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며, 협력은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혜와 역량을 모으는 활동이다. 회상록에서 김혜천 교수 겸 이사장은 필자를 「타고난 갈등조정자」라는 제목으로 기억하였다. 김남일 부시장은 국토균형개발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가교역할을 수행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제목을 남겼다. 우동기 총장 겸 교수, 교육감 겸 위원장의 「30년간 함께 한 협업의 동반자」라는 제목도 사람과 조직을 연결해 온 필자의 활동을 돌아보게 한다.

필자는 대학과 연구기관, 공공부문의 여러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조직을 만났다. 지역개발과 지방자치, 국토균형발전 등의 정책과제는 특정 기관이나 전문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중앙과 지방, 공공과 민간, 전문가와 주민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필자는 정책의 합리성과 실현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조정하려고 노력하였다. 갈등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 각자의 입장이 형성된 배경을 이해하고 공동의 이익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서로 다른 사람과 조직을 연결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신뢰와 공정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실천이다.

그러나 조정이 언제나 합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어느 쪽도 충분히 만족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며, 조정자의 판단 자체가 새로운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지나치게 합의를 중시하면 필요한 결정을 미루거나 원칙을 희생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조정과 협력에는 전문적 지식과 합리적 판단뿐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듣는 인내, 공정한 태도,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가 요구된다. 갈등을 없애는 것만이 조정의 목적은 아니다. 서로 다른 입장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경험은 인생 후반기의 인간관계에도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가족과 친구, 이웃 사이에서도 생각과 생활방식의 차이는 존재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경험과 판단만을 앞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젊은 시절의 조정과 협력이 정책과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량이었다면, 인생 후반기에는 인간관계의 평화와 조화를 이루는 생활의 지혜가 된다. 서로를 이기려 하기보다 이해하고, 자신의 주장만 관철하기보다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는 태도가 고은층의 품격을 높여 준다고 생각한다.

배려와 동행의 사람
사람을 아끼고 소중한 인연을 이어 가는 따뜻함


배려는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이며, 동행은 그 마음을 지속적인 관계와 행동으로 이어 가는 일이다. 배려가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라면 동행은 삶의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실천이다. 인간관계는 일시적인 만남에서 시작되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쌓일 때 오래 지속되는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한다. 회상록에서 염태정 논설위원은 「부드러움과 배려」라는 제목을, 신순식 부군수는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의 교수님」이라는 제목을 남겼다. 황성수 교수는 「사람을 아끼시는 이성근 교수님과의 인연」을, 김영수 학장은 「떠난 자리가 그리운 사람」을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기억들은 필자가 사람들과 맺어 온 관계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필자는 회상록의 서문에서 자신의 삶이 사람 중심의 관계 지향적이라기보다 일 중심의 과업 지향적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실제로 오랜 교수생활과 연구활동, 정책자문을 수행하면서 일에 몰두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 지인이 배려와 동행의 모습을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돌이켜 보면 교육과 연구, 사회활동을 통해 맺은 인연들은 단순한 업무 관계에 머무르지 않았다.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어려움을 나누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스승과 제자, 선후배와 동료를 넘어 삶의 동반자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필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함께 만들어 가는 살아 있는 인연을 ‘생연(生緣)’이라고 부른다. 지역을 매개로 형성되는 지연(地緣)과 학교를 매개로 맺어지는 학연(學緣)이 있다면, 생연은 삶의 과정에서 서로의 경험과 마음을 나누며 지속적으로 가꾸어 가는 인연이다. 따라서 생연은 단순히 과거의 만남으로 주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관심과 실천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관계이다. 정년 이후 제주와 대구를 오가며 산책과 산행, 파크골프와 농장생활을 즐기는 동안에도 이러한 생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함께 자연을 걷고 운동하며, 농작물을 가꾸고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직업과 지위를 넘어선 새로운 인간관계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다.

인생 후반기에 배려와 동행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젊은 시절의 인연이 일과 성취를 함께하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살피고 삶의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는 관계로 변화한다. 오래된 인연을 소중히 지키면서 새로운 만남에도 마음을 열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기보다 서로에게 편안한 동반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돌이켜 보면 성실과 원칙, 탐구와 배움, 창의와 실천, 조정과 협력은  필자의 공적인 삶을 이루어 온 중요한 특징이었다. 그러나 배려와 동행은 그러한 삶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게 하는 인간적 토대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일의 성취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함께하는 기쁨과 나눔의 가치를 깊이 실천하고자 한다.

맺음말
타인의 기억에서 삶의 지혜로, 유유자작의 길을 가다


인생을 돌아보면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니고 살아간다. 가족에게 보이는 모습과 제자가 기억하는 모습이 다르고, 동료와 친구가 바라보는 모습도 서로 다르다. 어느 하나의 모습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기억과 평가가 모일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삶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회상록 『신영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에 담긴 221명의 소중한 인연을 다시 돌아보면서 성실과 원칙, 탐구와 배움, 창의와 실천, 조정과 협력, 배려와 동행이라는 다섯 가지 삶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성실과 원칙은 삶의 중심을 지키는 바탕이었고, 탐구와 배움은 학문과 교육의 길을 이어 가는 원동력이었다. 창의와 실천은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도전하는 힘이었으며, 조정과 협력은 사람과 조직을 연결하는 방법이었다. 배려와 동행은 그 모든 활동을 소중한 인연으로 남게 하는 인간적 가치였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는 필자가 완성한 덕목이 아니다.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기억해 준 모습이면서 앞으로 더욱 가꾸어야 할 삶의 과제이다. 지나온 삶의 장점에 감사하되 부족했던 점도 함께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의 성취를 인정하는 일과 한계를 성찰하는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삶의 이해는 더욱 깊어진다.

필자는 인생 후반기를 주체적이고 품격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고은층(高恩層)이라 부르고, 그들의 생활철학을 유유자작(悠悠自作)으로 설명해 왔다. 유유는 여유와 평정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삶을 음미하는 태도이며, 자작은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실천하면서 새로운 의미와 보람을 만들어 가는 자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다섯 가지 삶의 모습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성실과 원칙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생활의 중심이 되고, 탐구와 배움은 인생 후반기의 성장을 이어 가게 한다. 창의와 실천은 새로운 일상을 설계하는 힘이 되며, 조정과 협력은 관계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 배려와 동행은 삶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이제 필자는 평생의 직업적 역할에서 벗어나 또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중요했다면, 인생 후반기에는 어떻게 살아가고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해졌다. 사회적 지위와 성취보다는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소중히 여기고, 일의 결과만큼이나 사람들과 나누는 정과 신뢰의 가치를 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221명의 지인이 남긴 회상의 글은 필자에게 단순한 정년 기념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기억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자화상이자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일깨우는 삶의 이정표이다. 그 속에는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할 평가도 있고, 더 깊이 성찰하고 보완해야 할 과제도 담겨 있다.

사람은 세월 앞에서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삶의 품격까지 저절로 늙어 가는 것은 아니다.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배움을 이어 가며, 소중한 인연을 가꾸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살아갈 때 인생 후반기는 또 다른 성숙의 계절이 된다. 필자는 앞으로도 성실하게 살되 유연함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되 겸손함을 지키며, 새로운 일을 실천하되 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오래된 인연과 새로운 생연을 소중히 가꾸면서 유유자작의 삶을 이어 가고자 한다. 인생의 참된 자화상은 혼자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 위에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과 사랑이 더해져 완성되어 가는 그림이다.

[글의 바탕이 된 자료]
이성근(2020). 『신영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 (사)한국지역균형연구원.

[참고사항]
본 칼럼의 다섯 가지 핵심 개념은 회상록의 서문과 8개 부에 수록된 221명 지인의 회상 글 제목에 나타난 특징을 필자가 해석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221명 전원의 회상 글 전문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내용분석이나 객관적인 성격검사의 결과를 의미하지 않는다.

https://www.idaegu.com/news/articleView.html?idxno=414364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 회상록 출간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이성근 지음/한국지역균형연구원/419쪽영남대 명예교수인 이성근 교수가 221명의 지인들로부터 글을 받아 자신의 인생여정을 돌아보는 회상록을 출판했다.글 전체가

www.idaegu.com

728x90



"221명의 인연이 비춰 준 자화상"

이성근


성실과 원칙으로 삶의 중심을 지키고
탐구와 배움으로 학문의 길을 걸었으며
창의와 실천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
조정과 협력으로 사람과 세상을 이었으며
배려와 동행으로 소중한 인연을 가꾸어 왔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최근 우리 사회의 원로 인사들이 평생의 활동과 업적으로 남긴 이름을 돌아보면서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세월과 함께 늙어 가지만, 살아온 삶의 모습과 세상에 남긴 발자취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필자는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2020년 12월 펴낸 회상록 『신영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를 다시 펼쳐 보았다. 이 책에는 필자와 소중한 인연을 맺은 221명의 지인이 남긴 회상의 글이 여덟 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그 글들을 다시 살펴보니 필자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속에서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성실과 원칙, 탐구와 배움, 창의와 실천, 조정과 협력, 배려와 동행이라는 다섯 가지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이는 필자가 스스로 내세우는 덕목이라기보다 오랜 세월 함께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필자의 삶에서 읽어 낸 특징들이다. 서로 다른 인연들이 남긴 기억과 평가가 모여 필자 자신의 모습을 비춰 주는 하나의 자화상이 된 셈이다.

이제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필자는 이 다섯 가지 모습을 지나온 삶의 성적표이자 앞으로의 삶을 가꾸는 지침으로 삼고자 한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기억을 통해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나온 삶에서 지켜 온 가치를 되새기고 부족한 부분을 성찰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더욱 품격 있게 가꾸어 가고자 한다.

이러한 생각을 담아 221명의 소중한 인연이 비춰 준 필자의 삶을 한 편의 디카시 「221명의 인연이 비춰 준 자화상」으로 표현하였다

https://www.idaegu.com/news/articleView.html?idxno=414364


728x90



"고은층의 삶을 유유자작(悠悠自作)으로 가꾸는 사미(四美)"

이성근


일미는 맑은 마음으로 청풍명월(淸風明月)하며 살고
이미는 밝은 얼굴로 화안열색(和顔悅色)을 마주한다
삼미는 일상의 기쁨을 불역락호(不亦樂乎)하며 누리고
사미는 삶의 노래를 방성고가(放聲高歌)하며 부른다
그리고  내 삶을 유유자작(悠悠自作)하며 아름답게 가꾼다

[사진ㆍ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인생 100세를 넘어 120세 시대를 이야기하는 장수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저출산·고령화와 가족구조의 변화로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바라보면서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고은층(高恩層)에게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장수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특히 가족과 사회적 관계가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긍정적·적극적·능동적·자작적 자세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에 필자는 고은층의 삶에 필요한 네 가지 아름다운 덕목을 생각하였다.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밝은 얼굴로 사람을 대하며, 일상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삶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를 고은층의 사미(四美)라 이름 붙였다.
사미는 특별한 능력이나 물질적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한다. 맑음은 마음의 여유를, 밝음은 관계의 온기를, 기쁨은 생활의 만족을, 노래는 삶의 활력을 뜻한다.
이 네 가지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필자가 추구하는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여 한 편의 디카시로 담아 보았다.

728x90



"인생의 성취를 이끈 다섯 가지 마음: 칠십 평생의 회고와 고은층의 삶의 지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칠십 평생의 여정에서 되돌아본 성공의 의미


인생은 수많은 선택과 도전, 만남과 헤어짐, 성취와 좌절이 이어지는 긴 여정이다. 젊은 시절에는 미래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앞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면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자신이 걸어온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이루었는가 못지않게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중요하게 다가온다.

오늘 아침 필자는 칠십 중반에 이른 인생 여정을 문득 되돌아보았다. 먼저 대학 교수로서 학문과 교육에 몸담았던 38년의 세월, 대학과 여러 조직에서 맡았던 역할, 그리고  지역발전과 국가정책에 참여했던 공적 활동이 생각났다. 이어서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온 일상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가운데에는 보람과 기쁨도 있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던 일과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던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 물음이 떠올랐다. 무엇이 필자로 하여금 수많은 갈림길을 지나 오늘에 이르게 하였을까? 단순히 능력이나, 운이나 주변 환경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바탕에는 어려움을 이겨 내고 사람들과 함께 일을 이루어 가게 했던 마음의 힘이 있었다.

필자는 그 마음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는 정심(定心), 둘째는 종심(綜心)과 협심(協心), 셋째는 진심(眞心)과 성심(誠心), 넷째는 초심(初心)과 열심(熱心), 다섯째는 뒷심과 전심(全心)이다. 다섯 갈래로 묶은 아홉 가지 마음은 지난 삶의 경험에서 얻은 성찰이자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고은층에게도 필요한 실천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정심(定心)은 용기와 평정으로 삶의 중심을 잡는 마음

첫 번째는 정심(定心)이다. 정심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자세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와 위기 앞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평정심이 함께 작용한다. 용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라면 평정심은 그 방향을 바르게 잡아 주는 힘이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따른다. 익숙한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또한 책임 있는 위치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도 있다. 이때 두려움만 앞세우면 기회를 놓치기 쉽고, 지나친 자신감으로 서두르면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따라서 용감하게 도전하되 냉정하게 판단하고, 결단하되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필자 역시 학문과 교육, 지역개발과 공공정책의 현장에서 여러 선택과 결단의 순간을 경험하였다. 모든 판단이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고비마다 마음을 가다듬고 주어진 책무를 다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용기와 평정이 서로 대립하는 마음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고은층의 삶에서도 정심은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변화와 사회적 역할의 축소, 익숙했던 생활환경의 변화 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조급해하기보다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설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심은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가게 하는 내면의 힘이다.

종심(綜心)과 협심(協心)은 지혜를 모으고 사람들과 함께 뜻을 이루는 마음

두 번째는 종심과 협심이다. 필자가 말하는 종심(綜心)은 여러 요소와 서로 다른 관점을 종합하고 정합성을 높여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하는 마음이다. 여기에서 종합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 자원과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정합은 그 요소들 사이의 모순과 충돌을 줄여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이는 복잡한 문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통합적 사고의 자세이다.

현실의 문제는 어느 한 분야의 지식이나 개인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지역개발과 행정, 조직 운영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전문지식, 제도와 자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개별 요소의 우수성 못지않게 전체의 조화와 연결이 중요하다. 필자가 오랫동안 학문과 정책 현장에서 경험한 것도 부분을 이해하는 능력과 함께 전체를 조망하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협심(協心)은 이러한 종합적 사고를 공동의 실천으로 이어 주는 마음이다. 아무리 좋은 계획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사람들의 이해와 참여, 협력과 협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능력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며 공동의 목적을 향해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개인의 역량은 조직과 공동체의 성취로 확장된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참여했던 여러 공적 활동도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함께 연구하고 토론했던 동료와 제자들, 현장에서 실천을 담당했던 관계자들, 그리고 묵묵히 지원해 준 많은 사람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고은층에게도 종심과 협심은 필요하다. 오랜 경험과 지혜를 종합하여 후세대와 나누고, 이웃과 공동체의 일에 참여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 후반기의 성취는 혼자 이루는 결과보다 함께 만들어 가는 가치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진심(眞心)과 성심(誠心)은 참된  마음을 바탕으로 정성을 다하는 삶

세 번째는 진심과 성심이다. 진심(眞心)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참된 마음이다. 성심(誠心)은 그 마음을 바탕으로 자신이 맡은 일과 사람을 대하는 데 정성을 다하는 자세이다. 진심이 마음의 바탕과 동기에 관한 것이라면 성심은 그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실천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과 성취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만을 좇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사람 사이의 신뢰를 잃기 쉽다. 진심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진실성을 부여하고, 성심은 그 진실성이 일회적인 표현에 머물지 않도록 뒷받침한다. 결국 진심과 성심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을 쌓고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 가게 하는 바탕이다.

필자는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수행하며 여러 사회적 역할을 맡아 왔다. 그 과정에서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도 중요했지만, 맡은 일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가가 신뢰와 성과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심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성심은 그 믿음을 지속시키는 힘이 되었다.

고은층의 삶에서 진심과 성심은 더욱 소중하다. 은퇴 이후에는 인간적 신뢰와 관계의 깊이가 삶의 품격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을 대할 때도, 오랜 친구와 새로운 인연을 만날 때도,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작은 일을 실천할 때도 진심과 정성은 변함없는 가치를 지닌다. 인생 후반기에 남겨야 할 것은 화려한 경력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따뜻한 진심과 정성일 것이다.

초심(初心)과 열심(熱心)은 처음의 뜻을 지키며 꾸준히 삶을 가꾸는 마음

네 번째는 초심과 열심이다. 초심(初心)은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품었던 뜻과 마음이다.  열심(熱心)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열정과 노력을 기울이는 자세이다. 초심이 삶의 방향을 정하는 출발점이라면 열심은 그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다.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과 그 마음을 행동으로 이어 가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대체로 희망과 의욕을 품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어려움이 쌓이면 처음의 뜻이 흐려지거나 열정이 식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초지일관의 정신과 근면하고 성실한 실천이다. 다만 초심을 지킨다는 것이 처음의 방법이나 생각을 끝까지 고집한다는 뜻은 아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방법은 새롭게 조정하되 처음 품었던 가치와 목적은 잃지 않는 것이 참된 초심의 자세이다.

필자의 삶에서도 학문과 교육에 대한 초심은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1980년 대학 교수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2018년 정년퇴임에 이르기까지 38년 동안 교육과 연구, 사회적 실천을 이어 왔다. 그 세월에는 새로운 도전과 보람도 있었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어려운 과제도 있었다. 그럼에도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배움을 멈추지 않으려는 마음이 긴 여정을 지탱해 주었다.

오늘날 필자가 이어 가는 글쓰기와 독서, 산책과 파크골프, 협업영농 역시 초심과 열심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인생 후반기의 열심은 젊은 시절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열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건강과 생활의 리듬을 살피면서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실천하는 지속 가능한 열심이 필요하다. 이는 조급함 없이 여유롭게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가는 고은층의 유유자작(悠悠自作)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뒷심과 전심(全心)은 끝까지 견디고 온 마음을 다해 완성하는 힘

다섯 번째는 뒷심과 전심이다. 뒷심은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며 일을 마무리하는 힘이다. 전심(全心)은 전심전력의 자세로 온 마음과 힘을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하는 태도이다. 뒷심이 지속성과 완수의 힘이라면 전심은 집중과 몰입의 힘이다. 두 마음이 함께할 때 시작한 일을 끝까지 책임 있게 마무리할 가능성이 커진다.

인생의 많은 일은 시작보다 마무리가 어렵다. 처음에는 의욕과 기대가 넘치지만 시간이 흐르면 피로와 장애가 쌓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나타난다. 이때 성취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순간적인 열정보다 끝까지 견뎌 내는 지속적인 힘일 때가 많다. 그러나 뒷심은 무조건 참고 버티는 고집과는 다르다. 상황에 따라 방법을 바꾸고 때로는 잠시 쉬어 가더라도 자신의 책무와 목표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자세가 참된 뒷심이다.

필자는 지난 세월 동안 여러 연구과제와 정책사업, 조직 운영과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면서 마무리의 중요성을 경험하였다. 좋은 구상과 계획도 실천의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문제를 다시 살피고 관계자들과 협의하며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시작하는 용기 못지않게 끝맺는 책임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고은층의 삶에서도 뒷심과 전심은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인생 후반기는 단순히 남은 시간을 보내는 시기가 아니다.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정리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시기이다. 다만 자신의 능력과 건강을 고려하여 중요한 일에 마음을 집중하고,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삶의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가고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지나온 인생의 의미도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맺음말
다섯 가지 마음으로 가꾸는 고은층의 인생 후반기


칠십 평생의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필자가 깨달은 것은 인생의 성공이 어느 한 가지 능력이나 조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용기와 평정으로 중심을 잡는 정심,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하는 종심과 협심은 삶의 성취를 이끄는 바탕이 된다. 여기에 진실과 정성을 다하는 진심과 성심, 처음의 뜻을 지키며 꾸준히 노력하는 초심과 열심이 더해져야 한다. 나아가 끝까지 견디는 뒷심과 온 마음을 다하는 전심이 서로 어우러질 때 삶의 성취는 더욱 견실해진다.
이 다섯 가지 마음은 각각의 역할을 지니면서도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 정심이 삶의 중심을 잡아 준다면 종심과 협심은 지혜와 사람을 연결한다. 진심과 성심은 그 과정에 신뢰를 더하고, 초심과 열심은 지속적인 실천을 이끈다. 마지막으로 뒷심과 전심은 시작한 일을 책임 있게 완수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마음들이 조화를 이룰 때 개인의 성취는 자신만의 결과를 넘어 타인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가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성공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젊은 시절의 성공은 도전과 경쟁, 성장과 성취에 무게를 두었다. 그러나 고은층의 성공은 성찰과 균형, 관계와 나눔, 그리고 삶의 의미와 품격을 가꾸는 데 더 큰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이루었는가 보다 자신이 이룬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며 누구와 나누는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필자가 지향하는 고은층의 유유자작 정신 역시 이러한 삶의 자세와 연결된다. 유유(悠悠)는 여유와 평정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균형을 가꾸는 태도이며, 자작(自作)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실천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자세이다. 지나온 삶에서 얻은 다섯 가지 마음을 인생 후반기의 여건에 맞게 새롭게 실천하는 것이 곧 유유자작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제 필자에게 성공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더 많은 것을 이루는 일이 아니다. 지난 삶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오늘의 일상을 성실하게 가꾸며, 가족과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통해 축적한 경험을 지혜로 바꾸고 그 지혜를 다음 세대와 공동체에 돌려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값진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다섯 가지 마음은 필자의 지난 삶을 이끌어 온 힘이었고, 앞으로도 지켜 나가야 할 삶의 지침이다. 인생의 전반기가 이 마음들로 성취를 이루는 시간이었다면, 후반기는 그 성취를 성찰하고 나누며 삶의 품격으로 완성해 가는 시간이다. 이것이 칠십 중반에 이른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성공이며, 유유자작하는 삶의 또 다른 의미이다.

사진해설: 사진 1은 대학 정년퇴임 시 수훈한 황조근정훈장이고, 사진 2는 대학 정년퇴임 기념식 모습이다. 사진 3은 대통령 직속·소속 자문위원회 위원 위촉장 수여식 장면이고, 사진 4는 청와대에서 4대 강 사업 자문위원회 회의를 마친 후 청와대 중정에서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사진 5는 대구경북연구원장 취임식 기념사진이고, 사진 6은 학교법인 순총학원 이사장 재임 당시 순복음총회신학대학 유** 총장 취임식 모습이며, 사진 7은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 221명의 소중한 지인으로부터 읽는 이성근 교수의  회상록 사진이다.
사진 8은 한라산 등정 기념사진이고, 사진 9는 서귀포 칠십리파크골프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며, 사진 10은 제주 한림읍 금능리 근석농장에서 농사일에 열중하는 농부 이성근의 모습이다.
정년 이후, 사진 11은 제주연구원 특강 모습이고, 사진 12는 한국지역정책학회 학술대회 행사이다. 사진 13은 ** *** 민관군 갈등조정협의체 회의 모습이고, 사진 14는 *** 도시계획위원회 기념 촬영이며, 사진 15는 필자가 설치한 연구원의 현판이다.  








728x90



"칠십 평생을 돌아본 성공의 다섯 가지 마음"

이성근


하나는 용기와 평정으로 중심을 잡는 정심(定心)이고
둘은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하는 종심(綜心)과 협심(協心)이다
셋은 참된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진심(眞心)과 성심(誠心)이고
넷은 처음 뜻을 지키며 열정을 쏟는 초심(初心)과 열심(熱心)이며
다섯은 끝까지 버티며 온 힘을 다하는 뒷심과 전심(全心)이었다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오늘 아침 문득 칠십 중반에 이른 필자의 인생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수많은 갈림길에서 선택하고 도전하며 때로는 어려움을 견뎌 온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엇이 그 긴 여정을 헤쳐 나가게 했으며, 삶의 크고 작은 성취를 가능하게 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필자는 다섯 가지 마음에서 찾았다. 용기와 평정의 정심, 종합과 협력의 종심과 협심, 진실과 정성의 진심과 성심, 뜻과 열정의 초심과 열심, 그리고 인내와 집중의 뒷심과 전심이다. 다섯 갈래로 묶은 아홉 가지 마음은 지난 삶을 지탱해 온 힘이자 앞으로도 지켜 나가야 할 삶의 자세이다.

돌이켜보면 성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 내고, 사람들과 함께 뜻을 이루며, 마지막까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지켜 내는 것이 성공이다. 이러한 생각을 고은층(高恩層)의 시선으로 정리하여 한 편의 디카시에 담아 보았다.




사진해설: 사진 1은 창녕 화왕산의 전경이고, 사진 2, 3은 제주 올레 7코스의 아름다운 풍경이며, 사진 4는 포항 내연산 산행 중 촬영한 필자 부부의 모습이다.



728x90



"고은층의 ‘그럼에도’ 정신과 삶의 오행지도(五行之道): 듣고, 참고, 나누고, 걷고, 배우는 삶"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인생 후반기, ‘그럼에도’ 살아가는 지혜


인생의 전반기가 무엇을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기라면, 후반기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깊이 성찰하는 시기이다. 젊은 날에는 미래를 향한 도전과 성취가 삶의 중심이었다면, 나이가 들수록 자신과 이웃, 그리고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과제로 다가온다. 삶의 무게중심이 성취에서 의미로, 소유에서 나눔으로, 경쟁에서 공존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의 현실이 언제나 평온한 것은 아니다. 신체적 기능의 변화와 사회적 역할의 축소, 익숙했던 인간관계의 변화는 새로운 적응을 요구한다.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활동의 범위가 좁아지고, 오랫동안 지켜 온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상황도 찾아온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필요한 것은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는 마음보다 변화한 현실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려는 자세이다.

필자는 이러한 인생 후반기의 주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고은층(高恩層)이라 부른다. 고은층은 단순히 연령으로 구분되는 노년층이 아니다. 살아온 세월의 은혜를 기억하고, 축적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과 이웃, 사회에 의미 있는 삶을 이어 가려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고은층의 가치는 과거의 지위나 업적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와 실천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생각을 담아 필자는 최근 "고은층의 ‘그럼에도’ 삶"이라는 디카시를 썼다. 그 핵심은 ‘들어야 한다, 참아야 한다, 나누어야 한다, 걸어야 한다, 배워야 한다’라는 다섯 가지 다짐이다. 필자는 이를 인생 후반기의 다섯 가지 실천의 길, 곧 ‘고은의 오행지도(五行之道)’라 이름 붙이고자 한다. 여기서 오행은 전통적인 음양오행의 요소가 아니라 일상에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다섯 가지 삶의 길을 뜻한다.

이 오행지도를 관통하는 정신은 바로 ‘그럼에도’이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건강과 환경이 달라졌음에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겼음에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이는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변화와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이다. ‘그럼에도’가 마음의 결단이라면, 오행지도는 그 결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경청(傾聽)의 길
들어야 한다: 존중으로 관계를 여는 지혜


고은층의 첫 번째 길은 경청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에게 경험과 지식은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는 사실이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생각과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을 때, 풍부한 경험은 오히려 새로운 이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특히 과거에 사회적 책임과 지도적 역할을 맡았던 사람일수록 자신의 의견을 먼저 말하고 상대방에게 조언하려는 습관이 남아 있기 쉽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 요구되는 지혜는 모든 문제에 답을 제시하는 능력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 태도에 있다. 때로는 조언보다 경청이, 설명보다 공감이 상대방에게 더 큰 힘이 된다.

경청은 단순히 말을 듣는 행위가 아니다. 자신의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려는 노력이다. 부부 사이에서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마음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하고, 자녀와의 관계에서는 부모의 경험을 일방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 친구와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가치관을 인정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오늘날처럼 세대 간 생활방식과 의사소통 방법이 빠르게 달라지는 시대에는 경청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젊은 세대의 생각이 자신의 경험과 다르다고 해서 쉽게 판단하거나 부정할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관점 속에서도 배울 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청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통해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다.

고은층에게 경청은 관계의 주도권을 내려놓는 겸손이자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실천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상대방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람이 오래 기억된다. 결국 경청의 길은 자신의 존재를 앞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관계의 깊이를 더해 가는 길이다.

인내(忍耐)의 길
참아야 한다: 절제로 마음을 다스리는 품격

두 번째 길은 인내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생활의 경험이 풍부해지는 동시에 오랫동안 형성된 습관과 판단방식이 굳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자신의 기대와 다른 상황을 마주하면 쉽게 불편함을 느끼거나 사소한 문제에도 감정이 앞설 수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필요한 것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절제의 지혜이다.

그러나 인내를 무조건 참거나 모든 일을 양보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부당한 일을 묵인하거나 자신의 정당한 권리와 존엄까지 포기하는 것은 성숙한 인내가 아니다. 참아야 할 일과 바로잡아야 할 일을 분별하고, 감정적인 반응과 원칙 있는 대응을 구별하는 것이 진정한 인내이다.

인생 후반기에는 말 한마디와 작은 행동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 당장의 감정에 따라 내뱉은 말은 오래된 우정을 상하게 할 수 있고, 사소한 의견 차이를 끝까지 다투는 태도는 가족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을 키울 수 있다. 반대로 잠시 말을 멈추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여유는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내의 바탕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 있다.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조화를 이루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이다. 인간관계에서 모든 생각을 같게 만들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차이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차이 속에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찾는 것이다.

인내는 자신의 뜻을 끝까지 관철하는 힘이 아니라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내면의 여유이다. 지나친 욕심을 줄이고 불필요한 경쟁에서 벗어나며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때 마음의 평온도 깊어진다. 경청이 타인의 마음을 향해 자신을 열어 가는 길이라면, 인내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삶의 균형을 지키는 길이다. 절제할 줄 아는 마음에서 고은층의 품격이 드러난다.

나눔(分享)의 길
나누어야 한다: 받은 은혜를 돌려주는 보은의 실천


세 번째 길은 나눔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족의 사랑과 스승의 가르침, 동료의 협력과 이웃의 도움, 그리고 사회가 마련해 준 여러 기회가 어우러져 오늘의 삶을 만들어 왔다. 그러므로 인생 후반기에 이르면 자신이 무엇을 이루었는가 못지않게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말하는 고은층의 ‘은(恩)’에는 이러한 관계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인생의 성취를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만 여기지 않고 여러 사람과 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의 결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려는 보은(報恩)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나눔의 대상은 재산이나 물질에 한정되지 않는다. 평생 축적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하는 일, 지역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혜를 보태는 일,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와 도움을 건네는 일도 모두 나눔이다. 특히 은퇴 이후에는 직업적 책임에서 벗어난 만큼 자신의 시간과 역량을 보다 자유롭게 사회적 가치로 연결할 수 있다.

나눔에는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자신이 주고 싶은 것을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보다 상대방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다. 경험을 전할 때에도 훈계보다 조언이, 일방적인 가르침보다 함께 고민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나눔이 상대방에게 부담이나 간섭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본래의 의미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오랜 대학 생활과 사회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을 이제는 글과 만남을 통해 이웃과 나누고자 한다. 이는 과거의 업적을 되풀이하여 알리기 위한 일이 아니라 그동안 받은 도움과 배움의 일부를 다시 사회에 돌려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인생 후반기의 나눔은 무엇을 얼마나 주었느냐보다 자신의 경험과 시간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의미가 있다.

나눔은 가진 것을 줄이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를 넓히는 실천이다. 자신에게 머물던 지식과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때, 지나온 세월은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다. 고은층의 보람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만 있지 않다. 자신이 받은 은혜가 다른 사람의 삶에서 다시 살아나도록 돕는 데에도 있다.

걸음(步行)의 길
걸어야 한다: 몸과 세상을 이어 가는 생동의 실천


네 번째 길은 걸음이다. 걷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신체활동이지만, 인생 후반기에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자연을 만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일상의 변화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걸음은 몸을 움직이는 행위인 동시에 삶의 활동영역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실천이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 상태와 신체적 능력에는 개인차가 커진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같은 거리와 속도를 요구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많이 걷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과 형편에 맞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걷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가능한 범위에서 몸을 움직이고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걸음의 본질은 특정한 운동방식보다 삶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려는 자세에 있다.

필자는 산책과 파크골프를 즐기면서 걸음이 주는 여러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걷다 보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발견하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평소 지나쳤던 주변의 모습에도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시간은 신체활동과 사회적 교류, 자연에 대한 관찰이 함께 이루어지는 생활의 현장이다.

걸음에는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기능도 있다. 빠르게 움직일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천히 걸을 때 눈에 들어온다. 길가의 작은 꽃과 나무, 마을의 오래된 풍경,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새로운 생각의 소재가 된다. 걷는 동안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미처 풀지 못했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또한 걸음은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고 사람들과의 접점을 유지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활의 반경은 좁아지기 쉽다. 반면 가까운 공원이나 마을길을 찾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소규모 모임에 참여하는 활동은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작은 움직임이 세상과의 관계를 이어 주는 통로가 된다.

고은층에게 필요한 걸음은 무리한 도전이나 기록 경쟁이 아니다. 자신의 몸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일상을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사람과 자연,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일이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고, 빠르게 걷지 않더라도 깊이 사색할 수 있다. 걸음의 가치는 속도와 거리보다 그 안에서 발견하는 삶의 생동감에 있다.

배움(學習)의 길
배워야 한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기 갱신의 지혜

다섯 번째 길은 배움이다. 배움은 특정한 연령이나 직업에 속한 사람만의 과제가 아니다. 특히 인생 후반기에는 사회적 지위나 직업적 성취를 위한 공부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심과 호기심에 따라 새로운 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 이러한 배움은 지식을 얻는 활동을 넘어 자신을 변화시키고 삶의 가능성을 넓히는 과정이다.

오늘날 사회는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을 비롯하여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생활방식과 소통수단이 달라지고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러한 변화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배움을 멈춘다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이 커지고 다른 세대와의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반대로 필요한 것을 하나씩 익히려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변화는 부담인 동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기술과 유행을 모두 따라갈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하여 배우고, 익힌 내용을 실제 생활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마트폰의 새로운 기능을 익히거나 인공지능을 활용해 정보를 탐색하는 일, 관심 있는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거나 새로운 취미를 배우는 일 모두 의미 있는 배움이다.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공부가 일상의 불편을 줄이고 새로운 즐거움을 열어 주기도 한다.

고은층의 배움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차원이 있다. 바로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해석하는 일이다. 젊은 시절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도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과거의 판단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지식과 타인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과정 역시 배움이다. 이처럼 배움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익숙한 믿음을 다시 살펴보는 용기이기도 하다.

필자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배움의 끈을 이어 가고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건, 자연과 사회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 의미를 글로 정리하는 과정은 또 다른 공부이다. 오랫동안 지식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었지만, 이제는 배우는 사람의 자세로 세상과 마주하려고 한다. 가르치는 역할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배움의 기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배움의 궁극적인 가치는 많은 지식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새로운 것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넓히고,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며,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가다듬는 데 있다. 나이가 들어도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새롭게 배우려는 사람은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갈 수 있다. 배움은 고은층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며 내일의 가능성을 열어 가는 자기 갱신의 길이다.

맺음글
‘그럼에도’ 정신으로 완성하는 고은의 오행지도


인생 후반기의 삶은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건강과 경제적 여건, 가족관계와 생활환경에 따라 각자가 마주하는 현실은 다르다. 그러나 어떠한 조건에서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가꾸려는 태도는 중요하다. 필자가 강조하는 ‘그럼에도’ 정신은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과 삶의 의지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고은의 오행지도는 그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다섯 가지 길이다.
첫째, 그럼에도 들어야 한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앞세우기보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는 경청의 길이다.
둘째, 그럼에도 참아야 한다.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관계의 조화를 지키는 인내의 길이다.
셋째, 그럼에도 나누어야 한다. 살아오면서 받은 사랑과 도움을 기억하고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이웃과 사회에 돌려주는 나눔의 길이다.
넷째, 그럼에도 걸어야 한다. 자신의 건강과 형편에 맞게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사람과 자연, 세상과의 관계를 이어 가는 걸음의 길이다.
다섯째, 그럼에도 배워야 한다. 익숙한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하는 배움의 길이다.

이 다섯 가지 길은 서로 분리된 행동수칙이 아니다. 경청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하고, 인내는 그 관계를 지켜 준다. 나눔은 관계를 공동체로 확장하고, 걸음은 세상과의 접촉을 지속하게 한다. 배움은 이 모든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과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이끈다. 다섯 가지 실천이 서로 어우러질 때 오행지도는 하나의 온전한 생활철학이 된다.
이를 삶의 가치로 정리하면 경청은 존중의 지혜이고, 인내는 절제의 품격이며, 나눔은 보은의 실천이다. 또한 걸음은 생동의 힘이고, 배움은 자기 갱신의 원천이다. 이 다섯 가지는 인간관계와 공동체, 신체활동과 정신적 성장이라는 인생 후반기의 주요 영역을 함께 아우른다.

물론 오행지도를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실천할 수는 없다. 듣기 어려운 사람은 문자나 다른 소통수단을 활용할 수 있고, 걷기 어려운 사람은 자신의 몸에 맞는 활동을 선택할 수 있다. 나눔과 배움도 각자의 여건에 따라 방법과 정도가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행동의 외형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존중과 절제, 감사와 실천, 자기 발전의 정신이다.
따라서 오행지도는 고은층에게 또 다른 성취의 부담을 주는 규범이 아니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가는 길잡이이다. 때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일이, 때로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을 아끼는 일이 그 출발점이 된다. 누군가에게 경험을 나누고, 가까운 길을 걷고, 새로운 지식을 하나 익히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지향하는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삶도 이러한 실천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형편과 속도를 존중하면서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찾아가는 생활방식이다. ‘그럼에도’ 정신이 삶을 향한 내면의 의지이고 오행지도가 그 의지를 실천하는 길이라면, 유유자작은 그 실천을 자신의 일상에 조화롭게 정착시키는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인생 후반기의 품격은 지나온 세월의 길이나 과거에 차지했던 자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늘 누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지, 어떤 감정을 절제했는지, 무엇을 나누었는지, 어디를 향해 움직였는지, 그리고 무엇을 새롭게 배웠는지가 삶의 깊이를 만들어 간다.
세월의 흐름은 멈출 수 없지만, 세월을 대하는 자세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나이가 들었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었음에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 인생 후반기는 가능성이 모두 소진된 시간이 아니라 남아 있는 가능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현해 가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듣고, 그럼에도 참고, 그럼에도 나누고, 그럼에도 걷고, 그럼에도 배우는 삶이다."

이것이 필자가 제안하는 고은층의 ‘그럼에도’ 정신이며, 삶의 오행지도(五行之道)이다. 나아가 지나온 세월에는 감사하고, 오늘의 삶에는 충실하며, 다가올 시간에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고은층의 인생 후반기 철학이다.

[사진 해설] 비슬산 자연휴양림과 소재사의 가을 풍경
위 사진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에 위치한 비슬산 자연휴양림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비슬산 자락에 자리한 소재사(消災寺)의 전경을 담은 것이다. 비슬산 자연휴양림은 사계절마다 다채로운 풍광을 선사하는 명소로,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심신의 안식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힐링 휴양지이다.
[사진·글] 이성근. 2026. 10. 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