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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법환포구 남쪽 바다에 자리한 범섬을 만나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범섬은 바다 위 호랑이처럼 깨어 있는 섬이다

제주 서귀포시 법환동 앞바다에  푸른 물결을 가르며 솟아오른 ‘범섬’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호랑이가 엎드려 바다를 응시하는 형상이다. 법환포구 해안에서 처음 마주한 범섬은 단순한 암석 덩어리가 아니었다. 어미 범이 새끼를 품은 듯 고요하면서도, 파도에 맞서
정중동(靜中動)으로 살아 있는 존재처럼 다가왔다.
범섬은 서귀포항과 법환포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에 떠 있는 무인도로, 북위 33.237도, 동경 126.542도에 위치한다. 현무암질의 지질을 기반으로 해식 절벽과 해저 암반이 어우러져 독특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지이자 지질학적 가치가 많은 섬이다.


특히 범섬은 풍수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장소성을 지닌다

한라산의 기운이 뻗어 내려오다가 고근산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른 후, 바다 위 범섬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서귀포 혁신도시가 입지하게 되었고, 신시가지가 조성되었으며, 서귀포 월드컵경기장도 들어섰다. 풍수지리에서는 이러한 곳을 ‘길지(吉地)’라 부른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국토교통부의 국가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위원 및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10개 혁신도시 마스터플랜 심의 중 8곳의 위원장 역할을 맡은 경험이 있다. 또한 충청남도 신도청 이전지인 내포신도시 선정 과정에서도 위원장을 맡았으며, 경상북도 신도청 이전지 선정위원과 신도시 건설 심의위원장으로 활동한 경험도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입지 선정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편이다.


범섬의 굴과 동굴은 생명처럼 살아 숨 쉬는 지형이다

범섬은 ‘큰섬’과 ‘작은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파식 작용으로 형성된 해식 동굴들이 있다. 주민들은 이 동굴들을 ‘큰굴’과 ‘작은굴’, 또는 ‘큰항문’과 ‘작은항문’이라 부르고, 섬의 함몰 지형은 ‘콧구멍’이라 이름지었다. 이는 범섬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는 제주 사람들의 자연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어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북쪽에는 나란히 뚫린 쌍둥이 동굴이 있어 마치 생명체의 숨구멍처럼 보인다. 파도에 실려 동굴 안으로 들어간 물소리가 메아리칠 때면, 범섬이 마치 숨을 쉬고 울부짖는 듯한 환청이 들린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이 장면을 마주한 순간, 자연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닌 ‘주체’가 되었다.


유람선 위에서 범섬의 실체를 바라보다

오늘 아침, 아파트 뒤창 밖으로 유난히 맑게 드러난 한라산을 바라보며, 그간 미뤄온 범섬 유람에 나섰다. 서귀포항을 출발한 유람선은 문섬과 섶섬 사이를 지나고, 해안절벽과 정방폭포와 외돌개를 지나면서 범섬으로 향했다. 바다 위에서 마주한 범섬은 육지에서 보던 모습보다 훨씬 친밀감이 갔고, 더욱 거대함으로 다가왔다.
검은 현무암 절벽은 잔잔한 바다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었고, 남쪽 암벽 위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마치 돌부처처럼 앉아 유유자적으로 세상을 낚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 아래 바다는 스쿠버다이빙의 명소라고 한다. 과거에는 섬주변에 산호와 어종이 풍부했지만 최근에는 수온 상승과 해양 오염으로 생태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일이 생각났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와 섬은 어쩌면 지금, 조용히 그들만의 몸짓으로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범섬은 자연과 인간, 바다와 도시,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다

유람선이 범섬을 돌며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한라산이 웅장하게 서귀포를 감싸 안고 있다. 그 아래에는 고근산과 함께 서귀포 혁신도시와 신시가지의 현대적 건물들이 질서 있게 자리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강정 해군기지가 이어지고, 그 너머로는 산방산과 송악산이 솟아 있다. 가파도와 마라도도 시야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문섬과 섶섬이 어깨를 나란히 사이좋게 있는 듯하고, 서귀포항과 새섬, 그리고 새연교가 이를 잇고 있다. 이 모든 경관의 중심에 범섬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서귀포의 자연에서 한라산이 육지의 중심축이라면, 범섬은 바다의 중심축이 된다. 범섬은 자연과 인간, 바다와 도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범섬은 일상의 섬이자 사유의 섬이다

나는 서귀포 혁신도시에 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범섬을 바라본다. 법환포구 올레길을 걷다가, 단골 카페 창밖을 바라보다가, 강창학 파크골프장의 즐거움과 아쉬움 속에서도, 국민체육센터의 러닝머신 위나 복지관 휴게실에서도 범섬은 늘 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는 어느 쪽이 중심인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내가 범섬을 따라다니는 것인지, 범섬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범섬은 서귀포의 눈동자다. 그 눈으로 한라산을 보고, 도시를 보고, 바다를 본다. 그 시선은 따뜻하며, 침묵 속에서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범섬은 단순한 섬이 아니다. 서귀포의 숨결이며, 그 안에 깃든 이야기의 중심이다.
필자는 우리가 범섬을 어떻게 바라보고 보전하느냐에 따라, 이 섬은 더 큰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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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는 혼자가 아닌 ‘함께’의 가치를 품은 섬이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글을 시작하며,
가파도의 짧은 탐방과 사색의 시간


제주도 서귀포 혁신도시에 생활한 지 3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간 나는 제주의 산과 해안을 다니며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지냈다. 며칠 전, 서귀삼연(서귀포에서 자연스레 만난 귀한 3인 )의 김 선생님이 가족과 함께 가파도를 방문한다기에, 나도 동행하게 되었다.
교수 시절 해외 출장을 나갈 때마다 나는 항상 자료를 사전에  준비 했듯, 이번 가파도 방문에도 그런 습관을 활용하였다. 평소 숲 해설사로 활동하며 지역 풍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현 선생님이 “가파도에선 청보리, 유채꽃, 돌담, 바다, 그리고 한라산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말에 자료를 찾아보고 사전에 메모를 한 후 가파도에 올랐고, 이 작은 섬은 단순한 자연의 정취를 넘어, 통합적 감성을 자극하는 융복합의 공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섬, 큰 그림: 청보리와 유채가 빚는 초록과 노랑의 수채화

가파도라는 이름은 ‘높다’는 뜻의 ‘가’와 ‘뻗어 나가다’는 뜻의 ‘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가파도는 제주 남서쪽 모슬포항에서 배로 10여 분이면 닿는 작고 평평한 섬이었다. 그러나 가파도는 그 크기나 높이를 넘어서는 존재감을 품고 있었다. 4월 초순의 가파도는 초록 청보리와 노란 유채꽃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움직이는 수채화 같았다. 이 색의 물결은 바람에 흔들리며, 필자의 마음마저 흔들어 놓았다.
청보리의 생기와 유채꽃의 따뜻함이 만든 이 장면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문화적 경관이자, 가파도가 가진 생명의 그 자체이었다. 이 아름다움은 오롯이 가파도의 봄날에만 나타나는 환상적인 그림일 것이다.

돌담에 새겨진 시간: 경계이자 연결의 선

가파도의 작은 들판을 걷다 보면 곳곳에 자리한 밭담이 눈길을 끌었다. 제주도의 돌담과 비슷하지만, 가파도 돌담은 조금 다르다. 제주 본섬의 돌담이 바람을 막는 울타리라면, 가파도의 돌담은 소유를 경계 지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길을 이루고 있다. 단순히 쌓아올린 돌이 아닌, 사람들의 세월과 바람, 파도를 견디며 만들어진 생활의 흔적이자 공동체의 유산이다.
돌 하나하나에 깃든 삶의 무게는 그 어떤 화려한 건축물보다도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바람 속을 타고 섬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스며들고 있다.


가파도에서 바라본 제주: 산과 바다를 관조하다

가파도는 낮은 지형 덕분에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섬 어디에서든 송악산, 산방산,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가파도에서 바라본 송악산은 악어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산방산은 신비로운 전설을 품은 채 독특한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뒤로 가파도에서 바라본 한라산은 위엄보다는 너그러움으로 다가온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마치 인생을 성찰하는 자세처럼 느껴진다. 높고 큰 산이지만, 조용한 가파도에서 마주한 한라산은 어머니 품 같은 안정과 포용을 상징하고 있다.

바다 위의 잔상: 마라도까지 이어지는 상상

가파도의 남쪽 끝자락에 서면 멀리 또한 가까이 마라도가 보인다. 군함을 닮은 마라도는 그 자체로도 상징적인 섬이지만, 가파도와 함께 바라볼 때 그 의미는 더욱 확장된다.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극점의 이미지와 함께, 가파도와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마라도는 단절이 아닌 연속의 지평이다. 작은 섬들이지만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민 듯 이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 두 섬 사이에서 제주 자연의 입체적 구성과 더 깊은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가파도가 품은 메시지:  융복합의 가치, 그리고 삶의 진실

가파도가 가진 청보리, 유채, 돌담과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바다, 산의 다섯 요소는 스스로도 아름답지만, 가파도에서는 그것들이 하나의 가치로 융합되어 나타난다. 단순한 자연이 아닌, 전통과 현대, 인간과 자연,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진 융복합의 미학이다.
그것은 하나의 철학이며, 자연이 던지는 조용한 질문이다. 필자는 이 조화로움 속에서 삶의 균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파도는 우리에게 거대함보다는 소박함, 빠름보다는 느림,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이 주는 깊이 있는 울림을 느끼게 해준다.


글을 맺으며,
섬을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이번 두 시간 남짓의 가파도 탐방은 단순한 탐방이 아니라, 사색의 여정이었다. 필자는 가파도에서 제주를, 자연을, 그리고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가파도의 자연은 낮은 곳에서 바라본 높은 산, 작은 경치에서 발견한 큰 가치이다. 이는 고은층의 삶과도 연결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의 이동이다. 무엇보다 고은층에게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소확행'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가 종합한 가파도는 혼자가 아닌 ‘함께’와 "융복합의 가치'를 품은 섬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가파도를 찾게 된다면, '함께'와 '융복합의 가치'를 먼저 이해하고, 이를 느끼며 걸어보기를 바란다. 청보리의 출렁임이 가슴에 잔잔히 남는 그 순간, 우리는 삶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파도 해설
1) 가파도는 제주도에서 2.2 km 남쪽에 있는 섬으로,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이다. 섬의 면적은 마라도의 3배인 0.9 km²이고, 인구는 2014년 9월 말을 기준으로 245명이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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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3의 상징적 의미와 삶의 적용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교수



글을 시작하며,


이 글은 숫자 3이라는 상징적 구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사유하고, 믿고, 스토리 텔링하며, 살아가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글의 내용은 삶을 드러내는 은유로서의 숫자 3에 대해 살펴본다

숫자는 흔히 수학적 연산이나 통계적 계산에 쓰이는 도구로 인식되지만, 그것은 숫자의 기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수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경험을 구조화하며,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심오한 상징 체계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숫자 3은 단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서양 고대 철학부터 동양 고전 사상에 이르기까지, 숫자 3은 반복과 완성, 조화와 균형, 시작과 끝의 중간 지점을 상징하는 핵심적 요소로 등장한다. 수많은 문화와 종교, 사상과 문학이 숫자 3을 중심으로 의미를 구조화 하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 개의 요소를 하나의 의미 있는 구조로 이해하고, 세 번의 반복을 통해 안정감과 완결성을 느낀다.
숫자 3은 단순한 수학의 수치를 넘어, 인생이라는 복잡한 삶의 서사와도 같다.


철학에서 숫자 3은 사유의 순환 구조를 나타낸다

철학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한 깊은 탐구이자 해석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숫자 3은 사고의 순환 구조를 표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플라톤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를 ‘선(善)’, ‘진(眞)’, ‘미(美)’라는 세 개의 원리로 정리했다. 이 셋은 단순히 나열된 개념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판단과 행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할 지향점이다. 이와 비슷하게 헤겔은 인간의 역사와 사유의 발전 과정을 ‘정(Thesis) 반(Antithesis) 합(Synthesis)’이라는 변증법적 구조로 설명했다. 이는 갈등과 모순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통합과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사유 방식이다.
이러한 삼층 구조는 현대의 문제 해결 방식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흔히 하나의 주장을 마주했을 때, 반대되는 관점을 떠올리고, 그 두 입장을 종합하여 더 깊은 이해를 도출한다. 이는 토론의 구조, 사고 확장의 과정, 심리적 자기 성찰의 흐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일하게 작용한다. 결국 숫자 3은 철학적 탐구를 ‘순환’시키고, 단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균형 있는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종교에서 숫자 3은 영성과 구원의 질서를 형성한다

숫자 3은 인간의 영성과 구원에 대한 상징으로도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에서의 ‘삼위일체’는 가장 핵심적인 교리 중 하나다. 성부(하나님), 성자(예수 그리스도), 성령은 각각 독립된 지위를 갖지만, 동시에 하나의 일체를 이룬다. 이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삼위로 설명되지만, 그 속에는 하나됨 속의 다양성과 통합의 원리가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숫자 3은 중요한 구조를 이룬다. 불(佛: 부처), 법(法: 진리), 승(僧: 공동체)을 의미하는 ‘삼보’는 수행자의 삶을 지탱하는 중심 축이다. 또한 모든 존재가 갖는 세 가지 본질인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설명하는 ‘삼법인’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게 한다.
힌두교에서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의 삼신 체계가 우주의 순환을 상징한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사라지는 생명의 흐름은 이 세 신의 역할을 통해 구조화된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은 단순히 교리나 신화로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구원과 성장의 단계, 세계와의 관계를 질서로 작용한다. 결국 숫자 3은 인간의 존재를 영성의 흐름 속에 위치시키고 초월을 향해 구조적으로 안내한다.


문화에서 숫자 3은 우리 삶의 스토리 텔링의 리듬이자 구조로 사용된다

숫자 3은 우리 삶의 경험을 전달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의미를 창조하는 스토리 텔링에 사용된다. 스토리 텔링 속에서도 숫자 3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고전 동화에서 ‘세 번의 기회’, ‘세 가지 시련’, ‘세 명의 인물’은 익숙한 패턴이다.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 "세 가지 소원," "세 형제 이야기"는 어린 시절 누구나 접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삼층 구조는 단순히 반복을 통해 기억에 남는 효과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해소, 실패와 성공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서사의
기초이다.
현대 문학과 예술도 이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3부작으로 구성되며, "반지의 제왕"이나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도 세 편으로 나뉘어 한 세계관을 완성해간다. 음악의 화음도 기본적으로 3음(삼화음)이 조화를 이루며, 동양의 천(天) 지(地) 인(人)의 사상도 인간과 자연, 우주의 질서를 통합하는 삼층 구조를 따른다. 이러한 반복과 균형은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과 미학적 만족을 제공한다. 숫자 3은 문화를 구성하는 리듬이자, 스토리 텔링을 완성하는 서사의 원리다.


숫자 3은 삶의 일상 속에 존재한다

숫자 3의 힘은 철학적 사유나 종교적 상징, 문화적 구조를 넘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설계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흔히 숫자 3을 즐겨 사용한다. 상 중 하,  금 은 동, 1 2 3, 초순 중순 하순, 시작 중간 종료, 삼진아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삼시 세판(三時三判) 등 삼등분을 선호한다.
특히 현대인의 삶은 흔히 일, 가정, 여가의 세 가지 축으로 나뉜다.  이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삶 전체의 균형은 무너지고 만다. 또 하루의 시간은 아침, 낮, 저녁으로 나뉘며, 우리의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축 위에 놓인다. 이처럼 숫자 3은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하며, 자기 관리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혁신체제와 조직관리에서도 ‘계획(plan), 실행(do), 성과 및 피드백(see)’이라는 3단계 프로세스는 가장 효과적인 사회시스템과  순환 구조로 여겨진다. 개인적인 목표 설정에도 ‘목표 설정, 실천,  점검’이라는 삼층 구조는 자율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숫자 3은 우리에게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는 사고 틀을 제공하고, 실천 가능한 전략을 만들어주는 삶의 도구가 된다. 무엇보다 숫자 3은 우리가 조화를 이룬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단순한 지혜이자 구조적 언어다.


글을 마치며,
숫자 3은 삶의 구조화와 통찰을 말해준다


우리의 삶은 혼돈과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 나름의 질서와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한다. 숫자 3은 그 질서를 시각화하고, 삶의 리듬을 구조화하는 데 탁월한 길잡이가 된다. 철학에서는 사유의 순환 구조로, 종교에서는 구원의 영성으로, 문화에서는 서사의 완성으로, 일상에서는 계획과 피드백의 원리로 작용하는 숫자 3은 단순한 수를 넘어선 통찰의 상징이다.
성공적인 삶이란 거창한 업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균형을 이루며, 지속 가능한 리듬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 첫 걸음은, 숫자 3이 가리키는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데 있다. 숫자 3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조율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심리적 나침반이며, 인생의 조화로운 설계를 위한 기준이 된다.


용어 해설
숫자 3은 우리 삶의 구조적 미학과 존재론적 함의를 통해,  복잡한 삶의 흐름을 명료하게 설계하고 조율할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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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관계의 의미와 실천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글을 시작하며,

인간이라는 단어는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이는 곧 사람이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과의 거리를 좁히고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관계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때로는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도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다섯 가지 요소 중 하나로 ‘관계’가 선정될 만큼, 관계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글은 삶과 관계의 의미와 실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글의 주요 내용은 인간이 맺는 관계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신과의 관계, 둘째, 사람과의 관계, 셋째, 자연과의 관계이다. 각각의 관계가 인간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이를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첫째, 신과의 관계는 겸손의 가치이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종교를 믿으며 살아왔다. 어떤 이는 종교를 가지지 않기도 하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신과의 관계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필자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본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존재이다. 따라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를 가진다. 겸손은 신앙뿐만 아니라 세상의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교만은 관계를 망가뜨리는 요소이며,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겸손한 태도는 우리의 일상을 더욱 조화롭게 만든다. 신앙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실천할 때, 우리의 인간관계 또한 긍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둘째, 사람과의 관계는 존중과 배려의 실천이다.

인간관계는 가족, 친구, 이웃, 직장 동료, 그리고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먼저, 자신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절제와 조절이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내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진정한 관계를 맺기 어렵고, 배려심이 부족하면 관계는 일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사회성’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단순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지키고 공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는 결코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없으며, 조절과 절제하는 태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 역시 때때로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해 무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관계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곧 바른 관계의 비결이다.


셋째, 자연과의 관계는 공존과 공생의 실천이다.

우리는 집, 지역사회, 국가, 나아가 지구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각종 규범과 법률이 우리의 사회를 지탱하듯,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질서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자연과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졌다.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존과 공생의 가치가 필수적이다. 필자는 과거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지구를 살리는 65+ 실천방법(2013)"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단순한 환경관리 활동이 아니라, 자연과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었다.

환경관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사는 터전을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모습으로 물려주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을 마치며,

삶에서 관계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인간에게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신과의 관계에서는 겸손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며,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조절과 절제의 태도가 필요하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공존과 공생을 실천해야 한다.

필자는 현재 고은층(고령층과 은퇴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시기에는 신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특히 부부 관계, 가족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핵심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오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든 회복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 고은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작은 실천이라도 꾸준히 이어나간다면, 후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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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의 말이 만드는 삶의 힘: Edifying의 의미와 긍정적 영향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글을 시작하며,


사람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의 말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갖는다. 이러한 언어적 격려를 'edify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칭찬을 넘어 상대방의 인격과 내면을 성장시키고 고양하는 말과 행동을 의미한다. 필자는 칠십여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받은 여러 'edifying'한 말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찾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이 글은 격려의 말이 만드는 삶의 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글의 주요 내용은 'edifying'의 의미와 긍정적 영향이다.


하나는 존재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어머니께서는 필자가 태어나기 전, 신비스러운 꿈을 꾸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단순한 태몽을 넘어 "너는 특별한 존재다"라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우리  집에서 일한 안씨 아저씨께서 "판지는 다른 애들과 달라"라고 하셨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말들은 어린 시절부터 필자가 스스로를 남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했고, 자기 존중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존재이며, 그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 자신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둘은 내면의 힘을 북돋아 주는 말이다.

A는 "신영씨는 우리와 달랐잖아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필자가 평범함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표현이었다. 또한, B의 "동주씨는 발걸음을 내딛는데 힘이 실려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필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확고한 의지와 결단력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노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불안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주변에서 우리의 강점을 인정해주는 말을 해준다면, 그것은 곧 자기 확신으로 이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셋은 올바름을 강조하는 말이다.

C는 "성근씨는 걸음이 바르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히 신체적인 걸음걸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가 바르고 정직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D가 "선생님은 풍기는 인상이 다르다"고 말한 것은 필자의 인격과 태도가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삶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인정해줄 때, 그것은 도덕적 확신을 강화시키고 더욱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마지막은 'edifying'한 말의 중요성과 긍정적 영향이다.

이처럼 'edifying'한 말들은 단순한 칭찬을 넘어 개인의 자아 형성과 삶의 방향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어릴 때부터 듣는 긍정적인 말들은 평생 동안 자아 존중감과 삶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칭찬과 격려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가 가진 가치를 빛나게 만든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글을 마치며,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는 말을 건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작은 한마디의 격려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칭찬과 인정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평생 교수로 재직하면서 제자들, 친척들, 그리고 지인들의 부탁으로 종종 주례를 맡아왔다. 이 과정에서 필자의 주례사는 두 가지 버전이 있었고, 그 중 하나는 ‘BEST’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B는 Blessing(축복), E는 Edifying(격려), S는 Sharing(협업), 그리고 T는 Touch(정신적·육체적 스킨십)을 의미한다. 이 네 가지 개념이 주례사의 핵심 내용이다.

결혼은 서로에게 축복이며, 결혼 생활은 서로에 대한 격려와 협업, 그리고 정신적·육체적 스킨십이 필요충분조건임을 강조해왔다.

필자는 이 중에서도 ‘Edifying’(격려)의 개념이 결혼 생활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그 의미와 중요성, 그리고 영향을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실천하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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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 속의 변화와 인연의 가치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글을 시작하며,

인생은 끊임없는 변화와 만남의 연속이다. 태어나서 삶을 마감하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다양한 인연을 맺는다. 어떤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어떤 만남은 우리의 기억 속 깊이 남아 삶의 일부가 된다. 때로는 뜻밖의 만남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결국, 변화와 인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은 긴 여정 속의 변화와 인연의 가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화 속에서 성장과 기회가
찾아온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변화는 여러 형태로 찾아온다. 어린 시절의 학업과 성장, 직장과 사회생활, 사랑과 가족 형성, 그리고 직업적 전환과 위기 극복 등, 우리는 수많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적응하며 성장한다. 변화는 때로는 두렵고 불안하게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항상 새로운 배움과 도약의 기회가 존재한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변화가 찾아올 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이야기처럼, 환경과 만남은 개인의 삶과 성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인생을 결정짓는 데는 반드시 소중한 인연들의 힘이 작용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인연은 다양하다. 멘토와 스승은 우리의 방향을 잡아주고, 친구와 동료는 삶의 여정을 함께 걸으며 정서적 지지를 제공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며, 경쟁자와 도전 상대는 우리를 더욱 강인하게 만든다. 때로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주어진 조언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공자는 “군자는 학문으로 벗을 만나고, 벗의 선한 점을 본받아 자신의 인(仁)을 더한다.”라고 말했다. 좋은 인연은 단순한 교류가 아니라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이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으며, 따라서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배우는 태도가 중요하다.


변화 속에서 인연을 지속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모든 인연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는 강렬했지만 짧게 끝나고, 어떤 관계는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깊은 의미를 더해 간다. 때로는 사소한 오해나 갈등으로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소원해지는 경우도 있다. 인연이란 억지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깊어진다.
좋은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가치관과 태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변화 속에서도 인연을 지켜나가려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와 진심이 중요하다.


글을 맺으며,

긴 여정 속의
변화와 만남은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게 만드는 학습태도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변화와 만남은 불가피한 요소이다. 어떤 변화 속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
변화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변화 속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그러면 우리는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연을 어떻게 가꾸어나갈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우리 스스로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게 만드는 학습태도(learning attitude)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의 긴 여정은 사회학습과정(social learing process)이 된다. 이러한 여러 사회학습(social learing)과 상호 및 집단 학습과정(mutual & collective learning process)을 통해 맺는 소중한 인연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활력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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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부부는 삶의 근본이 되는 두 축이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코 집과 부부일 것이다. 집은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고, 부부는 삶을 함께 빚어가는 존재다. 이 둘은 단순한 공간과 관계를 넘어, 삶의 안정과 행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면, 집과 부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기능을 살펴보자.


집은 삶의 근본이 되는 공간이다

집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보자.

"어디 어디 해도 집처럼 좋은 곳은 없다"는 말처럼,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녹아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 표현은 “There’s no place like home”이라는 영어 속담에서 유래하였으며, 특히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표현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집은 다섯 가지 기능을 가진다.

하나의 집은 울타리다.
집은 외부 세계와의 경계를 형성하며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비, 바람, 추위, 더위, 범죄 등으로부터 안전을 지켜주며, 우리의 물리적·정신적 울타리가 된다.

둘의 집은 거처다.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자, 일상의 터전이다. 우리가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순간이 담겨 있으며, 가정이라는 사회의 최소 단위가 형성되는 장소다.

셋의 집은 프라이버시 공간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개인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역이다.

넷의 집은 안식처다.
육체적, 정신적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바쁜 일상을 마치고 돌아와 쉴 수 있는 공간이며,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치유의 장소다.

다섯의 집은 사회·심리적 공간이다.
가족과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곳이다.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소통하며, 정서적인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부부는 삶을 함께하는 최고의 동반자이다

부부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보자.

"누가 뭐래도 부부만큼 좋은 사람은 없다"라는 말처럼, 부부는 단순한 관계를 넘어 삶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지탱해 주는 존재다. 동양에서는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말로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의 가치를 강조해왔으며, 서양에서는 성경 창세기 2장 24절에서 "둘이 한 몸이 되리라"는 구절을 통해 부부 관계의 신성함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부부는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장 든든한 파트너다.

부부는 다섯 가지 기능을 가진다.

부부의 일은 상호 신뢰자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존재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관계 속에서 안정적인 정서적 기반을 제공하며,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부부의 이는 상호 동행자다.
부부는 단순한 사랑의 관계를 넘어, 인생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다. 일상의 크고 작은 순간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는 존재다.

부부의 삼은 공동 생산자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를 함께
운영하는 협업자다. 경제적 분담부터 가사 노동, 자녀 양육까지 함께 책임지며, 삶을 함께 만들어 나간다.

부부의 사는 상호 학습자다.
서로에게서 배우고, 서로를 가르치며 성장한다. 부부는 서로의 거울이 되어, 함께 배우고 함께 발전해 나가는 관계다.

부부의 오는 상호 의존자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존재다. 기쁠 때 함께 웃고, 힘들 때 서로 기대며, 인생의 굴곡을 함께 헤쳐 나가는 파트너다.


집과 부부는 삶의 중심이 되는 두 개의 축이다

집이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돌아갈 곳이자,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며,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장소다. 마찬가지로, 부부란 단순한 동거인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신뢰와 사랑 속에서 함께 성장해가는 인생의 동반자다.
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불안정해지고, 부부가 없다면 삶은 외롭고 공허해진다. 결국, 집과 부부는 서로를 보완하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는 집에서 안정을 찾고, 부부 관계에서 사랑과 신뢰를 쌓으며, 인생을 더욱 깊이 있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집처럼 좋은 곳은 없고, 부부만큼 좋은 사람도 없다." 필자는 집을 소중히 여기고, 부부 관계를 아끼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쓰게된 동기

최근 필자는 신제주인으로서 서귀포 혁신도시에 거주한 지 3년이 되었다. 이곳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고령의 선배 교수인 이 교수님 부부와 중등 교사로 정년한 장년의 이 선생님 부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와 같은 마음으로 집을 오가는 신 대표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은 신 대표가 청주 집으로 간 날이며, 내일은 필자가 대구 집으로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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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교수와의 인연을 그리며"
 

김원배 前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1977년 필자가 환경대학원을 마치고 당시 민관식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아세아정책연구원」에 근무하던 때다. 첫 인상은 역시 시골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이 교수는 꾸밈없는 소박한 인간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권태준 교수님께서 이 교수를 “인간 이성근”으로 부르시지 않았나 싶다. 어찌 보면 세상 인심이 점점 각박해지고 인격을 갖춘 사람이 드물어진 요즘, 인간답다는 것은 최소한의 예와 도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본다.

「아세아정책연구원」 시절 월급날이 되면, 이 교수 및 홍갑선 박사와 더불어 젊은 혈기에 같이 술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당시 과제 책임자이셨고, 홍 박사나 이 교수, 그리고 필자의 연을 맺어주신 권태준 교수님 댁에까지 가서 밤늦도록 사모님께 폐를 끼친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이후 이교수와 필자는 서로 다른 길을 갔지만, 마음 속에 끈은 여전히 이어져 필자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근무 시 이 교수 내외의 방문을 맞아 함께 하와이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더 가깝게는 필자가 「국토연구원」에 근무할 당시 부부 동반으로 청도 운문사에 다녀 온 기억도 새롭다. 특히 이 교수의 권 교수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여, 권 교수님과 필자를 조금은 억지스럽게 경주 세미나에 초청하고 멋진 시간을 베푼 바 있다. 세미나 주제는 아마도 '황룡사 복원'과 관련한 것이 아닌가 싶은 데, 뒷풀이도 자못 기억에 남는다. 권 교수님, 이 교수, 그리고 필자 세 사람이 노래방에서 지낸 시간은 황룡사 복원보다는 ‘신라의 달밤’에 더 어울린 것 같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불국사의 종은 울리지만, 이 교수나 필자나 듣는 가슴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을 다름 아니게 한결같이 받아들이고 계신 권태준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가르침은 아마도 이 교수나 필자 모두에게 남은 인생의 등불이 되리라 믿는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속에 같이 있음으로 해서, 해 기운 저녁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떠올린다. 학교를 떠난 이 교수에게 도연명(陶淵明)의 시 한 구절 보내고자 한다.

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보게 되었네
산 기운은 저물녘이 되어 아름다운데
나는 새들이 더불어 돌아간다

 

필자 소개

김원배 박사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공학사)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 그리고 미국 하바드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도시및지역계획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하와이대학교 동서문화센터 교수와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정년하였다. 정년 이후 중앙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정년퇴임과 함께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고 있다.



*****
"그 때, 아정연 시대를 돌아보다"
 

박서호 한남대 도시 · 부동산학부 명예교수

 

“인간 이성근” 이 별명을 누가 붙였을까? 선생님께서
“인간 이성근은 말이야"하고 이렇게 소개하셨다.
우리는 ‘아정연’에서 만났다. ‘아정연’은 재단법인 중산육영회 부설 「아세아정책연구원」이다. 내가 아정연에 1978년 8월 8일에 들어가서 1979년 9월에 나왔다.

나의 아정연 시대. 나는 이 아정연 시대를 그리워한다. 아정연의 3층에 올라가면 복도 가운데 기둥에 이런 액자가 걸려있었다. “나는 5.16 때 무엇을 했나? 그 밑에는 고시를 공부한 시험과목이 적혀있었다.”  삶을 새롭게 보게 하는 글귀로 멋있게 여겼다.

나는 해군 중위로 제대하고 선생님을 찾아뵙고 몸을 맡길 때, 선생님께서 이끄시는 연구사업의 연구원보로 삼아주셨다. 이 자리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 홍갑선, 이양원 님의 뒤를 이은 자리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는 인간 이성근과 한표환, 건국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는 박종필님들은 이미 연구조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이성근씨’, ‘박서호씨’ 하고 지냈다.

이 연구사업은 ‘서울특별시의 주택 및 쓰레기 처리문제와 그 해결방안에 관한 연구’이었다.
이 연구사업에서 나와 연구조원들은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주거실태조사와 쓰레기 배출량 및 성분조사이다. 주거실태조사는 1978년 11월 1일부터 10일까지 50여 문항의 설문지를 가지고 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하였다. 네 사람이 16개 지역을 나누어 아침에 나갔다가 낮 늦게 돌아왔다. 조사된 가구 수는 모두 1,268가구로 일반단독주택지역 821가구, 아파트지역 349가구, 불량주택지역 98가구이다. 이 날 조사하고 돌아온 늦은 낮에는 어울려, 저녁을 먹고, 2차로 술을 마시면서 하루의 무용담을 나누곤 하였다.

쓰레기 배출량 및 성분조사는 1978년 12월 8일과 9일에 8개 지역에서 아침에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차량을 타고 쓰레기 수거 가구를 확인하고, 쓰레기 처분장인 구의동과 난지도에 가서 쓰레기 분리하는 넝마주이의 도움으로 성분별로 분류한 다음 그것의 무게를 쟀다. 난지도에서 쓰레기를 모아 두었는데 쓰레기를 고르는 포클레인이 와서 우리가 모아둔 것을 모르고 그냥 헤집으려고 하자 우리는 쓰레기 더미 위에 벌렁 누우면서 포클레인을 막았던 일이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날 우리는 쓰레기 성분별로 분리하고 무게를 재준 넝마주이들과 어울려 난지도 쓰레기 장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은 선생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청계천 철판 등심구이 집에서 등심과 손수 가져오신 오비(OB)에서 나온 마주앙 포도주로 우리를 고급스럽게 채워주셨다. 이 때 선생님께서 당신의 풍부한 양(洋)의 동서(東西), 시(時)의 고금(古 今)의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시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스개와 함께 호탈하게 웃어가시면서 우리를 북돋우셨다.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나면 2차는 우리끼리 간다. 선생님이 계실 때는 인간 이성근은 조용하고, 주로 내가 선생님의 맞장구를 친다. 그러다가 2차에 가면 이때 인간 이성근의 판이 벌어지면서 그의 아름다운 본색이 들어난다. 내가 말한 그의 본색이란 세 가지나 된다.

하나는 말투이다.
“인간 이성근에게는 영락없는 선생님의 말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 이성근이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과 얼마나 가깝게 여겼으면 그랬을까? 그가 대학원 생활을 쭉 이야기할 때면 선생님의 말투가 튀어나온다. 듣기 좋다. 대학원 공부이야기를 할 때는 선생님의 말투뿐 아니라 따지는 솜씨도 선생님의 안목으로 날카롭다. “어허 영락없는 선생님의 ‘애제자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다른 하나는 입담이다.
그의 입에서 술자리 중간쯤 가면 취기가 오르니 더 젊은 날의 씩씩한 이야기 무용담이 나온다. 인생역전 같은 그리운 이야기들이 경상도 사투리로 술술 풀린다. 우리는 웃고 웃다가 어지간하면 자리를 뜬다.

하나 더 나온다. 막판에 인간 이성근의 ‘인간’이 나온다. 인간 이성근은 우리가 헤어질 때 나의 손을 잡고 “박형! 잘 가시오. 내일 봅시다!!!” 한다. 이때 그의 손은 따뜻하다. 겨울밤, 어두운 밤, 술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고 헤어질 때 그의 따뜻한 손으로 인간 이성근의 따스함이 나온다. 이렇게 1978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냈다.
이래서 인간 이성근이 생각 날 때면 심호택 시인 쓴 ‘봉구’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봉구

심호택

자네를 생각하면  
마음의 형제라는 게 있거니 싶다

중략

우리 착한 봉구!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봐라, 저 애는 성내는 법이 없느니라

부디 본받거라

그 쓸쓸하던 산야
찬바람 속에 우리들의 가오리연이 치솟던 생애의 절정이던
그 때를

(출처 : 심호택, 1992, 『하늘밥도둑』, 창비시선 109 ; 142-143쪽.)


‘봉구’라는 시의 ‘봉구’와 ‘인간 이성근’이가 닮은 것이 있어서라기보다 세 연의 글 때문이다.

“자네를 생각하면”
“우리 착한 봉구!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찬바람 속에 우리들의 가오리연이 치솟던 생애의 절정이던 그 때를“

위 시연에 이렇게 끼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를 생각하면”
“인간 이성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찬바람 속에 우리들의 서울시 주택가와 구의동,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과 신당동, 청계천 돌던 생애의 절정이던 그 때를” 


필자 소개
박서호 교수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지질학과(이학사)ㆍ도시계획학  석사ㆍ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한남대학교 도시 · 부동산학부 에서 평생 교수로 재직하였고, 지금은 명예교수이다. 정년후 목사로 목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삶과 관계의 의미와 실천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인간이라는 단어는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이는 곧 사람이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과의 거리를 좁히고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관계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때로는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도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다섯 가지 요소 중 하나로 ‘관계’가 선정될 만큼, 관계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글에서는 인간이 맺는 관계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신과의 관계, 둘째, 사람과의 관계, 셋째, 자연과의 관계이다. 각각의 관계가 인간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이를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첫째, 신과의 관계는 겸손의 가치이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종교를 신봉해 왔다. 어떤 이는 종교를 가지지 않기도 하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신과의 관계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필자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본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존재이다. 따라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를 가진다. 겸손은 신앙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교만은 관계를 망가뜨리는 요소이며,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겸손한 태도는 우리의 일상을 더욱 조화롭게 만든다. 신앙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실천할 때, 우리의 인간관계 또한 긍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둘째, 사람과의 관계는 존중과 배려의 실천이다.
인간관계는 가족, 친구, 이웃, 직장 동료, 그리고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먼저, 자신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절제와 조절이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내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진정한 관계를 맺기 어렵고, 배려심이 부족하면 관계는 일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사회성’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단순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지키고 공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는 결코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없으며, 조절과 절제하는 태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 역시 때때로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해 무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관계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곧 바른 관계의 비결이다.

셋째, 자연과의 관계는 공존과 공생의 실천이다.
우리는 집, 지역사회, 국가, 나아가 지구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각종 규범과 법률이 우리의 사회를 지탱하듯,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질서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자연과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졌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존과 공생의 가치가 필수적이다. 필자는 과거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지구를 살리는 65+ 실천방법(2013)"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실천하려고  하였다. 이는 단순한 환경관리 활동이 아니라, 자연과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었다.

환경관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사는 터전을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모습으로 물려주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을 마치며,

삶에서 관계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인간에게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신과의 관계에서는 겸손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며,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조절과 절제의 태도가 필요하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공존과 공생을 실천해야 한다.

필자는 현재 고은층(고령층과 은퇴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시기에는 신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특히 부부 관계,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핵심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오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든 회복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 고은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작은 실천이라도 꾸준히 이어나간다면, 후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

이 글을 쓰게 된 배경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에는 세 분의 글이 깊은 영향을 미쳤다.

첫째, 백도현 목사님의 글이다.
백 목사님은 “사람은 책이나 말로 배우기보다 인간관계를 통해 진정한 지혜를 배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 또한 교수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해 왔다. 백 목사님과의 교류를 통해 신앙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으며, 이 글을 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둘째, 김원배 선배의 글이다.
김 선배는 과거를 회상하며, 필자가 “꾸밈없는 소박한 인간성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언급하였다. 김 선배는 권태준 교수님께서 나를 “인간 이성근”이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오늘날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인간다운 인격을 갖춘 사람이 드물어지는 현실에서, ‘인간답다’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아는 것이라는 김 선배의 말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 글을 통해, 관계의 본질과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고자 했다.

셋째, 박서호 선배의 글이다.
박 선배는 나와의 마지막 만남을 회고하며, 헤어질 때마다 내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박 형! 잘 가시오. 내일 봅시다!”라고 인사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의 따뜻한 손길에서 ‘인간 이성근’의 온정을 느꼈다고 하였다. 이 말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인간관계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했다.

이러한 세 분의 말씀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관계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되었다. 관계는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본을 이루는 요소이며, 그 속에서 배움과 성장, 그리고 따뜻한 나눔이 이루어진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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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새로운 출발: 이성근 교수님의 은퇴를 축하하며"

백도현 굳윌교회 담임목사



신영(信咏) 이성근 교수님께서 영남대학교에서 38년간 교수로 헌신하시고, 이제 명예로운 은퇴를 맞이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수님께서 뿌린 학문의 씨앗들이 한국 각지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흐뭇한 마음이 드실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임을 믿습니다. 오늘 이 순간이 있기까지 교수님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은퇴란 단순히 직임에서 물러나 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마치 자동차의 타이어를 교체하고 더 힘차게 달리는 ‘Retire’라는 의미처럼, 교수님께서는 이제 더욱 자유롭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교수님께서는 칼럼과 강연, 그리고 집필을 통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시며, 혼돈 속에서 질서를 정립하는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역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계신 교수님을 제 인생에서 만나 함께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은 저에게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은퇴 후의 삶은 단순한 직임의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더욱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는 학문과 사역에 헌신하시느라 개인적, 가정적 삶을 많이 희생하셨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시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값지게 여기며, 삶의 참된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교수님과 함께 읽고 싶은 시가 있습니다.

"지금 하십시오"

지금 하십시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낄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 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는 피고 마음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작자 미상, 최효섭 목사 설교집에서 옮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맺어진 귀한 인연

벌써 교수님과 가족을 알게 된 지 35년이 되었군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며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85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계시던 시절, 교수님과 가족이 함께 샴페인 어바나 한인장로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한 가족이 된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변함없는 교제를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구 굳윌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며 신앙의 길을 동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순간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믿습니다.

사람은 책이나 말로 배우기보다 인간관계를 통해 진정한 지혜를 배운다고 합니다. 저는 교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귀한 배움을 얻었습니다.

첫째, 준비성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예배 시간에 성경 봉독이나 기도를 맡으시면 미리 정성스럽게 준비하시고, 여러 번 읽어 뜻을 정확히 전달하시려는 노력을 기울이십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에서 교수님께서 강의와 연구도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셨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관용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제나 미소로 사람을 대하시고, 남을 좋게 평가하고, 이해하며 용서하는 넓은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예배 후 지역사회 문제에 대한 강연을 요청드렸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강연이 진행되려던 순간 한 교인이 이를 반대하며 방해하였고, 저는 매우 난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습니다"라며 유연하게 받아들이셨고, 오히려 그 교인에게 다가가 미소로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관용이야말로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 메모의 습관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제나 필기도구를 소지하시고, 중요한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특히 설교 시간에도 메모하시고, 이후 조용한 시간에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깊이 묵상하시는 모습을 보며, 교수님의 학문적 깊이가 이러한 철저한 기록과 성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역을 위한 기도

현재 교수님께서는 순복음교회 신학교인 순총학원의 이사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순복음교회가 신학교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교수님을 관선 이사장으로 임명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이 역할을 잘 감당하셔서 순복음교회가 평화를 이루고, 신학교가 바른 길로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은 단순히 한 교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전체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 이성근 교수님께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이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성근 교수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앞으로도 같은 순례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타이어 후에도 더욱 힘차게 사역하시기를 바라며, 인생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답게 달려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동역자로서, 사랑과 존경을 담아


필자 소개
백도현 목사님은 경상북도 경주 출신으로, 계명대학교 철학과(문학사)를 졸업하셨습니다. 이후 제일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시다가,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아이오와주의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은 후, 시카고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하셨으며, 미국 여러 대학 도시에서 한인교회 목회자로 헌신하셨습니다.

마이애미 한인교회를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은퇴하신 후, 귀국하여 경상북도 예천군에 위치한 농촌교회에서 다시 목회 활동을 이어가셨습니다. 이후 대구로 나오셔서 대구굿윌선교회를 설립하여 섬기시다가, 병환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백도현 목사님의 믿음으로 걸어온 길과 사랑으로 남긴 흔적을 기리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한 사람의 삶이 그가 남긴 사랑과 헌신의 깊이로 기억된다면, 백 목사님은 참으로 빛나는 흔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을 신앙과 사랑으로 살아오신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셨습니다.
이 글은 백 목사님이 믿음으로 걸어온 길과 사랑으로 남긴 흔적을 기리고자 쓴  글입니다.


하나는 오직 믿음으로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29)


군대에서도, 사역에서도, 모든 일에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으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사격장에서조차 "하나님께서 맞혀주실 줄 믿습니다"라며 기도하셨던 그분의 모습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참된 신앙인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둘은 변함없는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은 섬김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백 목사님은 겉으로 꾸미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사역하셨습니다. 가식 없는 목회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뢰를 주셨습니다.

셋은 포용하는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성도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겸손함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리와 화평의 판단을 베풀고" (스가랴 8:16)


성도들의 말을 수용하고, 기도의 인도를 집사들에게도 맡기시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포용적 참여적 목회를 실천하셨습니다. 한 번은 목사님께 나의 기도평을 물으니, "좋은 기도라며 목사가 하는 기도평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넷은 굿윌(Good Will)의 정신을 지닌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선한 뜻과 의지를 따라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평생 선한 뜻과 의지로 목회하시고, 자신의 삶 또한 하나님께 드리셨던 분이셨습니다. 오직 선한 길을 걸으며, 성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남기셨습니다.

다섯은 동심을 간직한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순수한 믿음과 진실한 삶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태복음 18:4)


얼굴과 말과 행동은 진실되고 순수했습니다.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고, 어린아이 같은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여섯은 배려를 실천한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성도를 먼저 생각한 사랑의 실천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4)


자동차 주차 하나에도 배려가 묻어나고, 성도들이 더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작은 것까지도 신경 쓰셨던 섬김의 종이셨습니다.

일곱은 민주적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의 교회를 세우는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는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데살로니가후서 1:3)

목회자의 권위보다 공동체의 조화를 중시하며, 성도와 집사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기도도 소중히 여기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여덟은 평생을 하나님께 드린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쉼 없이 사역하다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후서 4:7)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충성되게 달려가신 목사님이셨습니다.


백 목사님은 믿음과 사랑, 섬김과 겸손으로 한평생을 하나님께 바친 참된 목회자이셨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며, 남겨진 우리에게 목사님의 발자취를 따를 귀한 본을 남기셨습니다.


용어 설명
1) 순전과 순진의 차이
순전은 온전하고 섞이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말이고, 순진은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한 성격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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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이고 기획력이 강한 이성근 교수"

최용호 경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성근 교수는 한국의 지역발전과 지역경제 분야에서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이다.
나는 1980년대부터 30년 이상 그와 함께 연구하며 협력할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함께 「21세기 대구·경북의 지역발전」(1991), 「21세기 대구발전을 위한 전략적 과제」(1993) 등의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또한 대구시와 경북도의 발전계획, 시·군의 장기 발전계획 수립에도 여러 차례 참여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했다. 전공 분야가 비슷했지만 학교가 달랐기에 협업할 기회가 더욱 많았다. 각종 위원회, 토론회, 세미나, 심포지엄, 포럼 등에서 우리는 자주 함께 발표하거나 토론에 나섰다.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 포항, 구미 등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열린 행사에도 함께 참여했으며, 자료 수집을 위해 일본 출장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당시 대구경북연구원의 이춘근 박사가 동행했고, 관서 지방에서는 이 교수의 제자인 윤칠석 박사(현 경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가 안내를 맡아주어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교수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학자다.
영남대학교 지역개발학과 교수로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그의 제자들은 대구·경북 지역의 주요 기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교수의 지역개발 이론과 비전은 실제 행정에 반영되었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이 다시 그의 연구로 피드백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창의적 기획력과 철저한 실행력이다.
어떤 과제가 주어지면 먼저 목표를 명확히 설정한 뒤, 관련된 제반 여건을 면밀히 분석하고 실현 가능한 방법과 단계를 구체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추진 전략을 수립하며,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이러한 능력은 대구경북연구원 원장 재임 시 더욱 빛을 발했다. 당시 그는 연구원의 업무를 혁신하고,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안민포럼의 상임대표로서 정책의 전문성, 균형성, 네트워크, 혁신성을 강조하며 국가와 지역의 정책 혁신을 선도했다.

그는 중앙정부의 지역개발 정책 수립과 집행, 평가 과정에도 깊이 관여한 학자다.
대통령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사)한국지역개발학회 회장, (사)대한지방자치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도 지방분권과 지역의 균형발전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그는 항상 지역의 내발적 발전을 강조하며, 중앙의 논리가 아닌 지역의 논리에 충실한 정책을 지지해왔다.

이 교수가 어느새 정년을 맞았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여전히 활발한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년 후에도 그의 연구가 더욱 왕성해지고,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지난 30여 년간 그와 함께 연구하고 협력했던 시간들은 매우 의미 있었으며, 진정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의 헌신과 열정이 앞으로도 지역발전의 새로운 길을 여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필자 소개
최용호 교수님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사를,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와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셨다. 이후 언론사 논설위원과 대구은행(현 iM뱅크) 조사부를 거쳐 경북대학교 경제학과(경제통상학부) 교수로 평생 재직하셨다. 또한 (사)산학연구원을 설립하여 원장과 이사장을 역임하셨다.

"융합형 학자, 최용호 교수님을  그리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최 교수님을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교수님의 겸손하고도 온화한 태도에 먼저 감탄할 것이다.

그러나 교수님과 깊이 대화를 나눠 보면, 교수님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읽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진정한 ‘융합형 학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교수님의 삶은 단순한 직업적 성공을 넘어 학문, 실무, 사회적 역할, 그리고 인간적인 품성을 모두 조화롭게 엮어낸 하나의 거대한 융합의 과정이었다.


학문적 융합으로 지식의 경계를 넘어선 학자이다

최 교수님의 학문적 여정은 단순히 한 분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지식을 확장하고 융합하는 과정이었다. 정치학을 전공한 후 경제학과 지역경제학으로 연구 영역을 넓힌 교수님은, 사회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융합적 사고를 지닌 학자로 성장했다. 교수님에게 학문이란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였다.

최 교수님은 실사구시의 자세로 이론과 현실의 융합을 실천한 학자이다.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시작하여 대구은행(현 iM뱅크) 조사부에서 경제분석을 수행하고, 대학에서 지역경제 강의를 이어간 교수님의 경력은 학문과 실무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교수님은 이론이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 아래, 연구실에서 고민한 경제이론을 실제 지역경제 정책에 적용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최 교수님은 공간적 융합으로 지역문제 해결에 통찰력이 뛰어난 학자이다. 교수님은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성장하며, 농도적 생활을 두루 경험했다. 이러한 배경은 교수님에게 다양한 환경과 문화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교수님이 지역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가치와 품성, 그리고  태도의 융합으로 수많은 성취를 이룬 학자이다

최 교수님의 가르침과 연구에는 항상 포용과 공존의 가치가 담겨 있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를 융합하는 교수님은 단순한 학문적 연구를 넘어 실질적인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교수님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님은 품성의 융합으로 수많은 성취를 이룬 학자이다. 교수님은 많은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논문 지도와 심사를 맡을 때도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지식의 권위자가 아닌 동반자로서 함께 고민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교수님은  학자로서의 성취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품성까지도 균형을 이루며, 후학들에게 진정한 배움의 의미를 전하는 역할을 했다.

최 교수님은 태도의 융합으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균형잡힌 학자이다. 교수님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전통과 현대의 모순과 갈등을 조화롭고 균형되게 하나로 융합하여 엮어내는 능력이었다. 교수님은 학자로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이러한 균형 잡힌 태도는 교수님이 다양한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소통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회적 융합으로 공익과 정의를 실천한 학자이다

최 교수님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사회적 가치로 연결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교수님은 '(사) 산학연구원'을 창립하여 산업, 대학, 경영, 기술, 금융을 하나로 묶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학문이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또한, 이들 연구원을 통해 영·호남 교류와 지역 간 화합을 도모하며, 학자이자 실천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최 교수님은 젊은 시절부터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대구 2·28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공의와 신념을 실천한 교수님의 모습은 학문과 현실을 연결하는 학자로서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사회적 불의에 맞서되, 조화롭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교수님의 태도는 건강한 민주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평생학습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학자이다

최 교수님은 정년 이전이나 이후에도 한결같이 배움을 멈추지 않는 학자이다. 이른 새벽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천을 산책하고, 경북대 어학당에서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였다. 정년 이후에도 동양 고전과 한학을 탐독하며 지적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시대적 흐름을 읽는 통찰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글을 마치며,

최 교수님의 삶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가치와 경험을 융합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한 여정이었다. 교수님은 학문과 실무, 도시와 농촌, 전통과 현대, 개인과 공동체라는 서로 다른 요소들을 조화롭게 연결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융합형 학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수님은 지식인이면서 실천가였고, 학자이면서도 교육자였으며, 이론과 현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교수님의 삶과 철학은 후학들에게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융합을 실천하는 길을 제시하였다. 교수님의 발자취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추는 하나의 등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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