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이 말한다(Money Talks)는 동서양 속담이 가진 함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ㆍ행정학박사
‘돈이 말한다(Money Talks)’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속담이다. 돈은 언어처럼 작동하며, 말보다 빠르고 강하게 의사를 전달한다. 이 말 속에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냉철한 통찰이 담겨 있다. 세상은 자본의 흐름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돈이 의사결정을 이끌고, 관계의 위계를 정하며, 소비의 경험을 차별화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이 글은 “돈이 말한다”는 표현의 기원과 문화적 의미에서 시작하여, 소비 기준에 따른 차별적 서비스의 현실, 그 긍정과 부정의 효과, 그리고 사회적 영향까지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논의하고 있다.
돈이 말한다는 속담의 의미와 유래
‘Money talks’라는 영어 속담은 고대 로마 시대의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Pecunia non olet)'에서 기원한 돈의 가치중립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 속담은 “돈만 있으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풍자하거나 직시하는 말로, 언행보다 자본이 더 결정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한국에서도 “돈 앞에 장사 없다”, “돈이 힘이다”라는 표현이 유사하게 사용된다.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라, 힘의 상징이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념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더욱 뚜렷해졌다. 소비자 자본주의 시대, 우리는 ‘돈의 언어’를 통해 사람을 대하고, 공간을 설계하며, 시간을 조절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과연 돈은 어디까지 말하고 있으며, 그 말은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가?
현대사회는 소비자의 지출 규모가 서비스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현대 사회는 일정 규모 이상의 지출을 한 소비자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항공사에서는 비즈니스 클래스와 퍼스트 클래스 고객을 일반석보다 먼저 탑승시키고, 호텔은 VIP 회원에게 업그레이드된 객실과 전용 라운지 이용권을 제공한다. 백화점이나 프리미엄 쇼핑몰에서는 구매 이력이 많은 우수고객에게 사은품, 전담 상담, 발렛파킹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더 많은 돈을 지출한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보상의 원칙과 경제적 효율성에 부합한다. 그러나 이 구조가 반복되면, 돈의 양에 따라 ‘사람의 격’이 매겨지고, 서비스의 품질이 결정되는 차별적 환경이 고착된다. 환경과 시간, 배려의 자원들이 돈의 크기에 따라 계층화되는 것이다.
돈이 만든 혜택과 불균형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가진다
‘돈이 말하는 사회’는 확실히 높은 서비스 품질을 만들어낸다. 우수고객 관리 차원에서 기업들은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별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고, 이는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며 경제를 순환시킨다. 예컨대 항공사 마일리지 프로그램은 소비자에게 선택권과 편의를 제공하며, 프리미엄 호텔의 등급별 회원 시스템은 고객 충성도를 유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이 지속될수록 소비자는 ‘비용 없는 인간관계’나 ‘돈과 무관한 배려’를 점차 잃어간다. 공공성과 평등의 가치는 소비 환경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고, ‘지갑의 무게’가 곧 ‘존재의 무게’로 인식되는 왜곡된 현실이 반복된다. 결국 돈은 편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적 차별과 상대적 박탈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영향과 가치 기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돈이 말하는 사회는 강력한 유인책과 동시에 은밀한 경고를 내포한다. 소비의 힘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될 때 사회는 피로감을 느낀다. 환경에 대한 책임, 지속가능성, 공동체적 배려는 돈의 언어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가치들이다.
소비의 기준이 단지 금액과 등급으로만 환산된다면, 인간적 배려나 윤리적 판단은 설 자리를 잃는다. 특히 최근에는 ESG 경영이나 착한 소비 운동, 친환경 캠페인 등이 돈의 언어에 대항하는 새로운 윤리로 떠오르고 있다. “돈이 말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돈이 ‘모든 것을 말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적 시각이 필요한 싯점(時點)이다.
돈의 시대에 가치의 균형을 묻다
‘Money talks’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분명한 언어다. 그러나 그 말이 언제나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돈이 말할 수 없는 인격, 배려, 환경, 공동체 가치들이 바로 인간 사회가 지켜야 할 진짜 목소리다. 우리는 지금, 돈의 언어와 더불어, 그 이면에서 조용히 말하고 있는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사진/2025 한국지역정책학회 춘계 학술대회(전남대ㆍ2025.6.27)

사진/광주 영풍문고(202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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