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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카페에서 읽은 제주의 바다와 사람"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행정학박사


서문
카페는 나의 서귀포 생활을 담은 작은 문화 공간

현대의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다. 글을 고치고, 생각을 다듬고, 사람을 만나고, 계절을 견디는 생활의 공간이다. 서귀포에서 보낸 3년 반 동안 필자는 혼자이거나 지인들과 여러 목적을 안고 몇 곳 카페를 주로 이용하였다. 그곳은 휴식처이자 작업실이었고, 대화의 장이었으며, 서귀포의 자연과 일상을 동시에 마주하는 문화의 공간이었다.
제주의 문화, 곧 ‘제문(濟文)’은 거창한 축제나 전통 의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의 공간에서 살아 숨 쉰다. 필자가 사랑하고 즐겨 찾은 서귀포의 카페들은 자연을 배경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작은 문화의 플랫폼이었다.

바다와 섬을 품은 라운지는  풍경 속에서 쓰고 다듬은 시공간

서귀포 칼호텔 라운지는 필자의 오후 작업실이었다. 호텔 입구 정면으로는 한라산이 서 있고, 좌로는 섶섬, 정면으로는 문섬이 보이며, 아래로는 푸른 잔디 정원과 해안 산책길,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었던 허니문으로 이어진다. 필자는 오후에 이곳을 찾아 해가 저물 때까지 머물며 독서를 하고 티스토리 블로그 글을 수정하였다. 차 한 잔과 함께 한라산과 바다를 동시에 바라보는 시공간은 생각을 맑게 하고 문장을 단정하게 다듬어 주었다.
자연은 연제(然濟)의 차원에서 존재하지만, 그 자연을 바라보며 글로 기록하는 행위는 제문(濟文)의 차원으로 전환된다. 이 라운지는 필자에게 자연과 문화가 만나는 시공간이었다.

올레 7코스와 함께 걷는 카페는 사색과 산책의 결합소

빈 60 카페는 올레 7코스 바닷가의 하얀 집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창밖으로 섶섬이 보이고, 외돌개와 황우지 해안의 절벽과 파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나는 이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고친 뒤 해 질 녘 올레길을 걸었다. 파도 소리는 배경 음악이 되었고, 바다의 빛은 문장의 색을 바꾸어 주었다.
법환포구에 위치한 소담 카페는 1층부터 3층까지 열려 있는 공간으로 정면에 범섬이 자리하고, 좌로는 섶섬, 우로는 강정 해군기지와 강정항이 보인다. 점심 식사 후 지인들과 한담을 나누는 장소로 자주 찾았으며, 가끔 파크골프에서 홀인원을 하면 동행자들과 기쁨을 나누는 자리도 되었다. 이곳에서는 자연 풍경과 지역의 현실이 함께 조망된다. 범섬의 고요와 강정항의 움직임이 한 화면에 들어오듯, 제주의 문화는 자연과 사회가 분리되지 않은 채 공존한다.

벙커와 호텔 라운지는 관광과 일상이 교차하는 복합소

바닷가 언덕 모양의 벙커하우스는 서귀포 생활 초창기에 자주 찾던 카페다. 1층과 2층이 바로 바다와 맞닿아 있고, 외지 관광객이 많이 방문한다. 한동안 뜸하다가 여름철이면 다시 찾았다. 이곳은 관광과 일상이 교차하는 복합 공간이다. 필자에게는 생활의 쉼터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여행의 기억이 되는 장소였다.
JW 메리어트 제주 리조트 & 스파의 라운지는 가장 늦게 알게 된 곳이다. 올레 7코스와 범섬을 중심으로 좌우로 문섬, 범섬, 산방산, 군산오름, 송악산, 가파도, 마라도까지 조망되는 경관은 장관이다. 커피 값은 비싸지만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으며 가족이나 지인들과 차를 마시고 사진을 찍는다. 이곳은 제주의 절경을 한눈에 담는 전망대이자,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문화 공간이다. 자연의 스케일이 클수록 인간의 말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그 단순함 속에서 관계가 깊어진다.

혁신도시 속 카페는 내면의 충실과 따뜻한 선린의 시간

속골 골목 안에 위치한 아담한 리조트 하라케케 카페는 처음에는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익숙해지자 겨울철 반나절 혹은 종일 글을 쓰는 작업 공간이 되었다. 창밖으로는 범섬이 내려다보이고, 뒤편으로는 한라산이 보인다. 바다와 산 사이에서 문장을 다듬는 시간은 서귀포의 지리적 구조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일이었다.
서귀포 혁신도시의 파리바게뜨는 또 다른 일상의 장소다. 서귀삼연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차담을 나누고, 때로는 서 선생을 불러 함께 만났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식빵을 사는 작은 습관이 생겼다.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지만, 그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생활의 소소함으로 채워진다. 문화는 규모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오가는 사람의 말과 기억에서 만들어진다.

맺음말
카페에서 읽은 서귀포의 ‘제문’

서귀포의 카페들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생활 문화의 장이었다. 한라산과 범섬, 섶섬과 문섬, 산방산과 송악산을 바라보며 쓴 글과 나눈 대화는 서귀포의 자연을 문화로 전환하는 과정이었다. 연제가 자연 그대로의 제주라면, 제문은 그 자연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관계 속에서 재해석하는 차원이다.
필자는 카페에서 글을 고치고 사람을 만나며 서귀포를 다시 읽었다. 파도 소리와 해 질 녘의 빛, 커피 향과 정겨운 대화가 겹쳐지며 하나의 생활 서사가 되었다. 그 서사는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일상의 반복 속에서 쌓인 기억은 결국 지역의 문화 자산이 된다.
서귀포에서 사랑한 카페들은 필자의 제주사색 4부, ‘제주의 문화 제문’을 구성하는 작은 장면들이다. 자연과 사람이 만나고, 생각과 기록이 이어지는 그 공간에서 필자는 삼 년 반동안 제주를 배우고, 제주를 쓰며, 제주와 함께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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