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년손님에서 한 식구로: 고은층이 생각하는 새 가족 맞이"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추석 전날, 분주한 부엌을 보면서 가족을 생각하다
추석을 하루 앞둔 오늘, 집안이 아침부터 분주하다. 금년 여름 결혼한 큰딸과 사위가 온다고 아내는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부엌을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어릴 적부터 귀에 익도록 들어온 말들이 새삼 떠오른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다.
사위 사랑은 장모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
사위도 반자식이다."
한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었던 말들이다. 그러나 두 딸을 키우고 큰딸을 출가시킨 뒤, 실제로 사위를 맞는 장인이 되어 보니 그 말들이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 속에는 옛사람들의 가족관도 들어 있고, 자식의 배우자를 맞이하는 부모의 마음도 담겨 있다. 동시에 오늘의 가족관계에 비추어 새롭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도 있다.
고은층이 되어 새 가족을 맞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옛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을 오늘의 가족관계에 맞게 다시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백년손님이라는 오래된 말
예부터 사위를 ‘백년손님’ 또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고 했다. 한평생을 두고 소홀히 대할 수 없는 귀한 손님이라는 뜻이다. 딸의 남편이니 가족이면서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장모는 딸을 아끼는 마음만큼이나 자신의 딸과 평생을 살아갈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 사위에게 잘해 주는 마음 한편에는 결국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백년손님이라는 말에서 오늘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것은 ‘손님’이라는 거리감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인지 모른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하지 않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예의를 잊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한 번 더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뜻이 이 오래된 말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씨암탉 한 마리에 담긴 환대의 마음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는 말도 오래전부터 전해 온다. 지금은 닭 한 마리가 특별한 음식이 아니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사정이 달랐다. 특히 알을 낳는 씨암탉은 농가에서 계속 길러야 할 소중한 밑천이었다. 그런 씨암탉을 잡아 사위에게 내놓았다는 것은 음식 한 그릇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 찾아온 사람을 귀하게 생각한다는 마음을 가장 좋은 음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 아내가 사위가 온다고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옛날의 씨암탉이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씨암탉을 잡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는 사람을 기다리며 무엇을 먹일까 생각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하는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을 맞는 데에는 예나 지금이나 음식이 따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음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 음식에 담긴 마음이다. “당신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이 반갑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씨암탉 한 마리가 오랫동안 전해 온 가장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뜻일 것이다.
사위와 며느리를 달리 보던 가족의 문법
옛날에는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며느리는 평생 식구”라는 말도 흔히 했다. 며느리는 혼인을 하면 시가의 사람이 되고, 사위는 딸과 혼인해도 처가에서는 여전히 손님처럼 대하던 당시의 가족질서가 이 말에 그대로 비쳐 있다.
‘사위 사랑은 장모,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도 있다. 조금은 해학적인 표현이지만 새로 가족이 된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잘 대해 주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을 바라보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 사위와 며느리를 서로 다른 잣대로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위도 누군가가 귀하게 키운 아들이고, 며느리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다.
따라서 고은층이 된 부모 세대가 옛 가족문화에서 이어받아야 할 것은 서열이나 구별이 아니라 정과 예의라고 생각한다. 전통은 옛 모습을 그대로 되풀이할 때보다 그 안에 담긴 좋은 뜻을 오늘의 삶에 맞게 되살릴 때 더욱 가치가 있다.
새 가족은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관계
흔히 결혼하면 “새 식구가 들어왔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런 표현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우리 가족 안으로 단순히 ‘들어오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딸이 결혼하면 사위만 우리 가족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우리 딸도 사위의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새로운 가족이 된다. 한 사람만 어느 집안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양쪽 가족의 관계가 함께 넓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결혼은 한 사람이 한 집안으로 들어오는 일이라기보다 두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만든다는데 의미가 크다. 그로 인해 두 가족의 인연이 새롭게 이어지는 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그렇게 생각하면 새 가족을 맞는 부모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자녀 부부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다. 내 집의 방식이 익숙하다고 해서 그 방식을 새 가족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녀의 배우자를 내 자식과 비교하지 않는 일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생각을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지켜 주는 것도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지혜다.
고은층이 되면 삶의 경험은 많아진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는 것이 언제나 새로운 세대의 삶을 더 잘 안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 살아 얻은 지혜가 있다면 젊은 세대보다 더 많이 말하는 데 있지 않다. 때로는 기다려 주고 지켜봐 주는 데 있을 것이다. 필요할 때 조용히 손을 내밀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것도 지혜다.
가족관계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말보다 여백이 필요하다.
맺음글
귀하게 맞되 편안하게 품는 가족
오늘 큰딸과 사위가 온다. 아내는 여전히 부엌에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백년손님과 씨암탉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결국 한 가지 생각에 이른다.
사위가 언제까지 손님이어야 할까?
처음에는 조금 어렵고 조심스러운 사이일 수 있다. 그러나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명절과 가족의 크고 작은 일을 함께하다 보면 ‘손님’이라는 말은 조금씩 옅어지고, 그 자리에 ‘식구’라는 말이 들어설 것이다.
그래도 나는 ‘백년손님’이라는 옛말을 완전히 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 말에 담긴 좋은 뜻 하나만은 오래 남겨 두고 싶다. 백년손님처럼 귀하게 여기되 손님처럼 거리를 두지는 않는다. 한 식구처럼 가까이 지내되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오늘의 고은층이 새 가족을 맞는 바람직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가족은 혈연과 혼인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어 주고 다른 점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정을 쌓아 가면서 비로소 가족이 되어 간다. 큰딸의 결혼으로 우리 집에도 새로운 인연 하나가 더해졌다. 이제 나는 ‘사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우리 가족의 관계가 하나 더 넓어졌다고 생각하고 싶다.
추석을 앞둔 오늘, 음식을 마련하며 새 식구를 기다리는 집안 풍경 속에서 새삼 깨닫는다.
가족을 맞는다는 것은 한 사람을 우리에게 맞추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의 자리를 조금 넓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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