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추(高秋)의 또 다른 풍경: 고은층은 자연을 닮아 있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고추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다
나는 그동안 여러 글에서 청춘(靑春)에 이어지는 인생 후반의 시간을 고추(高秋)라고 불러왔다. 청춘은 젊음의 한때를 상징한다. 고추는 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 맞이하는 또 하나의 인생 시절이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소개하였다.
요즘 내가 새삼 생각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고추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무엇을 닮아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녁의 노을과 푸른 하늘의 달, 가을의 단풍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 익은 된장과 잘 익은 수박, 붉은 대추와 고추, 감초에서도 저마다 다른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과 우리 곁의 익숙한 것들이 고은층(高恩層)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었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자연을 오래 바라보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꽃은 피어야 할 때 피고 열매는 익어야 할 때 익는다. 비바람이 분다고 계절이 가던 길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숲에는 저마다의 질서가 생긴다. 수많은 나무와 풀, 생명이 제 모습대로 살아가면서도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자기 조직화의 모습이다.
고은층의 삶도 이와 닮으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 보니 세상일 가운데 내 뜻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았다. 사람도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세상 역시 내 생각에 맞추어 돌아가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그것을 바꾸려고 애썼다면, 이제는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구별하는 지혜가 더 필요하다.
그렇다고 수용이 체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관용 또한 무원칙을 의미하지 않는다. 견딜 것은 견디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가지는 흔들려도 뿌리는 땅속에 머무는 나무처럼 유연함과 중심을 함께 지니는 삶이다.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것만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일을 경험했기에 조금 더 기다릴 줄 알고, 여러 사람을 만났기에 다름을 조금 더 받아들인다. 어려움을 겪었기에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헤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월은 연륜이 된다.
지는 해와 차오르는 달을 닮는다
고은의 나는 저녁 무렵의 태양, 저녁노을을 좋아한다. 한낮처럼 강렬하지 않지만 일몰의 햇빛에는 부드러운 온기가 있다. 산과 들, 건물을 황금빛으로 감싸다가 요란하지 않게 서서히 모습을 감춘다. 고은층의 시간도 어느 면에서는 그 저녁노을을 닮았다. 직장과 조직의 시간표에 맞추어 분주하게 움직이던 때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줄어들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선택할 여지가 늘어난다. 빨리 가는 것보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러나 고은층을 지는 해에만 비유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맑은 날 푸른 하늘에 떠 있는 상현달을 바라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상현달은 아직 보름달이 아니다. 절반쯤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차오르고 있다. 이 모습 또한 내가 생각하는 고은층과 잘 어울린다.
살아온 날이 많다고 해서 사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새롭게 배울 것이 있고 고쳐야 할 습관이 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아직 해 보지 못한 일도 남아 있다. 몸의 시간은 저녁을 향해 가더라도 생각과 마음은 보일 듯 말 듯 하늘의 상현달과 닮아 있다. 그래서 고은층의 삶에는 정중동(靜中動)이 어울린다. 겉으로는 이전보다 조용해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움직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어제보다 조금 나은 자신을 만들어 간다.
저녁 해의 고요와 상현달의 차오름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지혜가 된다. 저녁 해는 내려놓을 때를 가르쳐 주고, 차오르는 달은 아직 고숙(高熟)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고은층에게는 물러날 줄 아는 여유와 계속 배우려는 마음이 함께 필요하다.
오래 익은 것에는 저마다의 맛이 있다
가을도 고은층과 닮은 점이 많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산과 들의 나뭇잎은 저마다 다른 빛깔로 물든다. 봄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움이라면 붉게 물든 단풍에는 뜨거운 여름을 지나온 뒤에야 나타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도 세월에 따라 아름다움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다. 젊은 날에는 생기와 활력이 돋보였다면 고은층의 아름다움은 고숙과 고품(高品)에서 배어 나온다.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 필요한 말을 따뜻하게 건네는 사람에게서 깊은 고품이 느껴진다.
오래 익은 된장도 생각난다. 된장은 시간을 건너뛰어 만들 수 없다. 기다리고 익어야 특유의 구수한 맛이 난다. 사람의 생각도 비슷하다. 오래 살았다고 저절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경험을 마음속에서 삭이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의 말에는 다른 맛이 생긴다. 그래서 고은층에게는 기다림과 조절, 절제가 중요하다. 아는 것을 모두 말할 필요도 없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나 곧바로 주장할 필요도 없다. 한마디 덜 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고, 조금 기다려 주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는 길일 때도 있다. 오래 익은 된장의 맛처럼 은근하게 배어 나오는 것이 좋다.
잘 익은 수박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본다. 겉만 보아서는 그 속을 알기 어렵지만, 갈라 보면 붉고 달고 시원한 속살이 드러난다. 고은층도 이처럼 겉모습보다 속마음이 깊고 따뜻하면 좋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과 정을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붉게 익은 대추도 그렇다. 시간이 흐르면서 겉에는 주름이 늘어나지만, 그 안에는 농익은 단맛이 깊이 배어 있다. 사람의 얼굴에 생긴 주름도 긴 세월을 살아온 흔적이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의 주름을 모두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의 모서리는 얼마든지 둥글게 다듬을 수 있다. 평소 인간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항상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려본다. 일상에서 갈등이 생기더라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해 본다. 그러면 얼굴의 주름에는 단순한 세월의 흔적을 넘어 삶의 온기와 깊이가 담길 것이다.
고추처럼 할 말은 하고 감초처럼 어울린다
이번에는 고추(高秋)가 아니라 밭에서 붉게 익어 가는 고추를 생각해 본다. 잘 익은 고추에는 은근한 단맛도 있고 매운맛도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맛이 고은층에게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모든 일에 “좋다” 하는 것이 어른의 관용은 아니다.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때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켜야 할 원칙과 기준이 있다면 관계가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필요한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다만 그 매운맛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말과 젊은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말은 삼가야 한다. 과거의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말은 자칫 아집과 편견으로 비치기 쉽다. 고추의 매운맛도 음식 전체의 맛을 살릴 만큼이면 충분하다. 지나치면 다른 맛을 모두 덮어 버린다.
그래서 고추 곁에는 감초를 놓아 보고 싶다. 우리는 여러 곳에 빠지지 않고 어울리며 제 역할을 하는 사람을 두고 ‘약방의 감초’라고 한다. 고은층의 역할도 때로 이와 닮았으면 한다. 자신이 언제나 주인공이 되기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준다. 부족한 곳을 메우며, 젊은 세대가 앞으로 나아갈 때 조용히 뒤를 받쳐 주는 것이다.
경험과 지혜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묻지 않았는데 앞서 가르치기보다 필요로 할 때 들려준다.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자신의 경험을 기꺼이 보태준다.
따라서 고추의 원칙과 감초의 조화가 함께해야 한다. 할 말을 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한다. 평소에는 따뜻하고 유연한 사람이 된다. 또한 중심은 지키되 그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재단하지 않아야 한다. 이들 모두가 내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어른다운 모습이다.
맺음글
자연을 닮아간다는 것
돌이켜보면 자연과 우리 곁의 익숙한 것들은 참 여러 모습으로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저녁 해는 물러날 줄 아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차오르는 달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배우고 고숙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가을 단풍은 계절에 따라 아름다움의 빛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래 익은 된장은 기다림과 깊이를, 수박은 속 깊고 담백한 마음을 나타낸다. 대추는 세월 속에서 익어가는 온정을 생각하게 한다. 고추에서는 필요한 원칙을 배우고, 감초에서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지혜를 배운다.
그러나 어느 하나만 닮아서는 부족하다. 늘 부드럽기만 하면 중심을 잃기 쉽고, 언제나 원칙만 앞세우면 사람을 잃을 수 있다. 고요하기만 하면 삶이 메마를 수 있고, 끊임없이 움직이기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어렵다. 자연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 다른 빛깔과 모습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고은층도 그러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한 가지 색깔만 강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맛과 빛깔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다. 받아들일 줄 알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고요하면서도 마음은 계속 움직인다. 속은 깊어지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필요할 때는 원칙을 말하되 대부분의 시간에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 준다.
그동안 나는 고추(高秋)를 인생의 한 시절로 생각해 왔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고추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나는 그 답의 하나를 자연을 닮아가는 삶에서 찾고 싶다.
"지는 해처럼 따뜻하게 물러날 줄 알고, 차오르는 달처럼 여전히 배우며 살아가는 삶이다. 오래 익은 열매처럼 생각은 깊어지고 마음은 넉넉해진다. 때로는 고추처럼 맵싸한 기개로 원칙을 지키되, 평소에는 감초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 주며 살아간다."
고은층의 고추(高秋)는 이미 완성된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긴 세월을 품고도 오늘을 새롭게 살아가며 조금씩 더 익어 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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