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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작은 숙부님을 추모하며"


작은 숙부님께서 89세를 일기로 영면하셨습니다.
창녕 성씨와 청주 양씨의 집성촌인 어울에서 고성 이씨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나 4남 3녀 중 막내아들이자 여섯째로 살아오시며, 우리 집안의 남성 중 가장 오랜 세월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작은 숙부님께서는 같은 마을의 양씨 가문의 동갑이신 작은 숙모님과 인연을 맺어 동화, 동환, 동우 세 아들과 양수, 순락 두 딸을 두셨고,
이들 모두가 가정을 이루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효성과 인성을 갖춘 자녀들로 성장한 것은 작은 숙부님의 가정교육과 삶의 가르침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어릴 적 작은 숙부님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나무하러 가실 때 빈 지게에 나를 태우고 가셨던 따뜻한 모습, 군 생활을 앞두고 망설이시던 모습, 결혼 전 가요를 배우려 밤늦도록 노래 가사를 적으며 연습하시던 모습, 성인이 되어 담배를 배우려 애쓰시던 모습 등은 어린 시절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작은 숙부님은 성실과 근면함의 표상이셨습니다.
신접살림을 시작하며 닭을 키워 알을 모아팔아 돈을 모우셨고,
자녀 교육과 가정을 위해 한평생 근검절약하며 자립적인 삶을 사셨으며,
공공부조 혜택을 받기 위해 마산시청 산하 구청 청소원으로 근무하며 학비를 마련하여 자녀의 학업을 뒷바라지하셨고,
그 결과 둘째는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유명 조선회사에서 근무하는 등 가족의 성공을 이루셨습니다.


작은 숙부님은 자존감이 강하고 문제 해결에 있어 직접적인 대립보다 논리적인 접근을 선호하셨으며,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집안의 자녀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셨으며,
저에게도 ‘성근(盛根)’이라는 이름에 ‘동주(東柱)’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평생 모아 오신 재산을 아들과 딸 구별 없이 공평하게 나누셨으며,
절약과 저축을 생활화하셨던 작은 숙부님의 철학은 유비무환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던 삶이었기에 작은 숙모님께서는 불편함도 있으셨겠지만, 생애 마지막에 큰 병원비를 치를 수 있었던 것에 놀라며 감사하셨다고 합니다.


종교는 없으셨지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며 자녀들의 신앙을 존중하셨고,
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대소사에 헌신하셨으며,
그 역할을 사촌동생들과 후손들이 이어받아가고 있습니다.


작은 숙부님, 평생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 내셨고, 가족과 집안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하늘나라에서 조상님들과 형제분들을 만나 평안한 시간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삼가 작은 숙부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5년 2월 27일

조카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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