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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은 바람처럼 섞이고, 뿌리내린 사람들이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지역개발학/ 서울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 전 대구경북연구원장
신(新) 제주인/서귀포 혁신도시 거주 3년 차



제주는 한반도 남쪽 바다에 떠 있는 섬이지만, 그 역사와 정체성은 단순히 ‘섬사람’이라는 말로 규정하기 어렵다. 제주인은 자연의 거친 도전과 외부 세계와의 끊임없는 교류 속에서 독특한 기질과 문화를 형성해왔다.

필자는 서귀포 혁신도시에 거주한 지 3년째 되는 신(新)제주인으로서, 제주 사람을 보고, 만나고,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제주인의 형성과 기질을 통해 이들의 정체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주인의 기원은 섞이고 정착하며 만들어진 공동체이다

제주인의 뿌리는 단순하지 않다. 처음부터 섬에 살던 원주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섞이고 정착하며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첫째, 원주민 제주인이다.
제주에도 최초 정착민이 있었고, 이들이 ‘고양부’ 등의 성씨를 이루며 제주 고유의 뿌리를 형성하였다.

둘째,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다.
조난당해 어쩔 수 없이 정착한 어부들, 그리고 호남·일본·중국 등지에서 다양한 이유로 유입된 이들이 제주인의 일부가 되었다.

셋째, 유배지에 남은 사대부들과 후손들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제주로 유배 온 사대부들 중 일부는 섬에 정착하며 후손을 남겼고, 이 과정에서 몇몇 양반 성씨가 제주에 자리 잡았다.

넷째, 전쟁과 관련한 이주민들이다.
몽골 점령기, 조선과 일본의 전쟁, 근현대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제주에 머물게 된 이주민들도 제주인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

다섯째, 현대의 이주민들이다.
최근에는 사업, 직장, 건강, 휴양, 은퇴 등의 이유로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새로운 형태의 제주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필자 또한 그러하다.

이처럼 제주인은 단순한 ‘섬사람’이 아니다. 오랜 시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뒤섞이며 만들어진 ‘융합형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제주인의 기질은 자연과 역사가 빚어낸 공동체 정신이 대표적이다
제주의 자연과 역사는 제주인의 성향과 삶의 방식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첫째, 강한 공동체 의식과 상부상조 정신이다.
제주는 태풍과 가뭄 등 자연재해가 잦은 곳이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주인들은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둘째, 현실적이고 빠른 판단력이다.
제주에서는 이기적인 사람을 ‘여산쟁이’라고 부른다. 이는 현실적인 판단과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제주인의 생존 방식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셋째, 외부에 대한 경계심과 개방성의 공존이다.
제주인은 외지인을 ‘육지것’이라고 부르며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외부와의 교류 속에서 부정적인 경험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동시에 제주인은 외부 문화를 수용하며 변화하는 유연함도 지니고 있다.

넷째, 여성의 강한 생활력이다.
제주 사회에서 여성들은 오랫동안 가정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해녀 문화에서 볼 수 있듯이, 제주 여성들은 강인한 생명력과 생활력을 갖추고 있다.

다섯째, 역사적 아픔과 정치적 중립성이다.
제주는 4·3 사건 등 아픔을 겪으며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섯째, 강한 교육열과 직업별 기질의 차이이다.
제주인은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아 대학입시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직업별로 기질 차이가 뚜렷한데, 목장·경마업 등 종사자는 사교적이고 도시적 성향을 보이는 반면, 감귤 농업 종사자와 일반 농사자는 보다 순박하고 따뜻한 인정을 지닌 경우가 많다.

일곱째, 제주인은 융합형 인간이다.
제주인은 단순한 원주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원주민과 외부인이 결합하며 제주인으로 체화되었고, 근대 이후에도 다양한 직업군과 이주민이 섞이며 독특한 성향을 형성하였다. 제주인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혼합된 ‘융합형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제주인은 자연과 싸우면서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켜왔으며, 변화 속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며 새로운 제주다움을 만들어가고 있다.

제주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제주인의 역사와 기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제주를 사랑하는 길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1) 융합형 인간/ 호모 컨버전스는 융복합 지식과 창조적 지능을 지닌 인간을 의미한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융합해 창의적으로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인간상이다.
제주 감귤의 혁신적 진화과정을 보면,  제주인이 융합형 인간이라는 것에 바로 동의가 된다. 필자는 제주의 창조적 혁신적 발전에 제주인의 융합 DNA의 기질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혁신컨설팅단 단장으로 활동한 경험에 비추어 이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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