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도 성실과 근면으로 다시 빚어진다: 고은층의 몸만들기, 느리게 그러나 꾸준하게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고은층의 몸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건강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는다. 젊은 시절에는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고은층에 이르면 건강은 노력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 삶의 자산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고 몸을 다시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그 결심이 오래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몸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젊은 시절과 같은 방식으로 운동하려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최근 헬스장에서 고은층 동호인들과 함께 전신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시작하였다. 이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움직이고, 새로운 운동기구를 익히며, 스무 가지가 넘는 운동 종류와 순서를 기억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분명 방금 배웠는데도 금세 잊어버리고, 동작도 서로 헷갈렸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문득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는 고사가 떠올랐다. 운동 종류와 방법이 마치 말의 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머릿속에 오래 머물지 않는 듯하다.
더욱이 함께 운동하는 세 사람 가운데 필자가 가장 초보이다. 오늘은 운동 순서를 직접 이끄는 차례이다. 운동 이름과 순서를 몸에 익히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은 실천이다. 준비를 하면서 문득 칠십여 년 동안 삶을 이끌어 온 성실과 근면의 가치가 떠올랐다. 고은층의 몸만들기도 결국 새로운 운동기술보다 성실과 근면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성실은 여전히 살아 있다
젊은 시절의 몸은 성장 속도가 빠르다. 조금만 운동해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다. 그러나 고은층의 몸은 다르다. 근육은 천천히 자라고, 회복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균형감각과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 따라서 젊은 시절의 기준으로 몸을 만들려 하면 쉽게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고 몸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변화의 속도가 느려졌을 뿐이다. 오히려 오랜 세월 몸에 밴 생활습관과 꾸준함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필자는 운동을 하면서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하였다. 처음에는 운동기구의 이름도 외워지지 않았고, 순서도 자꾸 헷갈렸다. 동작 하나를 익히는 데에도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그러나 평생 몸에 밴 성실과 근면의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결국 몸도 공부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반복은 기억을 만들고, 꾸준함은 몸을 변화시킨다.
성실과 근면은 몸을 만드는 가장 강한 근육이다
돌이켜보면 필자의 삶은 시대마다 서로 다른 좌우명을 품고 살아왔지만, 그 밑바탕에는 언제나 성실과 근면이 흐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로부터 "소복은 재근(小福在勤), 대복은 재천(大福在天)"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작은 복은 부지런함에서 비롯되고, 큰 복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 역시 꾸준함의 힘을 일깨워 주었다.
청년 시절에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좋아하였다. 또한 "일일부독서면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이라는 경구를 생활신조처럼 실천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용』의 다음 구절은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사람이 한 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열 번 하고, 사람이 열 번 하면 나는 백 번 하며, 사람이 백 번 하면 나는 천 번 한다. 비록 우둔할지라도 반드시 밝아지고, 비록 유약할지라도 반드시 강해진다."
이 가르침은 공부에도 적용되었고, 연구에도 적용되었으며, 이제는 운동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교수 시절에는 교학상장(敎學相長)과 학해무변(學海無邊)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하나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믿음은 정년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이제 그 배움은 책을 넘어 몸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은층의 몸만들기는 부분점진적 접근이 답이다
고은층에게 가장 위험한 운동은 무리한 운동이다. 젊은 사람과 경쟁하거나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마음은 오히려 몸을 상하게 만들 수 있다.
필자가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몸도 하나의 학습 과정(a learning process)이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근육은 조금씩 깨어나고, 새로운 동작도 반복을 통해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므로 고은층에게 필요한 것은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부분점진적 접근(disjointed incrementalism)이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오늘 한 가지를 배우고 내일 한 가지를 익히며 작은 변화를 차곡차곡 쌓아 가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운동뿐 아니라 식습관, 수면, 걷기, 스트레칭, 호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몸은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회복되고 새롭게 빚어진다. 그래서 고은층의 건강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고은층의 새로운 좌우명, 유유자작
최근 필자는 삶에 또 하나의 좌우명을 더하였다. 바로 유유자작(悠悠自作)이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자기만의 리듬으로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고은층은 더 이상 남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어제의 자신보다 조금 더 건강해지고, 조금 더 배우며, 조금 더 행복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헬스장에서 운동 순서를 외우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어렵고 막막하지만, 하루하루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몸은 늦게 배울 뿐 결코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믿음은 필자에게 또 하나의 확신을 준다. 몸 역시 마음과 마찬가지로 평생 성숙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맺음글
건강은 성실과 근면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결실이다
고은층에게 건강은 젊음을 되찾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남은 생을 더욱 품격 있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기반이다.
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생 실천해 온 성실과 근면이 몸에 조금씩 새겨질 때 건강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삶의 품격으로 이어진다.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하였다. 배움은 공부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몸을 배우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고은층에게 운동은 자신의 몸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며, 건강은 그 배움이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 결과이다.
필자는 이제 젊은 시절처럼 빠른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 한 걸음을 내딛고, 내일 또 한 걸음을 더하는 삶을 선택하고자 한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오래된 좌우명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제는 유유자작이라는 새로운 삶의 철학과 만나 고은층의 건강을 이끄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몸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지만, 성실과 근면은 세월을 넘어 더욱 깊어진다. 결국 고은층의 몸만들기는 젊음을 되찾는 일이 아니라, 평생 살아온 성실과 근면을 몸으로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건강을 위한 운동을 넘어,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다시 빚어 가는 또 하나의 인생 사색이라 할 수 있다.





사진 4와 5는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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