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층(高恩層) 개념의 제안과 이론적 논의: 이성근 교수의 고은층론"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 행정학박사
서문
인생 후반기를 새롭게 바라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사람들을 ‘노인’, ‘고령자’, ‘고령층’, ‘은퇴자’, ‘실버세대’, ‘시니어’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이러한 용어들은 각각 필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대체로 생물학적 연령이나 경제활동에서의 은퇴 여부를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그러나 오늘날 인생 후반기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은퇴 이후에도 상당히 긴 삶이 남아 있으며, 많은 사람이 학습과 사회활동, 여행과 취미, 봉사와 나눔 등을 통해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인생 후반기를 단순히 ‘늙어가는 시기’나 ‘은퇴 이후의 여생’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타당할까? 오랜 생애를 통해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남은 삶을 스스로 설계하며, 가족과 이웃, 사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생애단계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2024년부터 ‘고은층(高恩層)’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그 의미를 여러 글과 저술을 통해 발전시켜 왔다. 초기에는 고령층과 은퇴층을 함께 포괄하는 의미가 강했지만, 이후에는 단순한 인구학적 범주를 넘어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설명하는 생애적·철학적·실천적 개념으로 확장해 왔다.
고은층은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을 새롭게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인생 후반기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고, 어떻게 나이 들며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가며 완성할 것인가에 관한 삶의 방식이다.
고은층(高恩層)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고은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고은층(高恩層)이란 오랜 생애과정을 통해 경험과 지혜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하면서 성찰·관계·참여·나눔과 환원을 통해 인생 후반기를 성숙하고 품격 있게 살아가는 생애계층을 말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연령이 아니다. 몇 살인가 보다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평생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어떻게 자신의 삶과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고은층은 생물학적 노화만을 나타내는 개념이 아니다. 인생 후반기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 자기 관리와 성찰, 관계와 참여, 나눔과 환원을 함께 포괄하는 생애적 개념이다.
고은층을 이루는 다섯 가지 차원
고은층의 삶은 크게 다섯 가지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생애적 차원이다.
고은층은 학습과 가정생활, 직업과 사회활동 등 인생 전반기의 다양한 경험을 거쳐 인생 후반기에 이른 생애단계에 위치한다. 따라서 현재의 삶 속에는 지나온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어 있으며, 그 경험은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토대가 된다.
둘째, 유유자작적 차원이다.
필자는 이를 유유자작(悠悠自適)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유유자작은 여유롭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조나 자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와 정신, 경제생활과 일상을 가능한 범위에서 스스로 관리하고, 필요한 도움은 적절히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과 주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조와 자기 관리는 유유자작을 실천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셋째, 성찰적 차원이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축적된 경험을 삶의 지혜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무엇을 이루었는지만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내려놓으며, 무엇을 남길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넷째, 관계와 참여적 차원이다.
가족과 친구,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여건에 맞게 지역사회와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은층의 삶은 사회와 단절되는 삶이 아니라 관계의 방식과 범위를 새롭게 조정하면서 사회와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삶이다.
다섯째, 나눔과 환원적 차원이다.
평생 축적한 지식과 경험, 지혜와 재능뿐 아니라 물질적·정신적 자원을 가족과 다음 세대, 지역사회와 나누는 것이다. 한 개인이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한 경험과 지혜는 개인적 자산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다섯 차원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애적 흐름을 이룬다.
"생애의 축적 → 유유자작 → 성찰 → 관계와 참여 → 나눔과 환원"
이는 단순히 나이를 먹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재구성하면서 사회와 다시 연결되고, 자신이 받은 것을 다음 세대와 공동체에 돌려주는 능동적인 인생 후반기의 과정이다.
기존의 노인·고령층과 무엇이 다른가?
‘노인’이나 ‘고령층’은 주로 연령을 기준으로 하는 인구학적 개념이다. ‘은퇴자’는 직업생활에서 물러난 사회경제적 지위를 중심으로 한 개념이다. ‘실버세대’와 ‘시니어’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표현이지만 일정 연령 이상의 사람을 지칭하는 성격이 여전히 강하다.
이에 비해 고은층은 연령과 은퇴라는 현실적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그보다 인생 후반기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중요하게 본다. 평생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성찰하며, 사람과 사회에 참여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환원하는 삶을 강조한다.
이를 간결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따라서 고은층은 ‘노인’이나 ‘고령층’을 단순히 다른 이름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아니다. 인생 후반기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전환하자는 제안이다."
고은층론의 핵심: 나이가 아니라 삶의 품격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론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고은층은 나이의 이름이 아니라 삶의 품격이다."
고령화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과정이다. 그러나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갈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과 노력뿐 아니라 가족, 공동체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고은층론은 노년을 쇠퇴와 상실의 시기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평생 축적한 경험을 지혜로 전환하고,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다음 세대와 공동체에 나누면서 유유자작하는 삶의 시기로 바라본다.
따라서 고은층에게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에 머물지 않는다.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질문이 된다.
축적에서 유유자작으로, 유유자작에서 환원으로
고은층의 전체 생애구조를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축적(Accumulation) → 유유자작(Self-Directed Living) → 환원(Contribution)"
인생 전반기는 배우고 일하면서 지식과 경험, 관계와 자산을 축적하는 시간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는 무엇인가를 계속 더 쌓는 것만큼이나 이미 쌓아 온 것을 어떻게 정리하고 활용하며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그 중심에 유유자작이 있다.
유유자작은 단순히 한가롭고 여유롭게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평생 축적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여건과 가치에 따라 남은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자기 관리와 자조, 선택과 절제, 성찰과 학습, 관계의 재구성 등이 함께 포함된다.
그리고 삶이 더욱 성숙해질수록 자신의 경험과 지혜, 시간과 재능을 가족과 다음 세대, 지역사회와 나누고 환원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축적하는 삶에서 유유자작하는 삶으로, 유유자작하는 삶에서 나누고 환원하는 삶으로."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중요한 생애적 전환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은층은 사회적 지원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평생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사회와 나눌 수 있는 능동적인 삶의 주체이자 사회적 자산이다.
고은층의 조작적 정의와 앞으로의 과제
고은층을 하나의 학술적 연구대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개념적 정의와 더불어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조작적 정의가 필요하다.
현 단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고은층은 원칙적으로 고령기 또는 은퇴 이후의 생애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유자작의 태도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하며, 축적된 생애경험을 성찰과 지혜로 전환한다. 또한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자신의 여건과 역량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사회참여와 나눔·환원을 실천하는 생애집단이다."
여기에서 연령은 중요한 기준이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초기의 고은층 개념은 주로 60대 이상을 중심으로 고령층과 은퇴층을 포괄하는 의미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개념이 발전하면서 특정 연령만으로 고은층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태도와 삶의 방식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앞으로는 고은층의 연령적 범위와 생애단계를 보다 명확히 설정하고, 유유자작, 자기 관리, 성찰, 관계, 사회참여, 나눔과 환원 등의 구성요소와 상호관계를 더욱 정교하게 이론화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러한 요소를 경험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와 척도를 개발하고, 개인적 조건뿐 아니라 가족·지역사회·제도적 환경과의 관계까지 연구한다면 고은층론은 초고령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생애론적·실천적 연구 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고은층론이 지향하는 삶
필자가 제안하는 고은층론은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바꾸는 데서 출발한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고 완성할 것인가?’로 시작한다.
인생 전반기가 성장과 성취, 축적의 시간이었다면 인생 후반기는 성찰과 유유자작, 그리고 환원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많이 가지는 삶에서 필요한 것을 남기는 삶으로, 경쟁하는 삶에서 함께하는 삶으로, 자신을 위한 축적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나눔으로 삶의 중심을 옮겨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은층의 삶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일상을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삶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사색하며,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사회와 연결되어 살아가는 삶이다. 그리고 평생 얻은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자신의 생애 마지막까지 품격 있게 준비하는 삶이다.
맺음말
고은층은 삶의 후반부를 새롭게 부르는 이름이다
고은층(高恩層)은 고령자와 은퇴자를 단순히 ‘늙어가는 사람들’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현재의 삶을 주체적으로 관리한다. 또한 남은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신이 받은 것을 가족과 이웃, 다음 세대와 사회에 나누는 성숙한 생애계층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필자는 고은층을 이렇게 생각한다.
"고은층은 늙음의 이름이 아니라 성숙의 이름이고,
은퇴의 이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축적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성찰하고 유유자작하며 나누는 삶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다.
나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답을 자신의 삶 속에서 찾아가며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필자가 말하는 고은층(高恩層)이다.
이것이 필자가 여러 해에 걸쳐 사색하고 글을 쓰면서 발전시켜 온 고은층론(高恩層論)의 기본 정신이다.
참고자료
"필자의 고은층(高恩層)에 대한 주요 논의와 개념의 발전"
이 글은 필자가 고령기와 은퇴 이후의 삶을 직접 경험하고 사색하면서 여러 글과 저술을 통해 제시해 온 ‘고은층’에 관한 논의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고은층은 처음부터 완성된 이론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고령층과 은퇴층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점차 인생 후반기의 삶의 방식과 가치에 관한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1. 고은층 개념의 초기 제안: 2024년
필자는 2024년 9월 8일 「고은층 인구/고령자와 은퇴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글에서 ‘고은층 인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당시 고은층은 주로 고령층과 은퇴층을 포괄하면서 60대 이상의 인생 후반기 계층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제시되었다. 핵심 문제의식은 고령자나 은퇴자를 경제활동에서 물러난 사람이나 사회적 부양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은퇴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설계하는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2. 인생 후반기 삶의 주체로서 고은층
이후 필자는 여러 글을 통해 인생 후반기를 단순한 휴식이나 여생의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생애단계로 바라보는 관점을 발전시켜 왔다.
고은층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이다. 건강과 일상의 자기 관리,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 지속적인 학습과 사색, 여행과 여가, 사회참여, 봉사와 나눔, 그리고 삶의 마무리에 대한 준비까지 인생 후반기의 다양한 과제를 고은층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해 왔다.
3. 『이성근 교수의 인생 사색 7권』과 개념의 확장: 2025년
2025년 출간된 『이성근 교수의 인생 사색 7권』에서는 고은층이 인생 후반기를 바라보는 주요 개념 가운데 하나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에는 고은층을 단순히 일정 연령 이상의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기보다 인생 후반기를 스스로 설계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생애계층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조되었다.
이에 따라 초기의 인구학적 의미는 점차 생애적·철학적·실천적 의미로 확장되었다.
4. 유유자작하는 삶의 주체로서 고은층: 2026년
2026년에 이르러 필자의 고은층 논의는 인생 후반기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천하는 능동적인 삶의 주체라는 방향으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유유자작(悠悠自作, Self-Directed Living)은 고은층의 삶을 설명하는 핵심적 통합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유유자작은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과 마음, 시간과 일상, 관계와 자원을 스스로 살피고 조절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 후반기를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 삶을 뜻한다.
이에 따라 자조와 자기 관리는 유유자작의 하위 실천요소로 포괄되며, 성찰·관계·참여·나눔과 환원은 유유자작을 통해 삶과 사회로 확장되는 고은층의 주요 실천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5. ‘고은층(高恩層)’으로 명칭의 통일: 2026년
고은층 개념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일부 글에서는 한자 표기가 달리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개념의 의미와 향후 이론적 체계화를 고려하여 필자는 명칭을 ‘고은층(高恩層)’으로 통일하였다.
여기에서 ‘은(恩)’은 삶을 살아오면서 받은 은혜와 인연을 기억하고, 평생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다시 가족과 이웃, 다음 세대와 사회에 나누고 환원한다는 의미와 연결된다.
따라서 고은층(高恩層)은 고령이나 은퇴라는 연령적·직업적 특성을 넘어, 인생 후반기에 이르러 자신이 살아온 삶을 성찰하고 받은 것을 다시 나누는 삶의 가치를 상징한다.
6. 고은층론(高恩層論)으로의 발전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필자의 고은층 개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발전해 왔다.
고령층·은퇴층을 포괄하는 인구 개념
→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생애계층
→ 자기 삶을 설계하는 능동적 주체
→ 유유자작하는 삶
→ 경험과 지혜의 나눔과 환원
→ 고은층론(高恩層論)의 체계화
이를 보다 압축하면 고은층의 생애적 원리는 다음의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축적(Accumulation) → 유유자작(Self-Directed Living) → 환원(Contribution)
이 세 단계에서 축적은 평생 살아오면서 형성한 경험·지식·관계·자원의 기반이다. 유유자작은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성찰·선택·관리·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환원은 축적된 경험과 지혜를 가족·다음 세대·공동체와 나누어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고은층론은 새로운 명칭 하나를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초고령사회에서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한 개인이 평생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어떻게 자신의 성숙과 가족·다음 세대·사회의 가치로 이어갈 것인지를 탐구하는 생애론적·실천적 관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참고자료 작성에 관한 주석
이 글에서 말하는 ‘고은층(高恩層)’은 필자가 2024년 이후 여러 글과 저술에서 사용하면서 그 의미를 확장하고 체계화해 온 개념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현 단계에서는 필자가 고은층을 독자적인 생애계층 개념으로 제안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는 점에 초점을 두었다.
향후에는 관련 선행연구와 기존의 노년학·생애과정론·성공적 노화·활동적 노화 등의 개념과 비교하여 고은층론의 이론적 위치와 차별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유유자작을 비롯한 주요 구성개념의 조작적 정의와 측정지표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사진 1·2는 제주 한림 금능의 근석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고추이며, 사진 3은 필자의 가족 모임 사진을 AI로 수정·보완한 것이다.

'생각하며 사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성근 교수의 디카시 산책] 끝은 닮아도 삶은 다르다 (0) | 2026.09.14 |
|---|---|
| [이성근 교수의 디카시 산책] 세상 모두가 은혜로세 (0) | 2026.09.13 |
| [이성근 교수의 고은산책] 고은층의 삶은 따라 다르다: 생각·마음·사람·장소·시간이 빚는 인생의 빛깔 (1) | 2026.09.11 |
| [이성근 교수의 디카시 산책] 따라 다르다 (0) | 2026.09.11 |
| [이성근 교수의 디카시 산책] 세상은 요지경 (0) | 2026.09.0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