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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닮아도 삶은 다르다

이성근

가라지처럼 알곡인 척하지 말고
미꾸라지처럼 책임을 피해 돌지 말며
도라지처럼 제 뿌리를 깊이 내리자
때가 오면 꽃을 피우고
끝내 누군가의 쓰임으로 남자

[글·사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어제 오후 낙동클럽 5인이 함께 차를 타고 가며 나눈 대화 가운데 우연히 ‘가라지’라는 말이 화제에 올랐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가라지·미꾸라지·도라지’라는 세 단어가 잇달아 떠올랐다. 끝소리는 비슷하지만 그 말에서 연상되는 모습과 의미는 서로 전혀 다르다.

가라지는 알곡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 알곡과 혼동되기 쉬운 존재이다. 미꾸라지는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도라지는 땅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때가 되면 꽃을 피우며, 그 뿌리까지 사람에게 쓰임을 주는 식물이다.

사람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이기보다 속을 알차게 채우고, 책임을 피하기보다 기꺼이 감당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에는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는 흔적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쓰임이 되었던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더 값진 삶이 아닐까? 차 안에서 우연히 나온 ‘가라지’라는 한마디가 이런 생각으로 이어져 이 시를 쓰게 되었다.

[시 해설]

이 시는 ‘가라지·미꾸라지·도라지’라는 끝소리가 닮은 세 단어를 서로 다른 삶의 모습에 빗대어 쓴 것이다.

‘가라지’는 알곡인 척하는 삶을 경계하는 이미지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처럼 보이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속을 얼마나 알차게 채우며 살아가느냐는 뜻을 담았다. ‘미꾸라지’는 책임 앞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모습을 상징한다. 나이가 들수록 핑계보다 책임을, 회피보다 받아들임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의 ‘도라지’는 앞의 두 이미지와 달리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도라지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때가 되면 꽃을 피우며, 그 뿌리까지 사람에게 쓰임을 준다. 사람도 자신의 자리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며, 끝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끝소리는 닮아도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다. 무엇처럼 보일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이것이 이 시가 전하고 싶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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