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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 부부의 평화는 말(言)에서 시작된다: 미래·수용·배려의 세 가지 지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부부의 평화는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부부가 평생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서로 다른 성격과 습관을 지닌 두 사람이 수십 년을 함께 살아가는데 의견 차이가 전혀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고은층 부부에게 필요한 평화도 마찬가지다. 평화란 아무런 의견 차이 없이 살아가는 상태가 아니다. 차이가 있어도 서로에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삶의 지혜가 평화이다.

성경 『잠언』 15장 1절에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다. 같은 내용도 어떤 말로 하느냐에 따라 다툼이 되기도 하고 대화가 되기도 한다. 부부의 평화 역시 거창한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고은층 부부가 남은 삶을 조금 더 평화롭게 함께하기 위해서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과거보다 미래를 말하자

갈등이 생겼을 때 가장 하기 쉬운 말 가운데 하나가 “당신은 옛날에도 그랬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로 해결되는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미 지나간 일과 함께 묻어 두었던 감정까지 다시 살아나기 쉽다. 복수난수(覆水難收), 곧 엎질러진 물은 다시 거두기 어렵다는 말처럼 지나간 일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때 왜 그랬어?”라고 따지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묻는 것이다. 지난날의 언어를 미래의 언어로 바꾸는 셈이다. 잘못한 것만 찾아내기보다 잘한 일과 고마운 일도 말해 줄 필요가 있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잘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부족한 것만 눈에 들어오기 쉽다. “당신은 이것도 못해”라는 말보다 “당신이 이것은 참 잘해 주었어”라는 말 한마디가 관계의 온도를 바꾼다.

과거는 고칠 수 없지만 앞으로의 하루는 바꿀 수 있다. 특히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고은층에게 남은 시간은 지나간 일을 되풀이해 원망하는 데 쓰기에는 너무 귀하다. 지난 잘못을 기억하는 데 머물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부부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바꾸기 어려운 것은 받아들이자

오래 살아온 배우자를 이제 와서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에게 널리 알려진 ‘평온의 기도(Serenity Prayer)’에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지혜는 부부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배우자의 건강을 해치는 습관이나 상대에게 큰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함께 고쳐 나가야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에 밴 말투나 취향, 생활 리듬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것까지 끊임없이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한다면 두 사람 모두 지치게 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오래된 습관을 바꾸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럴 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다.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했다. 서로 조화를 이루되 반드시 같아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나는 『맹자』 「등문공상」의 오륜에 나오는 부부유별(夫婦有別)도 오늘의 관점에서 새롭게 생각해 보고 싶다. 본래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분별과 질서가 있다는 뜻이지만, 오늘날에는 부부라 하더라도 서로의 인격과 생각, 취향과 영역에 존중해야 할 차이가 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부부는 한집에서 한평생을 살아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다.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만나는 사람도 다르며, 쉬는 방법과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하고 모든 생각이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살아갈수록 함께할 것은 함께하고 다를 것은 다르게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화이부동과 부부유별은 그런 의미에서 서로 통한다.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에 조화를 이룰 수 있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기 때문에 더 오래 가까이 살아갈 수 있다.

상대의 역린을 알고도 건드리지 말자

부부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만큼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디가 강하고 어디가 약한지도 안다. 그래서 갈등이 생겼을 때 마음만 먹으면 상대에게 가장 아픈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다는 것은 상대의 약점을 공격할 권리를 얻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약점을 알고 있기에 보호해 줄 책임이 더 커졌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역린(逆鱗)’은 『한비자』 「세난(說難)」에서 비롯된 말이다. 용의 목 아래에는 거꾸로 난 비늘이 있어 그것을 건드리면 사람을 해친다는 비유에서 나온 말이다. 오늘날에는 누구에게나 남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예민하고 아픈 부분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논어』 「안연」편에도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곧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부부 사이에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상대에게 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에 가장 상처받는지를 안다면 그것을 굳이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남들 앞에서 지적받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비난하는 말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또 어떤 사람은 지나간 실패를 다시 들추는 데 깊은 상처를 받는다. 배우자가 그것을 알고 있다면 굳이 그곳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오래 산 부부가 보여 줄 수 있는 배려다.

역린을 모르는 사람보다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조심해야 한다. 사랑은 좋은 것을 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상대가 가장 싫어하고 아파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사랑이다. 오래 함께 살아 상대를 잘 안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까지 안다는 뜻이어야 한다.

맺음글
서로를 덜 고치고 더 이해하는 삶


젊은 시절의 부부에게는 함께 이루어야 할 일이 많다.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키우며 직장과 가정을 꾸려 가야 한다. 그러나 고은층 부부에게는 조금 다른 과제가 남는다. 이제는 서로를 얼마나 더 바꿀 것인가보다 어떻게 하면 서로를 조금 더 편안하게 해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고은층 부부의 평화를 위한 삶의 태도를 세 가지로 마음에 담아 본다. 지나간 것은 놓아주고 앞으로를 이야기하자. 바꾸기 어려운 것은 억지로 고치려 하기보다 받아들이자. 그리고 서로의 아픈 곳을 알면서도 굳이 건드리지 말자. 결국 미래의 언어, 수용의 태도, 배려의 마음이다.

부부는 평생을 함께 살아도 서로 다른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유별이고,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화이부동이다. 오래 산 부부의 아름다움은 서로를 얼마나 많이 고쳐 놓았느냐에 있지 않을 것이다.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상대를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덜 상처 주며, 때로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삼키고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데 있을 것이다.

백년해로(百年偕老)는 단지 오래 함께 사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품고, 해서는 안 될 말 한마디를 아끼며, 남은 날을 편안하고 평화롭게 함께 늙어 가는 일일 것이다. 말 한마디를 바꾸면 관계가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면 남은 삶의 빛깔도 달라진다. 그것이 고은층 부부가 함께 만들어 가는 인생 후반기의 아름다운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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