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비범(非凡)과 한 범인(凡人)의 고은한담(高恩閒談): 세 교수의 학문과 인생철학을 돌아보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우연한 만남에서 피어난 고은한담
사람의 인연은 때로 뜻하지 않은 자리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오랜 세월 학문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인생 후반기에 다시 만나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특별한 즐거움이다. 젊은 날의 만남이 배움과 경쟁, 성취와 도전의 시간이었다면, 고은층(高恩層)의 만남은 성찰과 감사, 지혜와 나눔의 시간이 된다.
오늘 오후 대구 수성구의 한 카페에서 뜻깊은 만남이 있었다. 대구대학교의 중허 선생과 영남대학교의 채산 선생, 그리고 두 분보다 한참 어린 필자가 우연히 만나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세 사람 모두 오랜 세월 대학에서 학문과 교육에 종사하였고, 이제는 고은층으로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생 후반기의 길을 걷고 있다. 두 선생은 필자가 평소 존경해 온 원로 교수들이며, 필자는 두 분에 비하면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후학이다.
필자는 이날의 만남을 '두 비범과 한 범인의 고은한담'이라고 이름 붙였다. 두 선생의 학문적 경륜과 인생의 지혜를 비범함으로 받아들이고, 필자 자신은 그 곁에서 배우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겸손과 해학을 담은 표현이다. 이날의 고은한담은 단순한 안부와 세상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세 사람이 걸어온 교수 인생과 학문의 자세,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삶의 철학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중허 이해두 선생
촌철살인과 묵언지교, 중우·중곡·중허의 인생철학
중허 이해두(海斗) 선생의 이름에는 바다 해(海)와 말 두(斗)가 담겨 있다. 필자는 그 이름에서 바다처럼 넓고 깊은 도량과 세상을 헤아리는 지혜를 떠올린다. 오랜 세월 학문과 교육에 헌신한 해두 선생에게서는 깊이 있는 통찰과 간결한 표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짧은 한마디로 사물의 본질을 짚어 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지혜가 돋보인다.
필자가 선생에게 호에 관해 여쭈었을 때, 선생은 살아온 시기에 따라 중우(中友)·중곡(中谷)·중허(中虛)를 사용해 왔다고 설명해 주었다. 언론인 시절의 중우는 글을 읽어 주는 독자들과 함께한다는 뜻이고, 대학 재직과 퇴임 이후의 중곡은 산속 깊은 골짜기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중허는 마음을 모두 비운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필자는 이 세 가지 호의 변화에서 사람과의 소통, 자연과의 동행, 그리고 내면의 비움으로 이어지는 인생철학의 성숙을 읽을 수 있었다.
필자는 중허 선생의 인간관계를 묵언지교(默言之交)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말이 많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과 뜻을 이해하고,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우정을 이어가는 관계를 의미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진정성과 신뢰라는 생각이 든다. 해두 선생의 간결한 말씀과 여유로운 태도에서는 오랜 학문적 수련과 인생 경험이 빚어낸 품격을 느끼게 된다.
현재 중허 선생은 서귀포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복잡한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연과 더불어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는 삶이다. 필자는 이러한 삶이 단순한 은거나 휴식이 아니라, 오랜 세월 쌓아 온 학문과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본질을 음미하고 마음의 자유를 추구하는 인생 후반기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중허에 담긴 비움의 정신은 고은층이 되새겨야 할 소중한 삶의 지혜로 다가온다.
중허 선생의 삶에서 필자가 배우는 것은 넓은 도량과 깊은 통찰, 그리고 말보다 마음으로 이어지는 관계의 소중함이다. 바다처럼 넓게 받아들이되 사물의 본질은 예리하게 살피고, 많은 말보다 짧고 깊은 한마디로 뜻을 전하는 태도는 고은층이 지녀야 할 품격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채산 홍우흠 선생
자연에서 진리를 캐고 지행합일을 실천하다
채산(採山) 선생의 호에는 자연 속에서 학문을 닦고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산에서 귀한 것을 찾아내듯 세상의 현상과 사물 속에서 지식과 지혜를 발견하고자 하는 학문적 자세를 상징한다. 채산 선생은 이러한 뜻을 담아 채산서재를 운영하며 학문과 사색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채산 선생의 학문적 태도를 거두절미(去頭截尾)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거두절미는 불필요한 수식과 군더더기를 덜어 내고 핵심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태도이다. 화이부동은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자세이다. 학문과 교육의 세계에서 이러한 태도는 중요하다.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며, 다른 사람과 의견이 같다고 반드시 좋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화이부동은 학문적 자유와 인간관계의 품격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면서도 대화를 이어가고, 자신의 주장을 지키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는 지적 교류의 기본이다. 필자는 이러한 자세가 대학에서의 학문 활동뿐 아니라 고은층의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채산 선생의 삶에서 또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이다. 학문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배운 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삶의 태도로 연결해야 한다. 채산서재라는 공간도 필자에게는 학문과 사색, 자연과 생활을 연결하는 상징으로 다가온다. 학문을 연구실과 강의실에 가두지 않고 인생 후반기의 일상 속에서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고은층에게 배움은 정년과 함께 끝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직업적 의무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탐구하고,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삶의 지혜로 발전시킬 수 있다. 채산 선생의 학문과 생활에서 필자는 배움과 실천이 하나가 되는 고은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여송지성
소나무의 지조와 유유자작의 고은철학
필자는 두 선생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교수 인생과 고은철학도 돌아보게 되었다. 필자가 소중히 여기는 말 가운데 하나가 여송지성(如松之性)이다. 이는 서예가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 선생이 써 준 휘호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소나무처럼 곧고 푸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을 담고 있다. 사계절 푸른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처럼 교육자로서 지성과 인격을 지키고, 세월이 흘러도 배움과 실천의 자세를 잃지 않겠다는 뜻이다.
필자는 영남대학교에서 38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문과 교육, 연구와 사회봉사에 힘써 왔다. 그 과정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으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근학무실(勤學務實)의 자세로 부지런히 배우며 실질적인 성과를 이루고자 노력하였다. 학문은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실천의 기반이라고 생각해 왔다.
정년 이후에는 교수로서의 직업적 역할에서 벗어나 인생 후반기의 삶을 새롭게 설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고은층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고은층의 생활철학으로 유유자작(悠悠自作)을 강조하고 있다. 고은층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직업에서 은퇴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살아온 세월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자신과 이웃, 그리고 사회를 위해 품격 있는 삶을 이어가는 인생 후반기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유유자작은 필자가 생각하는 고은층의 두 가지 삶의 기준인 유유와 자작을 결합한 말이다. 유유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자신을 돌보며 살아가는 태도이고, 자작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뜻있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자세이다. 이는 유유자적의 여유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배움과 실천, 관계와 나눔을 지속하려는 생활철학이다.
필자는 이러한 고은의 삶에서 귀선선린(貴善善隣)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은 인연을 귀하게 여기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생 후반기의 행복은 개인의 건강이나 물질적 여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좋은 사람과 만나 담소하고, 함께 배우며, 가진 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삶의 즐거움과 보람이 더욱 깊어진다.
이날 두 선생과 나눈 고은한담도 필자에게는 귀선선린의 소중한 실천이었다. 중허 선생의 비움과 자적, 채산 선생의 지행합일, 그리고 필자가 지향하는 유유자작은 표현과 강조점은 다르지만, 학문과 인생을 성찰하면서 자신다운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맺음말
학문의 인연을 고은의 선린으로 이어가다
오늘의 만남을 돌아보면 세 사람의 삶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함께 존재한다. 중허 선생은 중우·중곡·중허로 이어지는 인생철학을 바탕으로 소통과 자연, 비움의 지혜를 실천하며 유유자적의 삶을 살아간다. 채산 선생은 학문과 자연을 연결하며 지행합일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여송지성의 다짐을 지키면서 배움과 나눔을 지속하는 유유자작의 고은길을 걷고자 한다. 세 사람의 삶의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학문을 소중히 여기고 인생 후반기를 의미 있게 살아가려는 뜻에서는 서로 닮아 있다.
필자는 특히 두 선생에게서 자유소통과 지행합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학문적 경륜이 깊을수록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자신의 지식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여기에 중허에 담긴 비움의 지혜와 채산의 지행합일, 그리고 고은층의 삶에서 요구되는 귀선선린과 유유자작의 가치를 더하면, 인생 후반기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품격 있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날의 교수 인생은 학문적 성취와 사회적 역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고은의 교수 인생은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삶의 지혜로 바꾸고 좋은 인연을 지속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에는 끝이 없다는 학해무변(學海無邊)의 정신은 정년 이후에도 유효하며, 배움과 나눔의 사명 또한 인생의 마지막까지 이어질 수 있다. 다만 그 길은 더 이상 서두르거나 경쟁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여건에 맞추어 유유자작하며 걸어가는 길이다.
오늘의 고은한담에서 필자는 두 선생의 비범함을 다시 느끼는 동시에 평범한 자신의 삶도 돌아보았다. 그러나 비범과 범인의 구분이 반드시 학문적 성취나 사회적 지위의 차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 후반기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움을 나누며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나눈 한담은 끝났지만, 그 속에서 얻은 배움과 여운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두 선생의 지혜를 배우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담소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 역시 소나무처럼 곧고 푸른 마음을 지키면서 좋은 인연을 귀하게 여기고, 배우며 나누는 고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자 한다.
두 비범과 한 범인의 고은한담은 그렇게 학문의 인연을 삶의 선린으로 이어 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고은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만나 서로의 삶을 배우고 함께 웃으며 유유자작하는 일상 속에 있음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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