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은 없다: 인간관계와 삶의 지혜에 대한 성찰"
이성근 영남대 교수 · 행정학박사
인생은 만남과 관계의 여정
우리는 태어나 부모를 만나고, 성장하면서 친구와 스승을 만나며, 성인이 되어 배우자와 자녀, 직장 동료와 사회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인생은 곧 만남과 관계의 여정이다. 그러나 그 여정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흠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은 없다.
“허물이 없는 벗을 찾다가는 벗을 사귀지 못한다”(탈무드)는 말처럼, 흠 없는 사람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삶을 더 고단하게 만든다. 성경 또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로마서 3:10)고 선언하며 인간의 불완전성을 직시하게 한다.
인간의 흠결과 그 이중성
흠의 다양한 모습
흠은 신체적 결함일 수도 있고, 언행의 습관일 수도 있으며, 성격이나 태도에서 비롯되거나 관계 속에서 불협화음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흔히 우리는 자기 흠에는 관대하면서도 남의 흠에는 민감하다.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만 본다”(마태복음 7:3)는 구절은 이를 잘 드러낸다. 또한 중국 고사 기인지우(杞人之憂)처럼 남의 작은 흠을 불필요하게 확대 해석하는 것도 흔한 모습이다.
흠에 대한 이중적 태도
자신의 흠을 알게 되면 어떤 이는 이를 고치려 노력하고, 또 어떤 이는 알면서도 방치한다. 타인의 흠에 대해서도 어떤 이는 수용과 관용으로 대응하지만, 또 다른 이는 갈등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알렉산더 포프의 명언, “인간은 실수할 수 있으나, 용서할 때 위대해진다(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는 타인의 흠을 관용으로 품을 때 관계가 성숙해짐을 일깨운다.
흠결에 대한 사회적 접근
사회심리적 접근
긍정적 낙관적 태도는 관용과 무관심을 통해 관계를 원만하게 하지만, 부정적 비관적 태도는 민감함과 불관용으로 갈등을 만든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는 말씀은 긍정적 접근의 지혜를 전한다.
사회학습론적 접근
자기 성찰과 타인의 모범을 통한 학습은 흠을 줄이는 길이다. 상호 학습은 사회 구성원 간 신뢰를 형성한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언 13:20)는 교훈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회구조론적 접근
개인의 흠결은 맡은 지위와 역할에서 드러난다. 지위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못하면 비판이 뒤따르지만, 지위와 역할은 보완할 수 있다. 때로는 ‘역할극’을 통해 흠결을 찾아 고치고 줄일 수도 있다.
“군자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엎기도 한다”(순자)는 말은 사회적 책임의 무게를 상징한다.
사회갈등론적 접근
흠결은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때 조정과 협상을 통한 타협이 필요하다.
“양보하면 싸움 없다”, “한 발 물러서면 백 배 이익이다”라는 속담처럼 갈등은 조정될 때 성숙한 관계로 이어진다.
정치적 교환거래 접근
사회적 차원에서 흠결은 이해관계의 교환을 통해 보완되기도 한다. 공정한 교환은 서로의 부족을 채우는 방식이 된다. “교환이익(交易利益)”은 이러한 사회적 상호보완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특별히 우리의 정치권에서 정치적 교환거래 접근으로 국민을 이롭게 하고 국가를 흥하게 할 때이다.
흠결을 바라보는 지혜
흠결은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이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무게가 달라진다.
첫째, 자신의 흠을 인정하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I know that I know nothing)”는 말은 자기 한계 인식의 지혜다.
둘째, 타인의 흠을 품어내는 관용이 중요하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베드로전서 4:8)는 말씀은 인간관계의 근본적 지혜를 보여준다.
셋째, 흠을 통해 배우는 성찰이 필요하다. 실패와 결점은 성장의 발판이 된다. 공자의 “과실을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된 과실이다”라는 말은 이를 잘 설명한다.
결론과 제언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은 없다”는 명제는 인간 본성의 불완전성을 전제로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불완전성 속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이다.
흠을 숨기기보다 인정하고, 타인의 흠을 비난하기보다 품으며, 흠을 계기로 성찰할 때 인간관계는 깊어지고 사회는 성숙해진다.
“완전함을 추구하기보다 불완전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지혜다”라는 교훈을 오늘의 인간관계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최근 필자는 「이성근 교수의 인생사색 4·5·6·7권」을 교보문고의 퍼플(Purple)과 이 퍼틀의 플랫폼을 통해 출간하였다. 그 과정에서 ‘세상에는 공짜도, 비밀도, 영원도, 그리고 정답도 없다’는 세무사고(世無四考)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글을 쓴 바 있다. 이어서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그 생각이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세무오고(世無五考)로 확장된 셈이다. 이번 글은 추후 개정판에 수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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