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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 삶의 태도 전환을 위한 생태적 은유:경쟁에서 수용으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삶의 전환은 이동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이 글에서 사용하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는 표현은 특정 집단을 단순화하거나 낮추기 위한 비유가 아니다. 이는 주어진 조건을 거부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삶을 지속해 온 자연의 생존 방식을 통해, 고은층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설명하기 위한 생태적 은유이다. 이 비유의 초점은 대상의 수준이나 우열이 아니라, 환경을 대하는 방식에 있다.

우리 속담에서 이 말은 흔히 분수를 지키라는 교훈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신의 생리와 환경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통해 생을 이어 가는 지혜가 담겨 있다. 송충이는 바깥의 먹이를 탐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 맞는 솔잎을 받아들이고, 제한된 조건 안에서 생존을 지속한다. 이는 체념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판단이다.

고은층의 삶 또한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끊임없이 환경을 바꾸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나이와 건강, 관계의 폭, 경제적 여건,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은 더 이상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전제가 된다. 이 전제를 젊은 시절의 기준으로 비교할 때 삶은 흔들리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조정할 때 오히려 안정이 생긴다. 삶의 중심은 외적 성취에서 내적 안정으로, 더 많이 이루는 삶에서 더 흔들리지 않게 살아내는 삶으로 이동한다. 삶은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태도 속에서 살아진다.

고은층의 경제는 성장보다 유지의 질서에 가깝다

고은층에게 경제는 더 이상 성장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의 경제가 성취와 확장을 통해 의미를 가졌다면, 고은층의 경제는 생활을 안정적으로 이어 가기 위한 유지와 조절의 질서에 가깝다. 무리한 소득 추구나 과도한 자산 증식은 여유를 늘리기보다 오히려 삶의 리듬을 깨뜨리고 불안을 키운다.

체력과 시간, 소비 규모에 맞지 않는 경제 활동은 고은층의 삶을 다시 경쟁의 장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더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의 생활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가이다. 소유를 목적이 아니라 생활의 도구로 인식할 때, 경제는 불안의 원천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많음이 아니라 적당함이 고은층의 경제를 단단하게 만든다.

몸과 관계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조건이다

고은층의 건강은 젊음을 회복하거나 특정 수치를 달성하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의 리듬을 무너지지 않게 이어 가는 지속성이다. 지나친 관리와 통제는 오히려 몸을 긴장시키고 삶을 피로하게 만든다. 걷기나 가벼운 놀이처럼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움직임이 고은층의 몸에 가장 적합한 회복의 방식이 된다.

관계 또한 다르지 않다. 가족과 이웃, 오래된 인연 속에서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는 관계를 소모시킨다. 고칠 수 없는 차이를 인정하고 기대의 높이를 낮출 때 관계는 오히려 안정된다. 몸과 관계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조율하며 살아가야 할 조건이다. 몸이 편안해질수록 마음은 느긋해지고, 관계가 안정될수록 삶은 더 자유로워진다.

비교를 멈출 때 삶의 속도가 회복된다

고은층의 삶의 질은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보다, 어떤 속도로 살아가는가에 더 크게 좌우된다. 과도한 일정과 끊임없는 비교는 삶을 조급하게 만들고 방향을 흐리게 한다. 고은층의 삶에는 의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아무 목적 없이 머무는 시간과 공간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자연과 이웃, 지역의 리듬을 일상의 기준으로 받아들일 때 삶은 안정된다. 비교를 내려놓으면 공간은 성취의 무대가 아니라 쉼과 관계의 터전이 된다. 이 태도는 고은층의 삶을 평온과 평화로 이끄는 기본 조건이 된다.

수용은 포기가 아니라 가장 적극적인 선택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는 말은 조건을 탓하지 않고 조건 안에서 살아내는 생존의 철학을 담고 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진다. 고은층의 일과 경제, 건강과 관계, 시간과 환경은 이미 주어진 조건이다.

이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품고 조절하며 살아갈 때 삶은 오히려 단단해진다. 수용은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가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인식한 뒤 선택하는 가장 적극적인 자세이다. 속도를 늦출수록 삶은 더 선명해지고, 환경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삶을 평온하게 만든다. 그 평온은 곧 고은층 삶의 온전함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고은층에게 가장 현실적이며 지속 가능한 삶의 방향성이다.

그림. 홍우흠 영남대 명예교수. 추사 김정희 선생 유배 거소 전경. 서귀포시  대정읍 소재. 2026.1.28.

사진. 추사의 세한도가 모델이 된 소나무: 岁寒然後,知松柏之节。 추사선생이 유배시절 제주 관찰사의 도움을 받아 대정읍 향교에서 그곳 주민의 자제들을 가르쳤던 곳임.

사진 2, 3은 서귀포시 중문에 거주하는 이해두 대구대 명예교수님이 보내온 것임. 2026.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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