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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의 일상에서 만난 솔잎과 거두절미의 지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식탁에서 드러난 고은층의 삶의 태도

최근 80대 중후반의 품격 있는 고은층 교수 부부와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건강 비결보다 더 깊이 남은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일상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홍 교수님께서는 유학 시절, 학업과 한국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생긴 변비를 솔잎 가루로 다스렸던 경험을 담담히 들려주셨다. 이후 지금까지도 솔잎 가루를 상복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몸과 삶을 대하는 고은층 특유의 절제된 실천으로 다가왔다.
이야기에는 “그때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내 몸에 맞아 계속한다”는 단순한 경험의 담백함이 고은층 삶이 지닌 신뢰의 깊이를 보여 주었다.

젊은 날의 쑥과 지금의 솔잎이 이어 주는 기억

홍 교수님의 솔잎 이야기를 들으며 필자는 이십 대 초반의 한 봄날을 떠올렸다. 갑작스러운 위장 통증으로 고생하다가, 들에서 뜯은 봄쑥을 짜 두세 번 마신 뒤 씻은 듯이 회복되었던 기억이다.
그 경험은 이후 오랫동안 쑥에 대한 신뢰로 남았고, 정년 이후에는 매년 이른 봄이면 쑥을 뜯어 쑥떡을 만들어 아침 식사로 먹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서귀포에서 지낸 지난 삼 년 반 동안 쑥떡은 고구마와 함께 거의 아침 식사의 주식이 되었다.
이는 특별한 건강식을 의도한 선택이라기보다, 계절과 몸의 리듬에 순응한 자연스러운 생활의 연장이었다. 이번 솔잎 이야기는 그러한 기억의 흐름 위에서 또 하나의 일상적 실천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솔잎을 고르는 기준에 담긴 절제의 윤리

홍 교수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솔잎 섭취의 첫 번째 원칙은, 무엇을 더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피할 것인가에 가까웠다. 해송이 가장 좋다고는 하나 특정 품종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재 목적으로 농약을 뿌린 나무나 재선충 피해를 입은 소나무는 반드시 제외해야 한다는 주의가 있었다.
이 기준에서 고은층의 선택은 늘 ‘추가’가 아니라 ‘배제’에 놓여 있다. 이는 건강을 위한 판단이면서 동시에 자연을 대하는 윤리이기도 하다. 몸에 좋다는 이유로 아무것이나 취하지 않고, 자연의 상태와 환경의 맥락을 함께 고려하는 태도는 고은층 삶의 중요한 판단 방식임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채취와 손질에 담긴 거두절미의 실천

솔잎은 봄에 새로 난 연한 잎을 고르되, 가지를 훑어 채취한다. 여러 차례 물이나 식초로 깨끗이 세척한 뒤, 솔잎 머리를 고무줄로 동여 맨 다음 끝과 머리를 과감히 잘라 낸다. 이어 가위나 칼로 잘게 써는 것이 기본 방식이다.
이 단순한 조리 과정에는 불필요한 것을 남기지 않는 고은층의 생활 철학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특히 이 과정을 두고 홍 교수님께서 ‘거두절미(去頭截尾’라는 말을 꺼내셨을 때, 한문교육을 전공한 학자의 지식이 책 속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손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보는 듯했다. 배움이란 결국 삶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만드는 기술임을 새삼 느끼게 했다.

보관과 복용에 드러난 고은층의 조절과 절제, 그리고 지속

잘게 썬 솔잎은 병에 담아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하되, 곧 먹을 분량은 냉장칸에, 오래 둘 것은 냉동칸에 나누어 둔다. 복용은 아침 식사 전 공복에 작은 티스푼으로 한 숟가락을 찬물과 함께 먹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였다. 이 설명은 고은층의 삶에서 리듬과 지속이 중요하다는 점을 전하고 있다.
몸의 반응을 살피고 이상이 있으면 멈추며, 괜찮으면 개인의 상태에 맞게 매일 또는 이틀, 사흘에 한 번으로 조절해 간다. 이는 삶 전반을 관통하는 고은층의 조절과 절제, 그리고 지속을 잘 보여 준다.

고은층의 몸과 도시 생활의 조건

홍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솔잎의 효능은 무엇보다 변비 개선에 있었다. 이는 고은층이 먹는 양에 비해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배변에 어려움을 겪기 쉬운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도시에서 생활하는 고은층일수록 걷는 양과 자연 접근이 적어 이러한 문제가 더 빈번해진다.
이 점에서 솔잎 이야기는 단순한 민간요법을 넘어, 고은층 삶의 구조적 조건을 돌아보게 한다. 고은층의 건강은 새로운 약을 더하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속도와 움직임, 자연과의 접근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거두절미의 언어는 음식에서 삶으로

솔잎의 끝과 머리를 자르는 ‘거두절미’는 단지 조리 기술이 아니라, 고은층이 삶을 정리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가 된다. 이미 충분히 살아온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택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판단력이다. 더 많은 말이 아니라 핵심만 남기는 태도이다.
관계에서도, 일상에서도, 건강 관리에서도 고은층의 지혜는 늘 욕심을 경계하고 적절함을 지키는 데 있다. 솔잎 한 숟가락은 그 절제의 상징이자 일상 속 작은 실천의 단위라 할 수 있다.

자연을 약이 아닌 동반자로 대하는 태도

솔잎은 차로, 가루로, 밥이나 콩가루와 함께, 혹은 발효액이나 캡슐로도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고은층의 선택은 늘 가장 단순한 방식에 머문다. 자연을 기능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오랫동안 곁에 두고 관계를 맺는 대상으로 대한다는 점에서 현대적 건강 담론과는 다른 결을 지닌다.
몸이 차거나 소화력이 약한 경우, 철분 결핍이나 임신 상태에서는 피해야 한다는 주의 역시, 고은층의 실천이 맹목적 신념이 아니라 몸의 신호를 존중하는 태도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고은층이 남기는 가장 간명한 교훈

홍 교수님의 솔잎 이야기는 단순히 건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배움이란 결국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일상 속에서 쓸모 있게 실천할 때 완성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주는 시간이었다.
고은층의 지혜는 늘 말보다 행동에, 이론보다 습관에, 성과보다 태도에 남아 있다. 솔잎처럼 작고 소박한 선택 하나가 하루를 바꾸고, 그 하루들이 모여 인생의 결을 만든다. 거두절미는 고은층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가장 간결한 삶의 문장일지도 모른다.

사진. 이성근. 한림 금능 근석농장의 자생 소나무와 솔잎. 20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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