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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갈등을 관리하는 정부가 유능한 정부다: 계획유형화 이론으로 본 공공갈등관리의 의미와 과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갈등의 시대, 왜 공무원에게 갈등관리 역량이 필요한가?

오늘날 우리는 불확실성과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의 공존,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와 재난의 일상화, 저출생과 고령화, 지역소멸 위험, 그리고 시민의 권리의식 증대는 사회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고 국민이 수용하는 방식이 가능했지만, 오늘날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정책 과정에 참여하며 서로 다른 가치와 요구를 표출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 행정의 핵심 과제는 단순히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데 있다.
특히 공공정책은 필연적으로 이해관계의 충돌을 수반한다. 도시개발, 환경보전, 교통시설 건설, 복지정책, 교육정책, 에너지정책 등 어느 분야 하나 갈등에서 자유로운 영역이 없다. 이제 갈등은 행정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중요한 정책 자원이 되었다. 따라서 공무원은 정책집행자이면서 동시에 갈등관리자이고 협상가이며 소통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갈등은 왜 발생하는가?

갈등은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갈등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해관계, 정보의 비대칭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효율성과 성장이라는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비교적 높았기 때문에 갈등의 규모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환경과 개발, 성장과 복지, 효율성과 형평성, 중앙과 지방,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가치가 충돌하면서 갈등의 양상도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가 성숙할수록 갈등은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시민들이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등의 존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갈등은 사회문제를 드러내고 새로운 대안을 찾게 하는 긍정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K. Christensen의 계획유형론과 갈등관리

미국 버클리대학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의 K. Christensen 교수는 1983년 현대사회의 불확실성을 설명하기 위해 계획유형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목표에 대한 합의 여부와 문제 해결 수단의 확실성 여부를 기준으로 계획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는 합리적 계획이다. 목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고 해결 방법도 비교적 명확한 경우이다. 이 경우 정부는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하며 공무원은 분석가와 관리자 역할을 담당한다. 예산편성이나 행정서비스 개선과 같은 업무가 대표적 사례이다.
두 번째는 사회학습적 또는 협업적 계획이다. 목표에는 합의가 있으나 해결방법이 불확실한 경우이다. 기후위기 대응이나 인공지능 활용 정책처럼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나타난다. 이 경우 공무원은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학습하고 협력하면서 해답을 찾아가는 촉진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세 번째는 갈등관리 및 조정협상적 계획이다. 기술적 해결방법은 존재하지만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이다. 현대 공공갈등의 대부분은 여기에 속한다. 쓰레기 처리시설 입지, 국방시설 설치, 신공항 건설, 송전탑 설치, 도시재생사업 등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이해관계자 간 목표와 가치가 충돌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술적 정답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이다. 이때 공무원은 협상가, 조정가,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네 번째는 확률적 계획이다. 목표도 불분명하고 해결방법도 명확하지 않은 혼돈 상태를 의미한다. 대규모 재난이나 전례 없는 사회위기 상황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는 질서를 발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공공갈등관리의 핵심은 조정협상적 계획이다

현대 행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계획유형은 조정협상적 계획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공공갈등은 기술 부족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충돌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주민들은 환경보전을 원하지만 동시에 경제발전도 원한다. 지방정부는 지역발전을 원하지만 주민들은 생활환경 악화를 우려한다. 중앙정부는 국가적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지역사회는 지역의 희생을 우려한다. 이처럼 각자의 입장은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승리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갈등관리의 목표는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이익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론화, 주민참여, 숙의민주주의, 협력적 거버넌스와 같은 새로운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공무원은 법과 제도만을 집행하는 행정가가 아니라 이해관계자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정책 자체보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능한 공무원은 갈등관리 전문가이다

불확실성과 다양성의 시대에는 공무원에게 새로운 역량이 요구된다. 과거의 행정이 규정과 절차를 준수하는 능력을 중시했다면, 오늘날의 행정은 소통과 협력의 능력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한다.
첫째, 소통 역량이 필요하다. 갈등의 상당 부분은 정보 부족과 오해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정책의 목적과 내용을 이해관계자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고 경청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둘째, 협상 역량이 필요하다. 모든 정책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이해관계자들이 수용 가능한 대안을 찾아가는 협상 능력이 필요하다.
셋째, 조정 역량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넷째, 협업 역량이 필요하다. 정부 혼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이다. 시민사회, 기업, 전문가, 지역주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생산 역량이 중요하다.
다섯째, 미래 대응 역량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기후위기, 인구감소와 같은 새로운 문제는 과거의 경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끊임없이 학습하고 혁신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갈등을 기회로 바꾸는 행정문화

갈등관리 역량은 특정 부서만의 업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획부서나 감사부서, 민원부서만의 역할도 아니다. 모든 공무원이 갈등관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갈등을 회피하거나 억누르는 문화에서 벗어나 갈등을 문제해결의 기회로 인식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또한 행정의 성과를 단순한 사업 추진 실적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 형성과 갈등 감소 수준까지 포함하여 평가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미래 행정은 계획과 갈등관리, 그리고 소통이 결합된 형태로 발전해야 한다. 계획 없는 행정은 방향을 잃고, 소통 없는 계획은 저항을 낳으며, 갈등관리 없는 정책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맺음말
갈등을 관리하는 정부가 신뢰받는 정부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순자는 "물이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라고 하였다. 국민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신뢰는 정부를 성공으로 이끌지만 갈등과 불신은 정책의 실패를 초래한다.
오늘날 정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불확실성과 다양성의 위기이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정부는 더 많이 듣고 더 깊이 소통하며 더 넓게 협력해야 한다. K. Christensen 교수가 제시한 계획유형론은 지금도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모든 문제를 하나의 계획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상황에 맞는 계획과 갈등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결국 유능한 정부는 정책을 많이 만드는 정부가 아니라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정부이다. 그리고 유능한 공무원은 지시와 통제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합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가장 강력한 힘은 기술도 제도도 아닌 신뢰이며, 신뢰는 결국 소통과 갈등관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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