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등을 협력으로 바꾸는 힘:
군공항 입지와 환경변화, 군무원이 알아야 할
갈등관리와 원칙중심 협상"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갈등의 시대, 군무원에게 필요한 새로운 역량
오늘날 군공항을 둘러싼 환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군사적 임무 수행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공존, 주민과의 소통,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 환경문제와 소음문제 해결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군공항 이전 문제, 소음 피해 보상, 군사시설 보호구역 지정, 지역개발사업과 군사시설의 조정 문제 등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대표적인 공공갈등의 영역이다. 이러한 시대에 군무원은 단순히 규정을 집행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조정자이자 협상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갈등을 회피하거나 억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갈등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필수적인 직무역량이 되고 있다.
갈등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갈등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따라서 갈등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현대 행정학과 조직이론은 갈등을 조직발전과 혁신의 원동력으로 이해한다. 갈등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지 못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군공항과 관련된 여러 정책 역시 주민, 지방정부, 군, 중앙정부,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힘으로 억누르거나 승패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갈등관리의 목적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데 있다.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라: 상대를 적이 아니라 문제해결의 파트너로 보라
『Getting to Yes』가 제시하는 첫 번째 원칙은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는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상대방을 문제 자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주민이 민원을 제기하면 주민이 문제가 되고, 기관이 반대하면 기관이 문제가 되며, 상대방의 태도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현안이다.
군공항 관련 갈등에서도 주민, 지자체, 군 당국, 중앙정부는 모두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라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이해관계자이다. 따라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적대시하기보다 왜 그런 입장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상대방의 감정과 체면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상대를 공격하면 방어가 시작되지만 문제를 함께 바라보면 협력이 시작된다. “당신이 문제다”라는 접근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이 문제다”라는 접근이 갈등해결의 출발점이다.
입장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집중하라: 왜 그렇게 주장하는가를 질문하라
두 번째 원칙은 입장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요구를 강하게 주장하지만 그 요구의 이면에는 실제 필요와 욕구가 존재한다. 협상은 표면적 요구를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이해관계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Getting to Yes』에서 소개하는 유명한 오렌지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두 사람이 오렌지 하나를 놓고 다투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껍질이 필요했고 다른 사람은 과육이 필요했다. 만약 서로의 입장만 주장했다면 갈등은 계속되었겠지만 실제 필요를 확인한 결과 두 사람 모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군공항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주민들은 단순히 군공항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 건강, 생활환경, 재산권 보호를 원할 수 있다. 군은 단순히 시설 유지가 아니라 국가안보와 임무 수행을 추구한다. 지방정부는 지역발전과 주민복리를 원한다. 이처럼 각자의 입장 뒤에 있는 진정한 이해관계를 파악하면 새로운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갈등은 주장과 주장의 충돌이 아니라 이해관계와 이해관계의 조정 과정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상호이익이 되는 선택지를 개발하라: 파이를 나누기 전에 먼저 파이를 키워라
세 번째 원칙은 상호이익이 되는 선택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많은 협상은 제한된 자원을 놓고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가를 놓고 진행된다. 그러나 원칙중심 협상은 승패를 결정하는 경쟁이 아니라 모두가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창조적 과정이다.
군공항 관련 협상에서도 단순히 찬성과 반대의 구도로 접근하면 해결이 어렵다. 대신 소음 저감 사업, 주민지원사업, 지역개발사업, 교육·문화시설 지원, 환경개선사업, 공동협력 프로그램 등 다양한 선택지를 함께 검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론을 서둘러 정하지 말고 다양한 대안을 충분히 탐색하는 것이다.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가능한 선택지를 많이 만들어 낼수록 상호 만족 가능한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원칙중심 협상은 “누가 이길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하면 모두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것이 바로 파이를 나누기 전에 먼저 파이를 키우라는 의미이다.
객관적 기준에 근거하라: 힘보다 공정성이 설득력을 만든다
네 번째 원칙은 객관적 기준에 근거하는 것이다. 갈등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방식은 힘이나 권한으로 상대를 설득하려는 것이다. 힘에 의한 해결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지속적인 수용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군공항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 역시 객관적 기준을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 법률 규정, 환경기준, 소음 측정자료, 전문기관 연구결과, 감정평가, 보상기준, 국내외 사례 등은 모두 중요한 객관적 기준이 된다. 협상 과정에서 “누가 더 강한가”를 논쟁하는 대신 “어떤 기준이 공정한가”를 논의해야 한다.
공정성은 신뢰를 만든다. 신뢰는 협력을 만든다. 결국 객관적 기준은 갈등을 줄이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BATNA를 준비하라: 협상이 결렬될 경우의 최선의 대안을 확보하라
『Getting to Yes』의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이다. 이는 협상이 결렬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의미한다.
좋은 협상가는 상대를 압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준비한 사람이다. BATNA가 강할수록 협상력도 높아진다. 반대로 대안이 없는 사람은 불리한 조건이라도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군공항 관련 갈등관리에서도 BATNA는 중요하다. 다양한 대체 방안과 대응 시나리오를 사전에 검토하면 감정적 대응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무엇을 양보할 수 있고 무엇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BATNA는 협상 결렬을 준비하는 수단이 아니라 보다 합리적인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안전장치이다.
원칙중심 협상이 만드는 군 조직의 미래: 대립에서 협력으로, 승패에서 상생으로
『Getting to Yes』가 제시하는 협상철학은 단순한 협상기술이 아니다. 이는 갈등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변화시키는 사고방식이다. 대립적 협상에서 문제해결형 협상으로, 힘의 논리에서 원칙 중심 협상으로, 양보 경쟁에서 상호이익 창출로, 감정적 대응에서 객관적 판단으로, 승패 구조에서 윈윈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군 조직과 군공항을 둘러싼 다양한 갈등 역시 이러한 철학을 적용할 때 보다 건설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주민과 군이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지역발전과 국가안보라는 공동목표를 함께 실현하는 협력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지방정부와 군 역시 경쟁적 관계가 아니라 공동문제를 해결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맺음말
협상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군무원의 업무는 단순한 행정집행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지역사회와 국가를 연결하는 공공서비스 활동이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갈등을 관리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Getting to Yes』는 그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고, 입장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집중하며, 상호이익이 되는 선택지를 개발하고, 객관적 기준에 근거하여 판단하며, BATNA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결국 협상의 목적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진정한 승자는 상대를 패배시킨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군공항 시대의 군무원에게 필요한 것은 권한 중심의 관리자가 아니라 갈등을 협력으로 전환시키는 원칙중심의 협상가이다. 그것이 조직의 신뢰를 높이고 지역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며 국가와 국민을 함께 발전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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