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초고령·복잡계 사회를 살아가는 고은층의 다섯 가지 삶의 철학: 불확실한 시대를 품격 있게 살아가는 지혜 (1)"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시대가 복잡할수록 삶의 원칙은 더욱 단순해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사고와 노동의 방식을 바꾸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은 일상의 모습까지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생태계와 산업구조를 흔들고, 인구절벽과 초고령사회는 국가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다시 묻고 있다. 여기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국제질서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오늘의 사회는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학자들은 이러한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부른다. 또한 수많은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기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회를 복잡계 사회라고 설명한다. 이제는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만을 낳는 단순한 사회가 아니다. 작은 변화 하나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고, 과거의 성공 방식이 미래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판단의 질이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보다, 복잡한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더욱 중요해졌다.
심리학자 이고르 그로스만은 현명함을 '명확한 정답이 없는 복잡한 상황에서 건전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정의는 오래전부터 동서양의 철학이 강조해 온 삶의 지혜와도 서로 통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아는 사람만이 참된 배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고, 공자는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삶의 근본으로 삼았다. 성경 또한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잠언 4:7)고 권면한다. 시대가 달라져도 지혜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러한 시대일수록 고은층이 사회의 가장 성숙한 세대로서 새로운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은층은 단순히 연령이 높은 세대가 아니다. 오랜 세월의 경험을 통하여 삶의 깊이를 얻고, 그 지혜를 사회와 다음 세대를 위하여 나누는 사람들이다.
오늘의 고은층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회상하는 삶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삶이다. 필자는 이러한 삶의 방향을 다섯 가지 철학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곧 학습형, 유연형, 융합형, 인본형, 후생형 고은층이다. 이 다섯 가지는 서로 다른 유형이 아니라, 인생 후반기로 갈수록 점차 성숙해 가는 삶의 여정이며, 복잡한 시대를 품격 있게 살아가기 위한 다섯 단계의 지혜이기도 하다.
학습형 고은층(勤學務實):
배움을 멈추는 순간 성장은 끝난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는 모든 배움의 출발점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
심리학자 조엘 웡은 현명한 사람의 첫 번째 특징으로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을 제시하였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배우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은 평생 성장한다.
AI 시대에는 정보가 넘쳐난다. 필요한 자료는 몇 초 만에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기계는 정보를 제공할 뿐, 그것을 삶의 지혜로 바꾸어 주지는 못한다. 정보를 지혜로 만드는 힘은 배우려는 태도와 성찰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필자는 이러한 삶을 학습형 고은층이라 부른다.
학습형 고은층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배움을 끝내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독서를 생활화하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오랜 경험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다. 반복하여 배우고, 실천하며, 배운 것을 삶 속에서 체화한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강조해 온 근학무실(勤學務實)도 바로 이러한 철학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배운 것을 실천으로 연결할 때 지식은 지혜가 되고, 경험은 삶의 자산이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우는 사람이 미래를 가진다."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는 『논어』 첫머리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배움은 시험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쁨이며, 인생을 새롭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고은층에게 평생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유연형 고은층(悠悠自作):
생각이 유연할수록 인생은 더욱 넓어진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경험은 많아지지만, 생각은 오히려 굳어질 위험도 커진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라는 확신은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닫게 만든다.
조엘 웡은 현명한 사람의 두 번째 특징으로 유연한 사고를 제시하였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자신의 생각만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시대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라고 하였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결국 바위를 깎는다. 유연함은 약함이 아니라 가장 강한 생존의 지혜이다.
오늘의 고은층에게도 이러한 유연성이 필요하다. 스마트폰과 AI를 배우고, 젊은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며, 다른 생각과 다른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유연함은 자신의 신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 앞에서 더 나은 길을 선택하는 용기이다.
필자가 말하는 유유자작(悠悠自作) 역시 이러한 철학을 담고 있다. 조급함에 흔들리지 않고 시대의 변화를 여유롭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품격 있게 만들어 가는 태도이다.
대나무는 거센 바람 앞에서 몸을 낮추기에 꺾이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유연한 사람은 변화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변화를 자신의 성장으로 바꾸어 낸다.
복잡한 시대에는 가장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잘 배우고 가장 유연하게 변화하는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진정한 고은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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