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성경구절과 명언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사무엘상 16장 7절 “겸손하게 배우면 누구든지 나의 스승이 된다.”/공자 “지혜는 영혼의 눈으로 진리를 바라보는 것이다.”/플라톤 “사람 안에 있는 빛을 보아라. 그것이 그 사람의 영혼이다.”/톨스토이
우리는 흔히 ‘계획’이라는 단어를 공공정책이나 개인의 장기 목표처럼 거창한 맥락에서 떠올린다. 그러나 계획은 훨씬 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오늘의 식사 선택에서부터 인생의 방향 설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수많은 계획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계획의 본질과 구조를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놀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은층이 즐기는 파크골프이다.
파크골프는 단순한 스포츠처럼 보이지만, 한 홀을 치기 위한 판단과 실행의 흐름은 삶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이 글은 합리적 계획이론의 4단계 9국면을 파크골프에 적용하여, 전략적 사고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지를 조망하고자 한다.
계획은 생각하고 실행하며 성찰하는 순환의 기술이다
계획은 전통적으로 ‘행동 이전의 지적 과정’으로 이해되어 왔다. 또한 계획(計劃)의 구성적 의미로 ‘계(計)’는 사고와 미래 예측을, ‘획(劃)’은 조절과 통제를 의미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계획은 단순히 목표를 설정하는 단계를 넘어서, 실행과 결과의 평가, 그리고 이를 다음 행동에 반영하는 ‘환류(feedback)’까지 포함하는 순환적 사고 체계로 진화하였다. 결국 계획이란 ‘계획–실행–평가–환류’라는 역동적인 흐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파크골프는 이 흐름을 실천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대표적 활동이다.
파크골프는 합리적 계획과정과 인생 여정을 닮아 있다
합리적 계획이론은 총 4단계 9국면으로 구성되며, 파크골프는 이 구조를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장이 된다.
1단계는 목표 설정 (1~3국면) 과정이다
1국면은 일반적 목표 설정 과정으로, 전체 코스를 고려한 경기 전략을 구상하는 단계다. 단순히 한 홀의 성공이 아닌, 흐름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핵심이다. 2국면은 수요 평가 단계로, 날씨, 바람, 지형, 잔디 상태, 컨디션 등 외적 내적 요인을 점검하여 현실성을 판단한다. 3국면은 구체적 목표 설정 과정이며, 각 홀마다 공을 어느 방향으로 어떤 세기로 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구체화한다. 셋업, 루틴, 샷 준비 등에서 이 전략은 가시화된다.
2단계는 행동 대안 설정과 선택 (4~6국면) 과정이다
4국면은 행동 대안의 모색 과정으로, 다양한 경로와 방식 예컨대, 좌측 경사면을 활용하거나 직선 고탄도 샷을 선택할지를 고려한다. 5국면은 행동 대안의 사전 평가 과정이며, 각 대안의 리스크와 성공 가능성을 분석하는 단계다. 바람, 장애물, 실수 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6국면은 행동 대안의 선택 과정이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최적의 전략을 선택하되, 지나친 계산보다는 직관과 경험을 함께 활용한다.
3단계는 계획의 실행 (7국면) 과정이다
7국면은 선택된 계획의 실행 과정으로, 티샷, 어프로치, 퍼팅 등 실제 행동이 이루어지는 단계다. 이때 집중력과 감정 조절, 기술이 함께 작동하며, 계획은 실천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모니터링과 조절이 중요하며, 이를 ‘과정관리’라고 한다.
4단계는 실행 결과의 평가 및 환류 (8~9국면) 과정이다
8국면은 실행 결과에 대한 평가 과정으로, 샷 결과를 분석하고 전략의 적절성을 되짚는다. 단순한 점수 평가를 넘어, 선택과 실행 전반에 대한 통합적 평가가 필요하다. 9국면은 실행 결과의 환류 과정으로, 평가 내용을 다음 홀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잘된 전략은 반복하여 내재화하고, 미흡한 부분은 보완하여 다음 계획에 적용한다. 이러한 환류의 반복이 실력을 정교화하고 자기 성장을 이끈다.
파크골프는 계획을 통한 성찰과 성장의 장이다
파크골프는 단순한 고은층의 여가 활동을 넘어, 전략적 사고와 자기 성찰의 훈련장이 된다. 매 홀마다 반복되는 계획과 실행, 평가 및 환류의 구조는 일상 속 문제 해결과 동일한 흐름을 갖는다. 어떤 이들은 실수를 운으로 돌리지만, 원인을 분석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이들은 실력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도 성숙해진다.
전략적 파크골퍼는 곧 전략적 삶의 주체자이다. 파크골프는 오늘의 전략이 내일의 결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며, 이는 곧 인생의 흐름과도 닮아 있다. 판단력, 감정 조절, 경험의 환류가 한 게임 안에 농축되어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자기 성찰과 자기 연마가 이루어진다.
결론적으로, 파크골프는 삶을 닮은 놀이이다
계획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자체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파크골프에서 익힌 전략적 사고와 환류적 습관은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결국 파크골프에서의 한 샷, 한 선택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질문이며 성찰의 반복이다. 이러한 반복은 삶의 품격을 높이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파크골프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진지한 훈육과정이 된다.
"품격 있는 관계는 믿고 지겨주며 참아내는 깊은 사랑과 성령의 열매를 닮은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부모, 부부, 친구는 관계의 시작이다
“부모는속아주고, 부부는 지켜주며, 친구는 참아내는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은 인간관계에서 요구되는 본질적인 덕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정작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고, 지금 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그 아쉬움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부모는 자녀의 가능성을 믿으며, 인내로 키우는 소망의 신념이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실망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알면서도 모른 척 감싸주는 ‘속아줌’은 조건없는 신뢰이자 오래 참음과 사랑의 실천이다.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7절은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가르친다.
부모의 속아줌은 포기가 아니라, 인내로 키우는 소망의 신념이다.
부부는 삶을 동행하는 믿음의 동반자이다
‘지켜준다’는 것은 막아주고 품어주는 충성과 진실함을 뜻한다. 갈등이 있어도 “이 사람은 여전히 내 편”이라는 신뢰를 잃지 않는 믿음이 부부의 핵심이다.
마틴 루터 킹은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변화 가능성을 믿고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부가 서로를 지켜주는 것은 충성과 절제, 온유와 화평으로 미래를 함께 창조하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우정은 ‘참아내는 관계’다
친구는 서로의 부족함을 품고, 오해와 갈등 속에서도 자비와 온유로 관계를 지켜간다.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하였고, 성경 로마서 12장 18절은 “가능하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가르친다.
우정은 조화를 넘어선 화평, 균형보다 깊은 자비의 태도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참음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며, 상호 존중 안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형제, 이웃, 스승과 제자는 삶의 울타리이다
형제자매는 혈연의 울타리이지만, 때로 오해와 상대적 박탈감으로 상처받기 쉽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을 잊는 긍휼’과 ‘과거를 묻지 않는 자비’이다.
“형제는 불편해도 남보다 낫다”는 속담처럼, 갈등을 넘어 화목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이웃은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중요하다.
“선을 넘지 말고 정은 남기라”는 말처럼, 절제와 온유, 신중함과 배려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유지되려면 적당한 거리 속에서 사랑과 신뢰가 자라야 한다.
사제지간과 직장 동료는 수직성과 수평성이 교차하는 관계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존경과 신뢰, 동료 사이에는 책임과 충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자는 “가르침은 본이 되어야 하며, 존경은 품격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하였고*1), 성경 마태복음 20장 26절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2)고 가르친다.
믿어주고, 지켜주며, 참아내는’ 세 가지 태도는 인간관계의 본질이자 성령의 열매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방식이다
부모는 자녀를 믿어주고, 부부는 서로를 지켜주며, 친구는 참아내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한다. 덕목은 서로 다르지만, 그 정신은 같다. 바로 상대를 향한 화평, 온유, 절제, 자비의 태도이다. 모든 관계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나는 관계를 위해 무엇을 수용하고, 무엇을 관용할 수 있는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처럼, 품격 있는 관계는 내가 먼저 건네는 말과 행동에서 시작된다.
현대 사회는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며 관계를 도구처럼 여긴다. 그러나 진정한 관계는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인내하는 마음, 그리고 절제되고 겸손한 태도 위에서 자란다.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이유는 단지 연결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살아가기 위해서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결국 사람다운 관계란 하나님의 품성을 따라 끝까지 사랑하려는 의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참고자료 1) 공자의 화이부동의 의미 공자는 ‘다름을 인정하되, 조화롭게 살자’는 철학적 균형의 미덕을 가르친다. 2) 로마서 12장 18절의 의미 로마서는 ‘화목을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라’는 윤리적 실천을 가르친다. 3) 차이점 따라서 공자는 이성적 균형을, 성경은 사랑과 희생의 감성적 실천을 통해 각각 화목을 바라보는 것이며, 동일한 조화의 목적을 향하지만 철학적 길과 신앙적 길에 차이가 있다.
교수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넘어, 지식의 실체를 인격으로 스며들게 하고, 가르침을 실천으로 이끄는 삶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길 위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가 바로 ‘내공충실(內功充實)’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실질적 습관이 곧 ‘훈육(訓育)’이다. 훈육 없는 삶은 성장 없는 삶이며, 내공 없는 가르침은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이 글은 38년간의 교수 인생을 돌아보며, 훈육과 내공충실이 교육자의 품격과 제자의 성장을 어떻게 함께 이끌어왔는지를 여섯 개의 흐름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교수의 시작은 훈육의 습관에서 비롯된다
교수의 길은 축적된 지식의 양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끊임없이 훈육하고, 학문을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태도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움은 타인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단련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 교육의 과정이다. 훈육의 습관이란,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배운 대로 살아가려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내공충실은 삶의 태도이자 지성의 내면화*다
내공충실이란 단순히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돌아보며 깊이를 더해가는 사색과 자기조절의 습관이며, 배움에 임하는 진지한 태도다. 나는 교수로서 매일 책을 펼쳐 시대와 학문, 삶을 연결하는 사고 훈련을 반복해 왔다. 특히 ‘지역개발’이라는 학문 분야는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개념과 정책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기에, 교육과정 개편이나 정부 정책 변화에 발맞춘 학문적 훈육은 필수적이었다. 진정한 내공이란 시대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원칙과 중심을 잃지 않는 신념의 힘이다.
훈육은 실천의 자세로 완성된다
교수란 직업은 강의실 안의 소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내공 있는 교수는 말한 대로 살아야 하고, 배운 대로 행동해야 한다. 나는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지적 일관성과 삶의 정직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왔다. 미국 일리노이대 국비 파견 연구교수 경험, 서울대 환경대학원 국내 교류교수 활동은 나에게 다양한 시야를 제공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수용하는 태도와 실천이 수반되어야 했다. 지역, 시대, 제도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정책과 학문적 흐름에 꾸준히 대응해온 과정이 곧 훈육의 자세였다.
외국어 습득과 학문 확장은 내공 다지기의 구체적 사례다
교수 인생에서 외국어 능력은 새로운 학문적 성장을 위한 핵심 도구였다. 유학 준비 시절의 집중적인 영어 학습, 이후 맥타카트 교수님이 운영한 회화 스터디 그룹, 외국어교육원의 영어회화반 참여, 외국인 교수들과의 개별 학습 등은 모두 훈육과 내공 충실의 실천이었다. 단지 언어능력 향상을 넘어, 타문화 이해, 학문 영역 확장, 사고의 유연성까지 함께 길러졌다. 이는 제자들에게도 글로벌시대의 범우주적 보편타당한 사고와 학문적 자세를 교육하는 기반이 되었다.
고요 속의 성찰은 내면의 성장을 가져온다
내공은 때로 고요 속에서 깊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고요한 시간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습관은 교육자에게 필수적인 내면의 훈육이다. 나 역시 격식이나 외적 성과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조용한 시간 속에서 어제를 환류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얻은 중요한 깨달음은 '지식은 인격으로 녹아들어야 비로소 진정한 교육이 된다'는 사실이다. 말보다 삶이, 생각보다 실천이 앞서야 한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늘 마음에 새기고자 했다.
내공은 교육자의 인격이며, 제자의 나침반이다
학생들은 교수의 말보다 교수의 삶의 태도를 더 오래 기억한다. 교육자의 인격은 제자의 삶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된다. 나는 제자들에게 완벽한 교수는 아니었지만, 늘 배우고 부지런하게 실천하는 사람으로 남고자 노력했다. 내공충실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다듬어가는 태도이다. 나는 지난 교수 인생의 여정을 ‘여송지성(如松之盛)’, 곧 ‘늘 푸르고 뿌리 깊은 소나무’처럼 흔들림 없는 내면의 힘을 지닌 삶의 정신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그런 삶을 통해 제자와 사회를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교육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나의 바람이며, 현재 진행형의 실천 과제이다.
결론적으로, 훈육의 습관은 내공충실의 출발점이며, 내공충실은 훈육의 결과이자 지향점이다
나는 지난 교수 인생에서 이 둘을 삶의 양 날개처럼 여겨왔다. ‘배워야 산다’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교수의 삶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하며 성찰하는 여정이며, 훈육과 내공은 그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등불 아래서 또 한 권의 책을 펼치고, 또 한 번의 사유를 이어가고 있다.
용어설명 David E. Apter는 정치발전과 관련된 이론에서 사회화(socialization),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그리고 내면화(internalization)의 개념을 구분하여 설명하면서, 특히 정치체계의 발전과 안정을 설명하는 데 이 세 개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였다. 다음은 이 세 개념의 정의와 상호 차이이다. 1) 사회화 (Socialization)는 개인이 사회의 가치, 규범, 태도, 행동양식을 학습하는 과정을 말한다. 키워드는 학습과정이다. "무엇을 받아들이는가?" 2)제도화 (Institutionalization)는 어떤 행동양식이나 가치가 사회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제도로 자리잡는 과정을 말한다. 키워드는 구조의 정착이다. "그것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가?" 3) 내면화 (Internalization)는 사회화나 제도화를 통해 학습한 가치나 규범이 개인의 신념체계 속으로 깊이 스며드는 것을 말한다. 키워드는 자발적 수용이다. "얼마나 진심으로 받아들였는가?" 4) 종합 Apter는 정치체계가 발전하려면 사회화 → 제도화 → 내면화의 순환과 축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단순히 규칙을 아는 것(사회화)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이 사회제도 속에 뿌리내려야 하며(제도화), 더 나아가 시민 개개인이 그 규범을 자발적으로 실천할 때(내면화) 정치적 안정과 정당성이 비로소 확보된다고 보았다.
나는 대학에서 38년간 교수로 재직하였다. 정년 전과 이후를 합치면 평생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한 셈이다. 이제 돌이켜보면,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부끄럽고 아쉬운 점이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절감하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은 참으로 미미하고, 모르는 것은 태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고 깊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서예가 초정 권창륜 선생께서는 나를 보고‘여송지성(如松之盛)’이라는 글을 즉흥적으로 써주셨고, 순총신학대학 유영희 전 총장께서도 나를'늘 푸른 소나무'에 비유하며 덕담의 글을 전해주신 일이 있다. 이 두 분의 격려는 내 삶의 정점에서 받았던 고마운 표징이자,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상징적 언어였다.
‘여송지성’ 소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란다는 이 말은 내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었다는 소망이며, 앞으로 후배 교수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한 내 인생의 표어이자 이상이다. 소나무는 사철 변함없이 푸르며, 꺾이지 않는 기개와 절조를 지닌 존재다.
나는 이 소나무의 상징 속에서 한 사람의 교수로서 지녀야 할 다섯 가지 삶의 방향을 떠올리게 되었다.
첫째는 내공충실(內功充實)이다. 겉보다 속이 깊어야 하고, 드러나는 언변보다 축적된 지식과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 교수는 지식을 가르치기 전에 배움의 태도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
둘째는 심지강건(心志剛健)이다.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시대의 조류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학문과 가치의 길을 꿋꿋이 걸어야만 진정한 교수로서의 자세를 지킬 수 있다.
셋째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이다. 겉으로는 부드럽되 내면은 단단해야 한다.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부드럽게 소통하면서도 교육적 원칙과 신념은 단호히 지켜야 한다.
넷째는 수분정도(守分正道)이다.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정도를 걸으며 교직자로서의 품격을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교수의 길이다.
마지막은 자중자존(自重自尊)이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절제하는 태도 없이는 결코 존경받는 교수로 설 수 없다. 이는 곧 타인의 존중을 이끌어내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나는 이 다섯 가지 덕목을 미리 계획하고 실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어느새 내 교수 인생의 축이 되어 있었고, 지금도 나를 이끌고 있는 가치들이다.
그래서 이 글을 시작으로 각 덕목에 대해 좀 더 깊이 성찰하고, 그것을 후배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내 교수 인생의 마무리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조용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늘 푸른 소나무"
유 영 희/ 전 순복음총회신학교 총장 · 목사 · 전 NCCK 대표회장
멀리서도 우뚝 서 보이는 늘푸른 소나무 저는 이성근 교수님을 그렇게 부릅니다. 저에게 보여진 교수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교수님과의 만남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몇 번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봄날의 소담하고 청량한 솔잎의 모습을 연상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학문이라는 한 길을 위해 혼신을 다하며 살아내신 교수님의 학자의 삶이 참으로 존경스럽고 소중한데, 벌써 정년이라는 인생의 매듭 하나를 묶으신다니 참으로 마음으로부터 존경의 인사를 보내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소나무는 애써 겨울을 견디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나무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려 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그 모든 시간을 서두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추위를 이겨내려고 대항하지 아니하고 몸으로 받아내고 견뎌냅니다. 그렇습니다. 소나무는 봄을 기다릴 줄 압니다. 소나무는 그 시간이 오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다 보니 추위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어려움을 견디다 보니 그 어려움이 인내의 열매가 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푸르른 초록빛을 고통에 넘겨주고 낙엽으로 쓰러져 가는 겨울나무와 달리 소나무가 늘 푸르른 이유는 바로 기다림을 통한 소망을 만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성근 교수님의 학자로서의 삶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가늠해 봅니다. 그 학자의 길을 걸어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멋져 보였습니다. 다시 한번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교수님! 더 완숙한 푸르름을 뿜어내시는 앞으로의 날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 소중한 지인으로부터 읽는 이성근 교수의 회상록. 2021. 1. 20. p. 386.
우리는 인생의 길목마다 뜻밖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교훈을 얻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말을 건네는 기회를 가지기도 한다. 오늘 제주공항 롯데리아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내게 그러한 시간이었다. 대구로 향하는 길목에서, 30대 초반의 부부와 함께 잠시 테이블을 나누게 되었고, 그들은 제주에서의 3박 4일 여행을 마치고 울산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짧게 나눈 대화 속에서 알게 된 그들의 삶은 근실하고 성실해 보였다. 아내는 지방의 한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은행에 근무하다 출산을 앞두고 육아휴직 중이었고, 남편은 케미컬 분야 대기업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훈훈한 미소와 겸손한 태도 속에서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 탑승을 위해 자리를 정리하던 그들이 문득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저희처럼 30대 초반의 부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생 교훈 하나만 말씀해 주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혹스러웠지만, 동시에 이 질문이 그들의 진지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자주 주례사에서 사용하던 ‘B.E.S.T.’ 네 글자 교훈을 소개했다. 이 네 글자는 단순한 영어 알파벳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삶의 태도를 담고 있다.
첫째, B는 Blessing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축복이 되어야 한다. 단지 결혼한 존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가 상대에게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배우자를 인생의 짐이 아닌 선물로 바라보는 마음, 그 자세가 가정의 평화를 만든다.
둘째, E는 Edifying이다.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주는 말과 행동이 필요하다. 삶이 고단하고 때로는 지쳐갈 때, 따뜻한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다.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가 될 때, 가정은 그 어떤 공동체보다 따뜻한 둥지가 된다.
셋째, S는 Sharing이다. 무엇이든 함께 나누는 삶, 그것이 부부의 기본이다. 요즘처럼 각자도생의 문화가 퍼진 시대에는 부부도 이기적으로 자신의 역할만 수행하는 데 그치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부부는 육아도, 경제도, 감정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공유는 협력의 시작이며, 그 안에서 이해와 존중이 자란다.
넷째, T는 Touch이다. 사랑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손을 잡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는 그 ‘접촉’이 마음의 거리를 좁힌다. 마음속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은 손끝과 눈빛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표현으로 살아 움직인다.
이 설명을 마치자 남편이 일어날 시간이 되었음에도 “E는 뭐라고 하셨나요?”, “T가 무엇인가요?”라고 되물었다. 그 질문에서 나는 그들로부터 진지한 태도와 배움의 겸손함을 읽을 수 있었고, 그 순간 그들이 만들어갈 미래 가정이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고은층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짧은 만남에서 오히려 큰 울림을 받았다.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말을 남길 수 있었다는 기쁨, 그리고 젊은 세대가 여전히 관계의 본질과 삶의 지혜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오늘의 대화는 단지 롯데리아에서의 스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대를 잇는 소통이었고, 삶의 지혜가 조용히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그 부부는 울산으로, 나는 대구로 향하지만, 서로의 기억 속에 남을 짧고도 깊은 인연이었다. 나는 오늘도 그들의 앞날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그들의 가정이 BEST한 삶을 이루어가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그리고 내게도 그러한 만남을 허락한 시간에 감사한다. 인생이란 결국,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 의미가 되는 여정이 된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자연이 가장 화사하게 피어나는 계절이자, 우리 삶의 다양한 관계와 가치를 기념하는 날들이 집중된 달이다. 노동, 생명, 교육, 가족, 신앙, 헌신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기념일들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어, 고령층과 은퇴자층, 곧 ‘고은층(高恩層)’에게는 인생의 궤적을 되돌아보며 ‘기억’과 ‘감사’, ‘실천’의 지혜를 되새기기에 더없이 적절한 시기다. 이 글에서는 5월의 주요 기념일들이 고은층에게 가지는 상징적 의미와, 이에 따른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노동과 생명의 가치 '1일 근로자의 날과 부활절기'
근로자의 날(5월 1일)은 단지 근로자의 권익을 기념하는 날을 넘어, 인생 전반에서 ‘일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는 날이다. 고은층에게는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아왔는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며, 젊은 세대에게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부활절은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기독교의 최대 축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리는 날이다. 5월과 겹치는 해에는 생명과 희망의 상징성과 더욱 조화를 이루며, 고은층에게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다.
우리 모두 삶의 노동을 귀하게 기억하고, 신앙의 회복을 실천하며, 일과 인생에 대한 감사의 태도를 자녀 세대와 나누자.
가족과 세대 간 사랑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21일 부부의 날'
어린이날(5월 5일)은 미래 세대를 향한 책임과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다. 고은층은 자녀와 손주를 통해 세대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따뜻한 정서적 유산을 물려주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어버이날(5월 8일)은 고은층 자신이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부모로서 살아온 삶을 성찰하게 되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부부의 날(5월 21일)은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며, 말보다 깊은 애정과 상호 존중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
우리 모두 다음 세대에게 사랑을 전하고, 가족 간 감사와 화해를 실천하며, 배우자에게 존중과 따뜻한 언어로 마음을 나누자.
교육과 존경의 정신 '15일 스승의 날'
스승의 날(5월 15일)은 단지 은사의 노고에 감사하는 날에 그치지 않는다. 고은층에게는 ‘삶의 경험 자체가 가르침이었음’을 성찰하게 하며, 자신이 남긴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우리 모두 가르침의 삶을 회고하고, 지혜와 격려의 언어로 인생의 후배들에게 조언을 남기자.
종교적 성찰과 내면의 정화 '5일 부처님 오신 날'
불기(佛紀) 2569년, 부처님 오신 날(2025년은 5월 5일)은 자비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교 최대의 명절이다. 고은층에게는 생의 말미에 이르러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고, 삶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성찰의 날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물질적 소유보다 마음의 평안을 추구하고, 자비와 조화의 정신으로 이웃과 함께 하자.
기억과 공동체의 연대 '셋째 주 토요일 성년의 날, 마지막 월요일 메모리얼 데이'
성년의 날은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젊은이들을 축하하는 날이지만, 고은층에게는 과거 자신이 성인이 되었던 순간을 회상하며, 청춘의 의미와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마음의 선물로 삼을 수 있다.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5월 마지막 월요일)는 한국과는 무관하지만, 고은층에게는 자신이 사랑했던 이들을 기리며, 기억의 힘으로 공동체적 온정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나눔과 위로로 승화시켜야 한다. 공동체를 따뜻하게 감싸는 기억의 실천자가 되자. 기억은 축복이 되고, 행동은 유산이 된다
5월의 기념일들은 달력 속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 자연과 신앙, 가족과 공동체 사이에 맺어진 관계망 속에서 우리가 살아온 여정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며, 남은 인생을 더욱 따뜻하게 채색해가는 나침반이다. 고은층은 단지 나이가 많은 존재가 아니라, 이러한 기념일들을 통해 삶의 지혜를 나누고 세대를 잇는 ‘살아 있는 유산’이다.
"5월은 축복의 달이며, 고은층은 그 축복을 온전히 완성해 가는 삶의 주체임을 우리 모두 기억합시다."
참고자료 1) ‘동서남북꽃’으로 불리는 아마릴리스(Amaryllis)는 특히 제주 지역에서 이렇게 불리며,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화려하고 균형 잡힌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별칭은 꽃의 대칭성과 사방으로 고르게 펼쳐지는 꽃잎 모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사방이 아름답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는 상징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2025년 현재, 한국의 정치와 안보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중한 국면에 놓여 있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중국과 대만의 충돌 가능성, 인도-파키스탄의 긴장 고조 등 전 지구적 위기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세계경제질서를 뒤흔들며, 우리의 수출의존적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올 수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안보 위협도 결코 가볍지 않다. 한편 국내적으로도 저출생과 고령화, 청년실업, 저성장 구조 등 ‘산 넘어 산’의 위기들이 병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시계는 작동하고 있으며, 정치권은 분열과 혼란 속에서도 대선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반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특히 국민의힘은 후보 선출 과정과 빅텐트 구성 논란으로 인해 국민적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당의 분열된 행보와 편 가르기식 정치행위는 국민의 눈에 차마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대선, 국운의 결정은 국민의 생각이 결정한다
이처럼 복합위기가 혼재된 상황에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은 한 사람의 선택을 넘어 국민적 사고의 총합이 시험대에 오른 일이다. 필자는 최근 잇따른 여론조사 전화를 받으며 문득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치에 대한 가족의 말, 이웃의 고민, 사회적 담론을 들으며, '지금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에 다가왔다.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반성이나 소회가 아니다. 국민 각자의 생각과 선택이 곧 국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정당과 후보자들이 쏟아낼 무수한 공약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정치적 수사 너머의 진정성과 능력을 판별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각하는 유권자’로서의 책임이다.
생각은 행동의 전제다: 위기의 돌파는 생각으로 부터 시작한다
생각은 인간 행동의 출발점이다. 한국 실학의 거두 다산 정약용 선생은 '사의재(四宜齋)'에서 네 가지 삶의 자세를 강조했는데, 그 첫머리가 바로 ‘맑은 생각’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으며,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 하였다. 이런 말들은 모두 생각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현대의 성공한 인물들 역시 생각의 중요성을 증언한다. 빌 게이츠는 해마다 일주일간 '생각 주간(Think Week)'을 갖고, 처칠은 아침시간을 침대에서 생각하는 데 썼으며, 워렌 버핏은 '몰입'을 통해 성공했다. 몰입은 생각의 고도화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이를 "하늘을 나는 듯한 자유로운 흐름"이라 했다. 국가 리더 역시 복잡한 사안들 속에서 몰입과 통찰로 위기를 타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후보 판별을 위한 사고 기준 열 가지에 대한 제언이다
다산은 “머리로 판단하고, 가슴으로 결단하라”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고의 열 가지 기준’*2)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합리적 사고는 이성과 사실에 기반한 가치중립적 판단이다. • 종합적 사고는 복잡한 문제를 전체적 시각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균형적 사고는 편향 없이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사고이다. • 창조적 사고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고이다. • 비판적 사고는 공약과 발언의 이면을 꿰뚫는 분석적 사고이다. • 유연한 사고는 변화에 적응하고 상황에 맞는 해법을 찾는 사고이다. • 전략적 전술적 사고는 현실 기반의 목표 달성을 위한 실천적 사고이다. • 윤리적 사고는 정의 · 배려 · 신뢰 등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고이다. • 개방적 사고는 폐쇄성에서 벗어나 수용과 학습에 열려 있는 사고이다. • 긍정적 사고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고이다.
자기 중심에서 세상 중심의 생각으로 진화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고를 넘어서 세상중심의 공익적 사고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이 짧고, 왜곡되고, 편협한 판단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이 말한 “爲己之學(자기를 위한 공부)”가 아닌 “爲人之學(세상을 위한 공부)”가 필요한 때다. 공직자나 정치지도자는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하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 국민 개개인도 '자기중심의 생각'을 넘어 '공동체 중심의 생각', 곧 '위인지사(爲人之思)'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가 위기를 돌파할 수 있고, 정치는 미래를 품을 수 있다.
생각이 선거를 이끌고, 선거가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
이제 대통령 선거는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국민 각자의 생각이, 곧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싯점이다. 공약의 달콤함에 현혹되지 않고,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유권자의 생각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동력이며, 혼돈의 시대를 지혜로 이끌 등불이다. 우리 모두가 현명한 생각으로 대통령을 선택하는 순간, 그것이 곧 나라를 구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1) 생각은 개인과 가정, 직장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생각의 의미는 사람이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이다. 이의 유사개념인 사고는 인간의 의식활동과 그 내용 모두를 지칭한다. 최근에는 생각의 특수한 형태인 몰입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몰입은 원하는 어느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2) 이성근. “자기 중심의 생각(爲己之思)과 세상 중심의 생각(爲人之思)”, 『이성근 교수의 인생사색 1(개정판)』. 퍼플, 2023.pp. 42-46.
식물과 인간은 생명의 양식에서 서로 다르지만, ‘잘 살리고 잘 살기 위한 관리’라는 점에서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필자는 근석농장에서 아마나스 하귤나무를 키우며, 아마나스의 관리 방식이 사람 관리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나스는 탱자나무에 접을 붙여 키우는 하귤로, 본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다시 탱자로 되돌아가는 속성을 지닌다. 해마다 적절한 전정과 주의깊은 관리 없이는 좋은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훈육과 성찰 없이 지나치면 자기중심과 이기심으로 흐르기 쉽다.
이 글은 아마나스의 여덟 가지 관리 방식을 통해 사람의 성장을 조화롭게 이끄는 방법을 살펴보고, 이를 다재다능한 인재, 즉 '팔방미인'으로 길러가는 통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잘라냄’과 ‘비움’은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첫째, 아마나스는 죽은 가지부터 잘라낸다. 생명력 없는 가지는 살아 있는 줄기의 성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불필요한 관계, 낡은 사고, 지나간 감정을 끊어내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독불장군처럼 혼자 키 큰 가지는 제거한다. 이는 조화로운 생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독주하는 개인은 조직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지금은 구성원 간의 조화와 협력이 더욱 중요한 공유와 협업의 시대가 되었다.
셋째, 바람과 햇빛을 가로막는 가지도 제거한다. 이는 다른 열매의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 이기적인 행동이 타인과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반성하게 한다.
‘공생’은 세대와 가치를 아우르는 상생과 공존의 미덕이다
넷째, 아마나스는 열매와 꽃이 동시에 맺히는 특징을 지닌 하귤이다. 하나의 나무 안에 어제의 꽃인 열매가 달려 있고 내일의 열매가 될 꽃이 공존한다. 이는 고령자와 청년,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와 닮아 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공존의 태도가 요구된다.
다섯째, 아마나스는 꽃이 너무 많으면 열매가 작게 맺힌다. 스스로 균형을 조절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화려하고 말만 앞서는 사람은 깊이 있는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절제된 자세와 내실이 진정한 성숙을 이끈다.
‘구조’와 ‘역할’의 조화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의 힘이다
여섯째, 아마나스 나무의 구조에는 ‘3:3:3의 법칙’이 적용된다. 큰 기둥 세 개, 중간 줄기 세 개, 작은 가지 세 개로 균형 있게 형성된다. 이 구조에서 벗어난 가지는 밑둥까지 과감히 잘라내고, 절단면에 약을 바른다. 이러한 타원형 부채형 구조는 인간의 신체나 조직 체계에 비유할 수 있다.
일곱째, 열매는 큰 줄기가 아니라 작은 가지에서 열린다. 큰 줄기는 구조를 지탱하지만, 실제 결실은 작고 정교한 가지에서 맺힌다. 이는 국가나 사회의 발전도 소수 엘리트가 아닌 다수 시민의 참여와 역할분담, 그리고 책무성에 충실한 실천에서 비롯됨을 상기시킨다.
‘외형’보다 ‘내면’은 팔방미인의 충분조건이다
여덟째, 아마나스를 아는 사람들은 열매의 외형이 조금 미흡하더라도 그 가치를 신뢰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 내실이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외모나 말솜씨보다 내면의 진정성, 도덕성, 성실함이 점점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결국, 아마나스가 팔방미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여덟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면 균형 잡힌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 훈육, 자기성찰, 배려, 절제, 그리고 내면의 깊이 같은 요소들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팔방미인’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글을 마치며,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친다
아마나스를 가꾸는 농부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가지를 치고 나무의 수형을 다듬는 데 온 정성을 쏟는다. 이러한 관리 방식은 단순한 과수 기술이 아니라 삶의 원리이자 사람을 성장시키는 지혜로 연결된다. 훈육과 자기 관리가 없는 사람은 원래의 본성으로 돌아가기 쉽고, 제어와 절제가 없는 삶은 타인의 성장을 방해한다.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그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겸손과 성찰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역시 각자의 삶에서 열매를 맺고 또 다른 꽃을 피우며, 공존과 조화의 삶을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에 거주한 지 3년째이며, 한림 금능 지역의 근석농장을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아마나스라는 하귤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비록 하귤나무 관리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퇴비를 주고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아마나스를 구매하러 온 한 부부로부터 아마나스 나무의 전지 방법과 관리 방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내용을 듣던 중, 문득 아마나스의 성장관리 방식이 사람의 성장관리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다. 식물의 생장은 자연의 법칙에 따르듯, 인간의 성장 또한 일정한 삶의 법칙과 관리의 원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자연법칙과 인간법칙이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음을 새삼실감하게 되었다.
참고자료 1) 팔방 미인은 한국에서 여러 가지 일을 잘하고,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을 칭찬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주로 여성에게 사용되지만, 남성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 다재다능한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누구나 인생의 여정을 걸으며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편안한 삶'일 것이다. 이 편안함은 단순한 육체적 안락이나 외적 안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면의 평화, 원만한 관계, 일상의 균형, 사회적 안정 까지 포함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생애 주기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고령층과 은퇴자층, 곧 '고은층(高恩層)'에게는 젊은 날의 치열함을 지나 이제는 삶을 정리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이 더욱 간절해진다. 이 글은 고은층에게 편안한 삶이란 어떤 모습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과 실천 방안은 무엇인지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논의하고 있다.
고은층에게 편안한 삶의 의미는 안식과 온유, 그리고 품격으로 채워지는 삶이다
편안한 삶이란 단지 고통이 없거나 외부 환경이 조용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현재의 삶에 감사할 수 있는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다.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 안정을 포괄하는 다차원의 개념이다. 특히 고은층에게 편안함이란 ‘수고한 삶에 대한 보상’이자, 남은 생을 품격 있게 가꾸는 지혜로운 태도이며, 자신과 타인에게 주는 따뜻한 선물이다.
고은층의일상에서 요구되는 편안한 삶은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편안한 가정이다. 말이 통하고 온기가 흐르는 가족,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부 관계는 편안한 삶의 중심이 된다. 가정은 감정의 안식처이자 정서의 중심지이다. 둘째는 편안한 인간관계이다. 경쟁, 비교, 갈등에서 자유로운 관계는 고은층의 품위를 더욱 빛나게 한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는 마음에 평안을 준다. 셋째는 편안한 만남이다. 미리 약속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말이 통하고 침묵조차 어색하지 않은 관계는 진정한 편안함의 원천이 된다. 소수라도 깊은 신뢰와 이해가 있는 만남이 중요하다. 특별히 필자는 333 원칙을 선호한다. 배움, 놀이, 여가에 세 사람이 좋다는 말이다. 넷째는 편안한 삶터이다. 자연과 가까이 있고, 이웃과 적당히 연결되며, 소음과 복잡함으로부터 거리를 둔 환경은 몸과 마음을 조용히 감싸준다. 특히 생활 공간이 줄어드는 고은층에게 삶터의 질은 삶의 질 그 자체다. 다섯째는 편안한 일과 역할이다. 은퇴 이후에도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작지만 선한 영향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자존감을 지키는 보람이자 내면의 안정을 가져오는 일터가 된다.
삶의 지혜 속에 담긴 편안함의 보편적 가치는 말과 믿음이 기본이다
편안함은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가치이며, 다양한 말과 지혜 속에 그 정신이 전해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은 말씨와 태도가 관계의 평안을 만든다는 뜻이다. 한자성어 "유유자적(悠悠自適)"은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편히 지내는 상태나 태도를 의미한다. 유의어로 "유연자적"이 있다. 공자는 “편안함은 도리에 따를 때에야 비로소 얻어진다”고 하였고, 에픽테토스는 “진정한 평온은 외부가 아닌 내면의 질서로부터 온다”고 하였다. 성경 마태복음 11:28의 말씀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위로와 평안의 근원이 신앙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러면 고은층에게 요구되는 편안한 삶의 조건과 실천 과제는 무엇일까?
하나는 삶의 결과를 받아들임으로써 편안함을 갖는 것이다. 편안한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다듬어진 삶의 태도, 정리된 관계, 그리고 깊은 사유에서 비롯된다. 둘은 덜어내고 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질, 과거, 사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마음은 가벼워지고, 평안이 찾아온다. 셋은 관계를 정리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오해와 갈등을 정리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화해를 통해 관계를 재구성하는 일은 중요한 실천이다. 넷은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취미, 신앙생활은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든든한 기반이 된다. 다섯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필요가 있다. 일을 떠난 후에도 봉사와 배움, 나눔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다시 찾을 수 있다. 여섯은 감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부족함보다는 주어진 것에 감사할 때, 삶은 덜 지치고 더욱 풍요로워진다.
고은층에게 편안한 삶은 스스로의 선택이며, 태도의 결실이다
고은층이 바라는 편안한 삶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향하는 가치와 자존감을 유지하고, 다양한 관계를 조절하며, 일상의 균형을 이루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편안한 사람’이 되어 서로에게 쉼이 되고, 자신에게도 따뜻한 동반자가 되어야 할 때다. 고요히 흘러가는 황혼의 삶 속에서, 편안함이야말로 가장 귀하고 복된 선물임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편안한 사람들과의 차담, 그 따뜻한 인연"
필자는 ‘333 원칙’을 좋아한다. 배움, 놀이, 여가의 순간마다 세 사람의 만남이 가장 좋다는 의미이다. 서귀포 혁신도시에서 거주한 지 어느덧 3년째, 그간 ‘서귀삼연(西貴三然)’과 ‘신서귀삼연(新西貴三然)’이라 부르는 인연들을 통해 소중한 만남이 이어져 왔다. 특별한 약속 없이, 시간이 나면 그저 전화 한 통으로 차 한 잔을 나누는 사이. 신기하게도 매번 누군가에게 전화하면 언제나 시간이 맞고, 자연스럽게 셋이 모이게 된다.
이 인연은 무던하고도 따뜻하며, 편안한 사람들과 나누는 차담의 시간은 어느새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어제도 그러했다. 평소처럼 자연스레 모인 자리에서, 필자는 문득 한 분께 이렇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은 참 편안한 분이십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이 감동이 일었고,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늘 변함없이 따뜻한 자리를 함께해 주는 두 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편안한 차담의 시간이 앞으로도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참고자료 1) "안거위사(安居危思)"는 편안할 때도 위험한 상황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춘추시대 진나라와 초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 위강이 도공에게 건의하면서 유래되었다. 위강은 도공이 정나라로부터 받은 예물을 사양하며 "평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고, 안정할 때 변동을 생각하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