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미래는 불확실성과 다양성 위기의 시대이다. 이와 같은 시대는 미래예측이 어렵고 대응과 관리도 어렵다. 국민 개개인은 물론이고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 일반 국민들은 우리를 대리하는 정부가 잘 대응하고 해결해주기를 기대한다. 그간 역대정부들은 모두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유능한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그렇지 못하였다. 이는 세계 공인 조사연구기관에서 발표한 국민의 행복수준과 공감/체감, 그리고 국가경쟁력 지수에서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정부가 이를 가능케 할 것인가? 필자는 유능한 정부로 가는 길의 하나가 정책과 계획역량이 높은 정부가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미국 버클리대학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K. Christensen 교수(1983)의 계획유형화와 계획유형별 정부부문의 역할기대와 전문계획가의 역할을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K. Christensen교수의 계획유형이 지금 우리 사회와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해결과 미래의 불확실성과 다양성의 위기대응에 유용하리라고 믿는다.
현대사회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변화하고 있다. 글로벌화에 따른 무한경쟁과 최근의 자국보호무역 강화, 4차 산업혁명과 AI시대의 도래, 국민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분출과 개성의 추구, 일반 국민의 직접참여 기회의 확대와 소통과 공감의 중요성 증대, 접속시대의 도래와 공유ㆍ협업의 거버넌스의 요구, 기후위기와 각종 재난의 확대, 고령화와 저출생에 따른 지역소멸위기 등이다. 필자는 이를 불확실성과 다양성의 위기라 부른다. 이런 사회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와 같은 사회는 정부역할 또한 변화해야 한다. 특히 정부의 계획기능과 접근방법의 변화가 필요하다.
불확실성과 다양성의 시대에는 과거의 전통적인 계획의 접근방법만으로는 복잡다단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효과적이지 못하다.
그간 계획의 역사적 진화과정에서 다양한 계획형태가 있어왔다. 이들 계획형태 가운데 필자에게 특별히 주목을 끈 것은 미국 버클리대학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K. Christensen 교수(1983)의 계획유형화이다.
K. Christensen 교수는
현대사회의 불확실성 하에서 목표와 수단의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계획을 유형화하였다. 목표 기준은 구성원의 합의여부에 따라 목표에 대한 합의(agreed)와 비합의(not agreed)로 구분하였다. 수단 기준은 계획수립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자원수준에 따라 가지/완전(known/complete)와 불가지/불완전(unknown/incomplete)로 구분하였다. 이상의 네 가지 세부 기준의 조합에 따라 합리적(rational) 계획, 사회학습적(social learning) 계획(최근에는 협업적/collaborative) 계획으로 진화 발전), 조정협상적(mediated negotiation) 계획, 확률적(stochastic) 계획의 네 가지로 계획을 유형화하였다(이성근, 1992: 99-103). K. Christensen 교수는 이러한 계획의 각 유형에 대한 정부의 기대와 계획전문가의 역할을 중심으로 해서 논의하였다.
여기서는 이들 계획형태에 대해 소개해 보기로 한다.
첫째, 합리적 계획에 대해 보자.
합리적 계획은 목표가 합의되고 수단 혹은 기술이 알려져 있으며 자원이 비교적 충분할 경우 계획을 지식의 합리적 응용과정으로 본다.
합리적 계획의 경우, 정부는 계획에 대해서 예측가능성, 효율성, 효과성, 형평성, 책임성
등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계획전문가에게는 프로그래머, 분석가, 행정가, 규제자 등의 역할이 요구된다.
둘째, 사회학습적(협업적) 계획에 대해 보자.
사회학습적 계획은 목표가 합의되었지만 기술이 알려져 있지 않거나 자원이 불완전할 경우에는 계획을 사회학습과정으로 본다. 사회학습적 계획유형에서 정부의 기대는 계획을 통하여 혁신, 협업, 대응성 등을 도모하려고 한다.
계획전문가는 실용가, 조정가, 연구자, 혁신가 등의 역할이 요구된다.
세째, 조정협상적 계획에 대해 보자.
조정협상적 계획은 목표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기술이 잘 알려져 있으며 자원이 완전한 경우에는 목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계획을 하나의 협상과정으로 보고 있다. 조정협상계획에서 정부가 계획을 바라보는 입장은 다양한 이해집단의 집합선호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기제로서 계획을 보고 있다. 계획전문가에게는 협상가, 촉진자, 중재자, 조정가 등의 역할이 강조된다.
네째, 확률적 계획에 대해 보자.
확률적 계획은 목표에 대한 합의가 없고 기술이나 자원이 불완전한 경우이다. 이 때 계획은 혼란상태(chaos situation)에서 질서를 찾는 하나의 탐색과정으로 정의된다. 확률적 계획은 혼란 상황에서 계획을 탐색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므로, 정부는 계획을 통하여 질서의 발견 혹은 창출을 도모하려고 하며, 계획전문가는 카리스마적 지도자, 문제발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다음은 이상의 논의에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논의해 보자.
먼저 새로운 정부는 불확실성과 다양성의 위기관리를 위해 현안과제와 미래 대응과제를 유형화하고 이에 맞는 계획유형을 선택하여 정책과 계획을 추진할 것이 요구된다.
둘째는 정책과 계획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계획역량을 강화할 것이 요구된다. 계획역량은 계획유형별로 요구되는 역량이 다양하다. 합리적 계획은 계획수립의 전문적 기술, 조정협상적 계획은 소통과 갈등관리기술, 사회학습적/협업적 계획은 공동생산자로서 상호협력과 자원동원기술, 확률적 계획은 카오스상황을 개념화하고 구체화하는 기술이 요구된다.
세째, 정책과 계획이 공공분야의 조직문화와 기본소양의 하나로 자리잡아야 한다. 과거와 현재에도 정부조직에는 기획부서가 따로 있고 기능도 잘 정비되어 있다. 이제 계획은 기획부서의 전유물이 이니다. 전부서가 전방위적으로 기획의 주체자가 되어야 유능한 정부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전문계획기관과 전문계획가의 자질과 역량이 재구조화될 필요가 있다. 오래전 부터 계획의 사회적 유용성에 따라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 계획기관과 계획가 직업군에 속하는 종사자가 많아졌다. 불확실성과 다양성 위기시대에 실효성있는 적절한 대안을 설계하는 작업은 이들 전문계획기관과 전문계획가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계획가는 명실상부하게 유능한 계획전문가가 되어야하는 이유이다.
필자는 이번 정부가 역대정부와 달리 유능한 정부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는 국민 모두가 소망하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와 미래의 불확실성과 다양성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관리하는데 실효성있는 계획적 접근을 통해 시작되었으면 한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 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면 과정도 결과도 좋을 것이고 국민 만족도 높아지리라고 믿는다.
정책계획론, 서울: 법문사, 2006. 8. 25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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