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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상장(敎學相長)은 중국 5경의 하나인 「예기」의 '학기'에 나오는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공자의 「논어」'자한'편의 후생가외(後生可畏)와 「서경」'열명'의 '하'편에 나오는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반"이라는 효학반(斅學半)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교학상장과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반이"라는 효학반은 나에게 적합한 말이다. 나의 교수직은 가르치면서 배우고 함께 성장한 교학상장이었다. 따라서 나의 교수인생은 가르침과 배움의 여정이었다.

나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을 마치고 ‘80년 3월 모교인 영남대학(행정학과 졸업)에 전임강사 대우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이었다. 멋모르던 풋내기 교수이었다. 그리고 2018년 2월 정년에 이르기까지 38년간 영남대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나의 교수인생은 크게 두 기간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80년대로 이 시기에 나의 교수생활은 교수이자 위기지학(爲己之學)
내지 훈육(discipline)의 여정이었다. 85년에는 문교부 국비 해외파견교수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고, 귀국해서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였다. 또한 91년에는 문교부 국내교류교수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논문연구를 한 진덕수업(進德修業)의 여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위기지학과 진덕수업 이후의 위인지학( 爲人之學)의 여정이었다. 이 기간은 정년에 이르기까지 "배움에 힘써 맡은 소임을 다한다"는 근학무실(勤學務實)과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학해무변(學海無邊), 그리고 "사회를 이롭게 두텁게 한다"는 후생치용(厚生致用)의 여정이었다.

내가 처음 발령받은 학과는「지역사회개발학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방비 장학생(새마을 장학금)으로 졸업과 함께 지방직 7급으로 특채되어 자신들의 고향인 시·군에 근무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 학과는 1977년 신설학과로 대학원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학부생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많았다. 당시 나는 미혼으로 학과의 각종 행사에 학생들과 곧잘 어울려 운동/ 씨름도 하고 뒷풀이 행사에도 동참하였다.

나는 대학원에서 경험한 대로 연구실에 조교를 두었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와 함께한 학부생들로는 정상균(79), 윤세하(81), 양병선 등이 있고 논문지도로 여러 학생들과 교류를 빈번하게 가졌던 추억이 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당시에 매년 교육부(당시 문교부) 장관 주최 전국 대학생 현상논문발표대회가 개최되었다. 나는 80년부터 수년간 학부생을 지도하여 우수한 논문상을 수상토록 하였다. 당시에 지도한 학부생들로는 하순옥(78), 이구석(78), 민인기(79), 윤영란(79), 김재선(79), 김해경(80), 정연재(87) 등 여러 학생들이 생각난다. 가끔은 상경대 학생들도 논문지도를 받으러 오곤 하였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81년부터 학과의 지방비 장학생제도는 없어지고, 일반학과로의 전환과 함께 교육과정과 학생진로에 일대 전환기를 맞기도 하였다. ’88년에는 학제개편에 따라 정치행정대학 지역개발학과로 단대 소속과 학과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이후에도 정부의 대학정책에 따라 정행학부, 행정학부, 지역 및 복지행정학과, 글로벌 새마을학과 등으로 수차례 학과개편이 더 있었다. 또한 단과대학 소속도 정치행정대학에서 사회과학대학, 그리고 지금은 글로벌 인재대학으로 바뀌었다.

나의 교수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8, 90년대 학번의 학부생들과 동행이 많았다. 이들 학번의 지방비 장학생들은 졸업 후  경북과  대구의 시·군에 근무하게 되어 평생동안 나와 교분이 지속되었고 이들의 정년 또한 대부분 나와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나는 지난 교수인생에서 세 가지의 프리미엄을 가졌었다. 이들 프리미엄은 나를 지탱해온 의미이자 자부심이었다. 하나는 대학원에서 만난 고교계명의 지도교수님이고, 둘은 자유스러운 학풍의 영남대 교수로 일한 것이며, 셋은 지역개발학과 교수로 지낸 일이다. 이들 프리미엄은 나에게 온전한 교수활동과 폭넓은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특히 8, 90년대 학부생들과의 교학상장의 만남은 나에게 크나큰 자산이자 행복의 원천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출신학교에서 우수한 인재들이었고 모두가 순박하고 인성이 좋았다. 나는 오랫동안 교류하고 만남을 지속한 졸업생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에 나온「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의 '교학상장'편은 학부생들과의 만남의 글이다. 여기서는 연구실에서 수년간 동행한 학부생, 문교부 전국대학생 논문발표대회에 논문지도한 학부생, 결혼주례를 선 학부생, 그리고 일반 학부 졸업생들의 글을 받아 실었다.

 
이 글을 마치면서 이들이 보내준 교학상장의 인연에 대한 제목을 소개하고 작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성근 교수님께┃정상균 
이성근 교수님과의 추억┃윤세하 
이성근 교수님과 함께 천마 비상의 꿈과 힘을┃이구석
교수님의 첫 수업┃하순옥
멘토와 멘티로서 거듭된 인연┃민인기
君師父一體를 생각하면서┃윤영란
이성근 교수님과 나의 대학생활┃김재선
대구은행 현상공모논문의 경험┃정연재
멋진 총각 교수 이성근┃고윤환
「지역계획론」 강의에 대한 소회┃김정일
교수님의 깐깐한 지도로 논문작성 자신감 얻어┃서원
영원한 우리 선생님┃이원열
내가 뵌 존경하며 자랑스러운 이성근 교수님┃임성재
도청 도시계획 위원 및 산업단지 심의 위원 재직시 만남┃권기섭
형님같고, 친구같던 교수님!┃변화원
답장┃손애보
교수님, 수고많으셨습니다┃신은숙
문경 오미자 사업의 제안┃윤남식
자네는 야구를 참 잘했잖아┃강철구
은사님의 은퇴 회상록 집필 요청 전화┃고수현
친구같은 주례 선생님┃김한수
4년동안 처음이자 마지막 받은 ‘S’학점┃신준호
기억력이 뛰어난 교수님┃신태경
민들레 홀씨┃윤칠석
중국 난징 WTA에서의 만남┃이점식
지방행정의 선구자, 지방자치 가이드┃이주환
교수님의 제자 사랑┃정덕수
학창시절 롤모델 ‘이성근 교수님’┃최상룡
교수님 가르침과 사랑에 감사드리며┃박승종
몰락한 지주의 아들┃서정선
이성근 교수님 퇴임 회고┃이재한
사랑의 교수님┃임성호
지역개발학 전공 수업을 개척(?)하신 이성근 교수님┃김문식
그립습니다, 그때가┃김철주
이성근 교수님과의 인연┃이경섭
이성근 교수님과의 추억 이야기┃김창환
허브 코헨의 협상론┃심성보
벚꽃 스타팅(Starting)┃서준우
교수님께 감사함을 전하며┃구창교 ·  이명주
이성근 교수님 정년 축하문┃박문식
교수님께서 주신 교훈┃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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