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선린(歸田善隣)은 인간의 귀결은 신과 자연으로 돌아가고 평소 가정과 이웃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귀소본능이 있다. 나 또한 내 인생의 텃밭이었던 대학을 정년할 즈음 문득 가정에 충실하고 이웃을 두텁게 하며, 그리고 자연과 신에 가까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에 나에게 운명 같은 두 가지 신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하나는 교육부 파견 순총학원 이사장의 소임을 맡게 되었다. 순총학원은 순복음 교단에서 설립한 학력인가 대학인 순복음총회신학교와 순복음대학원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법인이다. 그간 나는 학내외 여러 직책을 맡았지만 종교단체 직책은 처음이었다. 나는 삼 년 동안 이 직책을 맡으면서 내 인생의 말미에 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어떤 보이지 않는 운명 같은 계시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을 찾고 간구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나는 정년을 앞두고 정말 오랜만에 안식년을 가졌다. 이 기간 동안에 정년 이후의 내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 후반전의 지향가치를 귀전선린으로 정하였다. 이는 소중한 가정과 따뜻한 이웃을 두텁게 하고 자연과 친하며 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나의 다짐이다.
여기에서 나 자신과 가정중심의 지향은 건강제일과 가정우선, 그리고 내공충실로 정하였다. 이 가운데 제1은 건강제일이다. 어릴 때는 의지 정도가 성공의 결정요인이나 나이 들어서는 건강 여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건강이 따르지 못하면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건강은 공유가 불가능하다. 제2는 가정우선이다. 젊은 시절에는 가정을 그냥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가정의 가치와 소중함을 몰랐다. 자녀출산과 양육과정에 부부의 의논과 역할분담이 중요함을 이제사 깨닫게 되었다. 서양속담에 "세상에서 가정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가 있다. 제3은 내공충실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훈육의 습관은 대단히 중요한 성공요인이다. 정년 이후의 내공충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느슨한 마음으로 편하게 하는 것이다. 정년 이후 지금의 나는 세 기준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은 나의 인생 후반전의 지향가치인 귀전선린의 생활에서 자연스레 만난 따뜻하고 합리적이며, 그리고 선한 이웃들에 대한 내용의 일부이다.
이번 글은 '제주 서귀포에서 만난 배려의 마음씨를 지닌 선한 이웃'에 이어 '대구집에 이웃한 합리적인 교수들과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소소익선(小小益善)의 만남'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의 제목에 굳이 합리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 교수직분의 종사자들은 특별히 일상에서 합리적이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교수 정년 이후의 환경변화에 대한 정보공유와 지속적인 만남의 룰 설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대구집에 이웃한 두 분의 합리적 교수 가운데 한 분은 금오공대 이 교수님(이하 존칭 생략)이고 다른 한 분은 영남대 권 교수님(이하 존칭 생략)이다. 우리 세 사람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가졌다. 하나는 평생 교수직을 천직으로 삼아 일했고, 둘은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으며, 셋은 같은 헬쓰장에서 운동을 하였다. 지금 두 사람은 계속 그 곳에서 살고 있고 나만 이사하였으나 여전히 같은 헬쓰장에서 운동하고 있다. 우리 세 사람 가운데 내가 먼저 정년을 가졌고 두 사람은 이삼 년 늦게 정년을 맞았다. 따라서 우리 세 사람은 정년 이전에는 자연스레 만나기는 했으나 서로 다른 일정으로 정례적인 만남은 없었다. 그러나 정년 이후에는 일상의 시간 스케듈이 비슷하여 만나는 빈도가 많아지고 차와 식사를 함께 하면서 정례적인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내가 교수 정년 이후 맞이한 환경변화와 이에 적응한 정보공유의 소개이다.
나보다 정년을 늦게 맞은 두 교수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에게 요즘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었다.
먼저 나는 정년 이후 나의 일상의 변화와 적응에 대해 얘기했다. 정년과 함께 나에게 가장 현실로 부닥친 것이 연구실과 조교, 그리고 쾌적한 캠퍼스의 환경이 없어진 것이었다. 이들 세 가지는 우리 교수에게는 유뮤형의 프리미엄이자 크나큰 편익이었다.
정년과 함께 이들 프리미엄과 편익이 없어지니 크게 낭패를 보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정년 이후의 성공적인 삶이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두 분의 교수에게 내가 실제로 적응하고 있는 방안에 대해 설명하였다.
연구실은 집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임대하여 마련하였다.
조교의 도움을 대신하는 방안은 휴대폰으로 책쓰기ㆍ 글쓰기 배움에 도전하고 있다.
캠퍼스의 쾌적한 환경의 대체는 일주일에 하루를 '가족의 날'로 정하고 인근의 산과 공원을 찾아 걷기를 하고 있다. 코로나19에는 영남대 캠퍼스가 새삼 생각났다. 신입생 면접에서 영남대를 지원한 동기를 물었을 때 "캠퍼스가 좋아서"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종종 있었다.
나는 대학의 소중한 여러 가치를 가정처럼 그냥 주어진 것으로 무의식 속에서 근무하였다. 정년에 이른 지금 생각해 보니 대학의 하나 하나가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고 하였다.
다음은 우리 세 사람이 지속적인 만남을 위해서 합의하여 만든 합리적 룰에 대한 소개이다.
우리 세 사람의 만남은 월 1회 산행과 편한 시간에 만나 차와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만남의 룰은 기회균등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는 우리 세 사람이 공히 연금생활자이고 생활수준이 비슷하며 나이도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월 1회 산행의 경우 일자는 서로 합의하여 정하고 장소와 차량과 간식과 식사 등 일체는 돌아가면서 순번제로 하였다. 부정기적으로 하는 차와 식사대는 번갈아가면서 부담하기로 하였다.
다만 본인 차례를 기억못해 한 번 더 내는 경우는 흔쾌히 받아주기로 하였다.
여기에서 예외로 인정하는 특별한 룰이 있다. 이는 우리 세 사람 간의 선약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우선하는 룰이다. 무엇보다 우리 세 사람은 개인차는 다소 있겠지만 그간의 교수직분에서 가정에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이 모임이 몇 차례 진행되면서 동년배의 한 사람의 이웃이 참여하여 네 사람으로 만남을 가졌다. 새로이 참여한 사람은 영남대 행대원을 졸업한 허 회장님(이하 존칭 생략)이다. 그러나 이 모임은 내가 서귀포로 거처를 옮김에 따라 모임이 지속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대구집에 이웃한 합리적 교수들과의 만남은 내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대구가는 길에 제일로 생각하는 일이고, 우리는 번팅으로 차담을 나누는 기회를 갖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나면 정해진 의제는 없어도 서로 얘기가 통하고 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나는 이 만남이 나의 정년 이후의 인생길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소소익선(小小益善)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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