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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전선린(歸田善隣)은 인간의 귀결은 신과 자연으로 돌아가고 평소 이웃과 가정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귀소본능이 있다. 나 또한 내 인생의 텃밭이었던 대학을 떠나 가정에 충실하고 자연과 신에 가까이할 때가 되었다.
이 글은 나의 인생 후반전의 지향가치인 귀전선린의 생활에서 자연스레 만난 따뜻하고 합리적이며, 그리고 선한 이웃들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귀전선린의 만남은 제주 서귀포의 자연에서  만난 배려의 마음씨를 지닌 선한 이웃에 관한 글이다.
배려는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전통적인 공동체 사회에서 배려는 사회구성원들이 가지는 하나의 사회규범이었다. 현대의 공유와 협업사회에서도 배려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중요한 덕목이 된다. 배려는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제가 된다.
배려는 대단히 추상적 개념이자 아주 구체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배려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나는 재작년 7월 중순부터 서귀포에서 지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대구에 가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서귀포에서 지낸다. 나는 서귀포에서 새로운 선한 이웃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숲 해설사로 일하는 현 선생님(이하 존칭 생략)이고 다른 한 사람은 경기도에서 중등학교 교장과 교육장, 그리고 교육행정의 고위직을  지낸 김 선생님 (이하 존칭 생략) 이다. 벌써 이들과 지낸 기간이 이 년여에  가깝다.

현 선생과 김 선생과의 첫 만남은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이루어졌다.
현 선생의 만남은 내가 서귀포 생활에 필요한 여러 유익한 정보를 가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김 선생의 만남은 제주의 여러 다양한 자연을 섭렵하는데 안내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이 글을 통해 두 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여기서는 내가 이 두 사람과 교류하면서 가진 특별한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배려의 마음씨가 체화된 현 선생에 대한 소개이다.

내가 경험한 현 선생의 배려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배려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공생의 배려이다.

하나는 현 선생의 인간적 유대감을 통한 사회적 배려에 대한 소개이다.
현 선생은 평생을 서귀포에서 산 토박이로 전형적인 서귀포인이다.  현 선생은 서귀포의 모두를 좋아한다. 특히 산과 바다, 그리고 문화를 좋아한다. 또한 사람을 좋아하고 여유를 즐길줄 아는 사람이다. 그냥 좋아만 하는 것이 아니고 서귀포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홍보한다.

현 선생은 숲과 나무를 볼 줄 알고 상황판단력이 빠른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래서 나에게 현 선생은 서귀포 생활의 멘토이다. 나뿐만 아니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 가운데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서귀포 정착에 도움을 받은 이가  상당하다. 이와 같은 현 선생의 배려의 마음씨는 서귀포에 대한 애향심과 타고난 사회적 배려심에 기인한다. 현 선생이 인간적 유대감을 통해서 외지인의 서귀포 조기 정착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런 현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서귀포 홍보대사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적 배려에 대한 소개이다.
인간은 자연의 다양한 배려 속에서 성장하고 존재한다. 
현 선생은 산을 좋아하는 서귀포 토박이다. 우리 두 사람은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어 차와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하루는 현 선생이 "나이 들면 산에 가기 힘들 것에 대비하여 집에서 숲을 즐기기 위해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자기 집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새들을 위해서 감을 따 먹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자신은 감을 사서 먹는다"고 하였다. 나 그 얘기를 듣고  궁금하여 이튿날 현선생 집을 방문하였다. 정말 도시 속에 자연처럼 다듬지 않은 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었고 감은 주렁주렁 달려있었으며 거기에 여러 종류의 새들이 와서 감을 먹거나 지저귀고 있었다. 나는 현 선생이야말로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삶을 실천하는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음은 김 선생이 나에게 보여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심에 대한 소개이다. 역지사지는 "상대편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사자성어이다.
 김 선생과 나는 서귀포 치유의  숲을 산행하다 우연히 만나고 인사를 나누면서 새로운 선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첫 만남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우리는 평생 교직에 종사한 교육동업자이고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위이나 비슷한 연령대로 인생전반을 함께한 동반자이며, 그리고 조용하면서 조신하는 성격 또한 비슷하였다. 특히 우리는 가족이 가끔씩 서귀포로 오가는 싱글족으로 가정과 시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제주의 자연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제주의 자연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김 선생은 이미 대부분 산행한 곳이고 나를 안내하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산행한 것이었다.

우리는 산행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자연스레 몇 가지 룰을 가지게 되었다. 가능한 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승용차 사용시에는 서귀포 동쪽을 가면 김 선생의 차를 이용하고 서쪽을 가면 내 차를 이용하였다. 산행중의 간식은 각자 지참하고 식사비는 번갈아가면서 계산하였다.
이와 같은 산행을 반복하면서 김 선생의 몇 가지 품성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우리가 영실코스를 탐방하고 하산하는 길에 힘들게 걸어가는 등산객을 보고 김 선생이 차를 세워 태워주는 것이었다. 그 등산객은 김 선생에게 "오늘 선생님의 선행을 자기도 어느 누구에게 선한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이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고 우리의 국민수준이 이 정도로 성숙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등산객 또한 김 선생의 선행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언술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종종 김 선생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인품에서 묻어나는 인향을 느낀다. 이와 같은 김 선생의 선행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다음은 
한라산 백록담 탐방에서 나에 대한 김 선생의 따뜻한 역지사지의 배려이다.
는 한라산 백록담 탐방을 난생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왕복 약 20킬로에 9시간여 산행을 하는 코스이다. 나는 마지막 백록담 정상 가까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때 동행한 김 선생님이 나의 가방을 메고 인도해 주었다. 평소에는 가벼운 가방이지만 힘든 시기에는 그렇게도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가방을 벗으니 훨씬 내 몸이 가벼웠다. 이튿날 아침 어제 일로 문득 송강 정철 선생의 시조가 생각났다.

이고진 저 넑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은 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라커늘 짐을 조차 지실까

노인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사는 전형적인 유교사상의 효를 강조하는 시조이다. 이튿날 김 선생을 만나 저녁식사하는 자리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이 시조를 읊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려 개념이 부족하고 배려심에 인색하다. 특히 나의 인생은 배려가 다른 무엇보다 부족하였다고 생각된다.
나는 평생의 교수직분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 봉사와 배려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정년 이후 지금은 의미있는 일 하나는 갖고 싶어 티스토리 블로그를 하고 있고 최근에 네이버 블로그 까지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글을 마치면서 지구촌의 일원인 인간에게 배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유용한 덕목이자 윤리기준의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별히 내가 지향하는 인생후반기의 귀전선린의 삶과 만남에서도 배려심은 더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참고
1. 배려는 공자 사상의 중심 개념인 인과 유관하다. "논어" '옹야편'에 '충서'가 나온다. '충'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신이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면 남도 이루어지도록 해주는 것을 말한다. '충'은 적극적이고 자기 기준으로 배려를 한다. '서'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소극적인 개념으로 관용에 해당한다.
2.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하라는 고사성어이다. 맹자의 '이루 하(離婁下)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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