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파도는 혼자가 아닌 ‘함께’의 가치를 품은 섬이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글을 시작하며,
가파도의 짧은 탐방과 사색의 시간
제주도 서귀포 혁신도시에 생활한 지 3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간 나는 제주의 산과 해안을 다니며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지냈다. 며칠 전, 서귀삼연(서귀포에서 자연스레 만난 귀한 3인 )의 김 선생님이 가족과 함께 가파도를 방문한다기에, 나도 동행하게 되었다.
교수 시절 해외 출장을 나갈 때마다 나는 항상 자료를 사전에 준비 했듯, 이번 가파도 방문에도 그런 습관을 활용하였다. 평소 숲 해설사로 활동하며 지역 풍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현 선생님이 “가파도에선 청보리, 유채꽃, 돌담, 바다, 그리고 한라산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말에 자료를 찾아보고 사전에 메모를 한 후 가파도에 올랐고, 이 작은 섬은 단순한 자연의 정취를 넘어, 통합적 감성을 자극하는 융복합의 공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섬, 큰 그림: 청보리와 유채가 빚는 초록과 노랑의 수채화
가파도라는 이름은 ‘높다’는 뜻의 ‘가’와 ‘뻗어 나가다’는 뜻의 ‘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가파도는 제주 남서쪽 모슬포항에서 배로 10여 분이면 닿는 작고 평평한 섬이었다. 그러나 가파도는 그 크기나 높이를 넘어서는 존재감을 품고 있었다. 4월 초순의 가파도는 초록 청보리와 노란 유채꽃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움직이는 수채화 같았다. 이 색의 물결은 바람에 흔들리며, 필자의 마음마저 흔들어 놓았다.
청보리의 생기와 유채꽃의 따뜻함이 만든 이 장면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문화적 경관이자, 가파도가 가진 생명의 그 자체이었다. 이 아름다움은 오롯이 가파도의 봄날에만 나타나는 환상적인 그림일 것이다.
돌담에 새겨진 시간: 경계이자 연결의 선
가파도의 작은 들판을 걷다 보면 곳곳에 자리한 밭담이 눈길을 끌었다. 제주도의 돌담과 비슷하지만, 가파도 돌담은 조금 다르다. 제주 본섬의 돌담이 바람을 막는 울타리라면, 가파도의 돌담은 소유를 경계 지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길을 이루고 있다. 단순히 쌓아올린 돌이 아닌, 사람들의 세월과 바람, 파도를 견디며 만들어진 생활의 흔적이자 공동체의 유산이다.
돌 하나하나에 깃든 삶의 무게는 그 어떤 화려한 건축물보다도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바람 속을 타고 섬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스며들고 있다.
가파도에서 바라본 제주: 산과 바다를 관조하다
가파도는 낮은 지형 덕분에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섬 어디에서든 송악산, 산방산,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가파도에서 바라본 송악산은 악어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산방산은 신비로운 전설을 품은 채 독특한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뒤로 가파도에서 바라본 한라산은 위엄보다는 너그러움으로 다가온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마치 인생을 성찰하는 자세처럼 느껴진다. 높고 큰 산이지만, 조용한 가파도에서 마주한 한라산은 어머니 품 같은 안정과 포용을 상징하고 있다.
바다 위의 잔상: 마라도까지 이어지는 상상
가파도의 남쪽 끝자락에 서면 멀리 또한 가까이 마라도가 보인다. 군함을 닮은 마라도는 그 자체로도 상징적인 섬이지만, 가파도와 함께 바라볼 때 그 의미는 더욱 확장된다.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극점의 이미지와 함께, 가파도와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마라도는 단절이 아닌 연속의 지평이다. 작은 섬들이지만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민 듯 이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 두 섬 사이에서 제주 자연의 입체적 구성과 더 깊은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가파도가 품은 메시지: 융복합의 가치, 그리고 삶의 진실
가파도가 가진 청보리, 유채, 돌담과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바다, 산의 다섯 요소는 스스로도 아름답지만, 가파도에서는 그것들이 하나의 가치로 융합되어 나타난다. 단순한 자연이 아닌, 전통과 현대, 인간과 자연,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진 융복합의 미학이다.
그것은 하나의 철학이며, 자연이 던지는 조용한 질문이다. 필자는 이 조화로움 속에서 삶의 균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파도는 우리에게 거대함보다는 소박함, 빠름보다는 느림,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이 주는 깊이 있는 울림을 느끼게 해준다.
글을 맺으며,
섬을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이번 두 시간 남짓의 가파도 탐방은 단순한 탐방이 아니라, 사색의 여정이었다. 필자는 가파도에서 제주를, 자연을, 그리고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가파도의 자연은 낮은 곳에서 바라본 높은 산, 작은 경치에서 발견한 큰 가치이다. 이는 고은층의 삶과도 연결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의 이동이다. 무엇보다 고은층에게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소확행'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가 종합한 가파도는 혼자가 아닌 ‘함께’와 "융복합의 가치'를 품은 섬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가파도를 찾게 된다면, '함께'와 '융복합의 가치'를 먼저 이해하고, 이를 느끼며 걸어보기를 바란다. 청보리의 출렁임이 가슴에 잔잔히 남는 그 순간, 우리는 삶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파도 해설
1) 가파도는 제주도에서 2.2 km 남쪽에 있는 섬으로,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이다. 섬의 면적은 마라도의 3배인 0.9 km²이고, 인구는 2014년 9월 말을 기준으로 245명이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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