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 법환포구 남쪽 바다에 자리한 범섬을 만나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바다 위에 떠 있는 살아 있는 존재, 범섬
범섬은 바다 위에 떠 있는 하나의 섬이 아니다. 그것은 깨어 있는 존재처럼 다가온다.
제주 서귀포시 법환동 앞바다에 솟아오른 이 섬은, 마치 호랑이가 엎드려 바다를 응시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법환포구 해안에서 처음 마주한 범섬은 단순한 암석 덩어리가 아니었다. 고요하면서도 긴장감이 흐르는,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파도에 맞서면서도 스스로의 리듬을 유지하는 모습은 ‘정중동’의 질서를 떠올리게 한다.
범섬은 서귀포항과 법환포구에서 가까운 무인도이다. 현무암질 지형 위에 해식 절벽과 해저 암반이 형성되어 있다. 이로 인해 독특한 경관과 높은 생태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풍수와 입지: 흐름이 머무는 자리
범섬은 풍수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라산에서 시작된 기운은 고근산을 거치며 잠시 머문다. 이후 바다로 나아가 범섬으로 이어진다. 이 흐름은 공간이 단절되지 않고 연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서귀포 혁신도시와 신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역시 이 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길지’라 부른다.
필자는 과거 국가 균형발전 정책 과정에서 혁신도시 입지 선정과 마스터플랜 심의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 속에서 확인한 것은, 좋은 입지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흐름과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이었다. 범섬은 그러한 흐름의 종착점이자 확장점이다.
지형과 생명: 숨 쉬는 섬의 구조
범섬의 지형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이 섬은 ‘큰 섬’과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에는 파식 작용으로 형성된 해식 동굴이 자리한다.
주민들은 이 동굴을 ‘큰 굴’과 ‘작은 굴’이라 부른다. 때로는 ‘큰 항문’과 ‘작은 항문’, 그리고 함몰 지형은 ‘콧구멍’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명칭은 섬을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는 제주 사람들의 자연관을 보여준다.
북쪽에는 쌍둥이 동굴이 나란히 뚫려 있다. 파도가 드나들 때마다 울리는 소리는 마치 숨소리와 같다. 그 소리는 때로는 울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순간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주체로 전환된다.
바다에서 마주한 범섬: 거리에서 깊이로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범섬은 육지에서 보던 모습과 달랐다.
더 가까웠고, 더 크게 다가왔다.
서귀포항을 출발한 배는 문섬과 섶섬 사이를 지난다. 이어 해안 절벽과 정방폭포, 외돌개를 거쳐 범섬으로 향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시선의 변화이다.
검은 현무암 절벽은 잔잔한 바다와 강한 대비를 이룬다. 절벽 위에는 낚시꾼들이 고요히 앉아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시간을 낚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범섬 주변 바다는 스쿠버다이빙 명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수온 상승과 해양 환경 변화로 생태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섬은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조용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결의 중심: 자연과 도시를 잇는 축
범섬은 단순한 섬이 아니다.
그것은 연결의 중심이다.
유람선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한라산이 서귀포를 감싸 안는다. 그 아래로 고근산과 혁신도시, 신시가지가 질서 있게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강정 해군기지가 이어지고, 그 너머로 산방산과 송악산이 보인다. 가파도와 마라도도 시야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문섬과 섶섬이 나란히 자리한다. 서귀포항과 새섬, 새연교가 이를 연결한다.
이 모든 풍경의 중심에 범섬이 있다.
한라산이 육지의 중심축이라면, 범섬은 바다의 중심축이다. 이 섬은 자연과 인간, 바다와 도시, 과거와 현재를 이어 준다.
맺음말
일상의 풍경에서 사유의 중심으로
필자에게 범섬은 일상의 섬이다. 동시에 사유의 섬이다.
서귀포 혁신도시에 머물며, 하루에도 여러 번 범섬을 바라본다. 올레길을 걸을 때도, 카페 창가에서도, 파크골프장과 체육시설에서도 이 섬은 늘 시야에 들어온다.
어느 순간부터는 중심이 바뀌었다. 내가 범섬을 바라보는 것인지, 범섬이 나를 바라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범섬은 서귀포의 눈동자와 같다.
그 눈으로 한라산을 보고, 도시를 보고, 바다를 본다.
이 섬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다.
서귀포의 숨결이며, 이야기의 중심이다.
우리가 이 섬을 어떻게 바라보고 보전하느냐에 따라, 범섬은 더 깊은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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