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고은층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와 실천 덕목으로 ‘고은구덕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고은층의 삶, 어떤 품격으로 완성할 것인가?

“노인은 도서관이자 살아 있는 보물이다.”
이 말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선 인류의 공통된 깨달음이다. 아프리카 속담에는 “노인 한 명이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불타는 것과 같다”고 전하고, 중국에는 “집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을 가진 것과 같다(家有一老 如有一寶)”는 격언이 전해온다. 서양 역시 “An old man in a house is a living treasure”라 하며, 노인을 지혜의 상징으로 여긴다.
김열규 교수는 "노년의  즐거움"에서 “노인은 가족의 역사책이며 공동체의 산 기록자”라 했다. 이는 단순한 연령을 넘어선 삶의 깊이와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평가이다. 고령층을 어떻게 대우하는가는 곧 사회의 성숙도와 품격을 드러내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오늘날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인생은 제3막으로 진입하였고, 고령층과 은퇴자층 즉 ‘고은층’은 더 이상 소극적 존재가 아닌, 품격과 지혜로 공동체를 이끄는 사회적 자산이다.
이 글은 고은층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와 실천 덕목으로 ‘고은구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고은 1덕은 말의 품격이다. 존중과 공감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말은 곧 인격이며, 언어는 관계의 씨앗이다.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는 ‘비폭력 대화(NVC)’에서 “말이 공동체를 살릴 수도, 해칠 수도 있다”고 했다. 고은층의 격려 한 마디, 다정한 칭찬은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된다. 존중과 공감의 언어는 품격 있는 인간관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고은 2덕은 회복하는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잃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회복탄력성(resilience) 이론에서 회복 능력은 훈련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걷고, 나누는 태도는 고은층의 삶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그 용기는 다음 세대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가 된다.

고은 3덕은 감성의 품격이다. 공감과 이해, 눈물과 가슴으로 품는다.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대니얼 골먼은 감성지능(EQ)이 인간관계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고은층이 보여주는 공감과 이해, 그리고 눈물은 공동체를 따뜻하게 품는 바탕이 된다. 필자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이런 나를 보고 후배 여성은 "눈물 없는 남자와는
데이트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어쨌든 감성의 품격은 삶의 울림을 만드는 힘이다.

고은 4덕은 자작의 태도이다.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실천한다.

알버트 반두라의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이론은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삶의 질에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고은층에게 자작은 경제적 독립만이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주체로서 기능함을 의미한다. 필자가 정의하는 자작의 개념요소인 자조, 자립, 자영의 삶은 고은층의 품격을 받치는 기둥이다.

고은 5덕은 배움의 지속이다. 탐구하는 고은층은 활력이 있다.

OECD는 "노년의 학습 참여가 고립과 우울을 줄이고, 사회적 연대감을 높인다’'"고 분석하였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배움을 지속하며 자연과 문화와 역사를 탐방하는 고은층은 지혜의 전도사이자, 지식의 유기체가 된다. 무엇보다 고은층의 배움은 활력을 가져다준다.

고은 6덕은 나눔의 실천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자산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상징자본’이라 설명하였다. 고은층이 가진 시간, 경험, 지혜는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사회적 자산이다. 봉사, 조언, 격려를 통해 고은층은 ‘공공 자산’으로 기능해야 한다. 나눔은 실천할 때 품격이 높아진다.

고은 7덕은 겸손과 배려이다. 관계의 깊이를 더하는 기본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타인을 ‘목적 그 자체’로 대할 것을 강조하였다. 고은층이 보여주는 양보, 경청, 인내는 세대 간 소통을 부드럽게 하고, 공동체의 갈등을 완화한다. 겸손은 단순한 덕목이 아니라, 품격 있는 관계를 위한 삶의 기본이다.

고은 8덕은 예의와 도덕이다. 일상의 삶으로 가르친다.

역할 이론은 ‘삶으로 가르치는 것이 가장 강력한 교육’이라 말한다. 고은층은 행동하는 교육자이다. 절제된 몸가짐, 정중한 인사, 도덕적 선택은 후세대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도덕 나침반이 된다. 고은층의 품격은 ‘행동하는 교과서’이다.

고은 9덕은 공공선과 사회후생의 선한 영향력이다. 사회적 덕성으로 삶을 완성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폴리스적 존재”라 했다. 고은층의 진정한 품격은 개인의 완성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기여에서 빛난다. 은퇴 후에도 봉사, 멘토링, 지역활동에 참여하는 고은층은 사회의 귀감이며,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핵심 주체가 된다.

고은층의 덕은 아름다운 유산이며, 품격 있는 인생의 완성이다.

아홉 가지 고은구덕은 단지 이상적 담론이 아닌, 일상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태도이다. 고은층은 인생의 끝자락이 아니라 성숙의 절정에서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창출할 수 있는 주체이다.
점잖게 나이 들고, 덕으로 빛나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고은층이 이 시대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며, 품격 있는 인생의 완성이다.


참고자료
1)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는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그 말 뒤에 있는 그 사람의 느낌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듣게 해 주는 대화 방법이다.
2)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뜻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시련이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마치 오뚝이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말한다. 
3) 골먼의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은 자기 인식, 자기 조절, 동기 부여, 공감, 그리고 사회적 기술이라는 5가지 영역으로 구성된다. 이 영역들은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효과적으로 관계를 맺고 협력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의미한다. 
4) 심리학에서 자기효능감(自己效能感, self-efficacy)은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이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앨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이다.
5) 피에르 부르디외는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상징적 자본'으로 보았다. 부르디외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사회적 자본, 그리고 상징적 자본으로 분류했다. 이 중에서 상징적 자본(symbolic capital)은 특정 자본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얻게 되었을 때 기능하는 자본을 의미한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은 문화적 자본의 한 형태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때 상징적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다. 
6) '폴리스적 존재'는 인간을 자연적으로 정치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존재, 즉 정치적 동물로 보는 관점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politikon zōon)이라고 칭하며, 이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고 참여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7) 고은층에 대한 추천 도서
김열규. "노년의 즐거움: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비아북. 2009. 6. 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