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에서 고은(高恩)과 자유(自由)로 산 삼 년 반: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배운 여덟 가지 삶의 자유"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서귀포에서 다시 배운 삶의 리듬
서귀포에서의 삼 년 반은 단순한 거주 기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리듬을 다시 세우는 시간이었다. 필자는 이곳에서 ‘고은(高恩)’과 ‘자유(自由)’라는 두 축으로 하루를 살아왔다.
고은은 단순히 은혜가 높다는 뜻이 아니다. 삶의 결을 낮추고 속도를 줄이며 관계의 깊이를 높이는 태도이다. 자유 또한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방임이 아니다. 덜어내고 정리하며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자율(自律)의 선택이다.
서귀포의 자연은 산과 숲, 바다와 하늘, 구름과 길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일으킨 것은 그곳에서 만난 제주 사람들이다. 나는 이곳에서 단순히 ‘자연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품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제주인이 되어 갔다.
『자연의 제주, 연제(然濟)』와 『제주의 자연, 제연(濟然)』에서 자연의 존재론과 사회화된 자연을 사유했다면, 『제주 사람, 제인(濟人)』에서는 사람을 읽는다. 이 글은 그 사유의 중심에서 ‘인간 이성근’이 서귀포에서 살아온 시간을 스스로 되돌아본 기록이다.
시절인연, 서귀포의 고은을 배우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인연(時節因緣)”처럼 만남에는 저마다의 때가 있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만난 인연, 파크골프장에서 이어진 관계, 노인복지관에서 함께한 배움, 그리고 오래된 지인들과의 재회는 우연이 아니라 준비된 시간의 열매였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늙고, 관계 속에서 다시 젊어진다. 고은층의 삶은 속도는 느리지만 온도는 깊다. 숲에서는 말없이 걷는 시간 속에서 숨을 고르고, 운동장에서는 놀이로 하루를 열었으며, 배움의 자리에서는 서로를 일으켜 세웠다.
성경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교리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일상의 인사와 안부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사람은 서로의 거울이었다. 나는 타인의 얼굴에 비친 나를 보며 조금 더 부드럽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갔다.
여덟 가지 자유, 삶을 다시 세우다
‘걷는’ 자유, 몸과 마음을 비우다
가장 먼저 배운 자유는 걷는 자유였다. 산과 숲, 바닷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을 비웠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을 정화하는 일이었다. 발걸음이 느려질수록 사유는 더욱 또렷해졌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千里之行 始於足下)”라는 말처럼 삶의 전환도 작은 걸음에서 시작된다.
‘쓰는’ 자유, 생각을 세우다
나는 매일의 사색을 글로 남겼다. 글쓰기는 기억을 구조화하는 작업이었다. 텃밭을 가꾸듯 생각도 갈고, 뿌리고, 기다려야 한다. 문장은 시간을 견딜 때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얻는다. 쓰는 자유는 곧 사유의 자유였다.
‘노는’ 자유, 관계를 회복하다
파크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놀이 속에서 우리는 나이를 잊었다. 경쟁보다 웃음이 앞섰고, 승패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인간은 ‘놀이하는 인간’, 곧 호모 루덴스(Homo Ludens)다. 놀이는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고 긴장을 풀어 주며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 준다.
‘쉬는’ 자유, 고요를 배우다
고요는 멈춤이 아니라 정돈이다. 쉬지 못하면 오래갈 수 없다. 활시위를 지나치게 당기면 화살은 오히려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치유의 숲과 자연휴양림, 그리고 조용한 카페에서 나는 덜어내는 연습을 했다. 비워 내는 시간 속에서 마음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먹는’ 자유, 절제를 선택하다
먹는 일은 본능이지만 어떻게 먹을지는 선택이다. 나는 소식(小食)으로 식사의 양을 조절했다. 절제는 구속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건강은 우연히 주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선택과 습관이 반복되어 만들어지는 삶의 형식임을 배웠다.
‘만나는’ 자유, 공감으로 숨 쉬다
관계는 소유가 아니라 나눔이다. 만남은 경쟁이 아니라 공유다.
다양한 인연 속에서 나는 혼자의 삶을 넘어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웠다. 함께 웃고, 함께 걷고, 함께 배우는 시간은 삶의 온기를 만들어 주었다.
‘자는’ 자유, 회복을 준비하다
숙면은 하루를 정리하는 의식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단순한 습관은 삶의 질서를 세워 주었다.
몸이 회복되자 마음도 회복되었다. 나는 휴식이 노동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비우는’ 자유, 삶의 순환을 이해하다
마지막으로 배운 자유는 비움의 자유였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순환이다. 하루를 잘 마치고 다시 시작하는 반복 속에서 삶의 리듬은 형성된다.
비워야 채워지고, 흘려보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순환의 시작이었다.
제인(濟人), 사람을 일으키는 다리
서귀포에서 나는 제주 사람, 곧 제인(濟人)을 만나고 함께 살아가며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제인은 사람을 일으키는 다리였다. 서로를 낮추어 서로를 세우는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에서 말하는 연제(然濟), 제연(濟然), 제인(濟人)은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자연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다시 자연을 해석한다. 그 관계는 서로 기대어 서 있는 하나의 구조다.
삼 년 반은 짧은 시간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삶의 리듬을 세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더 듣고, 더 배우며, 더 실천하려 했다. 삶의 속도를 낮추자 관계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다.
고은은 높아지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다. 자유는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삶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일이다.
맺음말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다시 길을 걷다
이 기록은 단순한 체류기가 아니다. 고은층으로 살아가는 한 인간이 서귀포의 일상 속에서 경험한 사회적 학습과 삶의 성찰에 대한 기록이다.
서귀포의 산과 숲, 바다와 하늘, 길 위를 스치는 바람,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다시 세워 주었다. 나는 그 속에서 자유란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임을 배웠다. 또한 고은은 나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서귀포에서의 삼 년 반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시간이다. 그것은 미완의 여정이지만, 그 속에서 배운 여덟 가지 자유는 앞으로의 삶을 이끌 또 하나의 이정표로 남아 있다.
서귀포의 자연이 나를 품었고, 서귀포의 사람들이 나를 세웠다. 나는 그 사이에서 오늘도 다시 조용히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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