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화순 유람선 탐방길:
지극히 낮은 곳에서 지극히 높은 곳을 바라보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바다에서 바라본 제주 자연의 새로운 시선
제주의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오름을 오르고 숲길을 걷거나 곶자왈을 탐방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바다에서 섬을 바라보는 경험이 또 다른 사유의 길을 열어 준다.
필자는 서귀포 지인 모임인 서귀삼연의 현 선생으로부터 “제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유람선은 화순이 으뜸이며, 특히 한라산이 보이는 날이면 더욱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미 재작년 서귀포항에서 범섬 일대를 둘러보는 유람선을 경험한 바 있었기에, 이번에는 제주 남서부 해안을 조망하는 화순 유람선 탐방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간 수일 동안 한림 금능에 있는 근석농장에서 봄맞이 농사 단장을 마친 뒤, 2026년 3월 15일 잠시 시간을 내어 화순항을 찾았다. 바다는 잔잔했고 하늘은 맑았다. 유람선은 화순항을 출발하여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사계리 해안, 형제섬과 송악산 일대를 돌아 다시 화순으로 돌아오는 항로였다.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제주는 섬 아래에서 섬을 올려다보는 시선이다. 이러한 시선은 육지에서 바라보는 풍경과는 전혀 다른 공간 인식을 제공한다. 바다 위에서는 해안선과 화산 지형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며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필자에게 하나의 철학적 사유를 떠올리게 했다.
“지극히 낮은 곳에서 지극히 높은 곳을 바라보다.”
바다는 섬보다 낮다. 그러나 바로 그 낮은 자리에서 우리는 한라산과 제주 화산섬의 전체 구조를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다.
성경에서도 말한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23:12)
또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은 그들이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바다는 바로 그러한 공간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큰 자연을 바라보게 하는 자리이다.
화순 유람선 탐방의 성격:
거시적 조망과 미시적 관찰의 결합
화순 유람선 탐방은 단순한 관광 경험을 넘어 자연을 바라보는 인식 방식의 전환을 제공한다. 유람선은 이동하면서 해안선을 따라 다양한 풍경을 보여 준다. 산방산이 나타나고, 이어 용머리해안의 지질 절벽이 드러나며, 사계리 해안의 어촌 풍경이 이어진다. 조금 더 나아가면 형제섬이 나타나고 송악산과 마주하게 된다.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도 시야에 들어온다.
이러한 경험은 마치 제주 자연을 한 장의 지질 지도처럼 읽어 내려가는 과정과도 같다.
유람선 탐방은 크게 두 가지 인식 방식을 동시에 제공한다.
첫째는 거시적 주사(Macro Scanning)이다. 바다 위에서는 제주 화산섬의 전체 구조가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멀리 한라산과 능선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단산이 자리한다. 동쪽으로는 범섬과 강정항의 크루즈가 시야에 들어오고, 서남쪽으로는 마라도와 가파도가 함께 보인다.
둘째는 미시적 주사(Micro Scanning)이다. 해안 절벽과 해식동굴, 어촌 마을의 풍경, 바다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 해안의 구체적인 장면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처럼 화순 유람선 탐방은 거시적 시선과 미시적 시선이 동시에 작동하는 혼합적 탐방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연제(然濟) 차원:
화산섬 제주 자연의 구조를 바라보다
화순 유람선이 화순항을 떠나면 먼저 화순 금모래해변이 시야에 들어온다. 모래사장과 현무암 해안이 어우러진 이 해변은 제주 남서부 해안의 대표적인 자연경관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산방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방산은 제주에서 보기 드문 돔형 화산체로 높이 약 39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화산 지형이다. 특히 바다에서 바라보면 산방산의 단면 구조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산방산 아래에는 용머리해안이 있다. 이곳은 화산 분출 이후 형성된 퇴적층이 바다의 침식 작용을 거치면서 형성된 독특한 지질 지형이다.
유람선이 사계리 해안을 지나면 산방산과 바다가 만나는 어촌 마을의 풍경이 이어진다. 이어 단산을 지나면 송악산 해안이 나타난다. 이곳은 마그마와 바닷물이 만나 폭발하면서 형성된 수성화산 지형으로, 해안 절벽 아래에는 여러 개의 해식동굴이 이어져 있다.
그 사이로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이러한 풍경은 제주 화산섬의 형성 과정을 한눈에 보여 준다.
따라서 유람선 탐방은 제주 자연의 기원과 구조, 즉 연제(然濟)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라 할 수 있다.
제연(濟然) 차원:
자연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인간의 방식
유람선이 지나는 송악산 해안에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군사 동굴이 남아 있다. 최근 일부 붕괴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곳은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편 송악산 둘레길에서는 관광객들이 해안 절벽을 따라 걷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송악산 해안을 돌아 형제섬 근처로 다가가면 바다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섬 사이에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낚시꾼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바다 위에서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러한 장면은 자연이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인간의 이용과 관리 속에서 새로운 공간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제연(濟然)의 의미이다. 자연은 인간과 만나면서 관리되고 이용되며 또 다른 사회적 공간으로 변화해 간다.
연계·네트워킹 차원:
제주 서남부 해안 관광벨트
화순 유람선 탐방은 제주 서남부 해안이 하나의 탐방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지역의 주요 탐방 동선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중문 관광단지 → 산방산 → 용머리해안 → 화순 해변 → 단산 → 송악산 → 대정 → 가파도 → 마라도
이처럼 제주 남서부 해안은 지질 탐방과 해양 탐방, 그리고 어촌 탐방이 결합된 탐방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 구조는 제주 관광 정책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이 지역은 단순한 탐방지가 아니라 자연과 문화, 해양 자원이 서로 연결된 복합 관광권이라 할 수 있다.
제도(濟道) 차원:
지속가능한 제주 해양관광의 과제
유람선 탐방은 제주 자연을 넓은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몇 가지 과제도 드러난다.
첫째는 해양 탐방의 환경 관리 문제이다. 탐방객이 증가할수록 해양 생태계가 훼손될 가능성이 커진다.
둘째는 해안 지질 자원의 보전 문제이다. 용머리해안과 송악산 해안은 제주 자연사의 중요한 지질 자산이기 때문에 체계적인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다.
셋째는 관광과 지역사회 사이의 균형 문제이다. 어촌 마을의 삶과 관광 개발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제주 해양 관광을 위해서는 해양 관광의 환경 관리 강화, 해안 지질공원의 체계적 보존, 어촌 공동체와 관광의 상생 구조 구축, 그리고 해양 생태 관광 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바로 지속가능한 제주, 즉 제도(濟道)의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맺음말
조망과 체험이 함께할 때 제주를 이해한다
제주 자연을 탐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바다에서 바라보는 조망의 탐방이고, 다른 하나는 땅에서 직접 걸으며 경험하는 체험의 탐방이다.
유람선 탐방은 제주 자연을 넓게 이해하게 한다. 반면 직접 걷는 탐방은 제주 자연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한다. 따라서 제주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다에서 조망하고, 땅에서 체험하며, 나아가 그 의미를 제도적 차원에서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화순 유람선 탐방은 필자에게 이러한 깨달음을 주었다. 지극히 낮은 자리인 바다에서 바라본 제주 섬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장엄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필자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큰 자연은 낮은 자리에서 더 잘 보인다."
참고자료
ㆍ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세계지질공원 안내서."
ㆍ제주연구원, "제주 해양관광 자원 연구."
ㆍ문화재청, "용머리해안 지질 조사 보고서."
ㆍ제주올레재단, "제주 해안 트레일 자료집."
ㆍ제주관광공사, "제주 관광 자원 해설 자료."










사진. 이성근. 화순 산방산 유람선에서 바라본 제주 서남부 해안 전경. 2026.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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