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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의 향기(德香): 보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 삶의 방식"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향기에서 시작된 사색은 감각에서 존재로 이어진다

최근 필자는 향기에 대한 깊은 사색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제주에서의 일상은 눈으로 보는 풍경보다 먼저 코로 느끼는 세계로 다가온다. 어느 날 저지 곶자왈에서 만난 백서향의 은은한 향기가 마음에 머물렀고, 한림 금능 근석농장의 텃밭에서는 흙냄새와 아마 나스 감귤향이 어우러져 또 다른 감각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
서귀포에서의 생활 속에서도 향기는 일상의 중심에 있었다. 아침마다 먹는 쑥의 향, 대구 홍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텃밭에서 직접 씹어 본 솔잎의 청량한 향, 올레 7길 법환포구에서 마주하는 바다의 짠한 내음, 그리고 서귀포 치유의 숲을 걸으며 깊이 들이마신 숲향까지, 이 모든 향기는 단순한 감각을 넘어 삶의 결을 이루는 요소로 다가왔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향기란 무엇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의 삶에도 향기가 있는가?”
이 질문이 바로 이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다.

자연의 향기는 존재의 근원에서 올라오는 결

향기는 자연에서 시작된다.
비 온 뒤 흙냄새는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생명의 회복을 알리는 신호이고, 숲의 향기는 치유와 안정의 언어이며, 바다의 냄새는 자유와 거친 생명력을 동시에 품고 있다.
제주에서 경험한 향기들은 특히 그러했다.
곶자왈의 향기는 원초적이고 깊었으며, 텃밭의 흙냄새는 인간의 삶이 자연에 기대어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마신 공기는 단순한 산소가 아니라 마음을 정화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이처럼 자연의 향기는 존재의 근원에서 올라온다.
그것은 꾸며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형성된 것이며,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결과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말한다.
“흙냄새 나는 사람”
“숲 같은 사람”
이 말속에는 이미 하나의 철학이 담겨 있다. 자연의 향기는 곧 진정성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삶의 향기는 몸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에서 난다

향기는 인간에게 와서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는 단순한 체취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서귀포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인향(人香)’이라는 것을 경험하였다. 서귀삼연의 김 선생과 현 선생, 서귀복연의 맹 선생과 은 선생, 신서귀삼연의 신 선생과 이 선생이 같은 모임 속에서 느낀 것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향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이는 따뜻한 향기를, 어떤 이는 단단한 향기를, 또 어떤 이는 부드러운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포항 포도사 회의로 들르는 한 식당에서 들은 한마디 말이었다.
여사장께서 오미자차를 내오며 “성은 오씨요, 이름은 미자 씨입니다”라고 말하였을 때, 그 말속에는 단순한 소개를 넘어선 언어의 향기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유머이면서도 품격이었고, 일상의 대화이면서도 따뜻한 배려였다.
또 한 번은 필자의 텃밭 사진을 보며 “고은향이 난다”는 말을 들었다. 흰머리를 바라보며 건넨 그 한마디는 단순한 외모의 평가가 아니라 삶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필자는 깨닫게 되었다. 사람의 진짜 향기는 몸이 아니라 삶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언향(言香)과 인향(人香)은 관계 속에서 퍼지는 향기

향기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퍼지고 확장된다.
말에는 향기가 있다. 이를 ‘언향(言香)’이라 한다.
좋은 말은 향기처럼 퍼져 사람의 마음에 남고, 거친 말은 냄새처럼 오래 남아 관계를 해친다. 그래서 “말에는 향기가 있다”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본질을 설명하는 말이다.
또한 사람 자체에서 나는 향기, 즉 ‘인향(人香)’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향기로운 사람은 주변을 편안하게 만들고, 함께 있고 싶은 존재가 된다.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말처럼, 사람의 향기는 멀리까지 퍼진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
결국 관계란 향기의 교류이다.
서로의 향기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공동체는 따뜻해진다.

기억의 향기는 시간과 존재를 잇는 매개

향기는 기억을 불러온다.
어떤 냄새를 맡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특정한 시간과 장소로 돌아간다.
서귀포 삼매봉도서관에서 맡은 책 냄새와 대구 서재에 깃든 묵향은 필자에게 학문의 시간과 사색의 기억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오래된 종이와 묵향, 그리고 은은히 배어 있는 먼지의 냄새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며 지식의 흔적이다.
또한 제주공항에 내렸을 때 느껴지는 제주 특유의 냄새, 그리고 서귀포에 도착했을 때 또 다르게 다가오는 공기의 향기는 공간마다 고유한 정체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향기는 시간을 저장하고 공간을 기억하게 하는 매개이다.
그래서 “냄새는 시간을 불러온다”는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경험의 진실이다.

덕의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오래 남는 것

이 모든 사색은 결국 한 지점으로 모인다.
그것은 바로 “덕의 향기(德香)”이다.
덕은 소리 없이 퍼진다.
향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가장 멀리까지 전해진다.
공자는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고 하였다.
덕을 지닌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끌어당기며, 그 영향력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향기로운 삶이란 화려한 삶이 아니다.
그것은 깊이 있는 삶이며, 소리보다 여운이 남는 삶이다.
꽃은 지지만 향기는 남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도 지나가지만, 그 사람이 남긴 향기는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은
“향기 있는 삶”이다.
보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덕의 향기를 지닌 삶이다.

맺음말
향기로 남는 인생을 위하여

필자는 제주에서의 삶 속에서 수많은 향기를 경험하며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인생은 향기처럼 살아야 한다.
드러내기 위해 애쓰기보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남는 삶이 더 깊다.
향기는 강요되지 않는다.
그것은 쌓이고, 익고, 자연스럽게 퍼진다.
마찬가지로 덕도 그렇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축적되는 것이다.
결국 인생이란 어떤 향기를 남기고 떠나는가의 문제이다.

참고자료
• 공자, 『논어(論語)』
• 노자, 『도덕경(道德經)』
• Gaston Bachelard, The Poetics of Space
• Rachel Herz, The Scent of Desire
• 제주 자연환경 및 곶자왈 관련 자료
• 필자의 서귀포 생활 및 체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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