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칠십중반의 삶에서 다시 묻는 ‘때와 타이밍’의 지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머리말: 왜 지금 ‘가보지 않은 길’인가?
칠십중반의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삶에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단순히 경험의 부족을 의미하기보다는,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미완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이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 남은 시간에 대한 태도를 함께 묻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일정한 궤적 위에서 완성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 삶은 완결된 구조라기보다 끊임없이 열려 있는 가능성의 연속에 가깝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또한 여기에 있다. 개인적 아쉬움과 성찰에서 출발하되, 이를 동시대의 고은층 세대와 공유하고 보편적 메시지로 확장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때’의 문제다
오늘날 우리는 속도가 곧 경쟁력으로 간주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빠르게 결정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성공의 조건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삶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때’를 아는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간 관리의 차원을 넘어 존재의 방식과 직결된 문제라 할 수 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언제 움직이느냐이다. 동일한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싯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점에서 ‘때를 아는 삶’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시간의 질을 중심으로 삶을 재구성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성경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삶이 일정한 시간의 질서 속에서 전개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반복되어 온 보편적 통찰이라 할 수 있다.1)
때를 안다는 것의 여섯 가지 의미
때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흐름을 읽어내는 능동적 지혜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차원에서 구체화될 수 있다.
첫째, 때를 안다는 것은 삶의 방향을 읽는 지혜이다.
이는 외부 환경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 자기 인식을 전제로 하며,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언제 움직여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둘째,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인내와 여유의 미학이다. 기다림은 소극성이 아니라 준비의 과정이며, 자연이 계절의 리듬 속에서 스스로를 완성해 가듯 인간 또한 자신의 시간을 성숙시키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셋째, 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판단의 정밀성을 의미한다. 기회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간의 선택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기회는 놓칠 수 없고(機不可失),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時不再來)”는 고전의 경구는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2)
넷째, 때를 잡는다는 것은 결단과 실행의 문제이다.
아무리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 기회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모든 선택은 책임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이는 삶의 윤리와도 연결된다.
다섯째, 때에 맞게 마친다는 것은 완결의 윤리를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시작을 중시하지만, 삶의 완성은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와 제도의 차원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여섯째, 때를 따른다는 것은 순응과 유연성의 지혜이다.
이는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조율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제주어 ‘꼬닥꼬닥’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 즉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점진적 삶과도 깊이 연결된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성찰: 아쉬움의 의미
칠십중반의 삶에 이르러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하지 못한 일들과 가보지 못한 길들, 그리고 선택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은 단순한 후회로 남기기보다는 삶을 재해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아쉬움은 부정적 감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의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놓친 ‘때’는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로부터 얻어진 통찰은 앞으로의 선택을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아쉬움은 과거를 향한 감정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자원이다. 이는 인간이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의 가치
우리는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새로운 시작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시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남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는가에 있다.
다윈은 생존의 조건을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존재에서 찾았다. 이는 인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며, 인생의 후반부 역시 새로운 적응과 전환의 가능성을 지닌 시간이라 할 수 있다.3)
따라서 ‘늦었다’는 판단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또한 또 하나의 ‘적절한 때’가 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인식하고 선택하는 태도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메시지: 때를 알고 살아간다는 것
필자의 개인적 경험은 특정 개인의 스토리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각자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시간의 리듬을 가지고 살아간다. 따라서 타인의 속도나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결국 ‘때를 아는 삶’으로 귀결된다.
탈무드의 격언인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는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모든 선택이 결국 지금이라는 순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일깨워준다.4)
맺음말: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인생은 이미 지나온 길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의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칠십중반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새로운 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삶이 끝없이 열려 있는 가능성의 구조임을 보여준다.
필자는 이제 더 이상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동시에 놓치지 않으려 한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꼬닥꼬닥’의 걸음으로, 남아 있는 시간 속에서 다시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 또한 하나의 ‘때’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각자의 길 위에서 자신만의 타이밍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각주 (Chicago Style) 및 참고자료
1) The Holy Bible, Ecclesiastes 3:1.
2) Sun Tzu, The Art of War, trans. Samuel B. Griffith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63).
3) Charles Darwin, On the Origin of Species (London: John Murray, 1859).
4) The Talmud, Pirkei Avot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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