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령을 내려놓는 법: 고은층의 열 가지 구속에서 심령의 자유로 가는 길"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머리말: 왜 지금 ‘타령’인가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돌아보면, 인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복되는 몇 가지 말의 습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고은층의 삶에서는 이러한 반복적 언어가 단순한 표현의 차원을 넘어 삶의 태도와 존재의 방식 자체를 규정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또 그 타령이냐”라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나 비판이 아니라, 인간이 특정한 생각과 감정에 갇혀 그것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심리적 상태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필자 또한 고은층의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모임과 일상적 대화를 통해 이러한 타령의 유형을 접하면서 그것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깊이 구속하는지를 체감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타령’이라는 현상을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고은층의 열 가지 타령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넘어서는 심령의 자유를 모색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타령의 개념과 인간 심리: 반복되는 말이 삶을 규정하는 방식
타령(打令)은 본래 국악에서 일정한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음악적 형식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일상 언어에서는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반복은 단순한 언어 습관을 넘어 인간의 인지와 감정, 그리고 행동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심리적 구조로 작용한다.1) 인간은 걱정, 후회, 기대와 같은 정서를 언어를 통해 조직하고 해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특정한 말이 반복될수록 그것은 점차 하나의 사고 패턴으로 굳어지게 된다. 결국에는 현실을 해석하는 틀로 자리 잡게 되며,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반복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설명하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2)
특히 고은층에 이르면 삶의 경험이 축적된 만큼 사고의 유연성보다는 고착성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타령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삶을 규정하는 인식의 틀이 되기 쉽다. 그 결과 현실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반복된 해석의 결과로 경험되게 된다.
고은층의 열 가지 타령: 구속의 유형 분석
고은층의 타령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결핍, 책임 회피, 시간 왜곡, 그리고 운명론적 인식에 기초한 반복 구조로 정리될 수 있다. 필자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를 열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결핍과 집착의 타령으로서 돈 타령, 이성 타령, 일 타령이 있다. 이는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이 현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만드는 구조를 보여준다.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삶의 현재성을 훼손한다.
둘째, 관계와 책임 회피의 타령으로는 남탓·친구 타령과 배우자·자녀 타령이 있다. 이는 삶의 책임을 외부로 전가함으로써 자기 삶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만드는 구조로 작용하고, 결국 인간을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킨다.
셋째, 시간에 갇힌 타령으로는 지난날 타령, 현재 타령, 미래 타령이 있다. 이는 과거에 대한 집착, 현재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불안을 반복함으로써 시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삶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넷째, 운명과 자아의 타령으로는 운 타령과 자기비하 타령이 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고, 존재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열 가지 타령은 서로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을 현재로부터 이탈시키고 삶의 주도권을 약화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본질을 공유한다.
타령의 본질: 왜 그것은 구속이 되는가?
타령이 구속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는 반복된 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반복된 해석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특정한 언어가 반복될수록 그것은 사고의 관성으로 굳어지고 행동의 범위를 제한하게 된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인지적 고착(cognitive fixation)과 자기실현적 예언 또는 자충적 미래예측 (self-fulfilling prophecy)의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특정한 생각이 반복될수록 그것은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을 가지게 되고, 결국 인간은 자신이 반복해온 말의 틀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3)
이 점에서 타령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이며, 그 구조는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틀이 된다.
타령에서 벗어나는 전환의 원리: 구속에서 자유로 가는 다섯 가지 길
타령의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다섯 가지 원리가 제시될 수 있다.
첫째, 수용(受容)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로서, “이미 지난 것은 흘러간 물”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첫걸음이 된다.
둘째, 책임(責任)은 삶의 주도권을 외부에서 내부로 전환하는 과정으로서, 모든 선택의 최종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이는 인간을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전환시킨다.
셋째, 현재성(現在性)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삶의 방식이다. “오늘이 곧 내일이다”라는 인식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이고 현재의 가치를 회복하게 만든다.
넷째, 겸손(謙遜)과 절제(節制)는 욕망과 비교에서 벗어나는 삶의 태도이다. “지족자부(知足者富)”라는 고전의 지혜는 가진 것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 삶의 만족도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킨다.4)
다섯째, 자각(自覺)은 자신의 언어 습관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말이 곧 사고의 구조라는 점에서 “말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는 원리는 가장 실천적인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고은층의 심령의 자유: 존재의 새로운 단계
고은층에서의 자유는 외부 조건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 상태의 전환에서 비롯된다. 이는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덜 매이는 데서 오는 자유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흔히 자유를 소유의 확대로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집착의 감소가 자유를 가져온다. 이러한 점에서 노자의 사상과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은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곧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5)
고은층의 삶은 축적의 단계가 아니라 정리와 비움의 단계이다. 이 과정에서 타령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단순한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맺음말: 타령을 멈추는 순간 삶은 달라진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변화는 가능하지만, 특히 고은층에 이르러서는 남은 시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때 반복되는 타령을 멈추는 것은 단순한 언어의 변화가 아니라 삶 전체의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성경의 말씀처럼6), 지금 이 순간은 결코 늦은 시간이 아니라 가장 적절한 시간이다. 또한 시불재래(時不再來)의 경구가 말해주듯이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타령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의 구속에서 벗어나 현재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시작한다.
각주 (Chicago Style) 및 참고자료
1) 국립국악원, 「전통음악 용어사전」, “타령.”
2) William James,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New York: Henry Holt, 1890).
3) Aaron T. Beck, Cognitive Therapy and the Emotional Disorders (New York: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76).
4) 노자, 『도덕경』, 제33장.
5) Epictetus, Enchiridion, trans. Elizabeth Carter (1758).
6) 『성경』, 전도서 3장 1절.





사진. 이성근. 영남대 캠퍼스 산책길. 2026.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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