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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아마 나스의 오중창을 듣다
근석농장에서 배우는 제문(濟文)의 삶"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꽃과 열매가 함께 익어가는 시간의 의미

제주의 봄은 유난히 천천히 찾아온다. 바람은 겨울의 흔적을 조금씩 걷어 내고, 햇살은 메마른 땅 위에 다시 생명의 결을 입힌다. 필자가 한림 금능 근석농장에서 맞이하는 5월도 그러하다. 어느 날 아침 농장에 들어서면, 노란 열매를 품은 아마 나스와 하얀 꽃향기가 동시에 시야와 후각을 채운다. 지난해의 열매와 올해의 꽃이 한 나무 안에서 공존하는 풍경은 단순한 농사의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시간에 대한 깊은 은유처럼 다가온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제주를 자연과 사람, 문화와 제도의 관계 속에서 사유해 왔다. 『제주사색』의 흐름 또한 연제(然濟)에서 제연(濟然), 제인(濟人)을 지나 이제 제문(濟文)의 단계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란 단지 예술이나 유산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태도이고, 반복되는 일상의 방식이며, 공동체가 서로를 대하는 품격이다. 그런 점에서 근석농장의 아마 나스 농사는 삶과 관계, 나눔과 회복의 문화를 다시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최근 필자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아마 나스를 수확하였다. 혼자였다면 버거웠을 일이 함께하는 손길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문득 깨닫게 된 것은, 농사란 결국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문화 위에서 완성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사색은 다섯 가지 울림으로 마음속에 남았다. 수확과 전정, 퇴비와 보식, 그리고 유통과 나눔이 서로 다른 음색으로 어울리며 하나의 화음을 이루었다. 그렇게 근석농장의 봄은 아마 나스의 ‘오중창’으로 다가왔다.

수확의 봄: 무거운 열매를 내려놓고 새로운 꽃에 집중하는 삶

아마 나스의 가장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꽃과 열매를 함께 키운다는 점이다. 지난해 맺힌 노란 열매가 여전히 나무에 달려 있는 동안, 올해의 하얀 꽃은 다시 새로운 시간을 준비한다. 그래서 농장에 서 있으면 과거와 미래가 한순간에 겹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5월의 수확은 단순히 열매를 따내는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행위이며, 무겁게 매달려 있던 삶의 짐을 덜어내는 과정이다. 열매를 오래 달고 있으면 나무는 새로운 꽃에 충분한 힘을 쓰기 어렵다. 결국 지난해의 결실을 적절한 시기에 내려놓아야 올해의 생명 또한 건강하게 이어질 수 있다.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종종 지나간 성취와 기억, 후회와 미련을 오래 붙잡고 살아간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다음 계절을 준비해야 하는 존재이다. 특히 고은층의 삶은 무언가를 더 채우는 시기라기보다, 무엇을 비우고 내려놓을 것인가를 배우는 시간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나스 수확은 단순한 농작업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조절하는 철학처럼 느껴진다.

이번 수확에서는 필자가 지인들과 함께 웃으며 열매를 땄다. 서귀삼연의 김 선생은 노란 열매를 조심스럽게 따고, 필자는 수확한 아마 나스를 창고로 옮겼다. 한림읍의 양 여사는 아마 나스의 꼭지 정리와 선별 작업을 맡았고, 신서귀삼연의 이 선생은 박스 포장 작업을 도왔다. 또한 노 대표는 음료수를 들고 찾아와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해 주었다.
그 풍경 속에는 협력과 배려가 함께 스며 있었다. 농사의 기쁨은 결국 수확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함께 땀 흘리고 서로의 손길을 보태는 관계 속에서 농사의 의미는 비로소 완성된다.

전정의 봄: 덜어냄을 통해 균형을 회복하는 문화

수확이 끝난 뒤 이어지는 작업은 전정이다. 가지를 잘라 내고 나무의 흐름을 정리하는 일이다. 처음 농사를 접하는 사람은 멀쩡한 가지를 왜 굳이 잘라 내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무는 무조건 많은 가지를 지닌다고 건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얽히고 겹친 가지는 햇빛과 바람의 흐름을 막고 병충해를 키운다.

전정은 생명을 죽이는 작업이 아니다. 더 건강하게 살게 하는 조절의 기술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이다. 이 과정은 인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 역시 너무 많은 욕심과 관계, 지나친 욕망을 붙들고 있으면 삶의 흐름이 막히기 쉽다. 결국 균형 있는 삶은 채움보다 덜어냄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사회는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라고 요구한다.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높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주 자연의 시간은 오히려 반대의 지혜를 가르쳐 준다. 바람은 지나치게 무성한 가지를 흔들고, 자연은 과도한 것을 스스로 조절한다. 아마 나스 전정은 바로 그러한 자연의 균형 감각을 인간에게 다시 일깨워 준다.

필자는 전정을 하며 삶의 인간관계 또한 떠올렸다. 오래 살수록 사람은 더 많은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서로에게 햇빛과 바람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남기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아마 고은층이 배워야 할 삶의 품격인지도 모른다. 덜어냄은 상실이 아니라 정리이며, 정리는 새로운 생명을 위한 준비이다.

퇴비의 봄: 회복과 원기 보충이 생명을 지속시킨다

수확과 전정이 끝난 나무에는 다시 거름과 퇴비를 준다.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느라 지친 나무에게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시간이다. 땅은 아무리 비옥해 보여도 계속 사용하면 힘이 약해진다. 제주 땅, 특히 근석농장의 땅은 더욱 그러하다. 결국 생명을 유지하려면 다시 채워 주고 회복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는 성장과 성과를 강조하지만, 회복의 시간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쉬지 못하고, 공동체는 서로를 돌보지 못하며, 자연 또한 끊임없이 소비된다. 그러나 회복 없는 성장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제주 자연이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무조건적인 확장이 아니라 순환과 회복의 질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퇴비는 버려진 것이 다시 생명을 살리는 과정이다. 낙엽과 부산물, 시간이 지나 쓸모없어 보이던 것들이 다시 땅의 힘이 된다. 문화 또한 그렇다. 오래된 기억과 경험, 공동체의 축적된 삶은 시간이 지나 다시 새로운 세대를 살리는 자양분이 된다. 제문(濟文)이란 결국 이러한 기억과 의미의 순환 구조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근석농장에서 퇴비를 주며 필자는 인간의 삶에도 쉼과 회복의 시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특히 고은층의 삶은 경쟁의 시간이 아니라 회복과 성찰의 시간이어야 한다. 바쁘게 살아온 세월 뒤에 비로소 자신과 주변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아마나 스는 그런 시간을 조용히 가르쳐 주고 있었다.

보식의 봄: 빈자리를 채우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지혜

농장을 오래 관리하다 보면 중간중간 나무가 죽거나 약해지는 곳이 생긴다. 특히 척박한 제주 화산토에서는 바람과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빈자리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필요한 작업이 보식이다. 죽은 자리를 새로운 묘목으로 채워 넣는 일이다.

보식은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농장의 흐름을 유지하고 공동체의 균형을 이어 가는 일이다. 하나의 빈자리가 오래 방치되면 주변까지 약해질 수 있다. 농장도 공동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농촌과 지역사회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곳곳에 빈자리가 생기고 있다. 학교가 사라지고, 마을이 비어 가며, 관계의 연결망도 약해지고 있다. 결국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것은 단순한 개발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빈자리를 다시 연결하고, 약해진 곳을 회복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필자는 근석농장에서 보식을 하며 사람의 삶 역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누구도 완전한 존재로 홀로 설 수는 없다. 어느 순간에는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 주어야 하고, 약해진 곳을 함께 지켜 주어야 한다. 제주 공동체의 오래된 문화 속에는 바로 이러한 상부상조의 정신이 살아 있었다. 예전 제주 사람들이 ‘수놀음’을 통해 함께 농사일을 도왔던 것도 결국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삶의 지혜였다.

유통의 봄: 나눔과 선린의 기쁨이 농사를 완성한다

아마 나스 농사의 마지막 과정은 유통과 나눔이다. 정성껏 키운 열매를 사람들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다. 농사의 진정한 기쁨은 혼자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 건네고 함께 기뻐할 때, 비로소 농사는 삶의 문화가 된다.

필자는 수확한 아마 나스를 육지와 제주의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공동체의 따뜻한 정서를 다시 떠올렸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음식과 수확물을 이웃과 나누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다.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관계를 유지하는 생활의 언어였고, 서로의 삶을 기억하는 문화적 표현이었다.

오늘의 사회는 효율과 경쟁을 강조하면서 점점 나눔의 감각을 잃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특히 고은층의 삶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보다, 얼마나 따뜻하게 나누며 살아가는가에 의해 더 깊이 평가될 수 있다.

아마 나스의 향기는 오래 남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던 기억은 오래 마음속에 남는다. 그래서 유통은 단순한 경제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문화이며, 삶의 선린을 이어 주는 과정이다. 농사의 끝은 판매가 아니라 나눔이고, 나눔의 끝은 관계의 회복이다.

맺음말
근석농장에서 들려오는 제문(濟文)의 오중창

근석농장의 5월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태도를 다시 배우게 하는 시간이며, 자연 속에서 인간의 문화를 성찰하게 하는 계절이다. 아마 나스의 노란 열매와 하얀 꽃은 지난해와 올해, 기억과 희망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풍경을 보여 준다.

수확은 내려놓음을, 전정은 균형을, 퇴비는 회복을, 보식은 공동체를, 유통은 나눔을 가르쳐 주었다. 이 다섯 가지 울림은 서로 다른 소리가 아니라 결국 하나의 삶으로 연결되는 오중창이었다. 봄날 근석농장에서 들려온 아마 나스의 오중창은 자연의 소리이면서 동시에 문화의 소리였다.

필자는 근석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며 제주를 다시 배우고 있다.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며, 문화는 거창한 이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삶과 관계, 노동과 나눔이 오랜 시간 축적될 때 비로소 하나의 문화가 형성된다. 그것이 『제주사색』 제4권 「제주의 문화, 제문」이 말하고자 하는 길이기도 하다.

봄날 근석농장에 스며든 아마 나스의 향기는 오래 지나도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처럼, 삶 또한 서로에게 조용한 위로와 평안의 향기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근석농장에서 배우는 제문(濟文)의 삶'과 함께한 선린(善隣)]

서귀삼연의 김 선생님, 신서귀삼연의 이 선생님, 한림읍의 양 여사님, 그리고 외가 친척 동생인 노 대표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근석농장에서 함께 나눈 시간과 인연은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삶의 문화를 다시 생각하게 한 소중한 동행이었습니다.
서로의 정과 배려 속에서 이어진 이 만남들이야말로 제문(濟文)의 삶을 더욱 따뜻하게 완성해 준 소중한 선린의 인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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