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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아가는 기쁨, 함께 익어가는 지혜: 고은층 부부의 상호학습과 소소익선의 행복”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함께 사는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배워가는 시간이다

사람은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바쁘게 살아간다. 직장과 자녀, 사회적 역할 속에서 하루하루를 채우다 보면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과 깊이 마주할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러나 정년 이후의 삶은 다르다. 고은층의 삶은 “함께 있는 시간”이 갑자기 늘어나는 시기이다. 그 시간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가까이 있을수록 서로의 다름이 더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 부부 또한 함께 평생 교수 생활을 하며 가정과 직장, 사회생활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다 정년 이후 가정 중심의 삶으로 이동하면서 부부 사이의 서로 다른 생활 습관과 언어, 행동, 시간 감각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를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 부른다. 같은 공간에 오래 살아도 사람은 원래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은층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다름 자체가 아니다. 그 다름을 어떻게 인정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느냐이다. 필자는 최근 들어 '부부는 서로를 바꾸려 하지 말고 서로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공자의 "사람은 같아질 수는 없어도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는 있다"는 말과 상통한다. 고은층 부부의 행복 또한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작은 배움 속에서 만들어진다. 필자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소소익선(小小益善)’이라 이름 지었다. 작지만 서로에게 이롭고 좋은 것들이 쌓여가는 삶이다.

서로 다른 취향을 나누며 닮아가는 삶: 반씩 나누어 먹는 행복의 철학

고은층 부부는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는 시간이 많아진다. 젊은 시절에는 각자의 일정 때문에 함께 식사할 기회조차 부족했지만, 이제는 하루의 작은 일상이 함께하는 시간이 된다.
우리 부부는 최근 바깥에서 식사하거나 차를 마실 때 서로 다른 종류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반씩 나누어 먹는다. 과거에는 가족은 커피를 좋아했고, 필자는 녹차를 즐겼다. 서로의 취향은 분명하게 달랐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의 차를 함께 마시다 보니 둘 다 커피와 녹차를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다.
외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다른 음식을 주문하고 조금씩 나누어 먹는다. 이는 단순한 음식의 교환이 아니다. 상대방의 취향과 감각을 이해하는 작은 학습 과정이다. 작은 나눔은 관계를 가볍고 부드럽게 만든다.
최근 가족은 커플컵까지 마련해 왔다. 이제는 편한 시간에 같은 컵으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차 한 잔의 시간은 짧지만, 그 짧은 시간이 하루의 정서를 바꾸기도 한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한 모습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고은층의 행복도 결국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작은 공유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함께 익어간다는 것은 같은 음식을 먹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취향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배우는 여가의 시간: 부부는 함께 움직일 때 더 건강해진다

고은층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여가이다. 정년 이후에는 시간이 많아지는 대신 삶의 리듬이 느슨해질 수 있다. 따라서 무엇을 함께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부부는 최근 함께 파크골프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스크린골프장에서 기본적인 훈련을 하였고, 이후 가까운 야외 파크골프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운동 실력은 아직 초보 수준이지만 함께 배우고 웃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특히 고은층에게 운동은 단순한 건강관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함께 걸으며 대화하고, 함께 배우며 웃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가족은 최근 커플 잠바까지 준비해 두었다. 운동하러 나갈 시간을 기다리는 모습에서 작은 설렘이 느껴진다.
노자는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고은층의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거창한 계획보다 함께 걷는 작은 습관이 더 중요하다.
필자는 파크골프장에서 종종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함께 걷는 속도를 배우는 시간이라고 말이다. 고은층의 행복은 성장보다 동행에 가깝다.

시간의 차이를 줄이며 만들어가는 생활의 리듬: 서로 다른 시간에서 함께의 시간으로

부부는 생활 리듬에서도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우리 부부 역시 오랫동안 시간 선호가 달랐다. 가족은 저녁형 인간에 가까웠고, 필자는 새벽형 생활을 오래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조금씩 아침형 생활로 수렴하게 되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기상 시간도 서로 비슷해졌다. 고은층의 삶에서는 몸의 건강뿐 아니라 생활 리듬의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매주 수요일이면 한지 그림 취미생활을 위해 외출한다. 그러면 필자는 집에서 글을 쓴다.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되 서로의 일정을 미리 공유한다. 그것은 작은 배려이자 신뢰의 표현이다.
가족은 외출할 때면 종종 필자가 좋아하는 고구마를 삶아 두고 나간다. 그러면 필자는 혼자 점심을 해결하며 그 작은 마음을 생각한다. 사랑은 거창한 언어보다 생활 속 준비된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는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은층 부부의 삶도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생활의 리듬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다.

완벽보다 적당함을 배우는 가사 분담의 지혜: 서로의 부족함을 줄이는 생활의 기술

고은층의 삶에서는 집안일 또한 중요한 관계의 영역이 된다.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누게 되었다. 가족은 식사를 담당하고, 필자는 청소와 화분 관리를 맡는다. 그러나 생활 방식은 서로 다르다. 가족은 깔끔한 정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필자는 최소한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필자는 가끔 “이제 고은층에서는 너무 완벽하게 살기보다 적당형으로 살아가자”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이 말이 가족에게 조금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얼마 전 가족은 AI 청소기를 새로 구입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새로운 기계를 익히느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났다. 결국 사람은 서로를 바꾸기보다 서로의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배우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완벽은 때로 관계를 지치게 한다. 고은층의 삶은 완벽한 정답을 찾는 삶이 아니라 서로 조금 덜 힘들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삶에 가깝다.
AI 청소기 하나에도 부부의 상호학습 과정이 담겨 있다. 이것이야말로 작은 변화가 주는 생활의 지혜이다.

맺음말
소소익선, 작지만 서로에게 이로운 삶

고은층 부부의 행복은 특별한 사건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생활 속 변화에서 시작된다. 함께 차를 나누어 마시는 일, 운동을 배우는 일, 시간을 조율하는 일, 집안일을 나누는 일 같은 사소한 행동들이 관계를 천천히 변화시킨다.
젊은 시절의 부부가 역할과 책임 중심의 관계였다면, 고은층의 부부는 배움과 조정, 그리고 적응 중심의 관계에 가깝다. 서로를 이기려 하기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Edgar S. Dunn의 사회적 학습이론처럼 인간은 관계 속에서 서로를 관찰하고 배우며 행동을 수정한다. 결국 부부의 삶도 상호학습 과정이다. 서로의 습관을 배우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며, 서로의 삶의 속도에 조금씩 맞추어 가는 과정이다.
필자는 고은층의 행복이란 결국  성장이나 소비가 아니라, 서로에게 작은 이로움이 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소소익선(小小益善)이다.
작지만 좋은 것들이 반복되는 삶, 크게 다투지 않고 오래 웃을 수 있는 삶, 그리고 서로를 조금씩 닮아가며 살아가는 삶. 고은층의 행복은 아마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용어해설]
1) 소소익선(小小益善)의 개념
소소익선은 “작지만 서로에게 이롭고 좋은 것이 쌓여가는 삶”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거대한 성공이나 과시적 행복보다 일상 속 작은 배려와 긍정적 변화가 삶의 질을 높인다는 철학이다. 특히 고은층의 삶에서는 작은 생활 습관의 변화와 관계 속 배려가 장기적인 행복을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 Edgar S. Dunn의 사회적 학습이론
Edgar S. Dunn의 사회적 학습 관점은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관찰·모방·상호작용을 통해 행동과 태도를 학습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행동은 개인 내부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사회·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한다는 것이다. 부부관계에서도 서로의 행동을 배우고 조정하며 점진적으로 닮아가는 과정이 나타난다. 이러한 상호학습은 갈등을 줄이고 관계의 안정성과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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