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처럼 흐르고, 서로를 살피며 살아간다는 것: 고은층 부부유별과 상선약수, 그리고 자유자재의 삶"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나이 들어 비로소 알게 되는 삶의 거리와 온기
젊은 시절의 부부는 함께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직장과 가정, 그리고 자녀를 키우며, 쉼 없이 하루를 살아낸다. 그러나 고은층의 삶은 조금 다르다. 속도보다 관계가 중요해지고, 성취보다 평온이 소중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오래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건강도, 감정도 쉽게 흔들린다. 이 시기에는 서로의 일상을 지켜주는 가족의 작은 배려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아침 인사를 건네는 일, 함께 식사를 하는 일,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일이 삶의 중심이 된다.
고은층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바꾸고 고치려는 삶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혜이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 개념인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오늘날 새로운 의미로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 그것은 차이의 언어가 아니라, 서로의 역할과 경계를 존중하는 삶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태도와, 세상사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자유자재(自由自在)의 마음가짐은 고은층 삶의 중요한 철학이 된다.
부부유별은 차이가 아니라 서로를 지켜주는 거리이다
부부유별은 유교의 삼강오륜 가운데 하나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남편은 바깥일을 맡고 아내는 집안일을 맡는 역할 구분의 의미가 강했다. 남자는 바깥사람, 여자는 안사람이라 불렸고, 나이가 들면 안방과 사랑채의 공간까지 구분되었다.
오늘날 이러한 역할 구분은 많이 희석되었다. 양성평등 의식이 확대되었고, 남녀 모두 사회활동과 가사노동에 참여한다. 과거처럼 일방적 역할을 강요하는 방식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렇다고 부부유별의 정신 자체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은층 세대에게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더 중요해졌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성격과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평생 살아온 생활방식과 감정의 결이 몸에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상대를 내 방식대로 바꾸고 고치려는 힘겨운 노력보다 “저 사람은 원래 저렇다”는 이해의 태도이다.
부부는 가까운 사이이지만 동시에 다른 인격체이다. 너무 가까우면 상처를 주기 쉽고, 너무 멀면 관계가 식어진다. 결국 오래 함께 살아가는 부부는 적당한 거리와 존중의 균형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오늘날 고은층 세대가 다시 이해해야 할 부부유별의 의미이다.
가족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존재가치이다
젊은 시절에는 가족을 책임과 의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생각이 달라진다. 가족은 무엇을 해주기 때문에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고은층 세대는 이 점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배우자가 곁에 있다는 사실, 자녀가 안부를 묻는다는 사실, 가까운 가족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견딜 만해진다. 반대로 가족이 없는 외로움 또한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이 들어서는 가족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 아플 때 걱정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하루의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은 결코 작은 복이 아니다. 공자는 “가까운 사람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고은층의 지혜는 잃기 전에 감사하는 데 있다.
가족은 효율의 대상이 아니다. 손익계산으로 따질 존재도 아니다. 존재 자체가 위안이며, 살아갈 이유가 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은층의 행복은 거창한 성공보다 “오늘도 함께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평범한 안도감 속에 숨어 있다.
역할은 다르나, 따지지 말고 물처럼 살아야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고 말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낮은 곳으로 흐르며, 막히면 돌아가고, 시간이 지나면 바위를 뚫는다. 강하지만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
고은층의 부부관계도 그러해야 한다. 모든 일을 똑같이 해야 한다는 평등적 사고보다 서로 잘하는 일을 나누고 존중하는 삶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식사와 빨래를 맡고, 누군가는 청소와 쓰레기를 담당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서로의 수고를 인정하고 감사하는 태도이다.
가사분담은 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배려의 문제이다. “당신이 해주어서 고맙다”는 한마디는 오랜 세월의 피로를 녹인다. 반대로 작은 일에도 서운함과 비교가 쌓이면 관계는 쉽게 메마른다.
물은 자신을 드러내며 흐르지 않는다. 묵묵히 제 길을 간다. 고은층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친 주장과 고집은 관계를 지치게 만든다. 조금 양보하고, 조금 돌아가며, 조금 낮아질 때 오히려 삶은 편안해진다. 상선약수의 지혜는 결국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한 철학이다.
지나간 일은 흘려보내고, 고치지 못할 것은 놓아두어야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자주 떠올린다. 서운했던 일, 억울했던 일, 후회되는 일이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에 오래 묶여 있으면 현재의 삶이 무거워진다.
'세월은 약'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과거를 놓지 못하면 세월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된다. 이미 끝난 일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결국 자기 마음만 상하게 된다. 비틀스의 노래 “Let it be”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억지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순리에 맡기고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위로의 메시지가 사람들의 삶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은층 세대는 상대를 고치고 바꾸려는 집착을 줄일 필요가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오래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도 끝까지 상대를 고치고 바꾸려 하면 서로 지치고 힘들게 된다.
물은 억지로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 막히면 돌아간다. 고은층의 지혜도 여기에 있다. 바꾸고 고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붙들지 않는 태도, 놓아야 할 것은 놓아주는 태도가 마음의 평안을 만든다.
사람마다 '역린'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용에게는 건드리면 반드시 화를 내는 거꾸로 난 비늘, 곧 역린(逆鱗)이 있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듣기 싫은 말이 있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정의 지점이 있다.
팔꿈치를 치면 자동으로 팔이 올라가듯 사람의 감정도 때로는 이성보다 먼저 감정이 반응한다. 오래된 상처나 자존심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고은층 부부는 서로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래 함께 살았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의 상처는 더 깊다. 작은 농담도 반복되면 비수가 된다. 반대로 “수고했어요”,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같은 짧은 말은 관계를 따뜻하게 만든다.
결국 행복한 고은층의 부부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서로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며, 최소한의 배려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삶의 후반부는 거창한 사랑보다 작은 배려가 관계를 지탱한다.
맺음말
자유자재의 삶은 내려놓을 줄 아는 데서 시작된다
자유자재란 마음먹은 대로 거침없이 살아가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자재는 욕심대로 사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집착과 분노, 후회와 억지를 내려놓을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고은층의 삶은 성장의 시대를 지나 성찰의 시대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 보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많이 소유하는 삶보다 편안하게 살아가는 삶이 더 소중해진다.
부부유별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질서이며, 상선약수는 부드럽게 흐르며 함께 살아가는 지혜이다. 그리고 자유자재는 세상사에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태도이다.
결국 은혜받은 고은층은 특별한 성공 속에 있지 않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지나간 일을 흘려보내고, 작은 말 한마디를 따뜻하게 건네는 일상 속에 있다.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되 이웃
을 살리는 삶, 그리고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다. 아마 그것이 고은층 세대가 마지막으로 도달해야 할 인생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사진. 이성근. 위 사진 123 서귀포 보목포구에서 본 한라산과 섶섬, 아래 사진 4는 서귀포 KAL호텔에서 본 문섬, 아래 사진 6은 서귀포 강창학경기장에서 본 범섬 전경. 202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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