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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치의 여섯 얼굴
Six Value–J로 읽는 제주"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 전 대구경북연구원장


제주를 여섯 개의 가치로 읽다

제주는 하나의 섬이지만, 하나의 의미로 설명되기 어렵다.
자연과 사람이 겹쳐 있고, 전통과 세계가 교차하며, 거주와 체류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 섬은 단일한 언어로 규되기보다 여러 가치가 복합적으로 연동하는 공간이다.
이 글은 제주의 본질과 가능성을 여섯 개의 핵심 가치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필자가 제안하는 Six Value–J는 단순한 분류 체계가 아니라, 제주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지속하기 위한 하나의 인식의 틀이자 사유의 지도이다.

연제(然濟): 자연 그대로의 제주, 스스로 존재해 온 섬

연제는 인간의 의도 이전에 존재해 온 제주, 곧 자연 그 자체로서의 제주를 뜻한다.
한라산의 숲과 곶자왈의 생태, 오름과 용암지형, 그리고 섬을 둘러싼 바다는 의도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빚어낸 실체이다.
제주의 자연은 인간을 위해 준비된 무대가 아니었으며, 스스로의 질서와 리듬 속에서 생명과 생태를 유지해 왔다.
연제의 가치는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고,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존재이다.
이 자연이 온전히 살아 있을 때, 제주는 비로소 제주다워진다.

제연(濟然): 인간과 제도가 개입한 자연, 제주다움의 보전

제연은 연제 위에 인간의 손과 제도가 더해진 자연이다.
탐방로가 놓이고 인프라가 형성되며, 이용과 보전이 동시에 작동하는 지점에서 제연의 문제의식은 시작된다.
제연의 핵심은 개발과 보존의 이분법이 아니라, 제주다움을 해치지 않는 개입의 수준과 방식에 있다.
자연을 소비하지 않으면서 이용하고, 훼손하지 않으면서 접근하는 절제된 지혜가 요구된다.
제주는 개발을 멈출 수는 없지만, 제주다움 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제인(濟人): 섬의 힘든 조건 속에서 함께의 가치로 살아낸 사람

제인은 제주에 사는 사람들의 기질과 삶의 태도, 그리고 관계의 방식이다.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과 척박한 자연, 거듭된 외세의 역사 속에서 제주 사람들은 강인함과 자립성을 길러 왔다.
동시에 마을 단위의 연대와 이웃을 중시하는 생활문화는 제주 공동체의 중요한 기반이 되어 왔다.
오늘의 제주는 이주민의 증가로 더 이상 단일한 정체성의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제인의 가치는 배타성이 아니라 포용이며, 닫힌 정체성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삶의 방식에 있다.

제문(濟文): 언어와 지명, 여성과 해녀가 빚어낸 문화의 결

제문은 제주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 이루어진 고유한 문화이다.
제주어와 지명에는 자연을 인식하는 고유한 감각이 스며 있고, 여성과 해녀의 삶은 생존과 노동, 돌봄의 가치를 독특하게 드러낸다.
제주의 문화는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빠르게 소비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제문은 과거를 고집하는 문화가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살아 움직이는 문화이다.
이 문화가 존중될 때, 제주는 관광의 유일한 무대가 아니라 독특한 가치 있는 삶의 공간으로 남는다.

제세(濟世): 세계로 열린 제주, 특별자치의 실험 공간

제세는 제주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다.
국제학교와 외국인 거주, 국제회의와 다양한 교류는 제주를 국내 관광지를 넘어 세계적 생활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특별자치도라는 제도적 실험은 제주에 더 많은 자율과 함께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
제세의 가치는 세계화를 모방하는 데 있지 않고, 제주 고유의 가치를 지키며 세계와 연결되는 데 있다.
제주는 주변부가 아니라,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섬이다.

제휴(濟休): 휴식·휴양·치유의 섬, 제주가 제안하는 미래

제휴는 제주가 제공하는 쉼의 가치이다.
단기 여행을 넘어 장기 체류와 정착으로 이어지는 제주살이는 삶의 속도를 낮추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게 한다.
숲길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의 리듬을 자연에 맞추는 경험은 현대인의 수고와 피로를 조용히 치유한다.
제휴는 소비되는 휴양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되찾는 휴식이다.
이 가치가 지속될 때, 제주는 머무는 섬을 넘어 다시 살아나는 섬이 된다.

여섯 가치가 만나 새로운 제주가 된다

연제·제연·제인·제문·제세·제휴, 이 여섯 가치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사람과 문화를 낳고, 문화는 세계와 연결되며, 쉼은 다시 삶을 일으킨다.
Six Value–J는 제주를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제주를 살아가고 지켜 나가기 위한 하나의 제안이다.
이 여섯 가치가 균형을 이룰 때, 제주는 개발과 보존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삶의 섬으로 거듭날 것이다.

* 이 글은 필자가 제주연구원에서 발표한 「제주발전과 제주연구원의 역할」 특강 자료(2023. 8. 30)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제주의 머귀나무(위 사진 3)에 대한 소개*
지난 26일 목요일, 강파장 B1번 홀에서 함께 라운드를 하던 지인 한 분이 ‘머귀나무’ 앞에서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소리를 낸 뒤, 필자에게 그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주의 머귀나무에는 굵고 단단한 가시가 돋아 있다. 이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세우는 어머니의 마음을 닮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제주에서 머귀나무는 강한 바람과 척박한 땅에서도 묵묵히 자라나는 성질로 인해 어머니의 인내와 보호를 상징해 왔다.  향이 짙은 잎과 열매는 음식과 약으로 쓰이며,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상징성은 자식의 예를 기리고 부모의 덕을 드러내는 자리에서 머귀나무를 상장대로 사용하는 관습으로 이어졌다. 이는 제주가 자연을 매개로 효와 돌봄의 가치를 전해 온 문화적 기억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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