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멍청한 참깨농사와 지나치게 계산하는 사람: 제주 언어가 가르쳐주는 삶의 균형"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서귀포에 머문 지도 어느덧 네 해가 되었다. 그동안 '서귀삼연', '서귀복연', '신서귀삼연', '푸른 파골 클럽'을 비롯해 여러 인연을 만나며, 말과 대화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배워왔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오래 남는 말들이 있다.
최근 금능 근석농장에서 필자의 서툰 농사일을 도와주는 한 여성 농부를 만났다. 올해 참깨농사가 잘되었다며 환하게 웃던 그분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제주에는 멍청한 사람이 참깨농사짓는다는 말이 있어요.”
처음엔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말에는 세월과 경험이 녹아 있었다.
그 말을 곱씹는 동안, 서귀포 생활 초기에 들었던 또 다른 말이 떠올랐다. '서귀삼연'의 김 선생님과 지인 한 분과의 대화에서 들었던 말이다.
“제주에서는 지나치게 계산하는 사람을 여산쟁이라고 불러요.”
오늘 새벽, 이 두 말이 문득 나란히 떠올랐다. 단순한 농사 경험을 넘어,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한 질문이 숨어 있는 언어임을 새삼 느꼈다.
그 깨달음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이렇게 글로 남기고 이를 티스토리에 공유하고자 한다.
**본문**
손이 많이 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 “멍청한 사람이 참깨농사짓는다”
제주에서 전해 내려오는 “멍청한 사람이 참깨농사짓는다”는 말은, 겉으로는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실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참깨농사는 씨를 뿌리고 잡초를 매며, 비바람을 견디고, 수확까지 수차례 손을 보태야 하는 노동집약적 농사다. 결과 역시 늘 예측이 어렵다.
그래서 이 표현에는 계산보다 정성과 책임을 우선하는 사람, 효율보다 과정의 진실함을 중시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즉, 이 말은 어리석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해야 할 일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주는 은근한 인정이며, 제주인의 삶의 태도가 스며 있는 언어다.
지나치게 계산하려는 태도, “여산쟁이다”
반면 “그 사람 지나치게 여산쟁이다”라는 말은, 모든 일을 손익 계산으로 재며, 이득이 확실해야 움직이는 사람을 은유하는 표현이다. 이는 제주 사회에 오래 뿌리내린 품앗이 문화와 공동체 정신과 대비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너무 계산에만 익숙해지면 관계가 메말라지고, 마음의 여지가 사라진다는 경계다.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와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여유
제주 사람들의 오래된 농사말에는 “일은 해두면 언젠간 말이 된다”는 믿음이 배어 있다. 참깨농사처럼 수익 대비 비효율이 뻔해도, 누군가는 해야 하고,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을 제주 사람들은 표현과 달리 속으로는 존중한다.
그리고 계산만 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또 다른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삶에는 경제적 계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오래된 지혜를 보여준다.
두 언어가 지켜온 공동체의 균형
이 두 말이 한 사회 안에서 공존한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깊다. 하나는 힘든 일을 자처하는 사람을 향한 격려이고, 다른 하나는 계산과 효율만 따지는 태도에 대한 경고다.
즉,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계산하되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균형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제주인의 생활 지혜다.
오늘의 교훈, 우리는 어느 쪽에 서 있는가?
오늘날 사회는 효율, 생산성, 비용 대비 편익이라는 계산 방식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관계조차 ‘투자 대비 이익’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이 두 제주의 언어는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계산보다 진심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조용한 물음이다.
때로는 ‘멍청해 보이는 선택’이 더 깊은 인간성과 공동체의 토대를 만든다는 통찰이다.
삶은 계산이 아니라 축적된 마음의 향기이다
참깨에서 짜낸 참기름 한 방울에는 수십 번의 손길과 기다림, 그리고 자연 앞에서의 겸손이 스며 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기름 한 방울에도 시간과 생명을 느끼며 고마움을 담았다.
사람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관계의 깊이, 신뢰, 존중과 온정은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마음에서 자라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계산을 넘어 향기를 지닌 삶이 된다.
삶은 언제나 절반은 계산이고 절반은 여유다
결국 “멍청한 사람이 참깨농사짓는다”와 “지나치게 여산쟁이다”는 모순된 말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잃지 말라는 지혜다.
아무 계산 없이 희생하는 사람도 오래 버티기 어렵고, 손해 한 번 보지 않으려는 사람도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며,
때로는 계산을 내려놓고, 때로는 냉철하게 판단하며, 두 언어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지는 듯 보이더라도 남는 삶이 있고, 이기는 듯 보이더라도 잃는 관계가 있다.
그 사이의 지혜가 한 사람의 품격과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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