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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해림에서 만난 신제인(新濟人)의 삶: 유유자작(悠悠自作)의 질서와 가정육림(家庭育林)의 길”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자연 속 쉼터에서 만난 살아 있는 삶의 교훈

최근 필자는 서귀포 파크골프장에서 만난 지인의 안내로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1493번지 또는 서귀포시 평화로 319번길 153번지'에 위치한 전원 속 가족쉼터 ‘청산해림(靑山海林)’을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가족쉼터 이해 차원의 방문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과 고은층(高恩層) 삶의 태도, 그리고 고은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는 예상보다 깊은 울림을 남겼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래 기억될 장소였고, 잠시의 만남이었지만 긴 여운을 남긴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흔히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더 소유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남기며,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청산해림의 두 고은 부부는 후자에 가까웠다. 그들의 삶은 단순한 전원생활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삶의 목적을 잃지 않는 실천의 시간이었다.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되 주변을 살리는 삶이었고, 성경의 “나무는 그 열매로 알리라”는 말씀처럼 삶의 결과가 조용히 증명되는 시간이었다.

필자는 제주사색 제3권 『제주 사람, 제인(濟人)』에서 제주 자연 속에 뿌리내리며 새로운 관계와 삶의 질서를 형성해 가는 사람들을 ‘신제인(新濟人)’이라 부르고자 하였다. 청산해림의 고은 부부는 바로 그 전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되었다. 자연의 제주인 연제(然濟)가 생활 속 제연(濟然)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사람의 태도와 관계의 방식인 제인(濟人)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그곳에서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창부수와 부부유별의 현대적 실천: 함께 결정하고 서로 역할을 나눈 삶

청산해림의 시작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순(耳順)의 나이에 이루어진 결단이었다. 도시적 삶의 익숙함을 뒤로하고, 자연의 제주와 제주의 자연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어느 한 사람만의 결정이 아니었다. 남편이 앞장서고 아내가 함께 따르는 전통적 의미의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있었고, 동시에 현대적 의미의 부창부수(婦唱夫隨) 또한 존재하였다.

오늘날의 부부는 단순히 역할을 구분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의 차이와 비교우위를 인정하고 역할을 조정하는 동반자적 관계에 가깝다. 청산해림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정원 관리와 전정에는 아내의 세심함이 강점이 되었고, 잔디 관리와 전체 조경의 유지에는 남편의 성실함이 중심이 되었다. 방문한 날에도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은 쉬지 않고 잔디밭의 잡풀 제거에 몰두하고 있었다. 넓은 정원 어디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특히 제주 특유의 기후 속에서 잡풀 없는 잔디를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하루의 반복된 관리와 인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중용』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같지 않으나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다. 청산해림의 고은 부부는 바로 그런 관계에 가까워 보였다. 역할은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다. 속도는 달랐지만 방향은 같았다. 그렇게 27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하나의 전원 속 가족쉼터가 완성되었다.

목적 있는 삶과 가정육림의 실천:
나무를 심듯 가족의 미래를 키워내다

청산해림은 단순한 전원주택이 아니었다. 산촌의 한적한 풍경 속에 자리한 그곳은 마치 편안한 외갓집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본채와 별채, 정원은 물론 돌과 나무, 꽃까지도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간 전체에서 느껴지는 ‘목적 있는 삶’의 흔적이었다. 사람은 흔히 은퇴 이후를 쉼의 시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 부부에게 고은층은 멈춤의 시간이 아니라 또 다른 창조의 시간이었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은 더욱 특별하였다. 산방산과 송악산, 단산과 수월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멀리 보이는 자연의 질서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이 스스로 형성한 연제(然濟)의 세계였다. 그러나 청산해림은 그 자연을 단순히 소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을 생활 속으로 받아들이고 관계 속에서 재구성하였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사회화인 제연(濟然)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침 방문한 시기에는 청산해림의 인근 메밀밭에 하얀 메밀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80대 중반의 남편은 “메밀밭의 달밤이 참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이에 함께 있던 고은의 아내는 “달밤보다 메밀밭의 풀벌레 소리가 더 아름답다”라고 답하였다. 필자는 그 짧은 대화 속에서 고은 부부의 삶의 깊이를 보았다. 젊은 시절에는 눈으로 풍경을 보지만, 나이가 들면 귀로 계절을 듣게 된다. 이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삶의 감각이 자연 속으로 스며든 결과이다.

동양의 옛말에 “수처작주 입처개진(水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 있는 자리마다 진실하라는 뜻이다. 청산해림의 삶은 바로 그러한 태도에 가까워 보였다.

외부성의 내부화와 긍정의 태도:
자연을 받아들인 사람의 마음가짐

청산해림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의 외부성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었다. 자연을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몸과 삶 속에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특히 6월이면 청산해림의 정원에 식재된 소나무의 새 솔잎으로 솔식초를 담가 상시 복용한다는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연의 흐름을 건강과 생활 속으로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최근 필자 또한 한림  금능에서 관리하는 근석농장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소나무  솔잎을 채취하여 솔잎가루를 만들어 복용하려던 차에 더욱 관심이 컸다.
그래서 필자는 지인과 함께 올 6월 다시 방문하여 솔식초 담그는 과정을 배우기로 약속하였다. 단순한 건강법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철학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최근 한쪽 대표께서 잠시 신체적 이상이 생겼으나, 이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를 듣고 크게 놀랐다. 더 나쁜 상황과 비교하며 현재를 감사히 받아들이는 긍정적 태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 로마서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인내를 이루는 줄 앎이라”는 구절이 있다. 삶의 깊이는 결국 어떤 조건을 가졌느냐보다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은층의 삶은 결국 마음의 방향이 결정한다. 같은 풍경을 보아도 누군가는 불평하고, 누군가는 감사한다. 청산해림의 두 고은 부부는 후자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들의 공간은 단순한 전원주택이 아니라 마음의 정원처럼 느껴졌다.

자연 속에서 길러낸 가족의 품격:
자녀교육과 관계의 성공

청산해림의 삶은 결국 가족 안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필자 일행이 처음 도착했을 때 잔디밭에서 능숙하게 예초 작업을 하던 중년 남성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에서 활동하는 국제변호사인 큰사위였다. 매우 예의 바르고 조용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사회적 지위보다 삶의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두 고은층 부부는 1남 2녀를 두었다고 하였다. 아들은 천주교 사제이고, 큰사위는 국제변호사이며, 작은사위는 의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더 주목한 것은 직업 자체보다 가족관계의 분위기였다. 자녀들이 부모의 삶을 존중하고, 부모 역시 자녀의 삶을 과도하게 간섭하지 않는 관계의 균형이 느껴졌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인생오계(人生五計) 가운데 고은층의 ‘노계(老計)와 사계(死計)’를 강조해 왔다. 특히 고은층에게는 “나남 버비 가자”의 삶이 중요하다고 말해 왔다. 나남은 나누고 남기는 삶이고, 버비는 버리고 비우는 삶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가자”는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의미한다.

청산해림의 두 고은 부부는 이미 이러한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아들이 사제의 길을 걷기에 청산해림과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자산은 두 딸 가족에게 미리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다. 재산을 움켜쥐기보다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선택이었다. 이는 단순한 상속의 문제가 아니다. 삶을 미리 정리하고 지속가능한 청산해림을 설계한 지혜이다.

맺음말
신제인(新濟人)의 삶에서 읽는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

청산해림 방문은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진 짧은 만남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삶의 태도와 관계의 방식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필자는 그곳에서 단순한 전원생활이 아니라 제주에 뿌리내린 신제인(新濟人)의 모습을 보았다.

제주의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자연은 사람의 삶의 속도를 바꾸고, 관계의 방식을 바꾸며, 결국 사람의 품격까지 바꾸어 놓는다. 연제(然濟)의 자연이 제연(濟然)의 생활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제인(濟人)의 삶과 제문(濟文)의 문화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제주가 가능해진다.

청산해림은 거창한 철학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법, 가족과 조화를 이루는 법, 그리고 삶을 미리 정리하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법이 조용히 담겨 있었다. 결국 제주다운 미래는 거대한 개발의 언어보다 이러한 삶의 방식 속에서 더 오래 지속될지도 모른다.

노자는 “지족자부(知足者富)”라 하였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는 뜻이다. 청산해림의 고은 부부는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많이 가진 삶보다 잘 살아낸 삶, 빠르게 성공한 삶보다 오래 아름답게 지속된 삶의 의미를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후기]
이 글을 쓰고 티스토리 블로그에 올린 뒤, 다시 ‘청산해림’이라는 이름을 되새겨 보게 되었다. 문득 ‘청산’은 고은 남편의 아호이고, ‘해림’은 고은 여성의 아호로서,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두 분을 ‘청산 선생’과 ‘해림 선생’으로 호칭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처럼 이름 하나에도 삶을 함께 나누는 공유의 철학과 관계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사진. 이성근. 청산해림 전경. 2026. 5. 22.

사진. 청산 선생. 별채로 가는 길과   메밀밭 풍경. 2026.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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