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便)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 고은층의 팔복(八福)과 나만의 복된 날(福日)”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헬스장에서 들은 한마디, 삶의 정답을 다시 묻다
필자는 평소 거의 매일 헬스장을 찾는다. 운동은 이제 단순한 건강관리를 넘어 하루의 리듬을 다듬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며칠 전 운동을 마치고 자주 마주치는 허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필자가 무심코 “세상에는 정답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분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편하게 사는 게 정답이지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간은 결국 편안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생은 마음 편히 살기 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는 성취가 삶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고은층의 나이가 되면 삶의 기준은 달라진다. 이제는 “얼마나 편안한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두고 “팔자가 좋다”라고 말한다. 그 말속에는 큰 욕심 없이도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편안함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필자는 고은층의 삶에서 말하는 이 ‘팔자’를 여덟 가지 복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를 ‘고은층의 팔복(八福)’이라 이름 붙였다.
복은 하늘이 내려주는 선물만은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 가는 몫도 크다. 또한 혼자 누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웃과 나눌 때 복은 더욱 깊어진다. 이제 고은층의 여유는 자신만의 복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데 있다. 필자는 이를 ‘고은층의 복된 날 또는 복날’이라 부르고 싶다. 이는 절기의 복날이 아니라, 하루하루 스스로 삶의 복을 만들어 가는 날이라는 뜻이다.
편안함의 철학, ‘편(便)’이라는 글자 속에 담긴 삶의 이중성
‘편하다’의 한자는 '便'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글자가 ‘편할 편’이면서 동시에 ‘대소변 변’으로도 읽힌다는 사실이다. 결국 인간의 편안함은 거창한 철학 이전에 몸의 순환과 일상의 평온에서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단순한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잘 먹는 것보다 잘 소화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오래 자는 것보다 깊이 자는 일이 더 소중해진다. 멀리 가는 능력보다 혼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일이 더 감사해진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부유하다(知足者富)”고 했다. 공자 또한 “군자는 평안하되 교만하지 않다(君子泰而不驕)”고 말했다. 결국 편안함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질서와 균형의 문제라는 뜻이다.
현대인은 지나치게 바쁘다. 버트런드 러셀은 현대인이 분주함에 중독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쉬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편안함을 태만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존 러벅은 “쉼은 게으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쉼은 멈춤이 아니라 다시 걷기 위한 숨 고르기이기 때문이다.
고은층의 삶은 이제 속도의 경쟁이 아니다. 오히려 속도를 늦출 때 삶의 깊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며 다투지 않는 삶, 소요유(逍遙遊)처럼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고은층의 지혜일 수 있다.
고은층의 팔복(八福), 편안함에도 여덟 가지 얼굴이 있다
첫째는 몸의 복이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병을 안고 살아간다.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고은층의 건강은 “병이 없는 상태”라기보다 “병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상태”에 가깝다. 아프지 않은 하루는 그 자체로 복이다.
둘째는 마음의 복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근심 없는 사람은 드물다. 가족 걱정, 건강 걱정, 관계 걱정, 미래 걱정이 늘 따라다닌다. 그래서 마음의 복은 걱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걱정을 지나치게 키우지 않는 능력이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셋째는 잠의 복이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 자다가 여러 번 깨기도 한다. 그래서 고은층에게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회복의 시간이다. “잠이 보배”라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실감 난다. 원하는 만큼 편히 잘 수 있다는 것은 큰 자유이다.
넷째는 순환의 복이다.
젊을 때는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이제는 먹는 일도 조심스럽다. 결국 건강의 핵심은 잘 먹고 잘 배출하는 데 있다. 몸의 순환이 막히면 삶의 기운도 막힌다. '便'이라는 글자의 의미가 새삼 깊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섯째는 이동의 복이다.
혼자서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복이다. 거동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과도 연결된다.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고, 혼자 걸을 수 있으며,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 능력이 아니라 삶의 자율성이다.
여섯째는 이용의 복이다.
현대사회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이다. 키오스크 하나 사용하지 못해 당황하는 고은층도 적지 않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각종 생활기기를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중요한 생활 능력이 되었다. 문명의 변화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지 않는 것도 복이다.
일곱째는 가족의 복이다.
고은층의 가장 깊은 걱정 가운데 하나는 가족 문제이다. 가족이 잘 살아도 걱정이고, 힘들어도 걱정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특히 부모와 자녀 모두 서로 독립된 인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관계는 오히려 편안해진다.
여덟째는 경제의 복이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은 삶의 평안을 만든다. 쓰고 싶은 것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유, 이웃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자주성은 고은층에게 매우 큰 복이다.
이 여덟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경제가 흔들리면 잠이 줄어든다. 반대로 마음이 편하면 작은 병도 견딜 힘이 생긴다. 결국 편안함은 하나의 조건이 아니라 삶 전체의 균형에서 나온다.
편안함과 안일함 사이, 쉼은 필요하지만 경계도 필요하다
그러나 동서양의 철학은 한편으로 지나친 편안함을 경계하기도 했다.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말처럼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한다는 지혜가 있다. 성경 "잠언"에서도 “어리석은 자의 안일함은 자기를 멸망시킨다”라고 말한다.
서양에서도 “Comfort is the enemy of progress”라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지나친 안락함은 인간을 정체시키고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존 A. 셰드 역시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배는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쉼은 필요하지만 안일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편안함은 삶의 균형이어야지 삶의 목적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은층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속도를 늦추어야 하지만 삶의 의미까지 놓아서는 안 된다. 필자는 가능한 한 운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글을 쓰고, 봉사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몸은 늙어도 삶의 방향까지 늙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요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며 자주 느낀다. 사람은 결국 움직여야 살아 있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쉼 사이에서 인간은 가장 건강해진다.
맺음말
하루하루 스스로의 ‘복된 날, 복날’을 만들어 가는 삶
고은층의 행복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아침에 몸이 크게 아프지 않은 것, 밥을 맛있게 먹는 것, 편히 잠드는 것, 혼자 산책할 수 있는 것, 가까운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이런 일상이 곧 복이다.
사람은 젊을 때는 성공을 좇아 살아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결국 편안함이 삶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편안함이 게으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균형이며, 욕심을 내려놓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내면의 자유이다.
노자는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부유하다”라고 했다. 달라이 라마 또한 행복은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결국 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내 곁에 있는 평범한 일상을 감사할 수 있을 때 삶은 조금씩 편안해진다.
이제 고은층의 삶은 남과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다. 스스로의 복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 몸이 조금 편하고, 마음이 조금 평안하며, 잠시라도 웃을 수 있었다면 그것이 바로 나만의 복날이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지혜는 아주 단순한 말속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편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답일 수 있다.”
참고자료
1) 노자, "도덕경", 제33장.
2) 공자, "논어" 자로 편".
3)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 1932.
4) 존 러벅, "The Use of Life", 1894.
5) "성경, 잠언" 1장 32절.
6) 존 A. 셰드, 명언집 인용.
7) 달라이 라마, 행복 관련 연설 및 저술 내용 종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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