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에서 만난 고은층이 말해 주는 사소한 선택과 관계의 품격"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삶의 격은 사소한 순간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사람의 품격은 거창한 언어에서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태도에서 형성된다. 어떤 사람인 가는 이력서나 경력보다, 일상을 함께하는 시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잠깐의 선택이 요구되는 순간은, 한 인간이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세상과 어떤 거리를 유지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필자는 제주 서귀포에서 삼 년 반을 고은층으로 살아왔다.
오름을 걷고, 올레와 둘레길을 따라 계절을 건너며, 한림 금능의 근석농장에서 텃밭을 가꾸었다.
강창학과 칠십리 파크골프장에서 놀이를 나누었고, 노인복지관 교실에서 다시 배우는 기쁨을 누렸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과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 소소한 만남 속에서 마음에 남은 장면이 하나 있다.
누가, 어떤 태도로 마무리를 하는가라는 문제였다.
그것은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품격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말없이 이루어지는 선택의 태도는 마음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여러 지인들과의 만남 이후에 마주한 계산의 방식에 관한 경험이다.
필자가 만나는 지인들 대부분은 헤어질 때가 되면 계산을 두고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는 공통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누가 먼저 낼 것인가를 두고 서로 양보하지 않는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최근에는 그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말없이, 소리 없이 먼저 계산을 마쳐 두는 경우가 늘었다. 자칫하면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라, 다음 만남에서는 괜히 긴장하며 선수를 쳐야 할 때도 많다.
여기서 소개하고 싶은 것은 그중 한 지인의 계산 방식이다.
그는 늘 필자가 주문을 마치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무 말 없이 계산을 끝내 놓곤 했다.
식사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계산대로 향하려는 필자에게 돌아오는 말은 언제나 같았다.
“이미 했습니다.”
그 말에는 설명도, 강조도, 생색도 없었다. 마치 식사의 한 과정처럼 자연스러운 마무리였다.
그의 태도는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떻게 했는가’에서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순간 오래된 말 하나가 떠올랐다. “처세는 계산을 잘해야 한다.” 이 말은 관계를 대하는 삶의 태도를 비유한 말일 것이다.
사소한 선택 앞에서 드러나는 태도는 결국, 관계를 먼저 둘 수 있는가에 대한 조용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사소함을 우선하는 습관이 남기는 흔적은 신뢰이다
식사 자리를 대하는 태도는 시대를 막론하고 드러난다.
과거에는 신발끈을 매거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방식이었고,
오늘날에는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를 하거나 입구에서 지인을 붙잡고 시간을 끄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계산을 피하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내용은 같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관계 속에서 오래 남는다.
사자성어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말하듯,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순간 사람은 더 큰 신뢰를 잃는다.
비용은 아꼈을지 모르지만, 함께하고 싶은 사람의 목록에서는 조용히 멀어진다.
관계의 장부에는 돈보다 태도가 먼저 기록된다.
세상 만사의 이치는 선택의 순간에서 ‘의(義)와 이(利)’로 갈린다
식사비를 기꺼이 내는 행위는 단순한 비용 부담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자리에 함께한 시간과 사람을 존중한다는 무언의 표현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한다.
“군자는 의를 밝히고, 소인은 이익을 좇는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사소한 선택 앞에서 드러나는 태도는, 의(義)를 택하는가 이(利)를 앞세우는가의 분기점이 된다.
성경 또한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
(누가복음 16장 10절)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드러나는 태도는, 그 사람이 더 큰 책임과 관계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를 미리 보여 준다.
사람들은 결국 말을 기억하기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신뢰를 쌓는다.
드러나지 않는 배려가 관계의 품격을 만든다
필자가 만난 그 지인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가 늘 계산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그의 태도는 낮은 곳으로 흐르며 관계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밥값을 먼저 내는 선택은 당장은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손해는 곧 신뢰와 호감,
그리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는 평판으로 되돌아온다.
“재물은 써야 재물이고, 인심은 나눠야 인심”이라는 속담은
관계의 품격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단순하고 분명하게 말해 준다.
고은층의 선택은 관계를 헤아린다
고은층의 삶은 더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다.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 보다, 무엇을 어떻게 남기며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사소한 선택 앞에서 먼저 나서는 태도는 관대함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게를 헤아리는 삶의 윤리이다.
누가 비용을 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그러나 그 자리에 흐르던 분위기와 태도는 오래 남는다. 이는 함께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는 것, 다시 부르고 싶은 이름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그것이 고은층의 삶이 도달하고자 하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깊은 의미와 관계의 품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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