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에서 다시 배우는 고은층의 삶의 복리(福利): 칠십리와 강창학 파크골프장에서 만난 다섯 가지 ‘오자(五行)’의 사유"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삶의 공간은 말이 없지만 태도를 드러낸다: 칠십리와 강창학은 고은층의 삶의 무대
사람은 스스로 삶의 공간을 선택하지만, 선택된 공간은 다시 그 사람의 태도와 삶의 결을 빚어낸다. 어디에 사느냐가 삶을 규정하는 듯 보이지만, 더 본질적인 차이는 그 공간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내는가에서 갈라진다.
필자는 지난 이 년여 동안 서귀포 칠십리와 강창학 파크골프장에서 고은층의 일상 속 놀이를 여러 다양한 고은층들과 함께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처럼 소박한 운동이 단순한 여가를 넘어 삶의 질을 고양하는 하나의 생활양식임을 체감하였다. 그것은 놀이로 즐기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칠십리 파크골프장은 한라산을 등지고 서귀포 시가지와 항, 문섬과 새섬, 새연교까지 시야에 담아내는 평지의 공간이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몸의 긴장은 풀린다. 강창학 파크골프장은 경사지에 자리해 범섬과 강정항, 서건도, 멀리 산방산과 송악산, 날이 맑으면 마라도까지 내려다보게 한다. 이곳에서는 걷는 매 순간마다 몸의 균형과 마음의 집중이 함께 요구된다.
두 공간은 성격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가르친다.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을 결과가 아니라 활동 속에서 완성되는 상태로 보았다. 이 통찰은 이곳에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생활의 언어가 된다. 전도서의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전도서 3:1)는 말씀 또한, 고은층이 체감하는 시간의 리듬과 정확히 겹쳐진다.
이러한 경험을 필자는 다섯 가지의 반복되는 일상의 행위, 곧 다섯 가지 ‘오자(五行)’로 정리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다섯 행위가 누적되며 만들어내는 삶의 질을, 단리가 아닌 복리(福利)라는 언어로 설명하고자 한다.
보는 순간, 관계는 이미 시작된다:
보자(看)는 관계의 문을 여는 행위
파크골프는 공을 치기 전에 먼저 보고 만나며 통(通)하는 운동이다.
공의 위치보다 먼저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홀의 방향보다 먼저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바다의 색, 바람의 결, 계절의 냄새가 시야와 감각을 동시에 연다.
이때 회복되는 것은 시력이 아니라 관계의 감각이다.
고은층의 파크골프에서는 공보다 인사가 앞서고, 놀이보다 안부가 먼저 오간다. 오늘 몸은 괜찮은지를 살핀다.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은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된다. 같아지려 하지 않으면서도 어울리는 태도, 이기려 하지 않으면서도 함께하는 자세가 여기에는 있다.
보는 일은 또한 배우는 일이다.
잘 치는 스윙을 보고, 실수 뒤의 태도를 보고, 말없이 익힌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성어가 이곳에서는 생활의 진실이 된다.
보자(看)는 단순한 시각 행위가 아니다.
이 글에서의 보자란, 대상을 존중하며 관계를 여는 첫 태도를 의미한다.
걷는 리듬이 삶의 균형을 되살린다: 서자(步)는 속도가 아닌 균형의 걸음
파크골프의 중심에는 걸음이 있다.
공을 향해 걷고, 홀을 향해 걷고, 사람을 향해 걷는다. 이 걸음은 서두르지 않는다. 누군가를 앞서기 위한 걸음이 아니라, 자신의 균형을 확인하는 걸음이기 때문이다.
이 걸음은 관절과 근육, 심폐 기능을 고르게 자극한다. 무엇보다 무리가 없다. 노자가 말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가 그대로 적용되는 운동이다.
“사람은 걷는 만큼 생각한다”는 말처럼, 서자(步)는 신체의 건강과 함께 사유의 리듬을 회복시킨다.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생각이 정리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고은층에게 이 걸음은 체력 단련이 아니라 삶의 기본 단위다.
서자(步)는 이 글에서, 무리 없이 지속되는 삶의 리듬을 뜻한다.
웃음은 삶을 가볍게, 그러나 깊게 만든다: 놀자(樂)는 정신의 탄력을 회복하는 힘
파크골프에서의 놀이는 가볍지만 얕지 않다.
실수에서 터지는 웃음, 뜻밖의 장면에서 나오는 품격 있는 유머는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 정신 건강을 지탱하는 자원이다.
웃음은 기억을 맑게 하고, 관계의 긴장을 풀며, 하루의 무게를 덜어낸다. “소소익선(少少益善)”이라는 말처럼, 작은 즐거움이 반복될수록 그 효과는 커진다.
잠언의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잠언 17:22)는 구절은, 놀자(樂)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준다.
놀이는 이 글에서, 정서를 맑게 하여 삶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적극적 행위다.
함께 먹을 때, 하루는 비로소 완성된다: 먹자(食)는 순환을 여는 생활의 의식
운동 뒤의 식사는 단순한 보상이 아니다.
그것은 몸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하루의 기억을 정리하는 의식에 가깝다. 오미가 고르게 돌아야 몸도 균형을 찾는다.
함께 먹는 식사는 관계를 굳힌다.
“같이 밥을 먹는 사이는 이미 한 식구”라는 속담처럼, 먹자(食)는 공동체를 잇는 가장 오래된 장치다.
이 글에서 먹자란, 절제와 감사 속에서 관계를 회복하는 식사를 의미한다.
잘 쉰 하루는 깊이 잠든다: 쉬자(休)는 오늘을 잘 살았다는 증거
잘 보고, 잘 걷고, 잘 놀고, 잘 먹은 하루는 깊은 잠으로 이어진다.
고은층에게 숙면은 내일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오늘을 제대로 살았다는 증거다.
시편의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시편 4:8)는 말처럼, 이 쉼은 불안이 아니라 신뢰에서 온다. 쉬자(休)는 중단이 아니라 회복이다.
일상의 반복과 루틴화는 삶의 복리가 된다: 다섯 오자(五行)의 순환과 고은층의 인간학
"보고, 걷고, 웃고, 먹고, 쉰다"는
이 다섯 행위는 서로를 강화하며 순환한다. 이 순환 속에서 삶의 질은 단리가 아니라 복리로 누적된다.
고은층의 파크골프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운동이자 생활이며, 생활이자 인간학이다.
삶은 더 많이 이루어서가 아니라,
더 잘 반복/루틴화 함으로써 깊어진다.
서귀포 칠십리와 강창학 파크골프장은 오늘도 말없이 그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용어 해설]
1. 다섯 가지 ‘오자(五行)’의 의미
1) 보자(看)는대상과 사람을 존중하며 관계를 여는 태도이다.
2) 서자(步)는 무리 없이 지속되는 삶의 균형 리듬이다.
3) 놀자(樂)는 정서를 맑게 하여 삶의 탄력을 회복하는 즐거움이다.
4) 먹자(食)는 절제와 감사로 관계를 잇는 생활 의식이다.
5) 쉬자(休)는 오늘을 잘 살았다는 확신 위에서 이루어지는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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