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첫날 아침, 고은층의 지혜로운 삶: ‘이루어야 한다’는 마음과 ‘마쳐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의 자유"
이성근 ·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고은층의 시간관
이루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
고은층 시절을 살아가는 필자는 앞으로 반드시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마음도, 오늘 반드시 무엇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도 내려놓기로 했다. 이는 삶을 느슨하게 풀어놓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결과 중심의 인생에서 삶 그 자체를 중심에 두겠다는 선택이며, 서두르지 않아도 삶은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간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태도이다. 노자가 말한 "지족자부(知足者富)"처럼, 고은층의 시간은 더 많은 것을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충분했음을 알아차리는 시간이다.
결과에서 벗어난 삶의 세 가지 태도
'갖지 않음'은 결과 중심에서 존재 중심으로의 전환
고은층이 반드시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목표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이는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을 결과에서 존재로 옮기는 전환이다. 젊은 시절의 삶이 과업과 결과의 연속이었다면, 고은층의 삶은 그 과업들이 남긴 흔적 위에서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더 이상 무엇을 추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각은 무기력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이다. 갖지 않음은 비움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가졌음을 인정하는 성찰이다.
'마치지 않음'은 오늘을 결과로 단정하지 않은 태도
오늘 반드시 무엇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하루를 성과로만 단정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고은층의 하루는 완결된 결과보다 살아 있는 경험으로 의미를 갖는다. 마치지 못한 일은 포기가 아니라 여백으로 남는다. 그 여백은 다음 날의 짐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조율하는 완충 장치가 된다. 마치지 않음은 시간 관리의 낭패가 아니라 시간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는 태도이다.
'누림'은 많이 해낸 삶이 아니라 충분히 '누린' 삶의 태도
고은층의 성취는 더 이상 비교의 성과표로 측정되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 하고 싶은 일을 마음 편히 해냈다는 충만함,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하지 않았다는 절제의 기쁨이 고은층의 성취를 대신한다. 고은층에게 성취란 더 많이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도달해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고은층의 마음과 존재의 의미
의미는 네 가지 마음의 흐름으로 완성된다
고은층의 삶에서 의미는 결과가 아니라 마음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다. 먼저 해 보고 싶다는 방향의 마음이 생기고, 그 일을 해 가는 과정에서 활동 자체의 즐거움이 살아난다. 이어 아직도 할 수 있다는 조용한 자신감이 쌓이고, 마침내 무엇을 해냈다는 평가가 아니라 해 보았다는 경험 자체에서 오는 만족이 남는다. 이 네 단계는 직선적 성취가 아니라 원형의 경험으로 반복되며 삶의 의미를 두텁게 만든다.
존재 가치는 성취 이전의 생명감에서 시작된다
고은층의 존재 가치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보다, 오늘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숨 쉬고 걷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인식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이다. 이는 성취 이전의 가치이며, 평가 이전의 가치이다. 고은층의 시절은 인생의 남겨진 시간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존재감은 관계 속에서 조용히 드러난다
고은층의 존재감은 스스로 드러내는 성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이다. 사회의 전면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의 밀도가 낮아질수록 그 의미는 더 깊어진다. 존재감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묻어나는 것으로 확인된다.
관계와 역할, 그리고 생활의 확장
경쟁력이 아니라 ‘쓸모 있음’의 유능감
고은층의 유능감은 생산성과 속도에서 오지 않는다. 경험을 나누고, 조언을 건네며, 필요할 때 조용히 참여하는 역할은 눈에 띄지 않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고은층의 역할은 무대의 중앙이 아니라 삶의 가장자리에서 오래 지속되며, 그 지속성 속에서 쓸모 있음의 감각은 안정된 자기 확신으로 자리 잡는다.
필자에게 서귀포의 하루는 고은층 인생론의 생활 교과서이다
필자에게 서귀포의 하루는 서두르지 않는다. 아침에 창을 열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묻기보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오름을 걷다 잠시 멈추고, 서파장에서 파크골프를 하며 몸의 감각을 느끼고, 한림 금능의 근석농장에서 흙을 만지다 보면 ‘여기까지면 괜찮다’며 스스로를 놓아주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루를 이룬다. 그래서 필자가 살아가는 서귀포의 시간은 고은층의 삶과 닮아 있다.
지구 공동체·자연·신으로 확장되는 사유의 지평
고은층의 사유세계는 가족과 이웃을 넘어 지구 공동체와 자연, 그리고 신으로 확장된다. 이는 범지구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니는 보편적 가치 의식과 책임감,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신뢰를 포함한다. 고은층 시절의 소속감은 지위를 확인하는 감각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감각이며, 이는 세계와 자연과 신을 대하는 태도로 구체화된다.
존재의 의미로 살아가는 고은층의 시간
고은층으로 살아가는 필자의 삶을 관통하는 두 가지 원칙은 반드시 무엇을 ‘이루고 마쳐야 한다’는 성취가 아니라, 오늘을 무리 없이 살아낸다는 존재의 의미에 있다. 필자가 지니는 ‘이루지 않음’과 ‘마치지 않음’이라는 두 원칙은 인생을 비우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끝까지 존중하기 위한 태도이다. 그래서 지금 필자에게 주어진 고은층의 시절은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 아니라, 온전한 자유가 허락된 시간이다.





사진 1,2는 서귀포 푸른 클럽 고숙 선생(2026.1.1), 사진 3,4는 필자(2025.12), 사진 5는 서귀복연 무량 선생(2025.11)이 보내온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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