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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길이 제주를 만든다: 제주의 7대 비전과 전략, 7비(七飛)·7전(七戰)의 길(路)"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행정학박사ㆍ전 대구경북연구원장


일곱 개의 길이 제주를 만든다

제주는 오랫동안 자연과 역사, 사람과 문화가 융합되며 형성된 섬이다. 그러나 오늘의 제주는 단순히 아름다운 섬이라는 수식어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급격한 관광 성장, 인구 이동, 기후위기, 지역 격차, 삶의 질 문제는 제주의 미래를 묻는 질문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 제주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넘어,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이 글은 제주의 미래를 일곱 개의 비전과 일곱 개의 전략적 길, 곧 '7비·7전'의 길(路)로 정리하여, "이성근 교수의 제주사색"의 5부에 수록하고자 한다.

1로는 생명의 제주: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길

생명의 제주는 제주의 모든 비전이 출발하는 첫 번째 길이다. 제주의 산과 숲, 오름과 곶자왈, 바다와 연안,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생명들은 인간의 개발 이전부터 스스로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거대한 생태계였다. 이 길의 전략은 자연을 이용 가능한 자원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과 동등한 생명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생명의 제주는 보호와 보존이라는 소극적 개념을 넘어, 생태계가 스스로 회복하고 지속될 수 있도록 인간의 개입을 조절하는 적극적 공존의 전략을 요구하며, 이는 곧 제주의 모든 정책과 산업, 생활양식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2로는 휴양의 제주: 소비형 관광에서 체류형 휴양으로의 전환의 길

휴양의 제주는 ‘많이 오는 제주’에서 ‘오래 머무는 제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길의 핵심은 관광객 수의 증가가 아니라, 체류의 질과 리듬의 전환에 있다. 제주의 바람과 햇빛, 숲과 바다, 걷기 좋은 길과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빠른 이동과 소비 중심의 관광보다는 휴식과 회복을 전제로 한 휴양지에 더 적합하다. 휴양의 전략은 숙박과 이동, 음식과 공간을 느리게 재구성하고, 지역 주민의 일상과 충돌하지 않는 휴양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휴양이 제주를 소모하지 않고 제주를 살리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하는 데 있다.

3로는 치유의 제주: 방문의 목적이 바뀌는 치유 목적지의 길

치유의 제주는 휴양의 제주를 한 단계 확장한 비전이다. 이 길에서 제주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찾아오는 목적지가 된다. 자연 속 걷기, 숲과 바다의 리듬, 고요한 밤과 느린 아침은 몸과 마음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적 자산이다. 치유의 전략은 의료 행위에 한정되지 않으며, 자연·문화·생활·관계가 결합된 일상적 치유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이는 고령사회와 스트레스 사회로 접어든 현대인에게 제주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고유한 가치 중 하나이다.

4로는 보건의료 산업기술의 제주: 치유를 산업과 기술로 확장하는 길

보건의료 산업기술의 제주는 치유의 가치를 산업과 기술로 연결하는 전략적 길이다. 제주는 청정 환경과 생물자원, 치유 경험의 축적이라는 조건을 동시에 갖춘 공간이다. 이 길은 단순히 병원을 유치하는 문제가 아니라, 예방·관리·회복·돌봄을 아우르는 보건의료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둔다. 디지털 헬스케어, 재활과 요양, 바이오와 웰니스 산업은 제주의 자연적 조건과 결합될 때 경쟁력을 갖게 된다. 이는 일자리와 정주 기반을 동시에 강화하는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으로 작동할 수 있다.

5로는 주민행복시대의 제주:
관광객보다 주민이 먼저 행복한 길


주민행복시대의 제주는 모든 비전이 도달해야 할 생활의 기준점이다. 제주의 발전이 외부 방문자의 만족을 중심으로 설계될 때, 주민의 삶은 종종 주변으로 밀려나왔다. 이 길의 전략은 정책과 예산, 공간과 서비스의 우선순위를 주민의 삶의 질에 두는 것이다. 주거 안정, 이동의 편리함, 의료와 돌봄, 교육과 문화, 그리고 공동체의 회복은 주민행복시대의 핵심 요소이며, 이는 제주가 지속 가능한 섬으로 남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 된다.

6로는 세계 속의 제주: 탐라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교육과 교류의 길

세계 속의 제주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세계와 연결된 섬으로서의 제주를 의미한다. 이 길은 국제학교 유치를 넘어, 세계 수준의 교육과 연구, 교류가 이루어지는 지식의 거점으로 나아가는 전략을 포함한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 평화의 역사와 국제적 정체성은 세계 시민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이는 청년과 인재가 머무는 제주를 만드는 핵심 조건이 된다. 세계 속의 제주는 외부를 모방하는 제주가 아니라, 제주다움을 통해 세계와 대화하는 제주를 지향한다.

7로는 자유와 평화의 제주: 한라에서 백두로 이어지는 평화 플랫폼의 길

자유와 평화의 제주는 제주의 비전이 도달해야 할 가장 상징적인 길이다. 이 길에서 제주는 군사와 갈등의 공간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 대화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은 분리의 조건이 아니라 연결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제주는 동북아 평화와 인류 공동의 미래를 논의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자유와 평화의 전략은 선언이 아니라, 교육과 문화, 국제 교류와 일상의 실천 속에서 축적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길은 비전이 되고, 비전은 삶이 된다

제주의 7대 비전과 7전의 길은 단절된 목표가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하나의 체계이다. 생명의 길 위에 휴양과 치유가 놓이고, 그 위에 산업과 주민의 삶, 세계와 평화의 길이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 길들이 선언으로 머무르지 않고, 정책과 제도, 생활과 문화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구현되는 것이다. 제주는 이미 많은 것을 갖춘 섬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더 분명한 방향이며, 그 방향을 따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일곱 개의 길이다.

* 이 글은 필자가 제주연구원에서 발표한 「제주발전과 제주연구원의 역할」 특강 자료(2023. 8. 30)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사진.: 위 사진은 서귀삼연의 겨울 나들이(2025.12. 24)의 흔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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