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층에게 다가온 ‘세상 최선의 삶’은 다시 일어나는 회복(回復)에 달려있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인생 후반부의 새로운 이름은 '다시 일어나는 회복'이다
인생의 후반부는 단순히 시간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축이 서서히 이동하는 시기이다.
필자는 이 시기를 설명하기 위해 ‘고은층(高恩層)’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왔다.
고은층은 삶의 전반부에서 경쟁과 성취, 속도와 성과를 경험한 이후,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관계와 의미, 그리고 은혜의 가치를 삶의 중심에 두게 된 세대이다.
이 시기의 삶은 더 높이 오르기보다는 더 깊이 내려간다.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것을 돌아본다.
인생은 더 이상 앞만 보고 달리는 직선이 아니다.
지나온 길을 되짚고, 현재의 자리를 정돈하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성찰의 시간이 된다.
'세상 최선의 삶'에 대해 다시 정의(定意)하다
세상에서 말하는 ‘최선의 삶’은 종종 실패가 없고 고난이 없는 삶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그러한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최선의 삶이란 고난과 실수, 실패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회복에 가깝다.
삶의 의미는 고통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그 고통에 어떻게 순응하고, 어떻게 이겨내는가에 달려 있다.
삶의 질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態度)에서 결정된다.
특히 인생 후반부에 접어든 고은층에게 이 깨달음은 더욱 절실하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지만,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울 수는 있기 때문이다.
삶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인생 후반부의 고은층에게 위기는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건강의 변화가 찾아오고, 부부 관계와 자녀 관계도 이전과는 다른 성격을 띤다.
이웃과의 거리감이 느껴지며, 오랜 시간 쌓아온 생활 기반에 대한 불안도 뒤따른다.
젊은 시절에는 잠시 쉬거나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되던 문제들이, 이제는 시간과 인내, 그리고 수용을 요구한다.
이때 사람들은 흔히 “왜 예전 같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그러나 이는 능력의 상실이라기보다 삶의 무게가 깊어졌다는 의미에 가깝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감당할 것과 내려놓을 것을 구분해야 하는 시기이다.
고은층에게 회복의 방식은 달라진다
고은층의 회복은 더 이상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외부 조건을 바꾸는 일보다, 삶을 해석하는 시선(視線)을 조정하는 일이 먼저다.
하루의 속도를 낮추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질서를 회복하며, 관계의 간격을 다시 가늠하는 과정 속에서 삶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다.
이 회복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지속된다.
바로 이 점에서 인생 후반부의 삶은 ‘세상 최선의 삶’에 가까워진다.
자연의 제주/연제와 제주의 자연/제연에서 배우는 고은층의 삶이다
'제주사색'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고은층의 삶은 자연 속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서귀포에 삶의 거처를 둔 이후, 제주는 필자에게 자연스레 속도를 낮추는 공간이 되었다.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영실과 고근산을 오르는 시간은 경쟁의 언어를 내려놓는 연습이었다.
제주 올레길과 한라산 둘레길, 서귀포 자연휴양림과 치유의 숲을 걷는 산책은 잃어버렸던 회복의 리듬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다.
특히 올레 7코스의 외돌개와 황우지, 그리고 서귀포항과 새섬, 이를 잇는 새연교에서 밤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은 삶이 반드시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주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작아진다.
그러나 그만큼 삶은 단순해지고,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관계를 다시 세우는 태도에서 삶의 균형(均衡)을 찾다
고은층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재정돈이다.
가족과는 동반의 관계로,
이웃과는 선린의 관계로,
자연과 신 앞에서는 경외의 태도로 설 때 삶은 다시 균형을 찾는다.
행복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인생 후반부로 갈수록 관계의 밀도는 삶의 품격을 결정한다.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자
결국 고은층에게 다가온 ‘세상 최선의 삶’이란 완벽한 상태에 이르는 삶이 아니다.
넘어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끝내 놓지 않는 삶이다.
인생 후반부는 끝을 향한 마감의 시간이 아니다.
정리와 전환을 통해 삶이 더 깊어지는 시간이다.
다시 일어나는 힘, 그 조용한 힘이야말로 인생 후반부에 주어진 가장 큰 은혜(恩惠)이며, 고은층에게 주어진 세상 최선의 삶이다.
[용어설명]
1) 고은층(高恩層)의 개념 정의
고은층은 인생 전반부의 성취 중심 삶을 지나, 후반부에 이르러 관계·의미·은혜를 삶의 중심에 두는 단계이다.
이들은 속도보다 방향을, 소유보다 관계를 중시하며, 성취보다 회복과 균형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고은층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과 기억을 축적한 사회의 자산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서귀포에서 생활한 지 4년째이다. 전반부 2년은 주로 자연의 제주를 찾아다니며 보냈고, 나머지 2년은 주로 서파장에서 여러 부류의 고은층과 함께 놀이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후반부 서파장에서 만난 한 지인은 현재 암 투병으로 항암 치료라는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
이 글은 그 지인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성격을 담고 있다. 바라건대, 이 지인이 "고은층에게 다가온 ‘세상 최선의 삶’은 다시 일어나는 회복에 달려 있다"라는 칼럼의 제목처럼, 참고 견디어 마침내 우뚝 회복하여 다시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사진. 이성근. 사진1 한라산, 사진2,3 서귀포 새연교와 새섬의 야경, 사진4 백약이 오름, 사진5 강파장. 20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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