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유래와 의미를 중심으로 교직자의 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임중도원(任重道遠)은 "논어(論語)" '태백편(泰伯篇)'에 유래하고 있다.
임중도원의 의미는 선비가 지녀야 할 사명감이고,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논어"의 '태백편'에 "선비는 도량이 넓고 의지가 굳지 않으면 안 되니, 임무는 막중하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의 실현을 자기 임무로 삼았으니, 이 또한 막중하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그만둘 것이니, 이 또한 멀지 않은가?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나무위키
또한 증자는 "선비는 가히 넓고 굳세지 아니하지 못할지니, 임무는 무겁고 길은 머니라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하였다./ 나무위키
임중도원은 교직자에게 두 가지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하나는 임중(任重)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도원(道遠)의 길이다. 임중의 길은 교직자에게 요구되는 독특한 자질을 키우고 투철한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도원의 길은 교직자에게 명확한 의지와 확고한 신념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직자는 어떻게 임중도원의 길을 걸을 것인가? 교직자는 스스로 배움과 훈육에 힘써 자질 향상과 사명감으로 맡은바 교직에 성실한 자세로 책임을 다하는 근학무실(勤學務實)의 길을 가는 것이다.
한편 임중도원의 유사성어로 '일모도원(日暮途遠)'이 있다. 일모도원은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로 맡겨진 사명이 막중한데 이를 수행할 길이 멀다는 뜻이다. 즉, 할 일은 남았는데 날이 저물어 이루어내지 못함을 비유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모도원과 같은 상황에 놓일 경우 대체로 편법과 정법의 두 가지 접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전자는 '도행역시(倒行逆施)'라 하고, 후자는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 한다.
전자인 도행역시(倒行逆施)는
일모도원(日暮途遠)과 함께 사용된다. '일모도원 도행역시'는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이 멀어 이치에 어긋나지만 일을 거꾸로 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나온다.
후자인 미생지신(尾生之信)은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중국 춘추 시대에 미생(尾生)이라는 자가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한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홍수에도 피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익사하였다는 "사기"의
'소진전(蘇秦傳)'에서 유래한다.
이와 같은 일모도원과 같은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교육계에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 경우 교직자는 교직의 특성상 일반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그러면 교직자는 어떤 접근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도행역시와 미생지신의 두 가지 접근방법이 모두 선택가능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필자에게 하나를 선택하라면 미생지신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교직자에게 차별적으로 미생지신과 더불어 '우직지신(愚直之信)'의 길을 기대한다. 우직지신은 바로 보고 바르게 생각하며, 그리고 정직하고 꾸준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비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성실하게 나아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 글을 마치면서 필자는 우리 교직자들이 임중도원(任重道遠)의 근학무실(勤學務實)과 우직지신(愚直之信)의 길로 걸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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