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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남쪽 사막도시 인근 민속마을 무덤에 세워진 세 개의 막대기가 전하는 신앙의 궤적"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사막으로 향한 발걸음

이십 수년 전, KOICA 지원사업으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주관한 시디 압둘라 과학기술 신도시 마스터플랜 자문단에 참여한 나는,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약 40km 떨어진 시디 압둘라에서 자문 활동을 마쳤다. 남은 이틀 동안 시간을 내어 남쪽 사막도시로 향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펼쳐진 사하라 사막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하늘은 한층 짙고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공항에 내리자 뜨거운 모래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대로변의 야자수와 모래벽집은 사막의 색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민속마을의 풍경과 숨결

사막도시 외곽의 민속마을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분위기였다. 모래를 다져  시멘트 벽돌처럼 굳게 만든 모래담장은 세월이 새긴 갈라진 흔적을 그대로 간직했고, 좁고 구불진 골목에는 흙먼지가 부드럽게 깔려 있었다.
장터에는 낙타 가죽에 문양을 새긴 지갑과 은팔찌가 진열되어 있었고, 대추야자와 커민, 사프란 같은 향신료의 짙은 향이 코를 찔렀다. 가게 주인은 민트차를 권하며 말했다.
“마시는 순간, 사막이 덜 더워질 겁니다.”
그의 말대로 뜨겁고도 달큼한 차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언덕배기 공동무덤에 세워진 세 개의 막대기

마을을 벗어나 사막길을 달리던 중, 도로 옆 언덕배기에 자리한 공동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처럼 비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더미 위에 나무 막대기가 세워져 있었다.
어떤 무덤에는 한 개, 어떤 무덤에는 두 개, 또 어떤 무덤에는 세 개의 막대기가 서 있었다. 동행한 현지 안내인이 설명했다.
“이 막대기는 고인이 생전에 다녀온 이슬람 성지의 수를 나타냅니다. 한 개는 한 곳, 두 개는 두 곳, 세 개는 세 곳 모두를 다녀왔다는 뜻이지요.”
그 세 성지는 메카, 메디나, 그리고 예루살렘이었다. 메카는 모든 무슬림이 평생 한 번은 가기를 꿈꾸는 신앙의 중심, 메디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는 제2성지, 예루살렘은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제3성지로, 하늘과 역사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곳이었다.

신앙의 완성과 인간의 발자취

사막권에서 이 세 곳을 모두 순례하는 것은 ‘완전한 성지 순례’로 간주된다. 무덤 위의 막대기는 고인의 신앙 여정을 말없이 전한다.

• 한 개의 막대기는 믿음의 용기
• 두 개의 막대기는 믿음의 성숙
• 세 개의 막대기는 믿음의 완성

모래바람이 무덤을 스치고 세월이 모래언덕을 깎아내려도, 그 위의 막대기는 여전히 고요히 서서 이야기를 전한다.

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그 언덕 위 무덤들을 바라보던 순간, 나는 평소 인상 깊게 간직해 온 미국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묘비명을 떠올렸다.
“남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이, 여기 잠들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경험은 그에게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가르쳤고, 그는 그 가치를 평생 지켜냈다. 이 문구는 단순한 묘비명이 아니라, 그의 삶과 철학을 함께 묶은 유산이었다.

그 순간, 나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내가 떠난 뒤, 내 죽음 뒤에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세상에 남긴 작은 흔적일 것이다.

오늘,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문득 오래전 알제리 남쪽 사막도시 인근 공동묘지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황톳빛 언덕배기 위, 세 개의 막대기가 고요히 서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나무 조각이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 걸어온 신앙과 삶의 궤적이자 세상에 남긴 가장 순수한 표식이었다.
공항 대기실에서 오랜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마친 뒤, 나는 비행기에 올라 가까스로 대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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