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세상: 2003년 알제리 시디 압둘라 방문의 몇 가지 단상"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ㆍ행정학박사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서
2003년, 나는 15일간 알제리 시디 압둘라 과학기술 신도시 마스터플랜 자문을 위해 현지를 방문했다. 그곳은 아프리카 대륙의 일부이면서도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깊게 남아 유럽적 문화가 여전히 상존하는 이중적 공간이었다. 도시 주태가에서는 안테나 설치를 통해 유럽 방송을 청취하는 가정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도심 풍경 또한 ‘아프리카 같지 않은 아프리카’, ‘유럽 같지 않은 유럽’이라는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독립 이후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던 알제리는 다시 시장경제로 회귀하는 길을 걷고 있었으나, 여전히 공공부문의 힘이 강했고 비공식 경제가 크게 작동하고 있었다. 외환 교환에는 일상적으로 암달러상이 개입했으며, 사회주의의 관료적 공권력은 민간인의 삶 깊숙이 개입했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조차 공용차의 잘못은 덮이고, 개인 운전자가 오히려 호된 꾸지람을 받는 모습에서 권력의 비대칭성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진의 흔들림과 국제적 풍경
내가 머물던 시기,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는 큰 지진이 발생했다. 주한 알제리 박** 대사의 초청 만찬 자리에서 샹들리에가 크게 흔들리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또 한편으로는 중국 근로자들이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미 20여 년 전, 중국은 제3세계와 아프리카 진출을 본격화하며 국제적 행보를 넓혀가고 있었다. 알제리의 일상적 삶 한가운데에 중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일상과 경제의 단면
당시 알제리의 물가는 놀라울 정도로 저렴했다. 길거리의 팔뚝만 한 크기의 바게트 빵 하나가 우리 돈 500원이면 살 수 있었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먹을 것에 큰 불편은 없었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의 성실하고 근면한 습관을 개조하려 하자 국민적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시디 압둘라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한 명의 노동을 위해 서너 명이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한 사람은 실제로 일하고, 한 사람은 준비하며, 또 다른 한 사람은 휴식하는 구조가 노동 현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알제리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며 대전의 정보통신연구원 일정에 더해 새마을운동중앙회를 방문 일정에 넣었다고 한다. 이는 자국의 노동 현실과 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의 새마을 운동 경험을 배우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젊음과 일자리의 불균형
지방의 도로변 정류장 부근에서는 일할 기회가 부족한 탓에 삼삼오오 모여 시간을 보내는 청장년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노동 기회의 불평등은 국가 경제 발전의 큰 걸림돌이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젊은 세대의 자유스러우면서도 무기력한 표정은, 사회주의 체제의 유산과 시장경제 도입의 충격이 뒤섞여 만들어낸 시대적 풍경이었다.
사막도시의 생존과 생활
자문 일정 중 일부 시간을 내어 알제리 남부의 사막도시를 찾았다. 그곳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놀라운 생존의 지혜를 발휘하고 있었다. 도로변 가로수들은 물 파이프로 연결되어
일정한 시간마다 하루 몇 차례 물을 공급받았고, 이를 통해 도시 녹화를 유지했다. 이는 혹독한 기후 속에서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을 실천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민속마을의 주거 구조는 우리 농촌의 전통 주택구조와 유사했다. 집 안에는 우물이 있고, 주택 옆에는 가축을 기르는 마구간이 붙어 있었으며, 물건을 올려놓는 단순한 선반 구조가 생활의 지혜를 보여주었다. 인간의 삶은 어느 대륙에 있든 유사한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하며 유구한 생활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슬람 사회와 여성의 삶
사막도시에서 마주한 이슬람 여성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한쪽 눈만 드러낸 채 히잡과 옷으로 온몸을 감싼 그들은 종교적 규율 속에서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 사회에서 여성의 미적 평가는 눈에 집중되었고, 그래서 눈 성형이 활발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는 종교적 제약과 미적 욕망이 교차하는 문화적 아이러니였다.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세상의 교훈
알제리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세상”이라는 주제를 남겼다. 겉으로는 아프리카지만 유럽의 그림자가 드리운 공간,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충돌하며 만들어낸 혼합경제의 모습, 그리고 사막이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 체화된 독특한 생활의 지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십 수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여전히 문명의 교차로에서 흔들리고 있다. 알제리에서 본 지진의 흔들림은 어쩌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정치·경제·문화가 동시에 겪는 진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는 서로 다른 경험 속에서도 공유할 수 있는 인간적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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